-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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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는 유아기의 벽에 갇혀 있다. 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는 문턱을 지키는 사람으로 버티고 있어서, 그들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영혼은 문을 열고 외부 세계로 나오는, 재생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의 문턱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모습 중에 하나는 과잉보호가 아닐까 생각된다. 매일매일 터지는 사건 사고 속에서 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히 드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때로는 엉뚱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주변에 엄친아, 엄친딸을 두어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친구가 있다.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수업태도도 좋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도 하고, 성격도 좋아 따르는 친구들도 많다. 거기다 부모의 말까지 잘 들으니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때는 이 친구의 아이들이 너무도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친구의 집에 오래간만에 가게 되었다. 남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까.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해서 대화를 시도하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고 어린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 묻고 기다리는 것은 나의 호기심의 영역 중에 하나였다. 아이들은 때로는 기상천외한 대답으로 즐겁게 해주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기에 항상 그 의외의 대답을 기다리는 재미는 아주 쏠쏠한 편이다. 여지없이 친구의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면서 질문을 던지면 1초도 되지 않아 돌아오는 답변은 엄마의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심도 있는 질문을 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평범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몇 번이고 대답은 엄마 차지였다. 나의 호기심과 기대치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가만히 보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하고 지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원을 갈 때 챙겨야 하는 준비물부터 시작해서 먹는 것, 입는 것 등 모든 것이 엄마의 지시였고, 아이들은 로봇처럼 움직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의 행동이 자기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한숨과 함께 잔소리가 시작된다. 엄마의 명령에 익숙한 아이들은 그나마 잘 따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시킨 일이 끝나면 와서 묻곤 한다. 다음에는 무엇을 하느냐고? 5분의 시간도 스스로 할 일을 찾지 못했고 엄마한테 언제나 물었다. 내 친구는 이런 일로 더 바쁠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법이 통하는 것이 신기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불편했고, 그 뒤에 몇 번을 더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같은 모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친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때, 일하는 엄마를 두었던 나는 엄마가 항상 집에 계신 이 친구가 많이 부러웠다. 하나하나 자상하게 챙겨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서 전업주부가 되었는데, 엄마의 챙김은 예전이나, 결혼 직후나, 10년 후나 똑 같은 빈도수를 갖고 있었다. 예전에는 좋아 보였던 모녀 관계가 지금은 도가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가진 능력에 비해 소심해서 걱정과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언제나 사서 했고, 그런 것 때문에 어떤 일을 시도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옆에서 해보라고 부추기기도 하고 능력을 칭찬해주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친구의 경험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되 물림 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삶의 재생을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의 틀 속에서 아이들 역시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과연 이 아이들은 부모의 문턱을 넘어 설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부모가 떠나고 아이들이 혼자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 번도 연습 없이 사는 삶은 어렵지만, 그 중에 부모는 최고로 어려운 자리인듯하다.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극복을 해서 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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