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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8일 12시 22분 등록

손이 떨려서 글이 잘 안써졌습니다. 2주간 무심하려 애썼는데 무너지네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강종희

2014. 4. 28


왕의 소명은 세상의 안녕이다


 

본디 왕은 세상을 위해 죽는 존재다.

죽기 위해 왕이 되었다.

 

세상이 안녕하지 못하면 왕은 죽어야 했다. 제정일치의 고대 사회에서, 원래 왕의 소명은 건강하고 신성한 왕의 기운으로 세상을 안녕케 하는 것이었다. 그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죽음으로 세상의 쇠락을 막는다.

 

자연의 운행이 이 신적 인간()의 생명에 의존한다면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힘의 쇠약과 죽음에 있어서 최호의 종식에서 예상되는 파멸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의 힘이 쇠약해지는 증세가 보이자마자 신적 인간을 살해하여 그 영혼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손상되기 전에 활동적인 후계자로 옮겨 놓아야 한다….

 

왕이 그 권위를 남용하여 백성의 원한을 불러 일으켰을 때, 중요한 책임을 지닌 그의 대신(大臣) 한 사람이 잠잘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음독하여 죽음을 의미한다. 용기가 없어 이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면 친구 한 사람이 그를 위해 최후의 봉사를 하는데 이 비밀을 폭로하지 않고, 조용히 왕의 죽음을 백성에게 알릴 준비를 한다.”

 

(p352, 361, 황금가지, 제임스 프레이저, 삼성출판사, 24. 신성한 왕의 살해 중에서)

 

결국 왕은, 세상의 안녕에 책임이 있다. 신성한 세상의 안녕과 일체화하는 신적인 인간의 중요성은 거기에 있다. 왕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가장 강건하고 고귀한 모습을 유지하고, 귀함을 누린다.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한 왕의 소명은 세상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자신의 쇠하는 기운, 부정한 기운을 세상에 끼치지 않게 고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이 왕이었다. 그래서 많은 고대 사회에서 왕의 소명은 제물로서 바쳐져 세상의 기운을 회복하는데 두고 있었다.


주기의 마지막 해에, 전통에 따라 미노스왕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대용물로 아테네의 선남선녀를 바친 듯 하다. 미노스가 괴수 미노타우루스가 되고, 자기를 희생시켜야 하는 왕이 폭군이 되고, 모두가 왕의 역할을 수해하던 제정 일치 국가가 사리 사욕만 아는 상업 국가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전 3천년대에서 2천년대까지, 그러니까 초기 제정일치시대 말기의 고대국가에서는 이러한 대속물의 희생제가 관례였던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p125. 조셉 캠벨)


죽지 않으려던 왕, 물러서지 않으려던 왕, 자신을 희생물로 하는 대신 아테네의 선남선녀들을 바쳐 자신의 영달을 꾀하던 미노스왕이 어떤 괴물과 맞닥뜨려야 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 괴물은 자신이었다.

세상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자신의 소명을 저버린 왕, 그 왕이 괴물이 되어 나라를 유린했다.

고귀한 신의 나라를, 부정하고 비정한 상업 국가로 주저 앉혔다.

 

죽지 않으려는 왕, 다른 이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있으려는 왕, 세상의 모든 번뇌가 자신의 책임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왕, 그 모든 불행을, 쇠멸을 대속하여 가져가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모르는 왕, 세상을, 사람을 외면하는 왕은 세계의 붕괴를 가져온다.

 

부정한 왕이, 무지한 왕이, 세상의 종말을 부른다.

 

수백 명의 산 목숨이 수장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차 침몰 이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이 참극. 그 책임의 끝은 결국 국가다.

선원과 회사와 관리당국과 고위관료를 탓하고 엄벌할 것을 부르짖는 국가의 수장 앞에서 국민은 망연하다.

 

그 책임의 끝에 당신이 있단 말이다.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를 구할 수 있는 참모는 없다. 일천하지만 CEO들의 정치적 경호원으로 십 수년을 보낸 경험이 말한다. 역사가 말한다.  

 

지금이라도 지도자의 책임을 직시하라.

지도자의 소명은 사회의 안녕이다.

 

우리는 이제 한 시대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비극조차 우리를 깨우지 못한다면, 이 참사조차 그들의 굳건한 성벽을 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할 말도 남기지 못 한 채, 천천히 압사당하듯 느리고 졸렬한 종말을 고통스럽게 맞게 될 것이다.

 

비겁한 지도자는 가라, 껍데기로 눈가림만 하는 시종들은 가라.

시퍼런 물길에 갇혀 죽어가는 아이들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무리들은 가라.

너희들이 죽였다.

죄를 받으라.

 

죄를, 제발 받으라.

이것은 당신들의 죄이다.

당신들의 썩어 문드러진 정신이 신의 숨결 앞에 촛불처럼 불리어 꺼지는 그 순간까지,

그 심장에 얹혀 있으라.

 

지도자의 소명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는 당신은, 이제 가라.

 

IP *.198.2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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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11:46 *.223.57.43
감사합니다.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사람들이 머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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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29:43 *.198.29.159

Tipping point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이 모든 비극과 부정들이 결국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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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16:26 *.94.41.89

미노타우로스의 실체는 미노스 왕의 사욕이었다.

그리고 미궁은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의 엄흉한 마음이었다.

세상은 엄혹하였고 희생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대리자들이 죽고 남은 자들은 안도하였으나

영혼없음을 한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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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28:05 *.198.29.159

영혼없음을 한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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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40:47 *.228.119.26

읽다 보니 왜 고대 "제정일치" 사회가 "제정분리" 사회로 가야 했는 지에 대한 해답이 느껴집니다. 제정일치사회는 신과 인간관계에 대한 모순점을 완화시키지 못합니다. 재난이나 패전 등 일이 잘못되었을 때 신에 대한 비난이 제사장인 왕에게 직접 전달되어 정치적으로 어려워 지게 됩니다. 신과 왕 사이에 제사장을 끼워 넣어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정치적으로 매우 편리한 제도일 것입니다. 사보나롤라. 크롬웰, 칼뱅 등이 신정정치를 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끝난 것도 제사장=왕 이라는 구도가 주는 어려움도 이유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왕과 계승자간의 싸움에 대한 것은 언급하신 "황금가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일정부분 제정일치 사회같습니다. 신성불가침의 무오류 존재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갠더만 있을 뿐 구원의 손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즉, 계승자에 대한 정치적 두려움만이 있을 뿐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실질적 도움같은 것은 없습니다. 


"황금가지"에 나오는 왕은  언제 계승자가 쳐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호숫가를 떠돕니다. 떠도는 이에게 주변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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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54:19 *.198.29.159

주변을 볼 수도 없는 왕. 리어왕이 그렇게 자기 왕국을 몰락시키고 딸들을 죽게 만들었지요.  리더의 무지와 두려움이 가져온 불행에 대해 우리는 멀리 가 살필 필요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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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48:59 *.218.176.39

"선원과 회사와 관리당국과 고위관료를 탓하고 엄벌할 것을 부르짖는 국가의 수장 앞에서 국민은 망연하다."


원래 지 꼬라지는 안보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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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4:05:07 *.198.29.159

그거요! 지 꼬라지를 보라고요! 역시 한방에 핵심,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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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7:06:34 *.113.77.122

결국 왕은세상의 안녕에 책임이 있다신성한 세상의 안녕과 일체화하는 신적인 인간의 중요성은 거기에 있다왕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가장 강건하고 고귀한 모습을 유지하고귀함을 누린다그와 못지 않게 중요한 왕의 소명은 세상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이래서 왕은 천명인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이런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정말 책임감있는 일들을 해야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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