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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8일 13시 17분 등록

#0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블룸 : 자네는 왜 아버지의 집을 떠나왔나 ?

스티븐 : 불행을 찾아서지요.

 

#1

체부동 잔칫집에서 비빔메밀과 떡만두국을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며 두리번 거리니 가게의 벽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굵직굵직한 공인들이 많이 보인다. 맛집에 걸린 연예인 싸인 액자에는 행복하세요라는 문구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2

SNS별 사람들이 SNS를 하는 이유

싸이월드 :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다

페이스북 :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블로그 : 내가 이렇게 전문적이다

인스타그램 : 내가 이렇게 잘 먹고 다닌다

카카오스토리 :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

트위터 : 내가 이렇게 병신이다

 

SNS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과시한다. 잘 살고 있다고, 즐겁게 지낸다고, 자기 참 생각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어필한다. 또 우리도 그늘 한 구석 없는 인생 없다는 거 다 알면서 남을 속이고, 남한테 속아준다. 불행이 없는 가상 세상에서 다같이 행복을 연기한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것들은 어쩌면 죄다 거짓부렁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런 마음, 잘 사는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불행한 건 숨기고 싶은 마음. 공감한다. 그 동안 불행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왔으니까. 불행을 없는 셈치고 산다면 얼마나 내 인생이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나의 전체 중에 그 부분만을 보고도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지 모른다. 아름답고 젊은 육체와 엣지 폭발하는 패션 감각과 풍요롭고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을 과시하면서 나는 다시 찾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행을 피한다. 불행한 사람을 피해서 걸어간다.

그런데 그런 불행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있단다. 이걸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가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죽어도 피하고 싶고 잘사는 모습만 남들 보여주면서 정신 승리하고 있는 마당에 의도를 갖고 불행을 집어드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자기자신이 싫은가? 그렇게 불행해지고 싶은가? 안락한 아버지의 집을 뛰쳐나올 정도로? 이쯤되면 자기애라는 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심리검사라도 맡겨봐야 할 것 같다. 불행을 원하는 자, 그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인생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생이라 한다. 간난쟁이가 우렁차게 울면서 태어난다는 것을 보며 ‘인생, 참 슬픈 거’라고 의미 부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저 어린 것 마음 속에 근심 걱정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같이 시간 지내보면 제 나름대로, 상황에 따라 작은 미간에 얕은 주름이 잡히는 게 보인다. 행복하게 살기, 확실히 나이 불문하고 어렵다. 그러니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남이 가진 것 부러워하고, 원하는 거 원할 때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슬퍼한다. 어디 그뿐인가. 억울한 일도 당한다.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너무 잘해도 정 맞는 것, 일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건강 먼저 잃는 것, 주변에서 이런 카운터 펀치들에 맞아 나동그라지는 와중에도 정신줄 놓치 말아야 한다. 그러니 인생, 너 참 고달프고 힘들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행복함을 연기하며 니오베 여왕처럼 일곱 아들 일곱 딸에 부유한 나라의 왕비라 자처하며 자기 처지를 자랑한들, 사실 우리네에게 들이닥치는 불행은 영영 치워버릴 수가 없다. 불행은 아폴론, 아르테미스 남매의 화살처럼 순식간에 우리의 사랑스러운 일상들을 고꾸라트린다.  아들들이 다 쓰러지고, 딸들도 하나 둘씩 쓰러지다 하나 남은 막내딸이라도 지켜볼라 해도 불행의 화살은 피할 수가 없다. 신화 속 박복한 여왕은 돌이라도 될 수 있지만, 방금 전까지 신체 건강한 진짜 사람이 갑자기 돌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살을 해볼래도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숨었다. 아버지의 집 속으로. 온실 속으로. 학교 속으로. 회사 속으로. 불행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게 꼭꼭 숨었다. 별 일 없이 산다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가끔 잠들기 전에 시계 초침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듯이 불행의 구두소리가 뚜벅뚜벅 들리긴 했지만, 다행히 그 요망한 것은 나를 가끔 찾아와 인사만 하고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차례였던 모양이다. 그 때 나는 택시를 타고 결혼식을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택시에 누가 먼저 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번쩍이는 신사 구두를 보고 그가 불행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가방 속에서 전화가 울렸다. 병원으로 와. 아빠가....나의 은신처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택시를 돌려 신촌으로 향했다. 갓 한달 된 따끈따끈한 새내기들과 찬란한 봄꽃으로  가득 찬 그 거리에서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날 그곳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당시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에게는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이. 너무 많이 울면 정수리부터 짠물에 담겨져 있는 기분이 든다. 짠물의 일부가 되면서 나는 그때 심정적으로 바닷물이 왜 짠지 이해하게 되었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불행은 피할 수 없다. 살아있는 자는 자기 몫의 불행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눈물에 절여지면서 나는 어떤 불행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파도가 좋은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한 움큼 떠서 잘 살펴보면 그 속에 반짝이는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장면과 지난 달력에서 날짜만 봐도 웃음기가 사라지는 날이 동시에 있는 것이 인생이었던 셈이다.

아름다운 별들은 밤이 어두울수록 반짝인다고 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 그들의 마음은 깊은 밤에 잠겨있다. 외롭고 초라하고 멍하다.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가라앉고 힘이 빠진다. 심장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 그들은 입을 닫고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들은 지금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는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에게 온 소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거기로부터 비롯되는 영웅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은 깊은 심연에서부터만 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가장 깊은 밑에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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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3:29:02 *.94.41.89

나에게 그 날은 그렇게 달도 밝고 별이 빛났다오.

심연은 우연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빠져드는 늪같고

그 늪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고개 들 수 있어 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오

그 깊은 밤은 혼자 있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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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5:28:50 *.218.176.39

"그러니 가장 깊은 밑에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위에 있는 것이다. "


맞습니다. 그 부분은 거짓말을 할 수 없죠.

무엇을 주셨는지 생각하면 힘이 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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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17:29:14 *.31.206.81

모순이고 역설이에요.

삶의 참 맛이 '쓴 맛' 이래요.

 

오늘 특강이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파 본 사람 손들어 보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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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7:11:56 *.113.77.122

그제서야 비로소 그들은 지금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는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에게 온 소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거기로부터 비롯되는 영웅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은 깊은 심연에서부터만 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 바로 그때가 온것 같죠 

같이 여정을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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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9:26:52 *.70.48.56
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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