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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9일 13시 32분 등록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중 하나, '오늘')

 

 시인 김수영은 자신의 수필에서 열 개의 아름다운 우리 말을 꼽은 적이 있다.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김수영이 꼽은 우리 말에는 컴퓨터 화면에 빨간 밑줄이 그이는 말도 있다. 한번에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는 말들이 많고 대량의 언어학 규범이 내장된 PC조차도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와 나 사이에,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살던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 사이를 흐르는 언어 변화 조류가 눈에 띄게 빠르다는 말이겠다. 나는 거센 이 조류에 내 언어를 지키고 싶다.

 

 오늘, 우리말 열 개 중 제일 윗자리는 오늘이다. 오늘은 현대의 시간 단위로 치자면 자정에서 자정까지의 24시간이다. 사전을 뒤적여 보니 오늘은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날이며 비슷한 말로 금일이 있다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오늘이므로 오늘은 그대와 나,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시공간적 최대공약수다. 오늘이 거듭되면 매일이 되고 매일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삶이 된다. 그러므로 내 삶은 나의 오늘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삶을 마치는 그 어느 날도 바로 오늘이 될 테다. 그 어떤 것들을 언제 하든 그 시점은 오늘이 될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뭔가를 시작하려면 오늘 해야 하고 어떤 것을 해보려 마음먹기에는 오늘이 가장 좋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실천 또한 바로 오늘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켜켜이 쌓인 실천은 언젠가의 오늘이 반갑게 화답할 것인데 그때 우리는 삶을 상대로 보기 좋게 승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지 못하는 나에게 일갈하는 스스로의 메시지다. 어찌 되었든 오늘이라는 말은 꿈틀대는 모든 것들에게 존재한다는 동사를 수여하는 주어다.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오늘이 아름다운 가장 큰 이유다.

 

 오늘이라는 단어는 이라는 항상성을 품고 있다. 그 항상성에 라는 감탄이 지루한 일상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오늘은 지리멸렬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 삶이 흔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서 오늘도 흔적의 흔적으로 끝날 테지만 흔적조차 되지 못하는 바람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은 살아있는 것들을 죽음으로 한 발짝 다가서게 하여 죽음에 봉사하는 케로베로스다. ‘이라는 항상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영원이라는 뽕을 맞힌다. 그 뽕을 주사하고 바로 지금의 소중함을 삼켜버리는 건 순간이라 오늘은 순식간에 지나가게 된다. 우리가 매일 발버둥 치며 사는 이유는 오늘을 허송해도 내일이 올 거라는 뽕맛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반항일지 모른다. 오늘을 이라는 허무의 뽕맛에 헌납 할지, 아니면 '오'하며 살아있음을 감탄하는 데 쓰는지는 그래서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다. 비록 흔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IP *.51.14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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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7:28:09 *.113.77.122

'오' 멋지신데요 ^^


'오늘' 좋은 글을 만나 살아 있음에 감탄하게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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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3:34:17 *.51.145.193

조악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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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9:31:37 *.94.164.18

오늘이라는 의미가 그런 의미였군요.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항상 가슴에 새기고 다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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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3:35:25 *.51.145.193

얼치기 말장난 일 수도 있는 글에 의미를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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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9:24:05 *.70.48.56
풀이, 죽이네요. 요거 다른데서 써먹어야겠습니다. 카피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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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04:25:28 *.39.134.221

다시 너의 비장함을 볼 수 있어서 좋네^^

 

고봉으로 숟가락에 얻어 밥을 목에 밀어 넣어도 넘어가주지 않는 잔가시처럼

오늘이 목에 걸려있다.

오~~~~~~~~~~~~!!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다만 알아차리고

다만 내려 놓는다.

그렇게 나를 알아차리고

그렇게 하루를 챙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놈의 다만 도 잘 안 되고

그놈의 하루도 왜 이리 허망하게 날려버리는지

 

알 수 없어서가 아니고

행하지 않는 나를

봄바람에 날리고

오늘은 빨간 날이 아니면서 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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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09:26:41 *.153.23.18

김수영의 열 단어 중에서는 에누리, 군것질이 좋고

재용의 2번째 문단을 좋아해요. 일갈 부분이 특히.

어떤 걸 10개 단어로 꼽았을까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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