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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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무슨 생각을 하나? 알람소리에 눈을 뜨면 잠시 몸을 뒤척인다. 잠자리에서 발을 높이 들었다 좌우로 내리며 몸을 꼬는 스트레칭으로 허리를 풀어준다. 허리에선 오도독 뼈마디 풀리는 소리가 난다. 시원하다. 기지개를 한 번 늘어지게 켠 후 가벼운 반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유 한 잔, 사과, 빵이나 고구마 한 쪽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 아내와 딸아이가 일어나기 전, 혼자 하는 식사 시간엔 어제 했던 일이나 생각들이 떠오른다. 근래 곰곰히 생각했던 일, 추진 중인 과제, 걱정거리 등이 떠오른다. 식사후 샤워하는 동안에도 비슷한 생각이 이어진다. 아침에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헌데 이런 생각들을 못할 떄가 있다. 몸이 안 좋을 때다. 간혹 잇몸이나 허리 아플 때가 그렇다. 이빨이 아프면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신경이 온통 욱신거리는 이빨에 쏠려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다. 허리가 아프면 또 어떤가. 허리가 시큰거리면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매가리가 없어지고 아픈 허리에 신경이 씌여 집중해서 뭔가를 할 수 없다.
근래 들어 잇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한동안 딱딱한 걸 씹지 못했고, 잇몸에서 자주 피가 났다. 매월 정기 검진을 받지만 이미 상해버린 잇몸을 좋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치과의사 선생님은 언젠가 이빨을 왕창 들어내고 전체를 임플란트로 갈아야 할 거란다. 현 상태로 잘 관리해서 자기 치아를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란다. 이빨이 좋지 않아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젠 치아 전부를 반납 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 임플란트를 한다고 앞니를 빼고 한동안 생활했던 적이 있었다.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이빨이 없어졌다는 상실감이 컸다. '이제 몸의 일부를 반납하기 시작했구나. 지금은 치아 정도지만 나중엔 몸 전체를 반납해야 할 때가 올거야.'
이런 생각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앞니를 빼놓고 지내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고 일상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는 듯 했다. 50년 넘게 사용했으니 이제 한두군데씩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노병사. 이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나. 그동안 관리를 잘못했던 과보를 받는 것이라 생각하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아픈 몸을 생각하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한 부분이 훨씬 많다. 가끔 눈이 침침해 질 때도 있지만 아직은 책을 보는데 어려움이 없다. 좀 무리한 산행을 하면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걷고 가볍게 뛰는데 문제가 없다. 오징어 같은 질긴 음식은 어렵지만 그래도 아직 깍뚜기도 씹고 부드러운 냉면은 이빨로 끊어가며 먹을 수 있다. 음식은 이빨로 자르고 갈고, 혀로 뒤섞어가며 자근자근 씹어야 제맛이 난다. 이빨이 성할 떈 그걸 몰랐다. 이제사 그 고마움을 알게되니,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어디 이빨만 그런가.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걷고 뛸 수 있는 것. 이런 것들 모두 건강한 몸이 내게 주는 축복이다.
젊어서는 지금처럼 눈이 침침하거나,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무릎이 시큰거리는 몸의 이상을 알지 못했다. 몸은 항상 그렇게 싱싱하고 활기찬 줄 알았다. 나이들어 아픈 곳이 생기니 오히려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아픈 것이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모순을 알아간다. 세상사는 다른 이치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삶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삶 가운데 고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른다.
늙으면 힘들게 된다는 것은 알지만, 늙으면 또한 편안함이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무서움만 알지, 죽음이 휴식을 준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열자』에 나오는 말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라” 하셨느니라.'
아프면 우울한 생각이 들지만 이것을 약으로 삼으면 좋다. 이제껏 잘 몰랐던 지혜를 얻는 도구로 삼으면 유익하다. 아직도 건강한 몸의 다른 부위들을 축복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게 행복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이 컬럼을 쓰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몸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하기로 했다.
Hey, body.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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