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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일 18시 53분 등록

삶이 시가 되기를.._ 구달칼럼#4 (2014.5.1.)

 

 

시가 내 삶을 찾아 온다면, 그래서 삶이 시가 된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삶을 잘 사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시를 쓰는 것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시를 모르니 시도 안 되는 글만 끄적거리곤 했다. 기성시인들이 쓴 시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너무 많아 고민이 깊었다. 그러던 중 문태준이란 시인이 하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시란 대상과 내가 탁 부딪치면서 섬광처럼 생겨 나는 빛이에요. 툭툭 주고받는 말이지만 거기서 불쑥 나에게 완강한 힘으로 다가오는 게 있어요, 그걸 느낄 수 있고 낚아챌 수 있는 감각, 이것이 시인의 감각인 것 같아요. 시가 처음으로 올 때의 첫 느낌, 그것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 손대지 않은 싱싱한 상태 그대로 시가 되면 그게 좋은 시 같아요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 말이 잘 가르쳐주고 있다. 스치는 첫 느낌을 낚아채려면 오감이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시란 손님이 올 때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마른 스폰지 같은 상태로 사는 것이 시인의 자세일 것이다.

 

시 감상이 어려울 때, 특히 기성시인들의 시가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시에 대해 너무 몰라서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낙담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다른 사람의 시를 감상할 때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시는 영혼의 작업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지요. 다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짐작하는 것, 그것을 즐기세요. 한편의 시가 주는 느낌, 무늬를 즐기면 충분합니다.”

 

,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는 것이구나!’ 마치 그림 보듯이 시가 주는 느낌, 무늬를 즐기면 그만이란다. 이렇게 시를 대하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다. 쉽게 생활 속에 시를 불러와서 함께 놀 수 있을 것이다. 옛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색다른 방식을 시를 통해서 얻을 수 있고, 그 언어를 우리가 대화를 통해 사용하면 대화 자체도 얼마나 맛있고 세련될 수 있는지 몰라요.”

 

시인의 이 말은 더욱 내 구미가 당긴다. 시는 비단 놀이뿐만이 아니고 일상의 대화 생활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족하고 맛깔 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시를 생활화 하겠다는 내 생각이 과도한 욕심은 아닌 것 같다. “, 나도 이제는 시를 즐길 수 있겠구나!” 문태준 시인의 말은 내게 한 줄기 어둠 속의 빛이었다.

 

시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서로 주고 받는 시 놀이가 있다. 물론 시 선물의 형태로 연인이나 친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에 대한 답례로 시를 받는다면 우리의 영혼을 더 높은 경지로 고양될 것이다. 그래서 서양, 특히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시 선물을 최고의 선물로 친다고 한다. <승무>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이 어느 날 목월에게 시를 한 편 보내었다.

 

<완화삼> 목월에게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 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이 시를 받은 목월이 답례로 조지훈에게 보낸 시가 바로 그의 대표작인 나그네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내가 주문처럼 외고 다니는 시이기도 하다. 타고난 역마살에 딱 어울리는 시다. <완화삼><나그네>의 모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목월은 원전인 완화삼을 단순 구체화하여 원시보다 아름다운 시로 만들었다. 천재가 또 다른 천재의 영감을 고취시켜 작품을 더욱 승화시켜 가는 모습에서 시나 글을 서로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일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들의 흥겨운 시 놀이에 나도 끼어들어 한 소절 읊어본다.

 

! 떠도는 발 길 위에

부서지는 달빛

 

강물 위 한 송이 꽃잎

시가 되어 흐르니

 

족하도다

그대 나그네 길

 

조지훈의 보낸 시에 영감을 얻어 목월이 그림 같은 명시 <나그네>를 뽑아내었다면, 우리 데카상스에서도 비슷한 영감을 받은 시가 한 편 탄생했다.

[출처] 오랜만에 출근한 어제 얻은 것은 목감기. (비공개 카페)

그대는 왕참치

오대양을 누비네

무리를 이루니

무서울게 없네

 

빛나는 은빛깔

날랜 차오름은

태양을 갈망하고

사랑스런 눈망울은

가슴을 적시네

 

오대양이 넓어봐야

지구안의 바다인걸

우주 끝에 머무는

그대의 눈빛은

무엇을 갈망하는가?

 

물쌀을 가르는

결단의 지느러미

오라 맞이하는

영웅의 여로  

<왕참치_이동희>

 

왕참치는 데카상스의 열정적인 총무로 웨버인 시인에게 시적 영감을 고취시킨 여인이 된 셈이다. 왕참치가 이 시를 받고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삶에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순간일 것이다. 무미건조하던 일상에 갑자기 환한 꽃이 피어 오른 듯한 순간, 이러한 순간은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이런 섬광의 순간을 포착하여 시로 만든 찰나를 시인들은 시가 내게로 왔다고 표현한다. 시란 님이 오신 순간을 시인은 친구와의 전화통화 속에서도 건져내곤 하는데 그 맛을 함께 음미해 보자.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쫄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렸어야

아이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이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 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꼬막_ 박노해>

 

이런 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소금 내나는 생활 밀착형 시가 나는 좋다. 친구와의 대화가 그대로 시가 되어 심금을 울린다. 거기에 어떤 기교도 꾸밈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약동하는 삶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삶의 경험 가운데서 시를 길어 올리는 경우와는 다르게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에서 저자는 긴 산문으로 된 신화 이야기들을 짧은 시로 승화시켰다.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현세와 접목하여 저자 자신의 사상을 녹여 넣어 시로 엮어 냈다. 가령, 영웅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로 다시 태어났다.

 

젊음의 10년은 전쟁터에서 살았고

 10년은 불운의 풍랑을 헤치며 살아왔다.

마지막 가장 위험한 고향에서 맨손으로 일어서니

비로소 한 사내는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머리와 어깨는 위엄과 젊음으로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욱 빛나니

 

우리도 그렇게 젊은 날들을 공을 세우기 위해 전쟁처럼 바삐 살고

또 그만큼은 칼립소에게 억류되어 날마다 바다를 보고

한숨을 쉬듯 매너리즘에 젖어 산다.

그러나 인생은 모험날마다 새로운 파도와 겨뤄야 하니

알게 되리라삶은 이타카를 향하는 도중에 있음을

 

이렇게 책 속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우리의 삶이란 것이 짧고 긴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러한 이야기들을 시로 엮어 간다면 우리 삶은 하나의 유장한 대하장편 서사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책 속의 이야기든 실제 삶의 이야기든 가릴 게 무에 있겠는가?  나도 한 때, 일 만 시간을 걷는 어느 30, 1인 기업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시로 만든 적이 있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듯한

! 이 텅 빈 느낌은 어디서 오나

그 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걸어보자구나

일 만 시간의 장도를

나 진정 살아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보장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바람 찬 광야의 길로 떠나노라

따로 또 같이, 나름 치열한 시간이 지나고

어찌 알았으랴 3년의 세월, 6000 시간에 만난 복병을

인컴제로 끝이 안 보이는 어둠의 터널 속에 생존비는 거덜나고

두려움이 변하여 공포가 되더라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나

 

절망의 끝에 걸려온 스승의 전화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단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 주체할 수 없어 흐느껴 울 때

비수처럼 꽂히는 싸늘한 목소리

근데 넌 돌아갈 곳이 없어

 

드디어 4, 8000시간 숙성의 때가 오니

무화과가 익어 절로 벌어지듯

그 동안 내 안에 쌓이고 쌓인 책들이 곰삭고 어우러져

뼈대가 서고 살이 붙어 책이란 생명체로 피어나는 게 아닌가

 

예전엔 미처 몰랐지요

그렇게 나온 책이 기회의 문을 열어줄 줄은

이 작은 승리가 더 넓은 바다로 나를 인도할 줄은

<넌 돌아갈 곳이 없어_구달 졸시>

 

이렇게 시와 함께 노닌다면 삶이 시가 될 날도 꿈꾸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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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22:35:55 *.113.77.122

구름에 달가듯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시네요

시와 함께 노닐면서 삶이 시가 되는 날을 저도 같이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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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11:12:32 *.196.54.42

스승님이 그러하듯, 우리의 산문이 운문이 되어 흐를때 우리의 삶도 시가 되겠지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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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23:14:23 *.104.9.186
아~~좋네요.

요즘 제 속에 삭풍이 부는지 시가 떫습니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가 막막해요. 어째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뽀뽀하는 것 같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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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11:18:06 *.196.54.42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뽀뽀하다" 이게 바로 시네~

예술가가 너무 예술적으로 갈려고 하니 그런것 아뇨?

세속에서 예술도 싹트는 것이니, 마음 턱 놓고 그냥 한 번 붓가는 대로 그려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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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09:51:27 *.94.164.18

잊고 살았던 시의 힘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시와 사람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각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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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11:22:23 *.196.54.42

왕참치님 덕에 시편 하나 생기고, 자체로 매력 덩어리인가 봐요, 여기저기 인용하는 사람이 많으니...

시처럼 살아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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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17:56:25 *.255.177.78

- 구달춤 -

 

볼락 말락 구름 달달

삐꿈 빼꿈 달빛 구름

 

들썩 들썩 흥견 구달

어른 어른 님의 가슴

 

폴짝 폴짝 손끝 달달

콩닥 콩닥 님의 가슴

 

오늘 밤은 꿈일래라

달빛 닮은 님일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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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23:32:17 *.65.153.118
같은 소재이나 저와는 완전 다른 글이.... 역시 구달님~~ 시처럼 살고 싶다는 점에서 통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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