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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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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5일 09시 25분 등록

#4 멀미

 

머리가 아픕니다. 그리고 어지럽습니다. 이럴 때는 걷기도 힘들고 앉아 있기도 힘듭니다.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잠시 누워도 보고 의자에 기대어 보기도 합니다. 가끔 헛구역질도 납니다. 음식을 먹을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꾸역 꾸역 밥이니 끼니니까 때우듯 먹습니다. 그러면 속이 더 메스껍습니다. 감기증상이 다소 완화되어 부은 목이 좀 가라앉은 후 찾아온 멀미 증상입니다.

 

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이 된 후 매일같이 책을 붙들고 하루 하루 살아가다 보니 외출보다는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구본형 선생님의 그리스인 이야기 입니다. 2013 1월에 읽은 책입니다. 다시 펼쳐놓고 읽는데 작년하고 또 다르게 읽힙니다. 계속된 독서와 북리뷰 작성에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목요일부터 휴일과 휴가를 내어 6일간의 연휴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갈 엄두를 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종일 방에 앉아 책을 봅니다. 그러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납니다. 그리곤 어지럽고 두통이 이어집니다. 남은 감기 증상으로 콧물도 나고 다시 기침도 납니다.

 

요즘은 새삼 무기력함에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행운에 행운이 겹쳐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삶은 특별한 agenda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기회에 주어진 일거리에 주어진 보험에 주어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2년에 전 태어났습니다. 70년대는 어려서 모른다 치더라도 80년대는 학생이라 민주화 운동을 모른다 치더라도 90년대 활황과 IMF 나락을 대학원이란 곳에서 피할 수 있었다 치더라도 2000년대 대기업에 취업해서 살아남고자 치열하게 생활했다 치더라도 나의 삶을 돌아보면 agenda가 없었습니다. 저의 세대는 특히 시대적 agenda 없이 앞 세대 들이 만들어 놓은 실험실의 하얀 쥐처럼 웅클이고 주는 밥먹고 시키는 일하며 이게 세상의 전부인양 선배들의 말만 믿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멀미가 납니다. 길을 가다가 울컥하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던 선배들은 90년대 경제성장과 투기를 배워 아파트 구매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았고 주식 시장에 한푼이라도 더 벌어 보겠다며 몰이꾼처럼 몰려 다니는 것을 보았고, 그 틈에 성공이란 어줍지 않은 허울을 어설프게 배워 기웃거리는 친구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IMF를 만나고 안정되나 싶다 세계 금융위기도 겪었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하며 멀미를 참기 위해 배에 힘주고 다시 침을 삼켰습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른가 봅니다. 믿는 것과 사실이 다른가 봅니다. 그러니 어지럽고 멀미가 나나 봅니다. 90년대 교복 자율화 첫 세대라 교복을 입어보지 못해서 늘 자유롭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창시절에는 빈부 차이를 더 절감하며 자랐습니다. 두발 자율화도 경험해봤습니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늘 엄격한 3cm의 규율이 있었습니다. 전교조가 생기고 참교육 1세대라는 훈장을 우리에게 달아주었습니다. X세대라는 자유분방함을 우리세대의 기치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참교육의 결실도 모르겠고 X 세대의 실체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러한 단어조차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세대는 윗 세대의 실험의 장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스스로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화하는 세상을 쫓기 바빴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 실험도 너무 험악한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이고 꿈이라는 것을 실험하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와 그 이면에 드러나는 모든 것들. 내가 몰랐던 것들과 그 이면의 이면의 이면들. 월급 받아 생활하면서 여기저기 기웃대며 선배들이 가르친 돈버는 방법을 따라하다 돈을 잃고 울상이 된 친구들. 집장만 해보겠다 빚만 잔뜩 지고 좁은 집에 들어앉아 이자에 원금에 갚느라 팍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는 이 시대에 무엇인가 자문해 봅니다. 우리의 자식들은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차를 타고 오다 머리가 아프고 멀미가 나려 해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걸었습니다. 벗꽃이 지고 나뭇잎이 어느새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습니다. 흔들리던 머리도 다소 안정이 됩니다. 걷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걷습니다. 무엇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지? 나는 어느 길 위에 있는지? 이 시대는 어디로 통하고 있는지? 나는 내 후배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되지 않을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 내내 두통과 멀미를 치르다 일요일에는 그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모든 사물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흔들립니다. 그대로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걸어도 걸어도 안정이 되질 않습니다. 내 주위의 것들이 온전히 제 모습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가짜들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나 조차 진짜인지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옵니다. 멀미가 옵니다. 나 자신도 흔들립니다. 멀리가 옵니다. 와락 내 속에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언제 이 멀미가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으로 이 멀미를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쏟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허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제대로 할 수 있는 단초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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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20:55:58 *.219.223.15

일단 지금은 몸의 소리를 먼저 들으세요.

몸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합니다.

몸을 안정시켜야 내면의 것들이 건강하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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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00:06:51 *.65.153.118
네~~ 쏟아내 주세요~~ 시원해질때까지.... 다 쏟아내서 두통도 잠재우고 멀미도 잠재우고 새로 시작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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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7 10:12:10 *.198.29.159

힘들겠다... 많이 힘들겠다.

쉬어요, 좀 푹 쉬어요.

그런데 몸이 아파서, 힘이 들어서 자꾸 자꾸 덜어내서인지요?

희동님의 글이 점점 더 맑아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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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5:56:38 *.153.23.18

건강이 염려스럽습니다.

현기증과 구역질, 기운없음이 다 들어간 멀미가 일상에서도 나네요.

그 멀미가 몸과 더 큰 몸으로서의 사회에 대해서도 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선은 건강 염려가 더 크네요.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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