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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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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5일 10시 45분 등록

칼럼3

광기의 신

 

 

 그렇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스 신화 시대는 미숙한 야만의 시대라고 말한다. 거짓과 살인과 배신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시대가 그것을 괘념치 않았다. 아니, 후대에 이르러 그렇게 바라보며 야만이라 원시라 일컫고 있다. 모든 문명의 시작이 원시와 야만을 품고 있는 것이라 해도, 당대의 원시와 야만의 요소요소에 굳이 비판할 필요도 미개함과 미성숙함에 분노할 필요도 없다. 비판과 분노는 현재의 논리를 들이대면 자연 일어나게 될 것이나 또한 그것이 무색해지기도 하니,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개인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각자의 신화로 산화되어 뿌리내릴 것이다. 그 시대에 몸을 담그고 있지 않기에 체감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지는 계속 만화적 상상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그때의 이야기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공포스럽다고 하기엔 적잖이 코믹스럽다. 전달자의 의도인가 읽는 이의 오독인가.

 그럼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이 시대에도 거짓과 살인과 배신은 난무한다. 신화 속 문명은 야만을 품고 있지만 두려움과 경외감이 더해진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원시와 야만은 완성형을 향한 문명에 드러난 것이기에 충격적이고 문명으로 포장된 강요된 야만과 원시이기에 끔찍스럽다. 공포를 겸한 경악과 만화적 상상을 뛰어넘는 블랙코미디이기에 분노와 허무로 대꾸하게 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잘못된 체감인가 전달자의 오도인가.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 시대를 오롯이 살아내는 이들 각자가 만들어가고 채워가야 할 몫이다. 각자가 삶을 살아가는 양식이고 삶을 지켜주는 실타래다. 특정한 이의 광폭한 우상화로 이루어져서도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서도 안된다. 미노스 왕이라는 자의 탐욕으로 애꿎은 젊은 청년들이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나라일 수는 없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정의에 기반한 사회,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잘못된 것들이 자정력과 복원력으로 수정이 되고 대안이 제시되어 발전되어 나아가야 하는 나라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개인에 군림하는 개인과 국가화된 개인이 우선시되는 이 사회에서 개개인의 역량과 역할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우리가 잊어버린 잃어버린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빼앗긴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내 역할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시대의 지성이 권력과 폭압에 짓눌리는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의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광기의 신이 되는 것. 반인반수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굳이 인간인척도 안하는 미물의 세상에서, 하데스를 잠시 흔들었다가 그 아귀에 걸리는 오르페우스여서도 안되고 신들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리다 비탄으로 자결하는 아라크네여도 안되고 신과 겨루어 모자람이 없기에 살갗이 까여지는 마르시아스여서도 안된다. 온전한 이성이 분노로 마비되어 차라리 미친년이 되어야겠다. 차라리 광기를 발산하는 예술가가 되어야겠다. 나는, 비판이 아니라 그림이어야겠다. 음악이어야겠다. 보여주어야겠다. 그려내야겠다. 그렇기에 또한 더욱 더 철저히 보아야겠다. 보았기에 또한 미쳐버려야겠다.

 지옥의 뱀에게 생식기를 물린 채 벌을 받고 있는 한 인간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독선적이고 탐욕스러웠던 인물인 교황바오로 3세의 추기경 비아지오 다 체세나. 그는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릴 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역겹고 이교적인 음란함으로 가득 찬 그림이라 힐난했다. 미켈란젤로는 벽화의 한쪽 켠에 미노스와 미다스의 얼굴을 결합한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체세나는 교황에게 제 얼굴을 벽화에서 지워달라고 빌며 간청했다 한다. 그 때 바오로 3세는 이렇게 말했다 전한다.

내 아들아, 주님은 나에게 하늘과 땅을 다스릴 열쇠만 주었다. 지옥에서 나오고 싶다면 미켈란젤로에게 가서 말해라.”

20101031일 대학 강사 박모씨는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될 뻔했다. 검찰의 영장 신청 이유는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이기 때문이며 혐의는 재물손괴다. 통상적으로 재물손괴는 구속수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강한 구속 수사 의지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법원에 의해 영장은 기각되어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박씨는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여러 홍보 포스터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인데 그는 G와 쥐의 발음의 유사성에서 연상하여 쥐를 그렸으며 그래피티 형태의 예술적 표현이라 강조했다.

인터넷을 떠도는 사진으로 보기에는 광포한 낙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디어와 표현이 괜찮네, 충분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속과 공판 등 이 사건이 진행되어가는 상황을 보면서는 실소도 들어가 버렸다. 다른 경로를 통해 그림이 표출된 것이 아니라 공공물을 가지고 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잘못이라 한다고 해도 그 잘못을 지적하는 데 대한 과도한 억압이 나를 분노하게 하고 슬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452, 이른바 언론사 출신이라는 국회의원이국가사회적 위난이 발생하거나 가능성이 긴박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가의 관리를 방해하거나 위반 발생 여부와 원인, 정부 정책 또는 위난과 관련된 사망실종상해 등의 피해에 관해 허위사실을 유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마디로 SNS에다 대고 정부가 어떠니 떠들지 말고 닥치라는 얘기다. 거듭 생각해도 조소를 금할 수 없다. 4년 전에도 비슷한 법안을 들고 나와 이미 헌재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법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그 의지의 바탕이 무엇인지 말하여 무엇하랴.

이 법안에서 형량의 가벼움을 한번 볼까나. 같은 날,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에게 강간이나 유사강간을 저질렀을 때 법정 최저형을 현행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일부개정안이 법사위원 회의에서 보류되었다. 조만간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범과 세월호 사건으로 분노와 울분으로 사실을 SNS상으로 전달하던 이들이 5년이라는 같은 형량으로 나란히 감옥에 들어 가 있는 모습을 겪게 될지 모른다. 하긴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시점에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성관계를 요구한데다 집 앞으로 찾아가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 등 죄질이 매우 나빠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회사 신입사원을 성폭행한 성폭행범에게 내려진 그 매우 엄정한 처벌'은 집행유예 3년이었다. 어쩜 강간범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같은 형량으로 수감되었던 세월호 관련 정부 대응을 전파하던 그들에게 매우 안됐다는 미소를 띄우며, 득의양양 감옥문을 떠나갈 것이다.‘국가를 씹은 이유로 집행유예도 가석방도 없는 이들은 감옥을 떠나서도 검은 양복의 어깨들에게 늘 감시를 당할 지도 모른다. 이 세 가지 결정 모두 52일 한날 이루어진 일이다.

 

 진정, 무엇이 겁이 나는 것인지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는 그 어떤 표현도 자유로울 수 없구나. 하다못해 예술가의 표현에도, 우리들 개개인의 속삭임까지도. 이러한 환경에서는 내면적인 가치와 다양하고 활발한 상상력을 표출해 내고픈 욕구보다는 억압에 대한 반발이 더욱 강하게 차오른다. 그리하여 모든 창의와 창조는 억압을 풀려는 데 집중된다. 실로 미켈란젤로의 시대의 상황 묘사에 발끈하는 체세나에게 저렇듯 대꾸하는 교황도 없는 이 시대에서, 이토록 많은 체세나를 나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IP *.124.9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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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21:23:13 *.255.177.78

"온전한 이성이 분노로 마비되어 차라리 미친년이 되어야겠다. 차라리 광기를 발산하는 예술가가 되어야겠다. 나는, 비판이 아니라 그림이어야겠다. 음악이어야겠다. 보여주어야겠다. 그려내야겠다. 그렇기에 또한 더욱 더 철저히 보아야겠다. 보았기에 또한 미쳐버려야겠다."

 

미쳐버리겠다.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는다.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관심을 갖고 계속 살펴야 겠습니다. 국회 홈페이지를 첫화면으로 하기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국회 의정활동을 바로바로 소식을 알리는 App 설치 운동을 전개해야 겠습니다. 그래야 제대로된 법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니 국민이 시원찮으면 국회 돌아가는 꼬라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부터 바꿔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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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21:36:41 *.219.223.15

외눈박이 물고기들의 놀음에 두 눈을 가진 물고기가 우스워지고 있네요.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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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23:57:20 *.65.153.118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더 잘 써줘서 고마우이~~ 그대의 글을 보면 항상 속이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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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7 10:13:17 *.198.29.159

광폭전사, 화이팅~

그래여, 함 달려봅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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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5:49:14 *.153.23.18

누구실까 혹시 에움길님 했어요. 역시 에움길님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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