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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5일 11시 19분 등록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10기 김정은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2013), 구본형 지음, 생각정원

 

  1. 저자에 대하여

 

구본형(1954~2013)

변화경영전문가, 변화경영사상가, 변화경영시인

 

나는 변화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좋기 때문에 평생 이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변화경영전문가로 나를 불렀습니다. 경영혁신 컨설턴트였고 테크니컬한 자기경영전문가였지요. 2년 전부터 변화경영전문가에서 변화경영사상가로 전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테크닉을 넘어서 인류가 겪어 온 변화에 대한 생각을 두루 공부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몇 년 전 조셉 켐벨이라는 학자를 알게 되고, 나는 신화를 이 여정의 시작으로 잡았습니다. 신화는 인류의 원시적 사유 방식이며, 깊은 무의식이며,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면서 몇 년간 틈틈이 공부를 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더 하다 보면 신화와 변화경영을 잘 통섭하여 변화에 대한 내 시야가 꽤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때쯤 되어 철학 속의 변화이야기를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 되면 변화라는 주제를 놓고, 신화와 철학을 연결시킬 수 있는 통섭의 내공을 가진 변화경영사상가가 되지 않을까 은근 흥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나에게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일이니까요. 후에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것은 변화 경영의 시인입니다. 시는 감각이고 철학은 이성입니다. 시는 개인이고 철학은 보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편을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은 시인입니다. 그렇게 변화의 궤적을 따라가다 변화경영의 시인으로 순직하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또한 그는 1인 기업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원 100여 명과 함께 자기 내면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인문학과 경영학의 다양한 접점을 연구하면서 시대의 화두를 발견하고, 변화와 성장을 고민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만나 소통하기를 즐겼다.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1998)

낯선 곳에서의 아침(1999)

월드클래스를 향하여(2000)

떠남과 만남(2000)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2001)

사자같이 젊은 놈들(2002)

내가 직업이다(2003)

일상의 황홀(2004)

코리아니티 경영(2005)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2005)

공익을 경영하라(2006)

사람에게서 구하라(2007)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2007)

세월이 젊음에게(2008)

구본형의 The Boss : 쿨한 동행(2009)

구본형의 필살기(2010)

깊은 인생(2011)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2012)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2013)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2013)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2013)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2014)

 

 

 

  1.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프롤로그

11 

오직 제우스와 레토만이 태양신 아폴론의 존재를 견딜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두려움과 그의 권위는 그가 가지고 다니는 활로 나타났고, 그의 부드러움은 리라로 표현되었다. 그가 음악과 시와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세 가지 기능의 불가분성 때문인 것 같다.

 

음악과 시와 의술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13
그렇다, 이 시대는 신사적이고, 관대하고, 절제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술고래에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배신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비겁하고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이 나쁜 사람이었다. 최고의 미덕은 용맹이고 무자비한 지능이며 남자다움이었던 것이다. 초기 그리스인들에게 해적질은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은 조직화된 해적들끼리의 약탈과 전쟁과 세력다툼이었다.

 

초기 그리스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14-15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인 중 첫 번째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어떤 역사가는 그가 일식을 예언한 기원전 585 5 28일 그리스 철학이 시작된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철학자란 인간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누군가가 철학이란 아무짝에도 소용 없으며 철학자란 모두 가난뱅이라고 조롱했다. 천문학에 능한 탈레스는 다음 해에 올리브나무가 대단한 풍작을 맞이할 것을 알고 밀레토스와 키리스 인근의 착유기를 미리 다 선점해 버렸다. 과연 이듬해의 가을, 올리브 풍년이 들자 사람들은 기름을 짜기 위해 착유기를 필요로 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착유기를 빌려 주었다. 이일화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문의 목적이 부자가 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 학문을 열심히 하는 자가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를 사랑하는 사람은 부자로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17
그리스인 이야기는 위대한 비극 작가들에 의해 훌륭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리스인 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속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멋진 텍스트와 모델이 되어줬다. 나는 그리스인의 신화를 읽으면서 내가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인류의 한 사람임을 절감했다. 진정한 글로벌 인간인 셈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도 우리 안에는 인류의 원시와 고대 그리고 중세가 이 시대와 함께 공존한다오늘 그리스인의 이야기에서 그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이끌어내어 스스로의 삶을 영웅의 행적으로 끌어올릴 용기와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스스로 영웅이 되는 기본 텍스트로서 신화를 읽는다. 행간의 위대한 힘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17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물리적으로 점령해야 할 땅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사적인 세계들이 여전히 우리가 점령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의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의 나라를 세우는 것과 같다. 하나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나의 세계 하나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18-19
우리의 의식 세계는 문명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아직도 문명에 의해 순치되지 않은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 그것이 자기 경영의 본질이다. 그래서 신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내면의 어둠으로 내려가는 사다리이며 통로가 되는 것이다. 난 신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 하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 책은 모험의 선동을 위해 쓰였다.

 

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 나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모험의 선동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

23

칠흑 날개 달린 밤이 
어둡고 깊은 에레보스의 품으로 날아 드니
 
바람에 실린 알이 하나 툭
,
세월이 흘러 흘러 알이 깨져
 
황금날개 찬란히 빛나는
 
사랑이 팡 터져 나왔네

 

밤의 여신 닉스가 어둠의 신 에레보스 와 사랑을 나누어 그 사이에서 알이 하나 생겨났다. 닉스는 밤을 의인화한 여신이다. 에레보스는 지하의 어둠, 즉 사람이 죽어 눈이 감겼을 때 처음 느끼는 죽음의 어둠을 의인화한 것이다. 모두 카오스의 자식들이며 서로 남매지간 이었으나 부부가 되었다.


24
생명은 심연 속의 어둠, 즉 지하 세계의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은 상당히 중요한 모티프다. 이것은 죽음, 지하 세계로의 하강, 그리고 재 탄생의 농업적 주기를 상징화한 것이다. 하나의 씨앗이 죽어 땅속의 암흑에서 수십배 수백배의 낱알이 싹터 부활한다. 그러니 알로 상징된 생명이 밤과 어둠의 결합에게로부터 탄생되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알이 부화하여 껍질을 깨고 황금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존재하는 것들끼리 서로 짝짓게 만들었다. 사랑이 태어나자 암흑의 혼돈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사랑은 빛과 함께 낮을 만들어 냈다.

 

생명은 죽음에서부터 나온다. 하나의 씨앗이 낱알로 부활한다. 그 알이 부화하여 날아오른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암흑을 거두어 빛을 만들어 낸다.

아름다운 상징이다.

 

1부 신화가 된 인간

  1. 메케네: 모험의 시작

     

43

아테나는 메두사의 목에서 흘러나온 두 종류의 피를 받아두었다가 의신 아스클레피오스 에게 선물했다. 왼쪽 혈관에서 나온 피는 독약으로 마시면 즉시 죽고 말지만 오른쪽 혈관에서 나온 피는 죽은 것을 되살려내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이 피를 이용하여 죽은 영웅들을 살려내기도 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그가 필멸의 인간세상에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판단하여 벼락을 내리쳐 죽게 했다. 같은 몸에서 나온 피가 하나는 독약이고 다른 하나는 신령한 생명의 피다. 의술의 힘으로 죽은 자를 살려냈으나 그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업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이원적 대립장치는 그리스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유체계였다.

 

자신을 죽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이원적 대립장치, 공평해 보인다.

 

54

싸우기 전에는 페르세우스에게 가장 위험했던 메두사의 머리가일단 페르세우스가 승리하여 그의 전리품이 되자 적들을 물리치는 결정적이고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그 머리는 페르세우스의 영광이 되었다위험이 명예가 되고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의식의 세계에서도 위험이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된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가 몸담고 있는 라이프잡지사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th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위험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이 모토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자신의 직업을 지키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했던 월터! 위험은 곧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힘이 되며, 주인공이 그 위험에 맞서 나갈 때 진한 감동이 온다.

 

58 

크레타 문명은 대략 기원전 2500 ~기원전1400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600~기원전 1150년에 존재했던 걸로 추정된다두 문명이 흥망을 교환하는 교체기인 기원전1600~기원전 1400년 사이 200년이 주로 초기 영웅들의 활동 시기가 될 것이다그리고 기원전 1200년 경에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신화는 역사가 아니라 상징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신화를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음미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65 

학자들은 제우스의 바람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어떤 지배신이 이미 있는 도시에 그리스인들이 들어가 영향력이 커지면 제우스 숭배도 함께 퍼지게 되면서 원래의 토속신과 하나로 융화하게 된다그러면 그 토속신의 아내 역시 제우스에게 양도된다. 이 과정이 바로 제우스의 끝없는 외도행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영웅들은 자신들의 계보를 신에게 닿게 하고 싶었다이왕이면 다른 신들보다도 제우스의 아들이 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웠다그렇게 반신반인이라는 특별한 혈족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우스의 바람기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문장이다. 두 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결합하기 위해서 두 도시민간의 결혼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다.

 

  1. 크레타: 탐욕의 끝

     

92 

아리아드네를 사랑한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에서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되는 실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지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그러나 그 실만은 변치 않아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 지 궁금해하지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해

그렇지만 그 실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그 실을 꼭 잡고 있는 한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아

너도 고통받고 늙어갈테지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어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으면 안돼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아리아드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모르 파티를 실현한 최초의 인간인 것 같다.

 

97 

모든 영웅이여미궁으로 들어서라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그 길을 통과하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결코 잊지 마라.

희미한 소명의 길은 미궁과 같으나

어두운 내면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없으니

두려우리라 생각한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죽으리라 생각한 곳에서 살게 되리라.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미궁으로 들어갈 용기가 필요하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놓지 않는다면 돌아올 것이다.

 

102 

최초로 핵을 이용한 대량 살상 무기가 만들어질 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매력적인 기술이 눈에 뜨면 우리는 일단 거기에 달려들어 일을 벌인다그 기술이 성공한 다음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따져본다원자폭탄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렇다. 무엇이든 기술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성향인 것 같다. 어떻게?가 통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에 왜?를 떠올리는 우를 범한다. 그 어떻게? 덕분에 문명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지금이 어떻게?가 통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느껴질 때가 많다. 이제 왜?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왜?라고 묻는 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102-103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그 역시 시장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냈다. 마치 판도라가 금단의 상자를 열어 모든 죄악을 이 세상에 뿌리듯이 그도 스마트폰을 만들어 세상에 뿌림으로써 ‘생각 없음’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사람들은 이것과 함께 일어나고 이것과 함께 잠이든다. 지하철에서 책보는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차지했다. 생각이 사라지고 정보가 주가 되면서 오락과 채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람들과의 연결은 혁명적으로 증진되었으나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을 버려두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서로를 모독한다. 사람들은 몰입을 잊어버렸다. 또한 사람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작은 기계에 물어본다. 한번 갖던 길을 다시 찾을 수 없고 노래 가사를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시를 잊었다. 결국 메모리를 잊어 버렸다.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죄’가 전염병처럼 범람하게 되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그리스인의 이원적 사유체제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손안의 편리함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사유하는 힘은 그 힘을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언어라는 소통 수단도 그 힘을 잃었다. 스마트폰만 손안에 있다면 대화도 토론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저 손가락과 눈만 있으면 된다.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최신 기기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을 쓰는 초등학생들을 보면 불안해진다. 스마트폰 속 그들의 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선정적이다. 안타깝다.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 순수한 우정 등을 지켜주기 위해서 법적으로라도 스마트폰 사용 연령에 제한을 걸었으면 좋겠다.

 

107

두 마리의 뱀은 죽음과 부활생과 사빛과 어둠긍정과 부정 등 대극적 가치를 나타내며두 마리의 뱀이 엉켜서 마주 보는 것은 그 조화를 의미한다뱀은 운명 그 자체로서 재앙처럼 느닷없이 나타나고 복수보다 생각이 깊고운명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의 상징이다발도 날개도 없이 스미듯 침투하는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111-112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서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걸출한 마녀는 메데이아다그녀는 키르케의 딸이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그리스 신화 전체를 통틀어서 사랑에 상처받은가장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팜므 파탈이 되었다.

 

113-116

디오니소스는 고통을 체험한 유일한 신이다. 매년 가지치기를 당하고 매년 갈기갈기 찢겨 죽는다. 그리고 매년 부활한다. 디오니소스는 ‘두 개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가 되어 여성적 생명과 남성적 생명을 함께 갖춘 신으로 형성되었다. 황홀한 자유와 난폭한 야만이 공존하는 카니발이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였다.

 

  1. 아테네: 문명이 꽃피다.

 

119 

영리한 피테우스는 이 신탁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아이게우스가 장차 아테네를 다스릴 아들을 낳을 것임을 알아차린 피테우스는 자신의 후손이 아테네의 왕이 되게 하고 싶었다그래서 포도주 푸대를 풀어서 아이게우스에게 포도주를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자신의 딸 아이트라를 그의 방으로 들여보냈다아이게우스는 그녀와 결합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테세우스다.

 

예나 지금이나, 직계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은 같다. 하지만 이 구도는 식상하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너무나 많이 써먹었기 때문인가? 왕위 승계 또는 유산 상속을 직계에게만 하려 하는 구성은 이제 그만! 신선한 상속 스토리를 원한다.

 

120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가 자신의 아이를 낳을 것을 예감했기 때문에 트로이젠을 떠나면서 커다란 바위 밑에 칼 한 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감추어두었다테세우스라는 이름도 테사우로스 ‘묻혀있는 보물’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에게 아이가 그 바위를 들어 신물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아테네에 있는 자신에게 몰래 보내라고 말했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일지라도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다.

 

121 

테세우스가 죽인 가장 특이한 강도는 프로쿠르스테스라는 자였다그의 집에 철 침대가 있었는데 나그네는 그 침대에 눕혀졌다.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남은 만큼 절단해 죽이고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모자란만큼 잡아 늘려서 죽였다프루크루스테스라는 이름은 잡아 늘이는 자혹은 두드려서 펴는 자라는 뜻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종종 회자되는 이 짧고 유명한 이야기는 자기가 세운 일방적 기준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억지로 꿰 맞추고 재단하는 독선과 편견을 뜻하는 관용구가 되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학교, 직장, 군대가 생각난다.

 

123

아직도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

고정관념이라는 철제 침대에 맞춰 살고 있는 우리

그대로 되먹여 치기를 당하듯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그대로 세상도 우리에게 보답하나니

자기 혁명은 현실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 이루어지는 것 

 

124 

메데이아는 바곳이라는 독초로 독약을 제조했다이 독초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의 침으로부터 자라나는 풀이었다헤라클레스가 열두 과업의 하나로 이 개를 잡아올 때 목을 감아 잡았기 때문에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을 치는 동안 개의 입에서 나온 침이 바위를 적셨는데 그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풀이었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 ‘마틸다로 유명한 영국 최고의 동화 작가 로알드 달마녀를 잡아라’,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로알드 달 작품 속의 마녀들은 정말이지 기상천외하다. 그 마법의 약 제조술은 또 어떤가. 그의 작품을 통해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로알드 달도 어쩌면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너무나 열광하는 로알드 달의 두 작품 마녀를 잡아라’,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도 내가 읽기엔 힘들었다. 내 상상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부분에 공감하지 못 할 때가 종종 있다. 그건 단지 취향의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인간 내면의 원형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일까. 나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

 

126-127

그러나 배에는 검은 돛이 걸려 있었다아들이 죽었다고 믿은 아버지는 절망했다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날려 죽고 말았다아이게우스가 빠져 죽은 바다는 그 후부터 에게해라 불리게 되었다.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테세우스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늘 실수 투성이인 나도 저지를 법한 실수이지만, 자신의 실수로 천신만고 끝에 만난 아버지를 잃은 테세우스를 생각하니 가슴이 자며 온다.

 

127

미궁에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버리고 떠나야 하네

사랑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내,

만인이 환호하는 영웅이 되었으나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불임의 영웅

 

아비를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한 여인

잡아야 할 손은 자신의 손밖에 없는

그 손을 남몰래 놓아버리고

검은 돛을 단 채 제 아비를 죽이고 말았구나

한 번 사랑한 것은 먼저 미워할 수 없으니 네 운명을 사랑하라.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틀어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안타깝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여인, 사랑을 버리고 만인을 위한 영웅이 된 사내,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128

각 마을에 있던 공회당이나 행정청들을 없애고아크로폴리스에 공동의 공회당을 지었다그리고 도시의 아름을 아테네로 정하고 공동의 제사를 지냈다시민들이 투표할 수 있는 의회를 만들고 공화국을 만들었다그는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평등을 조건으로 외지에서 적극적으로 인구를 유입시켰다. ‘모든 민족이여이 땅으로 오라’가 그의 기치였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민주정치를 펴기 위해 왕의 자리를 내던진 인물’이 바로 테세우스였다다른 도시국가들이 한 사람의 절대군주 밑에 머리를 조아리는 체제를 구축해갈 때 아테네는 모든 나라와 도시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테세우스는 국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위대한 나라의 초석을 놓았다

 

테세우스가 멋진 이유!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테세우스를 보고 배우시기를!

 

141 

엘리시온은 엘리시움이라고도 하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특별한 사후세계의 개념이다엘리시온은 보통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 세계즉 하데스와는 다르다그곳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즉 신이 선택한 영웅들이 죽어서 가는 사후의 거주지로서 축복되고 행복한 삶이 이어지는 곳이다메데이아 역시 영웅이 되어 엘리시온에 머문다는 것은 신들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뜻이다이아손도 죽어서 엘리시온에 갔을까나는 어림없다에 한 표단테가 신곡에 묘사한 림보는 엘리시온의 중세적 개념이었을 것이다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로 가톨릭의 신앙을 가질 수 없었던 선한 자들과 현인들은 천국에 이르지 못하고그렇다고 지옥의 형벌로 고통스러운 곳도 아닌 림보에 머물게 된다그리스인들은 엘리시온에 수많은 영웅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중세를 거쳐오는 동안 영웅들 대신 신을 모르는 선한 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144 

미노타우로스의 죽음테세우스의 승리공물로 바친 선남선녀의 귀환아리아드네의 유기그리고 그녀의 자매인 파이드라와의 결혼은 서서히 크레타 섬의 지배력이 끝나가고 그리스 본토의 지배자들이 크레타를 멸망시켜 가는 과정이 이야기 속에 상징적으로 녹아 든 것으로 짐작된다아마존을 정복하고 안티오페를 납치해오듯 아테네는 크레타와의 싸움에서 크레타 왕녀 파이드라를 전리품으로 빼앗아온 것일 수도 있다.

 

149 

올림포스의 계율에 따라 ‘어느 한 신이 한 것을 다른 신이 되돌려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아르테미스에 의해 살아난 히폴리토스를 다시 죽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제우스는 벼락을 내리쳐 하늘의 법을 어긴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여버렸다. 다른 사람을 살려냈다는 이유로 자신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스인의 이원적 사유체제2: 어느 한 신이 한 것을 다른 신이 되돌릴 수 없다.

 

150-151

코로니스는 신보다는 사람을 좋아했다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원한 청춘의 애인이 언젠가 늙어야 하는 육체의 인간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코로니스는 신의 충실한 애인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낭만을 따랐다.

늘 쓰는 무기인 활을 찾아들고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화살을 먹여 잊을 수 없는 부드러움을 간직한 코로니스의 젖가슴을 향해 깍지를 놓았다.

분노로 앞뒤 가리지 못한 자신을 꾸짖었다. 코로니스의 부정을 고자질하여 자기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한 까마귀는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크로니스! 신의 충실한 애인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낭만을 따랐다.

 

152

화염 속에서 코로니스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아폴론은 제자인 케이론에게 이 아이를 맡겼다케이론은 하체는 말이고 상체는 사람인 켄타우로스였다아폴론에게 의술을 배우고 아르테미스에게 사냥을 배운 현인이었다.

 

154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하기에이아라는 딸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의 아내라고도 한다. 하기에이아는 건강의 여신으로 아스클레피오스와 함께 숭배되었으며 그녀의 상징동물 역시 뱀이었다. 뱀은 재생과 불멸의 상징성을 갖는 동물이다. 매년 커지기 위해 허물을 벗어야 하고, 허물은 과거의 것이니 허물을 벗는 행위는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상징이다. 또한 뱀은 자신의 꼬리를 물면 원이 된다. 원은 돌고 돌아 끊이지 않는다. 즉 영원이다. 아직도 우리는 구급차에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이를 감싸고 있는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과 문명의 상징체계 속에 면면히 이어진다.

 

155

현실을 아는 자들은 신이 그에게 허락한 것을 즐길 줄 알고

그 천직의 즐거움이 삶임을 믿는다.

일 외의 다른 더 큰 즐거움이 없을 때 일은 놀이가 되나니…….

자신의 일을 하다가 죽기를 바라네

태어난 운명대로 길을 가고

그 길 위에서 늙으리니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천직이니

천직을 다한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나니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그만두고

평생 가야 할 길로 들어선 자는

황금의 시기를 맞이하리니

그들에게 퇴직은 없다.

죽음이 바로 퇴직이므로

 

157 

델포이는 땅의 배꼽인 옴파로스가 놓여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제우스가 세상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각각 독수리를 날려 보냈는데델포이에서 서로 만났기 때문에 이곳을 세상의 배꼽이라고 불렀다원래 이곳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다코레타스라는 양치기가 델포이 신전 자리를 지나다가 어떤 향기에 취해 황홀경에 빠졌기 때문에 이 궁벽한 장소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일종의 신탁을 받은 것으로 여겨 여러 신들을 모신 신전들을 여기에 세웠으나 최종적으로 아폴론 신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특히 신탁을 전해주는 장소를 아디톤이라고 부르는데그 안에서는 종종 향긋한 냄새가 흘러나왔다플루타르코스는 이 알수 없는 향기를 프네우마라고 불렀다이것은 일종의 바람 같은 영혼의 기운으로 여겨졌다플루타르코스는 델포이 인근의 보이오티아 출신이다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신관으로 피티아들이 전하는 신탁을 옮겨적는 일을 했다그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신탁을 듣기 위해 신전을 찾아온 많은 유력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3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은 추남 헤파이스토스는 아내에게 늘 상처를 받았지만 그 역시 마음 속에 연정을 품은 여신이 있었다. 바로 아테나였다. 어느 날 아테나가 헤파이토스에게 무기를 주문하기 위해 그의 대장간을 방문했다. 평소에 아테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날따라 욕망을 참지 못하고 풀무가 시뻘겋게 달구어 놓은 화석에서 타오르는 불을 구경하고 있던 아테나를 덮쳤다. 깜짝 놀란 아테나가 몸을 빼는 순간 너무도 급한 그는 그녀의 넓적다리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아테나가 황급히 올리브 잎으로 닦아냈으나 그 중 한 방울이 땅에 떨어져 엉뚱하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인간의 몸에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억울하게 남의 아이를 낳아버리게 되자 분노한 대지의 여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양육을 거부했다. 할 수 없이 아테나가 데려다 키우게 되었다. 아테나는 이 아이를 궤에 넣고 뱀 한 마리도 같이 넣어 아이를 보호하게 했다. 그리고 이 궤를 아테네 왕가를 건국한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겼다. 케크롭스 역시 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이었다. 케르롭스로부터 몇 대째의 왕이 이어진 후 에릭토니오는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뱀을 신성시한 아테네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1. 테베: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

     

177 

아테나 여신이 중재하여 오레스테스의 죄가 사해지는 순간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니에스는 자비의 여신들인 에우메니데스로 바뀌게 되었다그리고 콜로노스으 숲에서 기려지게 되었다운명과 화해하고 싶었던 오이디푸스가 죽음의 장소로 콜로노스를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178 

쓰라린 고통으로 다져진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거두어주는 나라는 승리와 함께 대지의 번영을 약속 받게 되리라는 신탁이었다이제 그의 더럽혀진 육체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신성한 성물이 되었다.

 

185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비극으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 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가르침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비극이란 주인공의 극적인 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 지닌 힘을 확장하여 한계의 벽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과 모험을 담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레이서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탄환처럼 달린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파멸한다.

 

신화 전체에서 와 가장 비슷한 인물을 꼽는다면 안티고네이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지만 안티고네민큼 나와 유사한 인물은 아직 못 찾았다.

 

188 

신기하게도 크레온은 안티고네와 똑 같은 기질을 갖고 있다. 그는 국가를 보호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국가 제일주의 원칙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다. 안티고네를 묘사할 때 썼던 자신의 말, 꼬장꼬장한 정신에 뻣뻣한 성격, 이 말보다 크레온을 더 잘 보여주는 말은 없다. 두 사람은 같은 성격 같은 기질을 가진 판박이들이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너무도 흡사한 인물들이라는 것은 아테나와 메두사의 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나와 나의 시어머니! 우린 꼬장꼬장한 정신에 빳빳한 성격으로 거의 유사한 캐릭터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서로 조심하기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좀 유연해져야겠다 다짐하곤 한다. 하루는 아이들이 엄마가 화났을 때 표정이 할머니 표정과 똑같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화난 순간, 거울을 본 적이 있다. 진짜 시어머니 얼굴이 거울 속에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화난 시어머니를 볼 때,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을 수가 있지 했었으니까.

 

어찌됐건, 나는 안티고네에서 아리아드네의 삶으로 갈아타려고 한다. 안티고네와 아리아드네의 차이점은 아모르 파티가 아닐까.

 

194

그리스인들은 항해술을 발달시켰고 바닷가 연안에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했다인구가 늘고 새로운 부가 창출되었다그리스는 마치 물기를 머금은 아침 장미처럼 피어올랐다그러나 탐욕과 번창은 서로 격돌하여 맞부딪혔고이내 무수한 전쟁으로 이어졌다남자들은 돈과 부를 위해서 피범벅이 되었다공격하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트로이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 무수한 전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길었던 떼거리 전쟁이었다그러나 문학은 이 전쟁을 사랑을 위한 전쟁으로 만들었다탐욕이 만들어낸 참혹한 전쟁 속에서 전리품에 불과했던 여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인류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되었다실제의 전쟁은 참혹했으나 호메로스의 전쟁은 아름다웠다

 

참혹한 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199

1829년 아버지는 소년에게 예너의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를 사주었다그 책에는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아스가 아들의 손을 잡고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은 채 불타는 트로이 성에서 빠져 나오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무슨 책을 사주셨나? 책 사주신 기억은 없다. 하지만 늘 말씀하셨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사람이다.” “부끄러운 인생을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낫다.” 나는 그런 비장한 말들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략했다.

 

2부 트로이 전쟁과 겨루는 자들의 함성

  1. 아테네 à 트로이: 출항

     

214-215 

그는 정이 많은 사람으로 가족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했다. 또한 그리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길을 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심리적으로 나약한 인간이었고 마음은 있으나 의지는 허약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현실속으로 달려드는 의지력이 약해 늘 상황에 휘둘리는 몽상가였다. 

 

그는 예언자 칼카스가 전하는 부조리한 신탁 자체에 대항하지 못하고 의무를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에 지고 말았다부조리한 신탁을 거부해야 할 곳에서 이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딸을 지키기 위해 당당해야 할 곳에서 사령관의 명예와 의무 속으로 숨어버렸다.

 

명예를 존중하나 사랑을 저버렸고왕의 체면을 지키느라 진실을 버렸다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라 한낱 비겁자에 불과할 뿐인데 그는 비겁한 길을 선택했다

 

아가멤논의 이야기이다. 신화 중 가장 멋없는 캐릭터이다. 남자로 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없는 그런 남자? 내 아버지가 보셨다면 한 마디 하셨을 것 같다. 그렇게 찌질이로 사느니, 차라리 죽어라!

 

224 

하늘에 묻는 행위, 이것이 바로 고대인들에게는 신전에서 신탁을 듣는 일이었다.

고대의 예언자들, 특히 신전의 사제단들은 신탁의 신통함을 높이기 위해 자신들의 첩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피티아들과 사제단들은 당시 세계 최고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첩보망과 행동대를 보유한 정보 비즈니스의 메카였다. 실제로 그들은 신탁의 덕을 본 무수한 세속적 군주들과 부유한 귀족들로부터 신탁의 대가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신탁이 용해서 의뢰인들이 유효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면 될수록 그들의 비즈니스는 더욱 번영했다.

 

232 

첫째 아킬레우스가 죽었으니 그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그리스 편이 되어 싸울 것, 둘째, 트로이 성안에 있는 유명한 아테나 신상인 팔라디온 상을 탈취할 것, 그리고 셋째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가져올 것 등을 알려주었다.

 

  1. 트로이: 격돌

 

234

신들도 어쩔 수 없는 신탁인  ‘테티스의 아이는 그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말에 기겁하여 그 사랑을 거두어들였다올림포스 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아버지를 능가하는 아들’이었다왜냐하면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하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보다 강한 아들은 곧 위협이었다그리하여 제우스는 테티스를 인간에게 시집보내기로 작정했다.

 

신화의 곳곳에서 나오는 설정이다. ‘아이가 아버지를 능가할 것만약, 나에게 네 아이가 너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이 온다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하지만 신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능가할 것에 벌벌 떤다. 떠는 것도 모자라 갖은 계략을 다 부린다. 아이를 아버지를 능가해야 한다. 모든 아버지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243 

젊은 아킬레우스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배움을 준 스승은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이다.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술을 가르쳐준 현명한 인물이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냥하는 법과 말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또 노래와 리라연주도 가르쳐주었다. 더불어 세속적인 부에 대한 경멸, 거짓에 대한 혐오, 정념과 고통에 대한절제 등 고대의 미덕들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케이론은 그에게 용맹을 심어주기 위해 사자와 멧돼지의 내장을 먹였고, 온화함을 키워주기 위해 꿀을 먹였고, 설득력을 키워주기 위해 곰의 골수를 먹였다

 

영웅의 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모든 것을 준다.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어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스승의 마음이다. 어떤 면에서 부모도 스승을 따르지는 못한다.

 

스승이 스승으로서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제자의 육체는 등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력으로 이겨내라이런 가르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육체는 정신만큼 아니, 정신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육체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은 켄타우로스는 진정한 스승이다.

 

245.

햇빛이 꽝꽝 쏟아지는 날

전장에 서면 마주 봐야 하는 것은

무찔러야 할 적군보다 내 속의 두려움.

남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징그러운 대국

고함을 지르고 악을 써서 잊으려 하네.

 

인간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전쟁만은 아닌데

서로가 죽이고 죽어

죽어가는 적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구나

통곡하는 이유는 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도 아닌

전장으로 자신을 데려온 어리석음 때문.

 

256

헥토르는 용사였으며존경 받을 만한 무사였다자신에게 주어진 리더로서의 책임 앞에서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는 꿋꿋한 사내였다가족을 아끼는 따뜻한 남편이며 아버지였다그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전쟁에 관여한 어떤 여신보다도 고귀했다시종일관 저속하고 야비하게 등장하는 헤라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보다 더 훌륭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그녀는 말을 삼가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으며 앞에 나서서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험담을 듣는 것을 싫어했고 부질없는 잡담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더욱이 남편에게 권유할 때와 양보할 때를 잘 분별하는 여인이었다그녀의 부덕은 트로이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에게까지 잘 알려져 있다.

 

안드로마케! 그녀를 탐구해 보자!

 

260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였으니 안드로마케에게는 대물림의 원수미며 불공대천의 악연이 아닐 수 없었다.

 

지독한 악연 속으로 끌려들어간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네오프톨레마이오스가 안드로마케와만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도 결혼했으나 그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헤르미오네는 자식을 여럿 낳은 안드로마케를 질투했다그러나 안드로마케를 해코지하는 대신 남편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261 

네오프톨레모스는 이제 절친한 친구가 된 헥토르의 형제 헬레노스에게 자신의 왕국을 넘겨주며 안드로마케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유언했다.

 

265 

늙은 사티로스를 특별히 실레노스라 불렀다. ..우스갯소리로 염소의 하체에 소크라테스의 상체를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를 닮은 실레노스들은 대단한 지혜를 가진 현인들이었다. 이 실레노스 중 하나가 디오니소스를 키워준 것으로 알려졌다.

 

267 

자식을 낳고 보니 너무 흉해서 도저히 양육할 자신이 없었던 헤라는 이 불완전한 자식을 죽일 생각으로 바다에 던져버렸다. 다 죽게 된 어린 헤파이스토스를 받아서 9년 동안 숨겨주고 키워준 것이 바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은빛 발의 테티스였다.

 

헤라가 헤파이토스를 죽일 생각으로 바다에 던졌을까? 어쩌면 헤라 자신이 헤파이토스를 키우는 것보다 바다의 여신 태티스가 더 잘 키워 줄 것 같아서 그의 아들 헤파이토스를 바다로 보낸 것이 아닐까? 모정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강렬한 것인데……

 

270

모든 그리스군은 트로이에서 그리스로 귀환하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다그들은 승리에 도취해 신들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었고 신전에서조차 무자비한 야만을 자행했다아테나는 이 무례와 망은에 분노했다그녀는 포세이돈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그리하여 바다를 통해 귀환하는 모든 그리스군은 풍랑과 폭우를 겪어야 했다그리스군의 시체가 만을 메우고 해안과 모래톱에 즐비했다아가멤논은 자신의 함대 대부분을 잃었고 메넬라오스는 엉뚱하게 이집트까지 밀려 내려갔다오디세우스는 10년을 방황했다신성모독을 한 아이아스의 선단은 키를라데스 군도에서 난파되었고그만 홀로 해안까지 밀려왔다.

 

275

한편 망국의 백성들은 그리스군에게 유린당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기약 없는 모험 길에 올랐다. 길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도 온통 역경과 고난뿐이었다. 그 무엇도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오로지 희망 하나만을 품고 용기를 끌어 모아 전진하는 것밖에는. 그들은 수없이 넘어질 때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 위에 올랐다. 그들은 어떤 순간에도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폐허에 주저앉는 대신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길을 나선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모든 종족들 위에 1000년간 군림했다.

 

3부 혹독한 귀환

7장 아테네: 운명의 굴레

 

280

하고 싶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자

운명에 쉽게 굴복하면서

그 두려움에 대한 항복을 용기라 부르는 자

비겁한 자는 자신의 왕이 되지 못하는 법

속으로 떨면서 부러질 듯 단호한 자는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자의 집착만 한 재앙은 없다.

속은 기둥처럼 강하고

겉은 머리결같이 부드러운 사람만이

남과 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나니

무덤까지 존경이 따라가리라

 

속은 기둥처럼 강하고, 겉은 머리결 같이 부드러운 사람! 명심하자!

 

287

오레스테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 중 하나다가장 비극적인 사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세상을 떠도는 오이디푸스라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는 두 번째 비극남 쯤 될 것이다운명이 이끄는 비극적 인생을 살다간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많다그러나 스스로 죄임을 알면서도 그 죄를 의무로 짊어지고 그 끔찍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기계장치에 걸려든 사람은 많지 않다안타깝게도 오레스테스는 평생 어머니를 죽인 죄악에 시달려야 했다죽이기 전에는 죽여야 된다는 책임에 시달렸고, 죽인 후에는 살모의 죄의식에 시달렸다.

 

죄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죄를 짓기 전에는 죄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괴롭고, 죄를 지은 후에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죄라는 기계장치에 걸려들지 않고, 죄를 짓기 않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290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 에리니에스의 추격을 받자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전으로 반미치광이가 되어 피신했다복수의 여신들은 육친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을 표적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표적을 놓친 적이 없는 저주의 추격자들이다.

 

294 

타우리스로 가서 그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져오라는 신탁이 내려졌다그러면 치유되어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297 

그리스로 돌아온 오르스테스는 아버지 아가멤논의 왕국을 계승했다.

 

298 

신은 용서했으나

스스로는 용서할 수 없구나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양심은 잠을 이루지 못하니

오직 스스로의 땀으로만 씻을 수 있으리라

요행이 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라

 

비극이 시작된 곳으로 달려가라

아비가 딸을 죽이자 원한에 찬 어미가 아비를 죽이고

다시 아들이 어미를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으니

첫 원한의 매듭을 풀어라

보복은 끝이 없고결국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죽이게 되나니바로 나.

 

상담 수업을 들으면서 모든 심리적인 문제의 원인은 원가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마음의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시작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문제의 겉만 해결한다면, 그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문제의 시작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8장 트로이 à 이타카: 승리한 자의 고난

 

306

너무도 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리던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오스에게 오디세우스는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더라도 그를 도와줄 것’을 구혼자들에게 서약시키도록 조언했다그렇게 하여 선택되지 않은 자들의 집단 반발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틴다레오스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동생인 이카리오스이 딸 페넬로페이아를 중매섰다그리하여 페넬로페이아는 오디세우스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311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라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할지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서지 않으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비록 네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356

젊음의 10년은 전쟁터에서 살았고

 10년은 불운의 풍랑을 헤치며 살아왔다.

마지막 가장 위험한 고향에서 맨손으로 일어서니

비로소 한 사내는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머리와 어깨는 위엄과 젊음으로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욱 빛나니

 

우리도 그렇게 젊은 날들을 공을 세우기 위해 전쟁처럼 바삐 살고

또 그만큼은 칼립소에게 억류되어 날마다 바다를 보고

한숨을 쉬듯 매너리즘에 젖어 산다.

그러나 인생은 모험날마다 새로운 파도와 겨뤄야 하니

알게 되리라삶은 이타카를 향하는 도중에 있음을

 

361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석에서 확장된 헤르메스는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라는 상징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신들 사이에 제우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이며, 영혼의 인도자다. 전령의 상징이 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지팡이는 우주의 촉을 의미하며 헤르메스는 이 축을 타고 하늘과 땅을 왕래한다. 손잡이 부분에 날개가 달려 있는 이 지팡이를 서로 마주 보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다. 두 마리의 뱀은 궁극적으로 통합되는 이원적 대립물을 상징한다. 뱀 한 마리는 독을 뜻하고 또 한 마리는 치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두 마리의 뱀은 질병과 건강을 상징한다. 두 마리의 뱀은 결합과 해체, 선과 악, 불과 물, 상승과 하강, 남성과 여성 등 대립적 요소를 상정한다. 그러니 헤르메스는 공간을 넘나들 뿐 아니라 대극적 가치의 쌍방을 넘나들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이기도 하는 셈이다.

 

9장 트로이 à 로마: 위대한 로마의 탄생 

 

368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체력에서는 켈트인과 게르만인보다 못하고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들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들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 그들이 세운 제국 로마가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번영을 누리고 오늘날까지 그 위대함이 바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377 

아킬레우스가 너무나 헬레네를 만나고 싶어하여 그의 어머니 테티스와 아프로디테가 만남을 주선해주었다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녀를 보자마자 격정에 빠져들어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자는 밝혀진 것만 다섯이다. 첫째가 가장 어려서 만난 테세우스, 둘째가 남편 메넬라오스, 셋째가 정부 파리스, 넷째가 격정의 아킬레우스, 그리고 마지막 남자가 프리아모스의 아들 중 하나인 데이포보스다.

 

386 

트로이가 멸망하자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전리품이 되어 그의 아내가 되었다그러나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름다운 헬레네의 딸인 헤르미오네와 결혼하면서 곧 안드로마케를 버렸다그러나 그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다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386 

네오프톨레모스는 죽으면서 포로의 신분이었으나 예언력을 가지고 그를 도왔던 트로이의 왕자 헬레노스에게 왕위를 이어받게 했다그래서 헬레노스가 안드로마케와 재혼하여 그 도시를 다스리고 있었다 

  

390

인간은 이 운명에서 저 운명으로 부름을 받는 것

부름이 끝나 한 곳에 머무는 순간

삶은 저녁처럼 머문다.

그러니 풍랑과 폭우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떨림의 기쁨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니

 

풍랑이 내던져놓은 새로운 운명의 해변에서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다시 푸르게 살게 하나니

모든 죽음은 영원한 평화그러니

살면서 아무 일 없는 무풍의 권태를 참지 마라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니.

 

풍랑과 폭우를 피할 일이 아니다. 그 떨림과 기쁨이 우리의 사는 맛 아닌가. 떠나자. 삶이라는 모험을 시작하자!

 

397 

그대는 자신의 왕국과 운명을 모두 잊었는가하늘의 제왕인 제우스께서 직접 나를 그대에게 보내셨다바람을 헤치고 달려온 내가 그분의 명령을 전하니당장 이곳을 떠나 그대에게 예정된 왕국을 찾으라커가는 그대의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희망을 생각하라이탈리아 왕국과 로마 땅은 그대의 몫이니.

 

398

디도는 궁전의 맨 안뜰 마당에 소나무와 참나무로 거대한 화장용 장작을 쌓게 했다그리고 그곳에 화환을 걸고 죽음의 잎으로 장식했다그녀는 그 위에 자신의 침상을 얻었다그리고 아이네이아스가 입던 옷가지와 그의 칼과 그를 그린 그림을 올려두었다그녀는 아이네이아스의 함대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리고 자신의 침상 위로 올라갔다깊은 회상에 잠겨 잠겼던 그녀는 침상에 누워 스스로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던졌다. 그녀는 아이네이아스가 남기고 간 칼 위에 엎어졌다.

 

435

불멸의 번영, 팍스로마나, 제국의 고난과 비탄, 광기 어린 황제들, 로마 시민의 쾌락, 영원의 도시를 찾아온 위기와 그 극복, 2000년간 화려하게 살아 숨 쉰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싸움에 져서 떠나온 자가 고난을 이기고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고 그들의 자식들이 다시 그 나라를 떠나 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면서 인류의 위대한 역사는 만들어져 왔다. 그들은 한때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자신의 모험을 떠남으로써 자신의 이름으로 나라 하나를 건설했다. 모든 시작은 초라하다. 그것은 하나의 꿈에서 시작한다. 꿈속의 씨앗 하나가 자라 하늘의 별에 닿을 때 새로운 제국 하나가 생겨났다. 로마는 한 여인의 고단한 꿈에서 태어났다.

 

에필로그 

 

449.

작가라는 삶은 내게 꼭 맞았다. 나는 작가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은 다르게 다가 왔고 내 시선도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그 일이 생겼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내게 어떤 감흥과 충격을 주었느냐는 것이다. 외적 사건보다는 그 사건이 내 마음 속에 만들어낸 파장, 즉 내적 사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실과 허구를 버무려 감동을 주는 작가는 될 수 있지만 사실을 집요하게 추적해야 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실격이었다.

 

450

신화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어느 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역할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자각하고는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법을 수련하여 드디어 평범한 사람은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업을 성취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힘을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는 이야기다. 신화란 그 이야기 속에 자기 혁명의 진수와 핵심을 뼈와 살로 품고 있는 비서임을 알게 된 것이다.

 

451.

나는 삶을 시처럼 살다 가고 싶다. 책이 보고 싶으면 책을 즐기고, 비가 내리면 비를 즐기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걷고,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그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내 세계 하나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사람들과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살아있음의 흥분과 떨림이 중요하다. 나에게 있는 특별한 장점은 이렇게 감흥이 도도하게 일어나는 삶의 체험들을 책 속의 지식들과 뒤섞어 그 속에서 무엇인가 진득한 스프를 끓여내는 것이다. 신화에 대하여 몇 년간에 걸친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나는 어떻게 영웅이 자기를 구현해가는 과정을 밟아갔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와 모델을 찾고 싶었다그것은 변화경영사상가이며 작가인 내게 꼭 맞는 임무였다이 일은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꿈속 미풍에 실려 온 홀씨 하나

땅에 묻히더니 이내 종려나무 싹이 되었네

우듬지가 쑥쑥 하늘을 향해 커가더니

어느새 머리가 별에 닿았네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내려다보네.

 

문득 내 속에 울리는 <파우스트> 속 외침,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푸른 바다를 향한 열망이 나를 이미 선원으로 키웠으니

나는 독에 매어둔 배에 올라 묶어둔 줄을 풀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바다로 나서네, 나의 세상을 찾아서.

 

직장인에서, 변화경영전문가로, 변화전문사상가로, 시인으로 저자는 삶의 매 순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삶의 모험을 끌어 안은 사람이다. 삶을 시처럼 사는 것, 살아있음의 떨림과 흥분을 느끼는 것! 그가 보여준 삶이라는 모험을 끌어 안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1. 내가 저자라면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읽으면서 답답해했던 부분들이 이상적으로 잘 반영되어 있다. 신화 관련 책들을 접하면서 내 주위에 신화를 읽는 것에 나처럼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화를 읽고 싶지만 어려워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입문서로 선물하고 싶다.

 

1)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

 

이 책의 목차를 보자. 1부 신화가 된 인간, 2부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 3부 혹독한 귀환으로 크게 인간이 태어나 전쟁을 치르고 귀환하여 신화를 만들었다는 인생 일대기를 연상케 한다. 세부 목차를 보면 미케네, 크레타, 아테네, 테베, 아테네à트로이, 트로이, 아테네, 트로이à이타카, 트로이à로마로 신화가 될 인간이 모험한 여정을 보여준다. ‘인간과 그가 간 길시간적, 공간적으로 가로 세로가 꽉 짜인 조밀한 구성이다. 이 구성은 인간이 모험을 거쳐 신화가 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상적인 구성으로 보인다.

 

이 책을 보는 묘미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말미에 시인은 노래한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자작시들이다. 신화를 역사로 분석하지 않고, 신화를 시로 음미할 수 있게 독자를 유도한다. 저자로 시로 인해 신화가 더욱 신비롭고, 신성한 메시지로 느껴진다. 신화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 중심으로 그 인간의 일대기를 그가 걸어간 길을 중심으로 한 꽉 찬 목차와 글 말미에 자작시를 삽입함으로써 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구성은 내가 쓸 책에서 차용해도 좋을 것 같다.

 

목차

 

프롤로그┃고대 그리스인처럼 모험하라

 

1부 신화가 된 인간

 

1장 미케네모험의 시작 

 프로메테우스: 최고신 제우스에 맞서다

 아르고스의 페르세우스: 그리스 최고의 모험을 시작하다

 메두사: 적을 패퇴시키는 전사의 얼굴

 카시오페이아와 안드로메다: 어머니의 오만은 딸의 재앙이 되고

 티린스의 페르세우스: 신탁은 이루어지고 영웅은 별이 되다

Tip 제우스

Tip 신화 속의 기괴한 괴물들

 

2장 크레타탐욕의 끝

 크레타인: 그리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다

 미노스 왕: 탐욕이 재앙으로 이어지다

 아리아드네: 모든 젊음은 미망의 미로에서 이 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니

 다이달로스: ‘는 생각하지 않고어떻게에만 몰두한 장인

Tip 신화 속의 기억해야 할 동물들

Tip 3대 마녀들

Tip 디오니소스

 

3장 아테네문명이 꽃피다 

 테세우스: 아테네가 가장 사랑한 사나이

 메데이아: 자식을 죽여서 남편에게 복수하다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사랑이 증오가 되어 죽음을 낳다

 아스클레피오스: 필멸의 인간을 되살리고 대신 죽다

Tip 아폴론

Tip 아테나

 

4장 테베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 

 테베의 오이디푸스: 스핑크스를 죽인 현인

 이오카스테: 운명의 실타래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마침내 운명과 화해하고 스스로 구원받다

 안티고네: 비극과 함께한 불멸의 여인

 크레온: 백성 위에 군림하는 법의 집행인

 

2부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

 

5장 아테네->트로이출항 

 헬레네: 모든 것을 침묵시키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니

 아가멤논: 딸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

Tip 헤라

Tip 신화 속의 예언자들

 

6장 트로이격돌 

 아킬레우스: 영웅이여, 분노하라

 파리스: 그의 선택이 트로이를 멸망시키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최고의 훈남과 사랑스러운 여인

Tip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

Tip 헤파이스토스

 

3부 혹독한 귀환

 

7장 아테네운명의 굴레 

 클리타임네스트라: 수많은 저주를 술잔에 채우다

 엘렉트라: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여인

 오레스테스: 무죄를 선언했으나, 양심은 위로받지 못하고

 이피게네이아: 마침내 저주를 축복으로

Tip 아르테미스

 

8장 트로이->이타카승리한 자의 고난 

 트로이의 오디세우스: 가장 그리스적인 그리스인

 칼립소: 사랑은 방랑자의 족쇄가 되어

 나우시카: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흰 팔의 공주여

폴리페모스: ‘아무도 아닌자에게 하나밖에 없는 눈알을 빼앗기다

 키르케: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여신 같은 마녀

 그리스의 영웅들: 저승에서 다시 만나다

 헬리오스의 오디세우스: 부하를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다

 페넬로페이아: 마침내 그녀에게 돌아갔지만

Tip 포세이돈

Tip 헤르메스

Tip 하데스

 

9장 트로이-> 로마위대한 로마의 탄생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 위대한 제국의 시조

 헤카베와 폴릭세네: 불굴의 트로이 여인들

 트로이의 유민들: 패배한 자들은 새 땅을 찾아 나서고

 여왕 디도: “배신자여, 그대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떠나는가?”

시빌라: 황금 가지를 들고 하데스의 나라로

 라비니움의 아이네이아스: 로마의 기초를 세우다

 레아 실비아: 그녀의 꿈에서 제국은 시작되었다.

Tip 아프로디테

Tip 아레스

Tip 그리스와 로마 주요 신들의 대조표

 

 에필로그키가 자라 머리가 별에 닿았네

 찾아보기

 

 

2) 감동적인 정절

 

24
생명은 심연 속의 어둠, 즉 지하 세계의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은 상당히 중요한 모티프다. 이것은 죽음, 지하 세계로의 하강, 그리고 재 탄생의 농업적 주기를 상징화한 것이다. 하나의 씨앗이 죽어 땅속의 암흑에서 수십배 수백배의 낱알이 싹터 부활한다. 그러니 알로 상징된 생명이 밤과 어둠의 결합에게로부터 탄생되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알이 부화하여 껍질을 깨고 황금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존재하는 것들끼리 서로 짝짓게 만들었다. 사랑이 태어나자 암흑의 혼돈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사랑은 빛과 함께 낮을 만들어 냈다.

 

58

신화는 역사가 아니라 상징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신화를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음미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97 

모든 영웅이여미궁으로 들어서라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그 길을 통과하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결코 잊지 마라.

희미한 소명의 길은 미궁과 같으나

어두운 내면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없으니

두려우리라 생각한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죽으리라 생각한 곳에서 살게 되리라.

 

102 

최초로 핵을 이용한 대량 살상 무기가 만들어질 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매력적인 기술이 눈에 뜨면 우리는 일단 거기에 달려들어 일을 벌인다그 기술이 성공한 다음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따져본다원자폭탄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렇다. 무엇이든 기술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성향인 것 같다. 어떻게?가 통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에 왜?를 떠올리는 우를 범한다. 그 어떻게? 덕분에 문명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지금이 어떻게?가 통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느껴질 때가 많다. 이제 왜?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왜?라고 묻는 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123

아직도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

고정관념이라는 철제 침대에 맞춰 살고 있는 우리

그대로 되먹여 치기를 당하듯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그대로 세상도 우리에게 보답하나니

자기 혁명은 현실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 이루어지는 것 

 

127

미궁에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버리고 떠나야 하네

사랑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내,

만인이 환호하는 영웅이 되었으나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불임의 영웅

 

아비를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한 여인

잡아야 할 손은 자신의 손밖에 없는

그 손을 남몰래 놓아버리고

검은 돛을 단 채 제 아비를 죽이고 말았구나

한 번 사랑한 것은 먼저 미워할 수 없으니 네 운명을 사랑하라.

 

128

각 마을에 있던 공회당이나 행정청들을 없애고아크로폴리스에 공동의 공회당을 지었다그리고 도시의 아름을 아테네로 정하고 공동의 제사를 지냈다시민들이 투표할 수 있는 의회를 만들고 공화국을 만들었다그는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평등을 조건으로 외지에서 적극적으로 인구를 유입시켰다. ‘모든 민족이여이 땅으로 오라’가 그의 기치였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민주정치를 펴기 위해 왕의 자리를 내던진 인물’이 바로 테세우스였다다른 도시국가들이 한 사람의 절대군주 밑에 머리를 조아리는 체제를 구축해갈 때 아테네는 모든 나라와 도시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테세우스는 국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위대한 나라의 초석을 놓았다

 

185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비극으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 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가르침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비극이란 주인공의 극적인 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 지닌 힘을 확장하여 한계의 벽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과 모험을 담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레이서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탄환처럼 달린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파멸한다.

 

280

하고 싶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자

운명에 쉽게 굴복하면서

그 두려움에 대한 항복을 용기라 부르는 자

비겁한 자는 자신의 왕이 되지 못하는 법

속으로 떨면서 부러질 듯 단호한 자는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자의 집착만 한 재앙은 없다.

속은 기둥처럼 강하고

겉은 머리결같이 부드러운 사람만이

남과 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나니

무덤까지 존경이 따라가리라

 

298 

신은 용서했으나

스스로는 용서할 수 없구나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양심은 잠을 이루지 못하니

오직 스스로의 땀으로만 씻을 수 있으리라

요행이 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라

 

비극이 시작된 곳으로 달려가라

아비가 딸을 죽이자 원한에 찬 어미가 아비를 죽이고

다시 아들이 어미를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으니

첫 원한의 매듭을 풀어라

보복은 끝이 없고결국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죽이게 되나니바로 나.

 

390

인간은 이 운명에서 저 운명으로 부름을 받는 것

부름이 끝나 한 곳에 머무는 순간

삶은 저녁처럼 머문다.

그러니 풍랑과 폭우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떨림의 기쁨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니

 

풍랑이 내던져놓은 새로운 운명의 해변에서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다시 푸르게 살게 하나니

모든 죽음은 영원한 평화그러니

살면서 아무 일 없는 무풍의 권태를 참지 마라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니.

 

3) 보완점

 

신화를 너무나 고생하면서 읽고 있던 차에 만난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저자 구본형이 달리 보였던 <그리스인 이야기>.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자작시는, 저자가 살아있다면 남겼을 만한 아름다운 시들을 기대해 보기에 충분했다.

 

굳이 보완점을 찾는다면, ‘시인은 노래한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자작시에 제목을 달아두었더라면, 시를 쓴 날짜를 밝혀 두었더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신화를 풀어 쓴 이야기만큼 저자가 남긴 자작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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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16:40:07 *.217.6.25

당신의 말되로,

50권 책의 만남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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