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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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따스한 집의 인연
오늘 칼럼이 쓰고 싶지 않다. ‘별로’ 정도가 아니다. 기름에 튀긴다 해도 싫다. 그러나 그러면 안되겠지. ‘쓰고 싶지 않다’에 대해서 써보자. 감정이든 분석이든. 뭐 어때? 내가 시인, 소설가가 되려고 변경연 게시판에 칼럼을 썼어? 작가가 되고 싶긴 해. 필자가 아니라 저자. 마구 쓰기, 꼼꼼히 쓰기, 그 다음에는 주제에 맞게 쓰기라고 했어. 나는 첫 책 주제에 맞게 써나가는 폼 나는 모습이었으면 해. 하지만 그건 오늘 내 모습은 아니다. 지금은 샘에서 흙탕물을 퍼 버리듯 계속 써서 버리는 게 목표지. 하루 2시간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글을 쓰는 훈련이 몸에 익는 거. 밥 먹듯 세수하고 똥 누듯 글을 써 보는 거.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 거.
새벽 1시에 깨어났다. 책방 소파다. 춥다. 요새 날씨마저 미쳐서 봄 주제에 추석 지난 것처럼 쌀쌀하다. 커피를 마신다. 발리 커피.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있는 건 외롭다. 음악을 튼다. 오늘은 헤드셋을 쓴다. 세상에서 나를 격리 또는 보호하는 소품. 닫힌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만 있을 곳. 벽장이나 이불 속 같은. 방문을 닫는다. 잔소리를 9절까지 하고 여기서 잠들었다. 모닝페이지를 한다. 9절로는 택도 없는 나머지 24절까지를 싹 다 나불거린다. 24절이 내 인격 전모인데 위장 또는 코스프레가 가능한 건 이 상설 배수구 때문. 전화가 오겠구나. 무슨 무슨 날이라고 무리를 한 이들의 해독의례. 소화되지 않는 거두절미 단도직입의 쇠붙이 같은 말들, 아들을 낳으라거나, 밥값을 하라는 말, 파상풍을 일으키는 말들. 가정의 달 행사들은 가정식 휴유증을 남기는가. 해독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24시간 혹은 48시간. 가증스럽게도 그런 전화를 기다린다. 듣는 입장을 점유함으로써 그녀의 동력으로 내 것도 같이 뿜어내보려는 수작. 지루한 패턴. 나는 왜 불편한지를 잘 모르는 척 속이고 싶어한다.
저녁에 뜯어진 몸조각들을 여기저기 흩어놓았다. 해 뜰 때까지 봉합이 안되었다. 조각을 다 못 찼았다. 눈알 하나 빠진 잘린 머리를 품에 안은 채, 깽깽이로 뛰어다니고, 몸통으로 구른다. 성긴 바느질이 더디다. 냄새에 매우 민감하다. 사람이 오면 숨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이 놀래리라. 할 수 없지. 어두운 곳에 토막난 것들을 하루 감춰 두어야겠다. 오늘 초파일인데. 며칠 전에 저 분이 부활하시고 오늘은 그 분이 첫 목욕을 하시는데 하필 오늘. 낭패스럽게시리. 지구온난화에도 계절의 여왕은 여전히 5월인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 나무 일. 곰팡이가 난 뱅갈고무나무를 뽑아낸다. 새벽 2시 34분. 목대, 화분은 큰데 뿌리가 택도 없이 적다. 제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겉보기만 그럴 듯 했던 허약한 식물.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원체 실속이 없었던 얼굴마담. 곰팡이 포자가 든 썩은내가 나는 알로카시아 화분도 이제 곧 방에서 꺼내야 한다. 무른 데를 칼로 도려내고, 두 계절 머리맡에 놓았지만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죽은 이를 벽 속에 미장해 놓고 같이 지내는 것 같다. 이로써 10년 키우던 산세베리아를 죽이고, 두 개를 더 죽여 빈 대형화분이 3개가 되었다. 저 그릇이 옹관이 되었구나. 나무가 죽은 흙은 버리고 새 흙으로 채워야겠지.
계단에서 기르는 화분을 보러 나갔다. 새벽 3시 20분. 계단 센스등이 켜졌다 꺼지라고 앞뒤로 어슬렁거린다. 윗층의 갓난쟁이는 오늘 밤 잠을 잘 자는 것 같다. 착하다. 계화 흙에 손가락 두 마디를 찔러 넣는다. 물기가 묻어나지 않는다. 씽크대에서 물을 받아다 코끼리 물조리개로 커피를 내리듯 천천히 부어준다. 계화는 사철 향기나는 흰꽃을 피운다. 그런데 여기 둔 후 한 번도 꽃피지 못했다. 이 건물은 해가 부족하다. 간 김에 나무산호수에서 벌레를 잡는다. 깍지벌레. 떨어진 나뭇잎을 한 장 접어서 흰 색곰팡이를 덮어쓴 다리 달린 벌레를 눌러 터트린다. 이 생키들은 목숨도 질기지. 내 나무들 어린 잎만 골라 생즙을 빠는구나. 너도 니 새끼를 키워야 하니 그러냐? 만냥금에도 흰 꽃이 피었다. 햇빛이 부족해서 여기선 열매를 맺질 못해. 그러나 기회는 주어야겠지. 붓으로 꽃의 암술과 수술을 살살 문질러 준다. 너도 인공수정. 좋은 결과를 기원합니다.
비 새는 집에 10년을 살았다. 장마철마다 집에 통 여러 개를 두어야했다. 비만 오면 청개구리처럼 불안했다. 그 다음에 혼자서 얻어서 나가 3년 산 집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장마에 한 번 비가 샜다. 집중호우 때문이었다. 나는 ‘비 새는 집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을까봐 덜컥 했다. 집주인이 달려와서 금방 점검했다. 비오는 날 황 냄새가 부두에서 올라오던 그 집. 해 뜨기 전에는 창문을 열지 않았던 그 집. 1층인데 어두웠다. 비는 안샜지만 밝고 따스하지는 않았다. ‘비 새는 집’ 같은 마음이 내가 비 새는 집에 살게 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딴 거 다 아니라고? 단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 새는 집의 인연, 밝고 따스한 집의 인연은 집값에 따라 온다고? 당황스러우나 유의미한 지적. 그것도 공감. 밝고 따스한 집에서 살겠다고 꼭 풍광에 써야겠다. 그래서 10대 풍광 중 살고 싶은 집에 대한 부분을 수정했다. 나무무늬 6인용 원목 테이블, 눈 닿는 데 마다 식물이 있고, 산으로 가는 산책로와 도서관,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지인이 살고 있는, 식구들이 여럿 둘러앉아 밥을 먹는 밝고 따스한 집에 대해. 5시 20분.
잠든 사람의 겨드랑이에 다시 정수리를 밀고 들어간 건 6시였다. 내 속의 공격성이 분출되고 싶어한다.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난 것도 같다. 그래서 동사에다가 처를 붙이고, 명사는 일부러 상스럽고 날카로운 걸로 고르고 싶은데 어휘가 부족하다. PMS 일까? 프로기노바인지 프로베라인지가 내 자궁내막을 지 맘대로 조절하고 있어서 원래의 주기보다 출렁출렁이 엄청 길어졌나? 이 모든 걸 PMS에게 책임지우는 건 누명이다. 걸어서 시청 분향소에 다녀와야 하는가? 전 국민이 슬프고 화가 나 있다. 전국이 상중이다. 가족이 모이는 날 모두 그 아이들 얘기를 생각했다. 한 말에 만원, 오젖을 담으려고 생새우를 사러간 소래포구에서도 사람들은 새우배를 기다리며 그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배와 서해안 탁한 물 때문이었다.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고, 잊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을 잃어본 이는 말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치는 일이 진정한 추모라고 한 건 누구인가? 어느 명사님. 깊은 숨을 쉬면서 빛과 그늘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댔다. 또다른 명사님. 그 전에 속에든 슬픔과 분노를 퍼낼 게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같으면 굿이라도 했겠지. 모두에게 비새는 집의 인연은 가고 밝고 따스한 집의 인연이 오길 바란다.
콩두, 오늘 전화도 하고 문자도 했는데 연결이 잘 안 되었네
기획안 봐 주고 싶으니 정리되면 한 번 보내주~ 최종결정은 당연히 콩두가 하는 거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면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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