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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6일 13시 36분 등록

조셉캠벨과 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역, 이끌리오

 

 

1.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

 

미국 뉴욕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1904) 1년 내내 종교적인 의례를 경험하면서 자라났다. 그에게는 영화배우 존 웨인이 영웅이었다. 신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0살 즈음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인디언의 토템 기둥과 가면을 본 후다.(1915) 아버지는 그가 집안의 가업을 잇기를 바랬지만 아들이 거기에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어느 순간 그만 두었다. 1927년 컴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땄다.(24) 유럽에 가서 공부를 했다. 석사를 받았지만 대공항이 시작되어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우드스탁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연 20달러짜리 방에서 5년 동안 책만 들이팠다. 한 작가의 책을 모조리 읽고, 그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들을 읽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조이스와 토마스 만의 소설도 그 시기에 읽었다. 그는 1934년부터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31) 사라 로렌스는 이름은 여대같은데 뉴욕에 있는 남녀공학 대학이다. 존 레논과 결혼한 오노 요코가 다녔다. 비교종교학과 비교신화학 과목이었다. 1938년 진 어드먼과 결혼했다. (35) 그의 아내는 그때 대학원생이었다. 그녀는 춤꾼이었다. 그가 아내를 만난 건 그 반에 수업을 들어갔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붕 뜨는 걸 알았고, 그게 그 여자 때문이었기 때문이란다.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45세 무렵에 썼다.(1949) 영원, 또는 신의 모습이 세계의 지역, 민족적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의 공통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한 책이었다. <신의 가면>은 전체가 4권짜리 저서다. 원시신화, 동양신화, 서양신화, 창작신화에 대해 다룬다. 1959~1968년에 걸쳐 출간되었다.(55~60) 1971년에 <어디서나 읽는 융 이야기> 편집(68)했고, 1984년에 <영혼이 닿은 우주 공간> 출간(70)을 썼다. <신화의 힘>은 처음에는 탤레비젼 대담 다큐멘터리였다. 그가 80세 되던 해에 촬영했다. 언론인인 빌 모이어스와 팔순의 조셉 캠벨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죽음이 가까와질수록 더 단순하고 용감하고 솔직해지던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1987년 하와이에서 83세로 운명했다.

 

저서

 

<신화의 세계> 1998, 까치

<신화의 힘> 2002, 이끌리오

<신의 가면1 : 원시신화> 2003, 도서출판 까치

<신의 가면2 : 동양신화>

<신의 가면3 : 서양신화>

<신의 가면4 : 창작신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2004, 민음사

<신화와 함께 하는 삶> 2004, 한숲출판사

<네가 바로 그것이다> 2004, 해바라기

<신화의 이미지> 2006, 살림

<신화와 인생> 2009, 갈라파고스

 

 

번역자 이윤기

 

이윤기씨는 우리 나라에서 신화에 대한 것을 가장 많이 번역한 소설가다. 1947년 경북 군위 출생, 돐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신화가 세계 여러 군데에서 반복되는 것에서 신화에 대한 첫 호기심을 얻었다. 1971 14개월간 군인으로 베트남에 참전했고, 1년간 공사판 이씨로 살았다. 1975년 잡지 '학원' 기자. 여기서 미술전공 편집기자인 아내를 만났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31)되었고, 1978년 결혼(32-아내 25)했다. 이후 번역가의 길을 갔다. 1991~1996년 미시간주립대학교 국제대학 초빙연구원(45~50)으로 지냈다. 집은 과천이고 집필실은 양평. 2010년 타계했다.

 

이 책 전에 이윤기씨의 주례문을 읽었다. 아들 앞에서, 딸이 보고 남자가 아내를 저렇게 대한다는 본이 될까봐 아내를 잘 대한다는 사람,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는 공중을 향해 코를 팽 풀었고 호기를 부리려고 공짜 술을 샀다고 대놓고 말하는 그의 단순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윤기씨의 전작주의를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겁을 집어먹은 상태다. 번역한 책이 너무 많아서다. 그가 쓴 소설뿐만 아니라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같은 두껍고 어려운 번역서를 200권쯤 읽어야 한다. 신화에 대해 읽어가다 보면 이름을 더 많이 만나게 될 이름. 사람 좋은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제일 자세한 이윤기 인터뷰

http://blog.naver.com/km10002002?Redirect=Log&logNo=60015107016)

 

 

2.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뼈대와 목차

개정판 _ 옮긴이의 말 (2002)

초판 _ 옮긴이의 말 (1992)

빌 모이어스의 서문 _ 우주의 노래, 천구의 가락

1 신화와 현대사회

2 내면으로의 여행

3 태초의 이야기꾼들

4 희생과 천복

5 영웅의 모험

6 조화여신의 은혜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8 영원의 가면

2)   장점과 보완점

 

<신화의 힘>은 조셉 캠벨의 책을 읽는 첫번째 입문서가 될 수 있겠다. 그의 주저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그가 40대에 쓴 책이고 이 책은 80대에 쓴 책이다. 비교신화학, 비교종교학자인 그가 가르치는 신화 속에 든 내용이 무엇일까에 대한 대략적인 짐작을 하게 해 준다. 희생, 천복, 여신, 모험, 의례같은 기출단어들을 선보인다. 노교수님이 놀아가면서 종횡무진으로 이런 저런 것을 얽어서 쉽게 개론을 가르치듯 신화에 관한 여러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신화와 관련 서적에 대한 기본 독서가 필요한 듯 하다. 이 프로그램을 책이 아니라 TV로 시청한 사람들은 쉽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어려움은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이고, 그리고 은유로 읽어야 하는 상징과 메타포이기 때문일 거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을 수 있는 방식은 단수의 정답을 외우는 방식으로 질문의 대답을 찾을 때는 마뜩찮은 접근방법이다.

 

언론인인 빌 모이어스는 누구라도 물음직한 질문을 요령있게 한다.  

 

 

3)     감동적인 장절 

 

(처음 읽기) : 감동적인 장절이라기 보담은 독후감.

 

첫째, 영어로 bliss, 이건 천복이나 지복으로 번역된다. 인생은 모험이고 우주의 가락을 이해하지 못해도 맞춰 춤을 추면 된다는 캠벨씨 말이 흥미롭다.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follow your bliss!

 

둘째, 나의 전작주의 작가를 생각한다법륜스님, 캠벨, 김형경, 현경, 이상은 (노래), 이윤기, 파울로코엘료라고 후보자를 썼다. 캠벨을 시작했다. 

 

세째, 어린 아이들에게 그림책의 형태로 신화를 이야기해 주는 이 시대의 샤먼, 예술가의 길이 아름답게 보인다. 의례를 집전했던 샤먼의 사명감과 애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생각한다. 이미 이런 사람은 많이 와 있을 거다. 그들의 그림책을 좀 읽어보고 싶다.

 

(두 번 읽기) 헐레벌떡 읽느라 감동적인 장절을 뽑을 겨를이 없었던 듯.

(세 번 읽기) 8기연구원들에게 3번 읽기를 한 뒤에 마지막에 3번 읽기 책이었는데 기록이 없다. 이번에 다시 읽었다.

 

(다시 세 번 읽기) 감동적인 장절 50여개

 

(1)  사랑과 결혼에 대한 것

 

캠벨 : 신화가 가르쳐주는 바에 의하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삶을 온당하게 산 사람이라면, 이성(異性)을 웬만큼만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상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상대의 관능적 관심에 이끌려 결혼하는 것은 번지수를 틀리게 찾은 거예요.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우리는 육화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결혼입니다. – 30

 

모이어스 : 제대로 된 상대를 어떻게 고를 수 있나요? - 31

 

캠벨 : 가슴이 말해줍니다. 반드시.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겁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결혼은 영적수련입니다. -33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결혼이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 수련이라고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33 결혼은 관계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33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시련은 관계라는 앞에 바쳐진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359 파리지발을 기사로 교육시키는 스승이 자기의 아름다운 딸을 줄 터이니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스승의 제안에 파르지발은 이렇게 응수하지요.

싫습니다. 저는 아내를 벌겠습니다. 주어지는 아내는 싫습니다.”

이게 바로 유럽의 시작입니다.

 

캠벨 : 결혼은 우리의 동일성, 즉 한 사물에 두 측면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것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결혼은 진짜 결혼의 초보 같은 상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368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의 측면과의 만남이랍니다.

 

370 모이어스 : 사랑과 도덕성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캠벨 : 사랑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사랑이 반드시 사회가 인정하는 삶의 양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랑이 은밀한 게 다 이 때문이랍니다. 사랑은 사회의 규범에 대들어요. 사랑은 사회가 조직하는 결혼 이상의 정신적 체험이지요.

 

370 모이어스 : 신화는 신과 낭만적인 사랑 사이에 얽힌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까?

캠벨 : 그런 거야 전하고 있지요. 사랑은 곧 신의 임재입니다. 사랑이 결혼보다 상위 개념인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이게 곧 음유시인들의 생각이기도 했구요. 

 

340 모이어스 : 그 전에는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었습니까?

캠벨 : 그전에는 사랑이란 우리에게 성적 욕망을 야기하는 꼬마 신 에로스의 장난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음유시인들이 이해하는 사랑은 그게 아니었어요.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인데 에로스가 끼어든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잖아요? 음유시인들이 알기로 아모르는 개인적이었어요.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은 비개인적인 사랑이었고요. (341)

 

모이어스 :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런 말을 하지요?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이거야 말로 내 인생이다. 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 이런 거지요...;나의 사랑이 있어야겠다. 나의 인생이 있어야겠다이런 뜻이겠지요. (349)

 

사랑을 수용할 만한 다정한 가슴이라고 하시는데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함께 고통받는다는 의미이지요. 고통(passion)을 함께 하는 것이 곧 자비(compassion)인 것이지요....그러니까 여성은 이 남자가 자기와 사랑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테스트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세의 사랑놀음은 욕정의 놀음이 아닌 거지요. (353)

 

290 여자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수중 여행 모티프는 거의 다 이런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요. 결국 개성이, 의지로 통제가 가능한 영역에서 초개성적인 충동의 영역으로 함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것은 개인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2)  입문 의례에 대한 것

 

37 바로 그겁니다. 사춘기 의례가 필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지요. 원시 사회에는 이빨을 쪼아낸다거나 몸에 상처를 낸다거나 할례를 베풀거나 하는 사춘기 의례가 있었어요. 이러한 의례를 거치면 어린이의 몸은 더 이상 어린이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이 내가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이다. 사춘기 의례. 쓸 재간이 없으면 모으면 되지. 나는 삶의 변화를 가지고 오는 통과의례의 기능을 하는 이야기를 모으는 데 관심이 있다. 출생, 사춘기 의례, 결혼, 죽음, 늙음, 병듬. 사춘기의례에 대한 책은 언제 쓸 수 있을까?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아이가 만 12살이 되기 전 생일선물로. 결혼에 대한 책은 지금 쓸 수 있을 거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것은 아이를 낳는 과정에 쓸 수 있을 거다. 죽음에 대한 것은 나보다는 부모님의 죽음을 보면서 쓰게 되지 않을까?

 

74 신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런 세계를 잃은 사람에게 신화는 있을 없지요. 만물에서 신비를 읽을 우주는 폭의 거룩한 그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있게 됩니다. 신화의 두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 바로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신화의 세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신화가 곳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은 바로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의 신화도 있고 단혼의 신화도 있는 것은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이든 단혼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다르니까요. 신화의 기능 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사회적 기능입니다. 시대착오적인 거지요.

네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것이 바로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줄 있어요.

나의 관심은 네번째 기능에 있다. 영웅신화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40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으로서 한 번 빠져볼만한 것이 신화지요.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고 있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 것, 책임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단계의 입문 의례에 관련된

 

30 모이어스 : 선생님은 신화의 정의를 의미의 모색에서 의미의 경험으로 바꾸셨는데요.

캠벨 : ‘삶의 경험이라고 하기로 합시다... 우주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벼룩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모두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요. 그겁니다. 모이어스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거기 있다는 것뿐입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살아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어떻게 경험하실 있었습니까?

캠벨 :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신화라고 하는 것이 원래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되는데 필요한 기본 교육 자료였어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적당한 신화 교육을 베풀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 사회 안에서 행동 통일을 하는데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 거지요. 나에게는 하나의 이론이 있어요.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혔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은이의 경우는 문턱 넘기 의례와 관련된 신화 대응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 262

 

276 스승이 할 수 있는 것은 암시입니다. 스승 되는 사람은 등대와 같지요. ‘이 너머에는 암초가 있으니까 키를 똑바로 잡아라. 저 너머에는 해협이 있다이렇게 가르치는 등대와 같지요.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을 만나는 일입니다.

 

307 모이어스 : 아버지 탐색의 이미지는 굉장히 강력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어머니 탐색은 없습니까?

캠벨 : 어머니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낳고 돌보고 아버지를 찾으러 떠날 나이가 될 때까지 아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개성과 운명을 찾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개성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몸과 때로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그 개성이라는 것이 신비로운 겁니다. 개성은 곧 우리 운명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버지 탐색으로 상징되는 이 운명의 탐색을 떠나는 거지요.

어머니가 현존한다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307 영어에는 아버지와의 화해(atonement)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화해는 곧 하나되기 (at-one-ment) 랍니다.

 

308 ‘내가 내 아버지 일을 하리라는 것도 모르셨던가요?”

이 대답을 했을 때 예수는 열두살 입니다. 이 나이가 바로 입문 의례를 통해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 자기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입니다.

입문의례에 대한 책이 겨냥할 나이. 12

 

 

(3)  미래 신화에 대한 것

 

61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보지요.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인식에 이를 것이냐는 것입니다.

 

64 모이어스 : 우리에게는 어떤 신화가 필요할는지요?

캠벨 :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77 모이어스 : 이제 과학자들은 가이아(대지의 여신) 이론을 입에 올리는데요.

캠벨  유기체로서의 지구 말인가요?

모이어서 : 모신으로서의 지구일 테지요. 이미지에서 새로운 신화가 태동할까요?

캠벨 : 할테지요. 오늘밤에 무슨 꿈을 꿀 지 알수 없듯이 내일 어떤 신화가 태동할지도 알수 없어요.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에 관한 신화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신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내밀 수 있는 나의 중심사상입니다. 이러한 신화는 다른 모든 신화가 다루었던 문제를 고루 다루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유아기에서 성장기를 거쳐 성인기에 이르고 성인기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기까지의 모든 문제, 심지어는 이 사회와의 관계, 이 사회가 지니는 자연의 세계와 우주와의 관계까지 고루 다루어진 신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화가 한결같이 이야기, 이야기가 한결같이 반영하는 신화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말한 사회 역시 이 지구라는 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신화는 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이어스 :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캠벨 : 그렇지요. 그것이 바로 미래 신화의 바탕입니다. 그 바탕은 벌써부터 여기에 있어요. 내 나라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종교사회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언어집단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아시겠지요? 이렇게 태동한 신화는 이 집단, 저 집단, 그 집단의 철학이 아닌 이 땅의 철학이 될 것입니다.   – 78

내가 다루고 싶은 신화 역시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새롭게 만들거나 수집하거나 좋을 듯. 창조 이전의 모방이 필요하다. 쓰기 전에 읽기가 선행하듯.  

 

(4)  천복을 따라 가는 것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이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177)

성소(시간, 공간) 새벽을, 저녁을 성화시킬 일종의 의례가 필요하다.

 

179 모이어스 : 변모의 중심은 현세의 벽이 무너지면서 우주의 경이가 드러나는 관념적인 성소라고 하셨습니다만, 성소라는 말은 어떤 뜻으로 쓰셨습니까?

캠벨 :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 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 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입니다. 처음에는 이 곳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180)

 

종교집단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은 이따금씩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미로를 만나고는 하지요. 이 미로는 앞길을 막는 존재인 동시에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화의 궁극적인 비밀입니다. 삶의 미로를 뚫고 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217)

 

222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그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이 천복을 좇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복에 이르는 거지요. 중세의 필사본에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행운의 바퀴라고 하는 이미지입니다.....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이게 바로 천복을 좇는 거지요.

 

225 나는 유럽에서 공부하다가, 1929, 월스트리트가 무너지기 3주일 전에 미국으로 돌아왔어요. 일자리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지요. 그런데 내게 그 시절은 정말 멋진 시절이었어요.

모이어스 : 대공황의 와중에 멋진 시절이라니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캠벨 : 돈이 없다는 건 느꼈지만 가난하다는 느낌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그 당시 사람들, 좀 좋았어요? 나는 그 당시에 프로베니우스를 발견했어요. 문득 이 양반이다 싶은 거에요. 그래서 나는 프로베니우스가 쓴 것은 모조리 읽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나는 돈이야 어찌 되든, 뉴욕의 서적상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서적상은 내가 바라던 책을 모조리 보내면서 일자리를 구하거든 갚으라는 거에요. 자그마치 4년 두에나 갚았지만요.

뉴욕의 우드스톡에 아주 멋진 노인이 있었어요. 이 양반에게는 방이 아주 많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이 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그런데 이 집에는 수도가 없었어요. 물은 우물물을 길어다 쓰거나 펌프로 자아올려 써야 했어요. 그런데 수도를 놓지 않은 이유가 걸작입니다. 수도를 설비해놓으면 이 집이 수도가 있는 집에 살던 학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거예요. 나는 이 집에서 기본 독서와 공부는 거의 다 했어요. 정말 멋진 시절이었죠. 나는 내 천복을 좇고 있었던 겁니다.

 

226 천복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배운 겁니다. 산스크리트어에는, 이 세상의 가장자리, 즉 초월의 바다로 건너뛸 수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 세 가지 있어요. 즉 사트, 취트, 안난다가 그것입니다. 사트라는 말은 존재, 취트라는 말은 의식, 아난다 라는 말은 천복, 혹은 황홀을 뜻합니다. 이 말을 공부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지요.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천복을 쫒아가는 것에 대한 이론적 배경

 

286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겁니다.

 

(5)  예술가가 할 일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삶이 시 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 시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 113 

120 모이어스 : 선생님은 어느 책에선가, 사회의 엘리트가 신화를 만든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샤먼이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화를 만든다고 쓰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캠벨 : 쓸 수는 있지만 신화는 아니지요. 보통 사람은 신화의 단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예언자와 인도 사람들이 말하는 리쉬스는 신의 음성을 듣고경전을 썼다지요. 귀를 여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귀라고 해서 다 경전을 불러주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잇는 것은 아니지요.

모이어스 :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가 됩니까?

샤먼이나 예술가,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돌아온 영웅이 쓸 수 있다니, 그럼 이런 모험을 떠나야 하는 건가?

 

캠벨 ; 어떤 음성을 구체적으로가 아니라 은유적으로 듣는 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프로이트와 융은 둘 다 신화가 무의식에서 솟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뮤즈(예술의 여신), 혹은 성서적인 용어를 쓰자면 '하느님'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영감이라는 것은 무의식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샤먼이나 선지자가 하는 말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말인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샤먼이나 선견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구성원들은 서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아니,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냐? 그러게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해낼 수 없어서 못하던 내 이야기가 아니냐? ’이렇게 되자면 샤먼이나 선견자와 그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회의 구성원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듣는 선견자는 선견자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 122

 

168 모이어스 : 그러니까 예술가가 바로 오늘날 신화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캠벨 : 옛날에 신화를 쓴 사람들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응하는 사람들이었지요.

189 모이어스 : 오늘날 자연의 본성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캠벨 :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모이어스 :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 보지 못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캠벨 :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서도 안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 옮겨다니면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도움은 안됩니다.(190)

 

(6)  신화

 

8 “이 시각에도 현대판 오이디푸스의 화신과 미녀의 야수의 속편은 41번가와 5번가가 만나는 네 거리에서 교통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그리스 신들 따위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대단히 현대적인 견해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가 문화인류학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 10

 

13 그는 민담과 인류학에 나오는 해골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는 자기 작업을 관류하는 중심사상이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적인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로군요그는 대답한다. “아니지. 그게 아니오. 살아있음의 경험을 찾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화라고 하는 것은 선험자가 그린, 내면적인 경험 지도 같은 것이겠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내린 살풍경한 정의에 만족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에게 신화는 그 가락의 내력과 이름을 알지 못하면서도 맞추어 춤을 추는 우주의 노래, 천구의 가락이다. – 15

 

이렇게 해서 옛 모둠살이는 일찍이 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화가 다루어야 하는 위대한 신비가 바로 이것임을 깨닫게 된다. – 16

 

18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이미지는 가면일 뿐이다. 이 가면은 곧, 우리의 언어와 기술로는 정의가 불가능한 궁극적 실체를 뜻한다. 신화 역시신의 가면이다.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그러나 이 신화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각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다른 까닭은 각 문화권에 따라 마땅히 자각하여야 할 삶 자체의 양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18

 

91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114 : 신화에 관한 선생님의 작업은 저의 신앙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로 믿음을 그때까지 갇혀 있던 문화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캠벨 : 나의 믿음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116 예수가 승천했다는 말은 은유적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의 문맥에서 읽는다면, 예수가 사실은 내면화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 재림 역시 메타포인가요

; 그렇고 말고요 재림과 대응하는 기독교의 메타포는 정죄입니다.

 

135 삶에 필요한 행위, 즉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는 행위지요. 우리는 이런 짓을 무리지어 합니다. 그게 삶인 거지요. 영웅이 이러한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절망이나 복수로서가 아닌 자연의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삶에 참가한다는 점입니다.

 

137 시바신은 이렇게 명합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거든 너 자신을 먹어라.”

그래서 이 아귀는 발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의 이미지입니다. 결국 아귀가 있던 자리에는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게 되지요. 시바 신은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하지요.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토록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터이다. 내 너를 키르티무카라고 이름하리라. ‘키르티무카는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시바신은 이 영광의 얼굴을 향하여 누구든 너를 예배하지 않는 자는 나에게 올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318 먹기 전에 감사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음식을 준, 성서에서 나온 이에게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신화를 보면 사람들은 먹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기꺼이 희생됨으로써 우리의 먹거리가 되어준 그 동물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319 자기 삶에 집착한 나머지 남의 먹거리가 되어주지 않는 것도 삶을 거부하는 굉장히 부정적인 사고방식이지요. 그렇게 하면 생명의 흐름이 끊겨버립니다. 이 흐름을 타는 것은 매우 신비스러운 체험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먹거리가 된 동물에게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거예요.

 

278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미리 써두는 유산대처법

 

죽기에 좋은 날이다. 이게 그들의 구호였어요. 죽기에 마침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인디언에게 삶에의 집착이 있을 리 없지요. 이게 바로 신화가 전하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어요. – 279

 

(7)  기타

 

그의 말에 따르면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이다. 조셉캠벨은 인생을 모험이라고 확신한다. – 12

 

14 운명은 앞서서 뜻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것은 아니라오.

 

28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나오는 토니오는 작가는 진실에 진실해야 한다 씁니다. 그런데 토니오가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세상을 떠날 즈음의 석가가 어떠했습니까? 석가의 모습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없는 불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48 신화는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니예요.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기다리는 캄캄한 숲 속에서 한바탕 모험을 해야 합니다. – 89  

나의 꿈은 사회와 조화하고 있나? 내 꿈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올텐데

 

100 모이어스 : 타락의 책임을 여자가 지게 것입니까?

캠벨 : 여성은 삶을 상징하거든요. 남성은 여성을 통해야만 삶의 장으로 나올 있어요. 따라서 대극하는 것과 고통이 있는 세상으로 우리를 나오게 것은 여성인 셈이지요.

남성이 여성을 통해서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155 캠벨 ;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랍니다.

 

231 아즈텍인에게는 여러 층의 하늘이 있는데 죽음을 맞는 상황에 따라 이 하늘의 각 층이 내세의 집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와 출산 때 죽은 어머니는 똑같이 최고천을 배정받지요. 말하자면 출산은 영웅적인 행적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니까요.

 

291 모험자체가 모험에 대한 보답이고 말고요. 하지만 모험이라는 것은 위험해요우리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길이 아니라 우리의 길을 좇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한 권능자들의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조금 전에 내가 소개한 것 같은 원형적인 이야기가 이런 모험의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아는 데 약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297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동화시키기가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이것을 성취한 인간은 그만큼 더 위대해 지는 거랍니다.

 

305 우리는 어머니 대지라는 말을 곧잘 쓰지요? 이집트에는 어머니 하늘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여신 누트가 바로 어머니 하늘입니다.

 

305 우리는 어머니 대지라는 말을 곧잘 쓰지요? 이집트에는 어머니 하늘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여신 누트가 바로 어머니 하늘입니다. 누트는 하늘로 그려지지요.

 

333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참여하지 않으면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없어요. 하느님을 절대 타자로 보는 관념이 엉터리인 까닭이 여기 있어요. 절대 타자와 나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을 수 없지요.

 

335 모이어스 :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캠벨 : 옛날에는 스승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그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즉 옛날의 스승들에게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삶의 단서를 줄 의무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제들이 있었고, 의례라는 게 있었던 겁니다. 의례의 집전은 곧 신화의 연출입니다. 우리는 의례를 통해서만 신화적인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그런 체험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모이어스 :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영적인 삶을 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캠벨 ; 그렇지요. 신화는 우리에게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약도까지 그려주고 있어요. 우리 주위에는 이런 약도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이 약도라고 하는 게 다 같지는 않아요. 자기네 종족신만 섬기기를 요구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주의 어머니인 위대한 여신의 계시가 담긴 약도는 우리에게 이 세상 만물을 자비로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땅이 곧 여신의 몸이니 이 땅 자체의 신성도 섬겨주기를 요구합니다.

 

37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파니샤드)

 

413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잇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 때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행임을 깨닫는 수가 있다. (카를프리트 그라프 뒤르크하임)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첨부         신화의 힘 인용문(3번읽기).docx  

처음 읽기, 읽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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