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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7일 00시 41분 등록

MeStory(7) : 이야기를 좋아해.


#1. 선생님, 이야기해 주세요. 

어른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나를 나무라셨다. 왜 그러셨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린시절 내가 이야기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며 말하거나 한 기억이 없다. 


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안 것은 고2 혹은 고3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는 공부라는 것이 하기 싫어서 수업을 어떻게든 빼먹고 선생님을 졸라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을 거다. 공부라는 것을 그리 싫어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학수업시간에 무지막지하게 잠이왔던 때라고 기억한다. 여순반란사건을 이야기해달라고 했었다. 수학선생님은 그걸 얘기해 주실 분 같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줄 만한 어른은 학교 선생님 말고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순반란사건이라고 물었고, 그게 뭔지 지금도 잘 모른다.('여순반란사건'이란 명칭은 잘못된 말 같다. 1980년의 광주시민을 광주폭도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잘못된 표현.....)  하여간 어디선가 여수와 순천에서 있었던 것을 보거나 들었거나 했던가 보다. 아마도 교회 선생님들로부터 얼핏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교회 선생님 중에 대학생들, 그러니까 언니 오빠들이 많았는데 TV에 나오지 않는 궁금한 것들은 대개가 그 사람들 한테서 나왔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그네들은 열심히 데모라는 것을 했고, 내 동기생의 형들이 바로 그 대학생이고, 교회 주일학교의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오빠와 언니들과 함께 광주 5.18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해방전후의 이야기와 6.25 이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보았다. 


그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자극적인 것들이다. 기존에 다른 곳에서 보고 듣지 않은 내용이고, 또 너무 어려워서 계속 생각나게 했던 것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것들. 그 궁금증이라는 고리를 물고 들어가면 소설 속에는 멋진 사람들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있었고 그것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고민을 어찌하지 못해 소설속에 묻혀 지냈는데, 그 소설 속 인물들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고민의 답도 어렴풋이 얻었던 것 같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는 모두 시시껄렁하게 느껴졌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은 '이럴 수도 있구나'하며 별 거부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2. 전통문화의 이해 수업의 조별과제 발표 : 우리나라의 전설 

두번째로 이야기로 빠져 든 것은 전설이었다. 대학교 도서관에는 전공책 말고도, 소설 책 말고도,  별자리 이야기, 꽃말 이야기 책도 많다. 그렇다. 별별 이야기책이 다 있다. 


교양수업으로 듣게 된 '전통문화의 이해'에서 '전설'을 골라잡았다. 3명이서 나누어서 우리나라 전설 모음집을 몽땅 읽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전설이 있는지를 어떤 내용인지를 정리해서 발표했다. 지금 기억나는 전설의 특징은 어느 지역이나 전설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효자가 나오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고, 폭정을 하는 관리와 암행어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암행어사 이름은 박문수. 교수님께서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모든 지역에 모든 시대에 다 가서 일을 처리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하셨다. 나중에 구전되고 기록될때는 암행어사는 박문수가 유명해서 암행어사하면 '박문수'라고 통일되었을 가망성이 높다고 하셨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신의 선물'에는 '기동찬'이란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그 이름은 15년전쯤에도 들었던 이름이다. '불의 나라'라는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 이름도 그 이름이었다. 무엇인가를 무척 잘 해낼 때 '기똥차게 잘한다'라고 하는데 거기서 나온 이름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하나 캐릭터를 하나 잘 만들어내면 그 인물로 시리즈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도 비슷비슷해서 주요사건과 주요 결말만을 남기며 간결해지면서 통일되고, 캐릭터도 유명한 한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서 모든 사건의 실행자로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다. 


#3. 흥부의 박에서 나온 것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얼마전에 흥부전을 읽다가 너무나 우습고 어처구니 없어서 마구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 그 이야기의 구성이 아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부의 박에서 처음 나온 것은 쌀이었다. 흥부네 식구는 그걸로 밥을 지어서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었다. 소리꾼을 그것을 지나치다 싶게 희화해서 속사포로 장황하게 내질렀다. 청중들은 그 장면을 들으며 자신의 배가 부른 것처럼, 자신이 직접 먹지 않아도 흰 쌀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 흥부의 박에서 나온 것은 돈, 집, 옷....., 일꾼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미인 양귀비가 나왔다. 흥부 마누라는 흥부가 첩을 들인다고 아주 난리를 쳤지만 흥부는 아주 좋아라 한다. 배부르고 등따시면 생각나는 게 얼굴 이쁜 마누라와 같이 사는 것인가 보다. 


이와 비슷한 전개가 서양 이야기에도 나왔던 것 같다. 작년(2013년) 봄쯤에 인문학 강좌를 듣다가 미시사라는 것을 들었고, 그와 관련된 책을 보다가 민담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삶의 이야기라는 대목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요정을 도와서 세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는 행운을 얻은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 가난한 농부가 말한 첫번째 소원은 '소세지 나와라!'였다. 못 먹고 못 사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 그것은 배불리 고기를 먹는 것이다.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먹는 것이라면, 농부의 첫번째 소원인 소세지는 당연한 것이다. 


농부가 첫번째 소원을 너무나 사소한 것을 받는 것에 써버려서 화가난 농부의 아내가 바가지를 긁었다. 이깟 소세지 누구 코에 붙이냐 이렇게 첫번째 소원을 써버리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농부는 화가 나서 그 소세지가 마누라 코에 가서 붙으라고 두번째 바램을 말해 버렸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소세지를 떼지 못해 안달을 하다가 결국 세번째 소원을 소세지야 떨어져라라고 말한다. 너무나 불쌍한 농부다. 어렸을 적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적에는 어처구니 없어 웃었지만, 지금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가을에 살롱9 인문학 강좌로 이만방 선생님께서 모짜르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걸 계기로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는 모짜르트가 만든 오페라가 나오는 데, 거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왕과 귀족을 위해서 더이상 공연을 할 수 없었던 모짜르트의 작품이 서민들을 위해서 각색되어서 공연되었을 때, 말에게 당근을 먹이면 말의 뒤쪽에서 빵과 고기가 계속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무대의 사람들이 노래를 하고, 그 노래를 서민관객들이 일어서서 같이 부른다. 공연 내용이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인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먹을 것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 당나귀를 보며 즐거워한다. 모짜르트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좀더 대중적인 오페라를 작곡한다. '마술피리'


마술피리의 주인공은 공주를 찾아나선 왕자이지만, 모험에 나선 왕자와 우연히, 억지로 따라나선 '파파게노'라는 새잡이꾼이 진짜 주인공처럼 보인다. 오페라 제목인 마술피리도 왕자가 부는 게 아니고 새잡이꾼 파파게노가 부니까, 뭐 파파게노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되겠지. 파파게노의 행동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왕자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하는 1차적인 것이고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파파게노가 원하는 것 또한 1차원적인 것이다. 먹을 것, 그리고 결혼할 예쁜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같이 살며 아들딸 많이 나아 행복하게 사는 것. 파파게노에게 나라를 구한다거나 하는 욕심 따위는 없다. 


왜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고, 왜 이런 유쾌하고 황당한 일들이 공연에 나오는 것일까?


그건 오래전에 본 만화 '임춘앵'에서 답을 한 것 같다. 전진석 작가는 주인공 임춘앵의 어린시절 중에 연극에 발을 들여놓은 사건을 넣었는데, 임춘앵이 연극 리허설 장면에서 연극에 홀딱 빠져드는 장면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연극은 관객들을 꿈꾸게 만들어야 한다' 연극 무대장치와 소품 담당자는 공연 중에 나비가 사람의 손에 내려 앉는 장치를 고안하여 그것을 선보인다. 무대장치 담당자가 임춘에게 말한다. '관객을 꿈꾸게 만든다.'


흥부전에 흥부의 첫번째 박에서 나온 것은 배불리 먹을 쌀이었다. 쌀이 흥부가 가장 원하는 것이고, 그 판소리를 듣는 가난한 서민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 요정을 도와준 가난한 농부도 먹을 것을 원했다. 모짜르트 작품이 서민적인 것으로 각색되었을 때도 대중들이 좋아하는 장면은 먹을 것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들 이야기 속에서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환상적이게 보여준다. 이야기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뭔가를 건드리는 게 있는 것 같다. 


#4. 꿈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구상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꿈의 주인공이 해준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것을 듣고 무엇을 그렸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꿈을 그리는 데 왜 이야기를 하나 새로 만들어냈을까? 그동안에 읽거나 봤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꿈을 이루어나가는 데에는 그런 이야기 속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그걸 일부러 이유를 달아서 설명한다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5. 그림 + 글 

'그림책 쓰기'라는 책을 보고 있다. 자신이 잘아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대부분이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글작가이건 그림작가이건 전래동화나 고전에서 힌트를 얻으라고 한다. 전승되는 이야기에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를 제대로 파봐야겠다. 요즘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마주잡이로 섞이는 것을 경험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에서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닮았다던가, 이전에는 그냥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그런 것들이 뒤섞인다. 그것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그래야 복잡한 것들이 머리속에서 사라질 것 같다. 잘 아는 이야기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림으로 표현할 부분과 텍스트로 표현할 부분을 구분해보고 16쪽으로으로 구성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다가 궁극에는 내 이야기를 하나 만들고 싶다. 그렇데 된다면 뒤죽박죽인 이야기들 중에 몇개만이 기본으로 남고 나머지는 사라질 것이다. 그림 장면도 그리될 것 같다. 


만화가 박재동은 어린시절부터 영화 '벤허'를 수십번을 보았다고 한다. 말그대로 수십 번. 모든 장면을 외울 정도로 수십번을 본 벤허 덕에 로마사를 다룬 만화를 그리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벤허에서 장면을 변형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벤허에서 본 복색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반지를 주는 장면을 왕의 대관식 장면으로 바꿔그렸다고. 그러고 나서 그는 벤허의 모든 장면을 완전히 잊었다한다. 만화가 박재동은 벤허는 자신이 잊지 못할 영화였지만, 그 영화 장면이 자신의 창작활동에 재료로 쓰이고 나서는 그것이 사라졌다고.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머리 속에 있던 수많은 이미지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하게 되는 이미지와 충돌하게 되므로, 하나의 장면을 만들게 되면 창조과정에서 재료로 쓰여진 이미지들은 정리된다고.


모든 암행어사가 박문수로 통일되었듯이, 

복잡한 인생이 단순해지고, 수많은 이미지들이 내가 창작한 이미지로 수렴되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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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4:05:49 *.153.23.18

정화님에게도 이야기가 쌓이는 화수분이 하나 있으신 것 같아요^^

이야기는 밖에서 안으로도 넣지만 인류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는 집단무의식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아래에서, 마음에서도 퍼낼 수 있겠지요.

정화님이 본 영화, 만화, 책 이런 것들이 새로운 장면과 글로 옷을 입고 태어날

그림책 얼른 읽고 싶네요.  

근데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다는 말은 참 어이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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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0 08:43:02 *.39.145.95

그동안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마구 뒤섞이는 것을 느껴요.

뒤섞여서도 남는 것이 뭔지.....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네요. 


농사가 일의 전부였을 시절,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것만이 일이라고 여겼던 시절. 일부 어른들의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그 시절에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것이, 손이 잠시라도 멈추게 되니 생산양이 줄어서.... 이야기 좋아하면(일 안하고 게으름피면) 가난하게 산다라고 하셨던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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