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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7일 06시 14분 등록

MeStory(8) :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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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꽃비가 내리는 나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비가 드리어 내렸다. 그 비에 꽃들이 떨어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벚꽃이 한창일 때였다. 짧은 점심시간이었지만 밥먹으로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꽃이 만발한 것을 보았다. 출근하는 동안 셔틀버스에서 정신없이 자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출근길 안개 속에 쌓인 나무들을 보았다. 벚꽃나무가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은평구는 나무가 별로 없다. 도시의 나무는 미관을 이유로 덮어버린 시멘트길 때문에 설자리가 없다. 겨우 플라타너스 가로수, 앞집 주택에 심어진 나무, ... 그보다 심하면 큰 고무 화분에 심긴 나무가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벚꽃비가 내리고 그것이 진 후에 잎사귀가 서둘러 돋았다. 그리곤 왕겹벚꽃나무가 꽃이 피었고, 그것 또한 졌다. 철쭉과 연산홍이 미친듯이 필 때에 뒷산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을 알았다. 뒷산에 능선이 보이던 것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무 잎사귀들이 커지면서 허공을 채워다. 나무는 이제 앙상하지 않았다. 그런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산이 꼭 소세지 같아 보였다. 비닐 안에 고기살이 꽉 차서 터질 듯이 나무들의 모양이 산의 능선과 계곡을 불룩불룩 채우고 있었다.


나무는 봄을 실컷 맞고 있는 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매일 점심을 먹고 수첩에다가 '여기는 꽃비가 내리는 나라'라고 시작하는 글을 썼다. 그것이라도 쓰지 않으면 내 영혼이 시들어 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아침에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9시 반이었다. 나는 몸이 무겁다는 핑계로, 어쩐지 쉬어야할 것 같다는 핑계로 집에서는 잠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달을 보냈다. 처음에는 몸이 피로하니까라고 스스로를 변명하고 위로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새로운 균형점에서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도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어야 했다.


꽃비가 내리고, 산이 살찌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의 봄이 나를 두고 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

지금과 같은 삶이 한 달 더 이어진다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2달을 계획하고 시작했으나 그 절반이 지나가도록 나는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턴을 하지 못했다.


젊었을 적, 그러니까 내 삶에 봄이라고 하는 시절에 겪었던 것이 떠올라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1993년. 스물한 살 일때. 지금의 나이 마흔 둘을 생각하면 그때는 진짜 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1993년에도 나는 지금처럼 내 봄이 가고 있다고 슬퍼했었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전북 임실군 덕치면 두지리로 여름봉사활동을 갔다. 무더운 여름에 나는 복숭아 나무 한그루 때문에 내 봄이 가버렸다고 우울해 했었다. 


아들내외는 일찍 죽었는지, 하나는 죽고 하나는 집을 나가버렸는지 어린 손자 하나를 키우며 사셨던 할머니댁에 일을 도우러 갔다. 손자는 이제 다 커서 군대에 가 있다고 했다. 할머니 혼자서 집을 지키며 농사를 지었다. 그집에는 샘 옆에 작은 개복숭나무 하나가 있었다. 우리가 농활을 간 때는 여름 8월쯤으로 기억한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폭염으로 기억한다.

 

여름은 복숭아가 나오는 시절. 나는 복숭아 하나를 얻어 먹을 요량으로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를 뒤졌다. 그러나 나무에는 복숭아가 하나도 열려있지 않았다. 사람이 복숭아를 따 먹었다 하더라도 작은 것 하나까지 남아있지 않을리는 없어서 의아했다. 할머니께 열매가 하나도 없는 나무가 이상하다며 여쭈었다. 할머니께서는 열매도 열지지 않는 나무를 계속 두고 계시다고. 


내 머리속에는 성경 속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성경 속에는 잎만 무성하고 하나도 열매가 없는 무화가나무가 나온다. 예수는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했다. 그 이야기는 무화과나무 이야기이기만,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들었을 때는. 열매가 없는 인생은 죽음과 같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복숭아 나무에 대한 답변은 더 놀라웠다. 복숭아 나무는 열매가 잘 열리고 복숭아는 아주 맛있다고 한다. 그해에만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하셨다. 나무는 봄에 꽃을 피웠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도 수정을 하지 못했단다. 그해 봄에는 비가 잘 오지 않아 가물었지만 한동안 비가 내렸고 그때가 바로 복숭아 나무가 꽃 피었을 일주일 동안이었다고 한다. 꽃이 피어있는 내내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렸고 나무는 한마리의 벌 나비도 만나지 못한채 꽃을 그대로 떨구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매는 잘 맺는 복숭아 나무지만 그해에는 단 하나의 열매도 없다고 하셨다. 열매없이 봄과 여름을 살고 있는 그 복숭아 나무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제 딴에는 한껏 제 할 일을 했지만, 그것이 어그러지는 것을 겪는 복숭아 나무. 오직 잎사귀를 키우는 것 말고는 그 해의 낙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무.


그런데 나무보다 더 우울한 것은 나였다. 당시의 나는 이제 스무 한살이었고,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청춘의 시기에 뭘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봄에 뭘 하지 않으면 여름에 키워서 가을에 얻을 것이 없다는 고사가 생각나서 내 삶은 꽃이 안피었으니 키울 열매도 없고 나중에 낙도 없을 것이었다. 복숭아나무야 할머니 말씀대로 내년 봄에 또 꽃이 필 것이고, 그러면 그때는 맛좋은 복숭아를 많이 열 것이다. 나무는 매해 새로운 삶을 다시 사는 것이 가능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다고 생각하니,나무가 부러웠다. 나무보다는 내가 더 우울한 삶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1993년 그때 조차도 여전히 내 삶의 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마흔둘의 나이가 봄을 지난 여름이다. 

내 삶의 봄에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해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시간을 돈으로 바꾸며 살고 있다. 더이상 키우고 싶지 않은 쪽에 힘을 쓰며 적응이라는 것을 애쓰며, 월급이란 것을 바라보고 한달을 보냈다.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계획했던 남은 한달도 별 진전없이 지나가 버릴 것 같은 불안의 요소를 담고 있다. 비가 오건 아니건 꽃은 피웠어야 했는데, 그 꽃마저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착찹하다.


내 삶에 봄이 가고 있다.

1993년의 복숭아나무처럼 봄을 몇번이고 새로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게는 꽃을 피울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내 안에 꽃피울 힘은 남아있는 것일까? 


여기는 꽃비가 내리는 나라.


내 생에 봄날은 간다. 내 생에 봄날은 간다. MeStory는 과거에 사는 것 같아서 싫었다. 늙은 군인 훈장자랑하듯, 나이든 사람이 자신의 가장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MeStory가 짜증이 났었다. 그걸 쓰려고 구상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사는 것 같아 초라해보였다. 지금은 없이 과거에 한때 좋았던 때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처럼 초라한 삶이다. 생각에서 이미 늙어버린 사람처럼. 그런데 나는 적당히 늙어버린 늙은 군인 맞다. 나는 아직도 과거를 더듬어야 할 듯 하다. 더 나이 먹게 되면 그때가 좋았지하며 좋아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더 살고 나면 자신의 삶에 기록으로 남길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때가 온다는데, 지금은 내 나이는 아직은 아닌가보다. 그러니 쓰면서 내 봄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해야겠다.


비에 꽃이 지고, 산이 살찌는 동안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여기는 꽃비가 내리는 나라. 산이 살찌는 동안 봄날은 간다. 소세지처럼 살이 쪄버리는 산을 보며 그것을 한번 그려보겠다고 하며, 그걸 머리 속에서만  굴리는 동안 봄은 날 기다리지 않고 저만치 가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두고 봄은 나를 스쳐서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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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3:54:56 *.153.23.18

그 복숭아나무는 다음 해 봄에는 비가 안 왔을테니, 맛난 복숭아를 달았을 겁니다.

열매가 나무의 진기를 제일 많이 소진시키는데요, 한 해 잘 쉬었으니 다음 해 풍성하게 열매를 달고 나무도 자랐을 테구요.

이거 과수원집 딸램이의 말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해걸이를 나무들이 제법 하거든요.

 

미스토리를 충분히 하면 과거로 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휴직을 하고, 특수교사의 일상에서 멀찍이 있어요.

저더러 그 16년을 적어보면 그게 새 출발을 위한 좋은 공부가 될 거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어요.

 

전철을 타고 가시나 했더니 셔틀이 있네요. 셔틀은 좀 더 편안히 오갈것 같아 다행입니다. ^^ 건강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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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0 08:38:35 *.39.145.95

나무의 진기를 다 모아서 만든다는 그 열매를 꼭 만들어보고 싶네요.  

미스토리는 과거 소재를 많이 다루기는 하지만 현재에서 자신이 쓰는 거니까.... 그건 꼭 써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과제로 쓰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어요. 틈틈이 써서 글감으로 모아두려고 합니다. 


콩두님 교사하면서 겪었던 것... 어떤 형태로든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산으로 남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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