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1534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4년 5월 8일 23시 54분 등록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용 23, 영화 <역린> 대사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20일이 되어 가고 있다. 여전히 실종자 수는 70여명이라고 한다. 사건으로 국민을 지켜야 의무를 져버린 '돈과 권력' 지키기 급급한 정치인들과 경찰 그리고 군대에 분노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만을 남겨둔 혼자 유유히 탈출해 버린 선장과 선원들에게 분노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뒤로하고 힘을 가진 정치권과 권력을 옹호하느라 바쁜 언론에 분노했다. 그렇게 책임져야 하는 모든 이들의 무책임함에 분노하던 차에 별다른 기대 없이 보게 영화 <역린>에서 나온 대사이자 중용 23장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감정인 분노를 너머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물론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있었다면, 이런 어마어마한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마음이 가장 컸다. 사고가 나자마자 언론을 통해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있다'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려는 시도를 하는 순간에 정성을 다해 구조작업을 했더라면, 분향소에 들러 방송에 보낼 거짓 조문 장면을 찍기 위해 사람을 섭외하는 시간에 정성을 다해 유가족에게 사과를 했더라면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소중한 목숨을 명이라도 구하고,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도 지금보다는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작은 일을 무시한 결과를 덮기 위해 크게 분노할 일들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작은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닐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과연 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었던가? 결국 지금 내가 분노하고 있는 환경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가. 천암함처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번처럼 언론 규제, 책임 회비, 더딘 구조 활동, 진실을 덮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 등을 보였다. 하지만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나는 꼼수다' 같은 방송 등을 통해 진실을 알긴 했으나, 그냥 '아는 '에만 그쳤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속속 들려왔으나,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겠어' 하는 마음으로 흘려 들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국가를 보며, 내가 자리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떠오른 장면 하나.

 

" 간판 불이 꺼져 있어?"

 

스승이신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선생님의 사람들이 편히 들리는 간이역 같은 '스터디 카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자 실험을 있을 것이라 기대와 설레임의 공간이었던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9. '주인장' 마음으로 함께 만들고 운영한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9 닫기 전부터 카페를 찾아주신 분들에게 간판 불을 켜지 않느냐는 말을 여러 들었다. 그리고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 간판 켜요."

 

카페에서 월급 받는 직원이 말을 들었다면, '까먹었다 혹은 죄송하다' 말하며 당장 간판 불을 켜는 행동으로 이어져야지, 직원 입에서 나올 있는 대답은 아니다. 반대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진짜 주인'이었다면 하루하루 나가는 월세와 전기세를 생각해서라도 간판 불이 꺼져 있냐는 말을 들을 상황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너무 당당하게 밖으로 내었던 나는 무엇이었을까?

 

매출이나 공간 유지에 대한 책임에는 관심이 없지만 주인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직원이었다. 책임을 회피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무책임한 책임자였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내게 없던 결정권과 결정되는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있던 책임자. 대답의 이면에는 이런 속내가 숨어 있었다.

 

' 사람이 없어서 카페 문을 아예 닫는 것보다 나라도 있는 어디야?'

'어차피 간판 불을 켜도 사람이 오는데, 간판 켜고 편히 다른 하는 낫지.'

'저녁에 손님 없으면, 빨리 닫고 퇴근해야지'

'일하기 싫다. 빨리 카페 닫았으면 좋겠다.'

 

속마음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봐도, 대충 훑어 봐도, '책임' 없다는 사실만이 공통점으로 남는다. 작은 균열에서 시작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물처럼 나의 책임감도 그렇게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물론 작은 불씨로 남아 있던 '양심' 때문에 말을 밖으로 뱉으면서 '이래도 되나?'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어쨌든 카페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나니까, 그래도 괜찮아.' 하는 무책임한 생각의 뒤로 묻어 버렸다.

 

매출을 올려야 하는 카페에서 내가 무시했던 작은 , '간판 켜기'. 작은 일을 무시했던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결국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공간의 문을 결국 닫게 만든 요인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살롱9 떠나기로 마음 먹은 뒤에 다른 일자리를 찾으며, 불안했던 가장 이유는 '내가 다시 일할 있을까?' 혹은 '열정을 다시 찾을 있을까?' 아니라.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속할 있을까?' 였던 같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열정을 가지는 지점과 다른 방식으로 일이 전개되어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내가 애써도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서서히 작은 일들을 하나씩 무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시하는 '작은 ' '크고 중요한 일들' 이르고, 결국 ', 이제 떠나야지'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속할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이지, 최선을 다할 있는 방법을 찾아 생각을 적이 별로 없다. 생각과 판단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작은 정성' 나만을 위한 , 내가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정성이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적도, 생각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감동을 이끌어내고,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용 23 '작은 정성' 나와 달랐다. 작은 정성은 나를 너머 타인을 위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가?' '저들을 위해 무엇을 있는가?' 차이일 있겠다.

 

카페 문을 닫기로 결정되고, 정도 남은 상황에서 새로운 강좌가 시작되었다. 이런 생각으로 간판불을 켰다.

 

"수업 들으러 처음 오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찾을 있게 간판을 켜야겠군"

 

내가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진짜 작은 정성' 너무나 늦게 시도했는데, 시도했다는 사실조차 카페 문을 닫은 뒤인 지금에서야 비로소 자각하고 있다

IP *.176.226.2

프로필 이미지
2014.05.09 13:48:51 *.153.23.18

마지막 달 켜둔 간판 불을 보고 제가 강좌에 간 거네요.^^

저도 제 직업의식에 대해 고백을 해얄 것 같은 압박이 자꾸 오네요. 지금은 휴직중이라 한숨 돌리려해요.

이다음에 두 번째 살롱9가 오겠지요.

그 장소, 그 모양이 아니라도 살롱9는 고유명사니까, 실험2가 또 오리라 생각해요.

 

프로필 이미지
2014.05.09 15:06:27 *.252.144.139

그래. 미나야. 넌 절대 장사하지 마.

네가 돈에 관심이 없듯 돈도 너에게 관심이 없어.

새로운 직장에서는 조금 더 마음 잡고 일하길 바란다.

그런데 여성민우회 대표하셨다는 분, 나랑 한명석 선배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공부한 분 같아.

내 이야기해봐 아실 것 같아.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