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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1일 02시 43분 등록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나그네의 모습으로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날이 저물자 그들은 하룻밤묵어갈 집을 찾아다녔는데 천 가구의 집을 돌아다녔으나 모두 빗장을 걸며 문을 닫았다. 딱 한 집이 그들을 맞이했는데, 그것은 짚과 갈대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이었다. 노파 바우키스와 동갑내기 필레몬 할아버지의 오두막이었다.


 부지런한 바우키스는 긴 의자에 깔개를 깔고, 화덕의 불길을 살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장작 개비들과 마른 가지들을 작은 청동 냄비 밑에 갖다 놓았다. 그녀는 남편이 가지고 들어온 양배추의 겉잎을 따냈다. 그리고 노인은 오랫동안 간직해 오던 훈제 돼지 등심을 베어내어 끓였다.


이어서 그녀는 초록빛 올리브와 검은 올리브, 꽃상추, 무 등 야채와 화덕에서 익힌 달걀, 돋을무늬가 새겨진 포도주 희석용 동이와 너도밤나무 술잔을 내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포도주가 들어왔다.


후식으로는 호두, 무화과, 쭈글쭈글한 대추야자와 사과, 포도 등의 과일, 벌집이 놓였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상냥한 얼굴과 활기차고 넘치는 선의가 있었다. 그 사이 노부부는 포도주 희석용 동이가 빌 때마다 저절로 가득 차고, 포도주가 저절로 솟아오른 것을 보았다.

그 때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신이다. 너희 불경한 이웃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너희는 집을 더나 우리의 발자국을 따라 저기 저 높은 산 위로 함께 오르도록 하라!’


두 사람은 신들이 시키는 대로 산비탈을 힘겹게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못에 잠겨 있고 그들의 집만 남아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이웃 사람들의 운명을 눈물로 슬퍼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이 살기에도 비좁던 그들의 오래된 오두막이 신전으로 변했다.


다시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의로운 노인이여! 의로운 남편에 어울리는 아내여, 너희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필레몬은 바우키스와 몇 마디 나누고 나서 자신들의 공동의 결정을 하늘의 신들에게 알렸다.


‘청컨대 우리는 사제가 되어 저 신전을 지키게 하고, 두 사람이 한날 한시에 죽어 서로의 무덤을 보지 않게 해주소서!’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신전지기였다가 명이 다하자 나무로 변했다. 그들은 아직도 말할 수 있을 때 서로잘 가요, 여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그곳에는 하나의 쌍둥이 밑동에서 자라나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첫 번째, 자신을 구하는 것은 따뜻함이라는 것이 좋았다. 천 개의 집을 찾아다녔는데 오직 필레몬과 바우키스 내외만이 나그네로 분장한 두 사람을 대접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따뜻함이 그 큰 마을에서 오직 두 사람만을 살아남게 해주었다. 나는 그 부분이 나의 구원처럼 느껴졌다. 눈치도 지략도 그냥 평범한 정도인 나로서는 멋진 칼과 아름다운 꽃 같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런 것들 보다도 어쩌면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도 따뜻한 마음으로 신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을 불평없이 맞이했다. 평소에 습관이 배어있지 않으면 낯선 사람을 쉽게 자신의 집으로 들이고, 없는 살림 쪼개어 밥 한끼 제대로 대접해주기 쉽지 않다. 또한 여기서는 손님으로 나왔지만, 인생에 예약없는 손님처럼 불쑥 찾아오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나에게 온 모든 것을 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그렇게 했다. 이 두 사람의 손님대접을 읽어보면 이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불행이 찾아와도 별 불평 없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의 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어린 나를 반성했다

.

세 번째, 자기 반려자와의 마지막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끝은 나무로 변해가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잘 가요 여보!’하고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마무리까지 좋아야 진짜 좋은 인연,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죽었을 때 아주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편지도 전해주고 싶다. 그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아무 미련없이 나의 반려자와 나의 인생에게 잘 가요!’라고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나의 노후에 대한 예언이자, 아름다운 나의 마지막의 분위기로 간직하고 가져가기로 했다.

 

_술이 떨어지지 않는 저녁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어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평화롭고 아무 문제 없이 혼자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에는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도 모르게 즐거웠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질문들을 내게 물을 때 나는 엄청 힘들어했다. 기질적으로 나랑 맞지 않았다.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나는 회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친했던 동료 몇은 그래서 사표를 던졌다. 나는 내가 남겨지는 것이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두려웠다. 막상 회사를 나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도 되었다. 홀로 서기에는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다 올해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내게 두 개의 기회로 찾아왔다. 두 가지 모두 느닷없이 찾아왔다. 하나는 아버지신부님의 성지순례 소식을 엄마로부터 들었다. 퍽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혼자서는 못 가겠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래서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스 신이 중세의 신을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를 보내주었다는 게 웃기지만, 나는 그릇이 큰 신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무척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딱 한번 참석했던 변경연 이사회에 갔다가 병곤 오빠가 아니, 오병곤 교장 선생님이 해언, 너 할꺼지? 너 하면 나도 해볼게.’ 하고 이야기 했던 것이 방아쇠가 되어 진짜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9명의 동료들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처음 별 생각 없이 수락했던 것에 비해서 두 가지 다 만만치가 않았다. 연구원은 생각했던 것만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하루하루가 무거웠다. 어쩌다 숙제를 주말까지 못끝낸 주는 쉽지 않았다. 이미 여정이 끝난 성지순례를 기준으로 계속 말하겠다. 이 여행은 엄마뻘 되는 만만찮은 아주머니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또 남자친구가 있는지 나이는 몇인지 회사는 어디 다니는지 가족들은 무얼 하는지 꼬치꼬치 물어보시느라 완전 지치고 말았다. 여행에는 쇼핑과 관광이 곁들여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전혀 없었다. 아름다운 성당들과 유적을 5 10분밖에 못 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동갑내기 노부부 바우키스와 필레몬에게 짐은 가난이었다면, 나에게는 원하는 욕망을 전부 다 실현시킬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불만과 나에 대한 실망이 하늘을 찌른 사흘이 지나갔다.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게 다가오고 싶은 사람들도 내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중간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이 노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아름다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평온한 마음으로 참고 견딤으로써 그것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바우키스의 정성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로 했다. 나는 그녀가 아끼는 훈제 돼지 등심을 끓이듯 아주머니들의 신세한탄을 정성스레 들어주었다. 먼저 상냥하게 말걸고 관심을 가져보았다. 나이 들어 지치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삶이 반짝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각자의 삶과 상황에 잘 다듬어진 채로 자신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신이 여러가지 모습을 변형해 자신을 찾아옴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나아질 수 있음을 믿었다. 스스로 신이 부여했던 원래의 모습으로 바다처럼 모든 쏟아지는 것들을 받았다.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식사들이 모두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식탁과 같았다. 초록빛 올리브와 검은 올리브, 디저트로는 호두, 무화과, 쭈글쭈글한 대추야자, 자두, 바구니에 담긴 향긋한 사과, 식탁의 한 가운데에는 반짝이는 꿀이 든 벌집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상냥한 얼굴과 활기차고 넘치는 선의가 있었다. 나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 앞에 50대 아주머니 삼십 명과 늙은 신부님밖에 없는 관광버스가 오면 그걸 타리라. 회사에서 잠시 거지 같은 부서에 있게 되더라도 견뎌보리라, 정신없이 바쁜 틈바구니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쓰리라.


나는 2014년이 나에게 삶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낙타의 시기처럼, 나는 많은 짐을 등에 싣고 사막을 건너게 될 것이다. 그것은 2014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뿐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투정보다는 이 뒤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인생을 보면 신은 장난기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에 맞는 길을 준비해 놓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와인이 떨어지지 않은 저녁식사였다. 그때 나는 남편과 연구원 동기들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너무 취해서 빈 와인병을 잘못 세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무사이 여신들이 곁에 온 것 같았다. 갑자기 누군가 야 저기 달 봐라!’하고 말했다. 창밖에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있어 우리는 모두 산에 오르고 싶어져 즉흥적으로 뒷산에 올라갔는데, 능선 꼭대기에 올라서 뒤돌아 보니 우리는 새로운 차원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동네는 전부 물에 잠기고 방금 전까지 술마시던 집만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감탄하며 이웃 사람들의 운명을 눈물로 슬퍼하고 있는 동안 낡았던 집이 아주 멋진 작업실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다보니 신은 나를 사랑하여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나는 소근소근 남편과 논의를 하고는 회사를 다니는 것은 상관없으나, 죽을 떄까지 신이 주어진 과업인 글을 쓰다가, 같은 시간에 평안하게 죽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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