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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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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2일 00시 10분 등록

오프 #1

나의 신화창조

2014. 5. 10


1. 내가 좋아하는 신화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창조되기 전에는 만물은 다 한 모양이었으니, 우리는 이것을 카오스라고 한다. 이 카오스는 형태 없는 혼란의 덩어리요, 한 사물에 불과하였으나 그 속에는 여러 사물들의 씨가 잠자고 있었다. 이윽고 때가 이르러 신과 자연이 개입하여 땅과 바다와 하늘을 분리하고 세상을 만들었다.


-> 인간 역시 카오스에서 시작하였다. 때문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카오스의 속성을 배태하였다. 오늘도 나는 우리는 세상은 모두 제각기 따로 또 같이 혼란 가운데 있다. 이렇듯 혼란은 근본적인 것이다. 때문에 혼란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 운명이다. 균형과 안정으로 수렴되는 듯하지만 결국 다른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극하게 균형과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자연이 그러한 즉 인간은 또 그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탄생


이제 세상의 주인이 필요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대지에서 흙을 조금 떼어내어 물로 반죽하여 인간을 신의 형상과 같이 만들었다. 그는 인간에게 직립의 특별한 권능을 주었고 이리하여 인간만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별을 바라보게 되었다.


-> 나는 신화 이야기의 전편에 걸쳐서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내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 보다 신의 자손이라는 쪽을 선택하겠다. 신을 닮은 것이 인간인지 인간을 닮은 것이 신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신의 모습대로 우리 인간이 지어졌다는 것이 맘에 든다. 나는 신의 자손으로 그들의 영웅적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을 가진 인간


거신족 티탄의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는 세상에서 살아갈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재능을 주는 소임을 위임 받았다. 조금 모자란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창조한 생명들에게 용기, 힘, 속도, 지혜 등의 재능을 나누어 주었다. 드디어 인간에게 재능을 나누어 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누어 줄 자원을 몽땅 탕진한 에피메테우스는 난감해 졌다.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어여삐 여겨 하늘의 신물인 불을 몰래 가져와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써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 불은 문명을 상징한다. 문명을 이룬 유일한 생명체 인간. 두발로 곧추서서 하늘을 또랑또랑하게 째려 볼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신을 닮아서인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 그래서 항상 재액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 한계를 알면서도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모함은 결국 불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삶은 영속되고 인간은 오늘도 넘어진 그 곳에서 다시 또 일어선다. 수많은 이 땅의 이카로스들이여. 끊임없이 욕망하고 시도하라. 그들은 오늘도 스스로를 던져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신의 형벌


제우스는 인간을 지극히 편애하는 신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것을 벌하고, 인간에게도 신의 성물을 선물로 받은 것을 벌하기 위해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 형제에게 보냈다. 그녀의 이름은 판도라였다. 하늘에서 여러 신의 기여로 만들어진 판도라는 상자 하나를 들고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졌다. 조금 모자란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판도라는 어느 날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이 때 상자 속에 갇혀있던 온갖 재액(災厄)들이 세상 속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놀란 판도라는 재빨리 상자를 닫았으나 이미 상자 속에 들어있던 것은 다 날아가 버리고 오직 하나만이 상자 속에 다시 갇혔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 나는 늘 이 대목이 잔인하다. 세상에서 가장 모진 고문이 ‘희망고문’이다. 이런 가혹한 형벌을 인류가 받은 것이다. 그래서 삶이 이토록 빛나는 것은 참으로 역설이다. 불행 속에서도 뼈가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면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오늘 날 우리가 온갖 재액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액도 우리를 절망할 정도로 불행케 하지 못하는 것이다.


-> 더불어 인간의 형벌이 여자라는 설정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여성의 입장은 어떨지 데카상스에게 물어봐야겠다. 



창조자의 고난


그의 의지를 배반한 프로메테우스를 가만히 둘 제우스가 아니다. 인간을 만들고 그들에게 신들의 성물인 불을 몰래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는 신과 인간의 통치자인 그에게 정면으로 대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우스는 그를 카우카소스 산상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고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장을 파먹게 하였다. 더욱 잔인한 고통은 독수리가 파먹으면 바로 또 재생되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의지에 복종만 한다면 이와 같은 고통을 언제든지 벗을 수 있었다. 제우스는 여러 번 그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 프로메테우스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한 것은 그가 만든 창조물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다. 더불어 부당한 압제에 대항하는 것을 옳은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지은 죄라면 인간에 대한 사랑뿐. 그의 영웅적인 인내는 신들의 제왕조차도 꺾지 못했다. 이로서 인간은 스스로 불굴의 의지와 정신으로 프로메테우스의 힘찬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다.

창조는 매일 간장이 파 먹히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결국 그것은 다시 재생된다. 끈임 없는 인내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만이 영웅적인 것이다.




2. 나의 신화


2024년 4월 어느 날. 자그마한 사무실엔 큼지막한 책상하나 사방 벽면을 가득채운 서가엔 빼곡하게 책들이 들어찼다. 오래된 작은 진공관 앰프를 따라 AR스피커에선 하루 종일 FM이 흐르고 책상 옆 작은 다탁엔 연륜이 묻은 꼬질꼬질한 다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무실 저쪽 귀퉁이엔 제법 커다란 배낭이 금방이라도 떠날 듯이 시립해 서 있다. 큼지막한 책상에 앉은 사내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안경을 코끝으로 내려 쓰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가끔 안경코를 쓸어 올릴 뿐 또각또각 자판 소리만이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장단을 맞춘다. 사내의 자판 두드리는 품새가 마치 신들린 듯 하다.

사무실 밖 사무실엔 파티션이 예쁘고 서너 명쯤 되어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각자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은 조금 전 그 사내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조금 더 젊어있을 뿐이다. 그 사무실 옆 세미나 실에선 일단의 사람들이 벽에다 쓰고 테이블에 그리면서 무엇인가에 대해서 열심히 토론 중이다. 그들은 모두 열정적이며 밝고 맑은 기운이 넘친다. 개인과 조직의 ‘향상’과 ‘최적화’를 돕는 곳 여기는 ‘바탕연구소’다. 그들은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일을 만들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개인과 조직을 돕고 그 경험들을 책으로 묶어낸다. 이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말한 대로 살며, 산대로 쓰는’ 사람들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몇 개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험하여 세상에 선보였으며 이미 상당수의 개인과 조직의 변화와 혁신에 공헌하였다. 

이 연구소엔 특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해마다 연구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의 연구원들을 선발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매년 한권의 책을 써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조차도 단지 이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다. 리더가 필요한 일에는 해마다 연구원들이 정성스럽게 선출한 사람이 소임을 맡으며, 이 소임은 때가 되면 다음 소임을 맡을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승계된다. 연구원들은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강연, 컨설팅, 인세 수입으로도 안정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고용한 사람들이다. 


이제 막 엔터 키를 친 사내는 뭔가를 완성한 듯 코끝에 걸친 돋보기를 벗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젠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책을 읽기 어렵고 모니터도 큼지막한 것으로 쓰지 않으면 글을 쓰기 어렵다. 탈고의 해방감과 그 동안 쌓였던 고단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가뭇 잠이 드는가 싶더니 십여 년 전 그때로 꿈길이 인도되었다.


십년 전 그는 이쪽의 세계에서 저쪽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쓰겠다며 그 동안 잘 먹고 잘 입게 해 준 따뜻한 직장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낙타의 삶을 버리고 사자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 동안 단 한번도 직장에서 정년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선택은 전격적인 것이었다. 풍찬노숙의 삶을 선택하고 두 번의 겨울이 가고 두 번째 봄을 맞았다. 그 사이 그는 미궁 속에서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를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쌈빡한 일들 가운데서 승승장구하는 날들을 보내지 못해서일까. 마땅한 밥벌이 때문이었을까. 그를 괴롭힌 것은 16년 동안 인이 박힌 낙타의 삶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파릇한 청년에서 겨우 십수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린 과거의 사람이었고 성취 없이는 견디기 힘든 마흔을 넘고 있었다. 새로운 삶을 도모하였으나 지난 몇 번의 계절 동안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자신에게 침잠하려 하였으나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는 것과, 대낮에 거리를 걷는 것과, 아이들의 하교를 맞이하는 것 따위를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다. 특히 견디기 힘든 것은 주어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그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관성은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그를 잡아 당겼다. 한 움큼씩 쑥쑥 빠지는 머리카락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처음 사자의 삶을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혁명이 필요했다. 장소와 형태만 바뀐다고 삶이 의지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 것이었다.


그는 아직 밥을 벌기 위해서 직장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 더욱 척박한 환경에서 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바동거렸다. 이리 저리 줄을 대 보기도 하고 짧은 네트워크를 가동해 보기도 한다.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감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불면의 밤이 다시 찾아왔다. 운명이 부르는 소리에 화답했지만 때가 이르지 않았음인지 신들은 아직 신탁을 주지 않았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 무렵 그는 변화경영연구소와 인연이 닿았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삶을 위하여, 스스로 주인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연구원 제도는 훈련이 필요한 그에게 프로그램과 동료와 코치를 한꺼번에 주었다. 그는 여전히 불면의 밤 가운데 있었지만 열심히 수련하면서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났을 무렵 그는 두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한권은 그 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사진 기록들을 묶어 펴낸 것으로 <일상 한 조각_가장 빛나는 삶의 기록>이었으며, 다른 한권은 스스로의 변화 이야기와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그의 전문영역을 엮어서 집필해 낸 <바탕 質_Quality of Life>였다. 이 후 그는 몇 번의 큰 고비와 슬럼프를 겪었지만 연구원 동기와 선배들과 함께 몇 가지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몇 권의 책을 함께 또는 따로 냈다. 다행히 반응도 괜찮아서 저술가로서의 경력도 제법 쌓을 수 있었다. 매년 ‘변화’와 ‘혁신’을 주제로 한권의 책을 펴냈으며, 5년 전엔 드디어 염원하던 ‘바탕연구소’를 세우고 그가 배웠던 삶을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밥벌이를 위해 읽고, 쓰고, 강연을 하지만 그때처럼 자신을 팔러 다니지 않는다. 책과 강연은 이제 제법 안정적인 밥벌이가 된다. 그가 만든 연구소에서 십년 전 그때처럼 여전히 책을 붙들고 씨름 중이며, 후학들을 통해 세상에 공헌하려 한다. 변화경영연구소는 여전히 왕성하며 올해 22기 연구원이 수련중이다. 그는 올해 이들의 선배로 코치로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가 선배들에게 인도받은 것처럼 이제 그도 후배들을 위해 공헌하기로 한 것이다. 몇 주 전 다녀온 신입생 환영회에서 그와 꼭 빼닮은 후배를 만나 오랜만에 그때처럼 가슴이 뛴다고 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은 연구소 식구들과 일주일간 제주도 백패킹을 떠나는 날이다. 작년에 올레 길을 모두 마치고 올해는 제주 오름을 두루 다니고 있는 중이다. 연말쯤엔 오름을 다닌 기록들을 ‘변화’와 ‘혁신’이란 키워드로 엮어 연구원들과 함께 책을 낼 작정이다. 저쪽에 두었던 배낭을 메고 나서며 그는 사무실을 휘~~익 둘러보았다. 봄바람이 제법 쌀쌀한 길을 나서며 올해는 두 번째 'Me story'를 쓰기로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역동적인 10년의 기록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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