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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2일 23시 21분 등록

좋아하는 신화 이야기 - 오디세우스

 

이타카의 왕으로서 오디세우스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이아와 아들 텔레마코스와 행복하게 살아갔다.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에게 청혼한 만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헬레네의 아버지인 라케다이몬의 왕 틴다레오스에게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더라도 그를 도와줄 것을 구혼자들에게 서약시키도록 조언을 한 대가로 동생 이카리오스의 딸인 페넬로페이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비록 헬레네에게 청혼하러 갔으나 그 상황에 필요한 일 즉 틴다레오스에게 필요한 청혼자로 인한 혼란을 막을 계책을 줌으로써 어쩌면 더 좋은 아내인 페넬로페이아를 얻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디세우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지배하며 필요한 일을 선택할 줄 알았고 행동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그리스적인 영웅이었다.

 

트로이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전쟁자체의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팔라메데스가 오디세우스의 그러한 마음을 간파해버려 참전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참전을 결정한 후에는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는 방법이 이기는 수다라는 것을 알았고 아킬레우스를 찾아내어 설득하고 같이 참전하게 되었다. 이로서 대군을 움직일 군사의 지혜를 갖춘 오디세우스는 용과 같은 아킬레우스라는 용사를 얻어 전쟁에 나서 트로이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트로이전쟁은 오디세우스의 면모를 잘 드러나게 하고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그의 세상이었다. 냉철한 상황판단과 지략으로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어쩌면 10년을 견디는데 현격한 공을 세운이가 오디세우스이다. 그의 지략과 침착성 그리고 웅변을 통한 설득과 리더쉽은 트로이전쟁을 통해 그를 그리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오디세우스의 면모는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귀환의 시간에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나게 된다. 고향인 이타카를 향하는 뱃길은 트로이 전쟁의 결과에 심술이 난 아프로디테와 포세이돈의 노여움으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유혹과 모험의 시간이었다. 고난을 당한 사람은 힘을 합쳐 그 고난을 헤쳐나가려고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이때는 용기를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키클롭스의 나라에서 폴리페모스를 만나 동굴에 갇혀서 폴리페모스에게 부하들이 잔혹하게 잡아 먹히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안정에의 유혹이었다. 칼립소와의 7년 또는 10년 가까운 생활 및 키르케와의 1년여 간의 안주는 편안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이는 자칫 그가 돌아갈 이타카를 잊고 그의 모험의 여정을 끝낼 수 있는 가장 크나큰 유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타카를 잊지 않았고 다시 귀환의 여정으로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여정에도 사이렌의 유혹을 이겨냈고,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의 좁은 해협을 통화했고 헬리오스 섬에서 소를 잡아 먹는 불경을 저질러 모든 부하를 잃는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이겨냈다.

오디세오스의 진면목은 알키노오스 왕의 도움으로 이타카로 홀로 돌아왔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아들을 만나고 아내인 페넬로페이아에게 청혼한 수많은 청혼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페넬로페이아와 재회하고 행복하게 여정을 마무리 하는 과정이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이다.

첫째,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불가능한 것을 무모하게 시도하지 않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인 지혜와 웅변 그리고 용기를 잘 발휘한 점이다.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누구보다고 잘 알고 자신의 운명을 잘 헤쳐나간 사람으로 보이며 이 부분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데 큰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오디세우스는 목표를 잊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는 사사로이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지 않았으며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머뭇거리지 않고 실천하였다. 때로는 비겁해 보일지라도 그 선택일 전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실행하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또한, 10년간의 귀환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그가 이타카를 잊지 않고 마음을 다시 세운 일이다. 신이 아니기에 그도 때에 따라서는 안주하고 지쳐 쓰러졌지만 그의 시선은 이타카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그가 그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잊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셋째,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면모이다. 그는 아내 페넬로페이아를 사랑했다. 아내도 그에게 향한 신실한 마음을 지켰다. 귀환의 여정에서 칼립소, 키르케, 나우시카 등 많은 여인들을 만나 사랑을 받지만 그는 아내를 잊지 않았고 돌아왔다. 또한, 그 전장에서는 물론 귀환의 여정에서 보여준 전우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리더쉽은 또 다른 배울점이다.  

 


 

이동희 창업 신화

 

1972년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동희는 원주에서 맑고 순한 아이로 자라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8살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과 같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이모 두 분이 계신 마산으로 옮기게 된다. 그는 마산에서 거침없는 마산 사투리와 억센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움츠려 들어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과 한해 일찍 학교에 들어간 탓에 동기들 보다 약간씩 늦은 감이 있었다. 그는 큰 꿈은 꾸지 못하고 단지 자식들 건사하는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그리고 멋진 노인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자랐다. 마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구에 있는 당시 전자공학 특성화 대학인 경북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혼자 떨어져 생활하게 된 그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나 그 외로움을 동아리 활동과 술로 풀고 있었다. 조금 넓어진 세상보기에 더 큰 무력감을 갖게 되었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여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며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대학원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그의 공부 유형을 찾아준 것이다.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기 보다 다양한 논문과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고 프로젝트 수행에 놀라운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경험을 쌓고 박사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꿈꾼다. 훌륭한 PM이 되겠다고 그리고 국산 3G 이동통신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겠다고 결심한다. 제품 국산화와 상용화에 성공하였으나 해외 사업 기반이 없던 터라 수출에 실패하고 좌절하게 된다. 입사 5년 후 LTE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여 제품 개발하여 국내 및 해외 수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 성과로 그는 40에 수석 연구원으로 진급을 하게 되었고 좋은 평가를 받으며 바쁜 회사생활을 보내었다.

 

2012년 모든 것은 권태로웠고 벽 앞에 놓인 듯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었던 당시 해외영업으로 업무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개발팀 담당 임원의 계속된 권유로 그 동안의 업무를 계속하기로 한 후 개인적으로는 더 답답해하게 되었다. 그런 중 우연히 메일을 정리하다 구본형 선생님의 변화 경영 연구소 프로그램인 단군의 후예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하계 연수를 동행하면서 그 동안의 모습을 돌아보고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해 가을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된다. 2013년을 병실에서 맞이한 그는 2013년 한 해를 인생을 돌아보는데 보내었다. 하지만 후회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더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꿈이 뭘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면과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2014년 이동희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0기에 지원했다. 2013년에 구본형 선생님께서 암으로 돌아가신 와중에 결정한 일이지만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2014년 한해 동안 그는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그의 동료9명과 같이 읽고 칼럼을 쓰고 모여서 토의하며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알게 되었으며 그의 꿈을 찾아 한발 한발 나아가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2년 내 책을 써서 작가의 인생을 산다. 그는 꾸준히 읽고 쓰기를 실행하여 작가로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인생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기를 원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도 그는 그의 손에서 그의 머리에서 창조해낸 것으로 세상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실천할 방법을 찾았다.  첫째 회사에서 새로운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을 성공해서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가 만든 시스템의 혜택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통신 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이다. 둘째, 창업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고민하였다. 그의 생각은 개인의 생활을 더 잘 들여다 보고 새로운 시도와 인생의 설계를 도와주는 방법을 개발해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통신회사를 차리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이동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해 망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통신 서비스 업체를 만들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10년을 설계하고 실천하였다. 그는 그 후10년간 작가로서 책을 5권 내었다. ‘마흔 직장인 여행이 필요할 때’ ‘출장’ ‘초연결 사회를 위한 통신 시스템’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링’ ‘새로운 시대 새로운 통신 서비스이다. 이는 인생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발견하고 드러내는데 필요한 일로서 향후 독립할 때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18년에 그가 아이디어를 낸 새로운 개념의 통신시스템 개발 및 전세계 시장에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성공한다. 그는 이를 통해 모든 사람과 사물과 즉각적으로 통신하는데 필요한 통신서비스를 더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네트워크 구축도 단순화 시켜 사업자의 망 운용 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을 대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이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초연결 사회를 위한 통신 시스템을 저술하게 된다. 또한, 전세계 통신 시장 확대에 큰 공을 세운다.

 

2021년 그는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나섰다. 이는 그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 동안 마련한 자금과 투자를 받아 새로운 구매 solution을 개발한다. 10년 동안 준비한 새로운 물건 구매/결재 및 이를 통한 라이프 스타일링 방법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이를 위한 회사를 설립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인의 구매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 삶을 스타일링 하고 개성이 넘치며 유행을 잃지 않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이 서비스를 통해 회사를 키우고 상장에 성공한다.

 

2025년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링 서비스를 기반으로 새로운 통신서비스 제공업체로 변신한다. 이는 SKT, KT, LGU+같은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사업자들의 망을 빌려 그만의 독특한 서비스를 접목하여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 업체는 전세계에 지사를 두고 연계된 서비스를 전세계에 전파하고 확대해 나간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통신 서비스를 저술하고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세계에 출판한다.

 

2035년 그는 창업한 통신회사를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 지사를 확대하고 Global통신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경영을 하는 도중에도 읽기와 쓰기를 놓지 않았으며 그의 사업과 인생 경험을 나누기 위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이동희 그는 2014년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을 통해 공부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을 키웠으며 자신의 꿈을 다시 꾸고 이를 현실화 시켜 나갔다. 그는 통신업계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기업을 일구고 전세계에 지사를 설립하여 Global 통신 사업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든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세상에 도움되는 한가지를 남기고 가겠다는 꿈을 꾸었고 그는 이 꿈을 놓지 않고 꾸준히 매진한 결과 그 꿈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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