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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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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3일 11시 00분 등록

오프수업1(5/10). 나의 신화창조


아테나의 탄생


 

‘네 아들에 의해서 너도 똑같은 운명을 겪으리라’

 크로노스에게 내려진 저주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내고 드디어 왕좌에 오른 참이었다. 아뿔싸. 어떻게 이룬 왕좌인데.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형제들을 풀어 주기로 한 약속을 깨고서 이룬 왕이었다. 자신이 경험하였으니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크로노스에게는 자식이 보일 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크로노스는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렸다. 그러나 저주는 역시 그것이 이루어짐으로써 존재를 알리는 법.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가 막내 제우스 대신 보자기에 싼 돌덩이를 삼키고는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된다. 이로써 제우스의 시대가 열리고 제우스는 올림푸스 최고의 신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제우스의 운명도 그 아버지와 같았으니, 이치의 여신 테미스로부터 장차 메티스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그를 대신해 신들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이에 제우스는 크로노스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아예 임신한 메티스를 삼켜버린다. 이 와중에도 메티스는 제우스의 뱃속에서 제우스에게 현명한 충고와 조언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을 소화, 흡수할 수 없었던 크로노스와 달리 제우스는 메티스를 자신의 일부로 흡수하는데 성공한다.

 불안요인을 완전히 제거한 제우스는 만족하며 잘 살아갔을까. 어느 날 감당할 수 없이 두통이 밀려왔다. 그 고통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불사의 신인 제우스는 대장장이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제 머리를 도끼로 내리쳐달라고 한다. 그렇게 하여 두개골을 열어봐 두통의 원인을 알고자 한 것이다. 신들의 신, 제우스의 머리를 내리치는 영광을 안은 헤파이스토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의 도끼질은 얼마만큼 유연하고 힘이 있었을까. 감당할 수 없는 두통으로 헤파이스토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내밀자 헤파이스토스는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 천둥 번개와 같은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 바다가 심하게 흔들리고 범람하였고 태양이 멈추었다. 동시에 무언가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완전무장을 한 성인 여성이었다. 이렇게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탄생한다.


왜 아테나 여신인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 무장하고 나온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안타깝게도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다. 지혜를 가진 여신이기에 아테나 여신이 고작 헤라와 아르테미스 사이에서 미를 가리는 일 따위에 끼어서 종종거릴 때, 그럴 순 없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부르짖었었다. 그런데 아테나에 대해 가부장적 가치관을 대변하며 모성과 양육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이 필요없음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하기도 한다.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시간적인 이유와 극적 이야기로 아테나를 정했다. 그러나 아테나는 내겐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완전무장을 하고 머릿속에서 태어난 그 탄생부터가 그랬다. 그렇기에 신화에서 만난 첫 정으로 아테나의 이야기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어린 나는 어떤 점에서 아테나에게 끌렸던 것일까.

 첫 번째, 지혜에 대한 이끌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열렬히 숭배받는 아테나 여신은 지혜의 여신으로 대변된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서야 그 날개를 편다’라고 말했다. 철학이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가 저물어갈 때 그 뜻을 돌아보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유치환의 ‘생명의 서’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러니까 아테나에게서 느끼는 지혜는 순수하게 지혜로운 여신에 대한 동경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반성과 자아의 성찰이란 느낌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오디세우스는 언제나 마음속에서 아테나와 대화하였다. 그가 지혜로운 영웅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모험의 길은 지상적일 수 있으나 지혜를 바탕으로 한 내면적인 길일 수 있음을 미네르바의 부엉이, 지혜의 여신에게서 느낀다.

 두 번째, 그리스로마 신들은 절대적 권능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권능을 쓰는 일이 복수이거나 사랑을 갈구하는 데에만 쓰이는 듯이 보인다. 그에 비해 아테나는 자신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한다. 지혜를 갖추고 기술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예의 여신으로서 피리, 항아리, 호미, 쇠칼퀴, 말고삐, 전차, 배 등을 발명했다고 하고 평화시에는 실과 베짜는 법을 전파하였다. 포세이돈과의 대결에서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올리브 나무를 선사하며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었다. 아테나는 만큼 전쟁의 신이지만 그것은 파괴적 의미가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었다. 아테나는 전쟁을 싫어한다. 아테나의 상징은 갑옷과 창인데 평상시 제우스에게 맡겨두었다가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 돌려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터에 나가면 용감한 전사로 돌변해 거침없이 싸웠다. 적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자기편에서는 신뢰받는 전사로서 여신은 평화를 지켜야했고 도시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나는 평화가 좋다. 싸움이라면 피터지는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대결, 토론의 대결이 좋다.

 세 번째, 아테나에게 완전한 이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아테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라크네와의 대결에서 욱한 적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뽑는 사과던지기에서 파리스에게 선택당하기 위해 아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이런 모습이 싫었다. 보다 완벽한 이성을 갖추고 절제된 모습의 아테나를 바랐다. 그러나, 이성을 바탕으로 냉철함을 갖춘 것과 냉혹한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냉혹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뒤늦은 후회이지만 자살한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 주는 것도, 데이레시아스에게 예지력을 부여하는 것도, 자신의 아이가 아니지만 에릭토니오스를 잘 길러내는 것도 그녀 속에 내재한 연민과 동정심 때문으로 본다. 아테나는 기본적으로 질서정연하다. 깔끔함과 담백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이 좋다. 질척거리지 않은 공정함과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신념에 대해 전진하는 것이 좋다.


■ 나의 신화 창조

이상 사회, 유토피아를 찾아


 신들의 신, 제우스는 머리가 아프다. 두통의 원인은 두려움 때문이다. 아버지를 거세하여 축출했을 때만해도 그저 크로노스가 자신과 형제들을 삼켜 버리는데 대한 정당방위이자 생명을 향한 치열한 생존본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티스의 뱃속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신이 태어날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었음을 알았다. 숨겨 있던 자신의 권력욕이 솟아나왔다. 단번에 메티스를 삼켜버렸다. 후회하지 않았다. 안전했다. 이 세계에서 제일의 신이 되리라.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무한하리라. 그러나 깨질듯 머리가 아파오더니 그가 내리치지도 않았는데 주무기인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태양이 사라졌다. 암흑 속에서 머리가 두 조각나더니 완전 무장한 여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메티스를 닮았다. 나의 딸인가? 내가 잉태한 것인가, 뭐라고 해야 하나? 오호라, 아들이 아니다. 나의 권력에 해가 되지 않으리니 기뻐하리라. 부둥켜안고 딸바보의 세계로 들어가려니, 성인이다. 생각하니 괘씸하다. 감히 내 머리를 저것으로 내리 친 것이야? 메티스의 지혜도 소용없군. 힘쓰는 무사 여자라니. 저런 정도의 무기로는 내 파괴적인 벼락과 비교도 되지 않을 터, 내리치는 것도 아깝다. 그러니 그냥 두지. 허나, 점점 나를 위협하며 나를 위협한다. 끊임없이 나의 권위에 도전하고 내 통치와 부딪힌다. 점점 내 벼락의 힘을 의심하는 자들이 늘어나니 그것은 모두 ‘생각’의 힘이 증가하는 것,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 죄 크다 할 수 있으니 어떤 벌을 주어야 할까. 이 세상에서 내쫓는 것.


 내가 아주 작디 작은 씨앗에서 조금 자랐을 때 세상은 어두웠지만 따스했다. 그리고 조금씩 작게 자라나고 있을 때 영원한 어둠이었다. 존재부터 거부당한 나는 어머니 뱃속을 유영하며 이리저리 떠돌았다.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녀의 지식을 그에게 전할 때면 어머니에게서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얘야, 너는 저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네가 살아갈 세상을 그가 망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단다. 지식이 나를 구하진 못하였다해도 나는 지혜로로 너를 세상에 내보낼 거란다. 그것은 너를 위해, 또 세상을 위한 일이야. 조금만 참으렴. 아무렴 깜깜한 뱃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밝은 세상에서 네가 삶을 찾는 것이 더욱 멋지지 않니?”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고 내 삶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하자 어머니의 지혜를 먹고 나는 자라났다. 어머니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하였다. 세상에서 좀더 단단히 버티기 위해 내 몸을 무장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뚫기 위해 그의 몸 여러 곳을 살폈다. 마침내 그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냈을 때, 나는 힘껏 뛰어올랐고 세상의 빛을 보았다.

 세상은 전장이었다. 그렇게 쉽고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내세울 것이라곤 벼락치는 일, 호통치는 일이 전부이며 그리고 세상의 심판자라며 벌만을 내릴 줄 아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다스리는 곳에서 살고 싶진 않았지만, 막상 쫓겨나려니 마음이 편친 않다. 어머니의 땅, 그녀가 기억하던 세상 꿈꾸던 세상이 바로 여기일 텐데!


 세상에 내딛는 발은 힘들었다.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갈 결심과 이미 본 세상을 살아갈 결심은 다른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는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하나. 살아가기 전에 생각하여야 하나. 삶은 늘 전쟁이고 행복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삶의 방식들에 적응해야 하는 것, 익숙해진 삶의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마다 곳곳에서 부딪쳤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보다 내 삶에 신중하기 위해, 인생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결코 숨은 것도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생명의 서(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나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처럼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유치환 -


 어머니로부터 전해준 생각들을 일깨우며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었을 때는 좀더 단단하고 견고해진 생각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숲에서 살아갈 보다 많은 경험과 기술들을 배웠다. 나는 그것들을 이 세상에 행하리라. 나는 사막이어도 척박한 땅이어도 무인도라도 어느 곳에서든 뿌리내릴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가지고 다시 길을 떠난다.

 어딘가 발을 내딛으려 하면 무수한 경계심과 적대적인 이들을 만난다.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전투를 원하는 이들과 싸울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내가 꿈꾸는 세상을 찾기까지 나는 계속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누구든, 이미 살고 있는 땅에 낯선 이의 생각을 수용하기는 싶지 않은 모양이다. 늘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다. 나는 내 몸의 무장을 감추었지만, 그리하여 그 무장을 다시 불러낼 수 있지만 타인의 터전에 그들의 삶에 그 무장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하기에 내가 도달하게 되는 곳은 결국 아무도 없는 황량한 땅이 되리라.

 마침내 어느 땅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제 떠돌기보다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내가 가진 기술들을 가지고 나는 땅을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올리브 나무를 심어 볼까. 그것부터 시작하여 마른 땅에 나무를 심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사는데 편리함은 있어도 좋은 것.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은 채 나는 기술들을 만들어 내고 내가 먹을거리를 위해 적당히 씨를 뿌리고 적당히 거둬들인다.

 이제 곧 나와 같이 그 많은 땅에서 축출된 이들이 올 것이니 나는 좀더 땅을 일구고 좀더 편한 세상을 다진다. 그곳에는 풍요로운 땅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몰려 든다. 제우스의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점차로 벼락으로 세상을 다스리기에 그의 권위는 쪼그라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땅을 벗어나야 했다. 좀더 나은 생각과 방법들을 세상에 이야기하였으나 그대로 버림받은 그들의 목소리를 나는 듣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인다. 하나의 나라가 생겨 버린다.

 새로운 나라를 다스린다. 아니 다스리지 않는다. 다스린다는 것은 어느 특정한 1인의 지배적 구조다. 그냥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 다함께 살아나간다. 우리의 의식은 깨어 있으며 그렇게 늘 깨어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떠하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물론, 가끔은 일시에 조용해지는 힘을 사용하고 싶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나도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름의 재미도 또한 있는 것. 각자의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중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서로를 증오하지 않으며 잘 흘러가는 이 땅에서 즐거웁게 살아가리라. 그럼에도 각자의 기억 속에 이미 쫓겨난 땅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결국 내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렇게 살다가 되돌아가기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쫓겨난 곳, 나의 어머니가 쫓겨난 그 땅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목표를 생각하며 이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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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21:21:15 *.62.163.124

사람들은 말합니다. "유토피아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된다면 또 모르죠. 인간은 욕망에 자신을 갉어먹고 주변을 갉아먹는 존재일 뿐이에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꺼에요. 꿈 깨세요."

이런 분들께 저도 나즈막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유토피아는 없었던 거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 역사 중에 유토피아를 향한 꿈이 버려진 적이 있었는지요. 인류 역사에 단 한순간도 존재감이 사라져본 적이 없던 유토피아 꿈을 그대는 왜그리 단정적으로 없다고만 하시는지요. "없다"는 의미를 얼만큼 고민해 보셨는지요? 우주에 블랙홀이 "있음"을 논하고 화이트홀이 "있음"을 논할때 "없음"을 노래하는 유토피아의 꿈은 그리도 덧없어 보이시던가요?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카복음 1장 51~53절)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발붙이고 살면서 이상을 꿈꾸면 안되는지요? 왠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에게는 그 꿈이 어울리지 않는건지요? 에덴동산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건지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이사야서 11장 6절)


다음번에는 저희 집에서 주무시지만 마시고 꼭 저랑 술한잔 하실 날 있을 줄 믿습니다. 곧 이뤄지리라 꿈 꿉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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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21:43:28 *.65.153.182
주무시기만 하신 건 선배님이십니다....
저흰 깨어 있었어요 밤새~~
깨어있는 동침의 맛이 참 좋았습니다^^
밤새 했던 말들이 다~~ 녹아있는 멋진 댓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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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4 09:24:21 *.124.98.251

ㅋㅋㅋ 지금 모하시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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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4 09:23:24 *.124.98.251

엊그제 파주로 가는 길이 유토피아였습니다^^


유토피아는 발견이 아니라 결국 발명아니겠어요~~어쨌든 이 풍진 세상에서도 유토피아를 그려봅니당..

우선은 주酒 님 아래서 유토피아를 찾아 보도록 저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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