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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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상스를 만나러 가는 날은 늘 잠을 설친다. 과제를 벼락치기 해야 해서기도, 설레이는 마음 탓이기도, 또 길치인 나이기에 대연각까지 찾아갈 길이 걱정되어서 이기도 했을 것이다.
요란하게 울리는 탁상시계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반가운 카톡을 기대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오늘은 아무도 카톡으로 아침을 열지 않았다. 놀라워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면서 다들 어디쯤인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왠걸,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다. 지방 분들의 열정에는 정말 매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심지어 우리 수업을 찾아주신 신화 전문가 선배님들의 얼굴도 보여 반갑고 또 감사하다. 이제는 우리만의 인사방식도 한결 익숙해지려 한다. 모두가 어제 본 사람들인 것마냥 정겹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배시시 흘러나온다.
오프 모임 장소는 기대보다 너무 좋다. 아 이런 곳에서 회의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공간이었다., 장소를 대여해주신 분들께,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세팅을 도와주신 출근자 분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 드리고 싶다.
데카상스들이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영웅 이야기에 취해 오프 수업이 진행 될수록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화 속 인물들을 선택하신 분들을 보며 그 인물에 나를 대입시켜본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내가 고민했던 인물들을 선택해본 분들을 보며 공통점을 찾아 나가기도 했다.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본 분들을 보며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랬고 또 구체적인 꿈이 있는 부분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직접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온 분들을 보며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신화의 멋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변형하고 싶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결말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쉴새 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관점의 다양성과 ‘저 안에 저렇게 깊은 뜻이!’라는 새로운 인사이트의 발견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몰입했으며, 점심을 토스트로 떼우는 것 조차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나중을 기약했던 토론들은 왠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기도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 차례라고 생각하니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열심히 썼지만 나의 글이 여전히 부끄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목이 메어오고 손과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매번 발표 할 때마다 이러니 데카상스 울렁증에 걸리기라도 한 거 같다. 아마도 내가 발가벗는 모습인 것이 못내 두렵고 떨리나 보다. 내가 들여다보고 싶어하면서 도 또 직면하기 무서워하는 그 무언가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인지도 모른다.
실제 매번 칼럼과 후기를 쓰면서 나는 마치 일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조금 더 멋진 글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상스가 나에게 그렇게 나를 털어놓을 자유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것을 직접 발표하고 나누는 것에서는 아직은 자신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들의 말씀대로 데카상스를 발판 삼아 조금 더 날 것의 나를 들여다보자고 다짐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여차저차 발표를 끝내고 나니 모두가 내가 오이디푸스를 선택한 것이 의아하다는 의견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오디세우스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셨고. 누군가는 내가 만들어간 모자의 주인공인 헤르메스가 더 어울린다고도 했다. 모두가 의아해하는 나의 선택,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이디푸스에게 매우 공감하며 같이 울었고 그와 같이 내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리. 그리고 그러한 운명에의 순응을 통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내 모습을 제대로 직면하고 있지 않다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여러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특히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모르는, 아니 덮어두려 했던 무엇인가가 내 속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든다고 최근 몇 주째 칼럼으로 하소연을 이어가던 나는 데카상스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왠지 기운을 얻는 느낌도 들었고 또 내가 나를 찾기 위한 보물찾기의 힌트 쪽지들을 여러개 얻은 것만 같아서 기분이 째지기도 했다. 또 이러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문이 이어질수록 나는 왠지 추궁받는 기분이기도 하고, 또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당황스러운 마음까지 겹쳐 들며 왠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꾹꾹 참고 있다가 결국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까지도 계속 생각은 이어지고 있지만..내가 유독 각종 책임감에 휩싸여 혼자 꾹꾹 감정을 눌러담았던 이유는 몇가지 추측되는 바가 있다. 아마 나는 부모님이 부동산 사기를 당하신 것에 큰 충격을 받아 부모님의 노후 자금 걱정을 알게 모르게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 동생의 존재도 부담이 되었다. 내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하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나는 늘 부담을 느끼고 불안해했다. 친한 친구들이 유학을 떠나는 것도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스스로를 심청이로 만들고 있었다. 정말로 가고 싶다면 앞으로 고생해서 갚아나갈 각오를 하고 학자금을 빌리거나, 혹은 열심히 노력하여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용기도 능력도 간절함도 부족했던 나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내 자신을 속였다. 그리고는 함께 유학 갈 수 있는 남편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듯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공부를 하고 싶었다기 보다 무언가 기대고 싶고 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내가 선택한 나의 남편은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모든 것을 함께 상의 할 수 있고 나와 너무도 잘 통하는 사람이었으나, 내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하고 싶다는 것들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남자였지만 나는 그가 고생할 것을 알면서 나 혼자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들을 현실적인 상황에 갖다 붙이며 나는 이것저것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몰래 그를, 나의 상황을 원망했다. 그리고 내 상황을 오이디푸스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감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오프 수업에서 내 슬픔이 터지고 만 것이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오늘의 수업 이야기를 하며, 못다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한바탕 쏟아내는 나의 말들이 어쩌면 그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이해해주었고 또 따스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금은 마음이 평화롭고 또 개운하다.
오프 수업 후, 나는 이러한 선택 안에 숨겨진 무의식적인 욕망을, 날 것의 내 모습을 알아보는 여정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앞으로의 1년이 나는 참으로 많은 기대가 된다. 1년 후 나의 모습이 어떠할지 아직 잘 모르지만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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