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찰나
  • 조회 수 190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5월 18일 22시 56분 등록

1.제목: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출판사: 현암사 (초판 1: 2002.4.10.)

- 사진 : 양진

 

2.저자 : 고운기

1353852641152.jpg

 

출생 :19611215(전라남도 보성)

소속 :한양대학교 (교수)

학력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데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경력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7.04~2008.03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객원교수

2004.1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내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또한 이룰 것이다."(余之學問 出於是書 而成於亦是書)

고운기 교수가 1980년대 초 산 영인본 <삼국유사> 맨 앞장에 직접 적어 넣은 글귀다. 이 글처럼 그는 지금 일연과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자타가 공인하는 '삼국유사 전문가'이다.

·고교 시절 필사본 시집을 직접 만들 만큼 문재를 가졌던 그가 문단의 말석이 명함을 들이민 것은 대학 3학년 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서다.

지금은 작고하신 최철 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한문공부 하러 다니던 민족문화추진회의에서 <삼국유사>를 만났고, 시 창작 교수직까지 버리면서 일본 게이오대학에 방문연구원으로 가서 한·일 고시가 비교 연구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삼국유사>에 매달려 20여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나는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3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지만 여전히 고전시가 연구에 매달려 있는 그는 앞으로는 경전 공부도 할 참이라고 했다.

 

 

저서로는 <일연을 묻는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삼국사기열전>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 <길 위의 삼국유사>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등이 있으며 최근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을 펴냈다. 고운기는 평생의 작업으로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를 15권으로 기획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 상상력을 덧붙여 독자들이 역사서에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첫 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에서는 삼국유사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전리품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최남선에 의해 새롭게 알려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데 비해 정작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두 번째 책인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은 일연의 글쓰기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길 위의 삼국유사> <일연을 묻는다>는 그의 삼국유사 3부작이다. 삼국유사 3부작은 독자들이 삼국유사에 접근하는 길을 크게 넓혀 놓았다. 또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텍스트를 생산한 현장을 담아냄으로써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고전의 현장에 가서 고전 속의 문구를 다시 떠올리는 자신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대해 고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고 교수에 따르면 삼국유사는 20세기에 재발견되었다. 조선 500년간 이 책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책이 다시 발견된 것은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은 조선인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반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국유사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13세기의 삼국유사가 20세기에 이르러 부활한 것이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를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교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신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18세기경에 와서야 정립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죠. 우리의 삼국유사도 계속 진보해야 합니다. 삼국유사가 좀더 친근하고 보편적으로 된다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고운기 선생님께 삼국유사란? (인터뷰 기사 )

첫 번째로는 전공으로 공부한 책이라는 것, 나에게 밥벌이를 하게 해주는 책이다. 제일 중요하지. 두 번째,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본다면 창작소재 공부의 제 1순위이다. 삼국유사는 창작소재와 문화원형을 보여주는 가장 휼륭한 교과서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700년전 13세기에 쓰여진 이 책은 현재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를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 같다. 우리 민족이 누구인지, 우리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아주 구체적인 실례를 가지고 보여주고 있다.

 

 

-내가 본 작가는 ?

작가는 현대판 일연이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책은 죽비같은 책이다. 불교를 믿지 않음에도 불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향가, 향찰에 대한 시대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삼국사기와의 비교를 통해서 삼국유사의 가치를 높게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가치로운 것은 그것을 현대적 눈높이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두꺼운 책을 한권 낸 이후에도, 특별 보급판으로 더 쉽게 풀어내렸다. 그러니 누가 삼국유사를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대적 이해나 고찰없이 고전이나 역사를 보지 않으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얼마나 무가치한것인지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지식을 너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사진과 같이 곁들인 그들의 노고와 감사의 눈물이 났다.

사람은 무엇으로 감동하는가?

양진 작가가 이 책에서 사랑을 담아내고 싶다고 했듯이, 그들이 이 책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결국엔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것 같다.

 


- 삼국유사 저자: 일연

고려 후기 때의 승려.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 지금의 경산)출생. 성은 김씨. 처음의 법명은 견명(見明). 처음 자는 회연(晦然). 자호는 목암(睦庵). 김언정(金彦鼎)의 아들이다. 1214(고종 1) 지금의 광주(光州)지방인 해양(海湯)에 있던 무량사(無量寺)에 가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禪門)을 방문하면서 수행하였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의 추대로 구산문 사선(九山門四選)의 으뜸이 되었다. 1227년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인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하였다. 그 뒤 비슬산(琵瑟山)의 보당암(寶幢庵)으로 옮겨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에 몰두하였다.

 

123610월 몽고의 침입이 일어나 병화가 전주 고부(古阜)지방까지 이르자, 병화를 피하고자 문수(文殊)의 오자주(五字呪)를 염하면서 감응을 빌었다. 문득 문수가 현신하여 "무주(無住)에 있다가 명년 여름에 다시 이 산의 묘문암(抄門庵)에 거처하라."고 하였다. 이에 곧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옳겼다. 그곳에서 항상 "생계(生界), 즉 현상적인 세계는 줄지아니하고 불계(佛界), 즉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生界不滅 佛界不增)."는 구절을 참구(參究)하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오늘 곧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작은 털끝만큼의 거리낌도 없음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해에 나라에서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僧階)를 내렸고, 1246년 다시 선사(禪師)를 더하였다.

1249년 정안(鄭晏)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定練寺)로 옮겨 이를 주재하였다.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 주조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의 작업에 약 3년 동안 참여하였다. 1256년 여름에는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2권을 지었고, 1259년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받았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 · 남해 · 윤산 등지에서 전란을 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1261(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 선월사(禪月寺)에 머무르면서 설법,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1264년 가을 왕에게 남쪽으로 돌아갈 것을 여러번 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운제산(雲涕山)에 있던 오어사(吾魚寺)로 옮겨 살았다. 이때 비블산 인홍사(仁弘寺)의 만회(萬恢)가 그 주석을 양보하였으므로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해운사(海雲社)에서 대장낙성회향회법(大藏落成廻向法會)를 베풀었는데, 일연으로 히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는 물 흐르는 듯한 강론과 설법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하고 협소한 경내를 확장한 다음 조정에 아뢰자 원종은 '인흥(仁興)'이라 이름을 고치고 친필로 제액(題額)을 써서 하사하였다. , 이때 비슬산 동쪽 기슭의 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불일사(佛蘿寺)로 고쳤는데, 그의 불일결사문(佛日結社文)은 이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1277(충렬왕 3)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16월 동정군(東征軍)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게 하였다. 그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僧職)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가을 충렬왕의 간곡한 부름으로 대전에 들어가 선()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왕실 상하의 극진한 귀의를 받았다. 이듬해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圖經沖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이해 4월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의 봉양이 마음에 걸려 몇 차례에 걸친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산 아래에서 모시고 봉양하던 어머니가 1284년에 죽자, 조정에서는 군위 화산의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인각사에서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번 개최하였다. 12896월에 병이 들자 7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禪間答)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 그해 10월 인각사 동쪽 언덕에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탑호(塔號)는 정조(靜照)이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混丘)와 죽허(竹處)가 있으며, 저서로는 화록(話錄)2, 게송잡저(偈頌雜著3, 중편조동오위2, 조파도(祖派圖)2,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3, 제승법수(諸乘法數)7, 조정사원(祖庭事苑)30, 선문염송사원30, 삼국유사5권 등이 있다.

 

-참고 자료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3%A0%EC%9A%B4%EA%B8%B0&sm=top_hty&fbm=1&ie=utf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5763)

http://blog.naver.com/hyucontents?Redirect=Log&logNo=20677339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48379

[네이버 지식백과] 일연 [一然]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기이 >>

 

 

- 이 땅의 첫나라

 

.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 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심해 들어가는 바이러스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 우린 우리의 실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쫓겨서 바삐만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남기고 껍게기만 남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것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24 이 시기에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대내외적으로 같은 시기에 겪은 이 사건은 고려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어놓았는데,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시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 삼국유사>> 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잡는다

 

>> 지금도 미국과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그 의존도를 끊는것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것 같다.

 

 

-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140 삼국시대 선진 문명을 상징할 불교 관계의 이런 기사에서 우리는 신라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게 된다. 신라는 6세기가 끝나갈 때 쯤에야 제대로 된 유학승 한명을 겨우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진국이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는 최후의 승리자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이제 <<삼국유사>> 의 기록들을 통해 이 의문을 해결해보기로 한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 인생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 같다. 이겼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실패했다고 슬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냥 그 순간과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참고 못 참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어떤 점에서 진지왕은 영민한 사람이다.

 

>> 힌트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하리라. 정신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어떤일이 생겨도 그것을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 왕이 되는자

 

262. 왕의 이름은 응렴인데 열 여덟살에 국선이 되었다. 스물살이 되자 헌안대왕이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며 물었다.

낭이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며 어떤 재미있는 일을 보았느냐? ”

좋은 일 세가지를 보았나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 지는 해 뜨는 해

 

.288 돌이켜 보면 아쉬워 한들 무엇하랴?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뿐이다.

 

>>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멸망을 앞두면 조직의 분위기는 점점 침체되고, 회복되는 분위기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발생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하지만 짧은 호흡으로는 부족하니, 긴 호흡을 가지고 해나가라야 하리라.

 

 

 

<< 탑상 >>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444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멤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줄 모르고 벼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 성인을 실제 만날 확률은 인생에서 과연 몇 번일까? 그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 기회만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손에 잡은 진리에 대해서 진리인 줄 알고 정진해나가보면 이러한 좋은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좋은 기회는 이런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것이리라.

 

.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469 불성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이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것이니,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런난다.

 

일연의 생애와 그 반영으로서 << 삼국유사>>

개인사의 그늘에 놓일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삼국유사>>는 때로 일연의 생애와 견주었을 때 보다 맑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연에게 평생의 화두를 하나 들자면 어머니다. 세속의 인연에 너무 연연애한다고 탓하지 말라. 일연의 어머니는 열아홉 살 아직 꽃 피지 않을 나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아흔 살 넘어 세상을 마칠 때 까지 평생을 혼자 산 사람이다. 그 어머니에 대한 어떤 향념이 <<삼국유사>>에 더러 더러 묻어 잠겨 있음을 찾아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스님인 일연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안한것이 어머니라는 것이 한면으로는 놀랍기고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되는것이고, ‘인연의 끈이 얼마가 길고 모진지도 알게 된다.

 

- 낙산사의 힘

 

.497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 일상의 소중함이리라. 일상속에서 깨닫고 배우는것이리라. 높은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소중히 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508 지금 경상북도 군위군의 인각사 앞에 일연 시비를 세운 것은 지난 1985, 거기 이 시가 새겨졌다.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 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 의해 >>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1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준 사람이다.

 

.537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의상과의 중국행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었다. 그때 벌써 원효는 원효였다. 그러다 요석공주와의 만남, 불교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파계다. 하지만 원효에게 그것은 이미 원효인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 부정 다음에 원효는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난다.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것이었으니, 거기에 빌려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 요즘 종교가 관념이나 치장으로 많은것들을 포장하게 되는데 이제 그런 치장에서 벗어나 현실속에서 깨어있는 종교가 되어야 하리라.

 

-의상, 화엄의 마루

 

.551 “지난밤 잘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 일체유심조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는데 늘 멀리서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열심히 자신을 관찰하며 찾아봐야 하리라.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72 겨울날 투카라국에 있을 때 눈을 만나 그 느낌을 읊은 이 시에서 우리는 무시무시한 고행의 한 단면을 읽을 뿐이다.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용문엔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정구엔 뱀이 서린 듯 얼음이 얼었다.

불을 들도 땅 끝에 올라 노래 부르리

어떻게 저 파밀고원 넘어 가리오

 

뱀이 서린 듯 얼어붙은 얼음길을 오르는 그의 가슴속에는 불같은 열정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일까? 그럼에도 파밀고원은 멀기만 하고 생사는 오가는 여행길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으리라. 그런데도 두려운 마음을 때로 기도하며 때로 노래하며 풀어내고, 사막과 얼음 구덩이로 발걸음을 옮긴 그들에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다는 것일까? 같은 길을 따라 거슬러 왔던 전도자들을 생각하며 걸었던 것일까?

 

 

 

<< 감통 >>

 

-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633 그러나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670 문제가 생길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 과연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봐야 하리라.

 

 

<< 피은 >>

 

 

-숨어사는 이의 멋

 

.686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논리대로 쓰여진 일연의 찬은 재미있다.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 일연, 혼미속의 출구 >>

 

.728 그러나 우리는 일연을 그 생애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 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나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 사상으로 이었으며,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안각사에 거처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

 

>>일연은 원효처럼 어느것도 구속되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와 당시의 여러 얘기들을 솔직히 써 놓은 그는 불교를 초원할 자가 아닌가 싶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런 세상도 있었어? ”

나는 누구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이제부턴 한번쯤 젊음을 걸어야 할 명제

더 늦으면 영영 가슴한 구석 빛바랜 돌무덤으로 남을 지혜의 실머리

천년 세월 면면한 민족의 주체성을 파헤쳐서

내게 숨겨진 또 다른 나를 보여주는 책

우리를 영원한 젊은 지성으로 키우는 참다운 세상 구경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특별 보급판의 소개 문구이다.

 

진짜 이런 세상이 있었나? 이런 삼국유사 였단 말인가? 이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가 아니라 고운기의 삼국유사였다. 삼국유사를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풀어쓴 고운기의 글쓰기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고전은 특히 한자를 다루고 있고, 고등학교때 따분하게 배운 고전 시간 때문에 우리나라 고전은 더 다가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고운기의 삼국유사는 그것을 다 해결해주었다. 처음에는 700페이지가 넘는 부피감이 압도를 하긴했지만 내용을 읽다보니 그것도 잠시. 삼국유사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다.

삼국유사가 이렇게 감동적인 책이었는지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요즘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교에 대해서 조금 알아가는 시점이고, 지난 4월에 경주 남산 순례를 다녀온지라 내용이 더 현실감 있게 느꼈다.

그리고 내용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준 것은 책속에 나온 사진들이었다. ‘‘솥 안의 국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한 점 고기같은 사진만들기라고 양진 작가가 표현하였듯이 사진은 삼국유사의 국맛을 진하게 느낄 수있게 했다.

<<삼국유사>>13세기의 책이어서 멀게만 느끼고, 현대에서 그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얘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우리와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그런 부분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체성을 강조한 부분 더 큰 공감이 되었다. 중국 한족이 원나라에 망하고, 문신에서 무신의 체계로 바뀌는 전환기에서 주체성을 강조한 일연의 면모가 돋보였다. 요즘처럼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바쁘다고 생각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일을 초래하게 되는지 역사는 얘기를 해준다. 고구려,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통일을 하고, 그렇게 잘나가던 신라도 결국엔 또 고려에 망하게 되는 역사의 순환을 보면서 정치적 지도자의 중요성과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것이라고 하는 국민 하나 하나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알게 해준다.

처음에는 삼국유사라고해서 삼국유사만 다룬지 알았는데, <<삼국사기>>와 다른책들,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도 총망라하는 것을 보고, 저자의 남다른 노력에 감탄하였다. 이런 저자가 있고, 저자가 쓴 책을 출판한 출판사마저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들어가며>에서 삼국유사의 탄생배경과 일연에 대한 소개를 해주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찾아보기>가 나주에 찾기 쉽게 구분이 잘 되어 있어서, 저자의 센스를 보게 되었다.

 

1)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

 

<<삼국유사>> 전체는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신주>, <감통>,<피은>,<효선>이렇게 9편으로 구성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 역사서로서의 <기이>,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의 삶을 기록한 <홍법>이하의 여러편으로 크게 3분류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중 이책에서는 <왕력>을 뺀 8편을 소개하였는데 <왕력><<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다.

 

-<기이>편에서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특징적인 사건과 함께 기술하였으며, 이곳에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군 신화를 소개한다

 

-<흥법>편에서는 세 나라가 솟발처럼 선 다음 처음 불교가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설명하였다. 불교를 어떻게 전개했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렸고, 삼국 중 신라와 이차돈의 순교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탑상>편에서는 탑과 절을 만든 경위를 설명했는데, 황룡사 구층탑의 중요성, 문수 신앙의 근거지, 분황사, 노힐부득과 닦달박박의 이야기, 낙산사에 대해서 설명 하였다.

-<의해>편에서는 고승들의 삶을 다룬 것으로, 선배 승려들에 대해서 정리한 것으로 가장 일연이 가장 신경을 써서 마무리하였다. 중국에 유학하여 불교의 진수를 체득해 온 해동의 처음사람 원광,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원효, 화엄을 전한 의상, 인도의 불법을 배우고 오기 위해서 떠난 순례자, 진표로부터 시작하여 영심과 심지로 이어지는 사제간의 계보를 다루었다.

 

-<신주>편에서는 밀교를 소개하였는데, 조선조 시대 불교 배척을 할 때 밀교나 점찰법회같은 것이 제일 크게 타격을 받았다.

 

-<감통>편에서는 고승보다는 일반 승려나 불려신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욱면, 광덕과 엄장, 선율,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을 다루었고,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 한다

 

-<피은>편에서는 세상에 몸을 들어내지 않는 승려와 일반 신도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불교에서 숨음드러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효선>편에서는 효행이 뛰어난 사람들의 전기를 소개하였다. 일연이 효행을 강조한 것은 90 이 넘어서 돌아가신 홀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애틋한 마음이 있기에 효행을 강조해서 썼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며

 

1.기이

이땅의 첫나라

고구려와 북방계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밤에 찾아오는 손님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권력의 끝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첫 성전환증 환자

왕이 되는 자

나라가 망하는 징조

지는 해 뜨는 해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견훤, 비운의 영웅

신비의 왕조, 가야

 

2.흥법

불교로 보는 역사

순교의 흰꽃 이차돈

 

 

3.탑상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낙산사의 힘

 

4.의해

운문사 이야기

원효, 해동불교의 자라

의상, 화엄의 마루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5.신주

밀교의 한 자락

 

6.감통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무엇인 진정한 믿음인가

 

7.피은

숨어사는 이의 멋

 

8.효선

불교가 보는 효도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일연, 혼미속의 출구

 

사진찍기는 참 재미있다 - 양진

찾아보기

 

 

2) 감동적인 장절

 

- 왕이 되는자

 

262. 왕의 이름은 응렴인데 열 여덟살에 국선이 되었다. 스물살이 되자 헌안대왕이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며 물었다.

낭이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며 어떤 재미있는 일을 보았느냐? ”

좋은 일 세가지를 보았나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1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준 사람이다.

 

.537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의상과의 중국행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었다. 그때 벌써 원효는 원효였다. 그러다 요석공주와의 만남, 불교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파계다. 하지만 원효에게 그것은 이미 원효인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 부정 다음에 원효는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난다.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것이었으니, 거기에 빌려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3) 보완점

전체적으로 책 구성이나, 사진등에 대한 구성은 잘 되어 있는데, 목차에 따른 챕터 구분은 본문에서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얇은 책이면 상관없는데 7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는 구분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IP *.113.77.12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