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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9일 00시 07분 등록

Book Review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강종희

2014. 5.18

 

  1. 저자 만나기

1206년 출생, 1289년 충렬왕 재위시 사망한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은 민족적 주체성을 바탕으로 기술한 최고의 역사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역사가이자 시인, 명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일연의 본명은 견명(見明), 불교에 귀의해 처음 얻은 자는 회연(晦然)이며, 스스로 붙인호는 목암(睦庵), 일연은 그가 말년에 쓴 이름이다. 경상도 경주의 장산군(章山郡 : 지금의 경산)에서 출생, 어릴적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불과 8살의 나이에 무량사(無量寺)에서 불자가 되었으며 스물 두살에 승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비슬산(琵瑟山)의 보당암(寶幢庵)으로 옮겨 참선에 몰두하였다.

1236
년 몽고의 침입이 일어나 전란의 와중에도 수도 생활에 정진한 일연은 나라에서 삼중대사,  선사(
禪師), 대선사 등의 직급에 올랐다. 1249년 남해의 정림사(定練寺)로 옮겨 주지가 되면서 불교계의 지도자로 부상하였으며, 불교 관계 저서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를 지었다. 몽고의 침입이 한창이던 1261(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가서 선월사(禪月寺)에 머무르면서 설법에 전념하며,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1277(충렬왕 3)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1 6월 동정군(東征軍)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게 하였다. 그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僧職)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가을 충렬왕의 간곡한 부름으로 대전에 들어가 선()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왕실 상하의 극진한 귀의를 받았다. 이듬해 3월 국사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귀향, 어머니가 1284년에 죽자, 조정에서는 군위 화산의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1289 6월에 병이 들자 7 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禪間答)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 그해 10월 인각사 동쪽 언덕에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탑호(塔號)는 정조(靜照)이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
混丘)와 죽허(竹處)가 있으며, 저서로는 《화록(話錄) 2, 게송잡저(偈頌雜著 3, 《중편조동오위》 2, 《조파도(祖派圖)2,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3, 《제승법수(諸乘法數) 7, 《조정사원(祖庭事苑) 30, 《선문염송사원》 30, 《삼국유사》 5권 등이 있다.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에서 요약 발췌

 

  1. 마음에 들어온 글

12. 누구나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에 자못 중요하게 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등재, 그것도 첫머리에 잡은 일이 그렇다.

12.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처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축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도입된 현대 민주주의 법체계가 도입되기 이전에, 당시의 기조에 반하는 개인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 꽉 막힌 진실의 유통 경로를 우회로처럼 틔워준 것이 상징이고 풍자였기에, 일연은 김부식이 사실이성의 범주에서 과감히 처내었던 온갖 잡스런 이야기들을 삼국사기에 그대로 담았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 있어서도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상징과 풍자가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전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황망하지 않은가. 예술도 권력의 발톱을 피해가지 못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15. 옛날 환국의 아들 환웅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사삼 사는 세앙을 이롭게 할 만 하였다. 이에 천부의 증표 세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곳을 일러 신시라 하였고 스스로를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 우사, 그리고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법, 선악을 주관하는 등 무릇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보고, 세상에 있으며 교화를 베풀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이 바람, , 구름을 대리고 내려와 곡식과 질병, 형법과 선악을 주관한다는 것은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수렵인들을 보다 발단된 문명을 가진 농경 이민족이 들어와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곡식은 물론이고, 질병, 특히 전염병은 본디 한 곳에 정착하여 대규모 인구를 이루는 농경의 단계에 들어와야 문제로 불거지는 이슈다. 여기에 국가의 기본적인 체계가 될 형법과 선악의 기준, 윤리체계를 들고 들어왔다는 것이니 이것보다 명백할 수야. 단군은 곧 이민족의 우두머리. 우리 본래의 조상인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을 다스리고 이족혼을 행하여 부족사회를 통합했으리라.   


18. 단군 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평양이 그때부터 도읍이었던 걸 보면 그만큼 요충지였던 이야기? 여하튼 수도로서 평양의 의미는 우리의 무대가 그만큼 더 넓어지고 기질 또한 북방민족의 그것에 더 가까울 수 밖에 없음을 유추하게 한다. 여기서 또 동네 포수한테 부탁해서 곰 잡아오라 주문했다가 진짜 잡아오면 장조림 담가놓고 겨우내 먹었다던 할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불과 한 세대를 건넜을 뿐인데, 세상은 이리 변하였구나.


39. 금와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방안에 깊이 가두었다. 그런데 햇빛이 비추자 몸을 움직여 피하게 했으나, 해 그림자가 또 쫓아와 비추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거니와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은 알을 버려 개와 대지에게 주었는데 다들 먹지 않았고, 또 길거리에 버렸는데 소나 말이 피해갔으며, 들판에 버렸더니 새와 짐승들이 덮어 주었다. (동명왕의 탄생 설화)


이 놈의 처녀 수태는 전세계 어딜 가나 발견되는 신화라더니 우리 삼국유사에 처녀임신이 수두룩했다는 거. 그것 참.   


43. 그러나 이런 난생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49. 비류 미추홀- 인천. 온조 위례성 하남

열 명의 신하가 보필하게 되어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 라 하였다. 이때가 신라로는 박혁서세왕 39(기원전 18)이었다.

얼마 후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으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위례성의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태평한 것을 보고 깊이 뉘우치다 죽었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백성들이 기뻐했다 하여, 나라 이름을 고쳐 백제(百濟)라 했다.    


52. 백제의 지배층이 우세한 세력을 형성한 끝에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에 설명하겠거니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64. 서술 성모는 선도 성모의 다른 이름이다. 직접적인 연결을 하지 않았으나, 혁거세와 알영 부인을 낳은 주체를 선도 성모로 보려는 의도가 그 속에 깔려 있다….

옛날 중국 황실의 딸리 바다를 건너 진한 땅에 머물렀지요. 아들의 낳아 해동의 시조로 만들고, 딸은 그 땅의 선녀가 되었는데, 오래도록 선도산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 그림입니다.’

또 송나라의 사신 왕양이 우리 나라에 와서 동신성모에 제사 지내는 글에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열었다는 구절이 있다.


이것 참. 우리나라에도 성모가 있었구료. 근데 송나라에서 건너왔다능? 그러나 신화와 역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혼재하는 고대세계에서 몇 개로든 나뉘고 또 합해지는 나라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냥 동쪽에 사는 사람 정도로 묶여버릴 사람들이었을지도.


65. 성모천왕

갑자기 산 개울이 비도 오지 않았는데 넘쳐흘렀다. 한 스님이 이상히 여겨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가 보자, 그 곳에 키가 크고 힘센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스스로 성모천왕이라 했다.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짝이 될 인연을 만나려 오줌을 눈 것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딸 여덟 명을 낳았는데, 그들은 전국팔도에 흩어져 무당이 되었다. …

이를 무조신화(巫租神話) 라 한다    


무당의 기원, 우와. 대박이군. 이런 신화가 있었는지 진짜 몰랐다. 재미나다. 그런데 오줌을 누어 짝을 유혹한다는 것이이것은 문희의 비단치마를 주고 산 꿈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지 않은가? 오줌이 싸니 서라벌 시내가 홍수다 났다고 했던가? 이것은 배란의 이미지와도 연결되는 것인가?


72. 탈해는 누구일까? 용성국은 어디일까? 박씨에 의해 대가 이어지는 초기 신라 왕실에서 갑자기 거기서 벗어나 탈해를 왕으로 세워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관한 이야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신라 왕실의 고민과 한 인간이 가진 본연의 욕망의 그림자를 읽게 된다. 온갖 신격화로 치장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거둬내면 더욱 그렇다.


97. 영일은 한자로 풀었을 때 해를 맞는 고장이다…. 신라와 일본의 교통에서 영일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연히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 두가지가 자연스레 결합되어 나온 것이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다. 해와 달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우주의 그 어느 별보다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것은 고대인에게 더욱 절실했다.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과 별, 곧 일월성신이다. 고대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대인이 지녔을 사유방식의 틀을 읽는다.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11.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극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이토록 충직한 인물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가야 하다니. 왕의 아들들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신하가 요즘의 관점에서 볼 때 답답하기도 하지만, 왕이 곧 신인 사회에서 왕의 안녕이 곧 사회의 안녕이라 여기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박제상의 행동은 진정 영웅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서를 보든 머를 보든 열받는 것이 참. 이렇게 올곧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미덕을 손수 실천하는 사람은 다 일찍 죽는다 말이다!!! 세월호를 봐라. 의인들은, 순진무구한 영혼들이 죄다 먼저 가지 않았느냐. , 우리는 이런 충직한 위인들을 기려서는 안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악착같이 살아남는 법을 내 자식에세 가르치고, 나 스스로에게 주입해야 살아남지 않겠는가. 이런 드러운 놈들만 잘 사는 드러운 세상아!


120. 설화문학에서 말하는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재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그 밤손님은 물건이나 훔치는 도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녀 관계에서 남자 쪽을 가리킨다. 남자는 당대의 영웅이거나 기이한 인물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밤에만 남몰래 찾아들어야 하는 운명이다.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받아들인 여자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야래자 곧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낳게 하는데 서 일차 역할이 끝난다.


137.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그러니까 타이밍 이즈 에브리씽이다. 대세를 타야지. 힘이 나중에 생겨 맨 나중에 살아남은 놈이  승자인 거 아니냐. 그리고 이긴 놈이 다 갖는다니까.


150. 귀산과 추항이라는 화랑이 원광과 나눈 대화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은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원광은 불자이나 융통성도 있고 유교에도 조예가 깊어 신하된 자들, 싸워야 사는 자들을 위해서도 이런 도()를 내려줄 수 있었다. 진정한 위인은 원래 이렇게 트인 법이다. 멋진 사람~


162 이에 쥐 한 마리를 상자 속에 숨겨 두고 이것이 어떤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는 틀림없이 쥐이려니와 그 숨쉬는 것이 여덟이라 하자, 이를 가지고 헛소리라 하여 참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 사람은 죽은 다음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곧 참형에 처하고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 일곱 마리를 배고 있었다. 그래서 앞서 한 말이 맞았음을 알았다. 그 날 밤에 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의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166. 고려의 국조로 불리는 보육에게는 두 딸이 있다. 둘째 딸으 이름은 진의, 바로 이 딸이 16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언니가 산꼭대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온 세상이 넘치는 꿈을 꾸었다. 진의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산다. 얼마 후 당나라의 황제가 천하의 여러 곳을 다니다가, 두 자매가 사는 마을에 이르렀다. 황제는 두 자매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옷에서 터진 곳을 꿰메 달라고 한다. 보육은 큰 딸에게 그 일을 시킨다. 그러나 이 딸은 문터을 넘다가 넘어져 코피가 흐르므로 할 수 없이 둘째 딸에게 시킨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이 맺어지고, 여기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다. 

작제건은 왕건의 할아버지이며, 이 책의 뒷부분 지는 해, 뜨는 해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할 거타지 바로 그 사람이다.


문희의 비단치마를 주고 산 꿈이야기와 완전히 똑같다. 뭐가 원조인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매우 매우 유행하던 이야기인 듯. 재미나다. 


173. 사실 김유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은 누구에게도 견줄 바 아니다. 힘으로 안 되면 지략으로, 지략으로 모자라면 신술을 써서라도 주어진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였다. 그만큼 삼국 통일의 역사에서 김유신의 활약은 눈부시다.


179. 신라가 당나라를 끌여들여 벌인 통일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낸 사람이다.   


이렇게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신선하군. 그렇지, 현실이 어찌 그 당시를 리얼하게 경험하지 못한 후세 사람들의 바람대로만 흘러갔겠는가. 에효.


184.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이 되고 말아,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매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아니, 2천년 전 왕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지 않은가. 이토록 제대로 된 왕이 그 당시에 있었던 것이구나. 여하튼 영웅이 괜히 영웅이 아니고, 대왕이 괜히 대왕이 아니다. 신화와 역사가 혼동되는 시절, 왕이라면 모름지기 거대한 고분으로 기억되던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한 왕이 있다니. 큰 사람이다. 참으로 담대하다.


185.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멋진 남자, 위대한 왕, 문무왕이다. 불교의 나라, 윤회설을 신봉하는 신라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미물로 태어나도 그것은 나의 생각이라 말하는 저 쿨한 남자. , 어찌 반하지 않으랴!

(대왕암)

대왕암이 그 곳이었다니. 생각해보니 수년 전 나는 이 곳을 가서, 그냥 대게 먹으러 갔다가 문무왕을 기리는 용왕제를 드리는 지역 주민들의 굿판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신화였구나. 이런,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은 뒤였다면그랬다 해도 그곳에 그때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


189.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194. 신령스런 피리를 일컬어서는 만만파파식적이라 했다. 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196. 권력의 끝. 권불십년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204. 전쟁이 끝나 시대가 안정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다른 데로 흘러갔다. 그 가운데 가장 걸리는 존재가 전쟁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전쟁 때에 절대적이면서 평화가 돌아오면 껄끄럽기만 하다. 토사구팽의 칼은 바로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김유신 또한 전쟁 영웅이다. 다만 그의 집안이 1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황실과 맺은 사돈 관계 덕분이었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영웅들에게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런 젠장. 인생이 그렇다니까.


212. 모죽지랑가 득오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이것이 번역자의 솜씨일 리만은 없겠지. 향가가 이리 아름다운 줄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던 향가는 그저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지문이었을 뿐. 그런데 그 향가가 이렇게 아름답다.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이 정말 많구나.

 

226.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수로 부인은 참으로 태평한 미인이었다 하더니. 그것은 백치미인가 여유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인가 모르겠으나, 이 노인 또한 그냥 평범한 노인은 아니었겠다 싶다. 일단 시 짓는 솜씨가 장난 아님!


228.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워서 먹을 테다.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쳔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왠지 감동. 저자의 글이 갑자기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부분. 왤까.

 

241 제망매가

생사의 갈림길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 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238. 도솔가 월명사

오늘 여기서 산화가를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이 시키는대로

미륵좌주 모셔 서 있거라

 

241. 제망매가 월명사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247. 안민가 충담사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다사로운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다사로움을 알도다

 

구물구물 살아가는 물생

이들을 먹이고 다스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

하실진대, 이 나라 보전될 것을 알도다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니

 

247.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261. 사실 원성왕은 기울어 가는 신라를 되살리고자 애쓴 마지막 왕이 아닌가 한다. 비록 피비린내 나는 왕족 간의 싸움 끝에 등극하였다고 하나, 그것이 곧 야심찬 젊은 왕족의 나라를 위한 충정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왕 즉위 4년에 실시된 독서삼품과는 그 대표적인 업적으로 볼 수 있다…..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 같은 예를 고려조에 와서 공민왕, 조선조에 와서 영.정조 같은 이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신라의 원성왕은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왕이었다.


262. "좋은 일 세 가지를 보았나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266. 경문왕

왕의 침소에 저녁마다 뱀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궁인들이 놀랍고 두려워 쫓아내려 하자 왕이 말하길, “내가 뱀이 없이는 편안히 잠들 수가 없구나. 막지 말아라라고 하였다. 매번 침상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가슴 가득 덮었다. 물론 이는 삼국사이게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설화 이상으로 보기가 어려우나, 이렇듯 징그럽고 괴이한 이야기가 어쩌다 경문왕에게서 나왔을까?

왕위에 올라선 다음, 갑자기 귀가 커져 당나귀의 귀 같았다. 왕후와 궁인들 아무도 몰랐으나 오직 두건 만드는 기술자 한 사람만이 알았다. 그러나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소리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라는 소리가 들리자, 왕이 이를 싫어하여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소리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라고 들렸다.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슬픈 이야기였나? 그런데 대나무를 베어버린 후 말이 틀려진 건 몰랐다. 귀가 길어 슬픈 왕이여, 심하게 고독하셨겠구려. 당신은 좋은 왕이었다 하던데, 그래도 왕도는 괴롭고 힘든 짐이었나보오.


267. 뱀을 이불 삼아 자야 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 그것은 곧 자신이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77.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아무렴. 그래서야 어디!


280. 처용가

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


처용이 대인은 대인이었다. 이 상황을 노래로 승화하다니. 근데 사실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쩔텐가? 처용이 진정 현명하다 본다. 대인배~~~


294. 귀국한 다음 거타지는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


301. 나라가 서고 망하기는 반드시 하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마땅히 충신과 뜻있는 선비들과 더불어 민심을 거두고 힘을 다한 다음이라야 그만둘 것이오. 어찌 천 년 사직을 그다지 가벼이 남에게 준단 말입니까?


330. 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간다.

 

332.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를 꾀어내는 꾀도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천적인 교욱의 중요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353. 그러나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 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372. 상상의 동물로서 거북은 왕왕 용의 다른 모습이거나 똑 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신성한 동물의 하나다. 그러나 존대보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심지어 구워 먹겠다는 불경스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


맞다. 우리 민족은 좀 그런 것 같다. 여기서 갑자기 생각난 영화 제목. ‘쫄지마, 얼지마, 부활할거야!’ 의지가 강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끝까지 가고, 원래 강인한 수렵민족의 피가 좀 흐르는 듯. 수렵민족의 삶이야말로, 죽든지 죽이든지, 그날 일용할 짐승을 못 잡으면 일용할 양식이 없는 것, 곧 굶는 것, 죽는 것으로 연결되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삶 아니었던가? 용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376. 가락국기

이 때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해서, 그 교화가 엄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위엄이 있고, 정치가 엄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405. 이차돈

뭐라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다.


411.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 일연, 이차돈의 죽음에 대하여


434.

이에 올라보라, 어찌 구한만의 항복을 보겠는가

비로소 천지가 특별히 평화로움을 깨닫겠네

  • 일연, 황룡사 구층탑에 대하여

436.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 무의자

 

456.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458. ‘분황사 천수대비, 맹인 아이가 눈 뜨다

무릎이 헐도록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돌 없는 내라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일천 개 눈 중 하나만 덜어 내 아이의 눈을 띄워달라는 어미의 마음이구나. 정말 향가가 대단한 문학이었구나. 지금 봐도 너무 훌륭한. 선명하게 와 닿는 어미의 마음을 이토록 간결하게 표현하다니.

 

478.

날 저문 산길에

가는 곳마다 사방이 막혀 있네

소나무 대나무 숲은 그늘이 짙어 가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는 낯설기만 한데

자고 가기를 바라는 것은 길을 잃어서만 아니요

스님께 계율을 일러 주려 함이네

내 청을 들어만 주실 뿐

어떤 사람인가는 묻지 마오.

484. 달달박박

푸른 빛 떨어지는 바위 앞, 문 두드리는 소리

날 저문데 누가 구름 속 빗장 문을 당기는가

남쪽 암자 가까운데 그리로 갈 것이지

푸른 이끼 밟고서 내 뜰을 더럽히지 마오

 

485. 노힐부득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로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염불을 외다 문득 곤히 잠든 길손의 잠을 깨울까 염려하는 노힐부득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연의 시.   


508.

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 일연


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534.

자루 빠진 도끼를 주려나

내가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를 터인데

541. 원효와 사동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551.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 원효

572. 혜초, 왕오천축국전

차디찬 눈은 얼음과 엉기어 붙었고

찬바람은 땅을 가르도록 매섭다

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

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 간다

 

596. 무릇 미륵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나도 어릴 적 할머니 따라 길도 없는 산을 타고 올라가 신령한 바위 앞에서 이 분에게 진짜 많이 빌었다. ‘이 치성이 끝나면 할머니가 까먹지 않고 저한데 아이스크림을 사주게 해주세요!’ 늘 소원을 들어주셨다!

 

604.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혜통이라 했다.  

 

605. 밀교의 기본 경전인 대일경에 따르면, 수행의 10단계가 있는데, 거기서 9단계까지를 현교의 세계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단계를 밀교의 세계로 규정한다. 현고는 드러난 불교, 밀교는 숨어있는 불교랄까. 누구나 쉽게 보이는 불교가 현교라면 깊이 숨어 은미한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가 밀교일 것이다. 

621. 승려 정수는 황룡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자나는데 문밖에 한 여가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갔다.


644.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입에선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 일연, 호랑이 처녀에 대한 찬


660. 옛날 계빈에 큰스님이 한 분 있었다. 아란야법을 하며 일왕사에 이르렀다. 절에서는 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의 옷차라림이 초췌한 것을 보고 문을 닫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썼다.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온 것이다. 문지기가 보더니 막지 않고 들여보냈다. 자리를 차지한 다음,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이 나오면 먼저 옷에게 주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 어째 그러시오?

- 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 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701. 진정과 어머니의 일화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아들의 뜻을 알고 전적으로 지지하며 길을 열어주는 어머니와 그 뜻을 절절하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아들. 가슴이 뭉클하였다.


709. 승려와 화랑이 일치되는 부분에서 대다수 향가는 나온다. 바로 그들이 대표적인 행가 시인이었다.

나라의 꽃, 전사이자 인재인 그들이 승려가 되어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얼마나 절절히 인생무상을 느꼈을까. 그런 감정들이 아름다운 향가로 남게되었을까


711. 충담사,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712. 공덕가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설움 많은가

설움 많네

도량공덕

닦으러 오다

 

714. 융천사, 혜성가

예전 동해 바닷가

건달바가 논 성을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

봉화불 피운 변방이 있었네

세 분 화랑 산 구경 오신단 말 듣고

달도 부지런히 불을 켜는데

길 쓸 별을 바라보고

혜성이다사뢴 사람이 있구나

, 달을 떠서 가 버렸더라

이보게들 무슨 혜성이 있단겐가

 

718. 신충, 원가

좋은 잣은

가을이 와도 쉬 지지 않는다네

너 어찌 잊겠느냐

우러르던 낯이 계셨는데

달 그림자는 옛 못에

흐르는 물결을 애처로워 하는구나

모습은 바라보지만

세상 모두 아쉽기만 할 뿐

 

720. 영재, 우적가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것은 강호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를 마다하고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그마한 선업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722. 노래 한 곡에도 감동하는 도적들이나, 한 구비 너머 두 구비까지 내다보는 영재의 깨달음이나, 모두 놀라운 경지에 있다.

 

743.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연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 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항. 몸통만 남은 깨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낭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 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

 

지금 나는 사진 찍기와는 조금 떨어진 일을 하고 지낸다. 그래도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내가 즐기는 것 가운데 가장 신나는 놀이다. 의상의 몇 편 되지 않는 저술을 평한 일연의 글처럼, ‘솥 안의 국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한 점 고기같은 사진 만들기, 희망사항이다….

나라고 못하란 법은 없지.

이 책이 히트치기만을 바랄 뿐이다.

 

  1.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일연의 삼국유사인가. 고운기의 일연과 삼국유사인가. 원저가 부분부분 인용된 해설서임을 모르고 만난 나로서는 책의 정체가 상당히 헷갈렸다. 그러나 이내 익숙해졌다. 글을 쓴 선배와 사진을 쓴 후배가 만들어낸 이 애정 어린 여정을 나도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만난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사진과 글을 쓴 두 사람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순간이 많았다. 나와는 천 년도 넘게 떨어진 시간을 산, 일연의 감동과 슬픔과 탄식이 내 것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서 놀랍고 즐거웠다. 애정을 담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껴지는 달콤 쌉싸름한 순간들이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발견이었다. 신화와 역사가 사이 좋게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가 삼국유사 안에 있었다. 교과서에서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향가가 일연의 세계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아름답게 살아나 내 가슴을 때렸다. 세련된 현대의 시에 비교해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그 단아한 기품에 흠뻑 빠져 들었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다른 향가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삼국유사의 원전을 먼저 만나지 못한 상황이니, 옮겨 적고 해설을 담은 고운기의 일연과 삼국유사 원전 속에서 만나는 일연이 어떠한 모습일지 비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순차적을, 일연의 삼국유사에 맞게 꼼꼼한 해설과 사진으로 전개해나가는 구성은 독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였으리라. 계속해서 걸리는 것은 이 책이 과연 본 삼국유사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다뤄준 것일지, 알 수 없어 내내 뭔가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 삼국유사 원문을 뒤져볼 여유는 없어서, 그저 이 책의 내용만을 갖고 이야기하자니 뭐라 평할 수도 없다. 일단 목차는 한번 살펴보아야 하겠지.     

 

머리말
들어가며


기이(
紀異)
이 땅의 첫 나라
고구려와 북방계

신라와 남방계

탈해황을 둘러싼 갈등

여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밤에 찾아오는 손님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권력의 끝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첫 성전환증 환자

왕이 되는 자

나라가 망하는 징조

지는 해 뜨는 해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가

견훤, 비운의 영웅

신비의 왕조, 가야


흥법(
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순교의 흰 꽃 이차돈


탑상(
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낙산사의 힘


의해(
義解)
운문사 이야기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의상, 화엄의 마루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신주(
神呪)
밀교의 한 자락

감통(
感通)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피은(
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효선(
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일연, 혼미 속의 출구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l 양진
찾아보기

 



서양문학의 원류를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텍스트로, 신화와 성경을 이야기하나 우리 문학의 원류가 되는 것이 무어냐 되물으면 한없이 막막해진다. 우리는 그토록 근본 없는 오 천년 역사의 민족인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단군신화를 제외하고, 뭔가 우리 생각과 심리의 기저를 이루는 집단적 경험의 창고이자 텍스트가 될 내용들이 대체 뭔지, 나는 실체를 알 지 못하였다. 찾아볼 생각을 안 했던 것이 더 맞지 싶지만. 여하튼 대입시험이 끝나고 나서 우리의 고전을 읽어볼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일연의 삼국유사는 역사책이기 이전에, 내게는 우리 문학의 근원적 텍스트로서 신화의 유형들을 만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역사책을 보고 나서 웬 신화 타령이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실로 현상을 이해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기보다는, 상징으로 진실을 이해하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인 터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징들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우리 신화를 분석한 책들을 만나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 징검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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