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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9일 11시 51분 등록

Column 5

거의 모든 먹는 것의 역사

강종희

2014. 5.19

 

, 우리는 정말 알아야 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는 보급판 따위의 수식어를 붙일  리 없음을. 2013년 대입 논술 대비용이라는 띠지를 두른 8천원짜리 삼국유사가 그 삼국유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번 주 들어서야 깨닫고 거금 3 2천원을 지급하여 뒤늦게 받아 든 문제의 책. 똑같은 제목에 지은이와 사진작가와 출판사까지도 동일한 이 두 권의 책 중 우리가 정말 사야 할 그 책이 뭔지를 끝까지 깨닫지 못했기에, 나는 미리 미리 구입해둔 보급판 삼국유사를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결국 이 750페이지 짜리 책을 목요일 저녁에야 받아 들게 되었다. 이런 된장, 한 주도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이번 주의 칼럼은 왜 내가 칼럼을 또! 어렵게 쓰고 있는가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하리라.

 

역사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책을 자발적으로 읽은 것은 마흔 한 해째의 겨울, 그토록 할 일이 없는 겨울을 맞은 적이 없어서, 뭔가 안 하던 짓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누구 왕 다음에 누구 왕이 죽었고 싸웠고 전쟁했고, 나라를 세웠고 무슨 무슨 대첩을 일으켜서 망했고 또 망했고, 세웠고, 반란이 일어났고흠냐어찌나 졸리던지. 세계사니 국사니 하는 교과서가 오로지 대입시험을 위한 사건의 나열이다 보니 이건 뭐 몇 천년 동안의 신문기사를 헤드라인만 모아놓은 꼴이어서 당최 재미가 없었다. 당연히 교과서 외에 역사가 주가 되는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었다. 사십 년 평생 왕과 나라와 장군들, 가끔가다 외교관이 등장하는 역사란 남자들이 군대 가서 축구 하는 이야기만큼이나 관심 밖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통관심사라곤 먹을 것 밖에 없다 생각해온 동생의 서재에 무게 있게 자리잡은 검은 표지의 책 한 권이 발단이 되었다. 제목하여 빵의 역사’!

 

맛있겠는데?’ 오로지 세상 모든 종류의 빵이 그림으로 사진으로 실려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로 책을 빌려 부산으로 튀었다. 동생의 집은 경기도 가평이니, 아무리 묵혀놓고 읽어도 지가 뭘 어쩌겠나. 간만에 교양도 쌓고 무엇보다 수면유도 목적으로 유용하리라 싶어 KTX 안에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실로 오랜만에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부러 천천히 읽고 되돌아가 읽기를 실천하는 행복의 도가니탕을 경험하였다. 마침내 책의 마지막 부분,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작가의 그 절실했던 빵에 대한 고백에 이르러서 나는 울었다. 그의 절절한 고백에 감동하여 울었고, 살아남아 이 책을 완성한 작가에게 감사해서 울었다. 그리하여 온갖 소소한 것의 역사, 특히 음식에 관한 미시사를 찾아 읽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이라는 일상적인 소재가 역사의 관점에서 재해석될 때, 얼마나 풍부한 스토리로 설명될 수 있는지를 알고 나는 역사에 조금 가까워졌다. 빵은 진짜, ‘사연 많은 놈이었다!

 

문명의 시작이 된 빵, 곡물의 생산, 즉 농업의 시작이 정치와 종교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시장 경제의 기반이 되었다가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 과학의 중심에 서고 다시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가 평화의 전령이 되는 놀라운 이야기에 매료되어, 나는 역사책에 대한 편견을 허물 수 있었다. 역사가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커피의 역사, 미식 견문록, 누들, 식탁 위의 한국사, 음식인문학, 차별 받은 식탁, 짬뽕의 역사, 미식 예찬, 빵과 국수의 문화사, 음식의 제국, 초콜릿의 역사. 가벼운 에세이 류에서 진짜 심각한 역사서에 이르기까지 먹는 것이란 소재에 국한하고도 읽을 책은 무궁무진하였다. 이렇게 쬐끔이나마 맷집을 키우고 나서도 삼국 유사를 받아 든 기분은 음답답하였다. 책은 좋아하였으나 한자가 싫어 영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우리 고문과 중국문학을 늘 멀리 하였고, 삼국지, 수호지, 사기열전 등에 대한 제반 지식은 나의 초등 4학년 아들내미보다 무식한 지경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사기열전은 중도 포기, 그야말로 옮겨 적기만 간신히 수행한 뒤라, 삼국유사만은 그럴 수 없다며 끙끙대며 달려 들었다.

 

그런데, 사랑이 느껴졌다. , 이 책은 고백록이로군. 읽다 보니, 사진을 보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일연의, 사람에 대한, 나라에 대한, 불교에 대한, 향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고운기의, 일연에 대한, 일연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진 우리 역사에 대한, 질박한 우리네 이야기에 대한, 역시나 우리네 사람에 대한 사랑. 그와 함께 사진으로 삼국유사를 여행한 양진의 눈 돌릴 곳 없는 우리 땅에 대한 그 땅의 모든 것에 대한, 노골적인 사랑.

 

향가가 이리 아름다운 줄도 처음 알았다. 절세미인! 향가는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은 자연 미인, 미니멀하기 짝이 없는 스타일로도 가릴 수 없는 기품과 고아함을 가진 여인과도 같이 내 맘에 파고들었다. , 어찌 단 여덟 글자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읽는 동안 등장한 십 여 개의 향가가 대부분 국어 교과서에 한번 등장했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그 때는 알아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우리 민족은 역시풍류를 안단 말이지, 그것도 이렇게 스타일리쉬하게!

 

오늘도 나는 역사책을 역사책으로 읽지 못하고 그냥 이야기책으로 읽고 나서, 칼럼은 또 구라로 대충 풀어 해치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어찌 하겠는가. 이제 약 19분이 남은 마감을 나는 지켜야겠고, 동기들은 죄다 칼럼부터 해치우는 노련함으로 품질유지에 힘쓰고 있는데, 나는 어젯밤 막판까지 삼국유사를 정말로 좀 알아야겠다며 흥을 내다 오늘 아침이 다음 주 해치워야 할 강의 교재 제출 마감시한이었음을 기억해내고는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하핫, 그래도 뭐. 나 셋 다 마감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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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2:50:44 *.94.41.89

오늘도 마감임박 그분은 언제오나

사립문 제쳐뒀나 내님은 오리무중

촉박한 마감전쟁 마담손 달삭달삭

언젠간 마감하리 마담의 마감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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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3:20:23 *.50.21.20

크아 역시 마무리는 시로 해야죠! 

마지막 연에 살구꽃 날리듯 그분이 늘 함께하신 종종마담의 내일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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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27:26 *.104.211.186

향가의 현대적 적용! 점점 발전하는 희동의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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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3:11:59 *.196.54.42

마감지킨 것 축하합니다, 종종님!

글이 톡톡튀는 코를 쏘는 짜릿한 사이다 같은 종종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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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28:25 *.104.211.186

종종체... ㅋㅎ... 이러면 안되는데 말이죠... ㅜㅠ 오늘은 마감을 지킨 것으로 토닥 토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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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3:21:38 *.50.21.20

제목을 보고 올것이 왔구나 하고 들어왔어요. 

면이라면 어느 것 하나 예사로 넘기지 않고 관심 가져주는 종종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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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29:25 *.104.211.186

먹는대로 이루어지다...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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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4:20:48 *.228.119.26

연대기적인 역사라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 사고는 남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투쟁과 전쟁의 역사이기 때문에 상당히 마초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대기가 아닌 역사의 시작은 아마도 페르낭 블로델이 시작했을 것입니다. "빵의 역사"의 저자처럼 이분도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힌 경험이 있습니다. 빵의 역사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역사에 대한 분석은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일상생활의 구조"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영웅의 역사가 아닌 일상의 역사, 일반 사람의 역사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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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30:02 *.104.211.186

물질문명의 역사, 언젠가는 읽어야 할텐데요! 음,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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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7:50:01 *.94.164.18

빵의 역사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런 책이 있는지 몰랐어요.

저는 '향식료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었지요.


나이 들어 보는 역사는 이리도 재미있는데

그  옛날에 역사는 참 잔인하게 지루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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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31:03 *.104.211.186

오, 향신료의 역사? 구미가 당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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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1:29:13 *.124.78.132

소문난 빵순이인 제 귀에 솔깃한 '빵의 역사' 라는 책이 매우 궁금해지네요 ^^*

저도 오늘 여럿 마감 지키느라 혼쭐이 났습니다 ^^;;;; 그런데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은 없더라고요 ㅠㅠ  

그런데 종종님은 역시 이렇게 멋진 글을!!!! 남기시다니~~ 늘 two thums 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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