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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9일 15시 36분 등록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

 

 

입원 준비를 한다. 손톱을 깍았다. 손발톱의 메니큐어는 바르지 말랬다. 양말을 벗어본다. 발톱은 안깍아도 되겠다. 근데 발의 각질은 좀 밀어주어야겠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아야겠다. 정맥마취를 하고 30분 걸린댔다. 시간이 긴 건 아니지만, 또 환자복은 개성을 없애버리는 제복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겠지만 정신 없을 때 내 몸을 누군가가 본다는 게 신경쓰인다. 안내문을 펴놓고 하나씩 짚어가면서 읽어본다. 색조화장 하지 말고. 렌즈, 안경, 및 반지 등 액세서리 일체는 빼라. 오늘 밤 12시부터 금식. 물도 먹지 말고 껌이나 사탕도 안 된다. 내일 새벽에 커피를 못 마시겠구나. 끼니를 굶는다는 것보다 카페인 때문에 껄떡댈 일이 먼저 걱정인 중독자. 당장 입원을 해도 좋다는 걸 집에 들렀다.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서다. 내일 아니면 모레 돌아올 건데도 애틋하다. 그린색 액비를 조금씩 희석해서 화분마다 돌아다니며 짧은 헤어짐에 대한 작별인사를 중얼중얼 하면서 천천히 부어준다. 나무산호수 새 잎에 들러붙어 푸른 피를 빨고 있는 깍지벌레 몇 마리를 소탕한다. 죽일 놈. 감히 내 새끼들에게 입을 대?

 

염주를 가방에 던져 넣는다. 모닝페이지를 챙기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운다. 책은 1권만 가지고 가야겠지. 뭘 가지고 가나? 가볍고 재미난 걸로, 시집이나 이야기책, 또는 그림책이 좋겠다. 병원으로 가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을 생각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이틀 연체된 도서관 책을 가는 길에 반납해야겠구나. 청소는 어제 다 했다. 내가 한 건 아니고 그가. 집이 깔끔하니 내 마음이 시원하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 놓는다. 인연이 있어서 온다며 내 집에 찾아든 사람 그냥 보내지 말고 물이라도 한 잔 주어보내라는 여자 둘을 모른 척 한다. 환기시킨다고 열어두었던 현관문을 닫아버린다. 저는 도에 관심 없어요.

 

나는 시험관 시술 준비중이다. 마지막 과배란주사를 맞았다. 어제 밤 11 30분에 정확히 시간을 지켜서 근육주사로 맞으라는 난포 터지는 주사도 응급실로 가서 맞았다. 남편이 동행했다. 집으로 오는 막차를 타려고 둘이서 달리기를 좀 했다. 나름 낭만적이었다. 내 옆에 함께 있어주는 그가 든든하고 고맙다. 나는 하나도 떨리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내일 오전에 난자 채취 일정이 잡혀 있다. 근데 오늘 오전 일찍 내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가보니 혈소판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단다. 내과 진료를 보고 오란다. 1시간 기다린다. 혈소판을 미리 수혈하고 채취에 들어가자고 했다. 다니던 병원 주치의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오란다.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는데 그 교수님은 오늘 오전 진료만 있다. 전화를 걸었다. 다니던 병원이었으면 혈소판 수혈은 안 하겠지만 그 병원 내과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하라고 했다. 수혈을 받아서 혈소판을 10만까지 올린 다음에 채취를 하기로 했다. 당장 입원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병원과 집이 가까워서 남편 좀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다. 그가 안쓰러웠다. 각자 병원의어떤 처치실이 아니라 집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받아서 가면 좋지 않을까 했었다. 정액 외부 채취 동의서를 받아서 들고온 파랑 뚜껑 통은 인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여기 저기 다니느라 힘들어서 어떡해요? 시술 잘 받으시고 다음에 뵈어요라고 웃는 얼굴로 친절하고 따듯한 말을 해주는 간호사샘들한테 웃음을 보인다. “괜찮아요. 그래도 기회가 있어서 감사해요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물을 다 주고, 할 일을 다 했는데, 남편한테 입원하랬다는 전화를 못한다. 일단 밥을 먹자. 엄마 된장에 상추쌈을 싸먹었다. 좀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잠깐 누워 눈을 붙였다.

 

남편이 전화를 했다. 내 핸펀 밧데리가 다 되어 집전화로 했단다. 나도 밧데리 다 된 걸 알고 있었다. 그제서야 전모를 말한다. 나는 좀 과장된 높은 톤 목소리로 오전의 일들을 수다한다. 남편은 가볍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대처를 잘하니 안심이라고 말해준다. 내일도 하루 더 입원했다가 오면 좋겠다고 한다. 고맙다. 나는 두려웠다. 내가 이런 번거로운 사람이어서 그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했다. 겁이 많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뿌리에는 죽음이 있으리라.

 

내가 시술과정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어려움과의 씨름에서 져버리면 마이너스다. 이 모든 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아이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거다. 아직은 나와 그의 몸에 든 세포의 형태다. 시험관 몇 차에서 성공할 지, 성공은 할 수 있을 지 모든 건 미지수다. 모든 출산은 여자와 아이에게 트라우마다. 또 여자에겐 목숨을 걸어야 할 일대 사건이다. 아즈텍 신화에서는 출산과정에 죽은 여자와 부족을 수호하기 위한 전투에서 전사한 전사의 하늘이 같다고 하지. 나는 이 순간 엄마의 자리를 굳게 지키리라. 이 모든 일을 엄마의 관점을 가지고 견뎌내리라. 초경이 시작된 그 해 여름부터 생리를 할 때마다 내 몸에 경탄하곤 했다. 제 몸의 가장 소중한 궁전을 달마다 피로 청소한다. ‘이건 아마도 소녀를 엄마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걸거야. 출산할 때는 피를 말로 쏟는대지. 여자인 나와 엄마의 관점을 가진 나는 다르다. 내 새끼를 위해서 무슨 일을 못할 건가? 이 따위 일로 마음 불안하고 힘들어해서 나를 믿고 먼 길을 아장아장 작은 발로 올 아이를 불안하게 하지 않겠다. 나는 어른이고, 너희가 믿고 기댈 엄마다. 내가 지켜주겠다. 나의 괴로움에서도 너희를 지키리라. 그러자면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나를 지키는 님들께서 지키실거다. 그리고 주변 의료진과 남편이 잘해주고 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가지자. 두려움은 오로지 사랑으로 대할 때만 극복되리라.

 

어제 선물받은 게송 쪽지를 꺼내 읽는다. 틱낫한 스님의 플럼빌리지에서 받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연인을 생각하며 이 게송을 간직하는 듯 했다. 읽으면 저절로 미소가 나는 마법의 주문.

 

Darling, I am here for you

And I Know you are there

So I am happy.            – Thich Nhat Han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틱낫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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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04:34 *.94.164.18

콩두님의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제 기원도 하나 보탭니다.


아픈 기억으로만 자리하고 있었는데 콩두님의 기회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을

보니 절로 마음이 부끄럼을 탑니다.

봄의 신록과 생명이 좋은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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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8:38:55 *.223.60.72

기회가 있어 정말로 기쁘고 감사하답니다^^

함께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더 소중하고 고맙구요.

참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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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45:05 *.104.211.186

나는 어른이니까, 를 절감하게 하는 경험이지요...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잘 먹고 잘 쉬고 보얗게 피어나는 콩두와 아가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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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8:41:58 *.223.60.72

오! 종종! 이시여^^ 뽀애지고 싶은데 아침 금식이라 성질 버릴라 하네요 ㅋㅋㅋ 즐거운 5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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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7:36:44 *.62.202.12
시청 나오실 때 연락 주세요. 좋은 걸로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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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8:44:39 *.223.60.72

네^^ 형선님^^ 연일 고단한 야근 고난의 강행군이 계속되나 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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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0:38:49 *.196.54.42

남자가 범접할 수 없는 여자의 위대성를 봅니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살리는 모성을, 우리의 마지막 희망인 모성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새생명의 환희가 콩두님을 찾아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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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23:01:03 *.39.145.84

콩두님을 지키는 님들 중에 저도 추가요. 편안한 마음으로 아가를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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