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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0일 06시 27분 등록

J에게 : 편지를 읽고 있는 여자가 있는 그림

- 그림은 무엇을 하는가?


J에게

엊그제 『위험한 생각들』이란 책에서 그림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한 대목을 읽었다. 그 아티클의 제목은 '미지는 더 새로운 미지로 대체되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뉴욕의 어느 미술가(Eric Fishl)가 쓴 것이다. 책 제목 그대로 '위험한 생각'이라 여길만한 아직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생각이 쓴 글들을 모은 것인데, 그중에서 이 아티클은 그림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 나와서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미술가는 자신이 몇 년전에 본 베르메르자는 작가가 그린 그림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그 그림에 빠쪄든 것에 대해 말했고, 그리고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말했다. 책에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것을 상상으로 보았다.


'몇 년 전에 나는 베르메르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편지를 읽고  있는 어떤 여인의 그림이었다. 그녀는 햇빛을 더 잘 받으려 창문 가까이에 서 있었고, 그녀 뒤에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지도가 걸려 있었다.'


앞의 구절에 덧붙여서 저자는 이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바로 이어적으면서 이 그림의 놀라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이 드러내는 바에 놀랐다. 베르메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면서도, 우리가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기본욕구란, 바로 멀리 있는 곳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이다.'


이 아티클은 매우 짧다. 읽는데 2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 커서 나는 계속 그것을 곱씹고 그것이 그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지는 생각했다.


짧은 아티클이라 그 뒷부분도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우리를 더 능력있고, 더 강하고, 더 잘 보호하고, 더 지적으로 만든 것은 모두 우리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의 지각 능력과 적응성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 덕분이었다. 편지를 읽고 있는 베르메의 여인을 떠올리며, 나는 그 편지가 그녀에게 도착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지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맙소사, 집을 떠난 사람이 기별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가 발달시켜왔음을 알게 된다. 또 우리가 멀리서 보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과, 멀리서 보내오는 모습을 볼 수있는 시스템도 개발해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자 나는 회화의 연금술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회화란 물질에 의식을 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발견해낸 것이다. 그 회화를 통해, 베르메르는 시간을 가로질러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또한 베르메르가 나를 미지의 곳에 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 속의 편지 내용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베르메르는 나를 어떤 가장자리, 즉 나로 하여금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싶어하게 만드는 어떤 경계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는지, 또 그가 지금껏 내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다. 그는 무사한가?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일까?


베르메르는 나를, 불확실성이라는, 그림 속의 그녀의 존재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놀라움과 기다림밖에 없다. 이를 통해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세계를 크고 불확실하게 만들며, 우리의 생존을 보잘 것 없게 만든다. 인간이 왜 돌아다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떠나온 장소에 우리는 왜 그토록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지는 더 큰 수수께끼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깊은 갈망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창의성을 낳는다. 그리고 창의성은 힘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장치, 기계, 수송통신망은 모두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이용하거나 정복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만약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미지의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면, 또 우리가 더 멀리 도달할수록 우리가 도달한 그 외부를 집으로 얼마나 빨지 가져올 수 있는지 하는 문제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미지의 것이 아는 것으로 전환되는 시간이 아주 짧아지고, 더불어 창의력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우리가 우주를 더 완벽하게, 더 손쉽에 우리 집안으로 가져올수록, 집을 떠난 이유가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림 한장을 보면서, 그림 속에 있는 것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보다가, 그 그림 속 여인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를 상상했다. 그림 속 사람을 궁금해하고, 어떤 상황인지를 궁금해 했다. 미술가 에릭 피슬은 여러가지 의문을 품다가 그림을 그린 베르메르가 그림 속을 통해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회화의 연금술임을 알았다. 시간을 초월해서 멀리 있는 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림을 앞에 두고, 그 그림이 자신에게 새로운 미지의 세계 하나를 가져다 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아티클에서 '회화란 물질에 의식을 담는 연금술'이라는 대목에 주목한다. 

미술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연금술을 이용해서.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의 의식을 담아서 그것을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이때 우리는 미지의 세계의 경계 앞에 서게 된다. 


미술가 에릭 피슬이 말한 회화의 연금술이라는 말을 내 방식대로 풀어보고 싶다. 이 말은 굉장히 포괄적이다. 나만의 언어로 이 말을 풀어낸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꿈을 이야기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은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가 있는, 현재와 미래의 경계로 데려간다라고 한다면 괜찮을까.


그 답은 역시 그림으로 해야겠지만, 나는 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들 수 있을지 두렵다. 궁금한 것은 어쩌면 낯선 것이고, 미지의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것, 미지의 것으로 소통한다는 것도 두렵다. 이 두가지 요소는 받아들여지기 쉬운 게 아니까. 그런데 내가 본 아티클에서는 미술은 그런 것을 한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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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8:35:48 *.223.60.72

어떤 그림일까 보고 싶네요. 베르메르의 그림이요^^

그림으로 말을 걸고 대답한다는 건 멋진 일일 거에요.

연금술이란 멋진 단어가 회화에도 적용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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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0:26:41 *.226.197.92

http://www.ibiblio.org/wm/paint/auth/vermeer/

베르메르 정도면 실제적 의미에서 연금술이란 표현이 맞다고 볼수 있을 듯합니다. 당시 플랑드르 화가들은 원근법에 대해 조예가 깊었고 이는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에 통달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사리의 "화가열전"을 보면 르네상스시대의 화가들은 어느정도 alchemi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안료문제때문일듯합니다만. 특히 파르미지아니노같은 경우는 직접 연금술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물질에 의식을 담는 연금술" 이라면 물질에 의식을 담는 기술적 문제(기하학와 화학)와 더불어 정신적 연금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파울로 코엘류의 "Alchemist"에 나오는 신비주의로서의 연금술이 있습니다. 이부분은 매우 아스트랄해지기 때문에 언급하기 쉬운 분야는 아닌듯합니다. 


에릭 피슬의 회화에 대한 정의는 웬지 타임 캡슐로서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의식을 구체화 시켜 현대에 까지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연금술이라는 신비주의적 단어를 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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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0:45:12 *.196.54.42

무슨 그림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림도 함께 보여주시면 좋을 듯^^

그림으로 이야기하시는 타오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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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3:10:51 *.223.60.203
전 그림을 짐작으로 봤어요. 오래된 그림이라고하네요. 마르셀님께서 이미지를 링크를 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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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0:49:22 *.226.197.92

http://www.ibiblio.org/wm/paint/auth/vermeer/i/woman-blue.jpg


낡은 지도가 벽에 걸려있고 편지를 읽는 여자는 임산부인듯.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에서 우편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학 방법과 유사합니다. 소위 아날학파라는 것으로 예를 들어, 피렌체에서 보낸 편지가 파리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당시의 문헌을 조사하여 생활상을 구현해내는 것입니다. 큰 지도가 있는 집에서 임신한 여자가 편지를 읽는다. 남편은 아마도 인도네시아 앞바다를 항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1662년에 그려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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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3:07:38 *.223.60.203
책을 읽는 동안에는 현대 그림인줄 짐작했는데 아니었군요. 화가를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그림 링크 고맙습니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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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3:56:16 *.226.197.92

죄송합니다. 베르메르 그림을 좋아해서 주제넘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고맙다고 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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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05:46:27 *.39.145.84

베르메르의 그림을 마르셀님이 링크해주셔서 여기에 올려요.


woman-blu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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