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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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고 있습니다. ‘너의 삶, 설레며 살고 있는가?’ 내 삶은 설렘이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설렙니다. 마당 한 구석에 상추며 가지, 고추며 파 같은 푸성귀를 심어두었는데, 녀석들이 자라 올라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걸음을 놓을 때마다 나는 설렙니다. 달력에 잡힌 강연 스케줄 하나하나를 소화하기 위해 청중에게로 향하고 그들과 눈빛이며 호흡을 나누는 순간도 나는 설렙니다. 돌아와 밤 하늘 별을 볼 때도, 막 날기 시작한 반딧불이 불빛을 주시할 때도, 철새들 노랫소리를 들을 때도 나는 예외 없이 설렙니다. 아주 가끔 딸 녀석 밤 하굣길, 교문 앞에서 녀석을 기다릴 때도 나는 설렙니다.
설렘보다 오히려 답답하고 묵직한 마음이 드는 부분도 내 삶에는 자주 있습니다. 특히 뜻하지 않은 인연이 생겨나 피로를 만들고 오해를 일으키고 그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내 힘으로는 당장 어쩌기 어려운 사태들이 빚어질 때 나는 오히려 숲에 살며 추구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설렘에 대해 생각하다가 ‘설레임’과 ‘설렘’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설레임’은 ‘설렘’의 잘못된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한 아이스크림의 이름으로 쓰이면서 ‘설렘’보다 더 자주 사용되고 있는 ‘설레임’의 바른 표현은 ‘설렘’이라는 것이지요. 깊게 생각해보니 설레인다는 것은 수동성을 품고 있으므로 당연히 능동성을 지닌 설렌다는 표현이 맞겠구나 싶습니다. ‘설레이다’는 그 감정의 원인이 나의 외부로부터 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렌다는 것은 내가 일으키는 감정이 맞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하게 됩니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혹은 그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삶이 ‘설레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밖에서 일으켜 놓은 어떤 요인에 이끌리고 눈멀었다가 그것이 벗겨지면서 만나게 되는 감정의 사태인 것이구나. 반면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품고 일으켰던 애정이 사그라지는 것이 핵심적 원인이겠구나. 이를테면 장미꽃에 ‘설레였다’면 그 꽃이 시들면 더는 장미나무에 ‘설레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농사에 설레는 사람이라면 상추나 고추, 가지 따위가 때를 지나 결실을 다 거둔 뒤에도 그 사윈 자리의 땅을 보며 다시 농사를 지을 마음으로 ‘설렐’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는 설레이지 말고 설레야겠다.’ 그대 삶과 사랑과 일은 어떠신지요? 자주 설레시는지요? 그러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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