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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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중학교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았었다. 이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가슴을 짓누르는 듯 했다. 때로는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했으며 본인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때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했었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이것은 아이에게 통하지 않았다.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지만 재주가 미천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고 사람을 만나보고 웹써핑을 하고 직업박람회를 가보는 등 자신의 욕구에 부흥하는 시간을 갖더니 어느 정도 해답을 얻게 되었다. 흔들리고 질문하고 다지는 시간 후에 어느 날부터는 제법 든든한 나무의 씨앗을 하나 간직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었다. 자신감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지대를 아이는 걷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아프리카에 두 부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물이 귀했기에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종종 있었단다. 한 부족은 기우제가 실패할 때도 있었고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다른 한 부족은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비가 오더란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글쎄,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맞추어서?’
‘아니, 한 부족은 기우제를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지만, 다른 부족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대.’
‘우와 정말이야?!’
‘그러니 너도 니 인생의 기우제를 멈추지 마! 그리고 한 번도 자기의 한계를 뛰어 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부터 그 사람들의 한계가 너의 한계가 되는 거야. 너의 스토리를 니가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니?’
아이의 동공이 커지면서 감탄사가 나온다. 까칠한 녀석한테 준비해 놓은 이야기가 제대로 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그 뒤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비전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신의 꿈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플랫카드로 만들어 항상 볼 수 있도록 천정에다 붙여 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기 힘든 날이면 자신이 세워 놓은 꿈을 주문처럼 외우며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고, 학교를 갈 때도 그 주문을 다시 한번 되내이며 인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속에 드디어 발아하는 씨앗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끝까지 필요할 때마다 멈추지 않는 기우제를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은 염려와 함께 생겼다.
사실 기우제 이야기를 해줄 때 내 마음은 뜨끔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 후 수도 없이 나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가고 싶은 길에 대한 두려움에 가보기도 전에 포기 한 적이 있었으며, 만만할 것 같아 뛰어든 일이 벽에 부딪치자 적당한 핑계를 둘러 대며 뒤로 물러선 적도 있었고, 나의 한계를 넘어 본 일은 거의 없었으며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안주하는 버릇이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아이에게 한 말은 항상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나를 향하게 된다. 그 말에 정직할 수 있는지,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지, 그 말에 당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움이 가슴 한 복판을 뚫고 들어온다. 아이는 그렇게 나의 스승이면서 회초리 노릇을 하는데 존재만으로도 눈이 매섭고 다리가 아린다.
항상 수다스러웠던 아이의 입이 이틀 동안 굳게 다물어져 있다. 본인의 노력이 1차 한계에 부딪힌 듯 하다. 예견되었던 작은 염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볼까 궁리를 하다가 이번에는 나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앎을 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이틀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더니 가방을 매고 또 다시 독서실로 향한다. 말없이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나에게 또 회초리 질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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