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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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저자에 대하여
Howard Gardner
그의 강연을 녹화한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미묘한
각도로 잘 찍혀있던 사진들과는 달리, 동영상으로 확인한 그는 사팔뜨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교수님다운 침착하고 지성어린 목소리, 그의
메시지만큼 따뜻한 내용이 마음을 끌었다.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기 전에 그의 책 열정과
기질이 어떤 논지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소개하려 한다.
Creating Minds
우리는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창의성이라는
분야에서 완전히 두각을 드러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분야에 들어간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이미
시대적 아이콘이 되어 버린 천재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평범한 대중의 삶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 우리는 프로이트, 피카소,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업적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었는지 포착하기 어렵다.
게다가 하워드 가드너 이전에는 창의성이라는
특질을 발현시키는 인간의 재능은 'IQ'라는 지능으로밖에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 즉, 지능이 뛰어난 자가 더욱 창조적이라는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학자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는 것은 훨씬 다양하게 측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잘 발현시키면 누구나 평범한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가드너는 창의적 천재들의 공통점을 정리한다. 창의성에
대한 천재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 그게 바로 이 책 열정과 기질, 원제로는 Creating Minds이다. 그가 정리한 창의적 천재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기회를
잘 포착하지만 실패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며 어렸을 때 적어도 한 영역에서 매우 뛰어났다. 어릴
때 한 영역에 숙달하도록 충분한 훈련을 받았고,어린 시절에 목표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지속적 작업으로
달성이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형제들보다 다소 뒤떨어지는 듯 해도 이를 용인하는 가족이 있었다.
창조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 한 개인이 적절한
체험과 교육 기회를 통해 재능을 강화시키고, 자신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 매일 수련하면서 창조성이
발현된다. 특히 재능을 강화시키는 동안 가족, 친구, 스승, 경쟁자, 후원자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의미 있게 형성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요컨대 재능을 갖춘 개인, 훈련과 일, 타인이라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관계란 단순히 '인간관계가 좋다'거나 '성격이
원만해서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는 뜻이 아니다. 자극을
주는 사람,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 치열한
경쟁관계인 사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사람, 멘토가
되는 사람, 기타 다양한 타인들과의 관계다.
Biograph
하워드 가드너는 1943년 7월 11일에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서유럽출신이었지만 그는 미국인이다. 1950년대 청소년기 또한 펜실베니아 주 스크랜턴 시에서 보냈다. 아주 어렸을 때의 그는 피아노를 치는데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꼈던 학구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독서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소년으로 자라났는데, 가장 흥미를 느낀 분야는 전기물과 역사였다. 특히 가족의 출신지인 서유럽과 새로운 고향이 된 미국의 전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는 자연스레 역사를 전공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하니, 책에서 드러난 독창적인 전기 전개 방식은 하워드 가드너의 취향과 배경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의 방향을 바꿔놓았던 사람은 에릭 에릭슨이었다. 하워드
가드너는 당시 새로이 이름을 알리고 있던 에릭 에릭슨의 심리분석적 역사와 전기를 읽었을 때를 '지적인
고향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곧
그는 연구주제를 사회적 관계로 바꾸었고, 점차 인지 발달에 관한 심리학에 관심을 쏟았다.
또한, 그는 인간의 삶 속에서 느끼는 경험의 감정적인
측면과 인지적 호기심 사이의 상관관계를 느꼈는데,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책을 읽으면서 인지적 차원에 약간 더 무게를 두고 이런 갈등을 해소했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끈덕지게 지속된 냉전을 가까이에서 겪으면서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에 이미 매료되었다. 그래서 들어간 대학원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예술적 창조성에는 동료도 스승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연구생 시절, 거의 매일 저녁 현대 예술을
탐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예술적 인식과 교육에 특별히 주목한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라는 새로운 연구 기획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자신을 이끌었던 가장 근원적인
질문 '왜 어떤 아이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위축되는가'에 열렬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가드너가 서문에 언급했다시피 '창조성'과 '예술'이 일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성이란
삶의 어느 영역에서나 발휘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창조성에 대한 연구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장면
5. 조직과 기업은 감동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상품과 시스템을 얼마나 선보이느냐로 그 존재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
>>창의성이 발휘되는 범위는 예술 뿐만이 아니다.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7. 한 천재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고 특이한가를 밝히는 특이성 연구(idiographic)
>> 이런 종류의 접근은 천재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골을 깊게 할 뿐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건실한 다리를 놓는 일이다.
7. 먼저 그 첫 번째인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 가드너는
이 질문을 ‘창조성이란 어디에 있는가?’로 전환시켜
대답하고자 한다. 그는 개인-일-타인이라는 창조적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8.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9. 10년 주기론…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14. …하지만 에릭 에릭슨의 심리분석적 역사와 전기를 읽었을 때 나는 지적인 고향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연구주제를 사회적 관계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로 바꾸었고, 점차 인지발달에 관한 심리학에 관심이 쏠렸다.
>> 나에게도 지적인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만큼 멋진 만남이 예정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공부할 거다. 즐겁다.
15. 뜻이 묘하게 얽힌 탓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과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비슷한 뜻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두 단어가 반드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삶의 어느 영역에서도 창조성을 발휘할 수가 있고,..
>> 이 부분에서 예술성을 발휘할 길로 가지 않았다는 자괴감에 아주 큰 위로가 된다.
20. 낙타 털 외투를 걸친 테너 가수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지
자네가 그의 마음속 두려움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안다면
>> 나보다 더 잘난 것 같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유명인들의 삶을 맹목적으로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31. 예술가란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마술사와 같습니다.
>>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0 있다.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다는 것은 가장 근원적이나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그러니 창조성이 극도로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
38.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40.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 얼마 전에 칠레 교환학생을 함께 갔던 친구들을 만났다. 그 때 그 칠레행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타이밍이 있었다. 어떤 아이는 꿈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어떤
아이는 남미에서의 구체적인 삶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를 더 많이 알게 도와준, 자극을 주는 친구들을 여러명을 동시에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었던 것 같다.
46.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사례 연구는 아동과 대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프로이트와 스트라빈스키, 간디의 경우는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엘리엇과 그레이엄의 사례 연구에서는 이들이 활약하는 분야에서 비교작
경계적인 위치에 속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둘 것이다. 68. 실제로 ‘창조성’이나 ‘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 오디션 프로그램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짙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주일만에 지난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은 인간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 분야에 특출난 대가라도 매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성이 낮다.
새로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69. ‘몰입 순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도 감수하려 드는 것이다. 69. 한때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라 여겼던 일이 쉽게 달성할 만한 일, 심지어는 유쾌한 일이 된다. 반면에 오래 전에 성취했던 일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름대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음악 연주자들은 익숙한 곡을 정확하게
연주하면서 몰입 상태를 경험하며, 젊은 대가급 연주자들은 연주하기가 가장 어려운 곡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오랜 연륜을 쌓은 거장들은 익숙한 곡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거나,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주가 매우 어려운 작품을 다시 집어든다. 이러한 설명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을 계속 올리듯 통례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더욱 더 어려운 도전에 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아 더 큰 판에서 놀고 싶다. 더 많은 속내를 어루만져주고 싶다. 아 내가 글로 정복하게 될 세상은 얼마나 광활한가! 끼얏호! 신이 난다. 75. 어른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그러므로 창조에 관련된 일을 하려면 마음의 뿌리를 남김없이 파헤쳐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최초의 두려움, 입을 얼려버리는
기억 등을 피해서는 자신의 깊은 숲을 찾아 들어갈 수 없다. 118. 이제 예전에 억압된 기억을 말로 풀어내면서 거기에 얹힌 묵은
정서(affect)를 발산하면, 증상을 없애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 대학교 때 사이코 드라마를 했던 경험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펑펑 울면서 내가 지금 현재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절실히 알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스스로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127.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긍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154. 별로 준비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각양각색의 청중 앞에서 역사와 예술, 당대의 독서물, 최근의 사건, 현재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의 관심사 등에서 적절한
예를 자유롭게 끌어들이면서, 친밀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로 폭이 넓은 강연을 할 수 있었다. >> 나는 내가 진행할 강연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준비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기초로, 역사와 예술, 당대의 독서물, 최근의 사건, 현재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의 관심사 등에서 적절한 예를 자유롭게 끌어들이면서, 친밀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로
폭이 넓은 강연을 해냈다. 나는 내 강연이 이렇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멋있고, 구체적이고, 관객으로서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도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다. 169. 이 노래에서 가장 멋진 선율은 어느 부분인가? 이 색깔은 어떤 효과를 자아낼까? 내 느낌대로 춤을 출 수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경우는 다른 많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명한 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아이들에게 물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의문을 품곤 했다. 사물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자연 법칙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러면 모든 결과가
달라질까? >>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어린아이 같은 질문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던 질문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던짐으로써 지금이라도 조금은 천진한 상상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193. 자기 생각의 핵심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지지를 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려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193.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5. 아인슈타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한 사고를 할 때까지는
발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신동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 신동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모든 인간은 현재의 상태에서 각자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2. 필요한 ‘찬란한 고립’ >>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하다. 충분히 검토되고 충분히 실험되고 충분히 생각된 생각만이 제대로 된 몸뚱아리와 정신을 지니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은 최초의 고립에서부터 태어난다.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참할 예정이다. 232. 젊음과 원숙함을 절묘하게 결합할 줄 알아야 하고, 이런 결합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나 가능하다. >> 열정과 기질에서 위안과 격려와 용기를 듬뿍 얻어간다. 절묘한 결합까지는 못되더라도 젊음과 원숙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날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젊음과 원숙함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243. 이미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답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과학자의 소명은 더욱 빛이 난다. >> 주어진 것이 내가 도달해야 할 곳이 아니라 봉우리 너머의 안개너머를
살아라. 바다 저 너머를 보라.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252. 비상한 재능을 타고 난 신동이라도 장애를 만나게 마련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 소리에 대해 아이를 방어해 주며 (현실적으로든 상상만으로든)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 나는 이런 역할을 해줄 어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포도밭의 여우와
같은 전략을 취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런 비겁함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들러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259.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좀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 이런 사례를 보았을 때, 교육의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전과목 A보다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거만 A를 받는데 치중한다면, 그 나머지는 모두 B를 받더라도 당사자는 훨씬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음악시간이나 미술시간의 커리큘럼도 너무 고전적인 분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예술은 셀수없을 만큼 다양한 개성으로 피어나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가장 고리타분한 변방에 남겨져 누구도 설득할 수 없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아이들만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267. 피카소는 다양한 심미적 모델을 재빠르게 탐구하고 직관적으로 모방하면서
자기에게 알맞은 측면을 손쉽게 골라냈다. >> 나는 나의 글쓰기를 이런식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뒤에 마샤 그레이엄의 일화에서도 나오지만, 나에게 알맞은 측면,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잘라 글에 반영시키고 담아 새로운 맥락으로 읽어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의 고전 연구는 최적이다. 방대한 고전의 세계에서 나는 원석을 캐고 자원을 쓸어 담는다. 이곳은 풍요로운 세계다! 268. 미신을 잘 믿는 그는 자신이 매일 마주하는 질병과 성병, 맹목적인 행동을 두려워했다. 처음엔 작품을 팔 수가 없어서 가난하게
살았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전히 가족에게 의존했고 특히 황량한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 때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1899년에서
1904년 사이에 그는 파리와 말라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를
옮겨 다녔다. 273.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인생]은 카사헤마스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피카소의 노력과 그에 대한 혼란스러운 반응을 나타낸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하는 나의 해석이 나의 작품이 된다. 나는 나의 감정과 반응이 너무 주관적인 것을 두려워 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나의 해석을 통해서만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그것이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이다. 대중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 나의 느낌은 나만의 것이다. 다만 내가 느낀 것과 내가 인지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줄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273. 피카소는 오랜 생에 동안 거의 매년 소묘와 회화, 조각, 판화 등의 작품을 수백 점이나 창작한 거장이다. 284.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에서 그의 정신의 변천사와 운명의 굴곡을
엿볼 수 있으며, 어느 날 혹은 어떤 시기에 그가 느낀 성취감과 곤혹스러움, 기쁨과 환희, 고통 등을 알게 된다.” 피카소는 이 점을 간결하게 말했다.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 이런 점에서 이들 드로잉 노트의 첫 번째 대중 전시회를 ‘나는
노트이다(Je suis un cahier)’라고 부른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심정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작을 처음 시작할 때는 욕심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내게 필요한 것들에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글로 쓸것은 아주 많다. 관심을 바라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소재 선정에 주관성을 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자.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집중하자. 나는 솔직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좀 있다. 나는 내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함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와 나를 해칠것만 같다. 그러나 거짓 감정에서 쓴 글은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인위적이다. 나는 날것의 글을 쓰고 싶다. 그렇기에 솔직함은 내가 가야할 길이 될 것이다. 287. 당시 그가 느낀 정신적 고독이란 참으로 공포스러울 정도였겠지만요.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87.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287. 피카소는 늘 대중과 게임을 벌였고… 302. 고독의 시간은 친밀한 어울림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 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380. [결혼]은 스트라빈스키가
현대와 러시아의 과거에 다리를 놓은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내부에 길항하고 있는 이런 두 성향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작곡가 생애 내내 러시아적인 것과 현대성을 동시에 견지했다. 409. 그 때까지 그는 가족이 마련한 각본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공부도 잘했고 해야 할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글쓰깅도 능숙했고, 학문이나
사교 면에서 별 어려움 없이 주위의 기대에 걸맞게 살아왔던 그였다. 409. 하지만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엘리엇은 점차 소외감이 커지느 것을
느꼈다. 413. 이 무렵 그는 경계인의 삶에 만족했고, 작가로서의 삶에 운명을 걸고 이국 땅에서 성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414.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414. 엘리엇은 감망이 없을 정도로 낭만주의와 선동성에 물든 당시의
문예계에는 이러한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25. 그의 책이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잘 팔리지 않을 때도, 영국의 주요 지식인들은 그의 책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결국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437.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444. 그의 생각대로 시인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시인의 마음은 무수한 감정과 말씨와 이미지 등을 붙잡아 저장해둘 수 있는 용기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의식적이고 정리되지 않는 산만한 형태로 남아 있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444. 엘리엇이 문학 이론에 기여한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일 터이다. 시인은 정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68.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었다.” 468. 미국인들이 몸의 아름다움과 기능에 대한 청교도적인 혐오감을 버리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471-472. 그레이엄은 1911년 4월 로스엔젤레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국적인 춤을 추는 로스 세인트 데니스라는 무용가의 공연을 말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힌듀교의 주신 크리슈나의 연인 라다로 분한 세인트 데니스의 유명한 모습이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팔찌를 끼고 옥좌 모양의 단상에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화려한 옷차림의
세인트 데니스를 보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공연에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고, 아버지는 그레이엄이 놀랐을 정도로 쾌히 승낙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바이올렛 코르사주를 선물하기까지 했는데, 마사는 이것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레이엄은 다양한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홀로 춤추며 무대를 휘어잡는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장엄하고 화려한 옷차림과 표정이 풍부한 눈, 인상적인 모습에 혼을
빼앗길 정도였다.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훗날 그녀는 회상했다. 473.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마스터하는 것은 거장들의 일반적인 특징인데… 475.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475. 바실리 칸딘스키(Vasily
Kandinsky, 1866-1944)의 작품에서 하나의 해답을 얻었다. “나는 이 그림처럼
춤을 추겠다.” 475.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