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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09시 44분 등록

열정과 기질

지성인들의 삶에서 밝혀낸 창조성의 조건 Creating Minds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북스넛, 2004.


1. 저자에 대하여


■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

가드너1.jpg

 

•출    생

1943.7.11. 미국 펜실베니아 스크랜톤 (72세)

 

•활동분야

교수, 다중지능이론 창시자, 심리학자, 교육학 이론가

 

•발 자 취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 교수, 미국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 책임자, 운영위원장

 

 

1990년 중반부터 굿 프로젝트 활동

 

 

1961. 역사 전공 위해 하버드 입학. 에릭슨 강의 수강 후 social relation으로 전공 바꿈

 

 

1965. 학사학위 후 런던대 경제학과에서 1년 수학

 

 

1971. 하버드대에서 발달심리 전공하여 박사학위 취득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스턴대에서 Postdoc 과정(두뇌손상 환자들의 인지적 문제 연구)

 

 

1981.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Prize Fellowship) 수상

 

 

 

1983. 다중지능이론 제안

……

제 삶의 베이스는 

음악입니다.

……

 

 

1990.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Louisville's Grawemeyer Award)

 

 

2000. 2000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

 

•저    서

1983. 마음의 틀: 다중지능(Frames of Mind: The Multiple Intelligences)》

 

 

1993.《다중지능의 이론과 실제(Multiple Intelligences : The Theory in Practice)》

 

 

《훈련된 마음(The Disciplined Mind)》

 

 

2009.《세계의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 Around the World)》

 

 

<열정과 기질>, <통찰과 포용>, <체인징 마인드>, <미래 마인드>

 

 

<마음의 틀> <비범성의 발견> <진선미> 등


“행복한 사람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하워드 가드너의 생애


오랫동안 IQ에 길들여져 스스로를 한없이 무능함의 대명사로 여기며 지낸 많은 사람들에게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빛이었을 것이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풀이식의 교육 현실에서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은 많은 아이들의 능력을 일깨워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직은 우리나라는 하워드 가드너의 이러한 이론들이 빛을 보기에는 IQ라는 지능검사가, 1등이란 단어가 갖는 힘이 더욱 크게 울리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하워드 가드너, IQ에서 벗어나 어떻게 다중지능이론을 창시하게 됐을까. 그에 의하면 다중지능은 인간은 IQ와 같이 인간의 지능D 하나가 아니라 최소 8개 이상 존재하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독립적 지능을 말한다. 처음 그가 다중지능을 제시했을 때에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 자기성찰과 인간친화 지능 등 일곱 가지로 지능을 구분했다. 그리고 15년 뒤에 자연 지능을 추가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여기에 실존 지능이란 개념을 추가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존지능은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는 여전히 지능이란 그것과 같은 종류의 신경 구조를 발견할 수 있을 때 가장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로  하버드 대학에서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과정을 분석하는 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이다. 30년 동안 연구소를 이끌며 인간의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 방법, 두뇌개발 등에 관한 저술과 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고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한 학교와 연구소가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워드의 부모 역시 학자라고 한다. 하워드는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의 부모는 독일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이었다. 하워드의 부모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 그의 형을 데리고 독일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의 형은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었다. 하워드에게는 이 두 가지 사건, 즉 형의 죽음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가드너는 어릴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꿀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고 책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처음에는 변호사를 꿈꾸던 소심한 유대인 소년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워드의 강연에 참가한 이의 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가워드가 강연 시작에서 한 말이다. “사람들은 저를 심리학자, 교육학자라고 부르지만 제 삶의 베이스는 음악입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었고 다시 변호사를 꿈꾸던 소년은 결국 역사학 공부를 위해 하버드에 진학한다. 그런데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끌려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에릭슨과 피아제 이론을 접하고는 인지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는 천재들만 받는다는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수상하며 연구지원금을 받는다. 이 외에도 다양한 상을 수상한다.

 하워드는 대학교수이자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활동은 프로젝트 연구소 이외에도 1990년대 중반부터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먼과 함께 하고 있는 ‘굿 워크 프로젝트’ 활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데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하버드대학교 프로젝트 제로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교육이론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9권의 책을 출한했고 그의 책은 전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굿워크란 세 가지 E, 즉 Excellence(뛰어남), Engagement(참여), Ethics(도덕성)의 조합이다.


■ 하워드 가드너의 인터뷰


 입시경쟁과 관련하여 하워드 가드너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주욱 읽어가다 보니 우리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인터뷰에서의 하워드가 언급한 내용을 발췌하여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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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가드너 = 왜 부모들이 자식을 그렇게도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할까요?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높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 가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물론 그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시험 점수로 사람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면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능력은 성적이 좋은 경우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재능들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능력에만 찬사를 보내고 미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학과 언어 능력 중심으로 사람들한테 영광을 얻게 해준 거예요. IQ(지능지수) 검사를 보다 정교하게 보완한 검사 중 하나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치르는 SAT입니다. 한국 시험도 이와 비슷할 거 같은데요. 언어 점수와 수학 점수를 중시하는 일종의 단일지능 위주의 테스트죠. 20세기 산업 패턴에 맞춰진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로 보는 능력, 예술적인 자질,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필요한 능력인데도요.

▷가드너 =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IQ 테스트가 그 사람의 미래를 잘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둬서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조건들을 더해서 검사를 하면 예측성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사람의 미래를 뭐라 예측한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알게 하죠. 성적이 좋으니까 법대 가면 잘할 거라는 기대감도 IQ 위주로 평가해서 나온 건데, 법은 논리와 언어 능력이 동등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수학 잘한다고 법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는 틀린 겁니다. 의사도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에다 환자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환자의 얼굴을 보며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은 IQ가 아니라 인간 친화 지능에 더 가깝죠. 바로 이 인간적 교감 때문에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고요. 누가 훌륭한 판매능력을 갖춘 마케터인지 알려면 시험 성적에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니까요. 또 새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때는 그 어떤 시험도 미리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가드너 = 여러 사람이 평가받는 시험은 우선 치르기 편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언어·수리 능력 위주로 출제해온 겁니다. 그런 시험지에는 큰 질문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죽는가’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싸우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천 년 넘게 흐르는 긴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사유하는 질문들은 답하는 데도, 점수를 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몰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있습니다. 실존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이라고 논문을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런 큰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으로 승화되죠. 이런 능력은 테스트로 알 수 없죠. 수리능력, 언어능력이 독창성, 창의력, 공감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21세기는 협력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요. 이것도 우리가 종이에다 연필로 적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죠.

▷가드너 = 엘리트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엘리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맞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마디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 나의 목표, 나의 능력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평가하는 겁니다. 남의 평가에 위축되는 분위기가 참 슬퍼요. 저는 아이가 넷인데 평판이 좋기를 바라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주목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무룩해지면 이렇게 말해줍니다. “애야,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란다.” 한국의 제도 안에 있는 학벌에 대한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몹쓸 일이죠. 그래도 우리 눈으로 스스로를 진단해야 해요. 미스터 김이, 미스 박이 생각하는 대로 휘둘리면 안됩니다. 이럴 때 제도의 협조가 있다면 상황이 훨씬 쉬워질 겁니다.

▷가드너 = 내가 매우 관심을 기울이는 두 개의 사회가 있어요. 핀란드와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이곳은 중국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균형감을 갖추고 있죠.

▶안 = 두 곳 모두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네요. 이탈리아 북부는 협동조합에서 태동한 레지오 아밀리아 교육을 떠올리게 합니다. 핀란드는 교육 이전에 복지와 부의 분배가 어느 선진국보다 잘된 곳이고요. 평등한 사회가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가드너 = 그렇죠. 내가 투표장에 가서 선거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걱정만 늘어놓을 것인지 바꿀 것인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제도를 바꾸고 싶다면 나서야죠. 출마도 하고 선거운동도 해서 도전하는 겁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명문대를 나왔다면 국민한테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모두 좁은 구멍 속으로 자식을 밀어넣게 만들 거예요. 정부 요직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대학 동창생이라면 한국 사회의 긴장은 느슨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학교를 나온 남녀가 정부 부처에 모여 뜻을 펼친다면, 사회로 퍼지는 의미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가드너 = 정말로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부모를 먼저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은 모두 다른 자질을 갖고 있고 그 다양한 능력이 존중받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인식할 때 사회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 =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기를 바랍니다.

▷가드너 = 물론이죠. 단, 무엇이 잘사는 삶인가 물어야 해요. 편안하려면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일단 돈을 갖게 되면 금방 불행해져요. 늘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있는 걸 알게 되니까요. 많은 연구 결과가 그래요. 행복의 의미가 무얼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산적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도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삶이 잘사는 것 아닐까요?

▶안 = 학교에서 행복을 경험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수업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가드너 = 나는 학교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자기 일을 즐기고, 조금 더 나아지려 애쓰고, 또 서로 나누며 기뻐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가 또 그렇게 될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행동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안 =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밤에 우는 아기를 염려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마을이라면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는 느긋하고 너그럽겠죠.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들은 바쁩니다. 지금 방학인데도 학원 가느라 놀 틈이 없습니다. 다들 선행학습을 하기에 미리 배우고 학년에 올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조바심이 있어요.

▷가드너 =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매우 병적 증상으로 들립니다. 아이들한테서 어린 시절을 빼앗는 강도짓이에요. 더 좋은 성적을 내라고 몰아치는 건데 그 시험은 어떤 누군가가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한다면, 이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쥐가 된 겁니다. 거기에서 꼼짝 못하고 계속 달리고 있는 거예요. 틀에 갇혔어요. 내가 만약 한국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라면 이렇게 외칠 겁니다. “좋아, 이제 그런 시험은 없어. 다 걷어내는 거야.” 그럼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도 자기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발견하도록 기회를 줄 겁니다. 그런 시험 없이 우리는 훨씬 더 잘 해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8살짜리가 같은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사람마다 수리능력이 다르니까요. 어떤 8살 아이는 10살이 배우는 걸 해볼 만합니다. 그럼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으로 간다는 것은 병리학적 신호입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안 =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가드너 =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일 년 전이었어요. 한 학생이 찾아와서 말하더군요. “저는 왜 학교가 필요한지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말이 맞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죠. 한 종류는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 존재에 관한 질문들이죠.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비로움, 보살핌이 중요하다는 것을 식구들과 나누며 살면 좋겠어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살아있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굿 프로젝트’(www.thegoodproject.org)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사람들한테 세 가지 선을 이야기합니다.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이 되자고요. 바른 사람은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달려가 돕는 사람입니다. 바른 노동자는 훌륭하고 참여적이며 도리에 맞게 살아가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충만하게 사는 이들이죠. 바른 시민이 되는 것은 규칙과 법을 알고 보살피며 윤리적으로 활동하는 겁니다.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셋을 함께 이룰 수 있다면 바른 사회가 되겠죠. 신자유주의 속에서 돈이 제일이 됐고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그 돈을 쥐려고들 애씁니다. 참으로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합니다. 멍청한 이유는 그 누구도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요. 위험한 것은 이 세상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농작물도 물고기도 광물도 그 양이 정해져 있기에 아끼고 또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눈을 부릅떠야 해요. 지금의 엄청난 소유 격차로는 이 세상을 지켜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학도 수학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직 깨달음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닫고 이 세상을 모두와 공유하며 살겠다는 인도적 가치를 깨달아야 생존할 수 있어요. 자유, 정의, 평등에 대해 일어났던 우리 문명의 혁명을 이해하며 편가르기보다 함께하도록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참고 자료

•경향신문, [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3)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 2014.1.27

http://howardgardner.com/biography

http://infed.org/mobi/howard-gardner-multiple-intelligences-and-education

http://www.infed.org/thinkers/gardner.htm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p48 특정한 지능과 성격을 지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한 시대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헤겔적인 사고방식은 널리 퍼져 있다.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 한 시대를 풍미하는 사고체계가 확실히 있다. 어느 나라이든, 그것이 진보적이든 아니든. 생각건대 그것은 그 시대의 사회경제문화적인 모든 것을 반영하면서 이루어진다.


p49 나는 이와 같은 시대정신(Zeitgeist), 즉 특정한 개인들이 우연히 그것을 일깨우고 결과적으로(어쩌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빗나간 총탄이라든가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 빗나간 총탄이라든가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 사건인 경우. 이른바 세월호 침몰과 같은 표면적으로는 우연적인 사건? 그러나 알보 보면 내재되고 축적되고 계획된 사건?


p49 최근 프랑스의 혁신적인 이론가 미셀 푸코는 역사적 시대는 그 바탕에 깔려 잇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보통은 무의식적인) 가설들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이와 같은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17세기를 바라보면서, 생물학과 경제학, 언어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작동하는 지식이 동일한 분류학적 가정을 토대로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물론 이러한 ‘뼈대’는 고정된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거의 동시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의적 입장..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p67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면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 세계에서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프로이트

⇒ 아이들의 창조적인 놀이활동을 보면 놀랍다. 그렇게 무궁하게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환상의 세계가 어른이 되어서는 왜 안되는 걸까.


p69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 상태(flow state) 혹은 몰입 경험(flow experience)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intrinsically motivating experience)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러한 ‘몰입 순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도 감수하려 드는 것이다. 작품에 전념하는 작가들은 책상에 묶여 있는 시간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결과도 신통치 않은 작품을 쓰면서 그런 ‘몰입 순간’을 겪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실망한 것이다.

⇒ 단순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아무 생각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가속도가 발생할 때의 그 맛을 있을 수 있으랴.


p82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믿을 만한 길잡이도 없다.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 직관의 힘. 나도 직관의 힘을 믿어 본다.


p83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 창조성이 무엇인가라는 개념과 더불어 창조적 인물에 대한 개념도 결국 시대인식과 연결되는 것인가.


p98~99 대첼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그레이엄)도 있다. 피카소는 이런 거래가 거절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스트라빈스키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버리면서까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서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 있다. 실제로 계약 이행이 느슨해지면 창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 창조적 부적응자.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Sifmund Freud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p111 나의 언어로 말다면, 프로이트는 언어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 프로이트와 관계한 사람들은 모두 자살했다는 글이 생각나 그의 인성 지능이 어떤 느낌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그렇게 인간을 다룰 능력이라...


p127 당시 나는 고독이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긍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 1913년 프로이트의 회고. 또 다른 회고에서 그 시절에 대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꼈진다라고. 찬란한 고립에는 장점도 있고 매력도 있고.


p130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억압은 전문적으로 방어 기제라고 한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다.


p137~138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어린 아이의 경우는 소원이 위장되지 않고 명백하게 드러나며(예를 들어, 사탕을 먹고 싶다거나 비겁한 사람을 혼내주고 싶다는 소원), 어른의 경우에는 대게 더욱 복잡하고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 소원이나 환상의 속성이 복잡한 것 아니었던가.


p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대표적인 특징임과 동시에 대표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성적으로면 파악하려는 그의 논리.


p159 프로이트와 맺은 인연으로 인해 불운을 겪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와 절교하게 된 사람들이 그러했는데, 가령 젊은 제자였던 빅토르 타우스크는 용서할 줄 모르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낙심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기 추종자들 중에 적어도 여섯 명은 같은 선택을 했다. 이는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 죽은 자에 대해서는 오직 좋은 것만을 (말할지어다).[De Mortuis nil nisi bene (dicendum).]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특별하게 행동합니다. 그 사람에 관한 모든 비난은 참아버리고, 그 사람의 비리는 용서하며, "오직 좋은 것만을 말할지어다"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장례식에서 주는 추도사와 그의 묘비에 새기는 비명에서는 오직 그의 장점만을 들춰냅니다. 죽은 자를 존경하는 것, 비록 이제는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것은 어떠한 진리보다 우월하고, 살아있는 자에게 바치는 어떠한 경의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 지그문트 프로이드, 「빅토르 타우스크 Victor Tausk」-


   빅토르 타우스크(1879~1919)는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연적이라 한다. 그가 자살할 즈음 프로이트가 쓴 글이 위의 글이다. 빅토르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출신으로서 다양한 재능을 지닌 자유주의자였다. 1908년 비엔나로 이주하여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1912년에는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 그녀의 연인이 되었다. 1913년과 1914년 무렵에는 그녀와 그 그리고 프로이드 사이에 삼각 관계가 성립되어 서로가 이 관계를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였다. 이 관계에 관해서는 폴 로아젠(Paul Roazen)의 『괴짜인 내 형제, 너, 프로이드와 타우스크의 이야기 Animal, mon frère, toi, l'histoire de Freud et Tausk』(Payot, Paris, 1971)를 참조했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프로이드, 타우스크의 관계는 페테스의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에 각색되어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설임 (자살, 2006.3.30, ㈜살림출판사)


p165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현대 사회에서 프로이트가 가진 영향력은 크다. 정신분석이론이 적용되는 사례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될 듯하다. 인간이 무의식의 세계에 영원히 매료되어 있는 한.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영원한 아이


p171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 물리학자 라바이 -

⇒ 물리학자들 인간 피터팬, 작가들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죽음에 임박한 사람.


p184~185 뉴턴 역학에서는 에너지를 시간상에 정위할 수 있고, 어느 시점에서도 그 효력을 벡터의 세기로 표시할 수 있었다. 맥스웰은 이러한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을 분명하게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위치는 명백히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관계를 표현하지 않는 용어로는 물체의 위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공간에는 어떤 이정표도 없다. 공간의 어느 한 구역은 다른 모든 구역과 똑같다. …… 즉 우리는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 이러한 것들은 결국 세상이란 관계맺음 속에서 정의된다고 봐야 하는 걸까.


p194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 정도 수학을 무시했던 것은 수학보다 과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고, 다음에 설명하는 바와 같은 묘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수학은 수많은 전문 영역으로 분리돼 있는데, 그 하나하나는 우리의 짧은 생애를 쉽게 소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런데 물리학 분야에서 나는 어느 영역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금방 간파했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본질적인 것에서 주의를 흩트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수학이나 과학이나...라고 말하면 안되겠지만..수학은 우리 생애를 쉽게 소모시킨다. 아주 공감가는 말이다.


p194~195 중요한 주제를 골라내는 이러한 능력이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을 찾으려는 아인슈타인의 노력과 긴밀히 맺어졌다.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보다 사물을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란 생각.


p196 아인슈타인은 이런 문제들을 깊이 참구하고, 그가 상상한 우주선이나 기차, 자유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것들을 다양하게 변용하면서 생산적으로(generatively) 사고할 수 있었다. 마음속에 이같은 공간적 형상을 간직하고 이에 관해 다채롭고도 계발적인 방식으로 사고를 전개시킬 수 있었던 능력은 아인슈타인의 독창적인 과학 사상이 형성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훗날 이같은 ‘수수께끼 푸는’ 행위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사고의 중심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이든 말이든 언어의 세계는 나의 사고 기제에서 별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지이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내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와 근육 감각적인 요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 관습적인 어휘나 다른 기호들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과 결합 작용의 틀이 충분히 잡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이차적인 단계로서 애써 찾아야 했던 것이다.

⇒ 이미지, 형상에 관한 형이상학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사고. 재미있는 세계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p201 실무직은 나 같은 사람에겐 구원이나 마찬가지다. 학계에서 성공하려면 학문적 업적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만이 피상적인 분석에 만족하자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특허국 근무를 하면서 한 말이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면서도 뭔가 소득이 있었는지,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p222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조화로운 우주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조용한 사색가는 이제 세계의 상징, 폭넓은 존경과 뿌리 깊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 아인슈타인 전기 작가, 바네쉬 호프만.


p230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의 요지를 이해했고 결론의 상당 부분을 존중했지만, 그 이론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전 역학의 인과성을 부인하지 않고 완전한 과학적 설명의 가능성을 의문시하지 않는 좀더 심오한 방법으로 세상을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과학이란 가장 작은 세계에서도 질서를 가져야 했다. 그는 동료 막스 보른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복사(radiation)에 노출된 전자가 자유 의지로서 튀어나올 순간과 방향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정말 참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이렇게 생겼다면, 나는 물리학자보다는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도박장의 종업원이 되겠습니다.”

⇒ 다른 놀이를 하겠지. 아직은 머언 물리학의 세계.


p235 아인슈타인은 1929년 이후에는 물리학에 별달리 공헌한 바가 없었지만, 그의 업적에서 파생된 여러 이슈를 점차 분명히 이해했고, 과학을 삶의 다른 영역에 연관시키는 면에서도 통찰이 깊어졌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보다 전반적인 사색가로서 끊임없이 성숙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시대에서 언제나 독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데, 단지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뿐 아니라 과학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원숙하고 성찰적인 인간으로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 직관..아직 발달시켜야 할 것.


p236 과학과 인식론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점, 과학적 사유란 단지 상식의 확장에 다름아니라는 점, 과학자와 예술가는 모두 일상에서의 도피를 추구한다는 점, 과학자로서 그의 임무는 신이 마성적으로, 그러나 전혀 불가해하지는 않게 우주에 짜 넣은 구조의 주요 요소를 알아내는 데 있다는 점 등이었다. 그는 기탄없이 말했다.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철학적 색체가 가미된 아인슈타인의 발언은 어느 것도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있게, 그리고 인상적인 태도로 그런 주장을 했고, 덕분에 그의 주장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될 수 있었다.

⇒ 나도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무지 무지 알고 싶다. 각양 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조금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신의 생각을 아는 것이 핵심이다.


p238 만년에 이르러 아인슈타인은 세계의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어쩌면 놀라운 일일수도 있으나, 그는 이러한 요청을 잘 받아주었다. 그는 원자 에너지의 군사적인 사용과 평화적인 사용, 이스라엘에서의 유대인의 운명, 독일을 처벌하고 계속 감시해야 할 필요성,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 무기를 모두 없애는 일이 바람직하다는 입장, 맥카시즘 시대의 미국에서 시민의 자유가 줄어드는 상황 등 폭넓은 주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런 문제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견해가 과학과 철학 문제에 대한 견해보다 날카롭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도 그의 정합적인 세계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 우리나라에도 저런 매카시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있지. 시민의 자유가 줄어, 아니 억압당하는 이 상황. 견해의 차이라고 하기엔 말이 되지 않는. 


p239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물리 세계를 이래하는 데 필요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의 도약은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의 도약은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특징인 한계성과 미묘한 의미의 차이, 그리고 타협적인 성격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다른 질서를 갖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벌린은 “허수나 비유클리드 기하학, 양자 이론과 같은 중요한 발견의 경우는, 보통 사람들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 범주에서 분리될 수 있는 능력, 즉 원리상 자연어로는 상상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을 사색할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뉴턴이나 코페르니쿠스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은 조화롭고 통일된 우주, 물리적 인과성에 통어하는 우주에 대한 상을 간직했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사고 범주와 절연될 수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보다는 성과가 없었어도 세계 질서와 관련된 문제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이사야 벌린. 고슴도치와 여우. 여우는 많은 것을 찾아다니고 호기심이 많고 여러 종류에 관심을 갖는다. 고슴도치는 항상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어디에 속하지?


p239~240 벌린은 또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인(私人)으로서의 아인슈타인과, 놀랍게도 이방인을 잘 받아들이고 인류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아인슈타인 사이에 명백한 차이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그 밑바탕에는 연관성이 존재한다. 어쩌면 간디를 연상할 수 있을 만큼 아인슈타인은 가족과의 관계를 끊다시피 했고, 아들들을 멀리 했으며, 첫 결혼에서 낳은 딸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상 전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 물리적 본성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스스로 맺은 이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만치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 작업에는 익숙치않고 혼자서 일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 파우스트적 거래라. 대부분의 천재적이라 불리는 이들이나 놀랄만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그런 듯. 뭔가 이중적인. 모든 것을 보편적으로 다 잘하지는 않는. 아인슈타인..


5.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신동과 천재


p268 비평가 펠리시엥 파구스는 피카소 그림에 대해 그 순결성과 색채 및 주제에 대한 열정,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 그가 흡수한 폭넓은 영향을 언급했다. 이 젊은 재주꾼을 칭찬한 후(“그는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는데 하루에 세 폭의 그림을 그린다고들 한다.”)에 파구스는 예리한 경고의 잊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이런 성급한 때문에 경박한 기교의 대가에 그칠 위험이 있다. 다작과 풍작은 폭력과 활력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창조력이 왕성한 예술가가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 하루 세 폭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성급함일까? 내가 보기에는 아주 천재적 기질이라 보이는데.


p287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하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 도약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란 어떤 것인지. 당연, 주위의 반응으로 길을 잃지는 않지. 나름 상처를 받겠지. 그리고 상처로 길을 더듬 가긴 하겠지. 피카소의 일생을 생각해건대 약간 의외인 모습.


p309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 충격.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작품을 보는 것보다야 충격적인 작품을 보는 것이. 마비증상에서 일깨워야 하지만 마비를 일으키는 작품도 있다~!


p321~322 피카소는 모든 갈등, 스페인 내전으로 폭발한 사회적 갈등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과 성, 예술 창조에 관한 갈등까지도 화폭에 담아냈다.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세웠고, 프랑코의 파시즘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가치가 삶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토대인 예술가들은 인간성과 문명의 가장 숭고한 가치가 위기에 처한 갈등 상황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보일 수도 없고 보여서도 안 된다. 항상 나는 이렇게 믿어 왔다.” 이어서 그는 더욱 날카로운 말을 남겼다.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 오불관언=수수방관.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모른 척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불쾌해 안다. 그리고 개인의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융화하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모난 사람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잘먹고 잘사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따스한 사람인가!


p328 다른 창조적인 인물 역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피카소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특히 여인들이 그러했다. 피카소는 점점 더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해서 여인들이 몸과 영혼을 모두 희생하기를 요구했다. 첫 번째 부인 올가는 정신 이상이 되어 1935년에 죽었고, 가장 낙천적인 성격이던 마리 테레즈 발터는 1977년에 스스로 목을 맸다. 지성적인 연인 도라 마르는 신경 쇠약에 시달렸으며,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 참석이 불허되자 농축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1961년에 결혼한 두 번째 부인 자클린은 그녀가 소장하고 있던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을 세운 날 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리 게도는 피카소를 일컬어 ‘비극 중독자’라 불렀는데, 피카소는 연약한 연인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그녀들의 삶에 남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피카소가 결백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카소는 “나의 죽음은 배가 침몰하는 일과 같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질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앞서 프로이트와 관계된 사람 또한 그렇다고 했지. 그런 이유로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광기, 우울.


p330~331 하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초월해서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여러모로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경멸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피카소는 어린 시절에 일종의 협약, 즉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누이동생 콘치타가 죽었을 때 자신의 재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여러모로 전근대적인 면모가 완강하게 남아 있던 나라와 고향에서 자란 인물로서, 미신에 깊이 사로잡혀 있고 자주 두려움에 시달린 피카소가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댄 격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결국 자신 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얄팍한 변명의 장막을 마음속에 쳐놓은 셈이었다. 그는 예술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세속적인 관심사보다 자신이 작품과 생존을 우선시했다.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두려움 탓이지만, 그는 죽음에 관해서는 말하길 꺼려했고 다른 사람의 죽음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와 같은 완전히 자아중심적인 행동 방식을 차치하면, 그는 참으로 매력적이고 친절하고 관대한 인물이란 수도 있다. 물론 자기 마음이 내킬 때만 그런 모습을 보였다. 실로 작품에 방해가 되는 존재면 누구라도 희생시키겠다는 일념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가끔은 이런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 죄책감도 작품을 완성하려는 더 큰 열정에 흡수했을 뿐이다.

⇒ 특정한 관념에 사로잡히면 사실 어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도 대적이 불가한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트라우마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깊이 박힌.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Ogpr Stravinsky - 음악가이자 정치가


p335 모든 창조자들,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폭넓은 대중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한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주위 동료들 사이에서 적절히 처신해야 한다.


p337 극소수의 예술가만이 별다른 외부적 자극 없이도 장의 인정을 받을 만큼 운이 좋으며, 소수의 예술가만이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를 만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까지도 자신의 창조물을 대중 앞에서 정당화하는 일은 여성에게 더욱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잘하든 못하든, 열의가 있든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든,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일에 만만찮은 정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예술가들은 대체로 그 시대에서는 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듯. 시간이 좀더 흐른 후에야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그들을 찾아본다.


p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은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 위대한 창조자들은 걸작이든 태작이든 작품 자체를 다량으로 창조한다고 창조성 연구자인 딘 키스 사이먼튼은 증거 자료까지 디밀며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새롭고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로 많은 예술가들의 초기작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p379 앞에서 내가 10년 규칙이라 부른 규칙이 이 경우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즉,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 1만 시간의 법칙?


p383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학자나 수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은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은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나누다. 혼자서 말을 나누면 타인에겐 정신병자로 보일 거고..과거라는 것이 미래보다는 경험적 측면에서 얘깃거리가 많긴 하다.


p388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에 적절하게 활용한다.”

⇒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영감이 와봐야 판단을 하지.


p390 음악과 작곡에 대한 스트라빈스키의 철학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비슷한 시기에 엘리엇이 문학에 관해 정립한 사상과 영향력 면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기본 바탕의 정신은 비슷하다. 일관되고 정합적인 사상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지적인 포부가 크지 않았던 피카소와 구별된다. 엘리엇과 스트라빈스키는 둘 다 정치 성향이 보수적이었다.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 독일인 매니저에게 보낸 어느 편지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저는 공산주의와 마르크시즘, 소비에트라는 역겨운 괴물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무신론 등을 죄다 혐오합니다. 마음속 깊이 증오하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지만 급진적인 음악적 혁신의 가치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전통과 속박을 찬양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탁월하고 위대한 예술가의 원동력은 대담한 용기이다. 내가 이런 점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나는 대담한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거기에는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다.”

⇒ 스트라빈스키는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혐오했다면 그가 혐오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지. 기독교인이었나. 생각 외로 기독교인들이 보수성향이 많은 듯하고.


p390~391 스트라빈스키는 정치가 자신의 예술 작업을 방해하거나 조국 러시아의 운명에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면 정치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 엘리엇의 시 대부분이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반영하고 사생활의 고통을 기록한 것으로 읽히는 반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내재적인 논리에 따라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스트라빈스키는 음악과 음악 외적인 사건 사이에 별다른 연관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한 것 같다.

⇒ 스트라빈스키가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닌 듯. 러시아 운명에 관련된 경우에는 관심을 가졌다고 하니. 그의 음악은 당시대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이라고 하는데...스트라빈스키의 생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봐야 할듯. 생각보다 복잡하다. 법률 공부를 했고 그러다가 음악을 했고.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러시아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7. T. S. 엘리엇T. S. Eliot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p414 엘리엇은 파운드의 에둘러 말하기, 이미지의 파편화, 독자를 충격하는 병치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 에즈라 파운드는 20세기 영미시에 끼친 지대한 영향 때문에 '시인의 시인'으로 불린다. 이미지즘의 대표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방송으로 반미활동을 했다 하여 전쟁 후 체포당해 1958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억류되었다. 그러나 시인들의 운동으로 1960년 석방되었다.


p424 엘리엇은 자신의 위치를 예리하게 분석할 줄도 알았다. 옛 철학 스승인 우즈(J,H.Wood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지요. …… 저는 과작(寡作)인지라 많이 써서 유력한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 런던에서는 작은 책자 분량의 시 한 편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한편 한 편마다 완벽성을 기해야 하고, 그래서 각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관건일 테지요. 미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고향보다는 여기서 훨씬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 아주 조금만 쓴다..ㅍㅎㅎㅎ. 그것도 일단 중요한 작가가 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엘리엇도 저런 고민을 했구나. 생계. 예술이 직업이 될 수 없는 이들의 슬픈 현실인식.


p430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 비록 종교적인 신념을 공공연히 밝힌 만년의 엘리엇은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황무지』의 가치를 깎아내렸지만, 유럽과 미국의 어느 세대에 있어서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 황무지는 그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대전이라는 황폐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적절하게 팍 들었다.


p431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특히 젊은 독자들)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 사실 모든 작품이 그렇지 않을까. 해석이란 각각 해석하는 이 마음대로 하는 것. 어느 작품은 해석이 된다고 좋다하고 어느 작품은 해석이 안되서 좋다하고. 들쑥날쑥. 모두 자기 이해로 해석하며 읽는다. 아니면 아예 읽지를 않거나.


p437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 ㅍㅎㅎ 나는 위대한 시인은 못 되었고, 그럼 지금 소설을? 설마, 나는 아직 노년은 아니겠지.


p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모더니스트인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의 견해에 공명하면서,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 나는 번민도 잘 하는데. 창조가 안되어 완벽한 예술가가 되지 못하고 있구나. 성숙한 시인..본질적인 도둑질을 잘해서 포장할 것. ㅋㅋ


P444 엘리엇이 문학 이론에 기여한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일 터이다. 시인은 정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Objective correlative. 당연하다. 일상의 개인감정과 문학작품의 감정은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술이 개인감정의 직접적 표출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좀 노골적인 표현보다는 보다 절제된 표현이 감정을 더욱 자극하기는 한다.


P446~447 재능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을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젊은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거의 하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일찍부터 막스 자코브와 거투드르 스타인, 기욤 아폴리네르, 앙리 마티스, 조르쥬 브라크와 만나 어울렸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전념한 지 한두 해 만에 세르게이 디아필레프와 바슬라프 니진스키와는 늦은 저녁을 함께 먹고,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과는 작곡 기법을 서로 얘기하면서 칭찬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엘리엇은 비록 만년에는 조금 쌀쌀맞은 사람이 됐지만, 젊은 시절에는 이들 조숙한 천재들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일찍이 미국인인 콘래드 에이킨과 에즈라 파운드와 우정을 나누었고, 나중에는 윈덤 루이스, 리처드 올딩턴 올더스 헉슬리, 줄리안 헉슬리 등 1급의 젊은 영국인 예술가들과 교제했다.

⇒ 예전의 예술가들을 보면 그들의 교류활동이 참 부럽게 느껴진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시대. 나이와 이념과 종교와 국가를 떠나, 참 자연스럽게도 그들은 어울리던데.


p451~452 엘리엇은 언제나, 특히 시극에 관심이 많았다. 극에서 “우리는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신중하게 밀어넣는 성격적 패턴 이면의 패턴을 감지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환환 햇빛(기쁨)에 흠뻑 젖는 아주 드문 순간에만 감지할 수 있는 패턴이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p455~456 경계인이라는 느낌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함의한다. (공동체에 편안히 자리잡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경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 음...뭔가 애매하게 와 닿는다.


p456 분명히 엘리엇은 자신이 공동체의 아웃사이더, 타고난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해서 스스로를 일컬어 ‘이방인’이라고 자주 불렀다.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그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실상 그의 획기적인 업적은 그가 경계인임을 통렬하게 자각할 때 나왔다.

⇒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은 이들이 왜 이렇게 많아. 파우스트는 나한테 안 오나?


p457 엘리엇은 앞에서 다룬 현대의 거장들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을 집약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 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게다가 엘리엇은 저절로 경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생산적인 비동시성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었다.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설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간주곡2

p459 그들은 창조력의 원천을 잃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 위해 일종의 협약, 아주 인상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젊음을 유지하고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 스트라빈스키는 친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법정 싸움의 불씨를 지피는 데 주저치 않았으며, 엘리엇은 프로이트처럼 금욕적인 삶을 선택하고 동시에 가학적이라 할만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했다.


p462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에 게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 창작이란 것은 늘 끊임없는 생각을 요하는 일이라 본다. 그렇게 흘러가는 생각의 끝은 무한하리라.


8.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p468 용기 있는 성격에다 미학적인 모험을 추구하였던 이사도라는 당연하게도 무용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적인 혁신은 많은 사람의 추종을 불러올 만큼 숙련성이나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사도라의 성공 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무용 비평가 애그니스 드 말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다.”

⇒ 이사도라의 인생. 그녀의 스카프. 나 역시 무용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맨발의 이사도라라는 이름과 그녀 자신의 생애가 더 기억에 남는다.


p481 신들을 모방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신들의 춤을 추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람과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힘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춤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대 무용은 고집스럽게 추함만을 극화하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전통에 타격을 가하려는 것도 아니다. ……표현주의적인 무용의 장식적인 형식에 대한 반역이 일어난 것이다. 대단히 엄격한 간소함의 시대가 온 것이다.

⇒ 당시 그레이엄이 속한 데니숀 무용단은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려 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주제를 담아 내려 한다. 그레이엄 역시 자신의 무용에 표현하려는 것이 삶이라고 했다.


p494 그레이엄 무용단의 일원이자 나중에 그레이엄의 전기를 쓴 에르네스틴 스토델은 이렇게 쓴다.


    독무가 마사 그레이엄을 기억하면, 거역할 수 없고 신비로운 감동의 영상이 되살아난다. 깊이 움츠렸다가 갑작스레 숨을 토해내는 듯한 간결하고 힘찬 몸짓, 팔다리의 가볍고도 신속한 놀림, 좌우로 급히 움직이는 동작, 발끝을 치켜 든 자세에서의 도약, 허공을 가르는 발차기 동작, 군더더기 없는 착지와 빠른 자세 회복 등 신비로울 만큼 매혹적인 동작은 우리의 신경계를 직접 자극한다.

⇒ 마사 그레이엄의 춤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무용이나 몸짓으로 행하는 예술에 대해서는 별로 경험을 해보지 않았지만, 민노래에 맞춘 몸짓패의 움직임에 감탄한 적이 있었던 기억은 있다.


p498 1930년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무용의 문제에 대해 길을 찾아야 할 사람들 입장에서 내놓을 해답이란 이 땅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황량함과 비옥함이 참으로 흥미로울 정도로 대조를 이룬 이 땅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후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무용가는 미국인 관객에게 빚을 지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에 걸맞는 힘을 가진 예술을 낳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던컨이나 데니스에게는 팔을 들어올리는 것은 곡물을 재배하는 것을 뜻하고 손을 흔드는 것은 비가 내리는 것을 암시했다. 팔은 반드시 곡물이 되어야 하는가? 손은 반드시 비가 되어야 하는가? 손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손이 다른 어떤 것의 빈약한 모방에 불과한 게 아니라 손 동작 자체만으로 얼마나 광대한 특성을 의미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극적인 힘은 에너지와 활력에서 나온다.

⇒ 아. 클리셰. 그레이엄이 말하는 것이 문학에서의 클리셰로군.


p517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레이엄의 무용 동작 실험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 그레이엄과 함께 무용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나 그레이엄 무용단이 20세기 중반에 창조한 작품에 대한 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은 후기의 보다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작품의 초기 버전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 내가 신체-운동지능이 부족한 이유를 알았다. 나는 사유는 할 줄 아는데 직접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지 않으니 그것이 생겨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제 매일 좀 달려볼까?


p523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그레이엄


    그레이엄도 다른 사람들의 구상과 이미지를 원용한다는 구상과 이미지를 원용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 행동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그것을 포착해야 하는데 늘 어영부영 있다가 다 까먹어 버린다. 좀, 바로 그것을 포착해서 쓸 수 있는 능력. 메모. 메모가 안되니...


p524 그레이엄은 안무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억에 의존합니다. 내가 인생을 이해한 방식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한 방식에서 많은걸 얻지요. 우리가 읽고 마음 깊이 흡수한 것이 보석처럼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겁니다.” 무용을 시작하는 것은 다양한 느낌으로 왔다. 그레이엄은 그것을 끔찍하다고, ‘거대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는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가 그녀 면전에서 했던 말을 반복해서 말하길 좋아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

⇒ 기억에 의존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기억이 스르륵 사라진다. 슬프다. 아, 이 얼마나 공감되는 말인가. 모든 사람들이 재능을 타고난다. 다만 지속되지 않아서 문제지.


p531 그레이엄은 이 기사(은퇴기사)에 격분했다. 바로 다음 날 그녀는 기사를 정면으로 부인했고, 팬들의 갈채를 받으며 무용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은 은퇴라는 기정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그레이엄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의 반전에 대해 냉정하게 숙고할 수 있었다.


     그 결정은 내 몸을 아프게 했다. ……심신이 안정될 때까지 시골에 은거해야 했다. 누군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마사, 당신은 신이 아니예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인정해야 해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고 있던 사람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 결국 나는 사람들이 나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다면 춤추기를 바라지 않겠다. 적어도 춤을 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춤추는 이가 더 이상 춤출 수 없을 때. 나는...


p536 20세기의 100년 동안 현대 예술을 형성한 다섯 예술가를 고른다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벨라 버르토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마사 그레이엄이라고 생각한다. 무용과 무대 공연에 관해서라면 20세기는 그녀의 시대였다. 그리고 다섯 명의 거목 중에서 그레이엄이 해당 예술 분야에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표현 방식이나 기법, 내용, 시점 면에서 다른 어떤 예술가보다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동료 애그니스 드 밀

⇒ 커다란 변화. 나도 문학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켜봐? 도대체 뭘로?


9.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p545~546 종교와 사회 및 정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검열이 무척 심한 편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초자아가 강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문제가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마틴 루터 킹, 장 자크 루소, 에이브러움 링컨 같은 이런 별종의 인간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반추했으며,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려고 했다.

⇒ 초자아가 강한 것인지, 자아가 발달하지 못한 것인지.


p550 다시 한번 가족을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 간디도 아인슈타인도. 아, 아동교육을 얘기하면서 자식을 고아원에 버린 루소도 있다.


p554~555 간디는 이처럼 가혹하고 단단한 현실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유혹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는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이제 능숙한 대중 연설가가 되었다.

⇒ 간디는 초반엔 그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고. 뒤늦게 급변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디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념을 정립하고 나면 왜 가정은 가족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의 조화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그렇긴 하지..


p555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른이 된 시기는 인간이 활동의 중심에 서는 시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간디는 인도의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성공한 변호사로서 그는 윤택하게 살면서 안락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유능한 직원도 많이 둘 수 있었다. (그는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고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했다. 그는 타날 인도 국민회의와 인도 교육협회에서 에소테릭 크리스턴 유니온과 런던 채식주의자 협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 속해 있었다.


p556 바나프라스타(Vanaprastha) : 힌두교에서 바람직한 삶의 원형으로 간주하는 인생의 네 단계 중 3기에 해당한다. 1기는 독신학습기로서 결혼하기 전까지 경전을 공부하는 기간이고, 2기는 결혼가정기로서 경전 공부가 끝난 후에 결혼해서 직업과 가정적 의무에 충실하는 기간이다. 3기가 바로 산림은둔기로서 이때는 가정의 의무를 모두 완수한 후에 홀로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은거하여 종일 명상에 전념한다. 4기는 유랑승려기로서 모든 업의 끈을 잃어버리고 유랑하는 탁발승이 되어 해탈을 찾아 나선다.

⇒ 왜 애시당초 가정을 꾸리지 않고 승려가 되면 안되는가? 이 단계는 일반적으로 50세에서 74세까지의 기간이라 하고  집을 떠나 숲에서 살면서 엄격한 금욕과 고행을 실천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부 간의 성관계는 금지되며, 남편은 면도도 하지 않고 나무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는데 아내도 역시 남편을 따라 모든 사치스러운 습관을 포기하고 옷을 잘 차려 입지도, 헝클어진 머리를 빗지도 않는다고 한다.


p558 그는 오직 작은 공동체에서만 실행이 가능한 단순한 삶,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금욕적인 사람을 요청했다.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뿐인,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 물질주의는 늘상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그러나 물질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


p560~561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적 창조자들은 주로 개념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반면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행위는 그들의 사명을 실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표현의 매개이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겠당.


p573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p575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간디는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강조되는 진리와 도덕성, 그리고 영적인 갱생에 대한 추구가 자기 존재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간디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체에 봉사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별개로 취급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넒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지식과 지혜는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마땅했다.

⇒ 규모와 상관없이 이 세상은 공동체다. 마땅히, 당연히 진리와 지식과 지혜가 추구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삶이 모범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p584 누군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간디가 가난하게 사는 데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다.”

⇒ 이 시점에서 이 말이 왜 꽂힐까. 간디의 가난한 생활방식에 대해 세속적인 관점에서 평가한 바라고 하는데, 그냥 웃지요.


p589 간디와 가족들의 관계, 특히 자식들과의 관계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간디는 오랫동안 아내와 갈등을 빚었다. 아내에게 글을 배우라는 요구(보복심리 탓인지 간디의 아내는 끝까지 문맹으로 남았다)와 자신의 말(침실 변기를 청소하고 불가촉 천민을 공동체에 받아들이라는 말)을 들게끔 하는 문제도 그런 갈등 요인이었다. 그녀가 병이 났을 때 간디는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상식이나 의료법보다 자신의 치료법을 앞세웠다. 그는 아내 카스투르바이를 마지못해 존중했으며 자기 나름으로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간디와 함께 한 그녀의 삶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 여성의 위대성이 가족에게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면, 즉 아이를 잘 길러내어 유명한 사람이 된다든지, 남편을 잘 보필하는 측면에 맞춰져 있다면 남성의 경우 가족들과의 관계는 무시하고 개인적인 성취와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크다. 그리하여 결국 가정이란 것은 무시해도 되는 듯, 가정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 대의를 위해서라고 하는 논리.


p600 간디는 비폭력을 신봉했지만, 점차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암시했다.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즈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 자유를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p624 전형적인 창조자는 혁신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흐름(몰입의 경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특별한 계약, 즉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으려 한다.


p628 전형적인 창조자 유형의 인물들을 실제로 자신감과 기민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근면함,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사교생활이나 취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일에 몰두하다가 한숨 돌리는 정도의 주변적인 의미밖에 없다.

⇒ 도대체 해당사항이 없네.


p635~636 이들 모두가 단호하게 경계인의 위치에 있었고 이런 위치를 견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할 태세가 되어 있었지만, 이들이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얘기다. 적어도 두가지 패턴이 더 있다.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p646~647 어쩌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혁신적인 이론은 처음에는 의혹을 받았지만 물리학 공동체에서 신속하게 수용될 수 있었다. 반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분야의 구심적인 특성은 젊은 세대가 곧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업적을 낼 수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시자와 경쟁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음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이 겪었던 일은 기존의 확립된 분야에서 다른 패러다임 창시자가 겪었던 일과 같다. 그는 곧 자신의 이론을 쉽사리 터득하고 여기에 기반해 새로운 이론을 세웠던 젊은 과학자들에게 추월당했던 것이다.

⇒ 패러다임의 속성이 늘 그런 것 아닐까.


p663 파우스트 전설이란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점에서 특별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통념의 가장 유명한 판본일 뿐이다. 물론 이런 통념은 사소한 의미에서 사실이다. 전문 작가나 공연가로 계속 활동하려면 자신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하지만 좀더 극적인 의미에서는 동화같은 분위기도 뉘앙스도 풍긴다. 어쨌든 결국 우리는 창조적인 인물은 개인적인 신이나 정령과 결탁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 창조적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에필로그 - 현대와 현대 이후


p676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영국의 사회비평가 레너드 호브하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 우리가 허용했던 것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세상, 기본적인 안정성이 사라진 세상, 문명의 두터운 껍질을 뚫고 갑자기 권력에 대한 야만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냉담이라는 배후의 힘이 드러난 세상이 되었다.” 역사가 윌리엄 파트의 말은 더욱 단호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분명해졌다. 그 효과는 아직도 소진되지 않았다.”

⇒ 그 사건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그 사건 이후 파급된 여러 가지들을 보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p677 보들레르(예술의 현대적 특질을 정의하며, 화가 콩스탕댕 기에 관한 글에서)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현대성이란 덧없고 우연한 것이다. 이게 예술의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 그래, 현대성이란 것이 뭐 따로 있는가. 세대가 돌 때마다 그들에겐 늘 자기 시대가 현대였다.







3. ‘내가 저자라면’


■ ‘열정과 기질’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일곱 명의 창조적인 사색가/이 책의 목표/구성적 주제/동시대인들에 관한 연구/한 시대의 조명/현대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창조성 연구와 지능 연구/창조성에 대한 인지적 접근/성격과 동기부여의 관점/역사계량학의 관점/창조성에 대한 나의 접근법/구성적 주제-재론/구성적 틀/경험적 조사 문제/새로 발견한 주제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첫 제자들/성장 배경과 유년 시절/프로이트의 다재다능함/'최초'의 경력:신경학/샤르코와 정신의학에의 길/고독, 그리고 친밀한 친구들/프로이트가 창조적 도약을 이루기 직전의 심리학 분야와 장(場)/프로이트 혁명의 주요 개념 꿈의 해석: 1900년의 프로이트/빈의 배경/지도자로서의 프로이트:조직의 확대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원한 아이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들/분야의 전문 지식 익히기/과학적 배경:갈릴레오에서 로렌츠까지/아인슈타인의 '객체 중심적인' 정신/특수 상대성 이론이 나온 특별한 해/상대성 이론:즉각적인 운명/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다:두 가지 특징/일반 상대성 이론/물리학의 주류를 거부하다/직관적 지혜와 성찰적 지혜

간주곡 1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신동/신동 피카소/파리의 젊은 예술가/「아비뇽의 처녀들」:실험적인 양식을 향해서/입체주의를 낳은 동반자 관계 /입체주의 이후:유명 인사로서의 삶/피카소 스스로 걸작으로 인정한 작품「게르니카」/노년기에 이른 신동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예술 창조의 정치적 측면/러시아인의 유년기/중심지의 음악/ 초창기의 성공과 운명적인 만남/발레곡의 거장이 되다: 「불새」와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린 소리/「봄의 제전」:공연과 그 여파/시학에서 정치로 /「결혼」:또 다른 종류의 걸작/과거의 음악으로부터 얻은 신선한 자극/사고와 인격의 성국/마지막 업적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황무지』의 재발견/엘리엇의 성장 배경/하버드 대학교와의 불화/새로운 삶/두 시인이 힘을 합치다/유럽에 정착하다/『황무지』:작시(作詩)과정과 배경/『황무지』에 대한 반응/공인으로서의 엘리엇/중년의 문학인/만년의 엘리엇

간주곡 2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세기 전환기의 무용 분야/세기 전환기, 마사 그레이엄의 미국/새로운 경력/새로운 무용/현대 무용의 애매성/현대 무용을 장려한 장(場)/공동작업 시도/1930년대 초반의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미국적 무용을 창조한 시기/인생의 굴곡과 부침/무용가의 삶/쇠퇴와 갱생/그레이엄의 업적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영국 통치하의 인도/도덕적인 소년 간디/선택의 연속/남아프리크에서의 성숙/인도의 현지 사정을 알아가기/사티아그라하의 원칙/간디의 개인적인 측면/민족과 세계의 지도자 / 만년의 간디: 인간과 전설

간주곡 3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구성적 틀-재론/전형적인 창조자의 초상/주요 쟁점-재론/비동시성 평가/새로 발견한 주제/남은 문제들

 

에필로그 - 현대와 현대 이후

옮긴이의 글

 


 열정과 기질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7명의 인물을 다루며 풀어 가고 있다. 저자는 일단 우리시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 7명을 찾아낸다. 저자는 이들 7명에게서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특성을 이해하며 그들의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이해함으로써 창조성의 유형을 찾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세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7명이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들의 지적능력과 성품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서의 그들이 성취한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조적 행위의 본질에 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한 성품과 조건이 20세기 창조적 인물들의 일반적 특징이며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현대 시대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 저자는 제1부에서 창조성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라는 제목 하에 책의 목표와 구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되는 제2부에서는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7명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이루어낸 작업을 살펴본다. 특히 프로이트에서는 그가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하여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을 풀어내는 것이 중점이다. 아인슈타인에 관해서는 그가 유년기의 개념 세계로의 회귀에서 그의 이론을 도출하였다는 관점을 견지하며 그에 관해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피카소에 대해선 유년기의 비상한 재능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에 관해서는 그의 음악적인 창조활동과 관련하여 그가 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고 그 성과를 비평가들이 검토하는 과정에 스며 있는 정치적 요소를 중점을 두고 살펴보고 있다. 엘리엇은 현대의 창조적 인물이 지니는 경계성을 고려하며 살펴보고 있다. 그레이엄은 남성 위주의 창조 세계에서 활약한 여성이라는 점과 그녀 자신이 철저히 미국인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점을 중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간디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의 인간관계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제3부는 창저성의 조건으로 연구자들의 사례를 통해 도출한 창조적 도약의 특징을 설명하고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한 시대에도 유용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쟁점에 관해 다루고 있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에드가 바레즈가 했다는 말.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

 마사 그레이엄의 이야기 중에 나오는 부분이다. 깊이 와 꽂히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인물평이나 인물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를 하고 있어 감동적이었다는 느낌보다는 이 사람이 이랬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런 일도 있었군 하면서 각 인물들의 생애를 곱씹는 맛이 좋았다. 내용의 전개가 전반적으로 비슷했기에 어떤 특정한 부분을 고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특정 인물의 생애에 대한 연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할 뿐이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들 창조적인 인물들의 파우스트적 거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이들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저자가 결론내리는 창조성의 조건들은 재미있는 견해라고 생각들었다. 물론 공감되는 부분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통상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다른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냈다는 것이 아마도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긴 할 것이다.


■ 보완점


  이 책의 제목은 왜 열정과 기질일까. 창조성은 열정과 기질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처음 시작할 때 무심히 넘어갔던 제목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제목이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열정과 기질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다는 얘기다. 굳이 끌어다 붙이면 되겠다 싶었지만 원저가 CREATIVE MIND (창조적 마인드)임을 확인하고 나의 공허한 노력에 헛웃음이 났다.

  열정과 기질이 번역과정에서 출판사의 입장에서 바뀐 제목으로 보인다. 그러나 열정과 기질이란 제목이 더욱 책이 판매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저자가 원래 지은 제목과의 매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아예 처음부터 Creative Mind(알았어야 했다. 이것을 놓친 것은 나의 책임이다. 사실 읽으면서 무심히 넘겼다는 것이 맞다.)라는 제목이었다면 나의 생각은 보다 그에 맞는 입장으로 책을 읽어나갔을 것으로 본다. 각 인물들의 창조성의 조건과 특질들을 찾아내는 것 말이다. 물론 그것이 바로 각 인물들의 열정과 기질에서 기인한다라고 말한다면~할말은 없다. 그러나 열정과 기질이란 좀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기질이 무엇인가라는 개념정의부터 말이다. 기질의 종류는 무엇이며 기질이란 것이 인간에게 함의하는 것은 무언가라든가.

  어쩌면 이러한 제목에 대한 트집은 글에 대한 보완점을 찾을 길 없는 나의 하릴없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창조성에 대하여 글을 쓰겠다 하고 7명을 통해 그것을 추론해 내는 저자의 논리나 전반적인 부분에 딱히 반박할 수 없다. 인물들에 대해 내가 정통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핸 피상적 이해로 인해 저자가 주장하는 사례를 통해 아, 그런가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인물이 왜 이들 7명을 다루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려고 해도 서문에서 저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음으로써 나의 질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창조적 마인드를 쓰기 위해 기본적 개념을 생각하고 이 7명을 선택한 것인지, 정말로 7명을 선택하고 난 이후에야 창조적인 특질들을 찾아낸 것인지가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다른 인물들을 찾아내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간다면 창조성의 특질은 달라질 것인가? 나는 그 의문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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