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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09시 4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1943~현재)

하워드 가드너의 부모는 나찌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해 왔으며 가드너는 1943년에 미국 펜슬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겼고 1965년에는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한 뒤,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가 발달심리학을 전공하여 1971년에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교수이자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보스톤대학교 약학대학 신경학과 겸임교수, Harvard Project Zero 추진위원장 Work Project 책임자로 재직 중에 있다

<다중지능이론에 대하여>

1983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라는 저서를 통해 7개의 지능을 주장하였기에 우리는 그를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로 기억하고 있다. 가드너가 뇌의 인지분야에 관심을 갖은 계기는 병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사고 또는 질병으로 뇌손상을 입은 사례를 매일같이 접했고, 정상적인 아이들이나 재능 있는 아이들, 혹은 학업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드너는 피아제(Jean Piaget) 이론에 심취해 있었으며 피아제이론보다 더 깊인 인간의 정신을 파고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피아제의 이론이 인간의 인지부분에 대해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비네가 처음 만든 IQ지능검사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보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탐구하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8가지의 지능을 갖고 태어나며 높낮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8가지 지능은 다음과 같다.
①음악적 지능 ②신체-운동학적 지능 ③논리-수학적 지능 ④언어적 지능  ⑤공간적 지능  ⑥대인관계 지능  ⑦자기이해 지능 ⑧자연탐구 지능

다중지능 이론의 핵심

첫째모든 개개인은  여덟 가지 지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론은 어떤 사람에게 맞는  가지 지능을 결정하기 위하여 제시된 이론은 아니다하나의 인지적 기능에 관한 이론으로서 모든 개개인이 정도의 차이가 나겠지만  여덟 가지 지능을 모두 갖고 있다고 보며여덟 가지 지능이 합해져서 독특한 방식을 가진  사람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둘째모든 사람은 각각의 지능을 적절한 어떤 수준까지 개발시킬  있다가드너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만약 적절한 여건(용기좋은 내용좋은 교육) 주어진다면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취를   있다고 주장하였다

셋째여덟 가지 지능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방식으로 함께 작용한다지능들은 항상 서로 교류하면서 작용한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중지능 이론에서  지능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지 이들을 각각으로 분리하여 어떤 특출한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계발하자는 것은 아니다왜냐하면 이들 여러 지능들은 서로 협응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넷째 지능 영역 내에서도  지능을 향상시킬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읽지는 못하지만이야기를  잘하거나 다양한 어휘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운동장에서 달리기는 못하지만기민한 행동을 요하는 작업은 잘하는 사람도 있다다중지능 이론은 개개인이 가진 독특한 지능을 발휘할  있도록 다양하고 풍부한 방법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지능들 사이의 관계를 통한 지능 향상 방법을 추구한다.

저자에 대한 나의 생각

하워드 가드너의 노력으로 인해 나는 나를 좀 더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다중지능이론을 처음으로 들으며 이 검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지능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으며 나의 1등 지능으로 나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이런 검사의 유효성을 두고 분분한 의견들이 많이 있지만 하워드 가드너의 계속되는 연구가 기대되는 바이다.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5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며 창조성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역사와 창조성에는 별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인식하는 역사는 항상 과거라는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 역사를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바라 본다면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다. 나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창조성을 길러야 하는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생각이 궁금하다.

5 세계 국가의 국부의 순서는 창조성의 지표인 특허출원 총량순위와 일치하며, 조직과 기업은 감동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상품과 시스템을 얼마나 선보이느냐로 그 존재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7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창조성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가 된다.

8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9 ‘10년 주기론은 그 중의 하나이다.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13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

15 뜻이 묘하게 얽힌 탓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art)’창조성(creativity)’이라는 단어를 비슷한 뜻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실은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술에 있어서 창조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17 1부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새로운 연구 방식은 우선 개인의 발달과정을 연구하고, 그런 다음에 한 개인이 활동하는 특정한 분야, 혹은 특정한 상징체계와 그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기성 권위자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1.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37 창조성의 종류가 단일하다는 생각은 신화에 불과하다.

38 게다가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내 안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한곳에 집중하여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아이가 있기 때문일까?

40 처음부터 이런 요소들을 소개하면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42 관습적인 설명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본적인 이해 방식을 찾았다는 말이다.

>내가 지향하는 바이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이해 방식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나는 전자도 어렵지만 후자도 어렵다. 왜일까?

48~49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49 최근 프랑스의 혁신적인 이론가 미셸 푸코는 역사적 시대는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보통은 무의식적인) 가설들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주장했다. (중략) 물론 이러한 뼈대는 고정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지만, 거의 동시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59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였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어쨌든 상투적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59~60 길포드의 도전적인 시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상당한 논쟁과 실험을 거친 후에 다음 세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창조성은 지능과 다르다. (중략) 다른 두 가지 결론은 모든 지능 검사를 둘러싼 고전적인 주제와 관련된다. 창조성 검사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사실 창조성 검사는 시사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아직 그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다. (중략) 하지만 인지과학(및 인접 학문)분야의 학자들은 창조성 검사에서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62 연구자들은 베이컨(BACON)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중략)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귀납과 일반화 과정을 통해 많은 과학 법칙을 재발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중략) 하지만 BACON과 과학자들이 동일한 과정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지적했듯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지과학자가 선호하는 특정 형태의 문제와 자료를 취급할 수밖에 없으며, 미리 프로그램으로 주입된 알고리듬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과학 문제를 푸는 인간은 문제 자체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무한한 자료 가운데 문제 풀이에 적절한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료를 분석하는 방법을 확정해야 하고, 필요하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분석법을 스스로 고안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내면의 심리를 샅샅이 해부하여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전으로는 인간의 표피만을 흉내 낼 수 있을 뿐이다. 인간 자체가 항상 미지의 영역인데 어떻게 프로그램화 시킬 수 있으며 알고리듬을 주입할 수 있겠는가?

63 이러한 연구는 대상 인물의 관념 체계에 주목하고 인지과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모델을 활용하여 대상 인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 전통의 전기물과 구별된다.

65 버클리 성격 연구소가 수행한 이 방면의 대표적인 연구에 따르면,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66 우선 무의식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창조적인 행동의 원동력과 의미는 창조자 본인도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66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적인 인물은 리비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승화시켜서 글쓰기나 그림, 작곡, 혹은 과학 탐구와 같은 ‘2차적인목적을 추구한다.

67 프로이트의 관점은 뛰어난 예술가나 과학자를 평범한 예술가나 과학자가 구별하는 데 소용이 없다.

68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가는 권력과 부를 갈구하지만 이것을 직접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창조 행위에서 안식처를 구한다는 것이다. (중략) 스키너의 행동과학적 관섬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68~69 아마빌라는 고전적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창조성이나 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비교적 상투적인 결과만을 얻는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69 이렇게 몰입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경험을 사진을 찍으면서 해보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만 바라보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카메라와 혼연일체가 되기 때문에 피사체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피사체와 나의 카메라만 존재할 뿐이다. 암흑 속에서 피사체에만 조명이 비춰질 때 의식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그 곳을 향하기 마련이다. 눈으로 들여다 본 것을 마음으로 찍어내고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 한 장의 상이 맺힌다. 찰칵!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졸음 운전을 감수하며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한 번은 누드를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몇 십 명의 남자분들과 벌거벗은 모델을 촬영한다는 것이 다소 민망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촬영이 시작되면서 옷을 벗은 여인은 내가 아름답게 표현해내야 하는 피사체가 되어 있었다. 자연과 사람의 곡선과 색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다. 몰입의 즐거움을 사진을 통해서 배웠고, 이 순간을 경험하면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졌기에 많은 것을 털어냈고 건강해졌다. 글을 쓰면서도 그런 경지가 올지, 언제쯤 맛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105 수요 심리학회의 정수에서 빈 정신분석학회가 태동했고, 여기서 국제 정신분석학 협회 (IPA)가 탄생한 것이다.

>목요김밥회동은 회동으로 끝날 것인가? 발전할 것인가?

107 가족들에겐 이 재능 있는 소년의 요구가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방을 혼자 썼고 자기만의 책장도 있었다. 전용 식당이 따로 마련돼 있어서 다른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누이동생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거슬린다고 말하면, 집에서 피아노가 치워졌다.

>도대체 공부가 뭐길래!

115 히스테리는 팔다리의 마비나 경련, 정신맹(익숙한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등 비정상적인 신체 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서, 보통은 여성들에게 나타났다.

120 강력한 정서를 마치 물의 흐름을 막아놓은 댐처럼 막아버리면 히스테리 증상이 생기는데, 이 때 증상은 정서를 억누르지 않았을 경우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똑 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치료는 카타르시스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억제된 에너지를 발산시켜 증상을 제거하려고 했다.

124 돌이켜보면 플리스 역시 1890년대를 통들어 프로이트에게 두 가지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한 편으로 그는 거의 매일 프로이트를 격려하며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던 이론에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다. 플리스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면, 프로이트는 지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학문적 주제와 직접 상관이 있든 없든, 프로이트가 가장 마음 편히 느끼면서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잇는 친구였다. 프로이트를 격려하고 다독이는 이 역할도 학문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보면 프로이트 역시 플리스에게 비슷한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가 누구이건 간에 훌륭한 지원자나 조력자 역할은 필수조건이라 생각한다.

125 1895년에 여섯 아이 중 막내가 태어났고, 이후에는 무너가 결심한 듯 성관계를 그만두었다. 당시 그는 몸과 마음이 심하게 불안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 니코틴 중독, 만정적인 위장 장애에 시달렸다.

126 1900 11 25: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홈볼트의 앵무새처럼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야

127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분명히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더 큰 비극은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우에 도래한다. 고난을 나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으로 승화시키느냐 과거의 고통 속에 갇히느냐 또한 본인의 선택인 것이다.

129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의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130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플리스에게 자기 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진 대리석 서판이 있어야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1895 6 24,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가 꿈의 비밀을 밝혀내다.” 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 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

131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억압이 가장 중요한 방어 기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승화라든가 반응 형성, 투사, 전위, 금지와 같은 다른 방어 기제도 존재한다. 항상 의사는 이러한 다양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관찰하고 환자가 방어 자세를 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환자는 처음 병을 유발한 사건을 인식하고 방어 기제를 해소할 수 있다.

132 프로이트 자신의 기계론적인 어휘로 말하면, 그 목적은 자연과학이 되어야 하는 심리학에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 심리 과정을 정량적인 상태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 때 심리 과정을 규정하는 것은 미세한 물질인데, 이 물질은 서로 구별하고 명확하게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심리 과정을 더욱 명쾌하게 드러낼 수 있고, 설명상의 모순도 사라질 것이다.”

135 그러나 나는 <프로젝트>가 비록 부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죽을 때까지 모든 심리 기제를 물질적인 기초 원리로 설명해야 한다고 믿었던 유능한 신경학자이자 신경해부학자로서, 프로이트는 그와 같은 총괄적인 논물을 써야 한다고 느꼈음에 틀림없다.

137 1897년 무렵 프로이트는 진지한 마음으로 자기분석을 시작했는데, 이는 아마도 프로이트의 가장 고독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탐구 작업이었을 것이다. 수면 중에 꾼 꿈을 재료로 삼아 자유 연상을 시도하고, 되도록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고 연상에서 비롯된 표상들을 분석하였다.

137 꿈의 분석 과정은 또한 프로이트의 외로운 시절에 그에게 힘이 돼 주었다. “내가 내린 결론에 망설임과 의심이 생길 때마다, 아무 뜻도 없고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꿈을 분석해서 꿈속에서도 논리적이고 뜻이 분명한 심리 과정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밝혀낸다는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신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그는 꿈의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힘겹게 해독하고 있었다.

138 모든 꿈은 각기 하나의 퍼즐인 셈이었는데, 그가 퍼즐 풀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각각의 꿈은 사례별로 해명될 필요가 있었고, 그 해답은 꿈을 꾼 당사자뿐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을 보편적인 무의식의 표현으로 드러냈다.

139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첫 번째 책은 자기를 위해서 쓰라는 말과 같은 것일까?

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에 뿌리이며, 오이디푸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146 과학자들 가운데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밀한 영역과 언어와 논리적 설명의 영역에서 눈에 띄게 우수한 편인데, 이는 유능한 사회과학자나 행동과학자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147 그는 기본 원리를 주장하면서도 핵심적인 검증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하지 않았다.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 체계는 인문학적 성격에 가까운 편이어서, 온갖 분야의 학자들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153 하지만 이들 중에서 실천 방안에도 관여하는 학자는 매우 드물며, 처리 방법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지구 반대편의 간디처럼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 꿈 분석, 치료개입등 사람들을 돕는 데 실제로 사용되는 실천 기법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을 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치유를 갈망하는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치유법을 알려준 것이다.

>무릇 모든 이론은 이렇게 실천으로 완성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방법이 프로이트의 특이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론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반쪽자리이기 때문이다.

154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위대한 주창자였다. 일이십 년 전에는 수줍음과 오만함 때문에 발표를 망치곤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젊은 시절의 편지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던 유창한 언변을 구사하면서, 그는 매혹적인 강연자가 되었다. 별로 준비를 하지 안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각양각색의 청중 앞에서 역사와 예술, 당대의 독서물, 최근의 사건, 현재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의 관심사 등에서 적절한 예를 자유롭게 끌어들이면서, 친밀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로 폭이 넓은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청중의 반대를 예상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반대 목소리를 명확하게 밝히기까지 하면서 청중의 유보적인 태도와 비판을 무장해제시켰다.

>야호! 탄성이 질러지는 순간이다. 한 인간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의 나팔소리가 들린다. 프로이트는 그가 걸은 인생 자체의 길만으로도 이미 교육적이다.

155 프로이트는 모든 젊은이의 삶에 아버지의 역할이 다른 무엇과도 배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에 주목했었다. 아버지의 역할은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석학 운동 내부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띠었고, 프로이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그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결과를 빚어냈다.

>아버지의 존재….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다.

155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로 내가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프로이트의 칼 융에 대한 사랑이 놀랍다.

159 프로이트와 맺은 인연으로 인해 불운을 겪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와 절교하게 된 사람들이 그러했는데, 가령 젊은 제자였던 빅토르타우스크는 용서할 줄 모르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낙심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지 추종자들 중에 적어도 여섯 명은 같은 선택을 했다. 이는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놀랍다. 그들의 마음 속에 프로이트가 어떤 존재이었길래….이런 스승을 만났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160 프로이트는 확실히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19세기 부르주아 계층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은 청교도의 영국에서 생겨났을 테지만, 수백 년 후 빈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널리 퍼져 있다.

163 그는 사람들이 읽고 연구하고 논박하거나 추종하는 훌륭한 저서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자신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계속 성장해 갈 학회 조직과 정신분석학 운동 역시 유산으로 남겼다.

>인류에 적어도 이 정도의 유산은 남겨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65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 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영원한 아이

171 또 한 명의 존경스러운 물리학자 라바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나도 호기심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들의 호기심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차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겠지만 나의 호기심은 이들에 비하면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196~197 “나 자신과 나의 사고 방법에 관해 살펴보노라면, 공상하는 재능이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하는 재능보다 나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198 “나는 나무 판자를 들고서는 제일 얇은 부분만 찾고 구멍 뚫기가 쉬운 곳에만 송곳을 들이대는 과학자들을 참기가 힘들다.”

198~199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기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편집광다운 열정이 있는 과학자만이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다고 친구인 베소에게 토로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런 과학자는 그 자신의 말을 빌면 지위 상승이나 노리는 기회주의자에 대적해야 하고,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칸이 아인슈타인의 1905년 획기적인 논문에 대해 사용한 단어를 빌면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도전해야 한다.

219 프로이트는 자주 불평을 털어놓긴 했어도 자신이 얻은 세계적인 명성에 자부심을 느꼈고, 이런 명성을 오랜 세월 자기를 무시하고 조롱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화려한 대중적 명성에 편안하게 적응하지 못했는데, 일찍부터 명성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중의 인정과 각광을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대략 40대 후반 이후인 남은 반생 동안, 시간을 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을 힘겹게 물리치면서 자기만의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리학 분야가 양자 역학 방향으로 진행되는 추세를 바꾸기 위해서도 그만큼 인정사정 없는 투쟁을 벌여야 했다.

224 이후 6년 만에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아인슈타인과의 공식에 의거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위력적인 폭탄이 제조되었고 폭발 실험이 이루어졌다. (중략) 과학자로서 얻은 명성은 이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결과적으로 냉전 구조를 고착시켰던 무기를 개발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는 점으로 인해 더욱 커졌다.

>그때는 필요에 의해 만들었고 원하는 바를 달성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또 다른 위협의 수단으로 되었다.

230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230 “복사에 노출된 전자가 자유 의지로서 튀어나올 순간과 방향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정말 참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이렇게 생겼다면, 나는 물리학자보다는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도박장의 종업원이 되겠습니다.”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서로를 무척이나 존경했고 30여년에 걸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상보성객관적 현실에 관해 논쟁을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방의 견해를 뚜렷하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진심과 성의로써 상대방을 대했는데, 이 점은 프로이트와 그의 적대자들 간의 관계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관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 많은 인간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부모자식, 부부, 연인, 친구등 많은 관계의 형태가 이 룰을 따른다면 좋을 것 같다.

234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나 그의 마음속에는 과학이 있었다. 그는 차를 저으면서 차 찌꺼기가 컵 바닥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가운데로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런 형상이 생기는 이유를 전혀 뜻밖의 사실, 즉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과 연결시켜서 설명했다. 모래 위를 걸을 때도 그는 우리가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 마른 모래나 물에 잠긴 모래는 그렇지 않은데, 젖은 모래는 딱딱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과학적 설명을 찾아냈다.

>아인슈타인이 아인슈타인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237 오랫동안 아인슈타인의 비서로 지냈던 헬렌 뒤카스는 아인슈타인은 만약 북극곰으로 태어났더라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적어도 주변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38 아인슈타인은 겉으로 보면 모순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젊은이와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이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자는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신에 관해 사색했고,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개발을 고무한 평화주의자였다. 한때는 과학의 근본을 바꾼 혁신가였으나 만년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논박했고, 과학자이면서도 이론적 기준을 심미적인 아름다움에 두었다. 물리적 세계에 온 관심을 쏟았던 과학자로서 그는 시간을 초월한 문제와 시간 개념에 관해 숙고했을 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에 인간을 괴롭혔던 세속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장시간 고심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239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사고 범주와 절연될 수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보다는 성과가 없었어도 세계 질서와 관련된 문제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상 전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 물리적 본성을 밝혀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스스로 맺은 이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 만치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 작업에는 익숙치 않고 혼자서 일하는 스타일이다….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으로 독립된 인간이 아닐까.

5 파블로 피카소 신동과 천재

259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이 대목에서 과연 피카소가 우리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피카소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278 하지만 피카소에겐 현재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을 막는 무언가가, 아마도 어린 시절에 형식을 해체하도록 했던 것과 동일한 충동일 터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 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전례가 없는 깊이의 모험, 끊임없는 도전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거대한 도전보다도 내 인생을 잘 다지고 가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87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295 두 화가는 새로운 시도에 나서게끔 서로를 자극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의 엄격한 태도가 없었다면 지나치게 왕성한 창작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터이고, 브라크 역시 피카소의 창조적인 사례와 자극이 없었다면 온갖 종류의 대상과 시각 요소를 작품에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사진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324 피카소의 혼란스러운 사생활과 지속적인 예술적 다산성의 관계는 논평할 만한 가치가 있다. 피카소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정과 연인, 아이들 그리고 여름 휴양지를 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꾸준하게 새로운 양식과 대표작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328 피카소는 나의 죽음은 배가 침몰하는 일과 같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질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한 마디가 그의 인간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혹시 미술계의 유병언?

330 비록 우리 모두는 결국 인간으로서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예술가(혹은 과학자)의 업적을 그들의 인간적 약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피카소 작품의 풍요로운 성과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그의 파괴적인 성격쯤은 참아낼 필요(혹은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종의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우리가 다루는 현대의 창조자들은 누구도 성인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항상 실망스럽다. 이것도 나의 유아기적인 환상의 하나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름을 날린 사람치고 가까운 사람한테 인간적인 칭송을 받거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유산을 남겼기에 후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을 볼 때마다 그들의 인간적인 부분이 씁쓸함을 안겨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가이자 정치가

337 잘하든 못하든, 열의가 있든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든,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일에 만만찮은 정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42 어린 시절 음악 분야에서 겪은 결정화 경험이 이제 평생 동안의 과업이 된 셈이었다.

342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선에 위치한 거장

372 “흥정이 격렬한 것은 짜낼 이익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7 T.S. 엘리엇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404 훗날 그는 커다란 강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교감할 수 없는 뭔가를 품고 살아간다고 썼다.

>나는 정확하게 이 말뜻이 무엇인지 알겠다. 유년시절을 보낸 내 고향의 저수지와 산은 아직도 나의 꿈속에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고, 가장 큰 이별을 안겨준 슬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 숨쉬고 있으며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한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나의 유년은 풍부하다.

437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위안이 되는 구절이다.

438 일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야심과 욕망에서 나온 면도 있었지만, 손에 덜컥 쥐어지는 자유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한다는 공포에서 나온 면도 있었다.

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모더니스트인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의 견해에 공명하면서,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444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444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446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은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생존본능 아닐까?

450 누구나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할 테지만, 서정시인만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정시인은 아니지만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사람에 나도 포함이 될 것이다.

457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8 마사 그레이엄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468 이사도라의 성공 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486 이들 모두가 그레이엄의 지지자이면서 또한 추종자였는데, 그레이엄에게 추종자가 생긴 것은 아마도 그녀 스스로 끊임 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알리는 노력을 했기 대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레이엄의 호소력은 개인적인 성품에 기반한 측면이 컸을 것이다.

490 그녀는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거친 텍스처와 단속적인 리듬을 활용했는데, 미국 원주민들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낸 반복적인 특징이 현대 무용가의 의식적인 도구가 된 셈이다.

508 그레이엄은 여성 혹은 미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옹호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겉으로 비치는 자기 모습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비판을 견뎌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조 활동에 전념했다. 무용단의 매력적인 지도자였던 그녀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나 멀리서 알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

>진정으로 일에 집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523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마사 그레이엄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에 도둑질을 하지 않고 태어나는 작품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말은 그녀 아니고는 솔직하기 힘들 것이다.

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524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나의 삶, 그리고 작품 활동은 필연입니다….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 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9 마하트마 간디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542 역사가 윌리엄 쉬러의 말을 빌면, “이는 역사상 개인 소유의 무역 회사가 인구가 밀집한 광대한 아대륙을 철권으로 통치하고 사익을 위해 착취한 유일한 사례였다.”

>미개인만이 가능한 짓이다. 하지만 그는 문명의 탈을 썼기에 알아보기가 힘들다.

544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 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나의 능력도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마음의 성장에 주력해야겠다.

549 역설적이게도 유럽에서 3년을 지낸 경험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념과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지 않으면 자신의 또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의 진짜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551 이 경험을 통해 타협과 중재가 상대의 약점을 끝까지 파고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552 만년에 간디는 자신이 남은 인생 동안 매진하게 된 정치 운동이라는 사명의 기원이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지새운 그날 밤에 있다고 회고했다.

>나는 이렇게 평생을 바칠 운명을 만난 적이 있는가?

559 간디는 사티아그라하가 단지 수동적인 저항에 그쳐서는 안 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생명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563“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565 계속 파업을 이어가면서 요구 조건이나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의 급속한 증가를 감수라느니 차라리 간디는 단식을 결행했다. (중략) 그는 신념의 세기를 강조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 자기의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567 간디의 아메다바드 운동은 미래의 투쟁 방법인 사티아그라하의 생존능력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그가 어느 정도 통제력을 발휘하는 운동에서는 늘 볼 수 있었던 많은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처음부터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 투쟁의 중심부에는 신성한 맹세가 있다는 것, 참여자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자기수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운동의 대의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알린다는 것, 도덕적인 권위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관련자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압박하는 것, 그리고 관련자들 모두의 체면을 깍지 않는 선에서 타협안을 마련한다는 것 등이다.

572~573 간디는 행동이 바로 자신의 분야임을 증명한 셈이었고, 이 과정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573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574 그러나 무엇보다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의 저작이었다. 톨스토이를 읽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히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폭력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 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문구를 읽으니 톨스토이의 작품과 삶이 궁금해진다.

575 간디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체에 봉사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별개로 취급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넓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지식과 지혜는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마땅했다.

575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579 “사티아그라하의 실천자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그가 어떤 제약 조건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자발적인 복종이다.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복종이 공공의 행복에 본질적인 요소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복종하는 것이다.”

580 “6미터 높이의 밧줄 위에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줄타기 곡예사는 밧줄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주 작은 실수가….그에겐 죽음을 의미한다…..사티아그라하의 실천자는 이보다 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581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천명의 남녀가 생길것이라는 믿음이다.”

581 사티아그라하의 유별난 점, 그리고 사티아그라하를 인간의 위대한 성취로 만든 요소는 그것이 실천적인 철학을 대표한다는 점에 있다.

583 간디는 자신을 드높이겠다는 생각과는 상관 없이 스스로를 하나의 모델로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의심과 파괴적인 행동을 버리도록 고무하는 매개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적인 행동을 하고 글을 썼다. 3등칸 기차행, 실잣기, 지역 방언으로 말하고 글쓰기, 식이요법 감독 등 모든 일에서 그는 그것을 성찰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나이 들어서 읽는 간디의 행적은 더 감동적이다. 실천적인 철학을 내세우며 사티아그라하를 외친 그의 행동이 오늘날에도 필요함이 느껴진다.

592 “내가 독재자의 칼 끝을 무디게 하는 방식은, 더 예리한 무기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물리적으로 저항하리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내가 제시하는 영혼의 저항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이해할 터인데….이것은 그에게 모욕적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다.”

599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나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말도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도인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 런던에 온 것이 아닙니다.”

600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00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즈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604 그의 마지막 단식은 대영제국이 아니라 그 자신의 동포, 자신의 조국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견지하기 못하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힌두교 세력과 이슬람교 세력을 겨냥한 것이었다.

>슬프다. 이들의 종교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지만 먼 길을 돌고 돌아 힘겹게 걸어와보니 집안 싸움을 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592 “내가 독재자의 칼 끝을 무디게 하는 방식은, 더 예리한 무기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물리적으로 저항하리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내가 제시하는 영혼의 저항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이해할 터인데….이것은 그에게 모욕적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다.”

599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나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말도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도인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 런던에 온 것이 아닙니다.”

600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09 “아마도 후세대인들은 이런 인물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걸어다녔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610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마하트마 간디

>이 말 한마디면 내가 간디를 존경하기에 충분하다.

628 물론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러한 성격적 특색이 전통적으로 너무 긍정적으로만 이해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 자신감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 나르시즘과 합쳐질 수 있으며, 모두가 자기도취라 할 만큼 지나치게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편이어서 남을 희생하고라도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는 성형이 있다는 점이다.

629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체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모든 사람들도 이 영역을 갖고 있다. 단지 이 부분이 일과 연결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어린아이 한 명쯤은 간직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창조성은 이 아이를 얼마나 많이 내 놓느냐의 관점이 아닐까?

635~636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조건이 없었구나!

654~655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분석적으로 보면, 여섯 가지의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개인 내부, 분야 내부, 장 내부, 그리고 개인과 분야 사이, 개인과 장 사이, 분야와 장 사이에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모든 종류의 비동시성에서 면제된 사람들은 신동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모든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 역시 여기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몇몇 지점에서 비동시성만이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695 프루스트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말했다. 모두가 거장이 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맞는 말이다. 모두가 거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 평생을 풀만 뜯으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적어도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이 사실 궁금했었다. 나는 2011년에 다중지능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중지능이론검사를 통해서 다른 검사에서 알게 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이론을 접했을 때 굉장히 생소했으며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완성의 단계라기 보다는 완성중인 단계에 있는 이론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항상 숫자로 표현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이 검사의 접근방식은 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도 다중지능검사가 유치원 단계에서 적성검사의 일환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그 범위를 넓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어떤 적성검사도 그 사람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없듯이 이 또한 참고 할만하다.

<책의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

  1.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1.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1. 지그문트 프로이트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 파블로 피카소

  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5. T.S 엘리엇

  6. 마사 그레이엄

  7. 마하트마 간디

  1. 창조성의 조건

  1.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1부에서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에 대한 화두를 던질 때, 이 나이에도 창조성을 기를수 있을까 대한 궁금증을 갖고 이 책을 대했지만 별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위 사람들의 대표지능과 인물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제목 앞에 지능을 같이 표기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126 1900 11 25: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홈볼트의 앵무새처럼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야

160 프로이트는 확실히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19세기 부르주아 계층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은 청교도의 영국에서 생겨났을 테지만, 수백 년 후 빈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널리 퍼져 있다.

163 그는 사람들이 읽고 연구하고 논박하거나 추종하는 훌륭한 저서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자신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계속 성장해 갈 학회 조직과 정신분석학 운동 역시 유산으로 남겼다.

565 계속 파업을 이어가면서 요구 조건이나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의 급속한 증가를 감수라느니 차라리 간디는 단식을 결행했다. (중략) 그는 신념의 세기를 강조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 자기의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592 “내가 독재자의 칼 끝을 무디게 하는 방식은, 더 예리한 무기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물리적으로 저항하리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내가 제시하는 영혼의 저항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이해할 터인데….이것은 그에게 모욕적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다.”

599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나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말도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도인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 런던에 온 것이 아닙니다.”

600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592 “내가 독재자의 칼 끝을 무디게 하는 방식은, 더 예리한 무기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물리적으로 저항하리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내가 제시하는 영혼의 저항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이해할 터인데….이것은 그에게 모욕적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다.”

599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나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말도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도인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 런던에 온 것이 아닙니다.”

600 인도는 칼로 지배받고 있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칼의 힘으로 인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요? 노예 상태이지만 반역적인 인도와 존경받는 대영제국의 동반자인 인도 중에 영국의 슬픔을 공감하고 불행에 빠진 영국을 도와줄 인도는 어느 쪽이겠습니까? 자유 의지가 있는 인도인은 필요하다면 영국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인종이나 한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마하트마 간디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프로이트는 100년 이내에 인류의 가장 큰 변화를 준 3명의 인물에 꼽힐 정도로 미개척분야를 새로 개척한 탐험가의 수준이다. 그의 이론은 많이 접해 보았지만 그의 생애를 처음부터 훓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고집스러운 집념과 훔볼트의 앵무새와 같은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용기와 인내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기 나온 7명의 창조성을 가진 인물들은 나와는 극히 대조적인 부분을 갖고 있으며 그런 부분을 확인할 때마다 극히 초라해지는 나와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간디에 대해서 이미 많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숭고함의 자세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간디의 이름 앞에 마하트마라는 수식가 왜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간디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긍정적인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간디의 언행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련스럽다 싶을 정도로 그의 생각을 고집했는데 이는 여기 소개된 7명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디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편리함의 노예가 되지 않았고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긴 기간을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는 인간의 극기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보완점>

이 책은 위인전이 아니라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조성보다 업적과 생애에 더 시선이 간다.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이것은 책의 문제인지 나의 선입견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중지능과 인물의 생애와 업적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 보인다. 저자의 주장에 뭔가 부족한 점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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