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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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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11시 48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는 1943년 미국 펜실베니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이 어렷을 적 썰매

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의 부모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어머니가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태아 시절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았던 때문인지 사시, 색맹,

근시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나쁜 시력에도 불구, 독서를 좋아하였고, 음악적 재능이 있

어 피아노을 즐겨 연주하였다. 학창 시절에는 역사, 문학, 예술에 높은 재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하버드에 입학하였고, Jean Piaget의 이론에 영감을 받아 발달 심리학에 심취하였으며 신경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다.심리언어학자인 Roger Brown, 그리고 유명한 정신 분석학자인 Erik Erikson과 연구를 함께 하기도 했다. 1965년 하버드대에서 “미국의 은퇴주거단지” ( The retirement community)라는 논문 명으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65년부터 1966년까지 1년간 런던대의 경제학부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리고1971년 하버드대에서 사회 발달 심리학부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원에서 전공한 발달심리학과 자신의 관심사인 예술적 창조성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

을 계속했으며, 예술과 인문, 과학 분야의 창의성에 대한 연구를 위한프로젝트 제로팀을 주도

하면서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1981년 맥아더 프라이즈

펠로십 수상, 1990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루이스 빌 그로메이어 상(교육분야)를 수상했다.

이외 스페인의 the prince of Asturias Foundation에서 다중지능 이론 개발로 사회과학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2013 4Alverno College에서 교육이론가로 가드너의 탁월한 업적을 평가하여 Sister Joel Read Outstanding Educator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이태리, 그리스, 캐나다 등 전 세계 29개의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수상한 내역을 보면 가드너는 198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을 주기로 창조성 및 사화과학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그는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 이란 책에서 사례로 든 20세기 역사의 창조적 인물들의 공통점의 하나로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을 창조한다는 법칙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또한 쉼 없이 새로운 주제를 연구한 결과 10년 단위로 창조적 산물을 냈다.

 

1983년 발간한 <마음의 틀 Frames of mind>은 다중지능에 관한 첫 번째 저서로 이 책은 학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능(IQ)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사회적 분위기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다.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인간의 잠재적 능력의 전체를 이끄는 한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8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8
가지 지능은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으로 각각의 지능이 드러나는 정도를 조합하면 개인이 갖는 잠재력과 개성은 무한하다. 8가지 인간 지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뇌과학으로 더욱 풍부하게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가드너는 1972년부터 2000년까지 Harvard Project Zero (HPZ) Senior Director로 일해왔는데 HPZ 1967년 예술을 통한 교육을 개선하고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Nelson Goodman 교수에 의해 시작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가드너는 지속적으로 이 HPZ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HPZ는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영역에서 개인과 교육기관 차원에서 학습, 사고, 창의성 등을 이해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도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하버드대 심리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하며 아직도 끊임없이 저작을 쏟아내고 있다. 가장 최신작으로는 앱 세대, 오늘날 젊은이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친밀감 그리고 상상력을 펼치는 방식이 있다. 그는 오늘도 인류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연구를 통해 인간의 재능과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Ⅱ.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40,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59.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였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 올바른 것이 늘 정답은 아니다. 우리는 늘 올바른 답을 찾도록 train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창조적인 행위에 어색해하는지도 모른다.

 

63. 창조적인 사람은 바로 이 공간 안에서 당면 문제에 대한 적합한 접근법과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며, 효율적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배분하여 단계적으로 탐구해 나가고, 더 철저한 연구가 필요할 때와 손을 뗄 때, 그리고 연구를 지속할 때를 결정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창조 과정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65.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인지, 아니면 창조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이와 같은 긍정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창조적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와 사한 성격적 특색을 드러내는 것 같다.

 

67.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작가의 환상 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프로이트의 글)

 

68. 스키너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회 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는 일련의 탁월한 실험을 통해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실제로창조성이나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69-70. 한 개인이 어느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몰입 경험의 궤적이 변하게 마련이다. 한때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라 여겼던 일이 쉽게 달성할 만한 일, 심지어는 유쾌한 일이 된다. 반면에 오래 전에 성취했던 일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름대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음악 연주자들은 익숙한 곡을 정확하게 연주하면서 몰입 상태를 경험하며, 젊은 대가급 연주자들은 연주하기가 가장 어려운 곡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오랜 연륜을 쌓은 거장들은 익숙한 곡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거나,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주가 매우 어려운 작품을 다시 집어 든다.

 

이러한 설명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마치 도박판에서판돈을 계속 올리듯 통례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더욱 더 어려운 도전에 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71. 사이먼튼은 이와는 연구 방식이 다른 저서에서 뛰어난 창조자들은 대체로 왕성한 창조력을 보이는 법이어서 후세대가 존경하는 훌륭한 작품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신통찮은 작품도 많이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76.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 분야의 문화에 걸맞게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이를 완전히 터득하려고 하지만, 점차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제 그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선택한 문제나 주제를 다루기에 적합하고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체계를 고안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78.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 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엄격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자랐으면서도 호기심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성격이 강하고 반항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정해진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규칙대로 살아가는 대신 인생에 대해 좀더 모험적인 태도를 지니라고 격려하는 역할 모델을 적어도 한 명은 만났기 대문이라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편이 어떤 면에서는 살아가기에 좀 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유년기야말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유년기의 창조성 자본에 되풀이해서 의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 나의 유년기에 품었던 호기심들은 무엇이었을까? 요즘 들어 예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새로운 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나만의 고유한 특징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내가 축적했던 창조성 자본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79.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흔히 모차르트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 10년간 수많은 곡을 쓴 다음에야 훌륭한 음악을 연거푸 내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자들 역시 혁신적인 업적을 이루기 전에 최소한 10년의 수련기를 거쳐야 했다. 물론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인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또 다른 10년 후에 다시 한 번 중대한 혁신을 이루었다.

 

80. 창조적인 도약을 이룬 인물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탐구자이며 혁신가이고 사색가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수를 따르는 데만 만족하지 않으며, 선택한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가령 젊은 음악 연주자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자신의 맘에 들도록 곡을 다시 쓰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작곡 재능을 발휘한다. 선진 과학자들 역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지식에 만족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

- 결국은 나만의 시각으로 나만의 생각으로 나만의 노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창조성의 원천이 아닐까?

 

공공연히 권위에 도전하든 그렇지 않든,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 혁신가에 걸맞는 성격이 있다는 얘기인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역량을 갖춘 사람들은 대개 대담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그런 수준에 만족하거나 사소한 변화만을 꾀하기 때문이다.

 

82. 이제 일곱 가지 사례 분석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을 요약하겠다.

1)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 시절의 관심,

2) 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 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 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 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 역할 혹은 방해 역할,

6) 서서히 새로운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을 만들어 가는 모습,

7) 관련 비평가들의 첫 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 보통은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 더 포괄적인 성격의 두 번째 혁신.

 

83.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는 창조성 검사의 토대가 되는 만능적인 창조성 개념과 직접 충돌한다. 나는 한 인물이 활동하는 특정 분야에만 주목할 것이며, 창조적인 도약의 결과로 그 분야가 어떤 식으로 변형되는가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84. 그루버가 훌륭하게 보여주었듯이,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 다만 창조적인 인물이 요절한 경우에는 창조성 발휘가 단발성에 그칠 확률이 크다.

 

창조성은 문제 풀이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이나 새로운 질문의 고안도 포함할 수 있다.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여기서 시간상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과물이 나온 즉시 창조성을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백 년이나 심지어는 천 년이 지나도록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88.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식의 창조성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세가지 요소를 지적한다.

1) 재능 있는 개인,

2) 그 개인이 활약하는 특정 분야나 학문 영역,

3) 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

 

97-98.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하고, 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인 지원도 필요로 한다.

 

하나는 어린 아이와 보육자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좀 자란 후의 젊은이와 주변 친구들의 관계이다.

 

98. 이 연구를 통해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 무엇이든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결국은 창조자들은 창조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희생하였는지도 모른다. 일로 성취를 해보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어기는 것이라 괴롭고, 그래서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으며 괴로워하는 나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2,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110. 프로이트가 스스로 세워놓은 야심적인 목표에 강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였다.

- 창조자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역량 중 하나는 바로 자신감인 것 같다. 내가 분명 이 세상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 프로이트의 창조성 발현의 가장 큰 근간이었던 것 같다.

 

122. 한때는 세상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프로이트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면, 그것은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 결국 내 운명을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수적인가 보다.

 

125.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도달한 결론의 진가를 설명하면서 심한 감정상의 동요를 보였다. 한없이 우쭐대다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던 것이다.

- 위대한 인물들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감정의 업다운이 있었다고 하니, 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또한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132. 나 같은 사람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마침내 한 가지를 찾아냈다..심리학이다. 항상 나를 유혹하는 목표였는데, 신경증이라는 주제를 만난 지금은 한층 더 마음이 끌린다.

 

137. 1879년 무렵 프로이트는 진지한 마음으로 자기분석을 시작했는데, 이는 아마도 프로이트의 가장 고독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탐구 작업이었을 것이다. 수면 중에 꾼 꿈을 재료로 삼아 자유 연상을 시도하고, 되도록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고 연상에서 비롯한 표상들을 분석하였다.

 

꿈의 분석 과정은 또한 프로이트의 외로운 시절에 그에게 힘이 돼 주었다. “내가 내린 결론에 망설임과 의심이 생길 때마다, 아무 뜻도 없고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꿈을 분석해서 꿈속에서도 논리적이고 뜻이 분명한 심리 과정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밝혀낸다는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신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137-138.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소원이 위장되지 않고 명백하게 드러나며, 어른의 경우에는 대게 더욱 복잡하고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꿈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에서 자극을 받는데, 꿈 꾼 당사자도 젼혀 알지 못했던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꿈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의 외현적 내용을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잠재적 내용을 밝혀내야 한다.

- 꿈을 거의 꾸지 않는 나로서는 꿈을 통해 나의 내면을 알아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워진다.

 

139. 이러한 꿈들의 진짜 의미를 분석하고 낱낱이 밝히는 과정은 프로이트의 우수한 지능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분석 작업에 대한 전문적인 자격증을 획득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 더 많은 나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왜 자꾸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물어볼까? 그리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할 지를 궁금해할까? 그냥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고 나의 마음이 외치는 대로 움직이면 될 텐데 아직은 다른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같다.

 

155.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명예롭지만 고집스러웠던 고립에 관해 심정을 토로한 후에 이렇게 썼다.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159.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나이가 들면 새로 만난 사람과 감정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기가 어려운 법이고, 동년배 친구들을 잃게 되는 일이 많아지므로 이런 일에 무감각해져야 하는 것이다.

 

165.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서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69. 아이들은 다섯 살에서 열 살 무렵까지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면서, 신기하거나 두려운 현상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야외에서 산책하거나 밤에 잠을 자면서도 그 해답을 궁리하곤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사고 유형과 아이들의 일반적인 사고 유형이 유사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나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과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 나를 잘 아는 것 또한 나의 창조성을 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준다.  

 

171. 물리학자 리바이는 이런 마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93. 어쩌면 믿을 만한 친구나 애인들의 이론적 자극이나 비판이 없었다면,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혁신적인 작업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리라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생각의 핵심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지지를 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려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어느 경우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최종 결과물의 요체가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

 

194.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195. 아인슈타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한 사고를 할 때까지는 발달 단계를 거쳐야 했다.

 

198.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편집광다운 열정이 있는 과학자만이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다고 친구인 베소에게 토로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자는 그 자신의 말을 빌면 지위 상승이나 노리는 기회 주의자에 대적해야 하고,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칸이 아인슈타인의 1905년 획기적인 논문에 대해 사용한 단어를 빌면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208. 물리학의 표준 절차는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후에, 이로부터 원리와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정반대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에서 기본적인 물리 법칙, 가령 광속 일정의 원리를 우선 제기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현상을 추측하고 그 기본 원리를 다른 법칙과 연결시켰다.

 

209. 다른 사람이라면 실험을 통해 증명된 후에나 인정했을 법한 생각을 아인슈타인은 전제 조건으로 삼아 그로부터 추론을 전개했다.

 

216. 새로운 혁명적 과학 사상이 기성 세대, 즉 장의 권위자들에게 수용되는 일은 드물다는 토마스 쿤의 주장에도 부합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31.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그는 홀로였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과, 모종의 장대한 설계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232. 나이가 들면 연구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 세계적인 명사로 인정받기에 참으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찬란한 고립의 시기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과학 분야의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려면 젊음과 원숙함을 절묘하게 결합할 줄 알아야 하고, 이런 결합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나 가능하다. 경계가 분명히 구획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그 분야의 선행 연구들이 속속들이 이해하고 체화한 경지가 되어야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

 

233. 아인슈타인이 그들을 능가하고 다음 10년 동안 여기서 한층 더 전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참신한 생각은 젊음의 특권이요, 일단 지나가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재능이다.

- 젊음의 특권인 참신한 생각….나는 얼마나 젊음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걸까?

 

젊음과 원숙함의 결합은 창조적인 과학 천재의 고유한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선 그가 젊은 시절에 숙고했던 문제가 당시의 물리학에 적합했다는 점에서, 둘째 그가 공간적.시각적 상상력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이 그의 과학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우선 그는 세상의 흥미로운 현상에 대한 관심을 평생 잃지 않았다.

 

 

235.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보다 전반적인 사색가로서 끊임없이 성숙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시대에서 언제나 독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데, 단지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아니라 원숙하고 성찰적인 인간으로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되었기 때문이다.

 

236. 직관과는 다른 지혜라고 부를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238. 아인슈타인은 겉으로 보면 모순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젊은이와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이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자는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신에 관해 사색했고,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개발을 고무한 평화주의자였다. 한때는 과학의 근본을 바꾼 혁신가였으나 만년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논박했고, 과학자이면서도 이론적 기준을 심미적인 아름다움에 두었다. 물리적 세계에 온 관심을 쏟았던 과학자로서 그는 시간을 초월한 문제와 시간 개념에 관해 숙고했을 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에 인간을 괴롭혔던 세속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장시간 고심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239. 보통 사람들의 사고 범주와 절연될 수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보다는 성과가 없었어도 세계 질서와 관련된 문제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상 전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 물리적 본성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스스로 맺은 이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245.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내 논의에 배어 있는 몇 가지 주제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도약의 시기에 고립된 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론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받았다….두 사람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노력했는데, 어쩌면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에 다소 즐거움을 느낀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프로이트는 금욕적으로 성관계를 단념했고, 아인슈타인은 충만한 가정 생활을 일부러 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247. 유년기에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을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5. 파블로 피카소

252.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우연히 맞아 떨어져야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아이와 그 분야에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님과 사려 깊은 부모, 재주를 뽐내고 선보일 수 있는 풍부한 기회, 경쟁의 의무를 덜어주는 혜택, 대중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로, 특정 분야에서 공인된 아동이 발판으로 삼아 도약할 수 있는 일련의 장애물 등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전망이 있는아동이란 또래 친구들보다 이런 단계를 좀더 빨리, 그리고 무리 없이 밟아나갈 수 있는 아동을 가리킨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소리에 대해 아이를 방어해 주며,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255. 피카소는 이 같은 여러 영역에 골고루 재주가 있었고, 이들 재능에 두루 의존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262. 피카소의 전기작가 존 리처드슨은 이런 통념을 공박했다. 그는 피카소가 일찍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사실은 인정했지만 비범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느꼈고, 화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265. 피카소는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한하다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명료하게 느꼈을 터인데, 유년 시절에 이미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바 있다.

-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능력에 대해 높은 자신감을 보인다.

 

275. 여러 밑그림을 조사하고 X선 사진을 찍어 최종작을 연구한 결과 피카소는 인생을 준비하면서 꽤 많은 실험을 했음이 밝혀졌다. 여러 차례에 걸쳐 그는 작품 안에 자화상이나 서로 다른 표정의 젊은 여인을 배치했으며, 배경에는 조인과 나체 여인, 혹은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넣곤 했다.

 

277. 피카소를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한 대표작들은 개인적 의미가 깊이 담긴 사건과 정서를 보편적인 주제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

 

278. ‘인생은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던 피카소의 개인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그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인생과 같은 작품을 그리면서 자신의 길을 갔다.

 

278-279.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 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 결국 모험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것 같다.

 

279. 초상화가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자 피카소는 세기의 농담이라고 할 만한 유명한 말로 대꾸했다고 한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어. 결국은 스타인이 저 그림을 닮게 될 테니까.”  

 

283. 그는 형태를 변형하고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인간의 형태를 묘사하려고 무수히 노력했던 것이다.

 

287.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게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308. 티모시 힐턴은 피카소의 다채로운 연애경험, 미술 양식과 매체에 관한 다양한 실험, 보헤미안적인 삶과 부르주아적인 삶이 혼융된 생활 등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영감이 사라지는 현상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였다고 보았다. 어쩌면 피카소는 무의식적으로 인생의 판돈을 더 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카소가 작품 활동에서 늘 활용했던 방식이었다. 

 

309.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317,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

 

321,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가치가 삶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토대인 예술가들은 인간성과 문명의 가장 숭고한 가치가 위기에 처한 갈등 상황에 대해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일 수도 없고 보여서도 안 된다. 항상 나는 이렇게 믿어 왔다.” 이어서 그는 더욱 날카로운 말을 남겼다.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이다. …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325.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이 비평적 갈채를 받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피카소가 대담하게 도전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332. 분명한 것은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33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스트라스빈스키는 논객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불순한 음악가들은 언제나 민족적 단결이나 종교적 자유와 같은 음악 외부의 목적을 위해 음악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가라는 장인이 작업하는 소재인 가락과 리듬은 그 자체로는 목수의 대들보나 보석 세공사의 보석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342.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창조성 연구자 딘 키스 사이먼튼은 위대한 창조자들은 걸작이든 태작이든 작품 자체를 다량으로 창조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 자료를 모아 놓았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74. 탁월한 창조자들은 언제나 완벽주의자이다. 처음의 구상을 세목 그대로 애써 실현하고자 하며, 수정이 꼭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용기 있는 창조자들은 어떤 권리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려 하며, 설사 의식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는 원래의 착상을 그대로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타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383.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384,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엘리엇과 내가 낡은 배를 수리하지 않았는가?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386. “나의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다. 나는 매일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을 갈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어린 시절에 이미 이 재능은 내가 잠시 보관하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을 때, 내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맨 처음에 말한 생각이 중요하다.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

 

387.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루에 적어도 열 시간 동안 일을 했다.

 

388.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에 적절하게 활용한다.”

 

사람들은 내가 베르디처럼 곡을 쓴다고 말한다. 헛소리다. 제대로 음악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를 고정된 위치에 못박아두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는 못 한다! 다음 곡을 쓸 때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390, 역설적인 의미로 가득한음악의 시학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와진다.”

 

전통과 속박을 찬양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탁월하고 위대한 예술가의 원동력은 대담한 용기이다. 내가 이런 점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나는 대담한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거기에는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다.”

 

397. 그는 광대한 음악적 원천에서 받은 영향을 흡수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7. T. S. 엘리엇

403. 우호적이면서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것이다.

 

410. 앨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그는 철학 공부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그의 작품에서 갈라지는 거리는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되었고, 거리는 앨리엇의 글 전반에 걸쳐 언제나 풍요로운 상징으로 되풀이되어 등장했다.

 

420. 다른 이들에게는 대단한 업적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 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422. 그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교사였고 학생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엘리엇은 상궤를 벗어났다. 은행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인데, 전혀 옠술과 상관없는 직업을 자기가 좋아한다는 사실에 그 자신도 놀랐고 다른 사람도 놀랐다.

 

423. 엘리엇의 성공에는 그 자신의 노력이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 출간된 엘리엇의 서한집에 따르면, 처음부터 엘리엇은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는 데 꽤 신경을 썼다. 한때는 부끄럼이 많던 엘리엇이 대담성과 확신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영향력 있는 후원자와 친분을 쌓기 위해 신중하게 노력했다.

 

429.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430. 중대한 혁신을 감행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엘리엇도 새로운 상징체계 혹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투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절망과 유럽 문명의 몰락을 담아낼 수 있는 시적 목소리를 창조하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

 

437.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440-441. 앞 장에서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창조력을 잃지 않는 수단으로서 모종의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는 성향에 대해 논의했다. 엘리엇은 스트라빈스키처럼 동료들과 불편한 관계로 고통을 받았고, 영국 성공회의 충실한 신자가 됨으로써 자신이 숭배하는 신과는 화해롭게 지냈다. 엘리엇은 또한 프로이트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60대를 넘어서 담배를 끊을 때까지 사탕 한 알도 먹지 않았고, 아내 면전에서 면도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자학적인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을 할 법하다.

 

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444. 시인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시인의 마음은 무수한 감정과 말씨의 이미지 등을 붙잡아 저장해둘 수 있는 용기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의식적이고 정리되지 않는 산만한 형태로 남아 있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엘리엇이 문학 이론에 기여한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일 터이다. 시인은 정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잇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46.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내가 계속 놀란 점이 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을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455. 분명히 엘리엇은 경계인이 되고자 하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자 스스로 경계인의 위치로 나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경계인이라는 느낌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함의한다.

 

456.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상 그의 획기적인 업적은 그가 경계인임을 통렬하게 자각할 때 나왔다.

 

8. 마사 그레이엄

473. 그레이엄은 처음엔 별로 전망이 없어 보였지만 무용단에서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연습 시간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냈으며, 점차 강하고 유연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밤 늦게까지 연습하기 일쑤였고,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지속적인 정진을 요구했다.

 

474. 거의 서른 살이 된 시점에서 그녀는 마음속에 번지는 모든 의심을 접어두고 프로이트나 피카소에 비견할 만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499. 마사 그레이엄은 특히 미국적인 특성을 지닌 무용가다..그녀는 프론티어에서….셰이커 가구나 홈스펀 의복처럼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지닌 자기만의 표현을 통해 솔직하고 모든 것을 일소하는 자유, 맞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자유의 정신을 창조했다.

 

502. 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꺾기기는 했어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다.

 

510. 위기 체험은 그레이엄 예술을 손상시키기는커녕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미국적 주제나 작품의 밝은 면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으나 1940년대 후반부터 고전 전통, 특히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521.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연습을 했다.”

이런 말도 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523.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526. 그레이엄은 헌신과 대담함이 부족한 사람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않았다.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538. 현재의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새로운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도전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창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갈 줄 알았다.

 

9. 마하트마 간디

544.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50.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552. 만년에 간디는 자신이 남은 인생 동안 매진하게 된 정치 운동이라는 사명의 기원이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지새운 그날 밤에 있다고 회고했다. “나는 인도인 정착자들의 힘든 상황을 글로 읽고 귀로 들어서 뿐만 아니라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는 자존심 있는 인도인이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 이런 상태를 개선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내 마음은 점점 더 사로잡혔다.

 

554. 처음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배워야 할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고 발견해 가면서 능력을 향상시켰다. 이 과정에서 간디는 필요할 때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훌륭한 능력을 찾아냈다. 간디는 언제나 사랑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를 추구하는 끈질기고도 침착한 태도는 널리 존경받았다.

 

간디는 이처럼 가혹하고 단단한 현실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유혹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는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이제 능숙한 대중 연설가가 되었다.

 

555.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른이 된 시기는 인간이 활동의 중심에 서는 시기이다.

 

556. 간디는 의식적으로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매일 수행을 하며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560. 아인슈타인과 가은 과학적 창조자들은 주로 개념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반면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행위는 그들의 사명을 실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표현의 매개이다.

 

569. 하나의 관점에서 간디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창조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가장 대담하고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가족과 같은 지원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573.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576. “인생의 어느 부분도 종교와 떨어질 수 없으며 정치는 거의 모든 점에서 인도의 생명 있는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정치에 참여한다.”

 

583. 간디는 자신을 드높이겠다는 생각과는 상관 없이 스스로를 하나의 모델로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의심과 파괴적인 행동을 버리도록 고무하는 매개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적인 행동을 하고 글을 썼다. 3등칸 기차 여행, 실 잣기, 지역 방언으로 말하고 글쓰기, 식이요법 감독 등 모든 일에서 그는 그것을 성찰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584. 간디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85. 혼란스런 상황이 닥치는 와중에도 그는 매일 해야 할 일, 편지와 기사를 쓰고 모임에 참석하고 일지를 기록하면서 소위 전장의 비서와 부관과 계속 접촉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건들에 관한 모든 일을 세세하게 챙겼다. 

 

606. 물론 간디와 같은 훌륭한 인물도 비난을 비껴갈 수는 없는 일이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자신의 추종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 일이나 가족을 이상할 정도로 몰인정하게 대한 일, 그리고 일부 정치적 견해의 소박함 등에 덧붙여 새로운 비난이 가해졌다. 만년의 간디가 나체의 젊은 여자를 곁에 두고 잠을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간디는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인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가 젊은 여자들을 성적으로 욕보였다거나 여자들이 억지로 늙은이 옆에서 잠을 자야 했다는 추측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행태는 간디의 괴팍함을 확고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간다기 종종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개인적인 괴벽과 취향을 만족시켰다는 사실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614. 이들 창조자 가운에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3,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620. 우선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 발휘한 창조성과 연관하여 각 인물의 유년기를 검토한다는 점, 생애 전반에 걸쳐 창조적인 능력이 발달하는 국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 획기적인 업적을 내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나는 모든 창조적인 활동에는 역동적인 면이 있다고 가정했다. 재능 있는 개인과 전문 분야, 그리고 창조물의 질을 판단하는 장 사이에 이루어진 변증법적 관계가 그것이다.

 

635. 이들 모두가 단호하게 경계인의 위치에 있었고 이런 위치를 견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할 태세가 되어 있었지만, 이들이 단지 다른 사람들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얘기다. 적어도 두 가지 패턴이 더 있다.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637.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게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

 

653. ‘창조성의 삼각형을 도입한 기본 목적은 재능 있는 개인과 그 개인이 활동하는 분야, 그리고 권위자로 이루어진 장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탐구하는데 있었다. 어떤 개인이 다소 추상적인 의미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떤 분야에 참여해서 해당 장에 의해 평가받는 성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창조적이라는 평가에 합당한지 여부를 결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처음부터 삼각형의 세 결절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과 분야, 그리고 장 사이에 일종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개인의 창조성에 대한 궁극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654. 창조적인 인물의 특정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잠정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분석적으로 보면, 여섯 가지의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개인 내부, 분야 내부, 장 내부, 그리고 개인과 분야 사이, 개인과 장 사이, 분야와 장 사이에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모든 종류의 비동시성에서 면제된 사람들은 신동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모든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 역시 여기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몇몇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따르는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661. 이런 친밀한 관계에 대해 좀더 말해 둘 내용이 있다.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이해한 바처럼 이러한 관계는 유년기의 유대 관계와 관련이 깊다. 한 가지 모델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언어와 소속 문화의 규칙을 가르쳐주면서 나누는 대화이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설명을 통해 유아는 무지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동한다. 또 다른 모델은 친한 친구들, 혹은 형제들이 함께 낯선 세상을 탐험하고 자신들이 발견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는 대화이다.

 

662. 그렇다면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는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매우 긴장이 높은 시기일 수밖에 없다. 이 때는 유아기 이래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이 때 벌어지는 의사소통의 종류는 이미 동일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평범한 대화보다는 어릴 때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상황과 더 닮았으며, 그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창조적인 인물들이 분명치 못하고 어눌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두뇌가 정상이며 마음 맞는 이들은 충분히 자기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시험하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663. 파우스트 전설이란 창조적인 인물을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점에서 특별 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통념의 가장 유명한 판본일 뿐이다. 물론 이런 통념은 사소한 의미에서 사실이다.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희생했다. 계약의 종류는 다양할지 몰라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모습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이러한 거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계약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 펠레스를 연상시키는 그런 반쯤은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계약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종교적인 특색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에필로그

694. 이 책에서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5. 천재나 거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 역량이 축적되어 있을 때나 뛰어난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의 거장이 탄생하려면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 내가 저자라면

7명의 자서전을 읽은 느낌이다. 책의 두께 만큼이나 너무 많은 지식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나의 전반적인 느낌은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기질과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본인이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며, 창조적 길을 가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이외 작가가 분석한 내용들(유년기 이야기, 조언해줄 수 있는 친구/동반자 필요, 알맞은 시대에 태어남)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아래 부분들은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우선 초반에 학술적인 내용들이 들어가 딱딱했다. 그래서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고 진도가 안 나가 혼났다. 아마 두괄식으로 이야기하는 영미문화의 특성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간략한 설명 후 바로 인물 사례로 넘어간 다음에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마지막에 설명해주는 것이 책을 읽는 호흡을 더욱 자연스럽고 가볍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7명의 인물들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물론 그 인물들의 행적을 자세히 풀어내고 있어 인물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나, 사실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창조력의 발현과 관련된 행적들 위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 위주로 풀어갔더라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파우스트적인 계약..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더욱 연구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사례로 나온 창조자들의 이면에 숨겨진 불행한 가정 생활이나 성격적인 결함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역시 모든 일에는 pros&cons가 있기 마련이다. 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으나, 반드시 그렇게 포기해야만 했던 것인지, 포기하는 부분을 최소화 하거나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던 것인지, 혹시 양립을 잘 시켰던 사람들은 없는 것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기질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실천 tool kit이나 내가 창조자로서의 면면을 어느 부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내용들도 마지막에 실어 주었다면 책을 읽고 나를 좀 더 잘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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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31 21:20:17 *.160.13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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