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콩두
  • 조회 수 16818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4년 5월 27일 12시 29분 등록

시험관 채취에서 이식까지

 

 

입원해서 부분 수혈 받기

 

밤에 응급실에 갔었다. 11:30에 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맞아야 하는 근육주사를 맞기 위해서다. 난포 터지는 주사였으리라. 응급실은 조용했다. 주사를 맞고 전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역으로 뛰었다. 놓치면 다음 차는 서울역까지만 운행한다. 잘 탔다. 이로써 과배란주사가 모두 끝났다. 생리 2일째 병원을 방문해서 생리 3일째부터 10일간 맞았다. 고날에프, IVF-M은 과배란주사다. 4일째부터 배란을 억제하는 주사를 매일 배에다 맞았다. 혼자 아침에 거실에서 주사를 조제해서 맞고 있으면 쓸쓸하다. 남편더러 내가 주사 맞는 걸 앉아서 지켜보아달라고 했다. 그는 눈을 어디 둘 지를 몰라한다. 불편해하는구나.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게 마음 아프고 미안하단다.

 

월요일 9시까지 병원에 가야 했다. 토요일날 명동 결혼식장에서 부페를 먹는데 병원 전화가 찍혀 있었다. 선생님이 월요일날 일찍 내원하라고 하셨단다. 왜 그럴까 주말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9시에 가서 1시간 기다렸다.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한다. 담당 산부인과 교수님이 내과 선생님을 지정했다. 두 동료 사이에는 굳건한 신뢰가 있으리라. 그게 나는 미덥다. 내과 앞에서 또 1시간 기다렸다염증때문에 백혈구 중 호중구 수치가 달라져 그러나 하는 건 나의 억측이었다. 주된 이유는 혈소판이었다. 토요일에 한 피검에서 88,000으로 떨어졌단다. 어이쿠야. 5 7일 성모병원 진료에서 103,000이었는데 그 전 달에는 108,000이었다. 당장 내일이 난자채취인데 2천의 혈소판들이 어디로 행방불명된 걸까? 과배란주사의 영향일까? 출혈 위험에 대한 대비때문에 일찍 내원하라고 하신 거였다.

 

내과 선생님이 누우라 해서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신다혈소판 수혈을 5팩 받고 시술하자고 하신다. 과배란을 하느라 난소가 부어있는 상태라 주사바늘로 찌르면 출혈이 날 수 있단다. 그런데 혈액내과 선생님들 중에는 수혈을 받으면 자가항체가 생겨서 싫어하는 분도 있으니 확인해 오라고 하신다고진선처를 부탁하는 진료의뢰서를 자필로 써준다. 다행히 오늘은 주치의 선생님 오전 진료가 있다. 근데 퀵서비스 오토바이 꽁다리에 타고 가도 오전 진료 마감에 간당간당하다. 전화로 물어본다. 메모해서 전달해주겠단다. 한참 기다려 답을 들었다. 하긴 그 병원에서도 무거운 병명의 환자들이 예약해서 교수님과 진료를 보고 있을 테다. 그 병원에서라면 8만 이상이면 수혈 안 하겠지만 이 병원 내과 선생님 판단에 따라 하라고 했다. 내과 선생님은 오늘 저녁에 혈소판 수혈을 받고 내일 피검 결과 봐서 난자 채취를 하잔다. 산부인과 선생님한테 뛰어가니 입원하라고 했다오전 내내 동동거렸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 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 하는 느낌그래도 다행히 타이밍이 잘 맞고 수많은 분들이 친절하게 해 주었다. 고맙다.

 

집에 돌아와 입원 짐을 챙겼다. 화분들에게 물을 주었다. 구립도서관 책은 연체된 지 며칠 되었는데 반납하지 못했다. 기준병실이 없어서 15만원을 더 내기로 하고 3인실에 입원했다. 남산타워가 정면으로 보이는 전망좋은 방이었다. 신혼여행 이후로 이렇게 좋은 방은 처음 써본다며 좋아했다. 입원 하자 마자 혈압과 체온을 재고 통치마로 된 산부인과 입원복을 가져다 준다. 제깍 왼손 손등에 닝겔 바늘을 꽂더니 수액 하나를 단다. 제복과 닝겔에 꼼짝없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혈압재러 온 이, 입원 안내 해주러 온 이, 그리고 혈소판 봉다리를 들고 온 이를 모두 누워서 맞이한다. 남편이 밖에서 메일소바와 돈까스를 사왔고, 병원밥하고 같이 펼쳐 놓고 저녁을 먹었다. 외식한다면서 둘이서 좋아했다. 나는 닝겔줄이 달려있어서 그가 보호자가 되어 식기를 치웠다. 팔이 빠져서 응급실 가고 전신마취하고 맞추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했던 그, 그리고 뺑소니를 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동생을 간호하던 그. 보호자가 있는 느낌이 든든하고 푸근했다.

 

혈소판 수혈 생전 처음 받아본다. 작은 팩 5개는 쌀뜯물 색깔이다. 닝겔 꽂는 꼭지에 달았더니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10분도 안되어 5팩이 다 들어갔다. 9시까지 함께 있다가 그는 집으로 갔다. 항생제를 오늘 종일 4번 먹었다. 자기 전에 먹으라는 것도 그냥 9시에 먹었다. 3인실인데 아무도 없어서 혼자 썼다. 그는 혼자 집에 가는 게 미안하다며 보호자 침대에서 자겠단다나는 어디서든,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잘 수 있는 천하무적 노숙형 인간이다. 하지만 교대근무의 영향으로 불면증이 있는 그는 거의 밤을 새우게 될 거다. 내일 아침에 오기로 하고 보냈다. 수혈 받는 걸 본 후라 그는 마음이 좀 부대꼈나 보다. 자고 나니 12시쯤 보낸 장문의 달달한 문자가 와 있다. 고맙다. 그는 내일 집에서 정액을 채취해서 병원에 가져오게 된다. 외부에서 채취하기 위해서 각서 비스무리한 동의서를 써주고 통을 집에 갖다 두었다. 이 통은 방수 덜 되는 반찬통처럼 반듯이 세워서 갖고 다녀야 한다. 도시락 싸다닐 때 국물있는 반찬통에 김치 싸주면 진짜 곤란했다. 정자는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병원 채취실보다는 집이 나으리라. 갑작스런 입원으로 채취에 함께 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사람이 들락거리고 방음이 덜 되는 채취실 보다는 집이 덜 부대끼리라. 집이 가까워 다행이다. 혈소판은 11만까지 올라갔다.  

 

 

난자 채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새벽푸른빛이 창궐할 때 전망좋은 침상에서 깨어났다. 밤새 입원환자가 없어 3인실 너른 방을 혼자 썼다. 자다 보면 혈압 재고, 피 뽑고, 체온 재었다. 수액은 밤새 다 맞았는지 왼손 손등에 바늘만 남겨두었다. 욱신욱신하다. 절을 하려고 환자복을 벗고 개량한복 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바늘을 꽂은 채로는 아무래도 절을 못하겠다. 쉬 뽑힐 줄 알고 혼자서 잡아 뽑았다. 무식해서다. 후다닥 화장실 휴지로 덮어 눌렀지만 손등이 불룩해지더니 뚝뚝 피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간호사실로 뛰어 갔다. 뒤채다가 걸려서 빠졌다고 했다. 지혈을 위해 소독솜으로 눌러주고 핏자국을 닦아주었다. 손등은 멍이 들었다. 채취 전에 오른 손등에 다시 꼽기로 했다. 두 번 바늘을 꽂는 건 불편하고 아프지만 절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희부윰 밝아오는 새벽 오늘은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다. 나는 새벽에 절을 300배를 하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최고다. 최상의 상태로 거사를 치르고 싶다.    

 

8시경에 이오 요구르트 병이 보이는 식판을 들고 한 분이 들어왔다. 오늘 채취라 금식이라고 돌려보낸다. 입력이 잘못 되었단다. 난임센터 간호사실에서 단단히 사전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밥을 먹을 뻔 했다. 절을 하니 손바닥이 뜨거워진다핫팩처럼 따스한 양 손바닥을 내 자궁과 난소 위에 올리고 눈을 감는다. 과배란주사로 여러 개의 난자를 키워내느라 과로를 하느라 부어있을 난소들을 느껴본다.

 

"고마워. 난소야. 초경 이후 지금까지 매달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일해주었지. 그 성실함에 고마워. 네 덕분에 나는 생리불순 같은 걱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네가 거기 있어주어 고마워. AMH는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했었는데 개선되어 주어 고마워. 오늘주사 바늘이 너를 찔러서 네가 열심히 기른 난자들을 채취하게 될 거야. 너한테는 참 힘든 과정이겠구나. 안쓰럽고 미안하다. 힘내자. 사랑한다."

 

난자들에게도 말한다. 내가 꿈꾸었던 건 표면에서 반응이 활발한, 태양처럼 찬란한 난자였다. 그런 생생한 난자는 40대에서는 어쩌다, 혹간 나올 뿐이라 했었지. 20대에는 대부분이 그런 찬란한 난자지만. 여자가 최상의 기분일 때 혹간 나타날 수 있다 했다.

 

"아가, 거봉 포도송이들처럼 마지막 힘을 다해 영글거라.  굵은 알도 있고 작은 알고 있겠지만 단맛과 씨앗이 충실한 한 알 한 알로 잘 익어가거라. 엄마는 많은 영양분을 몸에 비축하고 있다. 무엇이든 네가 필요하는 걸, 필요하는 만큼 마음껏 갖다 써라. 나를 먹고 네가 자라거라. 나를 먹고 너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충실해지면 몹시 기쁘겠다. 왼쪽 난소의 아기들은 좀 크고, 오른쪽 난소의 아기들은 좀 작다고 들었다. 다 자란 아기들은 들썩거리더라도 조금만 기다리거라. 그래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 오른쪽 아기들아 힘을 좀 더 내자꾸나. 오늘 오전 11 30분에 너희를 만날 거란다. 바늘이 들어가 너희를 찾을거야. 엄마나 선생님은 너희를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그러니 믿고 잘 오너라. 기다리고 있을께. 너희가 있어 정말로 행복하다.

 

Darling.

I am here for you

amd I konw you are there

so I am happy! "

 

내게 혈소판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돈을 낸다고 댓가를 다 지불한 건 아니다. 자신의 생명, 피를 준 거다. 감사합니다.  

 

11 30분부터 채취, 11시까지 이동이라고 알고 있는데 9 50분까지 오랬다고 나를 데리고 간다. 어제 저녁에 혈관을 찾으러 왔던 이다. 그이가 두드리다가 안되어 옆에 있는 간호사 샘이 했다. 실습생이려니 한다. 나더러 9 50분까지 오랬다면서 9:40에 왔다. 통치마로 된 입원복을 벗는다. 뒷트임이 있어서 엉덩이가 다 보이는 수술복 비스무리한 걸로 갈아입었다. 닝겔이 꽂힌 오른쪽 어깨는 인도 수행자처럼 드러냈다. 그 위에 분홍색 가운을 덧입었다. 분홍색이 마음을 위로한다. 흰색 병원 슬리퍼를 신고 수액 주머니가 든 바퀴달린 걸 끌면서 거의 달리다시피 했다.  1층으로 갔다가 비탈길이 없어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서 옆 길로 나갔다. 1시간 일찍 왔다면서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머리에 뭘 쓴 이가 침대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나더러도 파마할 때 쓰는 캡을 주었다. 갖고 있다가 쓰라고 한다.

 

남편은 10 30분까지 오기로 했다. 간단한 시술이지만 그를 못보고 채취에 들어가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쓸쓸했다. 덜렁이인 나보다, 꼼꼼하고 게다가 아내를 위로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투철한 그는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거다. 문자만 여러 번 주고 받았다. 결국 얼굴은 못보고 말았다. 채취에 30분쯤, 그리고 마취 깨고 안정하느라 2시간 정도 누워 있는댔다. 하지만 그는 밖에서 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거다. 한번만 그를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락커에 옷을 다 집어넣고지금은 속옷도 탈의하고 뒷트임 수술복을 입었는데, 닝겔줄도 달고 밖에 앉아 대기할 그를 보러 갈 엄두가 안난다. 장신구들은 모두 입원실에 벗어두었다. 왼손의 반지는 닝겔 맞으면 부을 수 있대서 어제 뺐다. 옷을 한 겹씩 벗으면서 지하세계로 수메르신화의 이난나 여왕을 생각했다. 지하세계로 내려갈 때 하나씩 몸에 지닌 걸 풀어놓고 나중에는 빈 몸으로 기다시피 갔던가? 그 신화에서는 무엇을 배우라는 걸까? 오늘 오전 피검에서 혈소판이 좀 더 올랐단다.

 

1시간 <구본형 그리스인 이야기> 책을 읽었다. 내가 읽던 부분은 트로이유민 아이네이아스 모험이었다. 여왕디도가 화형장작을 쌓아올리고 자신을 태우는데도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난 후 수많은 전투를 치르는 부분이었다. 커튼 밖에서 간호사가 난자채취나 수정란 이식이 끝나고 정신이 든 이들에게 안내하는 소리를 몇 번 듣는다. 몇 개 채취되었고요, 열이 날 때는 병원으로 오고, 과배란 증후군이 있으면 연락하고,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매일 맞는데 엉덩이 근육주사라 좀 아프다, 잘 문질러 주어야 한다, 이식일시는 언제다 이런 내용이었다. PGD를 한 이들에게는 안내가 더 길었다. 유전병이나 염색체 이상인 경우에는 이식 전에 수정란 각각에 대해 검사를 해야 한다. 화장실에 가느라고 나가니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침대에 실린 채 소리없이 들어온다. 마취 상태인 듯 하다.   

 

두 사람이 대기한다. 나는 멀쩡하고 그녀는 배를 구부리지 못한다. 난자가 많이 자라서 그런가보다. 몽골, 러시아, 한국어로 된 표에서 한국어를 하나 작성했다. 남편담당 선생님 이름 그리고 채취된 난자 숫자를 기입하는 공란이 있었다. 내 이름이 먼저 불린다.

 

천정에 수술실 꽃모양 여러 개 전등, 보라색 채취 의자가 보인다. 진료실에서 보던 초음파 의자와는 달리 대가 뒤로 완전히 눕혀져 있다. 누워서 양말도 신지 않은 두 맨 발을 올린다. 머리맡에 남자분 한 분이 앉고 오른쪽에 간호사 1, 그리고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웃음이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분이다. 아침 식사를 했으면 일이 복잡해졌을 텐데, 잘 안 먹었다고 칭찬하신다. 머리맡의 사람이 내게 묻는다. 전신마취를 해 본 적이 있냐? 그 사이 내가 누운 침대가 좀 들어올려진다. 담당 선생님은 수술방 옷을 덧입으신다. 매우 재빠른 몸놀림이다. 내 오른팔의 닝겔로 주사 2대가 차례로 놓아지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회복실이었다. 따뜻하다. 이불은 두툼한 솜이불이고 보라색이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소변에서인지 어디서인지 피가 나와서 변기가 붉다. 일어나 앉았다가 나도 안내를 받는다.

 

채취된 난자 수와 이식 날짜 그리고 내가 아까 들었던 주의사항이 적힌 쪽지를 받았다. 아까 나를 데려다 준 이가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거기 앉았다. 나는 좀 비틀거렸다. 입원실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내내 잠을 잤다. 간호사가 패드를 갖다 주면서 출혈이 있나 본다면서 버리지 말고 통에 담아놓으라고 파랑색 바께스도 갖다 주었다. 출혈에 대한 대비를 하시는구나. 고맙다. 아래가 불편해서 과배란 하는 동안 내내 남편의 트렁크 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내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다행히 출혈은 없었다.  

 

싼 다인실로 병시을 옮겼다. 저녁을 먹고 숄을 두르고 남편과 같이 병원 밖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지형지물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따라 병원 투어를 하기로 한다. 한 바퀴 돌다가 신생아실에 구경갔다. 황달로 광선치료 중인 아기가 보인다. 투명 아기 바구니에 담겨 발을 꼼지락거리는 아기도 보았다. 신기하고 이뻤다. 그에게 다음에는 이 산부인과 입원복을 입고 저렇게 엄마이름, 아빠이름에 내 이름과 당신 이름을 적고 누워있는 우리 아이를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검 때까지 근육주사로 매일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아야 한다. 나는 집이 가까워서 여기로 올 작정이다프로게스테론 주사 맞으러 올 때마다 신생아실에 들러서 동기유발 좀 해야겠다. 그는 아기들을 아무 시간에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건 동물원 동물처럼 취급하는 거고, 인권을 무시하는 거라고 흥분했다.

 

 

퇴원

 

어제 있던 방의 건너편 5인실 입구 쪽 침상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싼 다인 병실이 빈 병상이 났다. 어제 채취 후 병실을 옮겼다. 우리 방은 TV도 안보고 각자의 커튼 안에서 조용히 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초기 임신인데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어서 입원한 분이 2분이고, 많이 아픈 분, 그래서 앓는 소리를 애처롭게 내는 분이 한 분 있었다목소리들이 젊다.

 

오늘 새벽에 꿈을 여러 개 꾸면서 일어났다. 거대한 꽃밭에서 주황색 익소라 꽃 3줄기, 보라색 꽃창포꽂 2대를 꺽어 안았다. 내 옆에는 내가 젤 존경하던 교장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꽃밭 주인은 아니고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라난큘러스가 여러 송이 꽃힌 화병은 손대자 꽃이 폭삭 시들었다. 얼른 던져버렸다. 또 하나는 선배의 부인이 아들을 낳은 꿈이었다. 갓 태어난 아들아이는 특히 코와 피부색이 선배를 닮았다. 세번째는 내가 결혼식의 신랑인데 혼자서 화장을 하다가 결혼식 시간을 15분 늦었다. 12;30~12:45. 태몽인가 하였다. 아름다운 표상과 불길한 표상이 섞여 있다.  

 

어렵게 난자채취를 했는데 몇 개나 자연수정될 지, 미세수정 될 지, 공난포는 없을 지, 미성숙 난자라서 그냥 쓰지 못하고 폐기하지는 않을 지, 그리고 정자들은 다 반듯하고 맹렬할 지, 축복이나 보너스일 냉동 욕심까지 여러가지 잡념이 피어올랐다. 오늘 꾸면서 일어난 꿈들이 신기해서 한동안 머물렀다. 자꾸만 파우스트의 연구실 바깥 창틀에 놓여있던 꽃에 왜 손을 댔던가 후회를 하였다. 이게 나쁜 조짐이면 어쩌지?

 

몇 해 전에 유행한 씨크릿 책에 의하면 내가 생각하고 머무는 에너지에 따라서 그것과 유사한 것이 끌어당겨져 온다고 했다. 오늘 꾼 꿈 중에서 충분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슝슝 나올 건덕지가 많다. 엘리시온 같은 그 꽃밭을 거니는 건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나한테는 천국에 있는 거나 같다. 그리고 내가 안고 있던 풍성하고 싱싱한 익소라와 꽃창포 (꽃창포는 프랑스 국화라고 한다) 꽃다발, 그리고 기운차게 울어대던 아빠닮은 까무잡잡한 그 사내아이를 생각할 거다나는 내 마음이 머무는 장면을, 내 에너지가 머무는 장면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틈입치료를 할 때 출혈과 감염에 대해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혈액내과 선생님은 소견서를 써주셨다. 여기 난임센터 선생님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대처를 잘 해주셨다. 출혈에 대비해서 내과와의 협진을 통해서 미리 입원해서 혈소판 수혈을 받고 채취를 하도록 했다. 나도 남편도 선생님이 잘 해주고 계시다고 안심했다. 그리고 채취 후 하루 더 입원해서 출혈을 관찰하도록 하셨다. 혼자서 집에서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놓이고 편안했다. 나는 출혈도 없고 열도 안 났다.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나에게 묻는다.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과정을 겪어 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마음만 챙기는 여자의 입장인가? 나는 엄마의 관점으로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리라. 아가, 아무 염려 말거라. 나는 엄마다. 너를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내가 지키리라.  

      

퇴원수속, 병원 검진날 결정이 안되어, 1시에 맞춰 프로게스테론 주사 놓으러 온다고 해서 밍기적거리다 꿈작업에 못갔다. 많이 아쉽다. 용을 쓰면 갈 수도 있었는데 쫄았다. 오후 1시에 퇴원했다점심식사는 취소하고 남편과 중국집에 가서 먹었다. 이틀이지만 몸에 좋지만 닝닝한 병원 밥을 먹고 나니 매운 사제음식이 땡겼다. 그는 출근하고 나는 집으로 왔는데 집에 와서도 다른 일은 안하고 내내 잠을 잤다.   

 

병원비는 180만원 정도 나왔다. 그중 120만원 정도는 난임부부 정부지원금으로 하고 나머지는 자비로 했다. 혈소판 수혈 받은 것에 대한 희귀난치질환 쪽으로 지원이 안된다고 했다. 이유는 치료용이 아니라 예방용으로 미리 처방되었기 때문이다. 공단에 확인을 했지만 안된다고 들었단다.

 

집에 돌아와 난임카페에서 '난자 12개 채취' 검색어로 거의 오후 내내 검색질을 했다. 냉동은 축복이나 보너스인 것 같다. 그리고 얼마나 수정될 지 얼마나 수정란 질이 좋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채취 과정이 남보다 힘이, 공이 많이 드니까 채취 횟수를 최소로 하고 싶다. 이번에 냉동이 하나도 없이 매번 채취를 해야 한다면 힘든 마음이 들 것 같다. 물론 그렇더라도 나는 할 수 있는 한 노력해 볼 거다. 남편도 잘 도와줄 거다. 그런데 채취를 최소화 하려면 채취한 데서 냉동이 나오도록 몸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자면 난자와 정자의 질을 높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난자와 정자의 질은 여자와 남자의 건강을 전제한다. 영양제들, 그리고 운동, 식사 조절이 답인 듯 하다. 대구마리아 이성구박사가 처방하는 그 제품을 사서 먹을까 싶기도 하다. 코큐텐엽산과 종합비타민, 오메가 3, 아르기닌 등 챙겨먹긴 했다. 이성구박사가 추천하는 제품과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영양제들 사이의 함량을 비교해서 양의 차이가 있다면 수정할 거다. 그리고 남편은 영양제 챙겨먹는 게 습관이 안되고, 또 워낙 술을 좋아하는데다 교대근무로 식사와 수면이 불규칙하다. 나보다 남편의 운동과 식사, 그리고 영양제도 더 잘 챙겨야겠다. 벌써부터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는가? 마음이 요동치는 건 사실이다. 저녁 먹고 토를 한 번 했다. 역시나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듯 하다.      

 

남편은 오늘 내가 퇴원을 했으니 오랜만에 회사 지인들과 술을 마신다고 했었다. 그런데 많이 취하지 않았다. 아내가 이러저러하다고 일찍 간다니 아무도 토 다는 사람이 없었단다. 예민할 때니 잘 해주라는 당부를 듣고 온 듯 하다. 그와 같이 술을 마신 분 중에 아내가 시험관을 5번을 한 이가 있었단다. 그 분은 포기했을 때 자임으로 큰 아이를 낳았고, 다시 열심히 노력할 때는 안 생기던 아이가 딱 포기하고 나니 생겨서 다음달에 둘째 아이 출산 예정이라 했다. 아랫배가 아직 불편하다. 그런데 아랫배가 아니라 배꼽 부분이 불편하다. 핫팩을 뜯어서 항공담요에 붙여서 윗배에 붙이고 잠들었다.

 

 

휴식

 

악몽에 놀래 일어났다. 기다리는 남편은 오지 않고 정체 모를 무언가가 자꾸 찾아와 문을 잠그지만 문이 고장나 있어 잠가지지 않는 꿈이었다. 두번째 꿈은 기분 좋은 꿈이었다. 나는 딸을 낳았다. 신생아인 내 딸이 엄청난 똥을 싸서 씻긴 후 할머니방 메주와 말린 고추들 사이에 눕혔다. 혹 태몽? 이런 모드로 꿈들에 머물렀다. , 메주, 말린 고추들이 모두 태몽같잖아? 하긴 나의 상태가 전 꿈의 태몽화를 획책하는 듯 하다. 첫번째 꿈에 대해서는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직면하지 않으려고 도망가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관점에서 살펴본다.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것을 인정하라고 받아들이라고 꿈은 나에게 말한다.

 

오전 내내 잠을 잤다. 오후에는 누워서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었다. 영웅의 모험담을 다 읽은 후에 Tip을 읽었다. 신들에 대해, 그리고 예언자, 마녀, 괴물들 등을 읽었다. 신들에 대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남신들> 틀이 워낙 내 안에 강해서 그 체로 보는 듯 했다. 마녀, 예언자 등은 매우 흥미로왔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신들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모험 부분이다. 모험에의 독려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말했다. 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를 읽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그 고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준 점이 좋다.  

 

전철 타고 병원 주사실에 가서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고 왔다. 엉덩이 주사라 커튼 뒤에 서서 엉덩이 까고 맞았다. 오일 성분이라 많이 문질러 주어야 한단다. 간 김에 오늘도 신생아실에 가서 신생아들 보고 왔다. 오늘은 엄마이름, 아빠 이름 위에 '나는 공주입니다/ 왕자입니다' 분홍과 소라색으로 적힌 것도 보았다. 천정불이 너무 밝아 아이들이 눈부실 것 같다.  

 

 

수정란 이식

 

이식날 새벽에 일어나 절을 300배 했다. 이식은 채취 후 3일 후다. 그동안 배양연구실에서 수정란들은 수정되고 3일 정도 배양된다. 절을 한 후 따뜻해진 손바닥으로 자궁과 계속 아픈 배꼽주위에 덮어 댄다땀이 나 있다

 

"나의 자궁아,

소중한 나의 자궁아,

오늘 이식하러 간다.

초경을 시작한 13살 이후 네가 30년간 그토록 기다리던 귀한 손님이 오늘 올 거야. 잘 맞이해서 포근히 품어주길 부탁한다.

그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내막을 쌓았다 허물며 얼마나 부지런히 일을 했는지 내가 안다.

그 수고와 기다림을 내가 잘 안다. 고맙고 짠하다.

3일배양일테니 아직 착상을 하려면 3~4일 기다려야 해. 그동안 이 조그만 꽃송이들은 네 안을 붕붕 떠다닐 거야.  

좁은 나팔관 쪽 말고 너르고 푹신하고 비옥하고 안전한 너에게 잘 뿌리내리도록 안내하고 따뜻이 안아주길 부탁한다.

수정란을 몇 개 이식할 지 모르겠어.

내가 40대이니 착상율이 떨어질테니 2개 이상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야.

우리 부부는 선생님을 믿고 가기로 어제 의논했단다.

채취된 난자들이 다 성숙난자인지, 미성숙인지, 정자들이 다 성숙한지, 수정이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냉동이 나와주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불시 보너스, 인센티브 같은 걸로 생각해야겠지.      

이미 배양연구실에서 주사위는 던져졌을테니 그저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기도는 부모라면 평생 해 갈 일이다.

너의 오랜 꿈은 나의 꿈과 같다. 나와 함께 해줘 고맙다.

힘내자. 사랑한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남의 집 품일을 가 계셨다. 궁금해서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 신경쓴다고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해서 참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내가 난임카페를 기웃거리는 건 힘이 딸려서 위로와 지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큰 힘과 위로는 친정엄마에게서 오리라. 엄마더러 오늘 이식 시간을 알려드리고 기도를 많이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기도만으로 된다면 며느리들이 어려움을 안 겪었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나는 엄마 딸이니까 나한테는 엄마 기도가 힘이 젤 세요." 말했다. 엄마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게 나에게 천군만마를 얻는 듯 커다란 힘을 준다. 나는 가족세우기 웍샾에서 했던 걸 명상한다. 내 뒤에 엄마, 엄마 뒤에 엄마의 엄마, 그 뒤에 수 많은 어머니들이 서 있고, 또한 남편 뒤에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들이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장면,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다. 그 아이들도 또 부모가 될 거다. 이런 장면을 명상하면 힘이 날 것 같다. 우리를 돕는 의료진들과도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며 기도했다.

 

빌라 계단을 깨끗이 청소 마친 그가 목욕재계를 했다. 그에게는 계단청소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의례구나. 아직 배아 상태이고, 우리 자식이 될 지 안될지도 모르는데그 배아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그가 기뻐하는구나. 아내의 몸으로 품어 그 배아들이 우리집으로 온다는 것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있구나. 내가 사랑받은 것처럼 고맙다.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해서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조기새끼를 굽고 멸치육수를 내서 김치콩나물국을 끓였다. 내가 좋아하는 상추도 일부러 씻어놓았다. 상추부터 집어들어 쌈을 싸니 역시 한다.

 

남산공원을 걸어서 병원으로 갔다. 가장 좋아하는 길, 나무터널로 된 산길을 걸어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가는 길에 우리나무에 들러 오늘 있을 일을, 가족의 화목과 건강을 빌었다나도 비나리를 바치고 그도 바친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딛는다. 우리 걸음을 지켜주십사' 했다. 공든 탑의 돌 한 개는 될테지요 중얼거렸다. 구립중구노인요양병원을 지나 필동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갔더니 인쇄골목으로 지난다나는 느릿느릿 걷고 싶은데 시간을 딱 맞추는 그는 걸음을 재촉한다. 애기 손가락만 잡고 가다가 놓아버렸다. 좀 투덜거리는 맘이 된다. 2시까지 오랬는데 정각이 들어갔다.

 

시간이 남아서 그는 쭈쭈바를 먹고 나는 주사실에 가서 엉덩이 근육주사로 프로게스테론을 맞았다. 이식은 목걸이와 귀걸이 등 악세사리를 안 빼고, 속옷과 하의만 탈의했다. 뒷트임이 있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1회용 캡을 썼다대기실에서 이름을 적었다. 이름이 불리자 채취한 방 오른쪽 옆의 조금 작은 방에 들어갔다회복실에서 시간 보낼 때 쓸 걸 가지고 오라고 해서 나는 신현림 <아가야, 나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 시집을 갖고 갔다. 책은 입구 선반에 놓았다.

 

진료볼 때 낯익은 초음파 의자 비스무리 생긴 것에 누웠다. 여자들이 굴욕의자라고 부르는 그 의자. 이난나 여왕의 의자. 초록색 꾸러미에서 소독된 도구들이 싸여있다 풀러졌다. 선생님이 난자 채취된 갯수, 수정된 갯수를 말해주신다. 12개 채취에 6개 수정, 전부 밋수정이다. 나더러 쌍둥이 괜찮냐고 물으신다. 나는 괜찮다고, 혈액내과 선생님도 감당 가능하다고 하셨다고 대답했다. 겁이 나서 지난번 진료 때 미리 여쭤보았더랬다. 보조생식술을 사용하면 다태아가 많이 생기는데 혹시 내 혈액이 감당못할 정도면 어떨까 해서. 그래서 3개를 이식하기로 했다.  

 

두 팔을 들어올린 채 천정을 본다. 틱낫한스님의 만트라를 속으로 했다그 만트라를 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몸에서 긴장이 빠진다. Daring, I am here for you, and I know you are there, so I am happy. 실제 내 마음이 그러했다. 많은 어려움을 넘어서 드디어 꽃송이들이 내게 오는 게 너무너무 기쁘고 고맙다. 우리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화무십일홍이나 너()는 나한테 평생 봐도 질리지 않는 꽃봉오리다" 우리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말. 내게 오늘 온 배아들도 그러하다. 새 봄 나무 심는 계절에 내게 옮겨심어진 이 씨앗들이 내게 잘 뿌리내리길 기원한다. 모든 결과는 운명이다. 나는 걱정하는 대신에 이 운명에 절하는, 동의하는, 존중하는, 순응하는 마음을 내 보련다.

 

초음파에 하얀 점들이 반짝거리는 걸 보았다간호사샘과 의사 선생님한테 꾸벅 허리 숙여 절을 하고 회복실로 걸어갔다이불을 덮고 누웠다. 돌아와 혼자가 되니 내 몸 속에 배아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기회가 나 같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 만으로 기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지금도 이렇게 기쁜데, 실제로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할까? 아마 그 때도 나는 큰 눈을 꿈뻑거리며 울겠구나.

 

머리 캡 때문에 쉬다 보니 땀이 났다. 가지고 온 시집을 읽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고, 밭에서 일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했다나와 함께 있는 마음들. 나의 비빌 언덕, 빽들. 남편은 자꾸 일정을 물어보니까 문자서비스를 해 주겠다고 했단다. 그걸 신청하니까 지금 회복실에 들어갔다, 10분 후에 나올거니까 대기하라는 문자가 왔단다. 이름이 불리자 일어나 옷을 입고 나왔다. 남편과 냉면 먹으러 갔다. 남편은 긴장했는 지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나는 기쁘게, 조금은 짠하게 보면서 그의 잔을 채웠다.

 

전부 미세수정이다. 자연수정은 어려웠던 걸까?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40대인 우리에겐 내 난자는 너무 두껍고 그의 정자는 느린가? 이게 오래 묵었던 우리가 치뤄야 할 과보, 비용이라는데 그리고 시험관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의견일치를 본다.     

 

 

미세수정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절을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이식하고서 계속 108배를 해도 되나? 대구 이성구박사가 이식 후에는 이식 사실을 까먹고 일상생활 잘 하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나에겐 아침에 절하는 게 일상생활이다. 이건 나에게 어린 왕자가 아침마다 화산을 청소하고 바오밥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은 목적의 작업이다. 내가 부모가 안되어도, 내가 다른 일을 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더라도 꼭 할 일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더라도, 아이가 둥지를 떠나가더라도, 남편의 영안실에서라도 하고 있기를 바란다. 이건 0순위의 일이다. 천천히 절했다. 절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아직 과배란 징후가 좀 남아있는 듯 하다.  

 

감사의 눈물이 났다. 이식할 수 있어서다. 또 뜻밖의 냉동이 3개 나와서다. 2번이나 1번은 채취없이 이식을 시도할 수 있다. 참 고맙다. 명상을 하면서 '미세수정'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수많은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돌진해서 투명대를 뚫는 정자들의 협업 끝에 특정한 1개 정자에 의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는 다른 미세수정의 과정에 대한 설명, 또는 변명을 내 안의 수정란들에게 하고 싶어졌다. 얼토당토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해 보고 싶다. 그 난자들과 정자들의 마음을 느껴보려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배양연구원들이 정자를 찔러넣는 건 강제수정일테다. 배양연구원이 적극 개입하는 미세수정은 난자와 정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어리둥절하고 놀랬을까? 정자들은 결혼식에 가는 신랑처럼 긴장한 모습이었으리라. 난자들은 간절히 님을 기다리며 자기 집의 이중창을 단속하고 있었을 거다.

 

"괜찮아.

정자야, 네 결혼식에 늦지 않았어안전망을 이용했다고 생각해줘.   

난자야, 불쑥 찾아온 귀한 손님을 받아들여 잘 대해 주어서 고마워.

문을 안에서 열어줄텐데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이 되었지?  너는 애초부터 자신의 이중창을 잠그지 않았어

12개 채취된 것을 모두 미세수정 시도했는데 6개만 배양에 성공했다.

미세수정을 받아들인 수정란들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있고, 부드럽기 때문에 강한 수정란들이겠구나.

아모르 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한 아름다운 알들이구나.

정자도, 난자도 모두 사랑으로 채취되었단다.

그가 경험이 없어 조금 서툴다고, 그녀가 역시나 깐깐하지만 간절히 기다렸다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아주면 좋겠다.

너희가 만나주어서 내가 기쁘다덕분에 나는 이렇게 귀한 배아들을 선물로 받았다고맙다.

인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네. 어리둥절함도 놀람도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거라.

화이팅이다."  

 

틱낫한 스님의 게송을 정자가 되어 난자에게, 내가 난자가 되어 정자에게, 그리고 배아들에게 내가 한다.

 

"Darling, I am here for you

and I know you are there

so I am happy"

 

절을 시작하기 전 나는 빨래 널다 떨어뜨려 부러뜨린 율마를 치우고 만냥금 흰 꽃을 붓질해주었다윗부분은 거의 열매가 되었고 아래쪽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미세수정하고 있다. 그래도 저 알갱이를 내가 만든게 아니다. 생명은 하늘의 소관이다.  

 

미세수정, 3개 이식에 대해 검색을 많이 했다산책을 하면서 나는 다짐한다. 수치 0이 나와도, 단태아, 둥이, 심지어 셋둥이가 와도 나는 감사히 받을 것이라고. 미세수정을 예전에는 양수검사를 다 하도록 권장한 듯 하다. 그런데 요즘은 선별검사로 사용되는 기형아 검사에서 통과하면 굳이 양수검사를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그래도 나는 나이 때문에 성공해도 예비 고위험산모.   

 

프로게스테론 주사 맞고 나서 남산한옥마을 쪽으로 남산을 걸어서 돌아왔다. 집에서 나선 시간 12:40, 도착한 시간 3:00.  오늘도 썬크림 까먹어서 햇빛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엉덩이 주사를 맞고 신생아실에 구경갔다. 퇴원하는 아이를 노랑 강보에 싸서 아직도 배가 불룩한 산모와 어머니(?)가 데리고 가고, 밖에서 아이 아빠가 차를 가까이에 대어 놓았더라. 아이는 할머니가 안고 뒤에 타고, 산모는 앞 조수석에 타더라. 나말고도 아기를 보러온 이들이 여럿이다. 노부부는 우리 애기는 어디 있냐고 찾다가 돌아갔고, 허리에 소변통인지, 장기 어디에 찬 물을 빼는 건지 붉은 통을 찬, 머리 부스스하고 닝겔 트레이를 끌고 온 분이 있었다. 그 분도 앙앙 우는 신생아들을 보면서 경탄했다. 산책길이 참 좋았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노란 창포인지 붓꽃인지가 물가에 피어있다

 

 

기다림

 

엉덩이가 아파서 아침에 잠에서 일어났다. 며칠 째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몰아 맞은 왼쪽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 아침마다 절을 마친 후 아랫배에 따스한 손을 얹고 기원한다.

 

"내 궁전 가장 너른 방,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 자리 잡으렴.  마음과 응원을 보낸다너희 말고 그 방의 다른 주인은 없다나도 너희와 같이 행복하게 내 삶을 살겠다."

 

절 방석 위에 벌렁 누워 다리를 세운 채 엉덩이 밑에 두 손을 넣고 1시간 동안 잠들었다. 편히 잤다. 꿈을 하나 꾸었다. 통나무집에 놀러간 4가족이 아이들을 안고 사진 찍다. 자세히 보니 여자들은 모두 병원 산부인과 입원복을 입고 있고 아기들은 강보에 쌓인 채다. 저 꿈은 아무래도 증상놀이인 듯하다. 너무 간절히 바라니 꿈이 조정되는 거. 기분전환이 절실히 필요하구나 싶어 작정하고 오후에 외출을 했다. 극장 옆 스타벅스에서 타이핑했다.

 

제일병원 난임센터 양광문선생님의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임신을 삶의 중심으로 두면 안된다, 그 태도가 오히려 임신을 방해한다는 거였다. 마음에 또박또박 새긴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그래도 피검이 빠르다. 보통 시술일로부터 14일 후에 하는데 여긴 9일 후다. 시술부터 피검까지가 가장 피가 마르는 시기인 걸 이 병원은 알고 있다. 고맙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어찌어찌 적응이 되겠지.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게 관건이다. 불안과 초조가 아니라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데 이게 참 쉽지 않다.   

IP *.153.23.18

프로필 이미지
2014.05.28 15:12:51 *.14.90.161

한걸음한걸음이 귀하네요.

이 먼 과정을 맨발로 한 달음에 달려가신 그 마음이 이미 엄마네요.

수고하셨어요.

프로필 이미지
2014.05.30 10:35:15 *.153.23.18

참치님 수고했다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치님 고마워요^^

프로필 이미지
2014.05.29 19:41:57 *.62.173.205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선배님 가족을 기도 드리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5.30 10:37:01 *.153.23.18

형선님^^ 제가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있게 변경연 게시판에 들어와 있는 지금도 형선님은 커다란 덩치의 사람이 하얀 드레스 셔츠를 다려입고 사무실에 계시겠군요. 기도 감사합니다. 기도는 빽입니다. ^^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2014.06.01 16:17:22 *.124.78.132

생각만 해도 참 힘든 과정이라고 느껴집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남은 시간 평안하시길 그리고 좋은 소식 기도할께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