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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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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7일 17시 02분 등록

 

뭔가에 강렬하게 빠져들어 본 경험이 있는가? 아침에 눈 뜨면 그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그 일에 빠져 살거나, 그 일만 생각하면 빨리 달려가서 하고 싶은, 그렇게 막연히 좋았던 그런 경험 말이다.  

 

나는 당구에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다. 재수시절 여름에 처음 당구를 배웠다. 친구들 따라 몇번 당구장에 갔지만 별 재미를 못 느끼다가, 당구공의 스핀(회전)과 쿠션(입사각, 반사각)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되면서 부쩍 흥미가 붙었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가던 당구장에 혼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학원비를 몽땅 당구장에 선불로 지급하고 일수를 찍어가며,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보낸 날이 많았다.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터득하는데 묘미를 느꼈다. 잠자리에 들면 천장에 당구 공이 굴러 다녔고, 밥상의 반찬 그릇도 당구 공으로 보였다. 이렇게 몇 달동안 당구에 빠져 지내다 대학에 입학하니 1학년 중 최고수 반열에 올라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구 재미도 있었겠지만,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30대에는 회사 일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모든 생활이 일 중심으로 돌아갔다. 평일엔 밤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에 매달렸다. 한 주가 '월화수목금금금' 이었다. 일이 재미있던 때도 있었지만, 주어진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낳아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힘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면 성취감도 느끼곤 했다.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퇴근길에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하던 기분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동안은 테니스를 열심히 했다. 새벽 레슨을 오랫동안 받고 아침 동호회 활동도 했다. 전날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고서도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테니스장으로 나갔다. 추운 겨울에도, 몸이 안 좋아도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 순간 실력이 부쩍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보내고 싶은 방향과 속도로 볼을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자 재미가 늘어났다. 테니스를 하고 나면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내일 아침에 비가 오지 않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 때가 많았다.

 

연구원 생활도 기억에 남는다. 연구원 과정은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또 즐거웠다.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책 속의 스승들과 현실 속의 스승을 만났다. 함께 많이 웃었고, 같이 힘들어 했고, 힘들 땐 서로 응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무언가 쌓여가는 듯한 느낌이 올 때가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듯한 느낌은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이었다. 학생 때처럼 규칙적으로 도서관에 다녔고, 늦은 밤 달빛을 받으며 숙소로 걸어오는 길은 읽었던 책 속의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다.

 

 

열정은 생활에 활력과 재미를 더해 준다. 인생을 좀 더 살 맛나게 해준다. 헌데 중년을 지나면서 이렇게 불같은 열정과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또 내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변함없는 일상. 내 생각대로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 간다는 느낌.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나지도 않은 생활이 지속 될 때. 이럴 때면 이전에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왜 지금은 그런 활력이 생겨나지 않을까?  나이 들면 세상살이가 무덤덤 해지는 게 당연한건가?

 

세상살이가 시큰둥 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중년' 을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중년은 바쁜 시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책임도 크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중년은 짐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에 비유되곤 한다. 학생 때나 신입 직원 때는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됐다. 자기 발전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담당 업무가 많아지고,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책임은 커지고 역량은 분산된다. 지금 하는 일에도 헉헉대는 데, 열정을 쏟아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이유는 열정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다는 생각, 해봐야 별거 없다는 생각에 변화를 시도해 보지 않는 게 중년의 특징인 것 같다. 이전에 시도했던 몇 번의 변화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그런 마음은 더 커진다. "세상 뭐 별거 있어?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라며 대충 사는 데 익숙해진다. 생각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이고 어차피 흐르는 시간인데, 그렇게 대충 사는 건 좀 아쉽다.

열정은 어떻게 생기고 자라나는가? 열정의 시작은 관심과 흥미다. 관심사 중 흥미있는 일을 찾고, 실제 시도해보니 좋아지고,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그런 것들이 열정의 대상이 된다.

 

사람에 따라서 열정을 느끼는 방식도 다르다.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죽기 전에 100가지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반면 한 가지 열정에 빠져들어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진정 빠져들 수 있는 몇 가지 열정을 품고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런 열정을 키워서 꽃으로 피워보고 싶다. 이런 열정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열정을 키워가기 위한 첫번째 조건을 나는 < 절제 > 라고 생각한다.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나타나면 우선 시간을 투입해서 그 일을 해 보지만, 그것에 너무 쉽게 빠져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빨리 흥분하면 급히 식는 법이다. 묵히고 뜸을 들이는 게 좋다. 나는 끌리더라도 좀 지켜보는 편이다. 정보를 얻고 요모조모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양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몰입의 수준을 높여 간다. 두번째는 < 끈기 > 다. 자신에게 맞는 것이라도 시큰둥해지고, 재미없어 질 때가 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발전하는 걸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 훌륭한 책에도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인생에도 따분한 시기가 있다. 이 시간을 잘 넘겨야 새로운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셋째는 < 탐구심 > 인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면 좋아질 수 없고, 좋아지지 않으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취미가 되었건, 일이 되었건, 성장하지 못하면 열정은 커나갈 수 없다. 정체된 열정은 이내 사그러지는 불씨마냥 꺼져버리고 만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 잘 알 수 있고, 깊이 연구해야 실력이 늘게 된다. 그래야 지속적인 재미를 느끼며 열정을 키워갈 수 있다. 

너무 많은 관심과 열정은 자신의 능력을 분산시킨다. 한 가지를 죽심스럽게 파는 건 내 성격 상 너무 단조롭다. 세상을 살면서 몇 가지 열정을 갖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사는 게 따분하다고 생각되면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정제된 열정의 씨앗을 품고, 그 씨앗이 싹을 내고 꽃 피우는 것을 보며 사는 인생. 앞으로 그런 인생을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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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8 07:38:30 *.153.23.18

정산선배님은 젊잖은 분이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열정적인'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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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19:33:14 *.62.173.205
선배님 이번 칼럼 경쾌하게 읽었습니다. 선배님 열정이 제 마음에도 전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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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 16:04:30 *.124.78.132

열정이 진정 그리운 날들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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