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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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_구달칼럼#8 (2014. 6. 1)
“현재 내게 3백만원의 월급은 이전 사업할 때의 3천만의 수입보다 훨씬 크다.” 한 친구가 일을 주선한 친구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던진 말이다. 그는 예전에 수백 억대에 이르는 회사를 경영했는데 해외에 차린 회사가 유럽 발 금융위기란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다. 무일푼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당장 생계를 이어갈 일이 막막했다. 그의 아내는 식당의 도우미로 나서고 그도 백방으로 일자리를 찾아 보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한 친구의 도움으로 지방에 월급3백만원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아내를 동반하고 일터로 내려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한 때 수백 억의 자산을 굴리며 세계를 종횡 무진하던 친구가 이젠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가슴 아프다. 학교 졸업하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 비하면 이 친구는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파란 많은 생을 살아왔다. 몇 번의 회사 부도와 재기를 거치는 동안에 허옇게 센 머리조차 드문드문 빠지고 몸의 활력도 예전 같지 않다. 더욱 슬픈 건 사업의 부침을 겪는 와중에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이 다 이제는 남남이 되다시피 했다. 오직 사업에 연루되지 않은 우리들 몇몇 친구들만 그의 벗으로 남아 있었다. 가족(엄밀히 말하면 부부)만이 최후의 보루라고 그는 고백했다.. 장성한 아들 딸이 있는데, 든든한 기둥이라 믿었던 아버지가 파산하자 모두들 믿을 건 자신 밖에 없음을 절감한 듯 다들 생활전선에 섰다. 가족들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제 살아갈 방도를 찾더라고 했다. 친구는 이제 자신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한다. 파산을 통해 참으로 깊은 인생공부를 한 셈이다.
또 한 친구는 일찍이 아버지가 남긴 노름 빚을 떠안고 졸업 후 상선을 타면서 그 빚을 다 갚았다. 그래서인지 유독 경제관념이 강했다. 아내를 얻을 때도 맞벌이가 가능한 학교 선생을 택하였고, 아들도 졸업 후 바로 취직이 보장되는 대학으로 진학시켰다. 직장생활도 일찍 청산하고 자신의 사업체를 시작했는데, 친구와 동업하면서 친구를 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참모역할을 충실히 해 나갔다. 그의 사업체는 근 20년 동안 충실히 성장했고 동업한 친구와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자신이 맞고 있던 주요업무를 대부분 후배들에게 인계해 주고 자신의 봉급조차도 스스로 깎고 보다 많은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동기회 총무와 각종 모임의 주관을 맡아 사람들 사이가 좋은 관계가 되도록 유도하고,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기반이 잡혔으며 아이들도 다 커서 제 앞가림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역점을 두고 서로 자주 모이고 나누면서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마작과 당구, 낚시 등 잡기를 좋아하고 사람과 술을 즐긴다. 그는 한 때 밤 늦도록 이러한 생활에 탐닉하다 보니 건강을 많이 해쳤다. 아들과 사위들에게 마작을 가르쳐 그들과 함께 판을 벌이는 것이 꿈이라고 할 정도로 마작에 좋아해 ‘마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복원력도 좋아 잡기 생활을 절제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몸을 정상궤도에 올려 놓았다. 낭만적인 성향도 강해 한 잔 술에 기분이 알딸딸해지면 구성지게 읊어대는 추억의 멜로디는 그와 함께한 옛 시절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자식들은 머지않아 다 제 짝 맞춰 제갈 길로 갈 것이고, 최후로 부부만 남는데 부부만 달랑 있으면 무슨 재민가? 친구가 있어야지. 나이 들수록 친구가 제일인기라.” 오늘도 친구 찾아 즐거운 모임거리 만들기에 여념 없는 친구, 그의 부인 또한 부창부수라고 남편 못지않은 마당발에 모임메이커이니 이 집에는 사람소리 끊일 날 없을 것이다.
지방에서 교수하는 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신문을 돌리며 공부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입신 출세한 친구다. 원유 실어 나르는 거대한 탱커에 3년간 승선하여 번 돈으로 미국 유학 가서 경제학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결혼도 걸 맞는 학자집안 여자와 하더니 어느 날 보니 대학교수가 되어 있었다. 캐나다에 유학 보낸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아 박봉의 교수 허리가 휜다고 엄살을 부린다. 아들 공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냥 엄살인 것 같지도 않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보냈으니 자식 공부에 쏟는 정성과 비용이 가히 상상 밖일 것이다.
체통과 깡으로 똘똘 뭉친 이 친구는 한 시간 만에 스키를 배우고는 상급코스에 올랐다. 급강하 하는 도중에 자신이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는 수 없이 눈벽을 받으며 정지했다는 전설의 스키어다. 아직도 차에 내비를 장착하지 않고 다니는 인간 내비게이터이기도 하다. 하여튼 그는 자식 공부만 끝나면 사막여행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열정 충만한 사나이다.
브라질 상파울로에 살면서 가끔 한국에 다니러 오는 친구가 있다. 이 녀석은 학교 다닐 때에 요트서클 활동을 하며 바다에 살다시피 한 친구다. 그렇지 않아도 거무스레한 피부인데다 햇빛에 그을려 웃을 때는 이빨만 하얗게 보인다.
그는 선상생활을 마치고 회사주재원으로 브라질에 파견되었다가 그대로 현지에 눌러앉았다. 처음에는 해운업에 연관된 쉬핑포더 일을 하다가 뒤에는 옷장사도 하고 이제는 현지 식당을 셋이나 운영하는 요식업계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래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항해사로 선생생활 할 때도 주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요리 매니아다. 그도 역시 제 좋아하는 곳에서 길을 찾아 나갔다. 언어도 인종도 생판 낯선 이국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기까지 그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적이 염려하며 물었더니, 왠걸 비록 환경과 언어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경쟁 치열한 한국에 비하면 훨씬 자리잡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인생은 즐기는 것이란 생각이 많기 때문에 우리처럼 그렇게 죽으라고 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도 아침 8시에 문 열어 오후 5시 반이면 마친다고 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별로 없고, 딸 둘 미국에 유학시키면서 살아가는 데는 별문제 없단다. 브라질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사람살기에 좋으니 꼭 한번 다녀가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녀석의 이야기를 가만 듣다가 보니, 왜 우리가 이 복잡하고 경쟁 치열한 한국에서만 살기를 고집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누가 말한 대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
하여튼 대부분 친구들의 요즘 관심사는 어찌하면 인생 2막을 아름답게 장식할까? 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문제의 답을 찾아 가는 것일 터,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답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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