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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22시 43분 등록

사기열전(두 번 읽기)_구달리뷰#8 (2014.6.1.)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I.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 司馬遷, (BC 145 ~ BC 86) / 고향은 지금의 섬서성 한성현이며, 자는 子長 이다. 사마천은 서한 시기의 역사학자이자 문학가이며 여행가이다. 사마천의 조상 사마씨는 하늘과 땅에 관련된 신성한 관직을 맡아오다가 오로지 역사 기록만을 취급하는 사관으로 바뀌었지만, 일족 가운데 선조의 업을 면면히 계승해오면서 이를 부활시킨 인물이 바로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다. 사마담(司馬談)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고 사관이 가져오는 문서나 기타 기록을 정리 보존하는 태사령이었다. 태사령인 아버지 사마담을 따라 장안으로 와서 당대의 대유학자인 동중서와 공안국에게서 옛글을 배웠다.

 

아버지 사마담은 사마천을 역사가로 만들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역사가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자질은 문헌을 읽는 능력이다. 아버지는 사마천이 열 살 때부터 고문(한대 이전의 문자)으로 쓴 문헌과 기록을 읽는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10년을 훈련한 뒤 사마천은 어떠한 문헌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가가 아무리 문헌을 잘 읽는다 해도 거기서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마담은 이미 성인이 된 사마천을 역사가 전개된 장소의 실지검증, 곧 현지조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B.C. 126. 20세가 된 사마천은 여행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사마천은2년 남짓한 세월동안 여행하면서 각지의 역사 유적을 조사하고 옛 기록을 수집했다.

향사와 같이 당시까지 남아 있던 옛 의례를 살펴보고 또 구전하는 전설과 설화를 채집했다.

후에,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 현장답사하고 면밀하게 조사해서 얻은 압도적인 현장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사마천의 이러한 안목은 먼 과거의 사건과 역사 인물을 ‘지금 여기’의 사건과 인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사기>를 읽다 보면, 여행할 때 보고 들었던 지식을 자연스럽게 삽입하여 역사적 과거에 현재가 겹쳐지도록 서술한 장면을 접할 것이다. 이러한 사마천의 어조는 먼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위세가, 44)에서 전국 칠웅의 하나로 열거되는 위나라의 흥망을 묘사한 뒤, 사마천은 이렇게 비평을 덧붙였다.

<내가 위나라의 옛 도읍지 대량의 폐허에 들렀을 때 그곳 사람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대량을 함락시켰을 때, 하구의 물을 대량으로 흘려보내 3개월 만에 성을 함락시켰다. 왕은 항복을 빌었지만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고 했다. 폐허와 그것이 내포하는 역사적 시간의 연쇄, 폐허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은 내가 사기를 서술할 때, 현장에서 본 유적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2년여의 여행을 마친 사마천은 스물 두 살에 낭중에 임명되었다. 35살 때 (B.C. 111)때 무제의 명을 받고 파, 촉으로 원정하고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 공, , 곤명등 이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공략하는데 참가했다. 이는 서남 이민족을 평정하기 위해 무제가 파견한 군대를 따라가는 공적인 여행이어서 자유로이 각지를 편력한 첫 번째 여행과 분명히 질이 달랐다. 사마천은 이 기회에 첫 번째 여행 때 가보지 못했던 중국 서남부를 주파하고서 더욱더 견문을 넓혔다.

 

죽음에 이른 아버지를 만나 본 다음, 사마천은 그대로 태산으로 향해 아버지 대신 봉선 의식에 참가했다. 그 뒤 무제는 곧바로 장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선 동쪽으로 황해 연안(산동성)으로 갔다가 이어서 북쪽으로 올라가 멀리 만리장성의 북동쪽 갈속 요녕성에 이르고, 거기서 서쪽으로 나아가 구원(내몽고자치구)까지 갔다가 점차 남쪽으로 내려와 장안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을 감행하였다. 이때 무제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사마천은 북대지대도 주파하게 되었다. 세 차례에 걸쳐서 동서남북 중국 대륙을 구석구석까지 돌아본 사마천은 역사가이기 이전에 행동하는 대여행가였다.

 

사마천이 36세 되던 해, 무제의 봉선의식에 참석하지 못해 화병으로 죽은 부친이 유언을 남긴다.‘너는 반드시, 춘추 春秋 이래 공백으로 남아있는 4백 년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해서 정리하는 대업을 완수해라. 역사서를 집필하라’

 

궁형의 치욕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명(使命)이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게 된 이른바‘이릉의 화’는 사마천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재앙이었다. 불과 5천의 병사로 흉노 10만의 기병을 상대하여, 1만명을 살상했으나 흉노에게 포로가 되어 투항한 이릉. 평소 이릉을 뛰어난 장수로 여기던 사마천은 홀로 나서 이릉을 변호하였다.

왜 사마천은 거리낌없이 이릉을 변호했을까? 그 까닭은 사마천이 그때까지 사람의 심리를 읽고, 어둡고 끔찍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슬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사령 사마담의 아들로서 유소년 시절부터 역사가가 되기 위한 영재교육을 받았다. 자라서는 각지를 여행했으며, 아버지를 여윈 다음에는 뒤를 이어서 수월하게 태사령이 되었다. 사마천의 인생은 47세 이릉의 사건에 연루되기까지 권력지향과 인연이 없는 역사라고서 극히 순조롭고 심각한 좌절과는 무관했다.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입신출세와 보신을 꾀하는 조정의 교활한 정치 관료, 문화 관료와는 근본부터 다른, 좌절을 모르는 사람의 무방비가 도리어 사마천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이릉이 흉노에게 군사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화가 난 한무제는 먼저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켰다. 그 다음, 이릉을 변호한 괘씸죄에 걸린 사마천은 형벌을 선택해야 할 운명이다.

 

당시 한나라 법에 따르면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 방법은 목숨 값으로 50만 전을 내는 방안. 일명 속전(贖錢)이 있었다. 두번째 방법은 궁형, 한마디로 남성을 잃고 내시가 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해야만 했다. 죽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에게는 사기를 써야한다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마천은 5년 뒤에 사기를 탈고했다. 사기는 사마천의 <>로 쓴 책이다.

사마천의 나이 51세 때 쓴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그가 당시 얼마나 치욕감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면목으로 다시 부모님 묘소를 참배할 수 있을지, 하루에도 아홉 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 어처구니가 없고 자꾸만 부끄러워져 언제나 등골에 땀이 흘러 옷을 적신다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죽음 가운데에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아홉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다는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죽음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궁형의 치욕으로 이미 죽은 육신이지만 정신만은 오롯이 살아 청사에 길이 빛날 사서를 쓰겠다는 결심이 ‘대장부의 태산과 같은 선택‘이었다.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 속에서도 자결하지 않고, <사기(史記)>에 매달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는다

 

사마천이 언급한 저작들은 한결같이 저자들이 불우한 시기에 완결시킨 이른바 ‘발분(發憤)의 저작’들이다. 그는 이를 두고 “저자들이 마음 속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 방법을 찾은 것”이라 했다. <시경>에 수록된 시 300편의 대부분도 성인, 현인이 분노를 터뜨려서 지은 것이다.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 것입니다.(故述往事 思來者),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成一家之言)(‘태사공자서’, ‘사마천전·보임안서’)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마천이 불후의 역사서를 쓴 까닭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비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 이는 역사라는 것이 과거사일 뿐인데, 과거에 집착할 까닭이 있느냐는 야유에 대한 대답이다.

 

역사 기록을 취급하는 태사령의 직을 잃은 사마천은 중서령의 직을 수행하면서 묵묵히 사가판 역사서인 사기를 계속해서 써나갔다. 그리하여 B.C. 90. 56세에 드디어 탈고하고 4년 뒤 B.C. 86. 60세에 사마천은 세상을 달리했다. 그의 숙적 무제가 죽은 이듬해의 일이었다.

사마천의 선택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명을 생각해 본다. 사명(使命)이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 즉 생명(生命)을 사용(使用)하는 지침을 말하는 것 아닌가? 사마천은 선친으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동안 모든 삶을 바쳤던 역사서의 완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선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궁형을 자청한 이유가 된다. 사마천의 인생 사용설명서에는 오직‘역사서를 집필하라’고 씌여 있는 것이다. 모든 치욕은 [사기]의 완성을 위해 감수되었고, 이 사건은 그의 삶뿐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의 비극은 130권의 역사서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누르고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 운명의 비극을 통찰함으로써 불멸의 역사서 [사기]를 완성해낸다.

 

2. 내가 저자라면

 

<사기>에서 사마천의 업적은 복잡한 사건들을 질서정연하게 기술했다는 점이다. 복잡함을 단순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꼬인 것을 풀었다. 사마천의 사기는 다루고 있는 시대가 다른 역사가의 정사보다 길다. 수집 자료도 다양하다. 사기는 생색내기 위해서 만든 작업물이 아니다. 진심으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기술했다. 그만큼 서술이 방대하고,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각도 또한 다양하다.

 

편집이 잘되었다. 각 열전앞에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주고, 시대상을 설명했다. 각 열전에 독자가 글의 전체 내용에 대한 주제를 소제목으로 했다. 그러한 점이 독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글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책속에 있는 주제와 핵심 문장을 각 꼭지글의 제목으로 사용한 점이다.

우선 기술연대를 보면, 삼황오제 때부터 한 무제 때까지 , 2500년에서 3000년 정도 되는 역사를 52 6 5백자로 압축했다.

 

이 중에서 열전 편은 사기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사마천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역사를 왕조 중심의 연대기로만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특징적인 삶을 적극적인 논평과 함께 입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책은 주류 역사에 포함되기 힘든 자객, 글쟁이, 총신, 익살꾼, 점쟁이, 장사꾼, 변방의 이민족 등과 같은 주변부 사람들의 삶까지 적극 역사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중국 고대 2500년의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전한다.

 

사기는 역대 천자들의 역사를 다룬 본기 12, 중요한 연표를 다룬 표 10, 정책과 문물의 발전을 다룬 서 8, 제후들의 역사를 다룬 세가 30, 역사의 영웅들이나 보통 사람들의 활약상을 다룬 대서사지 열전70편으로 나뉜다. 전체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기는 기전체(紀傳體)로 씌어진 최초의 역사서이다. 기존에는 편년체(編年體),즉 발생사건을 연대 순으로 기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전체는 편년체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역사적 시각의 다양성까지를 표현할 수 있는 진일보한 역사 서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기]가 기전체로 쓰여진 이유는 사마천이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서술을 위해, 수많은 분량의 자료를 처리하는 기본으로써‘기전체’라는 구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사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란 점이다. 보통 사람들의 활약상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용이 역사를 움직인다 라는 걸 직접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기득권자,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의 것이었는데 사기는 일반 인간 중심으로 쓰여졌다. 사기에 나온 인물수도 4,000여명이나 되며, 직업도 100여가지 이상이다. 당시 사람들은 생사관이 뚜렷해서 자살도 삶과 죽음의 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모반과 배신, 암투, 서로 죽이고 죽는 모든 극적인 이야기가 다 나온다.

다음은, 처세술, 리더쉽, 인생을 이끌어줄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하는데, 생사관이 가장 뚜렷한 역할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사마천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으로 머리말을 썼다. 따라서 이러한 사마천의 입장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가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배움을 얻는다. 어떻게 하면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공을 세우고,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시대에 올바르게 적응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것인지, 귀한 배움을 얻는다. 그러나 읽고 나니 또한 혼란스럽고 갈증이 난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것, 또한‘사기’로부터 배우게 되니 말이다.

 

역사의 묘미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를 배우는 것이라 들었다. 자신을 먼저 찾고, 자신을 찾았으면, 좌우 눈치보지 말고, 묵묵히, 힘껏,‘자신의 길을 걸어가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시련과 고통속에서 꽃 핀다고 하더니,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이겨내고 이뤄낸 [사기열전] 이라는 작품을 감탄이었다.

 

* 가장 감동적인 귀절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죽음 가운데에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다는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죽음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번지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사람을 아는 것이다.

 

옛말에‘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앉아서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진나라 군사는 애쓰지 않고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듭니다. 더욱더 강해지는 진나라가 더욱 더 약해지는 조나라 땅을 떼어 받는 일이니 진나라의 요구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 그 결과는 조나라의 멸망뿐입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여 진나라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고 당신의 공로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진나라는 조금씩 공을 나누고자 할 떄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군, 백기, 대부 종과 다를 바 가 없습니다. 제가 듣건 데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 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백의같이 청렴하다는 이름을 얻고 길이 응후라 불리며 대대로 제후의 지위를 누릴 것 입니다.

 

=> 채택이 진나라 재상 응후에게 진언한 위의 말은 참으로 백미다. 역사를 보면 공을 세우고도 그 자리를 계속 고집한 자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다.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이 범재와 채택은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따라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다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 영웅도 때를 잘 타야 하며, 간난과 신고의 세월이 있었기에 그들은 오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3. 마음의 장절

 

1. 백이열전

 

66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행하겠다.

 

안연이 비록 학문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천리마(공자를 비유함)의 꼬리에 붙었기 때문에 행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2. .안 열전

69

사마천은 모든 편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역사상 뛰어난 재상반열이다. 시대적 상황 차이다. 관중은 제나라가 욱일승천할 때 재상이고, 안영은 제나라가 쇠퇴할 때 재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모두 다 한나라를 발전시키거나 구하기 위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상자리를 역임했다.

 

71-72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세상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 하였다.

 

73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해를 분명하게 따지고 득실을 재는 데 신중히 하였다.

 

75

제가 듣건데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펼친다고 합니다.

 

79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흔히 도가 사상 또는 노장사상이라고 한다. 도가 사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정 및 권력과 지위 다툼으로부터 벗어나 운둔과 도피를 일삼는 철학이다. 그래서 도가 사상은 군주 권력의 전제정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저항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3. 노자.한비 열전

79

노자사상은 사마담에게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가 남긴 ‘논육가요지’라고 하는 중국춘추시대때 여섯 개 학파들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을 사마천 자서전에 실었다. 실제로 사마천은 노자보다 공자를 더 존경했다. 노자는 열전에 들어가 있지만, 공자는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사마천은 유가보다는 도가에 더 우호적이었다.

 

81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모습과 지나친 욕망을 버리시오.

 

83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노자는 하지 않는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84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고대 제왕이 해마 동짓날에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 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는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 장자는 부귀와 명예에 초연하다 못해 그것을 천박하게 생각했다

 

87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 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88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입각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89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유세자가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91.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이 들면 그 등에 탈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마 양저 열전

=>역대 사마천이 남겨놓은 군사 전문가들이다. 군대의 꽃은 병사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가 훌륭한 장수의 차이다. 장수들이 군사들의 사기를 어떻게 올려주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다. 나폴레옹은 “군사들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했다. 사마양저는 처음에 군법이 얼마나 지엄한가를 보여주었다. 전쟁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병사들을 돌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공사구분을 엄격히 하며, 상벌을 엄하게 하며 리더의 기본기를 보여주었다.

 

사마양저가 남겨놓은 <사마병법>모두 130편 중에 5편만 남아있다. 전쟁에 필요한 다섯가지 조건들만 남아있다. 시기를 잘 선택해라. 전쟁시기. 때와 장소, 지리적 문제, 물질적 준비를 충분히 넉넉히 대비하라. 무기, 후방 식량 등. 병기를 잘 다듬어라. 장수와 병사가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해라. 적진에 대한 정보수집이다.

 

5. 손자, 오기 열전

105

유가, 도가, 묵가 삼가가 시대를 지배했다. 진시황제는 법가로 나라를 다스렸다. 한나라에 와서는 법가만으로는 통치가 어렵게 되자, 상하와 지배질서를 강조하는 충효정신을 담은 유가가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편은 세 명의 뛰어난 병법가 손무(孫武), 그보다 백여 년 뒤의 후손 손빈(孫臏), 오기의 이야기에 방연을 덧붙인 것이다. 조조가 주석을 달아 유명해진 손무의 병법은 <손자> 열세 편으로 7세기에 일본에 전해져 18세기 이후에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었을 정도다.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인재유동’이다. 움직이는 인재유동이 중국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무한경쟁에 돌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재들이 필요했다. 그 가운데서도 전문가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전쟁과 관계된 부분은 전쟁의 형태가 바뀌었다. 그전에는 신사게임으로 페어플레이로 싸웠다. 전차전에서 보병위주로 전투형태로 바뀌며, 전략과 전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숨어서 습격하고, 기마전과 함께 살상력과 피해가 커졌다. 왕은 장수에게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장수가 군중軍中 있을때는 임금명이라도 받들지 않는다”고 했다. 군령이 지엄함을 보여준다.

 

107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에게는 죽음뿐이다. 궁중의 미녀 180명을 지휘하는 손무!

 

111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116

오공이 지금 또 제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었으니 이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우는 것입니다. 나라의 보배는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118

전문이 대답했다.“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때에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121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락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 손빈은 동문수학했던 방연이라는 친구의 모함에 걸려 다리를 잘린다. 불굴의 의지로 탈출하여 살아서 앉은뱅이 군사전문가가 된다. 20년후 방연에게 복수한다. 손무와 손빈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손무는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탁월한 <손자병법>이라는 병법서를 남겼다. 손빈은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온 <손빈병법>을 남겼다. 그러면 당연히 <손빈병법>이 최고가 아닐까?

 

6. 오자서 열전

123

=> 사마천이 오자서 인물 평가를 하면, 강직한 인물이며, 오자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처지를 투영시켜본 인물이다. 사기에는 주인공이 200여명이 되는데, 그 가운데 120여명이 비극적 인물이다. 오자서는 기원전 6c 인물이다. 2500여년전 사람으로 초나라 명문가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오거이며 대단한 인물이었으나 초나라 평왕때 아버지와 형님이 살해당한다. 평왕의 마수를 피해서 오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오자서 망명을 중심으로 해서 오나라로 건너와서 오나라를 어떻게 부국강병으로 키우고 월나라와 싸움, 초나라고 돌아가서 원수를 갚는 일, 이런 것들이 대하드라마로 펼쳐진다. 최고의 명편으로 꼽힌다. 피로 쓴 드라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 왕 부차는 따가운 섬나무 위에서 잠을 잤고, 월나라 왕 구천은 매일 쓸개를 맛보았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도 여기에서 나온다.

 

134.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일묘도원

=> 중국속담에 ‘대장부 복수 10년도 늦지 않았다‘가 있다. 초나라 평왕이 오자서를 붙잡기 위해 상금을 걸고 초상화를 소관이라고 하는 관문 앞에 붙여놓았다. 이를 얼마나 고민하고 속을 태웠던가? 오자서는 밤새 고민한 끝에 머리가 하앟게 새어서 무사히 초나라를 탈출 했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만큼 오자서의 원한이 깊고 절박했다는 심경을 말해준다. 오나라 왕 합려가 임금이 되도록 돕고, 오나라 군대를 키워서 복수하기 위해 초나라로 돌아왔다. 초나라 수도가 영이었는데, 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평왕이 이미 죽고 없었다. 오자서는 평왕 무덤을 파헤쳐 평왕 시체에 채찍질을 가한다. 여기에 굴묘편시라고 하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나온다. 무덤을 파서 시체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것도 300대나. 친구였던 신포서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야.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신포서는 오자서가 망명할 때 도움을 주었던 친구다. 오자서가 망명할 당시. 오자서가 신포서에게 “반드시 살아나서 원한을 갚겠다”고 말하자, 그 당시 신포서는 “나는 너의 원한을 막겠다”고 했다. 오자서는 ‘일묘도원’이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도행역시’라는 때로는 일의 순서를 바꿔서 해야 한다. 상식하고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다.

 

138

‘옳고 그른 것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이 땅에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140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

=> 왕은 오자서를 죽였지만, 백성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구나. 자신의 의견이 옳다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 절개의 사나이 소자서!

 

143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정녕 심하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옛날에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오자서는 장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고, 또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마음속에 어찌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잠깐인들 잊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초를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 오자서는 사마천처럼 분노 에너지를 큰 뜻으로 사용했다.

 

7. 중니 제자 열전

145

B.C.500~250년에 이르는 기간은 제자백가의 전성 시대다. 당시 사상가들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였고, 봉건 제후의 고문이 되거나 외교관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위대한 지적(知的)전개와 성과는 문화적 진보를 가져왔다.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 사이 30을 전후로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有敎無類-배움에는 종류, 부류가 없다, 누구든지 배우고자 한다면 차별 없이 가르쳤다’에 두었다.

 

=> 공자 이름은 구이다. 자는 중니다. 니구산이라는 곳에서 아버지 숙량왕과 어머니가 야합해서 태어난 곳이다. 죽은 후 왕호로 추존되는데, 공자 무덤 앞에 대성지성문성왕묘 라 쓰여있다. 즉 글을 널리 널리 세상에 알렸다 해서 문성왕이라 지었다고 한다. 공자 아버지는 ‘숙량휼’이란 무장이었고, 어머니는 ‘안징제’라는 분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중니제자열전은 공자제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공자는 “배워서 여력이 되면, 나가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라”라고 가르쳤다. . 공자가 평생에 떠돌아다닌 이유중의 하나도 “내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자리”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자는 사립대 총장이다. 3000여명의 제자가 따라다녔다 하니.

 

148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153. 자로가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다. “군자는 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155.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 자로는 공자와 아홉 살 차이로 아래다. 자로는 공자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 공자가 체면상 나서지 못할 때, 자로가 나서줬다. 자로는 생각과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행동파였다.

 

160

자공이 물었다.“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했다.“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161

전상이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당신이 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쉬운 것이고, 당신이 쉽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운 것이오. 이처럼 일반적인 상식과 반대로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이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에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 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의 골칫거리는 나라 안에 있습니다.

 

164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다른 날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170.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할 수 있다. 자하는 공자보다 44세 아래인데, 이렇게 물었다. “아름다운 눈의 맑게 갠 움직임이여, 아름다운 눈이 가진 흑백의 선명함이여, 흰 바탕으로써 아름다움을 이루었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

 

171

많이 듣고 삼가면 실수가 적다.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 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 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자장이 세상에서 행세할 수 있는 도리를 물으니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장은 이 말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기 허리띠에 적어 두었다.

 

172. 명망과 통달의 차이

자장이 공자에게 ‘통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네가 말하는 ‘통달’이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다. 이에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그것은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라고 한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178. 낭만주의자 증점

“네 뜻을 말해 보아라.”그러자 증점은 이렇게 말했다.“봄 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기우제를 지내던 누대)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공자는 이 말을 듣고서 감탄했다. “나도 너와 같이 하고 싶구나!

 

182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움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184

번지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사람을 아는 것이다.

 

190

태사공은 말한다. 배우는 사람 중에 공자의 칠십여 제자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칭찬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실제보다 지나친 사람도 있고, 비방하는 사람 중에는 참 모습보다 지나치게 헐뜯는 이도 있다. 그 어떤 경우이든 그들의 참 모습을 모르고 말한 것이다. 이것들과 비교해 볼 때, 공자 제자들의 명부는 공씨 벽 가운데서 나온 고문에 근거한 것이므로 거의 정확할 것이다. 나는 제자들의 이름과 글을 모두 논어에 있는 공자 제자들의 문답에서 취하여 함께 엮어서 이 편을 만들었으며 의심 나는 것은 싣지 않았다.

 

=> 논어의 문답에서 자료를 발췌했다는 사마천의 말은 당대의 공자와 제자간의 대화 기록인바 보다 확실한 역사적 거증 자료가 될 것이다. 사마천의 혜안이 돋보인다.

 

8. 상군 열전

193

상군은 중국 선진 시기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 상앙商鞅 말한다. <상군열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상앙의 변법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법가 사상 자체가 지식인을 탄압하는 전제주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상앙의 사상은 지식인과 관료를 중심을 하는 유교사회에서는 거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마천도 그이 인물됨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196

공손앙이 말했다.

왕께서 당신 말을 듣고서 저를 임용하지 않는데, 또 어찌 당신 말을 들어 저를 죽이겠습니까? 그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혜왕은 돌아와 주위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숙좌의 병이 깊어 슬프오. 과인보고 공손앙에게 나라를 맡기고 상의하여 처리하라고 하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소!”

 

=> 공손앙의 현명함과 대범함이 돋보인다.

 

199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약 제도를 좇지 않았습니다.

 

200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백 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고쳐서는 안되며,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그릇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옛 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사악함이 없습니다

 

207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 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强강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 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208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210

<시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파멸은 한 발을 들고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다가올 것입니다.

 

9. 소진 열전 (합종가)

215

소진의 공부법이 유명하다. ‘추자고 두현량’. 공부하다 졸리면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를 찌르고,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단다. 졸리면 머리카락을 잡아 당긴다. 최마술이라고 상대방의 심리를 읽는 공부를 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지 못하면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 각국의 정확한 정세를 분석했다. 정보력이 유세가의 차이를 결정했다.

 

소진은 6개국의 합종을 하기 위해, 각 나라가 소진을 객경으로 임명한다. 소진은 6개국의 재상이 된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유엔 사무총장쯤 된다고 할까. 소진의 권한은 유엔사무총장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소진의 도장도 육각이었고, 죽고 난 후의 비석도 육각이었다고 전해진다. 유세가들은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책략가였다. 이 책략가들이 후에는 왕의 참모가 되었다.

 

226

제후 중에 이 약속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다섯 나라의 군대가 함께 그 나라를 공격한다.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함께 진나라에 맞서면 진나라 군대는 틀림없이 감히 함곡관으로 나와 산동을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 이 말은 이론상 타당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이 후 진나라의 연횡가 장의가 나와서 제후국을 하나씩 각개격파로 연횡을 맺고 제후국이 합종을 깨뜨렸을 때, 합종의 맹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연횡론이 승리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229

왕의 땅은 다함이 있지만 진나라의 탐욕스러운 요구는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원한을 사고 불행을 불러오는 격입니다.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232

과장된 몸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 병사들이 공격할 때에는 날카로운 칼이나 좋은 활을 쏘는 것 같고, 싸움을 할 때에는 우레처럼 빠르고 힘이 있으며, 물러날 때에는 비바람처럼 재빨리 흩어집니다. 

 

234

지금 신하가 되어 진나라를 섬긴다면 아무런 명분이 없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실제적인 이익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신은 왕께서 이 문제를 마음에 두어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239.

소진이 제나라 왕을 만나 두 번 절하고 엎드려 축하하고는 곧 고개를 들어 조의를 표하였다. 제나라 왕이 이상해서 물었다.

“축하하자마자 조의를 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소진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烏喙)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은 것과 똑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연나라는 비록 힘이 약하고 작지만 연나라 왕은 진나라 왕의 사위입니다. 왕께서는 연나라의 성 열 개를 얻었으나 강대한 진나라와는 길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힘이 약한 연나라가 기러기 행렬처럼 앞장서고 강대한 진나라가 연나라의 뒤를 봐주며 쳐들어온다면 천하의 정예 병사를 불러들이는 격이니 오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241

신이 듣건대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244.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멀리 떠나갔는데, 그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 남편이 돌아올 때가 되어 정부(情夫)가 걱정을 하자, 아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독약 탄 술을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흘이 지나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첩에게 독이 든 술을 가져다가 그에게 권하도록 하였다. 첩은 술에 독이 들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주모(主母)가 내쫓길까 두렵고 말을 안 하자니 주인을 죽이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질렀다. 주인은 몹시 화를 내며 그녀에게 채찍을 쉰 대나 쳤다. 첩은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어서 위로는 주인을 살리고 아래로는 주모를 쫓겨나지 않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 맞는 것만은 피하지 못했다.

 

250-260. 자주색 비단이 흰색 비단보다 열 배 비싸다.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쫒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했다.

 

 

10. 장의 열전 (연횡가)

263

장의가 그 아내와 이야기할 때 혀가 붙어 있는지 물어본 것은 혀가 없는 장의는 생각할 수 없으며, 세 치밖에 안 되는 혀를 무기 삼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부귀를 쫓던 당시 유세가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소진은 합종을 했다. 진나라에는 장이가 있는데, 장이가 바로 합종(세로정책)을 깬다. 장이는 연횡정책(가로정책)을 실시한다. 종횡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유세를 펼치기에 유세가를 종횡가로 한다. 장의가 그 아내와 이야기할 때 혀가 붙어 있는지 물어본 것은 혀가 없는 장의는 생각할 수 없다. 이를 설상제라 한다. 즉 혀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장이가 요즘에 살았다면 장이는 혓바닥에 보험을 들었을 게다. 소진의 합종이 없었으면 장이의 연횡도 없었을거다. 합종의 취약점은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나머지도 다 무너진다. 유세가들은 국제전문로비스트다. 천하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그 판단에 따라 분석함으로써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외교전문가들이 바로 그 당시 유세가였다.

 

267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 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275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282

‘병력이 부치면 싸워서는 안되고, 식량이 부치면 오래 싸우지 말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86

호랑이처럼 용맹한 병사, 맨발에 투구도 쓰지 않은 채 적진으로 뛰어드는 병사, 화살이 턱을 꿰뚫어도 창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달려가는 병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303

큰 나라는 타격을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타격 입은 나라를 치면 한꺼번에 둘을 얻는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것과 같은 일입니다.

 

305

 “한, , 조 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켠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 소진과 장의의 파란만장한 생애 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격렬한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진단하고 주도하려 했던 풍운아들의 삶만큼은 대단히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인물치고 위험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영향력이 크면 그만큼 위험이 큰 법이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시대의 변화상과 파란만장한 삶을 보면서 역사와 지혜를 배우며, 삶을 배우고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에는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펼치는 화려한 언변에 맥없이 무너지는 권력자들의 얇은 귀도 함께 드러난다

 

12. 양후 열전

 

334

당신은 먼저 누완에게 ‘저는 공을 위하여 진나라 왕에게 서둘러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위염을 재상으로 삼아 달라는 조나라의 요청이 그다지 급하지 않다는 것을 진나라 왕이 알면 도리어 당신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을 하여 그대로 되지 않으면 누완에게는 덕을 베푼 것이 되고, 그대로 되면 위염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342

(양후)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범저 한 사람의 탄핵으로 신분이 꺾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렇거늘] 하물며 [진나라에서 벼슬아치가 된] 객경이야 어떠하겠는가?

=> 인생무상

 

13. 백기, 왕전 열전

 

353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까?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을 속여 모두 산 채로 땅 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 진나라 소왕으로부터 칼을 받은 무안군 백기의 말이다. 백기만큼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공훈을 세운 장군도 없으리라. 비록 백기의 전략은 다 맞았지만 왕의 명령을 거스른 죄를 죽음으로 받아야 했다. 참으로 전국시대 때의 영웅호걸 중 말로가 비참하지 않은 영웅은 찾아보기 힘들구나.

 

14. 맹자, 순경 열전

361

맹자는 공자 학설의 단순한 계승자라기 보다는 유가 사상에 특정하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가 사상을 더욱 드러내고 발진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춘추 전국시대를 잠깐 살펴볼까요.

사기에 나온 인물숫자만도 4,000여명, 주인공들만도 200여명, 한시간에 한명씩만 읽어도 200여시간이 필요하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혼란기였으며, 인재들이 대활약한 시기였다. 끊임없이 전쟁하고 경쟁하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로 약진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간이다. 전쟁이 약 500회이다. 기록만으로. 1년에 한번씩 전쟁을 했다는 통계다. 그에 따라서 국제 회담. 전쟁이 끝나면 회담을 해야 하고, 기록에 의하면 전후회담戰後會談 480여차례이다. 여기에 외교전문가, 유세가, 로비스트들이 활약한다.

통일로 가는 대세이다 보니 각국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게 하려는 부국강병책을 쓰게 된다. 각종 정책들, 수많은 발명들, 수많은 인재들 등 이런 다양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중국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황금시기’라고 부른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철기문화가 보편화되고, 무기 때문에, 또 하나가 농기구 농업생산이 중요한 생산방식이었다. 철제농기구는 땅을 깊이 팔 수 있었다. 땅을 깊이 파면 씨앗을 심어도 수확량이 많아지고. 우경牛耕 발명된다. 철제쟁기로 땅을 깊이 파는 우경이 보편화 된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도시가 발달한다. 이 도시 발달이 이 시기에 굉장히 중요한 현상인데, 인구가 많았던 곳은 50만 정도가 되었단다. 2,300~400년 전에요. 그 당시로 말하면 인구 천만 정도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사마천이 이 모습을 보고 묘사했는데,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 때문에 비가 내릴 정도였다.”고 비유했다. 사마천이 글심이 좋지요.

 

노자, 장자, 공자는 다 춘추전국시대 사람이다.

인의예지신 사상은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한 한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법가사상, 억지로 일 할려고 하지 말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원래 인간이 태어났던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했던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 평화사상을 실천한 사람으로 묵자가 있다. 보편적 인류애, 박애정신, 비전非戰, 반전사상인 묵가사상이 있다.

유가는 중국국가 통치이념으로 정책이 되었다. 종교적으로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유교로 확립되었다. 도가는 중국인에게 민중종교로 확산되면서 도교로 성립되었다.

 

사마천은 공자를 존경해서 공자를 <세가>에 넣었고, 순자 한비자, 노자, 장자, 맹자는 열전에 넣었다. 순자 아래에 법가 사상이 나온다. 맹자는 유가 우파, 순자는 유가 좌파이다. 법가의 주요한 인물들이 순자 밑에서 많이 나온다. 추연은 음양오행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변종유세가정도?, 권력보다는 자기 생각을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야기하지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363

사욕은 혼란의 시작이다.‘아!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368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전에 왕을 만났을 때 왕은 말을 쫓아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왕이 음악에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래서 나는 말없이 있었소.

 

370.

제나라 왕은 그들의 학설에 흡족하여 순우곤 이하 모든 학자에게 열대부라는 작위를 주고, 번화한 길가에 높은 문이 달린 커다란 집을 지어 주어 살게 하면서 존경하고 총애했다. 제나라 왕은 천하의 제후들과 빈객들에게 제나라에서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순우곤’이 있다. 임금한테 말할 때도 수수께기로 말했다. 제나라 사람으로 위왕이 술과 여자에 빠져 정치를 하지 않았다. 순우곤이 위왕을 찾아가서 충고를 했다. 순우곤이 위왕에게 말했다.

“수수께끼 하나 낼 터이니 들어보시겠어요? 우리 궁궐 앞마당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었는데, 이 놈의 새가 어찌 된 일인지3년 동안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네요. 어떤 새일까요?” 이렇게 물었다. 거기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멋진 새가 한 마리 날아들었는데,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으니 일을 안 한다는 말이었다. 왕을 비꼬았던 것이다. 이에 왕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그 새가 한번도 울지 않았다면, 한 번 울었다 하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고,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까지 솟구쳐 올라갈 것이다.” 라고 했다.

 

15. 맹상군 열전

 

375

전군 4공자戰國四公子-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은 선비를 기르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각기 식객 3000여 명을 거느렸다.

 

379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380

맹상군은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때 늘 병풍 뒤에 시사를 두어 손님과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그 내용을 적어 두도록 했다.

 

381.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리로 위기를 벗어난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을 불러, 맹상군이 가려 하자, 소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저는 밖으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려던 생각을 그만두었다.

 

384

지금까지 설공은 키가 훤칠한 대장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훅 불면 날아갈듯한 왜소한 사내로구나. 맹상군이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자 그와 함께 길을 가던 빈객들이 수레에서 뛰어내려 칼을 빼서 수백 명을 베어 죽이고, 마침내 현 하나를 없애버린 뒤에 떠났다.

 

393

풍환이 대답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 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 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 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맹상군은 손뼉을 치면서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393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압니까?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397.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맹상군이 제나라 재상에서 물러났을 때 빈객이 모두 떠나고, 다시 제나라 재상으로 등용되자, 풍환이 빈객들을 맞이하려고 할 때, 이를 이상히 여겨 맹상군이 풍환에게 물어본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알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398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설 땅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 풍속은 마을에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아주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나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가()나 되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했는데, 그 소문이 헛된 것만은 아니구나!

 

=> ‘집안의 물건은 그 집주인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빈객들은 오죽하겠는가? 물건도 집주인의 성품을 닮아가는데, 그 집안의 밥을 먹고 주인의 말을 들으며 잠을 자는데 자연히 닮아가겠지. 빈객에게 밥을 주는 맹상군의 성품대로 빈객도 그렇게 되어간다. ’끼리낄 모인다‘고 했다. 맹상군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겠는가? 그가 명성과 이익을 좇았다면 당연히 그를 따르는 빈객들도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리라. 태사공이 맹상군이 살았던 지역을 답사하고 느꼈던 것을 썼다. 그곳 주민들이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많다는 것을 예와 인을 따르기보다는 이익에 좇아 행동하는 선조들을 두었기 때문에 후손도 그렇다는 것을.

 

맹상군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자기가 먹는 밥하고 식객이 먹는 밥을 똑같이 두게 했다. 재주나 능력있는 사람은 모두 받아주었다. 누가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면, 뒤에 이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다 선물을 미리 보냈다. 자기 곁에 스카웃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오면, 이런 인재들을 망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임금하나로 부족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제후나 공자나 유력가들이 인재풀을 가동하여 조정에 추천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대로 권력기반을 확실하게 다졌다. 3000명의 식객을 거느리기 위해서 맹상군은 돈놀이도 했다.

 

맹상군이 풍환을 비롯하여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흉내내던 빈객들을 불러 들였을 때, 그들이 맹상군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이런 점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빈객으로 대접한 맹상군의 인물평가 능력은 본받을 만하다.


16. 평원군. 우경 열전

 

406. 낭중지추(囊中之錐)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409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격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417

옛말에‘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앉아서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진나라 군사는 애쓰지 않고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듭니다. 더욱더 강해지는 진나라가 더욱 더 약해지는 조나라 땅을 떼어 받는 일이니 진나라의 요구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 그 결과는 조나라의 멸망뿐입니다.

 

421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때에는 큰 나라가 복을 받고, 일이 잘못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속담에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라고 하였다.

 

422

평원군운 풍정의 그릇된 말에 빠져 조나라 장평의 사십여 만 병사를 산 채로 매장되게 하고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 했다. 우경이 사태를 헤아리고 상황을 추측하여 조나라를 위해 꾀한 계책들은 얼마나 주도 면밀했던가!

 

18. 춘신군 열전

 

443 

춘신군 황헐은 네 공자 중 한 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황헐은 이 십여 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합종책을 추진하여 진나라에 맞서는가 하면 노나라를 멸망시켜 초나라를 다시 한 번 일으키는데 이바지했다. 그렇지만 말년에는 권세와 부귀를 지키려다 이원의 간사한 음모에 걸려 비참하게 살해된다.

 

445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446

신은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라고 들었습니다.

 

447

<시경>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456. 정확한 결단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이원은 이미 자기 누이동생이 궁궐로 들어가 왕후가 되고 그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거나 그 일로 점점 오만해질까 염려하여 남몰래 죽음을 각오한 용감한 병사들을 길러서 춘신군을 죽여 그의 입을 막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 중 많은 이가 이 일을 알고 있었다.

 

459. 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주영이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 있고, 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춘신군과 주영이 묻고 대답한다.

 

“무엇이 생각지도 않는 복이라고 하오?

“당신이 초나라 재상이 된 지 이십여 년이 됩니다. 이름은 재상이지만 사실은 초나라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초나라 왕이 병에 걸려 머지않아 돌아가시려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린 군주를 도와 나랏일을 하게 될 텐데, 이는 옛날 이윤이나 주공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왕이 자라면 정권을 돌려주거나, 아니면 왕 노릇을 하여 고()라고 일컬으며 초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재앙은 무엇이오?

“이원은 당신이 있으면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원수로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궁궐로 들어가 권력을 잡고 당신을 죽여서 입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않은 재앙입니다.

 

“뜻밖의 인사란 누구요?

“당신께서는 저를 낭중(郎中)에 임명하십시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궁궐로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제안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입니다.

 

태사공은 말한다.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461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 범저, 채택 열전

 

502

이렇게 하여 진나라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고 당신의 공로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진나라는 조금씩 공을 나누고자 할 떄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군, 백기, 대부 종과 다를 바 가 없습니다. 제가 듣건 데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 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백의같이 청렴하다는 이름을 얻고 길이 응후라 불리며 대대로 제후의 지위를 누릴 것 입니다.

 

=> 채택이 진나라 재상 응후에게 진언한 위의 말은 참으로 백미다. 역사를 보면 공을 세우고도 그 자리를 계속 고집한 자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다.

 

504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이 범재와 채택은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따라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다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 영웅도 때를 잘 타야 하며, 간난과 신고의 세월이 있었기에 그들은 오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20 악의 열전

 

513-516. 군주와 신하의 의는 무엇인가

악의가 연나라 혜왕에게 답장한 글이다.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

“일을 잘 꾸민다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21 염파.인상여 열전

 

526

왕이 화씨벽을 상여에게 건네주었다. 상여는 화씨벽을 손에 넣자 뒤로 몇 걸음 물러나 기둥에 기대서더니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찌를 만큼 화를 내며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일반 백성의 사귐에도 오히려 서로 속이지 않거늘, 하물며 큰 나라끼리 사귀는 데 그럴 수 있겠는가?

 

530

“신 상여와 왕 사이는 다섯 걸음도 못 됩니다. 신은 목의 피를 왕께 뿌려서라도 요청할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이 상여를 칼로 찌르려고 하였으나 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자 모두 뒤로 물러섰다. 진나라 왕은 하는 수 없이 조나라 왕을 위해 분부를 한번 두드렸다.

 

533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538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545

태사공은 말한다.“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 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553

전단은 성안에서 소 1000여 마릴ㄹ 모아 붉은 비단에 오색으로 용무늬를 그려 넣은 옷을 만들어 입히고, 쇠 뿔에는 칼날을 붙들어 매고 쇠꼬리에는 갈대를 매달아 기름을 붙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성벽에 구멍을 수십개 뚫어 밤을 틈타 그 구멍으로 소를 내 보내고, 장사 5000명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꼬리가 뜨거워지자 소가 성이나서 연나라 진영으로 뛰어 들었다. 연나라 군사는 한밤중에 크게 놀라 달아났다.

 

=> 전단의 신출귀몰하는 전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선 제나라를 구해 내었다.

 

24 굴원. 가생 열전

 

586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91.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쫒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여기서는 그 시대의 일을 아는 자를 가리킬 뿐 도덕적, 인격적 경지에 오른 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이란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고?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굴원은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597

가생은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은 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아주 명확하게 대답했다.

 

가생은 한나라가 일어나서 효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천하가 태평하니 마땅히 역법을 고치고 관복 색깔을 바꾸며 제도를 재정비하고 관직 이름을 새로 정하며, 예의와 음악을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의 의례와 법률제도의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색깔은 황색을 숭상하고, 숫자는 5를 기준으로 삼으로, 관직이름을 만들어 진나라 때의 법을 완전히 바꾸려고 했다.

 

602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607

“[복조부]를 읽으니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

것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 나니 삶과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재행무상을 느꼈을 것이다.

 

 

25 여불위 열전

 

614

여불위가 말했다. “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615

여불위는 그 언니에게 이렇게 말해 부인을 설득하도록 했다. “제가 듣건대 아름다운 얼굴로 남을 섬기는 자는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면 사랑도 시든다고 합니다. 일찌감치 여러 아들 가운데 현명하고 효성스러운 자와 인연을 맺어 그를 후사로 발탁하여 양자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존중 받으며 귀한 자리에 있고, 남편이 죽은 뒤에도 양자가 왕이 되므로 끝까지 권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마디 말로 장구한 이로움을 얻는 일입니다. 영화를 누릴 때 터전을 닦아 놓아야지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뒤에는 비록 한마디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621

진시황은 관리를 보내 노애를 치고, 노애가 싸움에 져 달아나자 끝까지 쫓아가 호치에서 목을 베고 그의 일족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여불위도 이 일로 말미암아 배척을 당했다.

 

=> 자신의 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한 진시황이 어릴 때는 전권을 쥔 태후와 놀아 나면서 갖은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진시황이 장성하니 천하의 여불위도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이 때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26 자객 열전

 

626.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약속을 어기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읽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되돌려주는 편이 낫습니다.

 

630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에 죽겠다. 이렇게 하여 지백에게 은혜를 갚는다면 내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631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이렇게 하는 까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632

지백은 저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대우하였으므로 저도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신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

 

636

사람이 많으면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길 수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기면 말이 새어 나갈 것이며, 말이 새어 나가면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여길 텐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636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651. 자객은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27 이사 열전 

 

661

이사가 창고 안으로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661.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막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662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만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밀고 나갑니다.

 

669.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법률과 제도를 밝히고 율령을 만드는 일은 모두 시황제 때에 처음 생겼다.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의 이곳저곳에 이궁(황제가 각 지역을 순시할 때 머무는 것)과 별장을 두루 지었다. 그 이듬해에는 세상을 돌아보고 사방의 오랑캐족을 나라 밖으로 쫒아냈는데, 이 모든 일은 승상 이사의 힘으로 가능했다.

 

670.

이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 이사는 말단 공무원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궁창 속의 쥐와 곡식창고의 쥐를 보면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름 아닌 순자를 찾아가서 공부한다. 그러나 다 마치지 못하고 곤궁하고 비참하게 사는 건 나는 견딜 수 없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진나라로 가게 되고, 여불위 밑에서 식객 노릇을 하다가 여불위 추천으로 진시황의 측근이 되었다. 출세지향주의자들의 대표격인 이사는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한다. 부귀영화가 가져다 주는 그림자 부분들을 떨치지 못하고 거기에 매달리다 결국은 아들과 함께 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

 

672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또는 남을 지배하는 것과 남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어찌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676

성인은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위와 아래가 마음을 합치면 길이 누릴 수 있으며, 안과 밖이 하나가 되면 일의 겉과 속이 없어집니다

 

679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이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698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28 몽염 열전

 

707

신이 듣건대‘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충신을 죽이고 지조와 덕행이 없는 사람을 세우면 안으로는 신하들이 서로 믿지 않게 되고 밖으로는 전쟁을 하는 군사들의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 신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711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

 

30 위표.팽월 열전

 

745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소.

 

31 경포 열전 


767

영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영포가 최상의 계책을 쓴다면 산동 땅은 한나라의 소유가 아닐 테고, 보통계책을 쓴다면 승패는 알 수 없으며, 낮은 계책을 쓴다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 계셔도 될 것입니다.

 

770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32 회음후 열전

 

779

왕께서는 본래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대장을 임명하는데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시니, 이것이 바로 한신을 떠나게 한 까닭입니다. 왕께서 그를 대장으로 삼으시려면 좋은 날을 택하여 재계하고 단장을 설치하여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789

제가 듣기로‘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경우가 있다.’라고 합니다.

 

798

귀하게 되느냐 천하게 되느냐는 골상에 달려 있고, 근심이 생기느냐 기쁨이 생기느냐는 얼굴 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것을 참고하여 판단하면 만의 하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801

내가 듣건대‘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라고 합니다.

 

806. 토사구팽

사람들의 말에‘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데 된다.

 

811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 한신이 이토록 우둔할 수가…..!

831

한신과 노관은 본래 대대로 덕을 쌓고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의 권모술수로 벼슬을 얻고 간사함으로 공을 이루었다.

,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35 ...관 열전

 

850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겠습니까?

 

869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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