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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22시 54분 등록

궁형을 감수하고
10기 김정은



중국 고전의 기록에 의하면, 사형(死刑)•궁형(宮刑)•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의형(劓刑:코를 베는 형벌)•경형(黥刑:얼굴•팔뚝 등의 살을 따고 홈을 내어 죄명을 찍어 넣는 형벌)을 5형이라 하는데, 이 중에서 남녀의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로서, 남자는 생식기를 거세하고, 여자는 질을 폐쇄하여 자손의 생산을 전연 불가능하게 하였으므로,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이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마디로 사마천에 훅 갔다. 남자에게 궁형을 감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자로서 어떻게 궁형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궁형을 감수하고 이루어야 할 뜻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로 간다.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동네 남자아이들이 다 갖고 있는 것이 나에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무지 졸라댔단다. 그것 좀 사달라고. 나는 정말이지 남자의 ‘그것’이 갖고 싶었다. ‘그것’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난 확실히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과 더 잘 놀았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동네 남자친구들이 치사하고 의리 없이 굴면 속으로 궁형을 내렸다.
“잘라라, 잘라!”


내가 남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 갔다. 남자 형제 하나 없는 가정에서, 남녀 차별 없이 자랐지만,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키운 것이 문제였다. 남자라면 여자인 나보다 힘도 셀 것 같았고, 두려움도 덜 느낄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한 동경은 ‘강함’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는 그저 집안의 튼튼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동경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사라졌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았다. 내가 여자인 것이 감사할 정도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꽃과 동물을 기르는 것에 비할 수 없이, 감격적인 선물과 같은 일이었다.


“어디 가서 떡 하니 하나 붙이고 오는 거 아냐?” 남편이 가끔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설마, 그럴리가. ‘그것’의 동경은 그저 동경일 뿐, 억지로 만들어 붙이고 싶진 않다. 하지만 궁금하다. 남편에게 물어본다. 사형과 궁형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궁형을 감수하고도 뜻을 세워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 남편은 대답했다. 자신은 궁형을 받느니 사형을 받을 것이고, 궁형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바는 없단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이 없이 살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고 나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하고 있다. 하긴, 조르바도 그랬다.
"아니, 그걸 자르다니. 그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에요."


서대문형무소의 지하고문실에서 일제 때 고문 받았던 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잔다르크들이라 불리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은 궁형을 감수하고 뜻을 세운 이들이었다. 고 이병희 여사는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당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아픈 것보다 죽는 게 나았거든." 고 이병희 여사는 증언했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의 씨를 말린다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질에 긴 꼬챙이를 끼운 채, 그 꼬챙이로 사람을 들어 공중에서 빙빙 돌리는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은 여성의 질과 자궁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궁형이라 할 수 있다. 고 이병희 여사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무언가를 한다면 목숨을 내 놓고 해야 한다. 목숨을 내 놓지 않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이라 말 할 수 없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궁형’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만 엉엉 울었다. 여자들이 궁형으로 받았을 고통을, 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열 여섯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벌이었다. 그녀들은 이후 평생 엄마가 되지도,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궁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립운동가로서, 독립군의 뒷바라지로 생을 마친 여인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서대문형무소를 나오면서 나는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목숨을 내 놓고도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엊그저께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교감선생님 지시 하에 독서지원단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제는 학교에 걸러 온 민원 전화 내용이었다. 우리 학교는 경기도에서 유명한 혁신학교이다. 2010년 설립 당시부터 정부 지원 하에 교사와 학부모가 같이 실험적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교사 학부모간 촌지근절과 같은 신뢰가 밑받침이 되었다. 지난 4년간 교사와 학부모의 노력으로 실험적인 학교 모델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고, 매스컴도 여러 차례 탔다. 우리 학교의 프로그램이 좋다고 입 소문이 나면서 개교 당시 400명 인원이던 학교가 금년 1,700명이 넘어섰고, 주위 아파트의 전세가도 급격히 올랐다. 가까이는 일산에서, 멀게는 지방에서,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고 있다.


개교 당시, 학교는 건물과, 교사, 학생만 덩그러니 있었다. 도사관도 책도 없었던 그 시절, 학교에서는 독서관련 전문가들을 초빙할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주로 서울에 밀집한 전문가들은 차비와 시간을 들여 파주까지 오지 않았고, 교사들은 실험적인 수업의 교안을 짜느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학부모 독서지원단이다. 학교에서는 학부모 지원자를 받아서 교내 도서관 운영 및 독서관련 수업, 독서 캠프 등 교과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중요한 수업들을 독서지원단에 일임했다. 그렇게 4년 동안 교사와 학부모가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며 실험적인 학교 모델을 만들어 왔다.


올해 학생이 1,700명으로 늘어나면서 독서지원단의 활동도 늘어났다. 하지만 외부에서 온 학부모들의 시선에 학부모 교사들의 활약이 곱게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민원을 넣은 것이다. 치맛바람으로 보이는 학부모 교사들의 활동을 막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교감선생님 이하 교사들은 이제 독서지원단의 노력은 일부 역할을 제외하고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을 돌려서 하셨다. 학교 입장에서는 도서관 하나 없던 황무지 학교에 번듯한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을 이미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을 활용하면 되고, 또 학생들이 1,700명으로 늘었으니 수익자부담으로 각출하면 전문가 출장비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서 씁쓸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독서 지원단으로 활동한 지난 3년을 뒤돌아 보았다. 직장 생활만 했던 나에게 학교에서 봉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 순수한 마음을 아이들은 알아주었다. 봉사 활동도 직장 생활처럼 열심히 했더니 그 노력을 인정 받아 봉사 1년 차에 학교의 강사로 채용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수업료를 받는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려서 전부 재능기부로 돌렸고 수업료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기부를 해 봤는데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인근의 4개교에서 수업 요청이 들어왔다. 인근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수업료를 받았다. 교대나 사대 출신이 아닌 보통 사람이 수업을 하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목숨까지는 안 걸어도, 건강을 걸어 열심히 했더니 그 해 경기도 교육감상을 받았다. 매 수업 내 아이가 본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한 결과였다. 작년엔 파주시 교육청에서 초등학교에 파견되는 강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를 내게 의뢰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내가 한 봉사에 비해 내가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독서지원단의 다른 분들은 나보다 훨씬 봉사를 많이 했지만, 내가 받은 혜택 중 단 한가지도 얻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녀들은 참 억울할 것 같다. 아무런 대가 없이 순수 봉사를 해왔는데 오해만 받게 되었다. 나는 이미 다른 곳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교에만 올인한 그녀들은 학교에서 했던 역할이 줄어들면 상실감이 클 것이다. 학교에서 필요할 땐 쓰고, 민원 전화 한 통에 버린다며 상처받은 이들도 많다. 나는 무엇보다 교사와 학부모가 이루어낸 실험적인 조화가 아름다웠던 우리 학교가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감시자가 되는 일반 학교처럼 될 것 같아 아쉽다.


씁쓸한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마천 평전을 펼쳤다. 나는 ‘그것’이 없어서인지 궁형에 처한 사마천의 수치심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살갗이 드러나는 매질과 궁형을 받은 후에도 환관이 되어 자신에게 극형을 내렸던 왕의 시중을 들며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이 새롭게 보였다. 인물 중심의 열전에서 볼 수 있는 사마천의 객관적인 통찰력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사소한 불미스러운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어 여유 시간이 생기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 정기적인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에도 제한이 있었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장애인복지관 같은 곳은 거의 대부분 외진 곳에 있어서 운전을 못하는 내가 시간 맞춰 가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봉사의 시작을 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한 내 봉사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치맛바람이 될 수도 있다. 악한 의도의 민원 전화를 받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교감선생님과 교사들이 독서지원단을 구성할 때와는 딴 판으로, 민원 전화를 걸어온 편에 서서 독서지원단을 몰아세우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 시각장애를 핑계 대며 그저 익숙한 곳에서 봉사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 인가.


<사기열전> 제32편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한신처럼 그냥 그까짓 일로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나를 놀려대는 자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자. 고작 ‘치맛바람’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자. 이 일은 ‘궁형’을 감수할 정도의 일이 아니다. 이 참에 내가 하고자 하는 봉사의 영역을 갈아타보자. 궁형을 감수하고 궁형을 내린 왕의 시중을 들며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을 가슴에 묻자. 이젠 고인이 된 한국의 잔다르크들을 가슴에 묻자. 날 때부터 타고난 시각장애라는 육형을 감수하고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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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 23:15:37 *.201.146.68

도와주는 일도 맘만 가지고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8년여 동안 수녀님들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을 다닌적이 있습니다.

영정사진도 찍고 수 많은 행사사진도 찍었지요.

물론 일체의 용역과 인화, 액자등의 만만치 않은 비용을 우리가 감수했습니다.

너무 열심히(주인보다)  하다 보니, 역시 이런 저런 본의와 관련이 없는 구설수들이...!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만.


앨리스님은 뭔가 새로운 오션을 열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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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00:24:36 *.65.153.57

그지요?? 내 맘같지 않은 일들이....

글을 쓰면서 씁쓸한 감정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어요~~

항상 좋게 봐 주심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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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28:39 *.94.41.89

지난 3년간도 혁혁한 성과들을 많이 이루셨네요 ^^*  

정말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이 주는 아픔도 큼에도

나아가시고자 하는 의지가 멋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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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4:07:14 *.65.153.57

난 진짜 너무 성과주의자인 것 같아;;;; (반성중^^)

하지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지~~~ (칭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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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4:14:39 *.128.12.210

교사 생활을 이렇게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가까이 있으면 아이라도 맡겨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드네요.

 

늘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에는 구설이 따르죠.

요즘 우리 사회는 불안증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믿고 견뎌내지를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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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7:02:02 *.65.153.36

글을 막 쓰다보니 어떨때는 치부를 드러내고 어떨 때는 자랑을 늘어놓고 그렇습니다;;;;

치부도 자랑도... 다 저의 날 모습들이네요 .... 요즘 자랑이 늘었습니다^^

순수 봉사 하신 분들이 봉사는 조금 하고 생색은 무지 많이 낸 이 글 보시면 화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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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7:51:03 *.196.54.42

헉~ 이런 봉사의 잔다르크!

기획력이 남다르다 했더니 역시~ 선생님이 셨군요, 그것도 4개교가 인정한 명강사!^^

남자의 그것을 좋아했다니...여자의 공통점 아닌가요?ㅋㅋ(이따구 질문했다가 여자들한테 많이 맞았는데 아직도 정신못차려 ㅠㅠ)

뛰어난 실력에 저질체력이라니...적당히 하시길, 건강이 최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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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7:05:18 *.65.153.36

구달님의 농담에 빵 터졌습니다~~~^^

강의보단 아이들을 이뻐하는 마음이 통한 것 같습니다~~

저질 체력 극복하느라 열정 조절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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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7:09:10 *.219.222.75

여자형제만 있어 남자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는 것이 나와 공통점이군.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ㅋㅋ


역사를 돌아볼수록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놀라고 분노하게 되네.

씁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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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9:32:46 *.216.0.145

주는 것도 어렵지만 받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도 요즘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사람들이란게  참, 가엾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리고 앨리스 언니랑 마찬가지로,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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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 18:44:04 *.160.136.237

진정한 일어섬은 남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는다는것.

그때는 언제쯤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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