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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23시 31분 등록

 

지금까지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의 가장 큰 미스터리였다. 나는 5월까지 연구원 기간 동안 물리적인 나를 정신적 큰 칼로 수박처럼 쪼개어 그 안에 들어있는 시뻘건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깊은 심연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숨은 속내와 중심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기 자식을 닥치는 대로 삼켰던 크로노스처럼, 나 역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을 죄다 무의식의 어둠 속으로 밀어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나의 일부였다. 그리고 미처 소화되지 못한 그 먹이들을 토해내어 먹기 좋게 잘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하고 싶어하는 아주 작은 어린 아이인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도록 두었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대단함에 놀라고 칭찬해주고 고마워하길 바랐다. 세상의 중심으로 화살처럼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건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세계에서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나의 모습이 다양한 이미지로 나를 매혹시켰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학문과 공부를 다 잘 해내고 싶었다. 모든 인정과 합당한 대가를 내 손 안에 넣고 싶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경험을 다 맛보고, 누구보다도 그 본질에 다가가고 싶었다. 변두리에 있는 것들까지 나는 다 알아내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나는 어쩐 이유에선지 아주 컸다. 빛나는 태양만큼 내 안에는 그림자가 설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내가 속한 어느 집단에서나 난 평균 정도의 학생이었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니,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다니. 무척 실망스러웠다. 학교가 재미없었던 것은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내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서 학교가 재미없어요라고.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누구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레 성실하게 책상에 앉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했다.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학기 성적이 잘 나왔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모두가 나를 대단하게 여겨주었지만, 특히 내 스스로가 아주 대견했다. 그러나 공부로 더 많은 아이들과 경쟁하는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동네에서 잘하는 것으로 나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성적이라는 힘을 얻게 됨으로써 보다 사회친화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상당한 안정감을 주긴 했다. 또한 공부하느라 긴긴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말은 지루할 틈이 별로 없어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상황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를 받아줄 사람은 찾지 못했다.

 

상급 학년으로 진학해 논술을 대비해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글쓰기의 훈련은 해도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지만, 계속 하다 보면 사고의 어느 옆구리가 조금 트여 거기에서 글이 흘러나왔다. 사고와 생각이 커질수록 글이 좋아졌다. 내가 노력해서 잘하게 된 것 중에 가장 보람찼다. 나는 내가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적당히 하고 나면 그 이상의 수준을 노리고 싶지 않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대입 때도 그랬고, 대학에서도 그랬다. 글쓰기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고 나면 또 하고 싶고, 포기하고 나면 또 생각나고 그랬다. 이상하게 글쓰기는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다.

 

대학교 때에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은사님의 영향으로 나는 철학을 전공으로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경영학과를 가길 원했다. 우리는 합의를 했다. 수시원서 일곱 군데를 지원하는데, 다섯 개는 내가 원하는 인문대를, 두 개는 부모님이 원한 경영대를 썼다. 그러나 결과는 경영대 두 곳만 합격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운명 비슷한 것이 실재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대학은 그나마 좀더 유쾌한 시대였다.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와 스스로에 대한 불신,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여전히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잡스러운 걱정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내 안에 어둠이라고 불릴만한 감정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몰랐다. 예를 들면, 질투, 오만, 분노, 서운함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때의 나는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누르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웃는 법만 알고 적절하게 화를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감정의 양극은 서로 크기를 같이 가지고 가야 한다. 나의 즐거움은 무한대로 뻗어나갔지만, 그 아래의 그림자는 모조리 무의식 속으로 파묻혔다. 모른 채로 살았더니, 그 어둠은 점점 커져서 나의 속내를 좀먹었다. 나는 간헐적으로 필요이상으로 크게 화를 냈다. 8학기는 정말 어둡고 조마조마한 시기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취업에 처음 성공했을 때 나는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신나 있었다. 드디어 돈을 벌 수 있다. 드디어 한 사람 몫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내 노력 여하보다 더 신경 쓸 것이 많았다. 나는 한 조직의 핵심부서로 가서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처음 입사한 곳은 그런 나의 생각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첫 회사는 거기에 집에서 너무 멀고 늘 늦게 끝났다. 회사를 옮기면서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곳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두 번째 직장은 여전히 너무 멀었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었고, 같이 첫해를 함께 보냈던 첫 팀이 아주 좋았다. 불만스러운 부분들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노력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조직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나의 역량을 사용할지는 여전히 감을 못 잡고 있지만, 이제는 배낭 하나 정도의 자신이 있다. 누가 믿어주지 않더라도 내가 믿어주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었다.

 

모든 인간의 내면은 무대 위에서 동그란 조명을 받고 있는 배우와 같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그란 범위 속에 내가 서있다. 그 이외의 어둠 속에는 누가 서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저 울음 소리와 발소리로 그 크기와 성질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무의식은 그 정체를 몰라 두려운 것이면서도, 막상 밝은 빛 아래에서 보면 사실 대수롭지 않은 것일 때가 많다.

 

나도 내가 붙잡고 있던 나의 치부들이 사실은 부스러기처럼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시의 내게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지만, 다 지나가고 난 지금은 내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었다. 오히려 당시의 나처럼 모른 척하며 인내하는 것이 더욱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첫 번째 변화로 나는 이제부터 징징거리는 것을 일부러 숨기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감을 그저 나 혼자 꽁꽁 안고 있지 말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기로 했다. 우는 소리 하는 여자, 어째 좀 시시해 보인다. 나약하고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건강한 어른이 될 것이다. 또 운이 좋다면, 적절한 조언과 해결책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면을 향한 책을 읽고 관련한 칼럼을 쓰면서 내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 나에게 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공들여 생각했다. 그리고 내 존재의 근원에 있던 외로움을 보았다. 다행히 훌륭한 인류의 스승들이 곁에 있어, 나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존재의 시작에 있는 선한 의지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

 

나는 새로이 만나게 된 나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유쾌하게 상상한다.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지, 나의 온 존재가 한 목소리로 가리키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내가 가장 고대 하던 아름다운 장면들과 마주할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더 밝은 곳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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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 23:44:46 *.201.146.68

욕망과 욕심을 분리해 내기는 늘 언감생심이긴 한데...


이런 걸(글) 두고 '케 공감' 이라고 하나 봐요.


점점 더 시원시원해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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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51:43 *.50.21.20

욕망에 초점이 맞춰진 시간을 보내보니 욕망인줄 알았던 것들이 욕심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파다만 조각상들만 즐비한 작업실에서 임자를 만난 기분입니다. 

저도 시원하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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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00:31:20 *.65.153.57

내면 깊숙함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이런 솔직한 글들이 참 좋아요~

책을 읽고, 칼럼을 쓰면서 자신감에 가득 찬 자신을 만난 것은 어니언과 앨리스의 공통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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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59:13 *.50.21.20

지난 주에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솔직함의 힘을 시험해보려구요.

지금까지 꽤 오래 알았던 친구들인데도 더 깊은 관계가 된 것 같은 내밀한 느낌이 들었어요. 

신기해요! :) 

연구원을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공통점을 갖게 되어 기뻐요. 게다가 이렇게 좋은 비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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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23:46 *.94.41.89

더욱더 자신을 좋아하고 또 자신감이 쌓이는 모습 보기 좋다아 ^^

점점 더 새로워지는 해언이가 펼쳐갈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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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8:26:23 *.216.0.145

언니, 언니도 같이 갈 거여요. ㅎㅎㅎ 

내면발 직행열차, 내리시는 문은 없습니다. ^+_+^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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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4:16:07 *.128.12.210

공들인 시간들이 공들인 한 인간을 만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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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8:28:16 *.216.0.145

전 칼럼 올릴 때마다 이번엔 희동님이 어떤 멘션을 달아주실지 기대됩니다. 

풍부한 한 줄 요약 같은 느낌 이랄까. 에스프레소처럼 심플하고 임팩트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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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4:45:54 *.196.54.42

오~ 당찬 아가씨! 

내면여행을 통해 전 보다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된 어니언님, 축하해요!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겠죠^^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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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8:29:58 *.216.0.145

구달님 멘션을 읽다가 문득 '뭔가를 채우고 싶다면 우선 잔을 비워야 한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지난주까지가 순결한 비움 상태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나, 그렇게 자체 정리가 됩니다.

인간 승리! 한번 가봅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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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7:16:39 *.219.222.75

자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갈수록 해언의 얼굴이 피고 빛났구나!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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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8:40:20 *.216.0.145

참치언니, 그게 보이나요? ㅎㅎ

언니 말을 듣고 보니 저 진짜 연구원 잘 한 것 같아요. 

요즘 아주 마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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