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나
- 조회 수 2290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영혼의 가압장을 찾아
2014.06.02
10기 김선형 연구원
주말에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3개의 전시실로 만들어진 아담한 건물이다. 그런데, 버려진 가압장과 물탱크가 어떻게 그의 생을 이렇게 다 대변할 수 있는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1전시실 ‘시인채’는 윤동주의 일생과 시간적 순서에 따른 사진과 친필원고가 여러 편이 전시되어있다, 그의 필체는 그의 시처럼 맑고 깨끗하고, 단아했다. 창씨개명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였다가 일본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게 되면서 쓴 참회록도 눈에 뜨이고, 우물을 바탕으로 한 그의 대표 시 ‘자화상’이 소개되어 있다.
‘자화상’을 잠시 살펴보자.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 9.
제2전시실 ‘열린 우물’은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만들었다. 마치 내가 우물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열린 체험 공간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닫힌 사각우물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윤동주 시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바라본 외롭고, 아픈 하늘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제3전시실은 ‘닫힌 우물’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들었다.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그 속에서 그의 생애 관련된 13분 짜리 짧은 영상이 소개된다.
마치 내가 독방에 홀로 있는 쓸쓸한 느낌이었다. 어떤 장식도 없고, 의자만 덜렁 있다. 벽면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벽면에 그대로 영상이 나오는데, 그의 힘들었던 삶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 같았다.
물탱크 안에는 밖으로 나가기 위한 조그만 문이 하나 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자유와 광복을 희망하는 염원이 담긴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일제 지배를 받던 힘든 시기인 1917년에 태어나 광복 직전인 1945년2월에 28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을 하였다, 그의 생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내려고 했던 시집은 사후에 유고집으로 나왔다.
수도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인데, 이제는 ‘영혼의 가압장’이 되어서 우리 삶의 영혼에 가압을 해준다.
그 때에 비해서 삶도 풍요해지고, 자유도 맘껏 누리고 있지만 영혼은 더 빈곤해지고, 삶은 더 피폐해졌다.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삶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한글로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지도 못하고 글 한편 쓰기 어려워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였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윤동주 문학관이 ‘영혼의 가압장’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과 그의 뜻을 기리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이제 그의 시 ‘새로운 길’처럼 내를 건너, 숲으로 건너,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겠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112 |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한걸음 내딛기 [4] | 녕이~ | 2014.06.09 | 2000 |
4111 |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 소면 [4] | 종종 | 2014.06.09 | 2657 |
4110 | 발걸음이 멈추는 곳 [5] | 에움길~ | 2014.06.09 | 1941 |
4109 | 이상 국가 모델 [8] | 앨리스 | 2014.06.09 | 2104 |
4108 | 현재에 깨어 있기_찰나칼럼#9 [6] | 찰나 | 2014.06.09 | 2299 |
4107 | #9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4] | 희동이 | 2014.06.09 | 1969 |
4106 | 지혜의 열매 [8] | 어니언 | 2014.06.09 | 1879 |
4105 |
5일장_구달칼럼#9 ![]()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6.09 | 2230 |
4104 | #9 한발 내딛기_정수일 [12] | 정수일 | 2014.06.08 | 1960 |
4103 |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8] | 왕참치 | 2014.06.08 | 1904 |
4102 | 감악산 계곡 [1] | 유형선 | 2014.06.05 | 3201 |
4101 | 비교의 경제학 [1] | 정산...^^ | 2014.06.03 | 1892 |
4100 | 3-8. 미세수정 이러쿵저러쿵 [4] | 콩두 | 2014.06.03 | 6436 |
4099 | 이야기 속에 3+1의 비밀 [1] | 타오 한정화 | 2014.06.03 | 1982 |
4098 |
버림의 미학 ![]() | 미나 | 2014.06.03 | 2513 |
4097 | 그래 마음껏 바닥을 쳐보자 [6] | 녕이~ | 2014.06.02 | 1864 |
4096 | 짬뽕은 역사다 [8] | 종종 | 2014.06.02 | 3768 |
4095 | 우티스(Outis) [5] | 에움길~ | 2014.06.02 | 2359 |
4094 | #8 내안의 미노타우르스 - 이동희 [5] | 희동이 | 2014.06.02 | 2053 |
» | 영혼의 가압장을 찾아_찰나칼럼#8 [10] | 찰나 | 2014.06.02 | 22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