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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일 10시 04분 등록

내안의 미노타우르스

2014.06.02 이동희

 

크레타의 미노스왕은 한 문명을 세우고 번창시킨 신화적인 인물로서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에게해에서의 그의 존재는 아테네가 번성하기 전 그리스 지역을 지배할 정도의 힘과 문화를 갖춘 영웅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미노스왕에 얽힌 이야기는 그리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그의 미궁에 있는 미노타우로스 때문입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가 크레타를 떠나 있을 때 왕의 수소를 흠모한 왕비가 암소 모양의 틀 속에 들어가 수소를 유혹하여 얻은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왕비는 비난을 받았지만 미노스는 내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가 낳은 머리는 황소요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로스도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하여 미궁을 짓고 이 속에 가두어 두었고 미노타우로스가 밖에 노출되지 않게 하였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미노스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사실은 왕인 미노스가 포세이돈의 제단에 바칠 수소를 죽이지 않고 자신이 사취한 뒤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이야기의 전말을 이해하는 또 다른 차원이 열립니다. 미노스의 개인적인 욕심이 포세이돈으로부터 받은 수소를 왕이되면 제단에 바치기로 하였는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수소가 너무나 탐이 났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미노타우로스라는 전대미문의 반인 반수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왕은 스스로 그 죄를 알고 있었으므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지 못하고 왕비를 내치는데 주저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후 미노스 왕은 그의 힘으로 아테네의 젊은 이들을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또는 제물로 바치게 되는 또 다른 참혹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감추는 데는 결국 폭력이 사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현대는 너무나 큰 사회의 틀을 갖고 있는 나머지 누구 한 사람이 이끌기에는 복잡하고 그 지식이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세상이 제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역할을 통해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특히, 공무를 수행하는 직업들은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여 사회가 적은 돈으로 효과적으로 유지되게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매일의 일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닌 돈을 쓰는 일이고 그 쓴 돈의 결과로 많은 사람이 안락한 생활을 그리고 안전한 하루 하루를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서 보게 되는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들여다 보면 사회적인 역할이 주는 책임보다는 개인의 욕심에 물든 나머지 그 조직 또한 욕심에 물들고 그 욕심이 결국 어떤 한 분야 전체를 아주 탐욕스럽고 위험천만한 선택들을 하고도 눈감고 있도록 만든 사례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볼 때도 그랬습니다. 총체적인 문제들이 드러났고 이를 직접 목도하게 된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현재가 이토록 탐욕 속에 있었는지 새삼 깨닫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그렇게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아직 얽히고 설킨 세상의 잇속의 연결 고리들이 끊기지 않고 그 모습만을 숨기고 사회의 시선을 피한 채 웅크리고 있나 봅니다.

 

현대의 이러한 사회적인 난맥은 미노스의 미궁과도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탐욕에 물들어갈수록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지어 놓은 미궁은 더 커져가고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미노타우로스의 수는 불어나기만 할 것입니다. 스스로 죽지 않는 한 우리의 삶 속에 웅크리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는 계속해서 희생물을 요구하고 새로운 미노타우로스를 탄생시키는 구실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사회는 하나의 몸으로 사회가 꿈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한 개인 개인들의 탐욕이 충돌하는 지옥의 아비규환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5천만의 개인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사회로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미노스의 이야기는 이러한 현대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현재 미노스와 같은 왕을 두고 있지 않지만 한 개인의 입장에서 미노스 왕과 같은 일들을 저지른 것은 아닐지 되새겨볼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제 안에 미노스도 미궁도 미노타우로스도 모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의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미궁을 짓고 탐욕의 미노타우로스를 키우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알지 못한 채 IMF와 외환 위기 그리고 부동산 투기와 냉정해지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한 나머지 세상의 모습을 내 마음에 들여다 놓게 되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대항할 힘도 없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마음에 탐욕만이 생존의 길인 양 힘을 얻어 키워져 갔던 것입니다. 탐욕이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인 양 행세를 하게 만들고 생존이란 미명아래 그 탐욕의 경쟁에 끌려들어간 희생양이 된 듯합니다. 성장기에 제대로 된 사회적인 통과의제 없이 경제적 안정기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 왔고 그리하여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이리 저리 휩쓸려 다니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의 힘에 굴복하고 세상의 시선을 피하기만 하고 세상이 주는 약간의 안락함에 젖어 서커스단의 코끼리 마냥 덩치는 크지만 의지가 없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게 됩니다.

 

미궁은 스스로 헤쳐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고하거나 외부로부터 파헤쳐져 그 모습이 온 천하에 드러나 파괴되어야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와 같은 새로운 자가 나타나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스스로를 죽여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저 자신의 미궁은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 미궁의 존재를 찾고 그 미궁으로 들어가 숨어 활개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찾을까요? 저는 아직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하여 그 미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자식을 둔 아비가 된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아이를 바라봅니다. 제 아이의 삶이 저와 같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한 시대가 낳은 한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보며 앞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 자신을 제대로 보자고 말입니다. 현실에 실을 묶고 미궁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찾아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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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31:05 *.201.146.68

잠재우고 다독이고 길들이려 해 봐도 내안의 미노타우르스는 말을 잘 안듣는군요.

죽이지는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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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11:36 *.94.41.89

지금 제게 딱 필요한 글인 것 같아요.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제는 화살을 밖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내 안의 미궁에 들어가는 일이 더 급한 것을 잊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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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5:22:39 *.196.54.42

"내안의 미궁의 미노타우로스를 찾아 들어간다" 희동님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내 안의 공포와 절망은 정면대결이 비결이겠죠. 직접 맞닥뜨려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어요.

피하면 피할수록 괴물은 상상 속에서 더욱 커질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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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7:25:38 *.219.222.75

맞아요. 가끔 나도 내 안의 이 놈이 느겨질 때가 있죠.


정면으로 바라보기. 저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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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9:21:21 *.216.0.145

정신없이 휘둘리고 나서야 '아, 이거 괴물이 또 살아났구나.'깨닫습니다.

발톱 같은 녀석이에요. 뽑아버리려니 너무 아파서 그냥 흰 부분만 자르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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