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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일 10시 3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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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티스(Outis) 


 

 

삶이 각박할수록 영웅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영웅들을 기다려온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영웅들이 내려와 주었지만, 그 영웅들에 기대어 세상이 변화되리라 기대하였지만, 역시 잠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 뿐이다. 영웅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감에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세상은 늘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또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가 기다리는 영웅이, 내(각 개인)가 고대하는 영웅이 같진 않을 것이다. 이 사회에 대한 바람과 내 자신에 대한 바람이 차이가 있을 것이니 그에 대한 영웅의 역할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자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영웅이다. 캠벨식 영웅을 보자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 영웅이다. 그 자기극복이라는 것이 주어진 과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영웅은 이를 성취하기 위해 모험이라는 길에 들어선다. 그 여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결국 보다 내적으로 성장하여 귀환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정의를 사용하든 영웅에 대한 무게감보다는 기대감이 더욱 솟아난다. 보다 많은 영웅들을, 보다 많은 이들이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영웅의 정의에 성적인 차별 요소가 전제되지 않음으로 더욱 더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다만, 캠벨식 영웅여정에서 여성 영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가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었으니 연구하기에 아주 바빴다고 치고. 아니, 그는 여성은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여정을 떠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보고 있노라면 여성은 결국 영웅 시험에 초대되지도 못한 것이다. 부전승이라고 우길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여성에겐 자격 요건 자체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 읽은 책 중 하나를 기억한다. 권장도서 목록에 있던 책이었지만 읽고 나서 던져 버렸다. 그 책은 나를 서글프게 했다. 내게 수많은 여성 영웅을 만나게 해준 책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그 수많은 여성 영웅에서 기억나는 여성은 누구니?라고 묻는다면 ‘전부 다’이거나 ‘아무도 아닌’이라 답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역사에 빛나는 한국 여성’이었다.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기분으로 책을 들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은 만나지 못했다.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아, 오늘날 5만원권 표지 모델인 신사임당의 이름은 기억한다. 그러나 모두 우티스였다.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에게 자기 이름을 ‘우티스’라 가르쳐 주었고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렀다. 동료들은 폴리페모스에게 누가 네 눈을 그렇게 했느냐라고 했고 폴리페모스는 끊임없이 ‘우티스, 우티스’라고 외쳤다. 그러자 동료들은 ‘아무도 아니라고?’를 외치며 사라졌다.

 그 책에서 나는 그렇게 사라지는 여성을 만났다. 이백명이 넘는 여성이 등장했지만 이름을 가진 여성이라야 신사임당, 김만덕, 황진이였다. 역사에 빛나는 자랑스런 여성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무엇을 하였기에 역사에 길이길이 빛나야 하는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어머니로 불려졌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최고의 역할이 아니냐라고 한다면 꾸역꾸역 타는 가슴을 짓누르고 잠시 고개를 끄덕이긴 하겠다. 그 책이 1984년도 출간이니 저자의 나이를 생각하며 잠시 그렇게 할 순 있겠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는 역사에 빛나는 여성은 김부식의 어머니, 정여창의 어머니, 이황의 어머니, 김귀영의 어머니, 정몽주의 어머니, 윤필상의 아내 성씨, 가실의 아내 설씨, 신영석의 아내 허씨, 홍천민의 아내 유씨, 정배걸의 아내 최씨, 김래의 아내 정씨……. 저자가 생각하는 ‘빛나는 여성’의 방점은 역사에 빛나는 남성들을 길러내고 내조해야 하는 여성이다. 참고 견디며 뒷바라지를 해서 ‘남성’의 이름을 드높이면 자연 ‘여성’도 빛난다는 것인가. 이렇게 자신의 이름 하나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로 ‘존재’가 증명이 된단 것인가. 적어도 저자는 이들의 이름 석자는 찾아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양의 여성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것이 못내 찜찜하여 그나마 우리는 그런 정도까진 아니라며 우리나라 여성의 삶을 살짝 우위에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땅의 여성들에게는 이름이란 것이 그녀들의 삶을 증명해주진 못했다. 이름이 그들의 삶에서 불려진 때라야 태어나 아이가 되고 결혼하기 전까지의 그 짧은 생애 동안이다.

 삶이 어려울수록, 정확히 경제가 어려워지고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뤄지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을 보노라면 여성들이 여전히 극복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IMF때 그러했듯이 여성들에게 가정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려는 소리들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양성평등을 남성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남성 억압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여전히 우티스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우티스로 분류된 여성이 우티스에서 벗어나 제 이름을 찾는 과정이다. 여성에게 영웅의 여정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 이름을 찾고 그 이름이 타인들의 입을 통해 제대로 불리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차적으로 여성이 완성해야 할 자기 극복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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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29:52 *.201.146.68

저간의 글들을 보면 여성성 내지는 정체성 등에 펜이 많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경상도 그것도 대구에서 장손으로 살아온 사내 놈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여성부, 여성전용 지하철, 여성전용 주차장, 여성전용 병원 따위가 양성평등의 획득물은 아닐것인데란 정도만 사유가 미칩니다.


양성평등에 대해선 저 역시 매우 공감하는 바입니다.

평등이란 경우와 사정에 함당해야 하는 것이란 전제를 두고 보면 .... 암튼 두고 두고 에움님을 통해서 좀 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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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59:50 *.94.41.89

본인의 이름을 드날릴 길이 없었으니 남편과 자식을 통해 자아실현을 도모했던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편견이 존재하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길은 정말 험난한 듯 해요.

게다가  같이 돕기에도 부족한데 오히려 서로 헐뜯고 싸우기에 바쁜 여성 리더들을 보면 더더욱 답답하다는 ;;;;

제대로된 여성 영웅의 길을 에움언니를 통해 구상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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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7:31:39 *.196.54.42

지구는 돌고 돌고... 세상의 판도도 돌고 도는 것. 문명과 경제의 힘도 서쪽으로 도는 듯..

그동안 남성이 누렸다면 이젠 여성의 시대가 왔지않나요?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남학생을 제치고 반장과 수위를 차지하고..

입사성적도 남자보다 우수한 여자들이 무수히 눈에 띄고..

고위 사회진출도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아줌마들의 위세는 중년남자들이 어찌 감당하리오!

아무래도 여성상위 시대가 도래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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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7:33:19 *.219.222.75

더 큰 문제는 그런 사회에서 길들여진 삶의 방식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나는 가끔 나의 삶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쓴 웃음이 나오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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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9:06:23 *.216.0.145

내 이름은 도시의 파괴자 구해언이다! 잘 있어라 이 괴물아! 

설령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한다 해도 

내 이름, 꼭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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