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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일 10시 54분 등록

1.    저자에 관하여

  조셉 캠벨은 영웅과 신화처럼 살았다. 그전까지 어렴풋하게만 알려져 있던 세계의 가치를 세계로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보여준 영웅의 여정과 캠벨이 삶에서 만난 여러 사건들은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이 어떻게 그를 신화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한 것 같다. 저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차례 했으니,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일화 세 가지와 나의 경험을 엮어보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장면에 나의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첫 번째 모습은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인디언 전시 앞에서 오랜 시간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는 꼬마다. 영웅의 여정 중에서 모험에로의 소명을 받는 장면이다. 뉴욕의 중산층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전생애를 뒤흔들어 놓은 오랜 신화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는 부모님을 졸라 당시에 출간된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모두 읽었다. 그는 수많은 요소들과 신화에 정통해졌고,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 어렸을 때 수녀님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인디언 신화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궁금했고 신화 가닥의 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 나는 꼬마보다는 좀더 자라서야 소명을 깨달았다. 공교육 중에서 처음으로 나의 의견을 묻고 나의 글을 보기를 원했던 순간이었다. 지금 보면 미숙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작은 것으로도 행복했다. 생각하기와 글쓰기는 따로 갈 수 없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철학의 즐거움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원했던 거였다. 나는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었다.

 

  두 번째는 5년 동안 숲에서 공부하던 그의 집중 공부 기간의 장면이다. 그가 교육기관에서 지원하는 공부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캠벨은 그 이후의 5(1929-1934)동안 그의 인생을 무얼하며 살 것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집중적이고 혹독하게 독립적인 공부의 시대를 시작했다. 캠벨은 이 시기를영웅의 여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보냈다. 그는 이 시기에 대해 하루를 4시간씩 4번 나누었다. 그중 3번은 책을 읽었고, 나머지 1번은 자유롭게 보냈다. 그는 하루에 9시간 정도를 순수하게 책을 읽으면서 지냈다. 그리고 5년 동안 한결같이 그렇게 했다.

 :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백수가 부러웠다. 회사에 다녀야 하는 처지를 비관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늘 아쉬워하던 부분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만약 일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캠벨의 시기라고 그 시간을 부르고 싶다. 그리고는 집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려 한다.

 지금 쓰면서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위해 하루 중에 따로 빼놓는 시간을 캠벨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약속이 있거나 한 날은 책을 거의 읽지 못하는데, 내가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시간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좀더 균등한 시간의 분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은 그가 옆 테이블에서 발견했던 바비트의 화신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가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였다. 그는 결혼하기 전엔 점심과 저녁 식사를 마을 음식점에서 했다. 특히 목요일 밤에는 많은 가족이 브롱크스빌의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오곤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의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아 있습디다. 아버지, 어머니, 열 두어살 되는 아들, 이렇게 왔었다. 그는 그도 모르게 그 가족의 대화를 가만히 듣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 몫의 토마토 주스는 네가 마시거라."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마시고 싶지 않은걸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좀 전보다 조금 더 큰 소리를 내어 명령조로 "네 몫의 토마토 주스는 마시라니까"하고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먹기 싫다는데 뭘 그래요? 싫다는 건 하게 하지 말아요."

이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가 자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랬다.

"저 좋은 것만 하고 인생을 살 수는 없는 법이야. 저 좋은 것만 하고 세상을 살려고 했다가는 굶어 죽어. 나를 봐!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평생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어."

 캠벨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세상에, 여기에 바비트의 화신이 있었군"하고 중얼거렸다.

 

: 내가 읽은 이야기들의 사례를 끊임없이 찾아본다. 갖가지 인간 군상을 모아둔 신화와 닮아있는 모습들을 나는 일상에서 찾는다. 나는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것들을 통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개념으로는 누구도 설득시킬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묻게 되고,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이번주를 친구의 주로 보냈다. 오랜 친구들을 오래간만에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과 방향에 대한 감상들을 들었다. 모든 생생한 목소리들이 나를 자극시켰다.

 

캠벨은 신화의 힘이란 책에서 이 토마토 주스 아빠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것이 대단히 불행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달았다. 캠벨의 책들은 우리가 인생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게끔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너무도 쉽게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해 버린다는 데에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의 인생은 가까이 할수록 좋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좋은 사람을 곁에 많이 두자. 그가 죽었든 살았든 나의 곁을 지키게 하자. 우정과 신의로서, 존경과 사랑으로서 그들을 대하자. 갖가지 신화를 모아 비교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들에 대한 극진함에서 시작할 것 같다.

 

2.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는 구절

6.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데 있다.

6.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하다.

 

14.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 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 철학, 예술, 선사 인류 및 유사 인류의 사회적 양식, 과학과 기술의 으뜸가는 발견, 바닥째 흔들어 수면을 엎어버리는 꿈, 신화의 불가사의한 고리모두가 이 은밀한 통로를 지나 인류의 문화로 현현한 것들이다.

14. 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바다의 본질을 고스란히 대표하고, 하나의 벼룩 알에 생명의 신비가 두루 깃들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이는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 발명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4.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의 어느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신화는 왜 어느 곳에서 채집된 것이든 그 다양한 의상 아래로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16.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16. 미완성인 상태,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17. 어머니의 속박을 받아도 유아는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17. 유아가 최초로 적의를 각는 대상은 최초로 애정을 투사하는 대상과 일치하고

17. 유아는 아버지를 적으로 체험한다.

 

19. 무의식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19.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 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 보낸다.

>> 나는 이 대목에서 괴물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조명해주지 않았던 어두운 힘, 무의식의 힘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의 옷을 빌어 구현해보면 어떨까? 일단 흥미면에서는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19. 일상의 삶으로 통합하지 못했던억압당한 심리적인 힘

 

21. …무서운 사신으로 우리 머릿속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무섭다고 하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질서의 바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계의 파멸그러나 파멸이 끝난 다음에는 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의 눈부신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23.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며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4. 남편들은 소년 시절이라는 이름의 신전에서, 아들에 대한 부모의 소원이던 법률가, 실업가, 혹은 지도자를 섬기고 있는가 하면, 아내들은 결혼한지 14, 아이를 낳아 길러놓고도 여전히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다.

24.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미지들이 신화와 제의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통해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 그래야 우리의 에너지가 심해의 바닥이나 진부하고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유아의 놀이방의 동화책에서 풀려날 있는 것이다.

25. 이 시기에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인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궁이 아니라 남근phallus이다.

25.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tomb of the womb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womb of the tomb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27. 왕이 된 이상 한 개인일 수 없는데도 그는 공적인 사건을 개인적인 이익으로 취했던 터였다. 수소의 재등장은, 맡은 역할의 기능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상징했던 것 같다.

27. 전통적인 통과 제의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듯이, 저 왕위 서임 의식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을 벗기고 신명이라는 망토를 입혀주었다.

 

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29. 영혼의 분열, 사회적 무리의 분열은 세월 좋던 시대로 돌아간다는 계획(회고주의)으로도, 이상적으로 설계된 미래를 보증하는 예정표(미래주의)로도, 심지어는 악화된 요소를 다기 접합시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작업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 이외에,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각고의 노력끝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책을 내면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 것인가? 같은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시각의 탄생을 말한 것인가? 아직 정복되지 못한 정신의 변방에서 소통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기어 올리는 것이 탄생시키는 것인가? 

  

30. 토인비 교수는 이 위기를 묘사하는데 <해탈detachment> <변용transfigu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withdrawal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을 통해 알게 되었듯이, 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우리 유아기의 도깨비들과 은밀한 협력자들, 어린 시절의 마법이 모두 여기에 있다. 뿐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은 없다. 우리가 상실해 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 한 가지 단서가 될만한 일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조카가 집에 놀러왔다. 토요일이면 가려나 했는데 일요일까지 있다가 갔다. 두 돌이 넘어 말은 아직 못해도 제법 의사소통이 된다. 땡깡만 부리지 않으면 좋은 놀이 친구다. 자기 수준에 맞는 장난감이 별로 없는 우리집에서도 줄기차게 왔다갔다 한다. 아이가 하는대로 따라 움직여본다. 뜀박질을 하면 그 뒤를 꼬리물듯 쫓아가본다. 피아노를 두들기면 건반을 누르는 타이밍에 맞추어 나도 뭔가 눌러본다. 메트로놈만 켜놓고 춤을 춘다. 계단을 내려갈 때 엉덩이로 내려가본다. 침대위에 누워 손으로 두 발을 잡는다. 나도 그 옆에서 요가 자세같은 이 작은 아가씨의 자세를 따라해본다. 재밌다! 갑자기 집이 넓어진 것 같다. 재미가 아이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33.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33.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영웅은, 현재의 붕괴되어 가는 사회나 정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 재생의 심원한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웅은 현대인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인간(완전하게 되되,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가장 차분한 답이라고 생각된다.

 

34. 조그맣고 단단한 집들이 늘어선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를 지나며 거대한 도시 위쪽 변두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했지만,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하수도로 통하는 듯한, 몹시 질퍽거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오두막집들 사이로 걷다가 조그만 강을 하나 발견했는데, 강은 나와 포장된 길이 있는 좀 높고 단단한 땅 사이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상쾌한, 풀 위를 흐르는 강이었습니다. 물 밑으로 살랑거리는 풀이 보였습니다. 건너는 길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그만 집으로 달려가 배를 빌릴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거기에 있던 남자는 물론 나를 건너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그만 나무 상자를 하나 내와 강가에다 띄웠는데, 순간 나는 그 상자르 딛으면 건너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험한 일은 다 겪었다고 생각하고 나니 그 사람에게 후하게 값을 치르고 싶었습니다.

이 꿈을 돌이켜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꿈속에서와 같은 길을 택할 필요가 없었으니, 포장도로를 따라 기분 좋게 걸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저분하고 질퍽거리는 곳으로 갔던 곳이고, 일단 시작한 것이어서 계속 가야했던 것입니다. 꿈속에서 곧장 앞으로만 갔던 걸 생각해 보니, 당시에는 앞으로만 가면 풀밭을 흐르는 아름다운 강을 건널 수 있고 건너편에 있는 안전하고 높은 포장도로를 만날 수 있겠거니 여겼던 모양이지요. 이런 뜻에서 되씹어 보니, 영적인 의미에서 무슨 탄생의 징조, 아니, 어쩌면 재생의 징조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둡고 궂은 길을 가야 마침내 평화의 강, 혹은 우리 영혼의 목적지로 통하는 탄탄대로를 발견하게 되는 모양이지요.

 

35. 꿈을 꾼 사람은 유명한 오페라 여가수인데, 이정표가 있는 대낮의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귀가 안팎으로 열린 사람에게만 들리는 희미한 소명의 모험길로도 들어설 뜻을 세운 사람답게, 예사롭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를 홀로 가야 했다. 이 여가수는 영혼의 어두운 밤, 단테의 <우리 삶의 도정에 도사린 어두운 숲> 그리고 지옥과 같은 구렁텅이의 비애도 알고 있었다.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36. 이 판도라의 상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신들의 선물인데, 이 안에는 존재의 고통과 축복의 씨앗뿐만 아니라 미덕과 희망까지도 들어 있다. 이 상자의 도움으로 꿈꾸는 사람은 강을 건너 반대편 강 언덕에 이른다.

>>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좋아한다. 그것은 힘겨울 때 떠올리면 힘을 받는다.  

37. 대부분 위험 부담이 적은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역시 구원받기는 마찬가지다.

37.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될 아테나이의 선남 선녀를 실은 배가 도착한 순간, 미남자 테세우스에게 반하고 말았다. 아리아드네는 어찌어찌해서 테세우스에게 접근하고, 크레타에서 자기를 데리고 나가 아내로 삼아준다면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일러주겠다고 말한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한다. 아리아드네는 장인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만든 장본인이고, 이 미궁에 사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여자는 바로 아리아드네의 어머니다.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실을 한 타래 준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영웅이 한 끝을 미궁의 입구에다 매어놓고 들어가면서 풀어야 하는 실타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38. 미궁의 공포를 연출한 장본인인 동시에 자유라는 이름의 목적을 달성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38. 사회정의의 정상적인 경계를 넘어 자기 시대의 도덕률이 아닌, 자기 예술의 도덕률에만 봉사하는 인간 유형을 대표해 왔다.

 

38.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3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41. 시공의 제약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하찮은 논리와 정서적 집착으로 찾아드는 죽음, 우리들이 흙으로 돌아가려할 때 비로소 온몸을 흔들면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보편적 생명에 대한 이러한 재인식, 이 생명을 향한 우리의 가파른 중심 이동, 그리고 <운명에의 사랑amor fati>, 즉 필멸의 운명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비극적 예술의 체험을 구성한다.

41. 대학살의 참상에 불만을 토로하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압당한 곳에서, 비난도 만병 통치약을 외칠 수도 없는 곳에서 비극 예술의 중요성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유효하다.

42.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피터팬 사회, 그림자를 잃어버림

 

44.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44.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차난 양식,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45.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로 올라간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아손은 바위가 서로 부딪치는 험로를 지나고 불가사의한 바다로 항해하여 황금 양털을 지키던 용을 꺾고는 양털과 찬탈자로부터 왕위를 빼앗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귀향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저승으로 내려가 죽음의 강을 건넌 다음 삼두구 케르베로스에게 미끼를 던져 환심을 사고는 죽은 아버지의 망령을 만났다. 그는 모든 것, 가령, 사람들의 운명, 개국 직전에 있던 로마의 운명, 그리고 <무거운 짐을 피하거나 견딜 수 있는 방법>까지도 알게 된다. 그는 상아문을 통해 다시 이승의 삶으로 돌아왔다.

 

52-53. 대개 동화 속의 영웅은 자신의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게 보통이다. 또 전자(젊은이, 아니면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경멸당하는 아이)는 자신을 압제하던 상대를 이겨내는데 그치는 반면, 후자는 모험을 통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소생에 필요한 수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53.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적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52. 42)홍수 설화에서는 힘은 영웅이 젖는 것이 아니고, 영웅에 대해 작용하며, 영웅은 여기에서 좌절한다설화의 영웅은생명력의 상징이다.

 

54.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 그러므로 영웅은 보편적이며,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나 인간이라면 영웅으로 현현할 수 있다.

 

58. 은총, 양식, 에너지이러한 것들은 나날의 삶이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이것들이 내려오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을 뿐이다.

 

62. 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세상의 하고 많은 선과 악을 두루 산출한다. 추한 것, 아름다운 것, 죄악과 미덕, 쾌락과 고통이 모두 이 세계의 배꼽의 공평한 산물이다.

62.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르기를,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한다>

62. 신화도 위대한 영웅을 위대한 도덕가로는 다루고 있지 않다.

62.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71.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3.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때의 고통

73. 분리와 탄생의 순간은 불안을 야기시킨다.

73.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하도 깊어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을 상징한다.

73. 생존의 본질이 우글거리고 있다.

73. 모험에의 소명을 알리는 전령관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면, 길은 낮의 벽을 통해 보석이 빛나는 밤으로 열린다.

 

77.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막내 공주의 세계에서처럼, 황금 공이 샘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81.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82. 결국 제 이득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82. 미노스 왕은, 그가 속한 사회의 신의 의지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희생을 드려야 하는 신의 수소를 사유물로 취했다. 그는, 자기 상상력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앞세웠다.

 

83-84. 똑같이 숨막히고, 신비스러운 소리는 그리스의 신 아폴론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아폴론은 평원에서 도망치는, 페네우스 강의 딸인 처녀 다프네를 뒤쫓는다. 그는 동화에서 공주가 개구리에게 그랬듯이 이렇게 외친다.

“오, 여정이여, 페네우스의 딸이여, 멈추시오! 그대를 좇는 나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 그대는 내가 누군지 모르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이오. 원컨대 걸음을 늦추시오. 그래야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 아니오? 어서, 걸음을 멈추고 그대를 사랑하는 이 몸의 정체를 물어보아 주시오.”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아폴론 신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지만 처녀는 계속해서 달아났다. 아폴론은 할말도 다 하지 못했다. 달아나는 모습까지도 그에겐 아름답게 보였다. 바람이 다프네의 사지를 드러나게 했고, 맞바람이 다프네의 옷깃을 물결처럼 흐르게 했다. 다프네의 아룸다움은 도망치고 있어서 차라리 돋보였다. 그러나 추격전도 오래는 계속될 수 없었다. 사랑의 말을 전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뜻이 없던 젊은 신은 오직 사랑으로 뜨거워져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이었다. 고을 족 사냥개가 평원에서 토끼를 만난 형국이었다. 사냥개는 나는 듯이 달렸으나 토끼도 만만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따라 잡아 이빨로 토끼의 뒷발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그러나 토끼는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 모르는 채 죽자로 달리기만 하니, 덕분에 다리는 날카로운 이빨을 피하고 뒤따르던 사냥개 입은 하릴없이 허공을 물었다. 신과 처녀는 이렇게 달렸다. 신은 희망에 차서 달렸고, 처녀는 공포에 질려서 달렸다. 그러나 신이 사랑의 날개로 몰아치니 쉴 틈을 주지 않고 쫓으며, 도망치는 처녀의 어깨를 잡고 어깨에 치렁한 머리카락에 숨결을 쏟았다. 힘이란 힘은 모두 빠져 공포에 질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처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가까이 있는 아버지 강물을 보며 외쳤다.

“아버지여, 도와주소서. 아버지 강물에 아직 신성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원컨대 제가 자랑하던 이 아름다움을 변케 하든지 없이하여 주소서.”

기도가 끝나는 순간 다프네의 사지는 굳어졌고, 부드럽던 옆구리는 보드라운 나무껍질로 덮였다. 이어 머리카락은 잎이 되고, 팔은 가지가 되었다. 그처럼 날래던 두 발엔 뿌리가 뻗어나고 머리는 나무 꼭대기가 되었으나 그 아름다움만은 여전했다.

 

97.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101. 회교도들이 믿기로는 대부분의 진은 마호멧 교의 참 믿음을 받아들였는데, 받아들인 진은 선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진은 악하다는 것이다. 악한 진은 타락한 천사와 손을 잡고 있는데 이 타락한 천사의 두목이 이블리스(절망한 자)인 것이다.  - 절망한 자가 가장 타락한 것이다.

 

105. 이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부모의 감시 밖이 아이들에겐 위험 지역이고, 사회의 보호 밖이 종족의 구성원들에겐 위험 지역인 것과 마찬가지다.

 

107. 미지의 땅(황야, 밀림, 심해, 타향 등)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110. 플루타르코스는 퀴벨레의 황홀경, 디오뉘소스의 바카스적 광란, 무사이(뮤즈)에 의한 시적인 광란, 아레스(Ares=Mars)의 전투적인 광란, 그리고 이성을 뒤짚어 엎고 파괴적, 창조적 비밀을 방출하는 신에 대한 <열광>의 실례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사랑의 광란을 열거하는데, 이 관 밀의의 황홀경도 그 중의 하나로 꼽고 있다.

 

112.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112. 만드시 이런 괴물(몹시 위험하면서도 때로는 마법의 권능을 베푸는)과 만나야 한다.

 

122-123. 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123.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123. 이러한 괴수들은, 한 차원 심화된 내적 침묵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는 자들을 지켜주는 관문의 수호자들이다.

 

124.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

124.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125. 비슷한 예로서 남 인도 킬라카레 지역에서는 왕이 20년 치세를 마무리짓는 해에 날을 잡아 엄숙한 제삿날로 삼는다. 이 날에는 나무로 노천 무대를 꾸미고 위에는 비단 천 조각을 늘어뜨린다. 성대한 의식과 음악에 맞추어 목욕 재계한 왕은 신전으로 나아가 신을 경배한다. 이어서 노천 무대로 올라간 왕은 백성들 앞에서 칼을 꺼내고 코, , 입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신체 기관으로부터 되도록이면 많은 양의 살을 베어낸다. 그는 베어낸 살점을 던지며 노천무대를 도는데, 이런 행위는 출혈이 지나쳐 혼절할 때까지 계속된다. 혼절하기 직전, 그는 즉석에서 자기 목을 딴다.

이것은 미노스 왕이 포세이돈의 소를 자기 것으로 만들 당시에 치르기를 거부했던 희생제다. 프레이저가 지적했듯이 의식으로서의 국왕 가해는 고대 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프레이저는 이렇게 쓰고 있다.

 

126. 미노스가 괴수 미노타오로스가 되고, 자기를 희생시켜야 하는 왕이 폭군이 되고, 모두가 왕의 역할을 수행하던 제정 일치 국가가 사리 사욕만 아는 상업 국가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전 3천년대에서 2천년대까지, 그러니까 초기 제정 일치시대 말기의 고대 국가에서는 이러한 대속물의 희생제가 관례였던 듯하다.

 

132.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33. 여전히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 충동의 유대libidnal tie를 강화하고 있다.

133.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133.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

 

139. 신화적 종교적 유산의 상징적 정신적 의식에 힘입어 극복해 왔던 심리학적 위험들을

139. 혼자서 혹은 시험적, 즉흥적으로, 더러는 도움이 될만한 지침도 없이 맞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모든 신들과 악마들의 존재를 이성의 이름으로 부정한 <개화된>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다.

139. 심적 인자, 즉 무의식의 원형으로서의 신

 

143. 빛과 어둠을 표상하느 자애, 즉 이난나와 에레쉬키갈은 두 얼굴의 한 여신이다.

143.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시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5.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잠자는 여성.

 

152. 어머니의 두 유형을 드러내면서 <> <>을 통합한다. 여신의 숭배자는 이 두 유형의 어머니를 똑같이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

 

153. 고도의 이해력을 갖춘 천재만이 이 숭고한 여신의 계시를 읽을 수 있다.

153.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여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 있다. 수사슴이 된 악타이온의 예에서 우리는 이미 이런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욕망이나 놀라움이나,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으로서 엿보아서는 안 될 계시에 대해 전혀 준비다 되어 있지 않은 일개 사냥꾼에 지나지 않았다.

153. 신화학의 심상 언어에서 여자는,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의 전체성으로 표상된다.

 

154.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156. 처음에는 그대 역시 이 몸을 추악하고, 야비하고, 욕지기가 나는 노파로 보았다가, 이윽고 아름다움을 보셨습니다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156. 왕도가 그렇다니? 아니, 인생이 그렇다는 뜻이다.

156. 여신은, 악타이온의 동물적 욕망으로도, 퍼거스의 결벽에 가까운 도사림으로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직 니알의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156. 아와레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할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159. 삶의 상황을 수습하는 데 대한 실패는 결국 의식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수밖에 없다.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160. 자신의 입장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데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160.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160.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

160. 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 상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을 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름에 빠진 파리, 우리가 먹을 국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리려 한다.

160.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162.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 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원래 타성적이고 추악한 존재인 이 육체의 모든 제약을 떨쳐버리라! 육체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한번 속에서 토한 것을 다시 생각하면 혐오감만 더해지느니.

177.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192.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그가 속한 세계와 함께)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192.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때닫는다.

200. 낙원은 <대립적인 것이 공존coincidence of opposite>하는 곳이었는데, 이제 인간은 이 낙원의 울타리에 의해 하느님에 대한 환상과 하느님 형상에 대한 회상으로 부터 단절되었다.

200. 창조의 신비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200.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200. 우주 발생적 순환cosmogonic cycle의 시작에 해당하는데

 

203.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할례 다음해에, 완전한 남성이 되고자 하는 입문자는 두번째의 제의적 수술을 받는다. 이 두번째 수술은 절개 수술이다(성기의 밑부분을 요도속까지 절개하여 흉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 흉터는 <페니스 자궁penis womb>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남성의 질을 상징한다. 영웅은 의식을 통하여 남성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다.

 

 

204. 어머니와 누리던 유아기라는 아이의 낙원에 침입한 아버지는 원형적인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모든 적은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를 상징한다. 그래서 <살해당한 것은 모두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머리를 자르는 습속이 있는 사회(가령 뉴기니아에서처럼)에서는 단순한 복수전이 아닌, 머리 자체를 숭배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뿐만 아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충동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은 끊임없이 집단 폭력으로 발전한다. 그런 사회나 종종 집단에서 노인들은 토템 의식이라는 심리적 마법으로 자라나는 아들 세대로부터 자위를 도모한다. 그들은 도깨비 같은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연출하는 한편,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임을 아들들에게 보여준다. 새로운 대규모 낙원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낙원은, 아직도 조직적인 공격 계획이 세워지고 있는 전통적으로 적대하던 종족이나 인종은 끼워주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적인 모든 <선한> 요소는 집단의 평화로 수렴되고 <악한> 모든 것은 외부로 투사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저 할례받지 않은 불레셋의 녀석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거느리시는 이 군대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겁니까?”

 

205. 무리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헌신할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세계의 나머지 부분(그러니까 인류가 사는 세계의 대부분), 그 구성원들의 동정과 보호와는 상관없는 세계로 밀려난다.

 

206.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뺩을 치거든 다른 빰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것이다.

 

207. 우리가 일단 세계의 원형들에 대한 편협스런 교회적, 종족적, 국가적인 해석의 선입견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게 되면

207. 구세주가 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고, 힘써 전파했지만 실천만을 끝내 꺼렸던 복음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207. 자질구레한 신조, 예배의 방법, 교회 행정조직의 설립 같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들…(종교 문제인 양 덤빈다)

 

209.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 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213,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215. 생각은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215. , 어둠, 등잔, 환영, 이슬, 거품, , 섬광, 그리고 구름. 이런 것들을 마땅히 보이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217. “좋아,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고 대답했다. 유학자는, “그게 문젭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달마는,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했다. 유학자는 그 말귀를 알아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223. 이 안에서는 만물이 찰나적인 동시에 영원하며, 만물이 스스로를 아는 남성과 여성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다.

 

226. 꿈은 개인의 삶이 미분화 에너지 속으로 해소되는 지점이다.

229. 바다의 밑바닥, 태양의 연화가 피는 땅에서 자기의 생령을 찾아내어 잠에서 깨워주는 사람과 결혼하고자 했던 어느 왕의 어여쁜 딸 이야기가 있다.

232. 세상을 온통 경건하게 만들어버리는, 유치한 행복에 젖어 있는 무리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상징은 무너지고 초월당한다.

 

269. 언제나 사소한 실수, 즉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280.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280. 외부로부터 구조를 받든, 내적 충동에 따라 살아나든, 신들의 안내를 받든, 영웅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곳으로 애써 억은 전리품(홍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단계가 남는다. 뿐만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뭐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1.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281. 이 잊혀진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 생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두 세계의 가치나 차이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던 <타자> <자아>를 동화시키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281. 정상 상태로 깨어 있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미덕에서 득실 계산이 파생하고, 그 결과 인간의 존재는 타락한다.

 

282. 빛이 있는 세상의 언어로, 언어가 무용한 저 암흑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282.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헛된 정열에 소진된 범상한 남자와 여자에게 왜 초월적인 은혜의 체험을 그럴싸한 것, 혹은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밤에 꿈으로 꿀 때엔 중요하게 보이다가도 밝은 대낮에 생각하면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시인이나 예언자는 맨정신으로, 전날 밤에 했던 기도를 후회한다.  

 

300. 일찍이 인간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경이로움을 볼지어다. 바로 오늘, 너는 나의 이 몸안에서, 살아 있는 것들과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이 모두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305.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305.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을 투명하게 닦아 우리에게 오는 진리의 빛이 이에 가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305. 의미를 실어나르는 수레를 의미 자체로 오해하면 헛된 잉크뿐만 아니라 헛된 피까지 흘리게 된다.

306. 예수는 똑 같은 것을 훨씬 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제 의미는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든 종교적 관행이 좇고 있는 바다.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at-one-ment) 즉 자기 화해(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307.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 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낟.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308.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하고, 이를 살아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수 있다.

313. 이 시인의 노래 중 대부분은 자기에게 내재하는 불멸의 존재에다 바친 것이다.

313. 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 속의 엄연한 불변성을, 존재의 영속성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313. 위대한 재생의 손길인 자연은 부단하게 형상에서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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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우리가 우주적 능력의 근원은 보지 못하고 그 능력에서 투사된 현상계의 형태만 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응축되었기 때문인데, 이 의식의 응축 현상은 초의식을 무의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331.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332. 삶은 공주의 잠이고 죽음은 공주의 깨어남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영웅은, 그 자신이 자기 소멸의 편의 수단일 뿐이다. 영혼을 깨우는 신은, 그 영웅과 죽음을 함께 한다.

422.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오호자다. 영웅은 암흑에서 일어서지만, 적은 힘이 세고 권능 또한 엄청나다. 적은 자기지위의 권위를 자신을 위해 행사하기 때문에 적이며, 용이며, 폭군이다. 과거를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옹호한다는 이유에서 그가 바로 사슬이다.

422. 폭군은 자만한다. 그는 그림자를 본질로 오인하는 광대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422.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 행위다.

422.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은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한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428.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442.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5.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 향긋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걸 알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그는, 죽음이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 보았다.

458.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458.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459.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459. 허약해지면 (늙음으로든, 병으로든) 사람은 망고나 무화가나 딸기가 가지에서 놓여나듯, 그렇게 사지에서 해방된다.

463. 나는 저 비밀의 땅에서, 알에서 나온다. 죽음과 재생을 동일시하는 관념의 선언이다.

468.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477. 신화의 해석에는 최종적인 체계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 프로테우스와 같다. 이 해신은 땅에서 기는 모든 생물, 물 속에 사는 모든 생물, 심지어는 타오르는 불꽃에게도 말을 시킬 수 있고, 그와 똑같이 변신할 수도 있다.

 프로테우스로부터 배우기를 바라는 삶의 항해자는, 그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를 조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온전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교활한 신은 아무리 재주 있는 질문자에게라도, 그 질문자에게 자신의 지혜의 전부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늘 높이, 태양의 궤도 위에 솟아 있는가 하면, 문득 바닷물 속에서 이 해신은 솟아난다. 그의 말을 진실하다. 그는 서풍의 숨결을 거느리고 나타나는가 하면, 바다의 짙은 빛깔의 물결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나타난 그는 동굴 깊은 곳에 누워 잠을 잔다. 그의 주위에서 짜디짠 바닷물의 땅인 물개들이, 회색빛 바닷물 속에서 몰래 빠져나와 무리지어 잠을 잔다. 고약한 것은, 물개들이 토해내는 짜디짠 바다 밑의 냄새다.

478.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튈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으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9. 삶의 잉태에서, 개인은 인간의 전체 이미지의 단면이며 일그러진 형상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남성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제약을 받고 있다. 주어진 수명의 한도내에서 개인은 다시 유아로서, 청년으로서, 성인으로서 노인으로서의 제약을 받는다. 더구나 살면서 맡는 역할상 개인은 다시 기술자, 상인, 하인, 혹은 도둑, 성직자, 지도자, 아내, 수녀, 혹은 매춘부로 전문화한다. 개인은 이 모두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 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479. 출생, 세례,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제의는 개인의 정체를 그 자신에게 보여준다. 인격체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 신부로서, 과부로서, 성직자로서, 추장으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일한 제의를 통하여, 개인이 속하는 사회는 원형적 무대에서 옛 현인의 가르침을 시연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자기 지위의 기능에 따라 이 제의에 참가한다. 전체 사회는 이 제의를 통하여 마모되지 않은, 살아 있는 단위로 참가자들의 눈앞에 전개된다.

480. 이제 인간의 시야는 넓어졌다. 맡는 역할이 비록 하찮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이 인간의, 아름다운 축제의 이미지에서 자기 역할이 바로 자기의 본질이었음을 깨닫는다.

481. 그러나 다른 길도 있다. 즉 사회적인 의무와 대중적 제의와는 정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의무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추방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성별, 연령별, 직업별 차이는, 우리 인간의 특질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가 한동안 입고 있는 옷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482. 이러한 명상을 통해 입문자는 자기의 심층에 이르고, 마침내 그 껍질을 뚫고 엄청난 자각에 이른다.

482. 자기 자신을 위대한 인간으로 발견한 아무개 씨는 내성적이며 초연한 인간이 된다.

482.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484.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 통로는 단절되고,…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488.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491. 캠벨은, 무대가 다르고 사건이 다르고 의상이 다르지만, 인간의 무의식이 투사된 영웅, 말하자면 인간의 집단이 그려낸 영웅 신화는 거의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캠벨의 주장에 따르면 아폴로든, 동화 속의 왕자든, 듀톤의 신 오딘이든, 부처든, 모든 영웅은 일정한 영웅의 싸이클을 따른다. 그는, 서로 접촉이 없는 세계 각 문하권의 무수한 영웅 신화와 심층 심리학의 꿈 해석에서 재발견되는 영웅의 상징 체계를 분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 가운데서 하나의 영웅, 그러니까 모든 영웅 신화의 본이 되는 하나의 영웅을 떠올린다.

492. 오랜 세월, 우리 숨줄이 닿아 있던, 우리 육즙이 층층이 묻어 있던 문화는 이제 이 땅에 남아 있되, 오직 하나의 질투하는 신학에 가려져 있다. 신화나 종교를 보는 눈이 병적인 교조주의와 경직된 흑백의 논리에 길들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걸핏하면 조상이 우상으로 단죄되고, 하나의 신학을 옹호하기 이해서라면 오랜 역사 살림을 꾸려온 민족까지 우상의 자식들로 치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 기댈 곳 없던 민중의 문화가 미신으로 업어치기를 당하고, 충정에서 우러난 비판 정신과 각자의 자유를 겨눈 정신적 편력의 간증이 사탄의 소리 수작으로 간주 되는 이 시대에, 모든 민중의 문화와 종교를 고루 짚어보며, 그 바른 뜻을 더듬는이 책을 우리글로 옮긴 뜻은 그러므로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의 믿음, 다른 이들의 종교라면 듣도 보도 않고 흰 눈을 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체로운 종교 정신으로 곧추세우는 데 밑바탕삼을 수 있다면, 남의 집도 좀 기웃거려 보는데 인색해서야 되겠느냐는 뜻에서다.

 

3. 내가 저자라면

 다른 10기 동기들이 모두 사기열전을 두 번 읽은 것에 비해, 내가 고집스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두 번 읽기 한 이유가 있다. 내가 아직 내면의 동굴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지도를 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대화가 소원했던 지난날에 대한 일종의 나머지 공부다. 지금의 나에게는 나라는 비밀을 푸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 그 동안 외부의 사건을 보는 것도 결국에는 나라는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니 나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곧 나의 글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영웅의 여정에 따라 짜여진 차례이기 때문에 이 차례를 눈여겨 보는 것이 필요했다.

 

목차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2 비극과 희극

3 영웅과 신

4 세계의 배꼽

 

1부 영웅의 모험

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4 첫 관문의 통과

5 고래의 배

 

2장 입문

1 시련의 길

2 여신과의 만남

3 유혹자로서의 여성

4 아버지와의 화해

5 신격화

6 홍익

 

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2 불가사의한 탈출

3 외부로부터의 구조

4 귀환 관문의 통과

5 두 세계의 스승

6 삶과 자유

 

4장 열쇠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장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2 우주의 순환

3 허공에서 공간

4 공간의 내부에서 생명

5 하나에서 여럿으로

6 창조의 민화

 

2장 처녀의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3 전사로서의 영웅

4 애인으로서의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6 구세주로서의 영웅

7 성자로서의 영웅

8 영웅의 죽음

 

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3 오늘날의 영웅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영웅의 여정을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데 그치지 않아줘서 고맙다. 대단한 영웅조차 우주의 일부임을 알려주는 제 2부가 있어서 참 좋다. 조셉 캠벨의 책들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대극으로 나누어 판단하고 있던 행복과 고통이 사실은 하나라는 메시지다. 행복 속에도 고통의 머리카락이 들어있고, 고통 속에도 행복의 초대장이 섞여 있다. 우리는 어떤 운명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지 한치 앞도 보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도 내게 소중한 보물을 찾아와야 한다니, 참 골치 아프다. 그러나 행복과 고통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은, 일상에 함몰되어 있는 인식을 전환시킨다. 조금 멀리에서 나의 상황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관용을 넓힌다. 이것이 무의식의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는 집 나간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실타래다.

 

모든 인간의 내면은 무대 위에서 동그란 조명을 받고 있는 배우와 같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그란 범위 속에 내가 서있다. 그 이외의 어둠 속에는 누가 서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저 울음 소리와 발소리로 그 크기와 성질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무의식은 그 정체를 몰라 두려운 것이면서도, 막상 밝은 빛 아래에서 보면 사실 대수롭지 않은 것일 때가 많다. 어둠 속을 쳐다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손을 뻗으면 닿는 손끝에 무언가 걸린다. 밝은 곳으로 잡아당겨보면 그것은 메두사의 머리카락 뱀이다. 나는 어느 새 나의 왼손에 들린 보검으로 그 목을 내리친다. 그러면 흉측한 뱀 괴물의 육신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백마만 남아 무대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그 사이 나의 스포트라이트는 조금 더 넓어져있다.

 

인간은 하나의 의지다.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꿈틀거리는 의지는 어머니의 품처럼 안전한 곳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거친 세상에 홀로 남겨져있을 때에는 그 의지를 이 땅과 현실에 불러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 실현된 힘이 영웅의 능력이며, 단순히 힘을 활용하게 된 것뿐 아니라, 보다 더 큰 존재에 자신을 바쳐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 영웅의 여정이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나의 현실에 불러오는 방법을 많이 찾아두어야겠다.

 

좋은 책은 몇 번을 읽어도 늘 새롭다. 예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꽃병이나 벽지에 적힌 글귀 하나가 훨씬 중요하고 무거운 표지였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예전에 적어두었던 코멘트나 줄 친 부분에서도 감상을 새로이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책을 곁에 놓고 자주 읽으면 자신의 성장을 가장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처음에 과제로 이 책을 만났을 때보다 내가 속해있는 단계가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시작하는 부분이 많이 와 닿았다면, 이제는 어떻게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훨씬 신중하게 읽힌다. 특히 자기 세계로의 귀환에 실패한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 속에 불안감이 일어난다. 영웅의 시선으로 책을 읽어왔으니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했을 때 응답 받았던 그 꿈에 도전해서 실패한다는 것이 뭐 어떤가. 어디든 갈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을 때, 그 갈림길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그 끝이 결국 평범한 직장인으로 끝나더라도, 그 때의 나는 시작하던 나와는 다르다. 나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 길을 선택했던 그 시절의 초심을 소중히 여겨주고 싶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나를 바꿀 것이다. 앞으로의 일상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목소리가 원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미 그 물살이 거세어 빠져나갈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아늑한 나의 조각배에 타고 있는 나의 처지가 마음에 든다. 배가 난파되더라도 언젠가 나는 세계의 바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

156. 여신은, 악타이온의 동물적 욕망으로도, 퍼거스의 결벽에 가까운 도사림으로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직 니알의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281.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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