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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일 11시 53분 등록

Column 7

강종희

2014. 6.1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나서, 정리 안 되는 복잡한 머리 속을 가로지르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역사는 짬뽕이다! 정확히 그 톤을 구현하자면, “역사는 뭔가 짬뽕 같은 것인가봐…”. 엎치락, 뒷치락, 주고 받고, 성하고 쇠하고, 이 위대하다면 위대하고 비열하다면 또 한없이 비열한 인물들이 얼키고 설켜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뭔가 한번 이뤄보자고 뒤엉켜 싸우는 듯한, 정리하려 한다고 정리될 수 없는 이야기와 사건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느낌. 역사가 짬뽕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사기를 읽고 난 내 느낌이 무척 짬뽕스러운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역사가 짬뽕으로 결부되는 나의 사고력은 결국 짬뽕은 역사다라는 모순 명제에 가 닿았다. 사실 짬뽕은 진짜 역사가 맞다. 그것도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사가 이러 저리 설킨, 이민과 식민, 전쟁의 역사가 마구 뒤섞인 삼국지다. 그러니까 짬뽕은, 19세기 말 자국을 벗어나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각지로 진출해야만 했던 중국의 이민 역사와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기치아래 아시아 곳곳을 침탈한 일본의 그릇된 야망,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온 몸으로 부대끼며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국의 자생력강한 현대사가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음식인 것이다.

 

처참한 비극과 위대한 승리가 혼재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음식, 짬뽕. 짬뽕을 중국음식이라 말하는 놈은 가라. 짬뽕은 중국에서 유래해 일본이 대중화시켜 한국이 완성한, 음식삼국지의 주인공이다. 잊지 말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결자가 우리라는 점이다. 국물 맛 일품인 얼큰한 빨간 국물의 대명사, 짬뽕은 중국을 가도, 일본을 가도 없다. 한국에만 있다. 

 

나같이 1 1면식(麵食)을 최소한의 수행원칙으로 삼고 있는 면식인들의 세계에서, 이놈 짬뽕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다. 또한 그 기원에 대해 제대로 썰을 풀 수 있는 자는 당신, 면발 좀 아는데…” 라는 부러움 섞인 찬탄을 들을 수 있다. 한반도자연발생설이나 서양연원설에 지배되지 않는 이 땅의 대부분 음식들이 그렇듯이, 고대 짬뽕의 발생지는 중국, 아님 일본이다. 그런데 결론이 아직도 안 났다. 굳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현재진행형의 난제는 주영하라는 음식인문학자가 쓴 차폰, 잔폰, 짬뽕’(사계절, 2009)이라는 책에 낱낱이 해부되어 있다. 

 

짬뽕의 기원을 공식화할 수 있었던 최초의 움직임은, 바로 국어순화운동을 주창하던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비롯되었다. 1980년대 들어 국어순화자료집을 편찬하면서, 짬뽕은 일본말이니 원래 짬뽕의 기원인 중국의 초마면’(炒碼麵)을 쓰는 게 맞다며, 짬뽕 대신 초마면이라는 단어를 쓸 것을 권유한 것이다. 물론 그 권유가 먹혀들었는가는 우리가 지금 초마면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알 일이다. 그렇담, 짬뽕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오고, 짬뽕의 본체인 음식은 중국의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단어의 기원과 음식 자체의 기원 모두 중국기원설과 일본기원설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우선 짬뽕의 인천상륙설, 즉 중국기원론을 먼저 살펴보자. 인천에는 다들 알고 있다시피, 대규모의 화교집성촌이 존재한다. 짜장면의 기원이라는 공화춘도 인천의 한 화교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거고. 1885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 중국인들이 인천에 정착하면서, 집에서 손쉽게 해먹는 국수요리인 초마면을 들여왔고, 이것이 중국인 화교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를 얻게 되면서 오늘날 짬뽕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초마면은 과연 어떤 맛일까? 


초마면은 중국말로는 차오마몐이라고 부른다. 이 요리는 해물 또는 고기와 다양한 야채를 기름에 볶아 닭이나 돼지뼈로 만든 육수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다음 면을 말아 먹는 중국요리이다. 원래 돼지고기, 표고버섯, 죽순, 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은 탕러우쓰[湯肉絲麵]에서 유래한 음식이며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시원하게 끓여 후춧가루만 넣어 먹었다. (두산백과)

아쉽게도 직접 맛보지는 못하였는데, 경험자의 증언에 의하면 국물이 적고 흰데, 우리가 아는 매운 짬뽕 국물맛과는 거리가 있다 한다. 조리법은 재료를 먼저 볶고 국물을 붓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재료와 맛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단어의 어감에서 초마면(차우마몐)에서 짬뽕으로 도약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제 일본기원설.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는 아예 짬뽕박물관이 떡하니 개관을 하고 있다. 1층은 짬뽕을 발명했다는, 적어도 나가사키 짬뽕의 기원인 시카이로라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이주한 천핑순이라는 화교가 개업한 식당으로, 주머니 사정 어렵고 고향 음식이 그리운 중국인 노동자와 유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시나(‘차이나를 가리키는 일본식 한자) 우동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 명물로 자리잡아 이후 나가사키 짬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해물과 돼지고기, 각종 야채를 강한 불에서 볶고 다시 육수를 부어 국수에 끼얹어 내는 방식은 초마면이나 우리네 짬뽕과 역시 유사하며, 다만 이곳의 국물도 불맛이 더 강할 뿐, 고추가루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우윳빛이다.

 

한편 짬뽕이라는 단어의 기원에 있어서 일본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본어에는 징과 북으로 음악을 연주할 때 나는 잔폰 폰찬하는 의성어가 있다. 즉 징과 북 소리가 마구 섞여 있는 소리가 시나 우동에 육해공의 재료가 모두 들어있는 점과 비슷해서, 이 음식을 잔폰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어 속어로서 잔폰은 뒤섞이거나 번갈아 하는 일을 가리키는 형용사로 쓰인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 기원설로 맞서는 이들은 중국 푸젠의 발음으로 츠판(밥을 먹다)’차폰또는 소폰으로 발음되는 것에 주목한다. 여긴 일본인들이 그들의 인사말인 차폰을 흉내내어 음식으로 차용했다는 것이다. (주영하, 차폰, 잔폰, 짬뽕 중에서 발췌, p29-31)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뒤죽박죽 섞인 것을 의미하는 짬뽕이라는 단어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도 사용된다는 점인데, 주영하는 이 단어가 쓰이는 지역이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던 지역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우리도 짬뽕이라는 단어를 뭔가가 뒤섞인 상황에 쓰는 걸로 볼때, 의미와 소리가 모두 유사하게 쓰이는 짬뽕이라는 단어만의 기원은 일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제 한국식 진짜배기 매운 짬뽕의 기원에 대해 들여다 볼 차례다. 아마도 짬뽕이라는 음식의 원형은, 초마면 혹은 그 초마면의 원형이라 했던 탕뤄우쓰라는 국수가 맞을 듯 하다. 그것이 한국으로 바로 왔든, 일본을 걸쳐 다시 들어왔던 간에, 요즘 본토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식 짬뽕이라는 타이틀 아래 인기 리에 팔리고 있다는 위풍당당 매운 짬뽕으로 거듭난 데에는 70년대 한국의 이민정책과 산업정책이 명백히 작용했다. 

 

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중국집은 화교들이 주인이었고 요리를 담당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 박정희 정권에서 혹독한 탄압 정책을 펴면서, 재산을 몰수당한 바와 마찬가지가 된 수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집의 주방에 한국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매운 거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성에 맞춰 점차 짬뽕은 고추가루가 듬뿍 든 얼큰한 빨간 짬뽕으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는 1970년 들어 급성장한 외식산업에서 두드러진 특성인 '매운맛의 보편화'라는 트렌드와도 일치하였다.  또한 미국의 밀가루 과다생산 문제를 인도적인 차원으로 포장한 물자원조와 이후 우리 정부의 밀가루 대량 수입에 맞물려, 정부가 사활을 걸고 분식장려운동을 펼치는 바람에 분식, 특히 국수를 기반으로 하는 외식업계가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짬뽕과 짜장면의 국민음식화는 이런 박정희 정권의 사려깊은(?) 배려가 그 뒷면에 있음이다.   

 

결국 짬뽕은 중국에서 기원하고, 일본에서 재해석되어 한국에서 완성된 3국 음식 문화의 의도치 않은 만남의 산물이다. 얼얼하게, 시원하게 매운 짬뽕 국물은 가난한 유학생과 이주 노동자, 화교들의 고달픈 타향살이의 애환, 그리고 60-70년대 산업화의 격변 속에서 함께 변화한 우리 식생활의 변천사가 고루 섞어 만들어낸 예술이다. 쓴맛, 단맛 다 봐도 인생은 역시 매운 맛이듯이, 짬뽕은 그렇게 전국민의 음식이 되었다.

 

왕과 영웅과 천하의 간신배들이 쓰는 역사만 역사가 아닌 것이다. 역사는 짬뽕도 쓰고, 짜장면도 쓴다. 매일 매일을 충실히 사는 것만으로 개인의 역사를 완성해가는 많은 이들에게, 내 몸을 이루는 음식의 역사는 의외로 조명 받지 못했던 사회적인 진실과 서민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을 포착하게 해주는 깨달음의 순간을 주기도 한다.

 

역사는 짬뽕 한 그릇에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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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11:07 *.228.119.26

짬뽕은 역사라는 것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역으로 역사 역시 짬뽕입니다. 초기 로마를 보더라도 로마인, 라티움인, 사비눔인, 에트루리아인 등이 짬뽕이 되서 이루어진 국가였습니다. 1000년의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로마인이 사용하는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어가 이탈리아어로 쓰인 것을 보면 짬뽕안에 숨겨져 있던 역사의 작은 고추같은 느낌이 듭니다.


만주에서 명멸한 수많은 민족 중에 고구려와 말갈, 여진, 거란 돌궐 등이 있습니다. 그들이 짬뽕처럼 모여 살다가 주도권을 잡은 쪽이 왕국을 세웁니다. 고구려, 돌궐, 요, 금, 청 등...국가의 이름만 다르지 그 안에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았을 것입니다. 순혈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순간부터 역사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순수함이 주는 깨끗함과 아름다움속에는 발라 내어진, 솎아 내어진 것들의 슬픔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러 식재료가 모인 짬뽕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솜씨좋은 요리사와 짬뽕같은 흔한 잡탕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을 가지면 세상이 편해 질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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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41:55 *.103.66.179

그렇지요! 그 시절에 주도권을 누가 잡았느냐일 뿐, 결국 짬뽕이 정답인데! 이거 저거 나누고 배척하는 거 진짜배기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우스운 일일거라 생각합니다. 늘 세심한 리뷰 감사하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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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12:05 *.201.146.68

와~~시작 됐다. 국수이야기!!

종종체도 완전 좋음.


우리동네 백짬봉 그럭저럭 하는 집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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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38:41 *.103.66.179

부산에는 중국집 맛있는 곳 찾기가 참 힘들어요. 여기 토박이 친구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확실히 부산은 중국보다는 일본문화권인가 싶기도 하고요. 일식 문화는 참 널리 퍼져있거든요. 여튼 맛있기만 하면 장땡이지만. 담엔 메밀국수로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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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30:33 *.94.41.89

갑자기 맹구의 옛날 유행어 웃기는 짬뽕!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ㅋㅋㅋㅋㅋ

유쾌하면서도 왠지 짬뽕이 위대해보이네요. 날씨도 흐린데 오늘 저녁은 짬뽕이나 한그릇 하고 속풀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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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3:39:54 *.103.66.179

모든 음식은 위대하지요! 날도 충충하니 나도 짬뽕이 땡긴다능. 그러고 보면 짬뽕이라는 말이 참 다양하게 쓰인단 말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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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7:39:24 *.219.222.75

1일 1면식 하다가 경주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슬픈 이야기.


짬뽕의 역사와 역사같은 짬뽕의 이야기가 재미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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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18:55:32 *.216.0.145

크 인생 한 그릇 짬뽕이구나. 

종종님 글은 불맛이 느껴집니다. 채소며 해물이 뜨거운 냄비 위에서 활활 타는 눈빛으로 탱고를 추다가 한 몸으로 섞여 짬뽕으로 우러나오는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참 부럽습니다. ㅠㅠ 전 언제쯤 이런 다이나믹한 글을 쓰게될지. 아니 이런 글을 쓸 수나 있을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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