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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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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일 17시 57분 등록


글쓰기를 주제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세요. 어렸을 적에 작가가 되는 게 꿈이셨대요.”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지금은 어떠신지 물었다. “그렇잖아도 저도 글을 좀 쓰시라고 권했거든요. 블로그 같은 것도 운영하시면 재밌을 거라고. 근데 싫으시데요.”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 아등바등 살기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지내고 싶으시데요.”

 

자당의 말씀은 십분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도 요즘 부쩍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하는데, 연배가 스무 살이나 많으신 중년 부인이야 오죽하랴. 나도 많이 달라졌다. 이상을 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몸과 마음 편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며 안주하거나 현실과 타협할 때가 많다. 나만 그러겠는가. 얼마 전, 삼십대 중반 와우팀원의 독서리뷰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고백을 만났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누가 훌륭한 삶을 살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사고를 하고, 아무나 범접하지 못할 행동에 도전하는 사람일까? 아니다. 살면서 헤이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편안함에 안주하기보다 젊은 날의 꿈에 부지런히 도전하는 이들일 것이다. 10~20대에 원대한 꿈을 갖고, 대가를 치르기는 쉽다. 하지만 30~40대부터는 꿈을 추구하되, 대가를 치를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그들은 대가를 치르기도, 꿈을 내려놓기도 싫어한다. 그러니 괴롭다.

 

50대 이후로는 대가를 치를 마음이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이상과 꿈도 내려놓는다. 그러니 편안해진다. 편안의 일면은 현실적 지혜의 결과지만, 다른 일면은 안주와 비겁 사이를 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훌륭하게 살고 싶다. 훌륭한 삶은 비밀에 쌓여 있지 않다. 10~20대의 열정적인 삶, 다시 말해 꿈꾸고 대가를 치르며 노력하는 삶을 변함없이 유지하면 된다. 나는 편안함보다는 훌륭함, 평범함보다는 탁월함이 좋으니까.

 

스물여덟 봄날이 기억난다. 내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 중 하나다. 나의 군 생활은 편안하지 않았다. (대대 군수과 서무계로 근무했기에) 전역하기 이틀 전까지도 야근을 했고, (일병 때 결심했던 대로) 전역하는 날까지 내무반에서 발랑 까져 드러눕지 않았다. 편하게 까지려는 상병과 병장들의 불만이 더러 있었겠지만, 내 편을 드는 내무반 병사들도 많았다. 고단했던 군 생활이었지만, 전역하면서 많은 보상을 받았다.

 

중대 보급관은 “간부보다 도움 되는 병사였다”고 칭찬했고, 전역 후엔 대대장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 직접 식사를 사 주셨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한 달 후임의 말이었다. 뛰어난 군생활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가 보여준 편지엔 이런 말이 쓰였다. “이 병장님은 제 생애 가장 본받고 싶은 세 분 중의 한 사람입니다.” 부대 문을 영원히 나서는 날, 나는 결심했다. ‘이등병처럼 군 생활을 하니 빛나는구나. 인생도 이등병의 몸가짐과 병장의 연륜으로 살자.’

 

자랑하고자 늘어놓은 게 아니다.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 해, 지난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십여 년 전의 과거를 끌어온 것이 부끄럽다. 내 삶의 시시한 현실을 직면하며, 스물여덟 날의 삶을 되살려야 할 요즘이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성장하는 법도, 합당한 노력 없이 꿈을 이루는 법도, 나는 모른다. 그러니 편안함을 지양하리라. 지양은 그저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좋은 삶은, 아쉽지만, 편안함만으로는 얻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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