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2226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4년 6월 3일 09시 22분 등록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포천에 있는 절에서 스승님-구본형 선생님이 가시고, 내게 찾아와주신 감사한 스승님- 법회가 있다. 보통 법회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6 1일은 포천 스님이 가꾸고 계신 포도 밭에 일손이 필요해 아침 8시부터 시간, 법회가 끝나고 시간 정도 일을 하게 되었다.

 

농사의 ''자도 모르는 내가 농사를 경험한 적은 지금까지 뿐이다. 대학교 1학년 방학 '농촌 활동' 참여한 . 때는 신입생 때라 친구들이랑 친한 선배들이랑 엠티하는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담배 잎을 따다가도, 동네 어르신들이 주시는 '' 먹는 재미에 빠져 예정되었던 열흘이 금방 지나갔다. 때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농사의 추억이다. 어쨌든, 농사와는 전혀 친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나는 먹는 방법만 알았지, 입에 들어오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속까지 들어오게 되는 지에 대해 관심 가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

 

.. 6 초에 포도밭에 가게 나는 당연히 ' 익은 포도를 따는 ' 하게 알았는데, 이게 왠일! 포도밭이라고 도착했더니 내게 익숙한 포도는 보이지 않고 온통 초록색으로만 가득하다.

 

", 여기로 모두 모여 보세요~!"

 

스님이 나눠주신 가위를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는 나를 비롯해 포도밭에 도착한 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오늘은 가지만 주시면 됩니다. 포도줄기들을 꼬이게 만드는 넝쿨손들을 잘라주세요. 그리고 포도 잎사귀와 같이 자란 곁가지들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포도 송이에 송이가 하나 붙어 있는 어깨 송이들을 자르면 됩니다."

포도밭.png


포도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 같은 상태다. 스님의 말씀을 따라 정해진 양의 햇빛, 바람, 흙의 양분 등을 반드시 자라야 하는 포도로 갈 있게, 양분을 빼앗는(?) 아이들을 걸러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밭농사나 논농사의 ' 이랑'처럼 포도나무도 하나의 '이랑' 단위로 줄을 지어 있었다. 이랑의 양쪽에 명씩 명이 조가 되어 가지치기를 하는데, 다행히 이랑에서 포도밭을 일구는 스님이 작업을 하고 계셨다. 작업한지 이십여분 정도 지나을까? 뒤편에 있던 다른 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포도송이에 어깨 송이가 있는데 원래 송이랑 어깨 송이 크기가 비슷하면 놔둬야 해요?"

 

", 그럴 때는 중에 크고 건강한 송이를 놔두고 다른 송이를 자르세요. 작년에는 아까워서 놔뒀는데, 그랬더니 품질이 좋아져서 상품성도 떨어지고 맛도 없더라고요"

 

포도잎, 포도 송이, 곁가지, 넝쿨 오밀조밀하게 채우고 있어 틈이 보이던 포도나무에서 자라야 하는 다른 줄기들을 붙잡고 있던 넝쿨들과 작은 새순부터 포도잎보다 훨씬 커져버린 곁가지들까지 모두 내니 포도나무 줄기 곳곳에 여유가 생겼다. 내리 쬐는 햇빛을 바로 받을 있는 공간이 생기고, 바람이 통과할 틈도 생기고, 남은 생명들이 흡수할 있는 물과 영양소의 양도 공유할 대상이 줄어든 덕분에 훨씬 늘어났다. 뒤에 만나게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나에게 익숙한-으로 자라나 속이 꽉차게 영글어 있을 포도송이들이 기대된다.

 

포도나무를 보니 나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든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워진 24시간. 요즘은 시간 1/3 밥벌이를 위해 쓰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솔로생활 8년만에 내게 찾아온 연인과 대다수의 시간을 보낸다. 중간 중간에그립고 보고싶은 이들을 만나서, 술을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간의 1/3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챙기며 살아 왔다. 이런 나에게 외의 시간을 '관계' 안에서 대부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변화다. 친구들도 놀라워 하고 있다. 혼자 읽을 시간, 시간도 있어야 하고, 밥벌이를 위해 기획하는 외에 다른 사람들과 실험을 하는 시간도 필요한 나인데 지금은 그런 시간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만든 주변의 관계들과 자신에 화가 많이 났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 시간이 즐겁기도 하지만, 얼른 집에 가서 혼자 있고 싶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함께 있는 자리와 시간' 피곤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고독의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과 욕심을 일정 기간 놓아보기로 했다. '하고 있지 않은, 해야 일들' 대한 미련과 불편한 마음을 버리자, 거짓말처럼 자리에 즐거움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느껴보지 못한 '함께 있는 기쁨' 나를 찾아왔고, 과거의 경험 혹은 미래에 대한 갈망과 기대에 묻혀 구석에 버려져 전혀 보이지 않던 '지금' 어느 마음 속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버리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을 얻었다. 버린만큼 채워지는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버린 것보다 많이 채워질지도 모른다.

 

IP *.70.56.238

프로필 이미지
2014.06.10 16:18:57 *.153.23.18

솎아내기를 할 때 버림과 집중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지요.

스님은 참 지혜로우시네요. 일도 해결하고 수행도 안내하고^^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