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 한정화
- 조회 수 198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3 + 1의 비밀
웃찾사의 지난 프로그램 중에 '극과극'을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검색해서 모두 본 듯 하다. 일정한 박자로 드럼소리가 간단하게 반복되고 출연자는 그 박자와 맞추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 리듬에 맞추어 자신의 멘트를 한다. 먼저 한쪽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다른 출연자가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극과극의 많은 출연진 중에 내가 재미나게 본 부분은 '서울놈과 시골놈'이다.
서울놈이 먼저 자신의 멋진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 후에 대조되는 시골놈이 자신의 전원생활을 이야기한다. 이 프로그램의 웃음의 포인트는 후자가 얘기하는 쪽에 있다. 그러나 먼저 말하는 쪽은 그 나름대로 그 회의 이야기의 배경을 깔아주고 반복하여 익숙해지게 만드는 일을 한다.
서울놈의 멘트
'과학 실험 할때엔 과학실에 가구요,
노래를 할 때엔 음악실에 가구요,
그림을 그릴 땐 미술실에 가구요,
소풍을 갈 때는 놀이동산 가지요.'
이어지는 시골놈의 멘트
'과학 실험 할때엔 뒷산에 가구요,
그림을 그릴 때엔 뒷산에 가구요,
운동을 할 때엔 뒷산에 가구요,
소풍을 갈 때엔'
여기까지 하면은 관객들은 박자와 패턴에 익숙해져서 '뒷산에 갑니다'를 따라한다.
그러나 시골놈의 멘트는
'아이예요, 옆동네 뒷산가요.'라고 박자를 맞춰서 이야기한다.
따라하면서 참여하고 그리고 그 예상이 어긋나면서 일어나는 긴장과 해소로 이 부분에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기에 한번을 더 더한다.
'옆동네 아이들은 우리동네 뒷산와요.'
먼저 하는 쪽이 판을 깔고, 후자가 그것을 반복하는 듯 하지만 변형하면서, 4번째에는 반전이 일어나고 한번 더 쐬기를 박아서 마무리를 한다.
아이들의 그림책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있다. 존 클라센의 그림책 <I Want My Hat Back>에서는 모자를 잃어버린 곰이 뱀을 만나서 자신의 모자에 대해 묻고, 거북이를 만나고, 사슴을 만나고, 토끼를 만난다.
이때의 곰의 대사는 모두 똑같은 것이다. 대답하는 동물의 대사도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멘트.
"Have you Seen my hat?"
그림 또한 같은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오른편에 곰이 왼편에 곰이 만나는 동물이 등장한다. 밋밋한 듯한 단순한 구도이다. 곰은 그대로 이고 왼편의 동물들만 바뀔 뿐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어린이와 같이 읽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뱀을 만나서 물을 때, 아이는 그림을 보며 그림책 읽어주는 사람의 "Have you Seen my hat?" 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이후에 곰이 거북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그림책을 보며 또 한번 "Have you Seen my hat?" 이 말을 듣는다. 그리고 토끼를 만났을 때 아이는 또 이말을 듣는다. 그리고 또 사슴을 만났을 때, 이번엔 아이는 어떤 말이 나올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과 때를 맞추어 아이는 같은 말을 속으로든 입밖으로 내서든 반복을 하고 있다.
우리전래 동화 '해님 달님'에서는 떡을 팔러나간 엄마가 돌아오다가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대목이 있다. 이때의 호랑이의 말을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첫번째 고개를 넘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했던 말이 두번째 고개에서도, 3번째 고개에서도 듣게된다. 그것은 단 한구절, 한 단마디의 변화가 없이 모든 사람이 같은 문구로 기억하는 말이다.
왜 곰은 네 마리나 다섯의 동물들을 만나야했을까? 그림책을 쓰고, 그림책에 관해 여러가지를 일러주는 이상희 작가는 책, <그림책 쓰기>에서 '3'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말한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도 삼, 세판, 도전을 해도 세 번, 이야기에 아이가 나와도 3명의 아들, 아기 돼지 삼형제라며 3(셋)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들여주는 이야기(그림책을 포함)에서는 운율에 맞춘 입에 짝짝 붙은 말이 반복되어 나온다. 3회의 반복이면 그것이 머리속에 남는다고 한다. 이것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을 만나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도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러주는 팁 중에 명함을 받으면 그 즉시 그 사람 이름을 크게 3회를 불러 보라고 한다. 이러한 반복행동으로 미팅중에 곤란함을 좀 커버할 수 있다고 일러두는 팁이다.
아이의 그림책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 아이는 그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어른을 조른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아이는 또 그 책을 집어 든다. 어린이 비디오도 반복해서 봐서 허옇게 나오지 않을 때까지 본다고들 한다. 이런 속성을 잘 아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를 때 입에 붙는 말로 씌여진, 읽기에 힘들지 않은 그림책을 고르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고 나서 책을 덮고, 그 다음날 다시 그 책을 펼칠 때 일어나는 일을 상상해보자. 3번의 마법의 주문과 같이 입에 붙고 귀에 익숙한 말은 이미 반복되었고, 다시 또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따라하고 있다. 네 번째에는 아이에게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서 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어제는 이야기 속의 주인이 되었다가 오늘은 그 주인공을 알고 있는 어제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3회의 반복으로 4번째에 멘트를 따라하는 관객처럼. 이때에 뭔가가 일어난다. 그 마법의 4번째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앞서서 일어난 단순한 것들의 3회의 반복이다.
그림에서도 이러한 요소를 넣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이 아닌 한장의 그림에서도 이런 요소가 있을까? 4개의 시리즈로 구성한다면 가능할까? 이 요소를 이야기가 없는 그림에 넣는 것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여담으로, 지난주에 팝아티스트 김일동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얻은 인상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그림은 딱 보면 첫인상이 어렵지 않은 그림이다. 익숙한 것들이 화면가득 크게 하나로 보인다. 아인슈타인, 부엉이, 윤두서 자화상, 커다란 용.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자그마만 구성요소들이 이야기를 갖고 있다. 제목과 함께 작품을 보면 이야기가 있고 현대문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익숙한 것으로 접근하여 자세히 들여다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장의 그림에 3회의 반복을 넣을 수는 없을지라도,이미 세상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고, 복제되어 상징이 되다시피 한 것을 전면에 배치하고 심화로 들어가는 부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서 내 놓는다. 김일동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첫인상으로 감상하고, 세부로 감상하여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리고 제목과 함께 전체를 다시 감상할 때, 그때 감상자에게 '아하!'를 연상시키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3 + 1을 만들어 넣은 '옛날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처럼, 그림에 '3'과 '+1'을 만들어내는 몰입의 요소는 어떤 것일까? 한장의 그림에 '3'과 '+1'을 다 담을 수 있을까?
***
<I Want My Hat Back> 관련 짧은 동영상 http://vimeo.com/20752795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112 |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한걸음 내딛기 [4] | 녕이~ | 2014.06.09 | 2001 |
4111 |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 소면 [4] | 종종 | 2014.06.09 | 2657 |
4110 | 발걸음이 멈추는 곳 [5] | 에움길~ | 2014.06.09 | 1941 |
4109 | 이상 국가 모델 [8] | 앨리스 | 2014.06.09 | 2105 |
4108 | 현재에 깨어 있기_찰나칼럼#9 [6] | 찰나 | 2014.06.09 | 2299 |
4107 | #9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4] | 희동이 | 2014.06.09 | 1970 |
4106 | 지혜의 열매 [8] | 어니언 | 2014.06.09 | 1880 |
4105 |
5일장_구달칼럼#9 ![]()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6.09 | 2231 |
4104 | #9 한발 내딛기_정수일 [12] | 정수일 | 2014.06.08 | 1960 |
4103 |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8] | 왕참치 | 2014.06.08 | 1904 |
4102 | 감악산 계곡 [1] | 유형선 | 2014.06.05 | 3201 |
4101 | 비교의 경제학 [1] | 정산...^^ | 2014.06.03 | 1892 |
4100 | 3-8. 미세수정 이러쿵저러쿵 [4] | 콩두 | 2014.06.03 | 6436 |
» | 이야기 속에 3+1의 비밀 [1] | 타오 한정화 | 2014.06.03 | 1982 |
4098 |
버림의 미학 ![]() | 미나 | 2014.06.03 | 2514 |
4097 | 그래 마음껏 바닥을 쳐보자 [6] | 녕이~ | 2014.06.02 | 1864 |
4096 | 짬뽕은 역사다 [8] | 종종 | 2014.06.02 | 3768 |
4095 | 우티스(Outis) [5] | 에움길~ | 2014.06.02 | 2359 |
4094 | #8 내안의 미노타우르스 - 이동희 [5] | 희동이 | 2014.06.02 | 2053 |
4093 | 영혼의 가압장을 찾아_찰나칼럼#8 [10] | 찰나 | 2014.06.02 | 2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