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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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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8일 15시 13분 등록

실천하지 못하는 앎은 그것이 쓰여 진 종이보다 가치가 없다.

2014. 6. 8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_버트런드 러셀”




#1. 작은 실천


이 양반! 존경하기로 했다.


늦은 밤(2014. 6. 6. 23:00경) 수행도 없이 아내와 조카만 데리고 조용히 진도체육관엘 다녀갔다고 한다. 직접 사온 수박과 부인이 만든 레몬 청을 두고 갔단다. 출마선언 하루 전에도 조용히 다녀가더니 이번엔 그때보다 더 조용히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올라간 모양이다.


행동이 말에 닿으려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오랫동안 정직한 사람으로 머물게 하지는 못하게 마련인 정치판에 발을 담그고서도 내면의 소리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성찰이 깊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읽어 도닥일 수 있는 공감 능력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대변하는 것이다. 


‘살려 달라’고 뽑아놨더니 오히려 ‘구해 달라’고 구걸하던 너희들은 지금 다들 어디 있느냐? 

가슴에 주먹만한 리본 달고 거리를 누비며 “잊지 않겠다. 찍어만 줘라.”고 발광을 하던 너희들 지금 어디 있느냐?


응답하라 6월 4일!





#2. 삶에서 삶을 찾으라.


한 인간의 생에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이다. 여기서 중심은 언제나 삶이여야 한다. 삶일 수밖에 없다. 태어나고 죽는 문제는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람마다 차별적인 것도 아니어서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삶만이 태어남과 죽음을 특별하게 하고, 삶만이 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한다. 누구나 삶을 살지만 의미와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지 죽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근대 철학의 빛나는 별 데카르트에게도 빵은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그 빵 때문에 병을 얻어 죽었다. 북구의 땅 스칸디나비아에서 여왕의 개인교습을 위해서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철학을 가르쳐야 했다. 스웨덴의 추운 겨울 한밤중에 일어나야 하는 철학과 전혀 무관한 이 의무는 데카르트가 이겨 낼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일이었던 모양이다. 데카르트는 이로 인해 병을 얻어 1650년 2월에 죽었다. 빵을 위해 살았으나 빵 때문에 죽었다. 김빠지는 죽음이다.


가장 뛰어난 인본주의 학자들 가운데 한명인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신념에 따라서 죽었기 때문이다. 왕비의 대관식 참여를 거부해서 왕의 눈 밖에 나더니 왕을 교회의 수반으로 세우는 수장령이 선포되었을 때 선서를 거절함으로 해서 처형당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닮아있어 제법 극적이다.


죽음에 우열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데카르트의 죽음은 허망하다. 그도 소크라테스나 모어처럼 죽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칸트처럼 화려한 축복 속에 죽고 싶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걱정과 논의는 참으로 무미건조하다. 죽음이란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힘써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삶에서 삶을 찾는 것’ 말고는 없다. 러셀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이지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3. 실천하는 삶.


공자는 군자의 삶을 ‘仁을 행하는 삶’이라고 했으며 그 방법으로 ‘好學’을 말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학문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망령된 것’이니 실천하지 않는 배움은 공허하다. 이렇듯 공부란 실천을 전제하는 것이다. 

연구원이 되면서 깊이 있는 공부에는 아직 닿을 수 없으나 엉덩이에 굳은살이 베이는 훈련은 족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저간에 책을 좋아하고 다독의 즐거움을 몰랐던바 아니었으나 매일 읽고 계속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연구원의 수련방식 덕분에 시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훈련으로 ‘好學’의 태도가 더 충실해졌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이 공부가 ‘실천’에 닿을 수 있는지, 닿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늘 마감일에 쫓기는 얄팍한 날들이 ‘好學’에 닿기나 할 수 있을지 의심하였다. 분연하던 의지는 이제 시험에 든 모양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소크라테스, 상류 사회의 생활과 배경을 내던지고 평민의 소박한 삶을 영위하였던 안티스테네스, 세상의 지배자 황제의 면전에서 햇볕이나 가리지 말라던 디오게네스,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처형당한 토마스 모어,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외쳤던(속으로) 갈릴레오, 생계를 위해 렌즈 갈아주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 자리를 거부한 스피노자,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위해 기꺼이 검소한 생활을 선택한 데이비드 흄, 그리스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그리스 서해안의 미쏘롱기 습지에서 죽은 바이런,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 92세의 노구에도 참여를 멈추지 않았던 버트런드 러셀, 이들의 삶에서 ‘好學’의 언저리를 더듬어 본다.


서양의 배들은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대서양의 해안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에게 세상은 대서양이 모두였다. 어느 날 이들은 갈 곳을 정하고 아득한 대양으로 나아갔다. 이때까지 아무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수천 년 동안 쌓여 온 매너리즘을 버리고 고통과 위험을 향해 내달았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시시하기 짝이 없는 시도일지 모르지만 당시 그들에겐 모든 것을 던진 모험이었을 것이다. 변화와 혁신은 기존 질서에 대한 질문과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반드시 물러서지 않는 실천으로 가능하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다. 


책만 파는 그대들!

이제 발을 떼라. 그리고 그 발을 들어 앞으로 한 발짝 내 디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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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 22:49:08 *.113.77.122

데카상스에서 제일 먼저 한발 내딛으신것 같아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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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1:01:48 *.118.233.77
부담스럽게...ㅎㅎㅎ
고맙심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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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0:09:08 *.223.16.171

데카르트에 대한 변명: 데카르트는 독신으로 산 분이고 워낙에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약한 파스칼에게 자기처럼 늦게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권장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분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으니 그 고통이 컸겠죠. 크리스티나 여왕이 특별히 배를 보내서 불렀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려웠지 않았을 까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Si faller sum"을 "Cogito ergo sum"으로 바꾼 근대 철학의 아버지시지만 어거스틴의 말처럼 실수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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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1:03:32 *.118.233.77
늘 탁월한 식견에 감탄하던 차였습니다. 가난한 글에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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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3:19:37 *.223.16.171

주제넘게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데카르트를 예전부터 좋아했었기 때문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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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3:33:08 *.118.233.77
별 말씀을요. 앞으로도 종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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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2:30:38 *.94.41.89

마르셀님이 오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전 책도 제대로 못파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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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3:33:44 *.118.233.77
대신 행하시잖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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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3:21:10 *.196.54.42

늘 실천이 문젭니다, 한 꼭지 읽었으면 바로 정리하자 하지만 쉬운것부터 손이 가서 한 권을 다 읽도록 글 한줄 못쓰고...

내겐 작은 실천이 문제임다^^


피울님의 다독과, 기억력, 적재적소에 끌어오기... 부럽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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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3:34:46 *.118.233.77
독백입니다. 저도 그 사이 메너리즘 + 의지박약 입니다. ^^

위티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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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0:16:46 *.218.180.22

빵을 구하기 위해 살다가 빵때문에 죽는 삶은 현대인에게 고스란히 답습이 되었군요.


토마스 모어에 대해 이름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러셀 덕분에 존경의 시각이 생겨 좋아요.


엉덩이...저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연구원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

실천...저도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 의지와 성실성이 항상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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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11:54:02 *.104.9.216
이미 커더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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