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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04시 13분 등록

서양의 지혜_구달리뷰#9 (2014.6. 9)

B. 러셀 지음

이명숙, 곽강제 옮김

서광사

 

1. 저자에 대하여

 

Bertrand Russell (1872~1970)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사랑에 대한 갈망지식에 대한 탐구욕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러셀의 자서전 첫 문장이다. 러셀은 98세에 죽었다. 2년 부족한 한 세기를 살았다저 문장을 마지막 3년간 써낸 자서전에서 3권 분량으로 풀고 있다그는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그의 마지막 결혼은 심지어 80세가 넘어 이루어졌다

 

철저한 자기관리

 

러셀은 철저한 시간관리로 스스로에 엄격했다. 그는 부모와 가문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엄하게 자기관리를 했다. 러셀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편지를 주고 받은 이들은 톨스토이, 네루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그가 받은 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면 오전 8시부터 11 30분까지는 신문을 읽고, 편지를 썼으며, 11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는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을 만나거나 인터뷰를 했으며, 2시부터 4시까지는 독서를 하였고, 그 후로 7시까지는 글을 쓰거나 저녁모임을 가진 후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글을 쓰며 하루를 마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일 거의 고칠 것이 없는 글을 3,000 단어 이상씩 썼다. 그리고 90살이 넘어서도 이 일과표대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하니 대단한 자기관리 의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에의 갈망

 

오랜 세월을 두고

나는 평온을 찾아 애썼노라

환희를 맛보았고, 고뇌도 겪었노라.

광기와 마주쳤고,

외로움에 떨었노라.

심장을 갉아먹는 고독의 아픔도 알았노라

그러나 끝내 평온은 찾지 못하였노라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노라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네 번째 부인 이디스에게 바친 헌사다. 98세에 죽은 러셀이 95년부터 쓰기 시작한 자서전에 나온다. 그녀는 그 때 쉰 살이었다.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었는데 결국 성공 했나 보다. 다행이다. 사랑을 품은 채,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죽을 수 있다니 행복한 사람이다. 

 

러셀은 자신이 사랑을 갈망한 이유가 외롭지 않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앨리스, 도라, 페트리샤, 이디스와 결혼했다. 앨리스는 5살 연상의 이웃집 누나였다. 

할머니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해서 손을 써서 그를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 직원으로 발령냈지만 그는 돌아와 그녀와 결혼했다. 22살 때였다. 유전적 질환을 걱정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결혼을 했다. 39살에 별거를 시작해서 49살에 이혼했다. 

 

그가 49살에 결혼했던 도라는 그에게 존과 케이트를 낳아주었고 같이 비건힐스쿨을 경영했다. 학교경영 과정에 생긴 의견차이로 1935년에 이혼한 후에도 1939년까지 도라는 이 학교 일에 관여했다. 

 

페트리샤는 그의 조수(비서)였던 여자였고, 1936 64살에 결혼해서 다음해에 둘째 아들 콘래드를 낳았다. 이들은 시칠리아 여행을 같이 갔다가 따로 귀국했다. 76살에 이혼했다.

 

이디스는 평전을 쓰던 작가였고 그와 마찬가지로 애연가였다. 그는 22, 49, 64, 80살에 결혼했고 대부분 10년 이상 함께 살았다.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뜨겁게 ‘낭만적 사랑’을 즐겼고,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한 러셀. 때론 도덕을 뛰어넘고 때론 넘어설 수 없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성, 사랑, 결혼’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깨고자 자신을 내던졌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고스란히 담아서 책, <Marriage and Morals>를 쓴다. 그는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이지 않는 성, 사랑, 결혼의 방정식을 찾고자 노력했다. 호색가, 위선자, 편협한 사람이라는 세상의 질타와 비난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는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식에 대한 탐구욕

 

그는 엄청나게 긴 저서 목록을 남겼다수학철학 책을 줄줄이 생산했다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지식에 대한 탐구욕은 끝을 보았다

 

캐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수학에 대한 논문으로 봉인을 뗀 후부터 죽을 때까지 거의 책을 내거나 논문을 썼다. 그는 요절한 천재가 아니어서 타이핑하기에도 팔이 아플 만큼 매년 만들어냈다. 4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거치는 등 복잡한 그의 개인사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의 저술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투옥되어 있을 때, 일주일에 올 수 있는 접견인이 3명이어서 그들 사이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지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명단을 짜느라 즐거워했고 그 기간에 두 권의 책을 썼다. 미국에 가서 대학에서의 강연이 취소되었을 때에 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철학사>를 썼다. 강건한 사람이다. 

 

관심사가 처음에는 수학에서 출발해서 논리학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결혼과 가족 같은 일상 철학으로, 볼세비즘과 반전 반핵 세계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학자로서의 이력이 해걸이가 없는 저술 이력에 드러난다. 

 

그의 저서 목록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아흔 넘어 낸 단편소설집 두 권이다. 그 안에는 그가 쓴 추리소설도 있다. 그는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단다. 재미있는 사람인 듯 하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유쾌하고 진지한 눈빛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사랑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활동하는 그는 영원한 청춘이었다.

 

인류의 고통에의 연민

 

1970 2 2, 98세의 나이로 그가 죽는다. 그러나 그 다음날 카이로에서는, ‘중동의 위기’에 대한 그의 성명이 세상에 낭독된다. 사회변혁과 평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죽는 날까지 현역이었다.

 

러셀은 왕성한 집필활동과 강연, 사회운동 등을 펼치며 아흔이 넘어서까지 철학자, 교육자, 문학가 그리고 반전 평화운동가로 살았는데요. 1950년대에는 핵 철폐 운동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을 비판하는 러셀 민간 법정을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94세의 나이에도 핵무기 반대 운동에 앞장 섰다가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러셀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이 무능하게 행동하는 것은, 성격이 우유부단함에 있다. 망설이는 것보다 실패가 낫다.  망설이지 말고 한발 나아가라는 뜻일 게다. 94세 나이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감옥까지 간 러셀.

 

러셀의 세상 변혁에 대한 갈망과 용기, 그리고 행동하는 실천력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자신에게 진실하고 당당하게 살았던 러셀. 그의 주변에는 늘 상처와 공격이 따라 다니지만, 세상이 보다 온정적인 곳이 되기를 열렬히 소망하고 행동한 진정성이 살아있는 지성인이었다.  

 

2. 내가 저자라면

 

전체적 구성

저자는 서양 철학자 탈레스에서 시작해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삽화와 사진 등을 함께 실으며 서양철학사를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 책을 쓴 목적을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철학을 했는지 보여주기 위함이라 했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개성 있는 관점에서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감해야 가치 있는 역사책이 씌어질 수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1945년에 자신이 쓴 ‘서양철학사’를 재음미하여 십 년 뒤인 1959‘서양의 지혜’라는 이름으로 다시 책을 내 놓는다. ‘서양의 지혜’는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의 전체적인 맥락을 꿰뚫으며 큰 흐름을 설명한다. 그리고 철학적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해설과 더불어 논평을 덧붙였다. 철학사를 여러 사람이 집필할 경우 일관된 관점과 흐름을 갖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한 사람이 집필을 할 경우 깊이를 갖기 힘들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고민했다. 저자는 후자를 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를 잃지 않았다.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철학사를 굵직한 10개의 기둥으로 세우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흐름, 철학자의 삶과 사상에 대한 요약과 비평, 후대에 미친 영향 등 다양한 각도에서 철학자와 철학사를 조망하였다. 이 책의 강점은 저자가 취한 철학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그런 관점을 취하면서도 철학사의 굵은 흐름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점과 보완점

 

그림과 여백이 많은 게 좋았다. 그 그림들은 해당 철학자와 관련된 그림이나 동상, 또는 저서의 첫 페이지거나 수학적 기호로 본문을 요약한 것이거나 했다.  그림은 본문 이해를 도우면서 철학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허황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희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찾는데 전문적인 식견과 공이 드는 고급정보였다. 일종의 시각교육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양사 연표, 철학자 연표, 당시의 지도가 함께 제시 되었더라면 서양사와 서양의 지리를 잘 모르는 동양의 독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양의 지혜를 좀 더 부드럽고 매끄럽게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감상

 

러셀은 재기발랄하고 기지에 찬 사람이다. 특유의 짧고 명징하고 힘있고, 재기가 넘치는 문장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번역의 문제인지, 철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가 쓴 책 치고는 참 딱딱하고 재미없다.

 

<러셀 자서전>이나 <행복의 정복>을 먼저 읽고 <서양의 지혜>를 읽었다면 보다 폭넓게 이해하면서 그런대로 재미를 붙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시대와 더불어 키워드 분석도 해봄 직 할 것이다. 고대는 자연, 중세는 신, 근대는 인간, 현대는 언어가 주요 키워드였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몸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공부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책을 기준으로 선구자의 생각을 비판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물러나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적, 사색적 방법이다. 물러나 바라보다 보면 결국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질문에 철학자가 해답을 줄 수도 있다.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배우게 된다.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쓰고자 하는 이유도 매일 배우기 위함이다. 제대로 배우고, 그렇게 배운 것을 글로 쓰고, 그것을 한데 모으고 엮어 책을 쓴다. 이것은 내가 철학하는 방법이고, 또한 삶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절 또는 장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한 교육과 자립, 그리고 스승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자립적인 능력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방향을 잡아줄 스승의 중요성을 언급한 부분이 감동적이다.

 

102

자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 이 능력을 반드시 스스로의 노력과 이 노력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의 도움에 의해서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103

교육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105

교육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혼을 치료하는 일이다.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책을 쓴 목적과 방법에 대해서 쓴 저자의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있는 글이 이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1

이 책의 목적은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서양 철학의 개설과 아울러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역사적 상황을 상기시켜 주는 몇 가지 일들을 말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 설명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서 인물과 장소와 문서의 삽화를 모아서 같이 실었는데 가능한 한 이에 해당하는 시대의 자료에서 고른 거이다. 또 설명에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시도를 했는데,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흔히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철학 사상’이라는 것을 번역해서 도형으로 만들고 기하학적인 은유를 사용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도형에 의한 설명은 잘 할 수만 있다면 특수한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이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12

철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는 철학사가 전적으로 해설적이어서, 이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저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설에 어느 정도의 비판을 더해서, 철학상의 논의가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575 

비전문가에게, 아니 학자에게도 때로는 방관하는 태도로 전체를 훑어보는 것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개관이 필요하고, 특히 단 한 사람의 생각을 통한 개관이 필요하다.

 

3.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옮긴이의 말

 

7

모든 학문의 모태이자 핵인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지혜로운 판단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적 자유와 자립을 확보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 주인 되는 삶에서 철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글이다.

 

지은이의 말

 

8-9. 러셀이 서양철학사를 내 놓은 이유
첫째는 철학사의 내용들을 감명 하게 집약하면서 전반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기 위해
둘째는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전문적 지식으로 치닫는 경향에 휘말려 지적 유산을 남겨준 선조들에게 진 빚을 잊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철학사를 쓰는 목적은 그런 건망증에 빠진 사람 되게 기억을 되살려 놓으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을 상당히 자세히 다룬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변명도 할 필요가 없겠다. 해설과 더불어 논평을 하면서 서술하는 방식을 썼다. 결국 어떤 철학자가 얼마나 깊고 넓은 통찰에 도달했는가는 누구나 스스로 판정해야 할 문제이다. 중요한 철학적 물음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10
과학은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12
철학은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 하는 탐험 여행처럼 오직 알고 싶어서 시도하는 지적 모험이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 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 왔는가를 보여주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셈이다.

 

14. 철학이 다루어야 할 물음
인생의 정말 뭔가 의미가 있다면 대체 그 인생의 의미라고는 건 무엇인가? 또 이 세계는 어떤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좋은 방식과 나쁜 방식이 있는가?

 

=> 이런 류의 물음은 참으로 어렵지만 우리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하고 근원적인 물음이다.

 

15
철학사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이 있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철학을 했던 사람들 자체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16
철학과 과학은 누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 사람들이 창조하였다. 이 사람들은 2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예술, 문학, 과학, 철학의 분야에서 후세에 일반적 표준으로 통한 경탄할만한 걸작을 연이어 쏟아 놓았다. 철학과 과학은 기원전 6세기 초에 활동했던 밀레토스의 탈레스(640-546 BC) 에 의해 시작되었다.

 

20
그리스 정신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마구 날뛰는 본능적인 다른 면이 있다. 전자는 철학과 예술과 과학을 일으켰다. 후자는 생산력을 숭배하는 의식에서 연유하는 매우 원시적인 종교로 나타나고 있다.

 

이 본능적인 요소가 트라키아 지방의 신이었던 디오니소스, 즉 박카스 신의 숭배와 제휴 했던 것이다. 이 원시적인 야만성을 근원적으로 순화시키는 감화력을 발휘한 사람이 바로 전설적 인물인 올페우스인데, 그는 술과 야수성에 도취한 박카스교의 여자 사제 들에 의해 온몸이 갈갈이 찢겨져 죽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오르페우스의 교리는 금욕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정신적 황홀의 경지를 강조한다. 올페우스는 이를 통해 열광적인 열중, 즉 신과의 합일의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다른 방도로서는 찾을 수 없는 신비로운 지식에 도달하기를 바랬다. 이처럼 순화되고 품위를 갖춘 올페우스교는 그리스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 첫 번째 영향은 피타고라스에게 나타나는데 피타고라스는 올페우스교를 받아 들여 자신의 신비 철학과 조화시켰다. 이 이후로 올페우스교의 여러가지 요소가 플라톤의 철학과 대부분의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의 철학 가운데 순수하게 학문적인 내용이라 인정 할 수 없는 부분에 흘러 들어갔다.

 

=> 사람은 물론 동식물 조차도 음악으로 생기를 불어 넣은 사람이 바로 올페우스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이런 올페우스가 하나의 종교의 창시자가 될 정도였으니 그리스 철학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할 것이다.

 

21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본질은 카타르시스, 즉 감정을 정화 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 건 정곡을 찌른 말이다. 어쨌든 그리스 정신이 이 세계를 단호하게 변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정신의 이 양면성 덕분이다. 니체는 그리스 정신의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라고 불렀다. 이두 요소 중의 어느 하나만으로 그리스 문화의 엄청난 폭발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 철학 전체를 지도하면서 이끌고 있는 생각은 로고스 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다른 무엇보다도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2
질서라는 생각은 이 사회 조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이다. 그래서 질서 하면 다른 어떤 질서보다도 앞서는 것이 사회적 질서이다.

 

24
이원론들에 관한 물음은 대체로 존재론, 즉 존재에 관한 이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이 전혀 확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그리스 철학 만이 지닌 매우 돋보이는 특징들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철학의 영역들이 벽을 허물어 하나의 체계로 통합 하는 방식에 있다.

 

26
물의 주성분인 수소가 그 밖의 모든 원소를 합성해 낼 수 있는 화학 원소라고 주장한 학자들이 있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물질이 실은 한가지 물질로 만들어진다는 견해는 참으로 훌륭한 과학적 가설이다. 지구는 물이 농축된 한 형태로 설명될 것이다. 하나의 물질, 즉 한가지 실체가 여러 가지 상태의 다른 물체 속에서 똑같이 유지 되고 있다는 가설을 발견한 사실만큼은 여전히 훌륭한 업적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근본 물질을 비유컨데 사방팔방으로 무한히 물질의 재료를 제공하고 회수하는 무한한 기금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무한자라고 주장 하였다. 따라서 이 세계는 이 무한자로부터 생겨나고 결국에는 이 무한자로 되돌아 갈 것이다.

 

29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30
그리스 사람들은 종교생활은 대체로 각양각색의 도시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관습들과 결합되어 있었다.

 

31
철학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는 새로운 철학 정신의 선구자는 사모스 태생의 피타고라스(582-500 BC) 였다. 그의 생존연대와 생애의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2

인생을 학문적 지식에 의해 살아간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심성을 순화하는 데 사용했던 강력한 수단은 음악이다.

 

33

그래도 현의 길이를 조절하여 조화로운 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피타고라스 이후로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숫적 구조를 알아내야 한다. 이 생각은 학문(과학)에 대한 현대적인 견해가 지니고 있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34. 밀레토스학파와 피타고라스의 차이

밀레토스의 사람들에게 철학은 실천적, 철학자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에 반해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은 세계에 대한 초연한 관조다. 올림픽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에게 세 부류가 있듯이, 사회인도 마찬가지다. 최하위층에는 물건을 매매하는 상인,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 이들이 철학자에 해당한다. 철학적인 생활방식이야말로 존재의 우연성을 초월하는 희망을 주는 것으로, 윤회의 우연에서 도피하는 길을 제공한다.

 

37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의 세계는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의 균형잡힌 조정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전개했는데 바로 이점이 그가 철학에 남긴 괄목할 만한 발견이자 기여이다.

 

39

선과 악은 하나이다. 이 말의 뜻이 선과 악은 그게 그것이라고 동일시해야 한다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이와 반대로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악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선의 개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요컨대 산비탈을 없애 버림으로써 오르막길을 없앤다면 그와 동시에 내리막길도 없어져 버리는 법이다. 선과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말일 것이다.

 

43. 젖은 영혼과 마른 영혼

젖은 영혼은 시드는데 술 취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건조한 영혼은 더없이 지혜가 넘치고 더없이 뛰어나다.

 

45. 실체

유물주의자들이 모든 사물이 그것으로 만들어진다고 여기고 있는 변화할 수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근본 재료이다.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불변의 기본 입자라는 생각을 받아들였고, 헤라클레이토로 부터는 끊임없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인류의 지성이 이처럼 양극으로 대립하는 두 입장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어떤 식의 종합이다.

 

=> 만물의 근거가 되는 것을 각 철학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피타고라스는 수와 질서. 철학하는 방법으로 소크라테스는 꼬리에 꼬리에 물고 질문하기.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

 

49-50.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감옥이 운동장과 다른 것만큼이나 아테나와 달랐다. 더 나아가 이 두 도시국가는 코린트나 테베와도 달랐다. 도시 전체가 군대의 병영과 같았으며, 교육의 목적은 전적으로 잘 훈련된 군인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병적일 정도로 감상적인 면이 없는 국민이었다. 개인 감정의 노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남자아이는 부모와 떨어져 군대 막사 같은 곳에서 양육되었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의 상당히 많은 내용이 스파르타에 감동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 개인의 인간성은 전혀 무시되고 국가의 도구인 전사로 양육되는 스파르타가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의 모델이었다니 섬뜩하다. 그 시대는 그만큼 국가의 생존이 시급한 문제인 듯 하기도 하다.

 

51

엠페도클레스는 기본적 세가지 물질 위에 제 4의 물질을 첨가했다. 이는 사물의 ‘뿌리’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에 이들을 원소라고 했다. 4원소는 물, , 공기, 흙으로 구성되어 약 2천년 동안 화학을 지배했다. 습기와 건조 및 열기와 냉기의 바탕이 된다.

 

52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갈등 원리의 기능은 결합하고 분리하는 것이다. 그는 공기를 ‘에테르’라고 불렀다.

 

=> 여기서 에테르는 사랑과 갈등 원리가 작동하는 장이 된다.

 

56. 코린트

코린트는 지협(두 개의 육지를 연결하는 좁고 잘록한 땅)에 자리하여 무역과 상업이 번성해서 유흥장으로 유명했다. 코린트는 모든 그리스 식민지 중에서 가장 큰 수도 중 하나이며, 시칠리아섬에 있는 시라쿠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57. 페니키아는 해상 왕국

시칠리아 섬의 그리스인들은 카르타고의 강력한 페니키아의 도시와 인접해 있었다. 카르타고인들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그리스 침입에 호응하여 기원전 480년에 이 섬을 유린하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시라쿠사의 막대한 자원과 전제 군주 게라의 탁월한 지휘력은 이 시도를 영원히 좌절시켰는데, 본토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 에게 정복당할 위험을 영원히 막은 것과 같았다.

기원전 5세기 동안에 아테네인이 코린트를 차차 잠식한 것이 분명히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화점이 되었지만, 아테네를 항복시킨 것은 처참한 시라쿠사 전투였다.

 

58. 그리스 식민지

그리스 토양은 대규모 경작을 하기에 토양이 척박했다. 그래서 인구가 팽창하자 흑해 연안에서 곡물을 수입했다. 이곳에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그리스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그리스는 올리브유와 도기를 수출했다.

 

58

아시아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법률이 지배자의 권리를 뒷받침하는 데 반해 그리스인들은 법이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법률이 시대에 부합되지 않으면, 대중의 합의로 이를 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률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 복종해야 했다. 준법 정신의 고전적인 예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의 사형 선고를 받고 도망갈 것을 제의 받았을 때, 이를 거절한 데서 여실히 나타나 있다.

 

59. 그리스가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에 정복당한 이유

도시에 따라 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도시간의 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권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내부의 질투와 분열적 개인주의 때문에 국민적 안정은 어림도 없었다.

 

59. 아폴로는 빛과 이성의 힘을 상징

아폴로는 암흑을 상징하는 신화적 파행 동물 피톤을 퇴치, 사람들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델포이에 신전을 세웠다. 아폴로의 숭배에는 정화 의식과 결부된 윤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아폴로신은 피톤에 승리할 때의 독기를 씻어야 했고, 이제 신은 피로 더럽혀진 인간들에게도 희망을 약속했다.

 

=> 아폴로는 그리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신으로 그리스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61. 문화

B.C 5세기경 철학, 예술, 문학에서 지적인 실험과 발명이 비약적 발전을 한다.

“불가사의한 것은 많이 있으나, 인간 이상의 불가사의는 없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안티고네>

그리스 문명은 전국에 걸쳐 참다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헬라스의 땅을 정복한 모든 민족을 정복했고 오늘날까지 서양 문명의 뼈대가 되어 남아 있다.

 

=> 서양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문명의 근원인 헬레니즘과 기독교이다.

 

62-65. 아낙사고라스

아테네 최초의 철학자이다. 불경죄- 기성의식에 가치에 대한 반발은 국가 권위에 저촉되기 때문-로 재판을 받았는데, 그의 친구 페리클레스가 그를 감옥에서 빼내어 도망치게 했다. 람프사코스에서 살면서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다. 철학자의 죽음을 기념하여 해마다 휴일로 지킨 예는 역사상 아낙사고라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분할된 것이 아니며, 손도끼로 서로 절단한 것도 아니다”

“모든 사물에는 누스 이외의 모든 것의 일부가 들어 있고, 일부에는 누스를 가진 것도 몇 개가 있다” ‘누스nous’는 즉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갈등에 대체되는 적극적인 원리다. ‘누스’는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실체와는 다르다. 사물을 움직이는 것은 ‘누스’이며, ‘누스’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생물과 무생물로 나눈다.

 

66. 피타고라스학파

기원전 510년에 크로톤에서 추방된 까닭은 아마도 정치에 간섭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들이 비판적인 의견을 말할 경우, 직업정치의 어두운 수면을 휘젓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결국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받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68. 영혼과 육체의 조화

후기 피타고라스학파 -영혼에도 조화의 개념을 적용시켰다- 따르면 영혼은 육체의 하나의 조화이며 영혼은 육체의 잘 정돈된 상태의 함수이다. 육체의 조직이 무너지면 육체는 분해되고 영혼도 분해된다. 우리는 영혼을 악기의 현으로 보고 육체를 현으로 둘러싸인 몸통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몸통이 부서지면, 현은 느슨해지고 조율된 음을 잃는다.

  

79

원자가 보통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이제 그 생성 또는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세계가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것은 원자의 재배열 때문이다.

 

=> 원자가 영원히 운동을 한다는 생각은 평평한 지표에 안개가 진하게 끼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햇빛 속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관찰하면서 암시 받았을 것이다.

 

83. 궤변론자, 소피스트

궤변론자들은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지식은 시시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의견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그 어떤 진리가 있다. 실제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성공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소크라테스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궤변론자들이 견실한 습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소크라테스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자기 성찰이 없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스피스트들은 문학교육과 연설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수사학 교사들. 집회에서 문제를 다루는 정치학 교수, 불리한 주장을 유리해 보이게 할 수 있는 논쟁을 가르치는 사람들. 논점을 왜곡하는 법, 역설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2장 아테네

 

88.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가장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들

 

91-97. 소크라테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곧잘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갑자기 아무데서 멈추어 서고, 때로는 계속해서 몇 시간이고 사색에 잠겼다. 동시에 그는 몸이 튼튼했다.

 

그는 갑자기 아무데서 멈추어 서고 때로는 계속해서 몇 시간이고 사색에 잠겼다.

전쟁 때나 평상시에나 소크라테스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흉한 꼴을 하고 있었고, 몸을 치장하는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고리는 너덜너덜하고, 구겨지고, 늘 맨발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그는 절제했고, 육체에 대한 놀랄 만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막상 마시게 되면 동료들이 모두 취해서 쓰러져도 그만은 비틀거리지 않고 마실 수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과학적 사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선’이었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에서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눈에 잘 띄는데, 우리는 거기서도 그가 윤리 용어를 정의하는 데 고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르미데스>에서는 중용이란 무엇인가, <라케스>에서 ‘우정’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들 의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이들 의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을 구하려는 일이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알고만 있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을 저지르는 원인은 단 한 가지 무지에 있다. 그러므로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선’은 지식이다. ‘선’과 지식의 연관성을 줄곧 그리스 사상의 특징이었다. 기독교 윤리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인데, 이것은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으며 아는 것은 무한한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우리가 이런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마음 속에서 우러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융은 우리가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무한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 카를 융-

 

소크라테스는 위험한 고발자 무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인으로서 천상의 일에 대해 사색을 하고, 아래로는 자신에 대해 탐구를 했으며, 하찮은 주장을 대단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인물들이다”

 

결국, 그는 신탁의 뜻을 이해했다.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 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이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향해 자기의 의무는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자기를 인도하는 마음 속의 소리에 대해 언급한다. 내면의 소리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금지는 해도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97.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철학의 독보적인 이유

1. 그들에게 전해진 개념을 발전시키고 명확히 했다.

2. 각 시대의 사람들의 상상력에 영향을 끼쳤다.

서양에서 사변적인 추리가 번창했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 그림자가 배경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3. 철학사에 대한 그들의 공헌은 아마도 고금의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실질적이었다. 그들의 가치와 관련해서 말하지 않았던 철학적 문제는 거의 없고, 오늘날 아테네 철학을 무시하면서 독창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탐구해야 한다.

 

98. 플라톤

시인으로 촉망받고 정치 분야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기대는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갑자기 꺾이고 말았다. 이 무서운 정치적 음모와 원한은 이 젊은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정당 정치의 틀 안에서는 자신의 독립심과 성실함을 오래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그 후 플라톤은 마침내 철학에 헌신하게 된다.

학술의 터전은 아테네 서북 약간 떨어진 숲 속에 건립되었다. 이 땅은 전설의 영웅 아데모스의 이름과 관련 ‘아키데미’라 불렀다. 플라톤이 여행 중에 피타고라스학파와 교제를 해서 이 조직을 본땄다. 아카데미는 중세 이후에 발달한 대학의 시초이다. 아카데미는 학교로써 900년 이상이나 유지되었다. 529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카데미를 페쇄했다. 이유는 그리스도교 교리가 고전적 전통의 부활로 위기를 맞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와 깊이 관련이 있으므로 당연히 수학이 크게 강조되었다. 올바른 과제는 학생에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을 붙이게 해서 모든 문제와 관련된 규범과 기준을 이해 시키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이성의 빛에 비추어, 혼자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일이었다.

 

=> 아카데미아의 기원이 되었다. 이 교육 과정의 목적은 경험 세계의 현상에서 배후에 가로놓인 불변의 틀로, 생성에서 존재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만들어진 것에서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었다.

 

 100. 플라톤의 교육방식

초기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학생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젊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가서 거의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아카데미에 출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에 따르면, 선생은 노트를 준비하지 않고 강의했다고 한다. 세미나나 토론 그룹에서 학생이 풀도록 문제만을 제시한 것이 상례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05-106.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철학자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 ‘진리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미술 수집가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라 할 수 없다. 철학자는 미 자체를 사랑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꿈을 꾸고 있으므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눈이 깨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함게 해석해서 자기의 ‘이데아’ 또는 ‘형상’의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이 이론은 초기의 두 사상가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다. 그리스어의 ‘이데아’는 ‘그림’이나 ‘형상’이라는 뜻이다.

 

107

우리가 철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림자, 즉 사물의 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자라면 이성과 진리라는 햇빛이 비치는 바깥쪽의 물체를 보게 된다. 이것이 실재이다. 우리에게 진리와 아는 힘을 주는 이 빛은 선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114

모든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정의를 이루게 된다. 저마다 남의 일에 쓸데없는 참견을 하지 않고, 저기의 지위에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스어로 ‘정의’는 조화의 개념, 즉 각 부분이 올바른 기능을 발휘해야만 전체가 원활하게 작용한다는 개념과 결부된다.

 

그리스어로 ‘정의’는 조화의 개념, 즉 각 부분이 올바른 기능을 발휘해야만 전체가 원활하게 작용한다는 개념과 결부된다.

 

124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물질과 실체를 혼동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실체란 성질들을 실어 나르면서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129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세에 권위로 군림하게 된 결과 삼단논증은 2천여 년이나 줄곧 논리학자들에 의해 논증의 유일한 유형으로 인정 받아 왔다.

 

140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이성능력, 감각능력, 영양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세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며, 동물은 두 가지 능력, 식물은 한 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163

능동적 쾌락은 우리가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원동력으로 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체험하게 된다. 일단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어떤 욕구도 없을 때 수동적 쾌락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수동적 쾌락은 포만의 상태에서 느끼는 취한 듯 열중한 상태이다.

 

165

신들은 인간에게 상을 주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요컨대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극치이자 최고의 선이기도 한 고요한 평정 상태의 유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절도있는 인생 행로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의무라고 보고 있다.

 

=> 덜 소유함으로써, 즉 필요만큼 소유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에피쿠로스 학파가 주장하는 쾌락주의의 기본사상이었다. 방탕하게 사는 것이 쾌락주의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의 오류를 확인하다.

 

167

그러나 스토아 철학이 정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목은 어떤 의미에서 덕이라는 내면적인 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본 사실이다. 물질적 재산의 손실은 언제라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존심을 잃는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인간의 정신이 사물들 전체의 필연성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실은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인 이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이 최선의 상태로 정돈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난점을 타개하려고 했다.

 

170

명상록은 군사적 임무와 공적 직무 중 간신히 얻은 휴식 시간에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적어 둔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일기다자연권은 인간의 본성 바로 그것으로 인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성질의 권리를 뜻한다.

 

175

서방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에 관해 갖게 된 지식의 많은 부분을 아랍 사람들 덕분으로 돌려야 하는데, 회교 사상가들이 그리스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특히 스페인을 통해서 서부 유럽에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176

신플라톤주의 고대에서 중세로 건너가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고대 철학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거기로부터 중세 사상이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의 삼위일체론

1. 유일자, 그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은 존재한다'라는 말일 뿐이다.

2. 누스, 유일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과 같다. 그렇다면 누스는 유일자가 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햇빛이다.

3. 영혼내면과 외면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영혼은 그 내면에 있어서는 누스를 향하여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영혼이 외면을 드러낼 때에는 감각의 세계로 하강하게 되는데, 실은 영혼 자신이 이 감각의 세계의 창조자이다.

 

179

그리스 사람들은 고대 때부터 경이로운 것과 경탄스러운 것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이 능력을 비상할 정도로 갖추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탐구와 연구라는 일반적 생각은 서방 세계의 골격을 마련해 놓은 그리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발명품들 중의 하나이다. 신비주의는 실은 탐구 그 자체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신비주의는 오히려 탐구하는 사람의 윤리를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아야 훨씬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신비주의는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180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가들이 적절한 정치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 실패한 사실이 한 원인이었다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그리스 사람들의 실패가 탁월한 지적인 힘에서 비롯된 어떤 오만 탓이었다면, 로마 사람들은 순전히 상상력의 결핍 때문에 실패했다.

 

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방식이다.

 

4. 초기 기독교 철학

 

186

가톨릭 철학은 주로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첫 번째 성숙기를 맞았다. 가톨릭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초로 삼고 기독교의 교리를 합리화시켰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했다.

=> (플라톤)아우구스티누스 -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아퀴나스

 

195

세상의 복종을 요구하는 신의 명령의 전달 매체인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요구를 간파할 수 있다.

 

197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수란 소년 시절에 순전히 장난스런 기분으로 이웃집 정원에 있는 배나무의 배들을 따먹은 것으로 실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198

아우구스티누스의 근본적 목적 성서의 가르침과 플라톤 학파의 철학적 유산을 조화시키는 데 있었다.

 

199

범신론은 신비주의에 강하게 기울어진 사람들이 언제나 매력을 느껴 온 사상인데, 철학자들 중에서 이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205

중세 철학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두 가지 사실은 수도원의 성장과 교황의 권력과 권위의 증가이다.

 

5. 스콜라 철학

 

215

에리우게나의 삼위일체 설은 플로티노스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신의 존재는 사물들의 존재로, 신의 지혜는 사물들의 질서로, 신의 생명은 사물들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 세 가지 것은 각기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224

회교 세계에 들어간 기독교 국가의 기사들은 자기네 문화보다 한없이 우월한 문화와 자기들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었다.

 

225

스콜라 철학의 수호성인 역할을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실재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권위와 그의 형상론을 근거로 삼고 보편자는 사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유명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빌려 보편자는 그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229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것은 탐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독교의 독단적 교리가 결론을 냉혹하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30.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식을 얻는 길

1. 이성은 생각의 재료를 감각기관의 경험으로부터 획득한다.

2. 이성과는 관계없이 지식을 얻는 계시라는 길이 또 하나 있다.

  이성은 합리적 지식을 만들어 내지만, 계시는 믿음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233

아퀴나스 철학에서 사용되는 본질과 실존이란 용어는 잠재성과 현실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본질은 순수하게 잠재적인 것이고, 실존은 순수하게 현실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사물에게는 항상 이 두 가지가 섞여 있게 마련이다.

 

234

신플라톤주의의 신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와 공존하는 신인데 반해서, 아퀴나스의 신 이 창조된 세계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일종의 영적인 사제장 같은 것이다.

 

236

베이컨은 권위에 의지하기보다는 실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237

무릇 지식이란 본질에 관한 지식이며, 따라서 이 본질은 신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코투스는 의지가 이성을 지배한다고 보는 반면에, 플라톤은 이성이 의지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239

오캄 개체 즉 개개의 사물이 실재성을 갖는 것이고, 이 개체만이 직접적인 지식과 확실한 지식을 형성시킬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적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필요 이상으로 있는 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곧 후세에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사상이다. 오캄은 철저한 유명주의자였다.

 

240

오캄은 이성의 영역을 제한하고 논리학을 형이상학과 신학의 불필요한 말썽거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과학적 탐구에 대한 새로운 노력을 북돋우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246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신들의 변덕으로 인해 구겨져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247

중세시대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가 되어 버렸다. .

 

248

오캄은 신앙과 이성적 탐구를 연결하고 있던 온갖 고리를 다 풀어 버리고 신앙을 이성적 탐구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이 일은 반대편에서 보면 실은 철학을 원래의 이 세상의 학문으로 되돌아 가도록 풀어준 셈이었다.

 

교회는 16세기 이후로는 철학의 분야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였다.

이 이성과 신앙의 분리는 그와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적 활동과 종교적 활동을 엄밀하게 분리하여 제각각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제적 신념들이 자기의 종교적 신념들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둘 다 유지했고, 또 지금도 이런 사람은 많이 있다. 이 일은 위선이기는커녕 오히려 종교가 지금까지 의심의 공격으로부터 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었다는 것이 아주 확실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신학은 변증의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이성적 토론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249

스콜라 철학자들의 장기간에 걸친 이러한 노력 언어라는 토론의 도구를 예리하게 다듬어 놓게 되었는데, 이 도구들은 뒤이어 등장한 문예 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이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6. 근대 철학의 발흥

 

250

전환기의 네 가지 도도한 운동

1.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문예부흥운동(르네상스)

2. 인본주의 운동

3. 종교개혁 운동

4. 오캄의 비판에 의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경험적 탐구

 

253

전환기의 두 가지 중요한 발전

1. 활자를 사용하는 인쇄기의 발명

2. 발견을 목적으로 한 항해

 

254

인간의 힘과 재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확립되어 이제 인간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이 우주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위신을 잃어 버리게 되었는데, 철학자들이 무한한 공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260

겉과 속이 다른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신조 치밀하게 검토되지 못한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최대한 실행에 옮겨졌다.

 

263

에라스무스는 사람은 누구나 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으므로 신학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개신교의 견해이다.

 

265

모어의 논의 속에는 당시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적 관용 문제를 새롭고도 자유로운 태도로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이 유럽에서 영구적인 종교적 분열로 굳어졌을 때 종교에 대해 관용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디어 우세하게 되었다.

 

267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문제를 터뜨리기로 작정하고 유명한 95개조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대성당의 정문에 못으로 부착해 놓음으로써 공표하였다.

종교개혁은 교황의 음흉한 세력에 대한 독일 민족의 반란이 되어 버렸다.

 

268

종교적 원인과 경제적 원인은 둘 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일반적 변화의 증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왜냐하면 개신교와 그 청교도적 특징들은 근대 상업의 발흥과 서로 협조하였기 때문이다.

 

270

괴테는 건축을 응결된 음악이라고 평했는데, 이 말이 문예 부흥시대의 건축가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했던 일에 대해서 참으로 정곡을 찌른 말로 들렸을 것이다.

 

276

이 모든 발견은 오랜 세월 소중히 믿어 오던 편견들을 뒤집어엎어 버렸기 때문에 정통파 스콜라 학자들은 독단의 잠에 빠져 있었던 그들을 그런 식으로 뒤흔들어 깨워 버린 망원경을 헐뜯게 되었다. 실은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300년 후에 일어났었다. 콩트는 현미경이 기체에 관한 단순한 형태의 법칙들을 뒤집어엎는 일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미경을 비난했던 것이다.

 

277

과학 활동의 엄청난 폭발은 그와 보조를 같이하는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기술 문명은 그 후 약 300년 동안 서유럽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다.

 

279

베이컨은 이 새로운 방법과 도구를 그 자신이 독자적으로 해석한 귀납이라고 생각하였다.

 

280

가설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귀납이 하는 역할은 과학의 방법의 작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가설로부터 구체적이면서 시험 가능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수학적 연역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낼 방도가 전혀 없다.

 

 

285

데카르트는 이성 자체에 관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이성 능력의 개인차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이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게 사용한다는 사실로 인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방법은 훈련에 의해 습득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데카르트가 암암리에 인식하고 있었던 점이다.

 

286

데카르트는 일단 행동지침을 정했으면 단호하고 참을성 있게 밀고 나갈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결국 이 결정은 자신의 생활을 터무니없는 요행에 맡기기 보다는 규칙에 의해 관리하겠다는 것이었으니, 자신의 소망을 억지로 이루기보다는 순리에 맡겨 이루겠다는 결정이었던 셈이다데카르트는 이렇게 생활 방침을 정하자 그 후로는 철학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였다.

 

288

데카르트의 철학은 의심할 수 없는 출발점으로 사고를 강조하는데, 이 점은 그 후 계속해서 유럽의 철학 즉 이성주의 철학과 경험주의 철학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291

스피노자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받고 유태인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를 갈아주는 일 이외에는 온통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신과 종교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너무나 시대를 앞선 것이어서 그가 매우 품위 있는 윤리 이론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1백 년 동안이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생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93

실체라는 건 완벽하게 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고 나고,  실체는 우주 전체이며 또한 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는 둘 다 모든 사물의 총합체이므로 이 둘은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그것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그 유명한 범신론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체계는 철학의 역사에 나타난 체계 구성의 가장 뛰어난 실례일 것이다.

 

294

사물들을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본성이다.

=> 시간과 무관한 영원이란?

 

295. 스피노자

사람이 외부의 여러 가지 영향력과 원인에 얽매여 있는 한 노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상태는 모든 유한한 것이 처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은 신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한 더 이상 그러한 영향력에 지배되지 않게 되는데, 그 까닭은 우주 전체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점점 전체와 동조를 이루어 감에 따라 그 정도에 맞는 자유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독립 즉 자기 결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신에게만 옳은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방도는 이러한 신과의 동화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인데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는 모든 것이 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또 실재하는 우주 속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우주와 접촉하기 위해 일상의 실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301

라이프니츠는 오직 신만이 완전 과학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을 필연성의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 예정 조화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테레키 이론 즉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나타나려고 분투한다는 이론에 의해서 고무 받은 것처럼 보인다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에서 모든 잠재성이 동시에 실현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최대한 많은 양의 현실성을 갖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04

실행이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는 건 옳은 말이다. 어떤 행동을 이지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그 행동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일이 인간의 행동이나 실행의 영역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건 명백하다.

 

306

사실 과학과 철학의 임무 일상언어를 가지고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 과제를 풀어 낼 수 있도록 더욱 날카로워진 언어적 도구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주당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 있는 근본 취지이다.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311

자유주의 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312

개인주의 신조는 주로 이성주의자의 이론이었으므로, 이성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열정의 지배를 받는 건 문명화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열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316

로크 현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철학적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정합성 있는 입장에서 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편적 방식으로 취급하였다.

 

319

뉴턴의 물리학은 단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철저히 일소해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크의 정치 이론은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왕권신수설을 깨끗이 논박해 버렸고, 스콜라 철학의 자연법 사상을 근대의 상황에 알맞도록 변경시켜 기초로 삼고 국가에 대한 새로운 기본 신조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320

이성주의가 꼭지점을 땅에 대고 서 있는 피라미드라면 경험주의는 밑면으로 버티고 선 피라미드다.

 

325

정신이 실존한다는 말은 '지각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326

버클리 "대체로 나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의 흥미를 끌었고 또 지식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 막고 있던 난점들은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주 많은 난점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 탓에 생겨났다고 말하고 싶다람들은 자기 자신이 먼지를 일으켜 놓고는 그 먼지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한다." 

은 재산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경제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알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방식을 조절하였다. 그는 학문연구에 전명하기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이처럼 검소한 절약 생활을 꾸려 나갔다.

=> 테카르트는 자신의 행동지침을 세운 후부터는 오직 철학에 몰두했고 흄은 자기 경제력의 범위 안에서 생활방식 조절하며 오직 학문연구를 했다. 이러한 소신이 필요하다. 학문을 벗 삼아 평생 글을 쓴다는 것은.

 

329

이 말하는 경험은 지각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지각들 사이에서는 이 연속 이외의 어떠한 결합 관계도 지각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데카르트 식의 이성주의와 로크 및 그 추종자들의 경험주의의 근본적 차이점이다이성주의자들은 사물들이 밀착하여 딱 들어맞게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 결합 관계가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에 반해서흄은 사물들 사이에 그러한 결합 관계가 있다는 걸 거부하며, 오히려 혹시 그런 결합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결합 관계를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331

흄은 '정신은 여러 가지 지각이 계속 등장하여 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극장'이라고 보았다. 정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오직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지각들뿐이다.

 

333

그는 일정한 종류에 속하는 두 대상이 감각 지각에서 빈번하게 결합하다 보면 그 인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두 관념을 연상하게 되는 정신의 습관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는 정신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습관은 바로 이 심리적 과정에 의해서 생긴다.

 

8. 계몽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336

영국의 경험주의 운동이 지닌 탁월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다른 전통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보여준 폭넓은 관용의 태도이다.

 

337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 운동의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상기시킨다.

 

338

계몽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립된 지적 활동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었으며, 참으로 글자 뜻 그대로 이제까지 암흑이 지배해 오던 곳에 광명의 빛을 비추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점에서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39

낭만주의자들은 위험스럽게 사는 편을 지지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해버렸고, 어쨌든 이론적으로 불안한 생활 방식이 더욱 고상하다고 주장하였다.

 

340

이성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실존주의라고 하겠는데 산업사회가 개인의 생활을 잠식하는 일이 확대일로에 있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낭만주의는 다른 누구보다도 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는 아마도 바이런일 것이다. 우리는 바이런에게서 철저한 낭만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에게서 반역, 도전, 기존의 관습에 대한 경멸, 무모함, 고상한 행위를 볼 수 있다그가 그리스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그리스 서해안의 미쏘롱기라는 습지에서 죽은 사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위대한 낭만적 행동이라 하겠다.

 

343

유물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 이성의 탁월성이다. 사람들 위에 그 동안 군림해 오던 종교를 타파해 버린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최고의 것이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으며, 이 일을 위한 특별한 축제일을 마련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 일은 이성을 신으로 모시는 일이었다.

 

347

칸트는 평생 한 번도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지나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매우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습관은 아주 규칙적이었으므로 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는 튼튼한 편은 아니었으나 차분한 생활방식 때문에 질병을 피할 수 있었다.

 

351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이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지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지성은 참으로 사람마다 현격하게 활용의 정도가 실제로 다른 지능이기 때문이다.

 

353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 칸트의 도덕 법칙은 결국 경험적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이 도덕 법칙을 정언 명령이라 불렀다.

358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은 헤겔에 의해서 최종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363

자유는 환상을 품는 게 아니라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그리스 철학에서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전조를 보였던 이 세계의 필연적 진행과정을 파악하는 일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겠다.

 

365

정반합 이 세 단계는 우선 어떤 진술이 주장되고 나면, 그에 대립하는 주장을 하는 진술이 맞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두 진술의 주장 내용이 절충되어 세 번째 진술로 정돈된다는 것이었다.

 

368

변증적 과정의 통찰은 지적 성장에 관한 심리학에 기여하였다.

 

369

관념주의자들의 생각이 단지 애매하고 막연한 말로 표현되기는 했을지라도 그들의 착상이 노리고 있는 목표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채 통째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건 위험한 일이라 하겠다.

 

371

관념주의자들의 견해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배타심과 잔인성과 포악한 행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비해서 자유주의의 원리는 사람들에게 관용심과 이해심과 타협심을 길러 놓는다.

 

372

실존주의는 오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의지를 이성으로부터 단절함으로써 사람은 철학적 반성의 결론이 아니라 의지의 자발적 기능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일은 아주 쉬운 방식으로 신앙이 다시 한 번 사람의 정신생활에 들어설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374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이성을 과대평가 하는 일만큼 위험하다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은 일이다. 헤겔 이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성이 우주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과오에 떨어졌다키에르케고르는 반대편의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이성은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즉 구체적인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하였다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최고의 원리들과 일치하고 있다.

 

376

쇼펜하우어 의지를 철저히 악한 것으로 보며,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고통을 이 의지 탓으로 돌린다게다가 그는 헤겔이 그랬던 것처럼 지식을 자유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377

우리의 인생에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의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의지를 마취시킴으로써 우리가 열반 즉 공에 도달하게 되어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야의 장막을 걷어 내고 세계의 실상을 보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야란 이 세계에 대한 환상적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377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성주의에 입각한 헤겔학파의 여러 가지 신조에 반대하면서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니체는 귀족적 인본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증진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최고 수준의 인간, 다시 말하면 가장 건강하고 강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지닌 탁월성이었기 때문이다.

 

378

10년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홀로 외로이 전전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문학 작품을 쓰면서 지냈다. 니체가 비극에서 중시하는 것은 주인공을 통해 감정을 정화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이었다.

 

379

인생의 조잡하고 잔인한 현실을 일종의 공격에 의해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지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한 특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주인의 도덕독립, 관용, 자신,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의 모든 덕

노예의 도덕, 예속, 척박, 비겁. 니체가 무엇보다도 싫어했던 것은 새로운 기술문명과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대중적 인간의 출현이었다. 그는 사회의 올바른 기능이 귀족적 이상을 실현시키는 소수의 위대한 인물을 길어 내는 묘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려고 분투노력해야 할 목표는 신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간이다.

 

=> 초인, 현대의 영웅.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수용하고 매일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인간.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383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384

마르크스의 목표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변혁하는 데 있다.

 

386

벤담은 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동료인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교육의 무한한 치료 능력에 대하여 더없이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389

은 귀납적 입증에 근거를 부여하는 건 그것이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에 예외 없이 들어 맞는다는 사실이며, 이것 자체가 최고의 귀납적 입증이라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정당화라는 작업은 연역 논리학의 일이기 때문이다. 귀납이 정당화되어야 할 대상이라면 그 정당화 논증 자체가 귀납논증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귀납을 연역적으로 해명하려고 할 게 아니라 연역과는 다른 별개의 논리적 사고로 취급하는 것이라 하겠다.

 

397

마르크스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에 변증적 유물주의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론 속의 진화론적 요소와 헤겔 철학의 요소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과학을 오해하여 부르주아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낙인 찍고 배척하는 일은 정말이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400

콩트는 우리가 경험에 의해 직접 주어지는 것을 가지고 철학을 시작해야 하며, 현상의 배후로 넘어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므로, 자신의 철학을 실증 철학이라고 불렀다.

 

402

콩트가 무엇보다 열심히 추구했던 연구는 학문적 연구의 모든 분야를 논리적 질서에 따라 하나의 포괄적 체계로 정돈하는 일이었다.

 

405

퍼스 옳다고 주장되는 진술은 모두 반드시 실제적 성과를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다시 말하면 옳은 진술, 즉 진리는 미래의 행동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동일한 유형에 속하는 모든 상황에서 그 진술에 따라 행동하려는 성향을 형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08

제임스의 구별에 따르면 이성주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이성주의 이론은 낙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실험을 무시하고 내성을 중시한다. 이를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주의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비관적 성향을 보이고 이 세계의 부분들이 분할되어 있음으로 인정하며 사변적 궁리보다는 실험을 더 좋아한다. 이를 '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

 

414

여전히 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논리 체계가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워지는 논리적 기호들의 체계에 관한 일반적 가정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415

철학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음미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10. 현대철학

 

416

누구에게나 일을 겪은 다음에 현명해진다든가 이미 성숙한 철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변화의 의의를 세세한 사항까지 모조리 연역해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건 헤겔주의자들의 환상일 것이다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몇 가지 일반적인 흐름일 것이다.

 

418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의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419

지금까지 이 세계를 완전한 파멸로부터 구해온 것은 역설적인 말이지만 반복해서 나타난 통치자들의 무능이었다.

 

426

베르그송은 실용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우선적으로 강조하였다.

 

427

베르그송의 경우에는 논리 그 자체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브래들리는 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고, 베르그송은 비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다.

 

428

베르그송은 본능의 최고 형태를 직관으로 간주하는데, 이 직관은 이 세계와의 직접적 일치에 도달하는 일종의 정신 활동이다.

 

429

우리는 '기억'이란 말을 어떤 때는 누군가가 지금 진행시키고 있는 회상이라는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뜻으로 이해하며, 또한 때로는 그렇게 회상되고 있는 과거의 사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431

프로이트는 명백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순전히 관찰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만을 가정하고 이루어지는 심리학으로 나아갔다.

꿈과 의식상태나 각성상태를 구별 짓는 것은 꿈이 일종의 자유와 환상을 허용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자유와 환상은 우리의 각성된 의식 생활 속에서 가차 없는 사실들을 견뎌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의 이 자유는 실제로는 진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을 뿐이라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440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 서양의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였던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이었다. 이 힘들은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443

야스퍼스의 경우에는 철학이란 세 번째의 초월적 존재 즉 자족적 존재에 속하는 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월적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개인의 노력이다. 야스퍼스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과 자유롭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일은 바로 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가 이성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에 관해서는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그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불안한 느낌 또는 그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빌려 온 용어로 말하면 두려움과 동반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객관적 존재의 수준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반면에, 자아-존재의 영역은 기분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자유로움은 불안을 동반한다는 것.

 

444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전통과의 연결이나 개인의 생활에 이미 일어난 사건과의 연결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446

마르셀 실재의 의미를 가장 완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주의적 사고가 분해해 놓은 조각들을 다시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종합 작업은 마르셀이 2차 능력의 반성이라고 부른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451

비트겐슈타인 모든 진술을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궁극적인 단순 성분들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이론은 때로 논리 원자주의라 불렸는데, 초기의 이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단순하고 궁극적인 것들이 있다는 신조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맺음말

 

453

아무리 방대한 책일지라도 단지 한 권의 책을 읽고 전문가가 될 수는 결코 없는 법이다.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상식인은 물론이고 학자의 경우에도 때로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조감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일을 위해서는 너무 부피가 크지도 않고 지나치게 내용이 상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눈으로 전체를 조감한 개관이 필요하다.

 

철학의 역사 중에서 관련 있는 대목을 때때로 상기시킴으로써 철학적 견해들이 자라온 배경 상황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일에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이 일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른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 흐르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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