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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05시 48분 등록

<서양의 지혜>

2014.06.09 이동희

 

1. 저자에 대하여 : 버트란드 러셀 (1872~1970)

 

1872년 웨일스에서 존과 케이트 앰벌리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초대 러셀 백작이자 영국 수상을 두 차례 역임한 존 러셀 경의 손자이기도 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과 도덕 과학을 공부했으며 1903년 서른 살의 나이에 자신의 최초의 저작 (수학의 원리)를 출간했다. 1916,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납부를 거부하여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의권을 박탈당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의 구금형에 처해졌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수리 철학 개론) (정신의 분석)을 집필했다. 1927년에는 두 번째 아내인 도라 블랙과 함께 비콘 힐 학교라는 실험학교를 세웠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는 (서양 철학사)라는 걸작을 펴냈고, 1차 리스 강좌 (‘권위와 개인’)을 맡아 강연했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영국의 핵 철폐 운동과 100인 위원회 회장직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동한 혐의로 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1970 2 2일 밤 98세의 나이로 웨일스에서 사망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자서전에서 세가지 열정이 자신의 인생을 재배해 왔다고 하였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록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버트런드 러셀을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고 한다.

 

그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 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러셀이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러셀은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러셀은 똑 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러셀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 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러셀은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늘 연민이 러셀을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러셀의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러셀 역시 고통받았었다. 러셀은 이 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다. 그는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5

우리가 철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철학사를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첫째는 철학에 기여한 위대한 철학자의 저작이 그 후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데다가 여전히 참신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문 철학자조차도 다시 검토해 보면 새로운 착상을 얻는 수가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위대한 철학자의 저작에는 누구나 부딪칠 만한 철학적 물음들과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시도해 볼 만한 방법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사를 전혀 살펴보지 않고 철학적 물음의 답을 찾으려고 서두르는 사람은 옛날 철학자들이 이미 검토하여 반박해 버린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수가 굉장히 많다.

 

P6

우리는 철학사에서 철학 사상의 복잡한 원리와 방법을 확인하는 일, 철학 사상의 전개 과정과 정당화 과정을 추적하는 일, 철학 사상의 약점을 밝히는 일 등을 옛날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시범 경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에 관한 철학자들의 주장과 비판에 대해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는 일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게 좋다. 철학자들이 전개하는 토론의 감상을 통해서 철학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P6

철학적 토론은 물론이고 모든 합리적 토론에서 어떤 사람의 득점과 실점을 판정하는 기준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떤 생각이든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진실을 명확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진리 기준이고, 둘째는 옳은 생각에서는 반드시 옳은 생각만 나와야 하나는 논리 기준이다. 철학적 토론이 이 기준들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진행될 때에는 공평무사하고 객관적인 탐구가 이루어지나. 게다가 철학적 토론은 이 기준들을 준수할 경우에만 변증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철학적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이 두 기준을 준수하는 일은 사고의 명료성과 정직성과 정상성의 징표이며, 토론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이다.

 

P6

우리 민족이 이 정신적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려면 시급히 진리 기준과 논리 기준에 의해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오늘 우리의 참다운 지성으로 작용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을 다듬어야 한다.

 

P7

사람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신체에 관해서는 자연적 제약과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가능한 한 더 많이 자유스러워야 하고, 정신에 관해서는 나쁜 감정과 욕망에서 해탈해야 할 뿐 아니라 무지와 혼란의 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학문적 지식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학문의 모태이자 핵인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지혜로운 판단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적 자유와 자립을 확보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인류가 소크라테스를 통해 꿈꾸었던 진정한 철학인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훌륭한 민주 시민일 것이다.

 

P8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전문적 지식으로 치닫는 경향에 휘말려 지적 유산을 남겨 준 선조들에게 진 빚을 잊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철학사를 쓰는 목적은 그런 건망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억을 되살려 놓으려는 것이다. 모든 서양 철학은 몇 가지 중대한 점에서 그리스 철학이며, 그래서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우리를 이어 주는 끈을 잘라 버리면서 어떤 철학 사상에 골몰하는 건 헛된 일이다. 아마 틀린 말이겠지만 한때는 철학자라면 모든 것에 관해서 웬만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철학은 모든 종류의 지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철학관이야 옳든 그르든, 철학자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전혀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견해는 아주 확실히 잘못된 생각이다.

 

P10

이 모든 과학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미지의 영역과 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접경 지대에 이르러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그는 바야흐로 과학의 세계를 지나 사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변적 사고 활동 역시 일종의 탐구 활동인데,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철학이란 학문이다.

 

P12

철학은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 하는 탐험 여행처럼 오직 알고 싶어서 시도하는 지적 모험이다. 이런 까닭에 어떤 철학자가 개인적으로 완강하게 교조주의적 독단을 고집한 사실이 밝혀지는 수는 물론 있지만, 철학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교조적 신조도 신비로운 의시고 신성 불가침한 거소 발붙일 여지가 없다. 사람이 미지의 것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태뿐인 것 같다. 한 가지 태도는 다른 사람이 서적을 통해 알았거나 또는 영감을 얻는 이런 저런 비법을 통해 알았다고 떠드는 주장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자기 스스로 실제로 알아보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과학과 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P12

철학이란 학문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철학에 대한 정의는 어떤 정의든 논란이 일게 마련인데, 그 이유는 어떤 정의든 정의하는 사람의 철학적 태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셈이다.

 

P14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물음이 많이 있는데, 이런 물음은 과학이 답을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자기 인생의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즉석에서 내놓는 답을 기꺼이 그대로 믿고 싶은 마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물음의 답을 탐구하는 일과 경우에 따라서는 그 중의 어떤 물음을 제거해 버리는 일이 철학의 임무이다.

 

P15

철학사를 공부하는 건 힘드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를 배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철학을 했던 사람들 자체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철학자들이 철학적 물음들과 씨름했던 방식은 실은 그들이 실제로 인생을 살아간 방식의 중요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명확한 지식이야 조금밖에 증가시키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침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P19

정치면을 살펴보면 도리아 족이 들어선 이후 그리스의 정치 권력은 왕권 통치로부터 시작하여 일련의 규칙적인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정치 권력이 점차적으로 귀족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비세습적인 군주 즉 참주의 시대가 뒤를 이었다. 결국에는 정치 세력이 시민에게로 넘어갔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 정치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이다.

 

P20

순화된 것보다 더 많은 원시적 요소가 올페우스교의 전통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 요소들이 참으로 그리스 비극의 원천이다. 언제나 공감이란 격렬한 감정과 정열에 들뜨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법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본질이 카타르시스, 즉 감정을 정화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 건 정곡을 찌른 말이다. 어쨌든 그리스 정신이 이 세계를 단호하게 변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정신의 이 양면성 덕분이었다. 니체는 그리스 정신의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라고 불렀다. 이 두 요소 중의 어느 하나만으로는 그리스 문화의 엄청난 폭발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P21

이론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이 애초에는 오늘날의 관광과 비슷한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헤로도투스는 이론이란 말을 이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격렬하면서도 순수한 호기심 즉 열정적으로 공평무사한 탐구에 몰두하는 마음 이것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P21

서양 문명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자라나온 것으로 그 기초를 2500년 전 소아시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 도시 밀레토스에서 시작된 철학과 과학의 전통에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서양 문명은 이 세계의 다른 위대한 문명과 다르다. 그리스 철학 전체를 지도하면서 이끌고 있는 생각은 로고스 (Logos)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를 아울러 하는 사람은 지식이 좋은 것이라는 윤리적 신조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데, 이 지식의 좋은 점 즉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 은 공평무사하게 탐구하였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이다.

 

P21

일반적 물음에 답을 찾는 일은 가장 넓은 의미로 보면 무심한 관찰자에게는 아무렇게나 hl는 대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질서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P22

사람들이 언어를 만들어 낸 근본적인 목적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초가 되는 건 합의이다.

 

P23

철학자들이 글을 쓰거나 토론을 벌여 온 주제들은 어느 단계에서나 이런저런 형태의 이원론의 틀 속에서 논의되어 오고 있다. 그 모든 이원론의 바탕에는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깔려 있다.

 

P24

옛날에는 진짜와 가짜에 관한 문제가 논리학에서 논의되었다. 선과 악에 관한 물음, 조화와 투쟁에 관한 물음은 우선 겉보기에는 윤리학에 속하는 문제이다. 현상과 실재에 관한 물음, 정신과 물질에 관한 물음은 지식론, 즉 인식론이 전통적으로 다루어 온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의 나머지 이원론들에 관한 물음은 대체로 존재론, 즉 존재에 관한 이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이 전혀 확정적인 것이 못 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그리스 철학만이 지닌 매우 돋보이는 특징들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철학의 영역들의 벽을 허물어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방식에 있다.

 

P25

이 일반성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 사람들만이 도달한 독창적인 생각이다.

 

P26

모든 물질이 실은 한 가지 물질로 만들어진다는 견해는 참으로 훌륭한 과학적 가설이다.

 

P26

하나의 물질 즉 한 가지 실체가 여러 가지 상태의 다른 물체 속에서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는 가설을 발견한 사실만큼은 여전히 훌륭한 업적이다.

 

P27

인간은 양육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년기가 유난히 길다는 사실에 주목한 아낙시만드로스는 인간이 애초부터 현재와 같은 상태였다면 이 세계에 살고 있을 수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틀림없이 인간이 지금과는 달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훨씬더 짧은 기간에 자립할 수 있는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하였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 방식을 귀류논법이라 한다. 위의 논의에서 아낙시만도로스는 어떤 가정으로부터 명백히 그른 결론 지금 인간이 살고 있을 수 없다는 그른 결론 (지금 인간이 살고 있으니까!) – 을 연역해 내었다.

 

P29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은 오늘날 철학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전문가들과는 기질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밀레토스 도시의 실제적인 일에 종사하였고, 자기들의 생활에 어떤 종류의 위급한 사태가 다쳐와도 능히 맞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P30

그리스 사람들의 종교 생활은 대체로 각양각색의 도시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관습들과 결합되어 있었다. 철학자들이 철학자로서의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그들이 살고 있던 도시 국가의 국가 종교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은 못 된다. 이런 일은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자립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닥치기 쉬운 운명이기 때문이다.

 

P32

피타고라스 학파의 경우에는 철학이 세계에 대해 초연히 명상하는 일로 여겨졌다. …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이 세번째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철학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세상을 철학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야말로 사람이 이 무상한 세계에 태어나는 우연성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며, 그래서 이 삶의 방식만이 출생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고 보았던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인간의 영혼이 순환하는 윤회에 얽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33

그리스 철학에 나타나는 중요한 생각들 즉 균형을 뜻하는 조화 관념, 높은 음과 낮은 음의 화음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적절한 조절을 통해서 조정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윤리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중용이나 중도의 개념, 사람들은 기질상 네 유형으로 나뉘어진다는 확고한 신념 의 출처를 찾아 올라가보면 결국은 이 모든 생각을 피타고라스가 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P33

그리스 사람들은 헤로도투스의 말에 따르면 탐구 그 자체를 위해서수학적 문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피타고라스가 그 중에서도 최초의 인물이었다.

 

P35

확실히 그 대상은 수학자가 정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성의 대상과 감각의 대상을 가르는 구별이 생기게 된다. 이에 더해서 제대로 증명된 명제는 그 누구도 더 이상 단서를 붙일 수 없도록 언제나 옳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오직 지성의 대상만이 정말로 실재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것인 반면, 감각의 대상은 허황되고 결함이 있고 무상한 것이라는 견해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에서 곧바로 나오는 결론인데, 피타고라스 학파 이후 줄곧 서양의 신학은 물론 철학적 사고까지 지배해 왔다.

 

P37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생각들을 자료로 하여 실재의 세계는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의 균형잡힌 조정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을 전개했는데, 바로 이 점이 그가 철학에 남긴 괄목할 만한 발견이자 기여이다.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투쟁의 근저에는 한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숨은 조화나 주율 즉 실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P37

헤라클레이토스는 정말로 어떤 점에서 조화라는 건 한눈에 빤히 드러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 같다. 그는 숨은 조화가 노출된 조화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실제로 이루어져 있는 조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대립의 상태가 그대로 조화의 상태일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그건 활대와 활시위의 조화와 마찬가지로 서로 대립하는 긴장들의 조화다.”

 

P38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사건이 이런 식의 변환 과정이며, 따라서 이 세계의 어떤 사물도 계속 똑 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사람은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물이 계속 흘러 오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이러한 예를 들어 자기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후세의 철학자들은 만물은 유전한다는 유명한 말을 그의 말이라고 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흘러다니는 자들이란 별명으로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P38

비탈길은 그 길을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에 따라서 오르막길도 되고 내리막길도 된다. 헤리클레이토스의 대립 이론 대립자들에 관한 이론 은 이 예를 통해서 서로 갈등하고 있는 특징들이 실은 하나의 상황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들이라는 걸 일깨워 준다. 이런 생각이 가장 또렷하게 표현된 진술들 중의 하나가 선과 악은 하나다라는 진술이다. 이 말의 뜻이 선과 악은 그게 그것이라고 동일시해야 한다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이와 반대로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악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선의 개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요컨대 산비탈을 없애 버림으로써 오르막길을 없앤다면 그와 동시에 내리막길도 없어져 버리는 법이다. 선과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말일 것이다.

 

P39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개념을 이어받아 사물은 저마다 제 나름의 한도를 잃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원래의 그것과 똑 같은 사물로 유지된다고 설명하였다. 이 말은 세계와 인간 모두에 대해서 맞는 말이다.

 

P45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는 불변의 기본 입자라는 생각을 받아들였고,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는 끊임없는 운동이란 생각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이루어진 두 개의 대립하는 사상의 종합은 나중에 헤겔이 변증적 과정을 암시받았던 몇 가지 고전적 실례 중의 하나이다. 인류의 지성의 발전이 이처럼 양극으로 대립하는 두 입장을 끊임없이 탐구해 본 다음에 나타나는 이런 식의 종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건 확실히 옳은 일이다.

 

P46

이 사랑과 투쟁이란 원리의 유일한 기능은 네 가지 근본 물질을 결합하고 분리시키는 일뿐이지만, 당시에는 비물질적 작인이라는 관념이 없었으므로 이것들은 실체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랑과 투쟁이란 두 원리는 물질 즉 실체로 간주되었고, 그래서 다른 네 가지 실체와 함께 여섯 가지 실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네 가지 실체가 서로 분리될 때에는 투쟁이 그것들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는 반면에 그것들이 결합할 떼에는 사랑이 그것들을 모아 굳게 접착시킨다고 본 것이다. 말이 난 김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작인 즉 변화의 원인은 물질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견해의 옮음을 정당화시키는 논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생각은 약간 정교하게 다듬어지면서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작인은 반드시 그것이 작용하고 있는 바로 그곳이 아닐지라도 우주 안의 어딘가에는 있는 어떤 물질적인 것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현대 과학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P47

원소로 간주된 실체들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어서 그것들 자체는 더 이상 설명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내어 진술되지 않는 수가 흔하지만 그래도 과학적 설명의 중요한 원리로 유지되고 있다.

 

P48

엠페도클레스가 종교에 대하여 쓴 글 속에서 자신의 세계에 관한 이론과 양립할 수 없는 견해들을 고수하고 있는 점만큼은 상당히 흥미롭다고 하겠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의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정말이지 누구도 이와 같은 서로 충돌하는 신념들을 동시에 승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제 믿고 있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신념을 혹시 서로 모순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한번 해보지 않고 잘도 믿고 살아간다.

 

P52

올림픽 경기는 그리스 사람들이 육체의 가치를 인정했었다는 생생한 징표이다. 이 사실은 조화를 강조했던 그리스 사람들의 특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가지고 있으므로 둘 다 수련을 통해 다듬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스의 사상가들은 중세의 스콜라적 전통을 물려받은 근재의 상아탑 지식인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P57

그는 지각에 관해서 감각 작용이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대비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독창적인 생물학적 원리를 제창하였다. 이 원리에 따르면 시지각은 빛이 그와 반대되는 어둠을 헤쳐버리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게다가 아주 강렬한 감각은 고통과 불쾌감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생리학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견해이다.

 

P57

물질을 무한히 분할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새로이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무한한 분할 가능성이 공간에 적용되는 개념이란 걸 깨닫는 단계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이 것으로 원자론이 등장할 무대는 마련된 셈이었다.

 

P60

허공 즉 진공에 대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운동은 허공 없이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없다.

 

P60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 대신에 물질의 구성에 관한 수학적 이론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네 가지 원소가 정다면체의 형태를 갖는 입자들로 구성된다고 간주하였던 것이다. 이 이론은 플라톤의 (티마에우스)에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원소라는 말도 이 후기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 같다.

 

P61

이런 식의 논증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진화 이론을 논할 때 설명했던 귀류논증과 비슷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상의 귀류논증의 경우에는 가정으로부터 연역된 결론이 실제로 그른 진술이므로 전제들 중의 어느 하나가 그를 수밖에 없다고 논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제논은 어떤 가정으로부터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진술을 결론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이는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두 결론이 실제로 옳지 않다는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제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불가능한 결론을 수반하는 가정은 그 자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논증은 결론을 사실과 전혀 대조해 보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논증은 순전히 변증적 탐구 즉 물음과 대답으로만 진행되는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변증적 논증을 조직적으로 사용한 것은 제논이 처음이었다. 이러한 논증은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프라톤은 이 논증 방법을 엘레아 학파로부터 받아들여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이후 줄곧 이 논증 방법은 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P63

이처럼 똑 같은 논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사용하는 논증을 무한 후퇴 논증이라 한다. 이런 논증이 언제나 모순에 이르는 건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어떤 공간이든 더 큰 공간의 일부분이라는 견해에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제논의 경우에는 그가 존재하는 것이 유한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는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모순에 부딪힌다. 그러므로 제논은 이른바 악성 무한 후퇴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성의 무한 후퇴 논증은 실은 귀류논증의 한 가지 형태다. 이런 논증에 의해 밝혀지는 사실은 그 논증의 결론이 최종적 근거로 의지하고 있는 명제가 그 사람이 이미 옳다고 인정했던 다른 명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P67

레우킵포스는 원자들이 언제나 허공 속에서 운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원자는 모두 성분이 똑같지만 모양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 입자들이 쪼개질 수 없다거나 원자적이다라는 말은 그것들이 물리적으로 둘로 분할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 입자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수학적으로는 무한히 분할할 수 있다. 원자들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었다. 이렇게 해서 인류는 변화 즉 생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란 원자들의 배열이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P71

소피스트들은 인간이 도저히 참다운 지식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사람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의견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P72

논쟁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을 이기는 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변증 방법을 활용하여 탐구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논쟁과 토론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P73

소피스트라는 말 자체는 원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소크라테스 역시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분별없이 소크라테스까지도 소피스트라고 부른 사실이 새삼 놀라운 일은 못 된다. 이 분류가 잘못이라는 건 이미 지적했었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플라톤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말 지혜로운 사람과 소피스트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철학자와 소피스트가 어떤 점에서는 대중들에게 비슷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P73

철학적 구도 정신이 없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얼마쯤은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일관성이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게 보통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태도로 사는 철학자를 해롭지 않은 바보 뜬구름 속에서 노니는 듯한 높은 생각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물음이나 해대고, 사람들이 진짜 관심거리로 삼는 것에는 어둡고, 지각있는 시민이라면 의당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심한 괴짜 인물 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P80

그가 가장 열중했던 관심사는 최고선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선명하게 유지하고 있는 프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을 보면 그가 윤리적 용어들의 정의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대화편 (카르미데스)의 문제는 절제란 무엇인가이고, (리시스)의 문제는 우정이란 무엇인가이며, (라케스)의 문제는 용기란 무엇인가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궁극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물음의 답을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P81

이 사실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사상의 주된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언제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참다운 지식의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참다운 지식을 찾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에 관해서 죄를 짓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지이다. 따라서 최고선 즉 사람이 가장 훌륭한 상태인 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덕은 곧 지식이다. 최고선으로서의 덕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건 그리스 철학 전체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기독교 윤리는 이와 정반대이다.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사랑인데, 이 사랑의 감정은 아무래도 무지한 사람에게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P83

이제 소크라테스는 말머리를 재판관들에게 돌려서,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이 자신에게 닥칠지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 즉 인간에 관해 깊이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자기의 의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태도는 운명의 기로에 서서 어느 쪽에 충실할 것인지 고뇌하는 문제가 그리스 비극의 주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P85

젊은 시절에 플라톤은 장차 시인이 될 만한 소질을 보였고, 어느 정도는 그가 장래에 정치가의 길을 택하지 않을까 짐작하게 하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정치적 포부는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갑작스럽게 끝장이 나버렸다. 야비한 정치적 음모와 원한의 편모를 보여주었던 이 무서운 사건은 한 청년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리당략이 판치는 정치판에서는 누구도 자립적이고 정직한 인간으로서 오래 살 수 없다고 보게 되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철학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침내 결심을 굳힌 것은 이 사건 이후의 일이다.

 

P86

이처럼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치는 일은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교육의 목표로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대학의 기능은 학생들의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쑤셔넣는 일이 아니다.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P86

장말 중요한 문제는 아카데미아의 교육목표 즉 인간의 정신을 스스로 이성을 발휘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아의 교육은 눈앞의 실제적인 목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었는데, 이는 실제적인 일을 해결하는 기술의 숙달 이상의 목표를 전혀 추구하지 않았던 소피스트들과 현저히 다른 점이다.

 

P91

먼저 철학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보기로 하자, 이말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철학자는 아니다. 따라서 이 정의는 너무 넓으므로 철학자란 진리에 대한 통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좁혀야 한다. 예술품 수집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지만 이 일이 그를 철학자로 만들지는 못한다. 철학자는 아름아움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고,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다. 예술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갓 의견을 갖는 데 그치는 반면,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지식은 반드시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식의 대상은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 지식이라는 말은 전혀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은 일단 이루어졌다 하면 영원히 확실하게 확정되므로, 혹시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조금도 할 필요가 없는 진리이다. 이와 반대로 의견은 오류에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의견은 존재하는 것에 관한 지식도 아니고 또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견이란 헤라클레이토스의 표현대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P92

우리는 철학을 모르면 이 이야기 속의 동굴에 갇힌 죄수처럼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오직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 즉 사물의 현상만을 보며 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자가 되면 이성과 진리의 햇빛 아래서 동굴 바깥에 있는 진짜 사물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실재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고 알 수 있는 힘을 주는 빛은 선의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P101

정치 문제에 대해 그리스 사람들이 이런 고립적 태도를 지녔기 때문에 끝내 그리스 세계는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 성장할 수 없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정치 생활은 안정 위주의 것이었던 반면에 주변의 세계는 신속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정치에 관한 생각이 지니고 있는 주된 약점이었다. 하나의 세계 국가는 로마 제국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확립될 수 있었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지적 독창성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 국가에만 집착하게 했던 지나친 개인주의도 없었던 것이다.

 

P102

이 과정은 오늘날 대학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학생이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하는 방법이다. 학문의 본산으로서의 대학은 학생에게 자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 주고, 지금까지 그가 지녀온 편견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 정신을 함양시켜 줄 때에만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103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든 아니면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든 사람들에게서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전과 권위주의라는 사악한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판을 억누르는 처사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이다. 비판을 억압하는 처사는 그 사회에 활력있는 통일된 목표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체에 맥 빠지고 부서지기 쉬운 획일성을 강요할 뿐이다. 응분의 소임에 따르는 권력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그처럼 흔하다는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P103

소피스트들은 단지 쓸모 있는 지식을 공급하는 상인일 뿐이고, 저들의 가르침은 그걸 설령 가르침이라 치더라도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피스트들은 학생으로 하여금 이런저런 상황에서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얼마간 가르칠 수야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모아진 정보 더미는 근거 없는 사상누각 같은 것 즉 음미되지 않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P105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무지는 자유로운 삶 즉 지식과 통찰에 의해 성취되는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와 비슷한 견해가 헤겔의 철학에 보이는데, 헤겔의 철학에서는 자유라는 말이 누군가가 현상의 필연적 진행 과정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P105

소크라테스는 토론이 진해되는 과정에서 그에게 일반적으로 정의를 구성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깨우쳐 주고 있는데, 이 일을 통해 이른바 유()와 종차(種差)에 의한 정의가 갖추어야 하는 형식 논리학적 특징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P106

여러 개의 초기 대화편에서 우리는 대화자들이 어떤 용어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매우 초보적인 큰 실수를 범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용어의 정의를 제시하는 대신에 그 용어의 사용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신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에우티프론처럼 대담하는 건 좋은 대답이 되지 못한다.

 

P106

신성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신성의 형상”(이데아) – 달리 말하면 신성한 것들을 신성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에 관해 진술 을 요구하는 일이다. 좀더 익숙한 말로 표현하면 신성에 대한 정의는 어떤 것이 신성한 것일 수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을 진술해야 한다.

 

P107

이런 정의에 도달하는 방법은 먼저 하나의 용어(이 경우에는 동물이란 용어)를 택하고 나서 이 용어를 두 번째 용어 (이 경우에는 이성적이란 용어)로 한정하는 것이다. 첫 번째 용어는 유개념, 두 번째 용어는 동물들 중에서 인간이란 종을 가려낼 수 있는 차이 즉 종차 개념을 나타낸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인간이란 이성적이란 종차를 지니고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해도 상관없다.

 

P109

누구나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가정이나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게 마련이다. 가정이나 가설이란 말은 둘 다 어떤 것의 밑바닥에 놓인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점은 반드시 논증이 딛고 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가설로부터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결론을 연역해 내고, 결론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살펴본다. 이것이 원래 현상을 설명한다” (saving appearances)는 말이 지녔던 의미이다. 가설은 그로부터 나온 결론이 사실과 딱 들어맞을 때 현상 즉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설명한다.

 

P109

우리는 특수 과학으로서의 과학들이 제각기 지닌 좁은 한계를 깨뜨린다는 의미에서 여러 개별 과학이 의지하고 있는 특수한 가설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결국 변증의 목표는 단 하나의 최고의 출발점 즉 최고선의 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목표는 다소 부질없는 희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 과학은 언제나 일반성이 더 큰 가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처음에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게 보이던 분야들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P111

소크라테스가 가설 연혁의 방법에 관해서 전혀 다루지 않은 하 가지 문제는 처음에 가설이 어떻게 세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답은 결코 제시될 수 없다. 탐구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형식적 규정은 전혀 있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로 밀어 보아 그의 통찰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발명의 논리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P116

요컨데 이 문제의 난점에 대한 해결책은 존재나 비존재라는 말이 그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한 표현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존재나 비존재라는 말은 오직 어떤 판단 속에서만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운동, 정지, 존재와 같이 형상이나 종류를 표현하는 말은 (테아에테투스)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일반적 술어이다. 분명히 이 플라톤의 형상은 소크라테스의 형상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플라톤 시의 형상론은 후세에 범주론을 전개하였던 사고의 출발점이다.

 

P116

변증론의 기능은 이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나 최고의 종류에 대해서 어떤 것들이 서로 결합하고 어떤 것들이 서로 결합하지 못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P117

이상의 통찰을 기초로 삼으면, 우리는 오류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린다는 건 그것이 존재하는 사실 그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고, 그래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옳은 판단과 마찬가지로 그른 판단 즉 오류도 전혀 무섭거나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독자는 놀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건 그 해답을 알기만 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무섭거나 신비로울 것이 전혀 없는 법이다.

 

P117

판단이란 이제 분명해진 바와 같이 옳거나 그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판단은 판단대로 사물들이 존재하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옳지 못하다. 우리의 판단을 오류로부터 지켜 주는 형식적 기준을 있을 수 없다.

 

P120

예컨대 수 3은 세 개를 하나로 치는 모든 묶음의 집합이다. 기수라면 어느 수든 이와 똑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2는 두 개를 하나로 치는 모든 묶음의 집합 즉 두 개의 사물을 원소로 하는 모든 집합의 집합이다. 요컨대 우리는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세 개의 사물과 두 개의 사물을 더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수 3과 수 2를 더할 수는 없다.

 

P120

내가 보기에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플라톤의 학문이 지닌 폭과 깊이를 능가한 철학자는 전혀 없다. 나는 철학적 탐구를 하겠다는 사람이 플라톤의 철학을 무시한다면 전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P125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형상 이론에 있어서는 결국 형상이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판명된다. 왜냐하면 창조력을 발휘하는 건 형상이며, 물질은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그저 원료로서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실체라는 말의 원래 의미에서 결국 실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P125

한편 형상이 실체라는 말은 형상이 개개의 사물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P126

문제의 조건이 이 세계에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조건 즉 현실적인 조건이어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적인 것이 잠재적인 것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한다. 그렇다면 변화가 진행될 때 잇달아 현실화되는 일련의 성질을 보급해 주는 잠재적인 것을 실체로 삼고 변화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이런 설명에 실제로 어떠한 결함이 있든, 잠재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을 감안한다면 이런 식의 설명이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하찮은 설명이랄 수 없다고 하겠다.

 

P127

그리스 사람들의 과학과 철학이 지닌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은 증명이라는 생각이라고 지적했었다. 동방의 천문학자들은 현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데 반해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P128

원래 논증이란 하나의 명제나 그 이상의 명제를 전제로 삼고 출발해서 그로부터 귀결되는 다른 명제 즉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논증의 근본 유형이 그가 삼단논증이란 이름으로 부른 한 종류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삼단 논증은 하나의 매개 명사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주어-술어 명제를 전제로 삼고 이루어지는 논증이다.

 

P129

삼단논증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최근의 발전된 논리학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과거에 생각했던 것처럼 중요하진 않다고 보게 되었다. 과학에 관한 한 삼단논증을 통한 작업만으로는 언제나 전제들의 진리성이 증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서 과학의 출발점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은 논증이 필요하지 않은 명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이런 진술들을 공리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리로 인정하는 진술은 누구나 듣자마자 명료하게 이해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모두가 특별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필요는 없는 진술이다.

 

P131

논리학은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이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법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일반적 방법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논리학은 식별 (discrimination)의 기준과 증명(demonstration)의 기준을 과학에 제공하므로, 과학적 탐구를 활성화시키는 도구나 기구로 간주해야 한다.

 

P131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단지 말에만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은 언어 아닌 것들을 나타내는 어느 정도 우연히 정해진 양정적 표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학이 문법학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논리학이 문법학과 똑 같은 것일 수 없다. 또한 논리학은 형이상학과 같은 것도 아닌데, 그 이유는 논리학은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론을 거부했던 사실이 중요성을 띠게 된다. 형상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제한된 의미의 논리학이 형이상학과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별개의 분야라고 주장하였다. 보편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의 시도는 여하튼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다.

 

P132

범주는 물론 추상 개념이다. 범주는 무엇에 대해서든 제기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가 낱말의 절대적 의미 즉 낱말이 다른 어떤 것과도 관련없이 그 자체로서 지니는 의미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낱말의 의미가 이 세계의 사실에 관한 옳은 판단을 내린다는 것과는 다른 뜻에서 지식의 대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낱말의 의미는 누구나 감각 경험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해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현대의 언어학에서는 사람이 낱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상태를 그게 무엇이건 어떤 것에 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 관한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경우에 우리가 갖는 지식은 이와 전혀 종류가 다른 지식이다. 이런 지식의 경우에는 개념들이 결합하여 이 세계에서 성립하는 어떤 사실 (사태)을 나타낸다.

 

P133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 중의 하나는 원인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물질-형상 이론과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 상황에는 물질의 측면과 형상의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형상의 측면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고 본다. 첫째는 제한된 의미의 형상의 측면이 있는데, 이것은 형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는 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요인이 있다. 셋째는 그 변화가 이루려고 하는 목표나 목적이 있다. 원인 상황이 지닌 이 네 가지 측면은 각기 물질 원인, 형상원인, 작용 원인, 목적 원인이라 불린다.

 

P134

작용 원인은 현대의 용어로는 그저 원인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돌맹이가 층계에서 떨어지는 것은 사람이나 다른 무엇이 그걸 밀어내기 때문이다. 현대의 물리 과학에서는 이 작용 원인만을 유일한 원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P135

아주 일반적으로 말하면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목적론적 설명은 작용 원인 개념을 사용하는 설명으로 대치되고 있다. 심리학조차도 이 추세에 따르고 있다. 정신 분석학 역시 그 장점이나 단점이 무엇이건 사람의 행동을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P135

목적론은 궁극적으로 의인적 설명이나 신학적 설명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결함이 있다.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다. 따라서 목적성이란 개념이 이치에 닿게 쓰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활동 영역 안에서이다. 하지만 막대기나 돌멩이는 아무런 목적도 품지 못한다. 그러므로 막대기나 돌멩이가 목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적절한 안전 장치만 갖추어진다면 잠재성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경향성이란 개념 역시 사용할 수 있다.

 

P135

그의 목적성은 목적과 관련시켜 고찰되어야 하는데, 그는 이 생각을 자신이 설계(계획)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이 세계의 질서가 실존한다는 전제로부터 추리하고 있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해서 물리 과학의 연구가 번성할 수 없다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왜냐하면 탐구자의 호기심이 가짜 설명에 무마되어 사라진다면 자연 현상에 대한 진짜 설명이 나올 가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136

그는 실제로 운동이 일어난다는 건 사실이므로, 그 사실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인정한다면, 문제의 초점은 이 사실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입장의 차이를 현대의 용어로 표현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엘레아의 이성중의 철학자들에 대립하는 경험주의 철학자들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경험적 절차에는 무언가 신뢰할 수 없고 깔끔하게 정돈될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수가 흔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P140

신은 세계에 최초의 충격을 주었지만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시동자이다. 이 일을 하고 나면 신은 더 이상 이 세계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들의 소행을 지켜보는 일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들이 가져온 중립적인 신의 개념인데, 이는 원인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나오는 부수적인 결론이다.

 

P140

윤리적 문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이 이성혼의 행복에 있다고 보았으며, 다시 이성혼의 행복은 이성의 인도에 따라 덕스러운 활동을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해나가는 삶이라고 보았다.

 

P141

어쨌든 중용 이론은 완전히 성공적인 이론은 못 된다. 예컨대 이 이론에 따라 정직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정직은 하나의 미덕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정직이 큰 거짓말과 작은 거짓말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항간에는 정직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이런 식의 정의는 지적 정직성이라는 미덕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P141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행하는 선행이나 악행은 강요나 무지로 인한 경우 이외에는 모조리 자발적 행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사람이 고의로 악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이와 아울러 그는 선택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 선택의 문제는 고의로 죄를 짓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에서는 제기조차 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P142

정의론에 항상 따르는 난점은 이 견해가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상당히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기준을 주장했었는데, 그건 교육의 정도라는 기준이었다. 이 기준은 중세 시대에는 내내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대단히 유효하게 쓰이고 있다. 정의론이 현실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든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P143

부와 그 획득 수단에 관해 논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시대 내내 대단한 영향을 미쳤던 한 가지 구별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물은 두 가지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그 중에서 첫번째 것은 사물의 고유 가치 즉 사용 가치이다. 이는 어떤 사람이 한 켤레의 구두를 신을 때 그 구두의 가치와 같은 것이다. 두번째 것은 교환 가치이다. 교환은 한 켤레의 구두가 실제로 쓰일 수 있는 용도를 지닌 다른 상품과 고환되는 게 아니라 돈과 교환되는 경우에는 어떤 종류의 비자연적 가치를 만들어 낸다. 돈은 쉽게 옮길 수 있는 가치의 압축된 형태라는 점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일종의 독립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는 좋지 못한 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경우는 금리를 목적으로 돈을 빌려 주는 일이다.

 

P147

비극의 궁극적 목적은 감정을 깨끗이 비워 버림으로써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어 “catharsis”(승화)의 의미다. 관객은 연극 중의 인물에 동화되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그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그런 감정의 짐을 실제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은 치료 목적을 갖고 있다. 방금 사용한 치료라는 용어는 의학에서 빌려 온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독창적인 점은 가벼운 수준의 병을 앓게 함으로써 그 병을 극복하게 하는 치료 방법 즉 일종의 정신의 예방 접종법을 가르쳐 준 데 있다. 비극의 목적에 대한 이런 설명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늘 지니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아주 당연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P148

우리는 그리스 철학이 이론적 이해를 목표로 하는 과학과 동기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철학적 물음들이 과학적 탐구의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그리스 철학의 본성에 있다. 이는 특히 수학에 잘 맞는 말이다. 파타고라스 시대 이래로 산술학과 가하학은 그리스 철학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P150

더욱이 기하학 같은 학문에 정통하자면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클리드가 이집트의 왕으로부터 두세 번의 평이한 수업으로 가하학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는 유명한 대답을 했던 건 이 때문이다.

 

P152

사람들은 그 당시의 상식적인 견해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난 이 이론에 대해 상당히 반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적의를 품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어떤 철학자들은 어쩌면 주로 윤리적 이유 때문에 이 이론에 반대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구가 만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기존의 도덕적 표준들이 파괴될 수밖에 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토아 학파의 클레안테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아리스타르쿠스를 불경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P153

사람이 어떤 견해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 견해에 대해서 초연하게 공평무사한 태도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철학자와 과학자가 이 고귀한 미덕을 갖추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미덕을 갖추지 못하고 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수학은 이러한 태도를 함양하는 일에 놀라울 만큼 적합한 학문이다. 이점에서 보면 많은 위대한 철학자가 수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P154

결론적으로 수학이란 학문이 그 문제의 단순성과 그 구조의 명료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의 창조에 대해서도 상당한 안목을 갖추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강조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그리스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 “미학에 대해 매우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미학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독일의 바움가르텐이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어쨌든 참다움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읊은 키츠의 시구가 표현하고 있는 감정은 완전히 그리스적인 감정이다. 이는 한 플라톤주의자가 기하학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항아리를 관조하면서 의당 느끼는 감정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다. 수학적 증명의 구조 바로 그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수학을 하다가 느끼게 되는 수학적 구조의 우아함과 경제성 같은 관념은 그 본성으로 보아 미학적 관념이다.

 

P159

끊임없는 불안감 때문에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갔으며, 지적이고 도덕적인 기질이 일반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그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당대의 정치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실패했듯이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실패하였다.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가 조직화의 천재인 로마 사람들에게 넘어감으로써 혼돈에서 벗어나 질서를 세우게 되어 그리스 문명이 후세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P160

견유학파의 철학자들이 늘 되뇌는 요지는 이 세상에서 세속적으로 좋은 것들을 외면해 버리고, 이 세상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하게 좋은 것인 덕에 전념하라는 것이었다.

 

P160

수중에 넣을 것이 있을 때는 전력을 다하여 획득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을 때는 불평하지 않고, 즐길 수 있을 때는 인생을 즐기지만 종잡을 수 없는 운명의 변덕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인생에 대한 일종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다. “cynical”이란 말에 냉소적이라는 달갑지 않은 의미가 덧붙게 된 것은 견유학파의 신조가 이렇게 변조되어 널리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P162

회의주의자들은 미신에 빠져 들어가고 있던 시대에 시대의 폭로자로서 가치있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사실로 보아 회의주의자들은 내심 아무 거리낌도 느끼지 않고 어떤 미신적인 의식을 흉내내기로 작정했을 법하기도 하다. 하나의 철학 체계로서의 회의주의가 열렬한 회의주의자들 가운데 착실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영리한 편인 설익은 냉소가들의 세대를 낳는 데 이바지했던 것은 완전히 부정적인 이 사고 방식 때문이다.

 

P163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최고선은 쾌락이다. 쾌락 없이는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과 같은 비중으로 육체적 쾌락도 포함된다. 정신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을 관조하는 데 있으며, 참으로 중요한 어떤 의미로도 육체적 쾌락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정신적 활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아주 잘 제어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관조의 대상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반면에, 육체적인 애착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된다. 여기서 정신적 쾌락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 이런 견해에 입각해서 보면 덕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신중한 사람이다.

 

P163

에피쿠로스의 경우에는 활기찬 생명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실은 그가 능동적 쾌락과 수동적 쾌락을 구별하고 있지만, 수동적 쾌락에 우위를 부여하고 있다. 능동적 쾌락은 우리가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원동력으로 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체험하게 된다. 일단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어떤 욕구도 없을 때 수동적 쾌락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수동적 쾌락은 포만의 상태에서 느끼는 취한 듯 열중한 상태이다.

 

P164

소트라테스가 지식은 선이라고 주장했던 점은 근본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순전히 알기 위해서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탐구할 때 에피쿠로스가 구하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취한 듯 열중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P164

영혼의 원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신체와의 관련을 끊고 뿔뿔이 흩어져서 원자로서 존속하기는 하지만, 그 것들은 이미 감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에피쿠로스는 죽음이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란 불합리한 감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종교에 대해서는 맹렬히 반대하면서도 신들이 실존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P166

우주의 모든 진행 과정이 따르게 되는 법칙은 우주 역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지배하는 절대적인 어떤 권위로부터 흘러나온다. 모든 것이 예정된 방식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나타난다. 제논은 최고의 절대적 힘 즉 신의 힘이 이 세계 밖의 어떤 것이 아니라, 모래밭에서 스며나오는 습기처럼 우주 곳곳에 두루 퍼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신은 이 우주에 내재하는 힘이며, 그 일부가 우리들 개개인 안에 살아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견해가 스토아 철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시피노자의 철학적 저작들을 통해 현대에 와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P167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지를 자연에 대립시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조종하는 일이다. 이 세상의 재화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어떤 폭군도 한 인간에게서 그가 소유하고 있는 외적인 것들은 모조리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양도할 수 없는 내적 소유물인 덕만큼은 탈취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외부의 재화에 대한 그릇된 욕구를 거부해 버릴 때 마음을 쏟아야 할 유일한 대상인 덕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손상당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P167

스토아 철학이 정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목은 어떤 의미에서 덕이라는 내면적인 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본 사실이다. 물질적 재산의 손실은 언제라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존심을 잃는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P170

역시 박해란 언제나 박해하는 쪽이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질서가 확고하게 잡혀 있고 자신 만만하다면 이교도를 박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0

아우렐리우스가 선에 대한 대개의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론에 동의하면서도, 플라톤의 노선에 따라서 공적 의무를 많이 강조하는 견해를 고수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정치적 통일체인 국가 안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잠시 비쳤던 자유 의지와 결정론 문제에 대해 운리학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곤란한 문제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P170

스토아 철학은 비록 대제국의 시대 내내 일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대규모의 노예가 실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주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사고 노선에 따라 스토아 철학은 자연의 법칙과 국가의 법률은 다른 것이라고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권은 인간의 본성 바로 그것으로 인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성질의 권리를 뜻한다. 이 자연권론은 당시에 사회적 지위를 완전히 박탈당했던 사람들의 상태를 개선하는 쪽으로 로마법이 완화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에 부흥 시대 이후 왕권이 신성하다는 생각에 맞서 싸울 때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자연권 개념이 부활되었다.

 

P174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운명에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자 비합리적인 터전을 얻게 된 것이다.

 

P176

지금 남아 있는 프로티노스의 저작집은 전체가 9권인데, (에네아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저작들은 일반적으로 플라톤적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플라톤의 저작들이 지진 의의와 색채는 없고, 거의 전부가 형상론과 피타고라스 학파의 신화들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 이 저작에는 현실의 세계로부터 벗어난 어떤 초연함이 있다. 이 점은 당시 로마 제국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놀라운 일이 못 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직면해서도 똑바로 밝고 맑게 사는 평온한 기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무감각한 인간이나 절대 불굴의 정신을 지닌 인간이 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의 세계와 이 세상의 불행들을 비실재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형상론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P177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스 철학의 위대성은 로고서의 근본적 역할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사상은 얼마간의 신비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신비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P178

프로티노스의 신비주의는 오히려 반대로 자연은 아름다우며, 사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사물들의 배열 구조상 그런 것이라고 아주 허심탄회하게 인정한다. 이처럼 편협하지 않은 시각을 후세의 신비가들이나 종교 교육자들은 갖추지 못했으며, 이 점에 있어서는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P178

영혼 불멸의 문제에 관해서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파이돈)에 개진되어 있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사람의 영혼은 본질이며, 본질이 영원하듯이 영혼도 영원하다고 본다. 이는 영혼이 형상에 속한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같은 종류의 견해이다. 그런데도 플로티노스의 이론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요소가 약간 섞여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은 신체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존속하기는 하지만, 누스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영혼을 영혼으로서 유지시키는 본질적 특성은 잃지 않을지라도 그 영혼이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개성은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P179

플라톤은 일찍이 철학은 당혹감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고대 때부터 경이로운 것과 경탄스러운 것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이 능력을 비상할 정도로 갖추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탐구와 연구라는 일반적 생각은 서방 세계의 골격을 마련해 놓은 그리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발명품들 중의 하나이다.

 

P180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가들이 적절한 정치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 실패한 사실이 한 원인이었다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그리스 사람들의 실패가 탁월한 지적인 힘에서 비롯된 어떤 오만 탓이었다면, 로마 사람들은 순전히 상상력의 결핍 때문에 실패했다.

 

P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 무사한 탐구의 성과를 이용해서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이 참신한 활력을 다소 자의식에 빠져들었던 스토아 철학이 헤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자리를 굳혔을 때에 얼마간 잃어 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양 문명을 이끄는 지성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최상의 것들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P191

기독교 역시 그 지지자들 중의 한 사람이 신도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었다면 아마 비정통적인 유태교파들 중의 하나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터키의 타르소에서 태어난 바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바울은 그리스 문화가 몸에 밴 유태인이면서 기독교 신자였는데, 전도를 방해하는 외적인 장애들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기독교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로 만들었다.

 

P192

그리스도 가현설을 믿는 도시티즘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가 아니라 진짜 예수의 환영 비슷한 대용물이었다고 가르쳤다. 이 교리와 관련해서 누구에게나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이피게네이아의 희생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나중에 무하마드도 이 그리스도 가현설을 설교했는데, 그는 예수가 예언자라는 것은 인정했으나 자기보다는 중요하지 못한 예언자라고 주장하였다.

 

P195

암브로시우스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황제가 이교도를 편드는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민이 병사로서 황제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황제는 신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글을 써 보냈다.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을 음미해 보면, 암브로시우스의 이 말은 신의 것은 신에게 돌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는 예수의 요구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이 세상의 복종을 요구하는 신의 명령의 전달 매체인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요구를 간파할 수 있다.

 

P196

예로니무스는 동방을 향해 떠났는데, 이번에는 그의 독신 생활과 금욕 생활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단의 정숙한 로마 부인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386년에 베들레헴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420년에 이곳에서 죽었다. 그가 남긴 걸작으로는 (불가타 성서) 즉 교회에서 정통본으로 인정받은 라틴어 번역 성경이 있다.

 

P197

구약 시대의 c기에는 사람이 죄악에 떨어지는 이유는 민족적 결함때문이라고 보던 생각이 점차 개인의 결점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 강조점의 변화는 기독교의 신학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는데, 제도로서의 교회는 전혀 과오를 범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를 범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의 기독교도 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개인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개신교 신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카톨릭교에서는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측면을 모두 중요시했다.

 

P199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 성서의 창조주 즉 이 세계를 초월해 있는 신을 택하였다. 이 신은 영원한 신령, 다시 말하면 인과 원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신간이 흘러도 변화나 발전이 전혀 없는 신령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 그와 더불어 시간도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란 게 아예 없기 때문에 누구도 창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을 수조차 없게 된다.

 

P199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신간은 삼중의 현재이다. 사실 정확하게 현재라 부를 수 있는 현재야말로 참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서 지금 살아 있고, 미래도 현재의 기대로서 지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론의 초점은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이 겪는 한 가지 정신적 경험으로서의 시간이 지닌 주관적 성격을 강조하는데 있다.

 

P202

우리는 철학적 물음을 그 배경에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과 관계없이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철학의 역사를 고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철학적 물음이 이전에 제기되었으며, 또 그 철학적 물음들에 대해서 얼마쯤 이치에 닿는 답이 과거에 제시되었다고 보는 데 있을 뿐이다.

 

P204

전체 기독교 회의에서 정통 교리의 표준을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이단의 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점은 특히 동방의 교회들에게 심했었다. 후세에 이슬람교의 세력이 그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통교회가 이단 교회에 보인 비타협적인 태도에 적잖은 원인이 있었다.

 

P215

그는 이성과 계시는 진리를 얻는 두 가지 독립적인 근원이라서 서로 중복되지도 않고 충돌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는 특정한 경우에 이성과 계시가 충돌을 일으킨다면 이성을 계시보다 더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실은 참다운 종교는 틀림없이 참다운 철학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P215

에리우게나의 철학은 실재주의라는 말의 스콜라 철학적 의미에서 실재주의자였다. 여기서 실재주의라는 말이 스콜라 철학에서 사용될 때에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 두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개진했던 형상론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 경우의 실재주의는 보편자들이 사물이며, 보편자가 개별자보다 앞선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되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입장은 유명주의라 하는데, 보편잘들은 단지 이름일 뿐이며, 따라서 개별자가 보편자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보편자 문제를 둘러싸고 실재주의자들과 유명주의자들은 중세 시대 전체에 걸쳐 맹렬한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 싸움은 오늘날에도 과학 철학과 수학 철학에서 계속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의 실재주의는 형상론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근대에 와서는 관념주의라고 불리고 있다.

 

P215

에리우게나의 실재론은 (자연의 구분에 대하여)라는 그의 철학적 주저 속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창조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첫째, 자연에는 다른 것을 창조하면서 그 자신은 창조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신이다. 둘째, 그 자신이 창조된 거이면서 다른 것을 창조하는 것이 있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형상론에 나오는 관념들이다. 이 관념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면서 한편으로 개별자들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이 관념들은 신 안에서 생명을 유지한다. 셋째, 공간과 시간 속의 사물들이 있다. 이것들은 창조된 것이면서 다른 것을 창조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창조하지도 않고 창조되지도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완전히 한바퀴 돌아 모든 것이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궁극의 목적으로서의 신에 이르게 된다. 신은 그 자신의 목적과 별개로 인식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바로 이 의미에서 신은 그 자신의 목적을 창조하지 않는다.

 

P216

에리우게나의 삼위 일체설은 플로티노스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신의 존재는 사물들의 존재로, 신의 지혜는 사물들의 질서로, 신의 생명은 사물들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 세 가지 것은 각기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P218

신이 모순율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다미안의 주장은 암암리에 신이 전능하다는 생각에 난점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만일 신이 전능하다면 신은 돌을 자신이 들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만들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돌을 들 수 있으면서 동시에 들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전능의 개념은 모순율을 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개념으로 판명된다.

 

P220

회교는 성서에 나오는 민족들은 해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교도들은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 일을 종교적 의무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경전이 명령하는 규율들을 철저히 고수해 오던 기독교도, 유태교도, 조로아스터교도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P225

그는 로스켈리누스보다 더욱 정확하게 누군가가 어던 낱말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그 낱말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아벨라르는 보편자가 사물들의 유사성으로부터 생기지만, 이 유사성 자체가 실재주의자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사물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P226

교회 자체 안에서는 교황청이 많은 권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는 교황권이 광범위하게 세속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이미 교황권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전조였다. 왜냐하면 이 세속의 세상에서 교황의 정치 권력이 튼튼해짐에 따라 뒤이어 오는 구체적인 정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황의 권력이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나중에 종교 개혁이 일어나게 된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

 

P227

이러한 사건들에 비추어 보면 그 후의 사람들이 사상을 마녀 사냥의 방법으로 쉽사리 박멸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누구나 의심이 들 것이다. 역사는 후세의 사람들이 이 교훈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다.

 

P228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둘 다 종교 재판소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탁월하다고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종교 재판소가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는 전혀 퍼지지 않았던 사실은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한때는 종교 재판소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잠시의 고통이 영혼을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한다는 생각 아래 희생자에게 가하는 고통은 희생자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들이 실제로 지녔던 동기는 그들의 경건한 의도를 강화시키려는 것인 경우가 때로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228

오늘날에는 아퀴나스의 신학만큼 우월한 격위를 인정받으면서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철학은 없다. 물론 아퀴나스 생존 당시에 그의 철학이 이러한 특권적 위치를 단숨에 확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의 철학의 권위는 교회 안에 견고하게 확립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철학의 주류는 다시 한번 세속의 통로로 점차 흘러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에 넘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립 정신에로 되돌아 가는 일이었다.

 

P232

아퀴나스에게는 신이 모든 실존의 원천이다. 유한한 사물은 오직 우연히 실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유한한 사물은 자신의 실존을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어떤 것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의존하게 마련인데, 이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어떤 것이 신이다. 이런 내용이 스콜라 철학의 언어를 살펴보면 본질과 실존이란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사물의 본질이란 대체로 말해서 성질 즉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존이란 어떤 사물이 실제로 있다는 그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질과 실존이 제각기 스스로 독립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두 용어가 추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구체적 사물은 반드시 본질과 실존을 둘 다 갖추고 있다.

 

P234

신에 의해 창조되어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신 능력은 도저히 신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본질에 함축되어 있는 신의 실존이 안셀무스 식으로는 실제로 결코 연역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P234

신플라톤주의의 신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와 공존하는 신인데 반해서, 아퀴나스의 신은 이 창조된 세계보다 훨씬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일종의 영적인 사제장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신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성질을 무한한 정도까지 소유하고 있는데, 이 성질들은 어떻게든 이 신의 실존 바로 그 사실로부터만 나온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신의 성질에 관해서는 “…아닌 건 아니다는 식의 부정 진술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한한 인간의 정신 능력은 신에 관해서 긍정 진술을 통한 적극적 정의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P235

신앙의 영역에서 이성적 탐구를 엄격하게 배제하는 일은 그 후로는 과학과 철학이 신앙의 신조들 즉 신앙의 내용을 흠잡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P236

한편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에 관해서라면, 로저 베이컨은 이런 저런 권위에 의지하기보다는 실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스콜라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변증이란 연역적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이 방법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일에 충분하지 않다고 강력하게 지적했다. 논증의 결론이 확실한 상태에 도달하려면 실험을 통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P236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으로 인해서 신앙과 이성의 분가는 더욱 명확해졌다. 이 일은 한편으로는 이성의 영역을 좁히는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에게서 이성의 자유와 독립을 완전히 되찾는 일이었다. 이제 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신학은 더 이상 이성적인 학문이 아니라 계시에 의해 고무된 일련의 쓸모있는 신념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P237

신에 관한 지식은 창조된 사물들 다시 말해서 그 실존이 그저 우연일 뿐인데다가 신의 의지에 의존하고 있는 피조물들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스코투스는 실은 사물의 실존을 그 사물의 본질과 동일시하고 있는 셈이다. 아퀴나스 철학에서는 이와 반대로 실존과 본질의 동일시가 신을 정의하는 데 쓰였던 사실을 독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릇 지식이란 본질에 관한 지식이며, 따라서 이 본질은 신의 마음 속에 있는 관념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체에서 본질과 실존이 일치하므로, 아퀴나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개체를 개체이게 만드는 것은 물질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반드시 형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스코투스는 형상이 실체라고 간주하면서도 온갖 형상을 전부 인정하는 플라톤 식의 실재론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스코투스의 경우에는 하나의 개체에 다양한 형상이 있을 수 있지만, 이 형상들은 오직 사고상에서만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그런 형상들이 독립적으로 실존한다는 사실에 관ㅇ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P237

스코투스는 최고의 권능의 행사 여부는 신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에서도 의지가 최고의 권능을 행사한다고 보아 지성을 지배하는 것은 의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성은 의지가 목표로 삼은 대상에 의해서 속박당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의지의 힘이라고 보았다.

 

P238

오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및 이들의 추종자들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일반적 존재론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개체 즉 개개의 사물이 실재성을 갖는 것이고, 이 개체만이 직접적인 지식과 확실한 지식을 형성시킬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전개한 교묘한 설명 장치가 존재를 설명하는 일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오캄의 적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라는 말을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생각이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오캄의 다른 표현, 필요 이상으로 있는 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격률의 토대이다. 이 기본 방침은 그의 책에 있는 말은 아니지만 후세에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면서 전해 내려왔다. 여기서 말하는 있는 것이란 물론 전통적 형이상학이 노해 온 형상(이데아), 실체 등등의 것이다.

 

P240

신은 감각 경험을 통해서 알려질 수 없으며, 신에 간해서는 아무것도 인간의 이성적 장치에 의해서 확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캄은 신의 실존에 대한 신념과 신이 여러 가지 속성에 관한 신념은 신앙에 의존할 뿐이며, 이 점은 삼위 일체, 영혼의 불멸, 창조 등에 관한 기독교 교리 체계 전체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P240

오캄은 이성의 영역을 제한하고 논리학을 형이상학과 신학의 불필요한 말썽거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과학적 탐구에 대한 새로운 노력을 북돋우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P241

단테의 명성은 시인으로서의 업적에만 한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의 일상 언어를 문학의 보편적 도구로 다듬었는데, 이로써 지방의 잡다한 사투리를 넘어선 표준어가 최초로 설정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라틴어만이 문학의 표현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이제는 이탈리아어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P243

각 민족마다 자기 나라 말을 사용하게 되자, 교회는 철학과 과학이 분야에서 전개되는 지적 활동을 지배하는 힘을 상당히 잃어 버리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세속 문학이 처음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점차 북부 유럽으로 올라오면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신앙과 이성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나와 전보다 훨씬더 넓은 영역에 뻗친 탐구심은 약간의 회의주의와 더불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들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았고, 사람들의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적어도 그걸 변경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가르쳤다.

 

P243

교화가 항상 기독교 신자의 눈앞에서 파문의 위협을 내보임으로써 신자들을 통제하는 일은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대담하게 신에 관해서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사상가들과 학자들에 대한 도덕적 지배력과 종교적 지배력을 상실하였으며, 한편 왕들과 인민 대중은 양쪽 다 교황이 파견한 대리자가 부과하는 엄청난 세금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P245

위클리프는 생애의 말련에 교회를 반대하게 되었는데, 그 첫째 이유는 성실한 일반 신자들은 아주 가난하게 사는 데 비해 교황과 주교들은 호사스런 세속 생활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376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행한 강의를 통해 시민의 소유권에 관해서 참신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 요지는 오직 의로운 사람만이 재산과 권한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으로 인해 성직자들은 이 도전을 물리치지 못하는 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실제로 몰수당할 입장에 처하게 되었으니, 이는 국가에 의해 판정되어야 할 문제였다. 이 판결이 어떻게 나든 이로써 성직자의 재산은 악한 것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옛날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재산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성직자도 재산을 갖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P246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P247

기독교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앞으로 다가올 더 훌륭한 생화을 준비하는 일로 간주하였으며, 인생의 현실에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을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지고, 나온 죄를 정화시키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시련으로 간주하였다.

 

P247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철학이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이 이성을 초월하기는 하지만, 신앙인에게는 이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신앙을 변호하도록 함으로써 최대한 신앙을 강화시켜 의심의 공격을 물리치는 일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P247

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플라톤의 철학보다 기독교 신학과 어울리기 쉬웠는가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는 이 점을 스콜라 철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실재주의자의 이론은 신의 힘이 이 세계의 사물들에 개입하여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별로 남겨 놓지 않았다. 유명주의는 이 점에서 신에게 훨씬더 넓은 영역을 제공한다. 유태교도와 기독교도의 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아주 다른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플라톤 철학보다 기독교 신앙의 얼개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P248

이런 경우에 중요한 점은 종교적 원리가 경험적 탐구에 의해 발견된 사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면 항상 종교가 수세에 몰리다가 결국에는 입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경우에는 신앙이 이성과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갈등은 이성적 변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러서야만 하는 쪽은 언제나 종교인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물러서기만 한다면, 종교는 다시 독자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유지할 수 있다.

 

P250

중세시대의 몰락으로부터 17세기의 거대한 진보의 격랑에 이르는 전환기는 네 가지 도도한 운동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15세가와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문예 부흥 운동이다. 단테는 여전히 중세적 사고 방식에 젖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어를 다듬어서 라틴어를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도구를 마련했었다.

문예 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은 인간에게 훨씬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 운동은 인본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새로이 대두한 커다란 대세들 가운데 두번째 운동이다.

인본주의 운동은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과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이 종교 개혁 운동이 중세 세계를 바꾸어 놓은 세번째 주요한 힘이었다.

오캄의 비판 이후 두 세기 동안에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발전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에 관하여 태양 중심 쳬계를 재발견한 사실이다. 태양 중심 체계에 대한 설명은 1543년에 인쇄되어 공표되었다.

 

P252

17세기 이후로 물리학과 수학은 급속히 발전하ㅕㅁㄴ서 기술의 발전을 대대적을 촉진하였으므로 서양은 우세한 위치를 확고하게 하였다. 과학적 전통은 물질적 혜택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본래 독립적인 사상을 키우는 더없이 홀륭한 촉진제이다. 서양 문명이 전래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먼저 서양의 물질 문명이 퍼지고 그 뒤를 따라 결국에는 서양의 정치적 이상까지 퍼져 나갔다.

 

P252

탐구가 존중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합리적 토론이 지켜야 하는 보편적 규범, 소크라테스의 용어로 말하면 변증의 규칙들뿐이다.

 

P252

그렇지만 과학이 기술적으로 응용되면서 거둔 눈부신 성공은 다른 종류의 위험을 만들어 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노력을 적절히 통제하여 활용하기만 한다면 정말이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공업 기술은 많은 사람의 지성과 손의 협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창안해 내는 일을 임무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신의 능력이 참으로 한계가 없는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그런 모든 계획이 반드시 인간의 고된 노력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목적에 봉사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게 되었다. 지금 세계는 이 분야에서 적정 한도를 넘어버릴 우려가 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P253

철학의 분야에서는 인간에 대한 강조가 철학적 사변을 인간 내부로 향하게 만들었으며, 이 사실로 인해 임을 강조하는 철학을 고무하는 관점과는 정반대되는 관점에 도달하였다. 인간은 이제 제 자신의 능력의 비판자가 되었다. 그래서 확실한 직접 경험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도전 받지 않은 채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주관적 태도는 극단적인 형태의 회의주의에 도달하였는데, 이는 개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 지나친 입장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나름대로 지나친 입장이다. 그러므로 이 두 극단적 입장을 중재하는 해결책이 무언가 나와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P253

옛 권위의 토대를 허무는 데 마지막으로 기여한 것은 이 인쇄술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성서를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구해서 읽을 수 있게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신앙 문제에 대한 보호자 역할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영역 전체를 보아도 똑 같은 원인이 학문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중시하는 쪽으로 복귀하도록 재촉하였다. 그런데 인쇄술은 옛 질서를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 신조들을 전파시키는 수단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 학자들이 고대 학자들의 저작을 편집하여 출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일은 다시 고전적 저작에 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촉진하였고, 교육의 표준들을 일반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P253

인쇄술의 발명이 토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치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쇄술의 혜택이 의심스럽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허위도 진리가 쉽게 인쇄되는 그만큼 쉽사리 인쇄될 수 있고, 그래서 허위도 진리가 쉽게 퍼지는 그만큼 쉽사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인쇄물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승인만 해야 한다면, 독서 능력은 사람에게 서의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의견과 비판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누군가의 주장을 인쇄하여 광범위하게 유포하는 일이 탐구를 향상시킬 것이다. 이러한 자유가 없는 경우라면 차라리 문맹의 상태가 더 좋을 것이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문젯거리로 대두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제 인쇄물은 더 이상 대량 전달의 유일하게 강력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선 통신과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래로 이런 대량의 전달의 매체들을 우리 스스로 끊임없이 통제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통제가 없으면 자유가 전반적으로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P260

(논설집)에 전개하고 있는 일반적 논의에서 마키아벨리는 견재와 균형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모든 명령은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약간의 합법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근원은 플라톤의 대화편 (정치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7세기에는 로크가 주장하고 18세기에는 몽테스키외가 주장함으로써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이리하여 마키아벨리는 근대의 독재 군주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똑 같은 시대의 자유주의 정치 철학자들의 이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겉과 속이 다른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신조는 치밀하게 검토되지 못한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최대한 실행에 옮겨졌다.

 

P263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은 교육 분야이다. 최근까지도 서유럽의 견해가 우세한 사회라면 어디서나 중등 교육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문 교육은 그가 전개했던 문학 활동과 교육 활동의 덕을 보고 있다. 출판가로서의 업적을 살펴보면 에라스무스는 항상 원전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목표로 삼은 독자층은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독서 대중이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모국어로 저술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라틴어의 위치를 강화시키는 일에 전념하였다.

 

P264

개인이 사물들을 사유 재산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공동의 복지가 철저하게 존중될 수 없다는 것읻. 더욱이 사람들이 제 자신을 위해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재산이 차이에 따라서 사람들이 분열을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유토피아 섬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모어는 이 사실을 전제로 삼고 사유 재산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추리하고 있다. 선원이 유토피아 섬의 주민들에게 기독교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들은 주로 재산에 관한 기독교 교리에 나타나는 공산주의 경향 때문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P267

루터는 이 항의문을 통해 교황청에 도전할 때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이 난처한 항의 질문은 외국 세력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느냐 마느냐 하는 완전히 정치적인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다. 루터가 교황의 파문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린 1520년에 이르자, 이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종교를 개혁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독일의 군주들과 통치자들은 루터의 편을 들기 시작하고, 종교 개혁은 교황의 음흉한 세력에 대한 독일 민족의 반란이 되어 버렸다.

 

P267

개신교 신자를 지칭하는 “Protestant”(항의자) 라는 이름 자체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1529년에 웜의 회의의 규약을 다시 도입하려고 시도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개신교 지지자들이 발표했던 항의문에서 유래한다.

 

P268

개신교는 보편적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각 나라의 정치적 수반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의 수장까지 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사실은 표면상으로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가 행사하는 권력을 갖지 못하므로 불행한 일로 보이나 실은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는데, 개신교 성직자들이 때로 누구 못지 않게 맹신에 빠져 도량이 좁은 짓을 하기는 했었지만 이보다 훨씬더 심각하게 해로운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전혀 제약 없는 권력을 갖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에 가서 사람들은 종교적 투쟁이란 어느 편도 상대방을 완전히 제거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결말도 나지 않는 헛된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관용심이 사람들의 마음에 최종적으로 형성된 것은 이러한 부정적 체험으로부터였다.

 

P270

이 시기에는 비트루비우스가 그리스의 건축에 기초를 두고 말했던 바와 같이 아름다움은 적절한 비율의 조화에 있다고 보았다. 이 생각이 근원은 곧바로 피타고라스의 견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수적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사실은 이데아론 즉 형상론이 발판을 확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육안으로는 어떤 구조의 여러 부분 사이에 성립하는 숫적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구조가 정확한 비율들로 이루어지면 어떤 종류의 미적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에 의거하여 이런 비율들이 이상적 형상으로서 틀림없이 실존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P270

예술은 수를 활용할 수 있기만 하면 즉시 한층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된다. 이 말은 음악의 경우에 가장 명백하게 옳지만, 다른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다. 이 사실은 또한 이 시대의 인본주의 사상가들이 어떻게 여러 분야에 재능을 보일 수 있었는가를 어느 정도 설명하는데, 특히 그들 중의 그처럼 많은 사람이 예술가이자 건축가였던 사실을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조화(비례)에 관한 수학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P272

위대한 과학 혁명이 시작된 것은 이와 같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부흥된 결과였다. 과학 혁명은 처음에 다소 정통적인 피타고라스 철학에서 출발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물리학과 천문학에 세워 놓았던 생각들을 점차 뒤집어 엎고 나서, 마침내 형상들의 이면을 정확히 조사하여 무한히 일반적이면서 강력한 설명력을 가진 가설을 발견하고 끝나게 된다. 이 전체 과정에서 이러한 탐구를 진전시킨 학자들은 자신이 전적으로 플라톤의 전통에 서서 연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P274

이 모든 사실은 어떤 의견을 사실에 비추어 검토하지 않고 그저 순전히 선입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미학적 원리나 신비적 원리에 입각하여 주장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피타고라스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수학적 원리들은 케플러의 세 법칙에 의해서 그 정당성이 훌륭하게 증명되었다.

 

P280

가설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귀납이 하는 역할은 과학의 방법의 작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가설로부터 구체적이면서 시험 가능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수학적 연역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낼 방도가 전혀 없다.

 

P280

베이컨 은 사람들이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것들을 우상이라 불렀다. 첫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인데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족이므로 바로 인간을 우상으로 받드는 경우를 말한다. 희망에 의거한 사고 즉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실례의 하나라고 하겠는데, 특히 자연 현상에 실제로 실존하는 질서보다 더 위대한 질서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그렇다고 하겠다. 두번째 우상은 동굴의 우상인데, 이는 개인이 자신의 잘못된 외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말하므로, 이 우상은 무수히 많다. 세번째 시장의 우상은 사람이 언어에 현혹되는 경향으로 인해 일으키는 과오인데, 특히 철학에 만연되어 있는 과오이다. 끝으로 네번째 극장의 우상은 사상의 체계나 학파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과오이다. 그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종류에 속하는 과오를 많이 범했던 셈이다.

 

P283

이 사회는 보통 사람들로 만들어진 거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리바이어던이란 이름은 바로 이 거인을 뜻한다. 이 거인은 개개의 사람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존재이며, 따라서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태어났다가 죽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는 존재이다. 중앙의 권위는 주권이라 불리면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P285

그는 선배 학자들의 책에서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 버리고 혀행을 통해 배우려고 시도했지만, 철학자들의 의견의 차이만큼이나 관습은 그것대로 다르다는 걸 발견하였다. 결국 데카르트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살피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P286

다만 논리학, 기하학, 산술학만이 이 지적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는 이 세 학문들에서 네 가지 규칙을 발견하였다. 첫째 규칙은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 이외에는 어떤 관념도 결코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규칙은 어떤 문제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할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부분적인 문제로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규칙은 사고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순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경우에는 우리가 순서를 설정해야 한다. 넷째 규칙은 어떤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는 걸 보장하기 위해서 항상 철저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개의 규칙은 데카르트가 대수학을 기하학에 적요할 때 사용했던 방법인데,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오늘날 해석 기하학이라 불리는 분야를 창조하였다.

 

P286

데카르트의 방법은 그가 형이상학에 대한 사고를 진행시켜 나가자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감각 기관을 통해 마련되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므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수학까지도 정도만 가벼울 뿐이지 미심쩍다고 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에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의심하는 사람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그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데카르트의 근본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실존한다는 명제가 듣고 서 있는 기초이다. 데카르트는 이 명제가 형이상학의 선명하고 분명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이리하여 자기는 생각하는 것 즉 자연의 물질과 조금도 관계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신체와도 무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P292

스피노자는 홉즈와 달리 사상의 자유의 주창자였다. 국가는 사상의 자유가 있는 경우에만 제 기능을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형이상학과 윤리 이론으로부터 나오는 귀결이다.

 

P29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자유로부터 때로 불편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말해 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일찍이 무언가를 만든 사람치고 과연 누가 그로 인해 좋지 못한 일이 전혀 발생할 수 없을 만큼 현명하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인생의 모든 일이 법률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인생사의 결함들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결함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금지할 수 없는 일은 때로 그 일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허용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P294

그른 판단의 원인은 지각력의 부족 즉 애매해서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확한 관념들을 판단에 포함시키는 데 있다.

 

P294

사물들을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본성이다.

 

P294

스피노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를 형성시키는 배후의 힘은 자기 보존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순전히 이기적인 원리는 우리 모두를 자기 본위로 냉소나 일삼는 사람으로 떨어뜨려 버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버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머지않아 신과 사이좋게 살기를 열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고 나면 앞으로 설명한 적이 있는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사물들을 더 훌륭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P294

그는 사람이 외부의 여러 가지 영향력과 원인에 얽매어 있는 한 노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상태는 모든 유한한 것이 처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은 신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한 더 이상 그러한 영향력에 지배되지 않게 되는데, 그 까닭은 우주 전체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점점 전체와 동조를 이루어 감에 따라 그 정도에 맞는 자유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독립 즉 자기 결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신에게만 옳은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P297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이유는 그의 많은 저작이 단편적인 글인데다가, 자신의 글 속에서 너무 늦기 전에 주의를 기울여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어 퇴고를 했어야 하는데도 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주로 라이프니츠가 살았던 외적 생활 환경 탁이었다. 철학적 저술이란 즐거운 여가 시간에 지연시키기도 하고 중단도 해가면서 써야 하는 법이다.

 

P301

과학자가 이론을 세울 적에 하는 일은 우연 명제를 파악한 다음, 그 우연 명제가 실제로는 다른 명제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돈하여 제시함으로써, 처음의 우연 명제가 이런 의미에서 필연 명제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오직 신만이 완전 과학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을 필연성의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보았다.

 

P302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비코를 비롯하여 모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받아들이고 싶어했었는데, 마침내 이 이탈리아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론의 새로운 원리를 설정하도록 만들었다. 비코가 보기에 신은 자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서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불완전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코는 인간이 어떤 것을 알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코가 설정한 인식 원리의 가장 근본적 취지를 간명하게 표현하면,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거나 만들 수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이란 말을 본래의 의미 즉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 기본 주장을 진리는 사실과 같은 것이다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P302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지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귀족 집안에서 가정 교사 노릇도 하고 틈틈이 문서 작성을 해주면서 봉급의 부족분응ㄹ 보충하였다. 비코는 그의 철학이 지닌 애매성이 일부 원인이 되어 그 시대 사람들의 이해를 얻지 못했으며, 자신의 수준과 능력에 걸맞는 다른 사상가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행운을 갖지 못하고 말았다.

 

P305

비코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식을 얻는 과정 속의 능동의 요소와 글자 뜻 그대로 재구성의 요소이며, 이 생각은 사람마다 제 눈에 보이는 걸 궁극적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비코가 활동을 강조한 일은 이성주의자들이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을 강조한 일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P305

이성주의자가 상상을 혼란된 생각의 근원이라고 기피하는 대목에서 비코는 반대로 발견의 과정에서 상상이 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명료한 개념에 도달하기 전에 상당히 막연하고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 관하여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한데, 아무리 사고 과정이 모호하다 할지라도 개념적 내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사고가 진행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시적 사고는 심상과 은유에 의해서 진해되는 반면에 개념적 사고는 의도적으로 이론을 꾸며 보는 일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P306

비코의 이론은 사회 조직에 대해서 전통을 쌓아 감으로써 공동 생활의 형태를 천천히 발전시켜 나가는 인간을 포함하고 있는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반해서 사회 계약론은 자기 자신이 완전히 이성적 존재라는 걸 어느날 갑자기 깨닫는 인간과 이성적 결정에 의해서 인생의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타산적 존재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P307

이성주의자의 견해는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의 상태를 향해 발달해 가고 있는 언어의 발전 방향을 오해하고 있는 반면에, 형식화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는 어느 시대의 인간이건 처해 있게 마련인 그 시대의좁은 안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 버린다. 그뿐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이 두번째 접근 방식은 통상 일상의 담화가 이미 의사 소통에 필요하거나 도달할 수 있는 만큼 선명하고 분명하다는 견해와 결합되어 있는데, 이런 생각은 일상의 담화 속에 잔존하는 과건의 철학적 편견들을 간파하지 못한 전혀 분별없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P307

비코의 중요성의 대부분은 오히려 거의 신비스럽다고 할 정도의 19세기 지적 성향과 철학 발전의 전조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비코는 사회학에서 이상적 국가에 대한 이성주의자의 견해를 벗어나서,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경험적 방법에 의해 연구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아주 독창적인 학자였으며, 처음으로 인류의 문명에 관해서 진정한 학문적 이론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성과는 그의 모든 사고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탁월한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비코가 라틴어로 “verum factum”이라고 표현했던 생각 즉 진리는 사실이다라는 생각이다.

 

P308

자유주의는 그 당시에 상업과 공업을 발달시키면서 부상하고 있던 중산층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생활 태도였기 때문에, 귀족층과 군주가 똑같이 특권을 누리고 있던 기존의 견고한 전통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요지는 관용이었다.

 

P309

자신의 기업 활동으로 재산과 부를 축적한 중산 계층의 상인들은 군주들의 독단적인 권력 행사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운동은 재산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왕권을 축소하자는 생각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왕권 신수설의 거부와 더불어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기존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고, 또 그 결과 종래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P311

17세기의 자유주의는 그 이름이 시사하듯이 해방을 추구하는 세력이었다. 자유주의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죽어가는 중세의 전통이 그때까지 여전히 매달려 있던 정치적 폭정과 종교적 박해, 경제적 횡포와 지적 억압과 같은 모든 압박하는 권위로부터 해방시켰다.

 

P312

개인주의 신조는 주로 이성주의자의 이론이었으므로, 이성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 열정의 지배를 받는 건 문명화된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렬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 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P316

그는 자신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논하지 못하였고, 난점이 발생하면 논의를 미결의 상태로 놓아 두는 수가 흔했다. 로크는 현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철학적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정합성있는 입장에서 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편적 방식으로 취급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자기의 말처럼 하급 노동자였던 셈이다.

 

P316

그가 무엇보다도 혐오한 건 그리스어 어원의 의미 그대로의 광신이었다. 이것은 신적 영감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하는데,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적 지도자들의 특징이었다. 로크는 광신적 신앙이 종교로 인한 전쟁 때마다 무섭게 지지를 받아 왔지만, 실은 이성과 계시를 둘 다 파괴한다고 생각하였다.

 

P320

이 연구 방법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로서 대륙 철학과 영국 철학의 전개 모습도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대륙의 선천적 체계는 그 자체로서는 정합성이 있을지라도 그 기본 주장이 반박되어 버리면 허무하게 무너져 흩어져 버린다. 그러나 경험주의 철학은 관찰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약간의 결하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전체가 붕괴되지 않는다.

 

P320

로크의 자유주의를 이어받은 공리주의자 후손들은 계몽된 이기주의 윤리를 지지하였다. 이 계몽된 이기주의라는 생각은 인간의 가장 고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누구나 이 말과 함께 기억해야 할 일은 어떤 사람들이 매우 고상한 도기를 품고 꾸며낸 숭고한 이론 체계의 이름으로 사람이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저질러 왔던 실로 영웅적인 잔학 행위를 이 계몽된 이기주의는 피했었다는 사실이다.

 

P322

버클리가 유물주의라고 간주했던 형이상학적 이론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물질은 그저 성질을 실어 나르는 형이상학적 운반 도구일 뿐이며 실제로 정신의 내용물이 되는 경험을 일으키는 건 오직 성질일 따름이기 대문이다. 그러므로 버클리는 (성질이 모조리 제거된) 물질 자체란 도저히 경험될 수 없는 것이어서 추상 작용이 꾸며낸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버클리는 이와 똑 같은 생각을 로크의 추상 관념에 대해서도 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삼각형으로부터 모든 특성을 제거한다면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며, 그때에는 아무런 경험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될 것이다.

 

P326

그는 논의를 뒤엉키게 오도하는 방식들을 조리있게 해결하는 일이 철학자들의 일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이 문제에 관해 (인간 지식의 원리)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의 흥미를 끌었고 또 지식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난점들은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주 많은 난점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 탓에 생겨났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먼지를 일으켜 놓고는 그 먼지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한다.

 

P331

흄은 정신은 여러 가지 지각이 계속 등장하여 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극장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비유에 제한을 가한다. 이 극장의 비유에 의해 오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오직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지각들뿐이다. 이런 지각들의 장면이 상연되는 무대에 관한 생각이나 그러한 무대를 만드는 재료에 관한 생각은 전혀 갖지 말아야 한다.” 흄은 이어서 사람들이 개인의 동일성에 관해서 유지되는 어떤 사물에 관해서 갖게되는 동일성 관념과 혼동하는 경향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실은 자신의 연속적인 경험에 정말로 일어난 변화를 위장하기 위해서 영혼자아실체의 개념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P334

흄은 회의주의 입장을 개진하고 난 후에 이러한 입장이 누구의 일상 생활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는 걸 다음과 같이 아주 명백하게 설명한다. “이쯤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이 논증 내가 보기에도 남에게 설득하기가 매우 힘이 드는 이 논증- 을 진심으로 승인하며, 또 당신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이라서 우리의 판단은 어떤 것이든 진리성이나 허위성을 조금도 지니지 못한다고 보는 진짜 회의주의자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 물음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도 그런 입장을 진정으로 변함없이 유지한 적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연은 어떤 것도 제어할 수 없는 절대적 필연성에 의해서 우리로 하여금 숨쉬고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 이 완전한 회의주의가 지닌 결함을 지적한 내 말을 반박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실은 반대자가 전혀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P335

과학자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학문적 작업은 이미 스피노자와 관련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성주의에 의해 훨씬더 잘 묘사되고 있다. 과학의 목적은 인과 관계들을 마치 타당한 연역 논증의 전제로부터 결론이 나오는 것처럼 결과가 원인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연역 체계에 의해서 밝히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흄의 비판은 이런 연역 체계의 전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타당하다. 우리는 과학의 전제들에 대해서는 계속 미심쩍은 태도 즉 회의적 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P338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 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점에서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낭만주의의 뿌리는 문에 부흥 시대에 고대 그리스를 다소 이상화시켜 동경했던 생각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이성주의 사상가들의 다소 냉정하고 초연한 객관적 사고에 반발하려는 목적으로 감정을 숭배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P339

낭만주의자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고,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불안한 생활 방식이 더욱 고상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가난한 농부의 이상 즉 빈약한 생활을 자신의 수확으로 꾸려 가지만 자유로운 생활로 가난을 보상받고 도시 문명에 의해 부패하지 않은 농부를 이상으로 여기는 생각이 나왔던 것이다. 농부가 항상 자연을 접하고 산다는 점에도 특별한 미덕을 부여하였다. 낭만주의자가 이처럼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가난은 전원 생활의 가난이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산업주의를 더 없는 저주로 여겼는데, 산업 혁명이 사회의 추악상과 개인의 신체적 재해를 많이 일으켜 놓았다는 건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서유럽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산업 무산계급에 대해 낭만주의적 견해를 취하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불평은 그때부터 바로잡혀 왔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낭만적 견해는 아직도 정치학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P340

낭만주의자들은 공리성을 일축해 버리고 심미적 표준에 의존한다. 이 심미적 표준들은 그들의 사고에 관여하는 한 경제적 문제에 관한 판단은 물론이고 행위와 도덕에 관한 견해에도 적용된다. 자연의 아름다움들 중에서 낭만주의들의 찬동을 얻을 수 있는 건 격렬하고 웅장한 풍경이었다.

 

P341

18세기 계몽 운동 시절에 이루어진 훌륭한 기념비라 할 수 있는 업적은 프랑스에서 활동한 일군의 저술가와 과학자가 편찬했던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이 백과사전파 학자들은 과학 속에 새로운 지적 추진력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명백히 의도적으로 종교와 형이상학을 버렸다. 그들은 그 당시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모아 단순히 알파벳 순서로 된 기록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다루는 과학적 방법에 대한 설명서로서 이용될 수 있도록 방대한 저술을 편찬하면서, 이 책이 기성의 권위가 내세우는 몽매주의와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를 바랐었다.

 

P345

루소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욕망을 가르쳐 놓고, 결국 사람들을 그런 욕망에 예속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테네를 반대하는 만큼이나 스파르타를 찬양하였다. 루소는 과학에도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이유는 과학이 야비한 동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문명화된 사람은 모두 부패하였고, 진정으로 덕을 갖춘 사람은 문명에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원시인이라는 것이다.

 

P351

지식론에 관한 칸트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했던 용어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식의 형성 과정이 한편으로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경험의 충격을 받아들이는 일만 하는 감각 기관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감각의 여러 요소를 결합시키는 이해력 즉 지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지성은 반드시 이성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 지성과 이성의 구별을 후세의 헤겔은 자신의 관점에서 이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것인데 반해서, 지성은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이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지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지성은 참으로 사람마다 현격하게 활용의 정도가 실제로 다른 지성이기 때문이다.

 

P353

(순수 이성 비판)은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의지와 그가 판단력이라 부르는 것은 다루지 않고 있다. 의지는 윤리학의 연구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실천 이성 비판)에서 논하고 있다. 판단에 관한 칸트의 견해를 보면 그는 판단력을 목적이나 목표를 평가하는 분별력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판단력은 (판단력 비판)의 주제인데.

 

P353

칸트는 윤리의 최고 원리를 다음과 같은 정언 명령 즉 네 의지를 준칙이면서 동시에 도덕의 보편적인 입법 원리로서도 타당성을 항상 가질 수 있는 준칙에만 의거하여 행위하라는 명령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상당히 준엄한 이 선언은 실제로는 너에게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바를 네가 남에게 해주라는 가르침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원리는 특별 변론 이 경우에는 이런 사실이 있으니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변론 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P356

칸트가 1795년 출판한 소책자 (영원한 평화)에서 개진한 평화와 국제 협력에 관한 견해 역시 종료에 관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는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제안한 주요한 착상들 중의 두 가지는 대의제 정부와 세계 연합에 관한 구상이었다. 오늘날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사는 인류가 칸트의 이 두 가지 구상을 마음에 간직하는 건 좋은 일이라 하겠다.

 

P360

헤겔은 역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를 이 원리에 의거하여 밝히려고 시도한다. 이 일이 역사적 사실들을 견강부회로 왜곡시킬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양식을 알아내는 일과 그러한 원리로부터 역사 자체를 연역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헤겔에 대한 셸링의 비판은 헤겔의 자연 철학이 지닌 결함을 지적했던 것만큼이나 정확하게 헤겔의 역사 철학이 지닌 결함을 지적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P365

결국에는 일종의 중재에 의해서 양쪽 모두 어느 정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는 정말이 신비로운 점이라고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이 타협은 양쪽의 요구가 모순 관계를 이루는 게 아니라 반대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모순 관계와 반대 관계를 구별하는 논리적 관점은 약간 설명이 필요가 있겠다. 두 개의 진술은 그 가운데 어느 한 진술의 진리성이 다른 진술의 허위성을 수반하면 모순 관계에 있다고 하는데, 이 역관계도 성립한다. 그러나 반대 관계에 있는 두 개의 진술은 둘 다 옳을 수 없지만 둘 다 그를 수는 있다. 이런 까닭에 앞에서 든 예에서의 타협적 해결책은 서로 맞서 있는 양쪽의 주장이 둘 다 그릇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실제의 역사 속에서 변증적 성과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처음에는 양쪽의 요구가 반대 관계로 대립해 있던 상황에서 결국에는 어떤 종류의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P371

관념주의자의 견해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배타심과 잔인성과 포악한 행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비해서 자유주의의 원리는 사람들에게 관용심과 이해심과 타협심을 길러 놓는다.

 

P372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철학을 정서적으로 반대하는 일도 적어도 이와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헤겔의 철학은 무미 건조하고 이론적인 편이어서, 영혼의 정열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아주 조금밖에 없다. 확실히 이 말은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 전반에 대해서 옳은 지적이며, 셀링의 후기 사상조차도 이 지적을 모면할 수는 없다. 계몽 사상가들은 정열을 불안스런 마음으로 방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키에르케고르는 정열이 다시 철학적으로 존경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어했다.

 

P373

키에르케고르는 기존의 윤리 이론들이 너무나 이성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윤리 이론에 맞게 인생을 실제로 살아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한 사람의 도덕적 행동이 지닌 특수성은 어떤 윤리 이론에 의해서도 충분히 헤아려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어떤 도덕 규칙의 경우에도 그 규칙성을 깨는 반대 사례나 예외의 경우가 항상 쉽게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사람은 윤리적 원리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살아야 한다고 몰아댔던 것은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P374

실존 철학은 이성의 영역을 제한하였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불합리가 설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P374

이성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이성을 과대 평가하는 일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은 일이다.

 

P377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성주의에 입각한 헤겔 학파의 여러 가지 신조에 반대하면서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의지의 강조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거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많은 철학자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생각은 실용주의자들의 철학뿐만 아니라 니이체의 철학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실존주의자들 역시 의지가 이성에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쏟았다.

 

P377

아마 니체는 말 그대로의 귀족적 인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증진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최고 수준의 인간, 다시 말하면 가장 건강하고 강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지닌 탁월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다른 사람의 비참한 처지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함을 강조하게 되므로 동정과 연민을 표준으로 삼는 기독교 도덕과 상당히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생각만을 니체 사상의 전후 맥락에서 떼어 내어 부각시키면서 그를 20세기에 등장한 정치적 독재자들의 대변인으로 간주했다.

 

P378

그는 첫번째 주요 작품인 (비극의 탄생)(1872)에서 그리스 정신에는 아폴로적 기질과 디오니소스적 기질이 있다는 유명한 구별을 주장하였다. 음울하고 격정적인 디오니소스적 긴장은 인간 실존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와 달리 올림푸스 산의 만신전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인생의 살풍경과 반대편에 서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종의 침착한 상상을 보여준다. 니체는 이 침착한 상상력이 그리스 정신의 아폴로적 성향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리고 보면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 기질의 분출로서의 열망을 아폴로적 성향이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P383

이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P385

아담 스미스가 상품 생산과 관련하여 논했던 노동의 분업은 얼마 나 되어 지적 탐구의 분야에서도 거의 같은 정도로 퍼지게 되었다. 학문적 탐구도 19세기를 지나면서 말하자면 산업화되었던 셈이다.

 

P390

공리주의 윤리학에 관한 밀의 설명은 (공리주의)(1863)에 개진되어 있다. 이 책에는 벤담을 넘어선 내용은 거의 없다. 최초의 공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밀은 결국 어떤 쾌락은 다른 쾌락보다 질적으로 더 높은 쾌락이라고 인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밀은 단지 양적 차이만 보이는 쾌락과 대비되는 질적으로 훌륭한 쾌락이 어떠한 것인가를 설명하는 일에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는 전혀 놀랄 만한 일이 못 되는데, 그 이유는 최대 행복의 원리와 그에 뒤따르는 쾌락의 계산 자체가 암암리에 양의 편을 들면서 질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P391

공리주의 윤리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는 처음부터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이 윤리적 신조는 사람들이 항상 이런 보편적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식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없이 주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리주의 원리에 의하면 법의 기능은 사회에 최대의 행복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런 법적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개혁의 목표는 이상적인 제도의 완성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행복을 마련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의 정착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리주의 윤리학은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이론이다.

 

P398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혁명에 동의하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마련된 따지가 반동 분자라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글자 뜻 그대로 진보의 반대쪽으로 가는 사람 즉 진보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지만 변증적 과정은 이런 반동 분자는 언젠가 때가 되면 제거된다는 것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보는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생각은 마르크스주의 신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폭력에 의해 제거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 철학의 이 대목에는 구세주 신앙의 성향이 강하게 깔려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초기 신조를 창시한 마르크스가 한 우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자들이다라는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민주주의적 신념의 원리가 못 된다는 건 분명하다.

 

P402

콩트는 일찍이 흄이 인간 과학이라고 불렀던 학문적 연구에 대해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콩트는 당시로서는 사회학이 그때부터 연구되고 확립되어야 할 학문이라고 보았으므로, 자기가 이 학문의 창시자라고 자부하였다. 한편 사회학은 논리적 관점에서 정돈한 학문의 계층에서는 마지막 자리에 놓이고 또 가장 복잡한 학문이지만, 사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나 순수 수학의 공리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훨씬더 친숙하게 알고 있다. 이 사실은 역사적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다른 측면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비코의 철학에서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적 생활 바로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P408

제임스의 구별에 따르면, 이성주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주의 이론은 낙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실험을 무시하고 내성을 중시한다. 제임스는 이런 이론을 승인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을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주의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물질적 세계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경험주의 이론은 비관적 성향을 보이고 이 세계의 부분들이 분할되어 있음을 인정하며 사변적 궁리보다는 실험을 더 좋아한다. 제임스에 의하면 이런 이론은 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구별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P410

수학자들은 처음에는 이런 경고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수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일로 매진했는데, 이처럼 우선 진보를 꾀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새로이 자라 나오는 학문 분야에 대해 너무 일찍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로 대하면 상상을 질식시키고 발명을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은 새로운 학문이 발생하여 성장하는 과정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발생한 학문 분야에 종래의 융통성 없는 기준에 의한 혹평을 보류하고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일은 물론 약간의 과오를 범할 위험이야 있지만 학문 발생의 초기 단계에서는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상례이다.

 

P411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상식에 어긋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무한 집합을 다룰 적에는 이런 상식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간단한 예로 자연수 수열을 살펴보자. 자연수 수열은 무한 집합인데, 그 속에 홀수와 짝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제 자연수 수열에서 홀수를 모두 뺀다고 가정하면 누구나 원래의 수열의 절반만 남는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래의 자연수 수열을 이룬 항의 수효와 똑 같은 수효의 짝수가 남아 있게 된다. 이 상당히 놀랄 만한 결론은 아주 쉽게 증명 된다. 우선 자연수 수열을 내려가면서 써 놓은 다음에 그와 나란히 탄탄의 자연수의 2배가 되는 수를 차례로 적어 내려간다. 따라서 첫 번째 수열 즉 자연수 수열의 모든 수에 대해서 그와 대응하는 수가 두 번째 수열 속에 있게 마련이다. 수학자들의 말로 표현하면 1 1의 대응이 성립한다. 그러니 두 수열은 동일한 수효의 항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무한 집합의 경우에는 부분은 전체와 같은 수효의 항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칸토르가 무한 집합을 정의할 때 사용했던 집합의 속성이다.

 

P411

결국 이 사실은 소수 수열의 항의 수효는 자연수 수열의 항의 수효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무한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른바 대각선 행렬 방법은 나중에 기호 논리학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P411

옛날부터 수학자들의 학문적 야심은 수학의 모든 분야가 단 하나의 출발점이나, 그게 안 되면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수효의 전제로부터 연역적으로 구성된 체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P413

프레게는 순수한 논리적 개념들만을 사용하여 라는 용어를 정의함으로써 이 일을 해냈다. 수에 대한 프레게의 정의는 화이트 헤드와 필자가 (수학 원리)에서 제시한 정의와 거의 같은 것이었다. (수학 원리)는 특정한 수를 어떤 특정한 집합과 동등한 모든 집합을 원소로 하는 집합으로 정의했다. 그러므로 3개의 대상을 원소로 하는 집합 하나하나는 모두 수 3의 실례이며, 그래서 수 3 자체는 3개의 대상을 원소로 하는 모든 집합의 집합이다. 그렇다면 수 일반에 관한 일반적 정의는 모든 특정한 수의 집합이며, 따라서 이 집합은 제 3의 논리적 유형에 속하는 집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P414

미국의 논리학자 쉐퍼는 논리적 연역과정 양립할 수 없다는 단 하나의 연산 개념을 설정하고, 그에 의해서 명제 논리학의 다른 연결사들을 차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걸 밝혔다. 이 새로운 연산 개념의 도움을 받아 기호 논리학 체계는 단 하나의 공리를 기초로 하여 확립될 수 있었다.

 

P415

이 난점은 누구나 통상 한 사람에 관해서 민족과 동일 수준의 대상으로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집합에 관해서도 집합들의 집합과 완전히 동일한 수준에 있는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제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제 자신을 원소로 하는 집합들에 관해서 우리가 위에서 역설을 만들어 보려고 그랬던 것처럼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하다. 역설에 얽혀 있는 난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탐구되었으나, 이 난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의견 일치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러면서도 철학자들에게 다시 한번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음미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P416

근래 70년 혹은 80년 동안의 철학을 살펴보려고 하면 우리는 몇 가지 특수한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우리 세대가 근래에 일어난 철학의 다양한 발전에 아직 너무 가까이 있으므로, 이러한 발전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초연한 태도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득한 과거의 사상가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후세의 철학자들의 비판적 평가라는 시험을 받아 왔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옛날의 사상들은 점점 걸러져 왔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간혹 중요한 철학자가 부당하게 잊혀진 경우가 있긴 했지만, 아류의 사상가가 자신의 업적에 의해 밑받침되지 않는 명성을 길게 누린 경우는 정말이지 극히 드물다.

 

P416

최근의 철학자들에 관해서는 이 선택의 문제가 더욱 어렵게 되며, 그래서 균형있는 안목을 유지할 가능성은 한층더 희박해진다. 과거에 있었던 발전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모습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지만, 현재 진행중에 있는 발전들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이야기의 줄기들을 자신있게 밝히기에는 우리의 위치가 현장에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리의 입장은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일을 겪은 다음에 현명해진다든가 이미 성숙한 철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일을 비교적 쉽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변화의 의의를 세세한 사항까지 모조리 연역해 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건 헤겔주의자들의 환상일 것이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몇 가지 일반적인 흐름일 것이다.

 

P416

과거에는 한 사람이 몇 가지 학문에 통달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한 사람이 단 하나의 학문을 철저히 파악하기조차 점점더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지적 탐구의 영역이 계속 더 좁은 영역으로 세분되었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참으로 언어의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건전하지 못한 사태는 현대 기술 사회의 성정을 촉진시켰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으킨 결과이다.

 

P418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이 공통의 기반은 그 후로 사라져 버렸다.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이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이 모든 현실의 결과로 각기 다른 탐구 분야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의사 소통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흔하게 되었다.

 

P418

19세기의 지적 생활에 나타난 또 하나의 새로운 특징은 예술적 추구와 학문적 추구가 분열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분열은 문예 부흥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이 보여주었던 정신적 기질과 비교해 보면 퇴보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은 조화와 균형이라는 하나의 일반 원리에 비추어 과학과 예술을 추구하였음에 반하여,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던 19세기의 사상가들은 과학의 진보가 오히려 사람 자체를 침해했다고 여겨지는 현상들에 반대하여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그들은 실험실과 실험의 결과에 의지하는 과학적 생활방식이 예술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유와 모험의 정신을 질식시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P419

과학자와 철학자는 서로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학자와 철학자는 서로 상대방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는 논평은 옳은 말일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철학에 관해서 알기를 바라는 것은 관념주의 철학자들이 과학에 통달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한 수가 흔하다.

 

P419

오늘날의 전쟁은 다른 많은 일과 마찬가질 굉장히 효율적인 무기들을 동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완전한 파멸로부터 구해온 것은 역설적인 말이지만 반복해서 나타난 통치자들의 무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의 공적 업무를 지휘하고 관리하는 권한이 현대판 아르키메데스라고 할 수 있는 몇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데다가, 전쟁의 무기까지 총이나 대포가 아니라 원자 무기로 강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순식간에 원소로 분해되어 버릴 처지에 놓여 있다.

 

P420

사람들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차이점들을 없애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생애 중에 관찰할 기회가 널려 있었던 불행한 일상사였다. 이 일이 인류의 사회를 한층더 효율적이고 안정되어 있는 기계로 만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일은 틀림없이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의 경우에도 모든 지적 노력의 종말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이런 종류의 꿈은 근본적으로 헤겔주의 철학자들의 환상이다. 이 환상은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점이 있고 그래서 탐구는 그 종말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건전하지 못한 견해이다. 이와 반대로 탐구에는 끝이 없는 게 분명한 것 같기 때문이다. 탐구에는 끝이 없다는 이 사실이 유토피아적 환상의 설계자들이 때때로 그려 보여주는 그런 목표를 향해 우리가 빗나가는 걸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P420

과거와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은 힘과 통제의 근원인 현대 과학의 장치들이 파괴에 사용되었을 때 일어나는 무차별한 결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 시대와 참으로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 중일지라도 올리브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는 걸 가장 질이 나쁜 범죄들 중의 하나로 여겼다.

 

P420

이 모든 경고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대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는 일이 정확성을 기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류 문명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모든 것이 난감해졌다고 여겨질 때에는 세상사를 바로잡기 위해 마침내 통찰력 있고 진취적인 사람이 출현하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도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P424

브래들리는 이성적 사고와 그 범주들을 생생한 감정과 경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였다. 우리가 실재에 관하여 논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단계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어떠한 사고든 언제나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왜곡이라고 보았다. 사고는 현상들만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실재하는 것에 분류와 결합의 이질적인 체계를 부여함으로써 실재하는 것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래들리는 우리가 사고 과정중에 반드시 모순에 얽혀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신조를 (현상과 실재)에서 설명하고 있다.

 

P425

철학을 보는 크로체의 태도의 특징은 미학을 강종하는 점에 있는데, 이는 그가 인간의 정신은 예술 작품을 관조할 때 참으로 구체적인 경험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P429

베르그송은 이유를 제시하는 대신에 자기의 생각을 해설하기 위해 일종의 시적 표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아주 현란한 것이어서 독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필연적 확신에 도달하게 하지는 못한다. 참으로 이 일은 이성의 영역을 축소시키려는 모든 신조가 부딪칠 수 밖에 없는 난점이다. 왜냐하면 그런 신조를 승인해야 하는 근거를 내세우는 일 자체가 이미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P430

철학에서는 이와 상당히 비슷한 경향의 발전이 전통적인 뜻에서의 언어의 의미를 제거하고 언어의 실제 사용 또는 적절한 경우에 일정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려는 성향을 대치시키는 어떤 형태의 언어학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입장에 선 언어학은 파블로프의 개가 신호에 대해 침을 흘리듯이 사람도 생각하기보다는 언어에 대해 조건 반사를 일으킨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P432

프로이트는 망각 현상에 관해서도 억압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과정에 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기억하는 게 두렵기 때문에 잊어 버린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건망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억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P432

듀이가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교육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교육은 그가 1894년에 시카고 대학의 철학 교수로 취임한 이래 줄곧 연구를 계속했던 주제였다. 우리 시대에 와서 전통적 의미의 교육과 기술사회에서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는 직업 훈련 사이의 구별이 상당히 희미해졌다면, 이는 듀이의 저작들이 끼친 영향에 그 원인의 일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P435

과학적 이론이 세계 전체를 설명하려고 하는 한 과학적 이론은 형이상학의 목표와 똑 같은 일이 실제로 진행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과학적 이론이 세계 전체를 설명하려고 하는 한 과학적 이론은 형이상학의 목표와 똑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과 형이상학의 차이점은 다만 과학이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들을 훨씬 더 신뢰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P436

공리주의 철학, 실용주의 철학, 유물주의 철학이 모두 이 낙관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실례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신조일 것이다. 이 신조는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을 오늘날까지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그것이 출현한 이후에 일어난 세계를 뒤엎는 대격동에도 불구하고 그 순진한 신앙을 유지해 온 유일한 정치 이론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경직된 교조주의적 태도와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고집하는 점에서 실은 19세기의 유물이다.

 

P436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를 굳힌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중세 시대에는 사람은 모두 신에 의해 지정된 신분으로 태어난다는 생각과 신이 마련해 놓은 질서를 함부로 바꾸는 건 죄악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인정하고 살았다. 이 낡아빠진 신분 관념은 문예 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문제시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사람들은 이 신분 관념을 완전히 폐기해 버린 것이다.

 

P437

여행 즉 이동의 자유에 관해서는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 걸쳐 조금도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는 러시아가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예외 지역이 되었다. 당시의 서부 유럽에서는 누구나 아무런 증명서 없이 어디에나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제국만은 여권을 요구했으므로 예외였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빈번히 여행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여행에 큰 비용이 드는 데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비교적 잘사는 사람들도 여행을 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그 이후의 상황은 이런 통제가 국제적 신뢰를 얼마나 크게 망치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P438

서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이 세계가 상당히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의 상황이었다. 지금 그 시절을 되돌아 보는 사람은 당시 사람들이 꿈나라에서 살았다는 생각을 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과 선입견들의 체계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벌어진 제 1차 세계 대전에 이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좁은 민족 감정을 넘어서 대국적인 민족 의식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민족 사이의 차이점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바로 이 차이점들이 이전에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대학살의 고통을 유럽 세계에 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 대참변과 더불어 결코 완전히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보에 대한 자신감이 쇠퇴하고 회의의 풍토가 조성되었다.

 

P442

이런 지적을 이성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이론으로 삼을 때에는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언가에 관해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성의 역량을 부정하는 일은 도저히 이론적 핑계를 댈 수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이성의 능력에 대한 부정은 결코 말로 주장될 수 없으므로 결국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443

야스퍼스의 경우에는 철학이란 세번째의 초월적 존재 즉 자족적 존재에 속하는 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월적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개인의 노력이다. 개인의 도덕적 생활과의 관련에서 보면, 철학은 세 가지 존재의 수준 중에서 인격적 실존에 작용하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과 자유롭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일은 바로 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가 이성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에 관해서는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자유가 어떤 기분으로 드러나는 걸 인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불안한 느낌 또는 그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빌려 온 용어로 말하면 두려움과 동반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객관적 존재의 수준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반면에, 자아-존재의 영역은 기분에 의해 지배된다고 발할 수 있겠다.

 

P443

하이데거의 철학은 정도를 아주 멀리 벗어난 별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내용이 지극히 몽롱하다. 누구나 그의 언어 사용에 대해서는 큰 혼란에 빠져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사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무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역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P444

사르트르에 이르러 인간적 자유에 관한 실존주의적 견해는 극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전통과의 연결이나 개인의 생활에 이미 일어난 사건고의 연결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는 이 불쾌한 진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세계를 합리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자기 보호를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점에서는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이나 종교적 신앙에 의지하는 사람이나 똑같다고 본다. 그는 양쪽 다 실재로부터 도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게도 과오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계는 과학이 파악하고 있는 것과 다르며, 종교를 보아도 신은 이미 니체 시대 이래로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니체의 초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근원으로부터 자신의 무신론을 이끌어 냈다.

 

P446

마르셀은 우리가 정신과 신체를 구분할 적에 어떤 방식으론가 사람 위에 떠돌면서 제 자신을 보는 것으로서의 정신과 신체를 두 가지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은유를 미리 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마르셀이 주장한 요지라 할 수 있는데, 이 생각은 매우 건전하다고 하겠다.

 

P453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P454

철학적 활동이 과학적 전통과 긴밀한 관련을 유지하면서 진행된 문명은 그리스 문명 이외에는 전혀 없다. 그리스 사람들의 진취적 활동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해 주는 건 바로 이 사실이며, 더 나아가 서양의 문명을 독특하게 형성시켜 온 것도 실은 이 두 가지 전통이다.

 

P545

철학이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탐구의 성과들을 통찰하는 방식, 말하자면 과학의 성과들이 어떤 종류의 질서를 드러내도록 정돈할 수 있는 틀이다. 관념주의 철학은 이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에는 참으로 철학의 고유 영역 안에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과학을 연구하려고 착수했다면 그가 이미 어떤 종류의 철학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상인의 상식적 태도는 실은 사물들의 본성에 관해서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는 일반적 가정들의 뒤범벅이기 때문이다. 아마 비판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공로는 상식적 태도의 이런 실정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 일일 것이다.

 

P455

인간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 중의 하나는 이 세계 속에서 행동하는 일이다. 인간이 기울이는 과학적 노력은 수단에 관련이 있는 반면에, 행동에 관한 관심은 목적을 다룬다. 인간이 윤리적 문제들에 부딪치는 것은 주로 이 사회적 본성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어떤 목표에 가장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 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목표가 아니라 바로 이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과학을 통해서 알 수 없다.

 

P458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이 아는 지식의 양은 거의 내놓을 게 없을 정도로 적다고 아주 기꺼이 인정했다. 따라서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선과 동일시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탐구였다. 이것은 피타고라스로부터 유래하는 윤리의 원리이다. 탐구자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전혀 관계없이 진행되는 진리에 대한 추구 바로 이것이 탈레스 이래 전개된 과학 운동의 심층에 흐르고 있는 윤리적 추진력이었던 것이다.

 

P458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탐구자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성장시키는 위대한 촉진제이다.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가지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정도까지는 지금 관심의 대상인 지식이라는 좋은 것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 말은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누구나 똑 같은 의견을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떤 방도 강압에 의해 금지되지 않도록 탐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의 지혜는 철학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적극 추전하고 싶은 책이다. 전체를 포괄하는 내용의 구성을 차치해두더라도 한 문장 한 문장 본인이 전체를 이해하고 적어내려간 문장의 힘이 큰 책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힘은 딱딱한 이성의 힘이 만든 철학이라는 학문의 길을 말랑 말랑한 사람의 이야기로 사람의 역사로 풀어 내는데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로서 처음 읽고 모든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철학사 자체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바이다. 하지만 러셀의 본 저작은 감히 그러한 목표를 갖고 저술된 듯 내용을 알참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러셀의 조언들은 철학사를 이해하는데 길잡이로서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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