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 조회 수 1969
- 댓글 수 4
- 추천 수 0
#9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2014.06.09 이동희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저 또한 많은 물음을 던지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세상이 궁금했을 것이고 그래서 매일 이것은 무엇이냐 저것은 무엇이냐 질문도 많이 던졌을 것입니다. 어느덧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문득 다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의 이름 너머에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약간의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질문들입니다. 수학과 화학, 물리, 생물 등 과목을 통해 과학적으로 현재를 정의하는 체계적인 교과 학습을 통해 세상은 어렴풋이 이렇게 돌아간다고 배운 후에도 이러한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서 머리에 맴돌던 기억이 있습니다. 늘 그렇지만 시간들은 바쁜 일상으로 채워지고 이내 이런 질문들은 현실의 물음으로 바뀌고 이내 기억너머로 묻혀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질문들이 잊혀진 지 20년이 훌쩍 지나고 보니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로 매일 출근하고 주말의 휴식이 달콤해졌고 스스로 정해놓은 삶의 테두리 내에서 살아가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조금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때보다는 좀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을 넘어서 세상에 나들이 할 때가 되면 여전히 발길이 긴장되고 낯선 분위기와 모르는 것 천지인 그 길이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는 매 한가지 입니다. 그러고 보면 뭔가 안다는 것은 뭔가 친숙하다는 것은 이렇듯 사람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를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다르지 않나 봅니다.
세상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찾아도 설명서가 없습니다. 태어난 것도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인데, 그 기적은 이내 무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처참함으로 이내 변해버립니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의 시작은 말을 배우는 것일 겁니다.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말에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고, 상황에 맞는 문맥이 녹아있습니다. 크면서 단어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알게 되고 상황에 맞게 사용하게 됩니다. 단지 몇 가지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그 앎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야 잘못 알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설명을 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됩니다. 학창 시절에 받은 가르침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설명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정작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정말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조각 조각 자투리 지식과 몇몇 단어와 생활에서 사용하는 암묵적 표현들 그리고 기분을 묘사하는 말들이 전부라고 생각이 드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새삼 내가 살아온 세상은 뭘까?하는 질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제가 딛고 서있는 이 자리는 얼마나 부실한가? 새삼 느껴집니다. 이는 다시 어린 아이가 된 듯 세상에 대한 무지로 다시금 두려움에 빠지는 듯합니다. 금주에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의 지혜)라는 철학사 이야기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의 많은 철학자들이 저마다 세상은 이런 모양이고 저런 모양이다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신의 존재, 물질의 존재, 인식 방법 등 다양한 삶이 직면한 모습들을 해석하기 위한 많은 철학자들의 해석들이 수 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읽은 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은 이성의 치열한 변증의 과정을 겪은 진리의 추구인데, 진정으로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믿고 두려움 없이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예를 보면 불합리한 죄목에 대해 처벌로 독약을 마시고 죽음 택한 삶을 보면 철학은 결국 삶의 방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아는 바대로 행하고 행한 바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철학은 다양한 사변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개개인에게 스며들 것입니다. 철학사에 소개되어 있듯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철학을 주장하며 그 철학에 맞게 살다가 간 것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철학사를 읽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다양한 변증의 과정에서 보게 되는 논증보다도 그 결과로서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철학자들의 모습이 결국 인간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이고 철학이 추구하는 삶의 참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것과 제가 사는 것의 차이는 없는지 말입니다. 많이 알지 못하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그 아는 바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부터 말입니다. 철학사를 읽으며 느낀 점은 정말 다양한 세상에 대한 해석보다 그 해석의 결과를 자신의 삶으로 일구어낸 그들의 삶이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었습니다.
오늘 저의 아는 바가 얼마나 많은 흔들릴 지 모릅니다. 매일 흔들어 다시 세우는 이 지난한 일들이 어느 순간 기반을 다지기를 바래 봅니다.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뿌리를 내려 튼튼하게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말입니다.
제가 현역연구원일 때 쓴 글 하나 드립니다.
저도 동희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네요.
기운내세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112 |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한걸음 내딛기 [4] | 녕이~ | 2014.06.09 | 2000 |
4111 |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 소면 [4] | 종종 | 2014.06.09 | 2657 |
4110 | 발걸음이 멈추는 곳 [5] | 에움길~ | 2014.06.09 | 1941 |
4109 | 이상 국가 모델 [8] | 앨리스 | 2014.06.09 | 2105 |
4108 | 현재에 깨어 있기_찰나칼럼#9 [6] | 찰나 | 2014.06.09 | 2299 |
» | #9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4] | 희동이 | 2014.06.09 | 1969 |
4106 | 지혜의 열매 [8] | 어니언 | 2014.06.09 | 1880 |
4105 |
5일장_구달칼럼#9 ![]()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6.09 | 2230 |
4104 | #9 한발 내딛기_정수일 [12] | 정수일 | 2014.06.08 | 1960 |
4103 |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8] | 왕참치 | 2014.06.08 | 1904 |
4102 | 감악산 계곡 [1] | 유형선 | 2014.06.05 | 3201 |
4101 | 비교의 경제학 [1] | 정산...^^ | 2014.06.03 | 1892 |
4100 | 3-8. 미세수정 이러쿵저러쿵 [4] | 콩두 | 2014.06.03 | 6436 |
4099 | 이야기 속에 3+1의 비밀 [1] | 타오 한정화 | 2014.06.03 | 1982 |
4098 |
버림의 미학 ![]() | 미나 | 2014.06.03 | 2513 |
4097 | 그래 마음껏 바닥을 쳐보자 [6] | 녕이~ | 2014.06.02 | 1864 |
4096 | 짬뽕은 역사다 [8] | 종종 | 2014.06.02 | 3768 |
4095 | 우티스(Outis) [5] | 에움길~ | 2014.06.02 | 2359 |
4094 | #8 내안의 미노타우르스 - 이동희 [5] | 희동이 | 2014.06.02 | 2053 |
4093 | 영혼의 가압장을 찾아_찰나칼럼#8 [10] | 찰나 | 2014.06.02 | 2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