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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0시 09분 등록

서양의 지혜 버트런트 러셀

10기 김정은

 

 

서양의 지혜 버트런트 러셀, 정광섭 옮김, 동서문화사

 

1. 저자에 대하여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 교육 혁신가이자 실험가, 지성과 사회와 성해방의 옹호자,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운동가

 

1872 5 18일 러셀은 영국의 총리를 지낸 존 러셀 백작의 손자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러셀의 아버지 존 러셀은 무신론자였으며,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생물학자 더글러스 스펄딩과 자신의 아내간의 정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부모 양쪽 모두 당시 사회 분위기에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

 

유년기의 대부분동안 러셀은 할머니 러셀 백작부인의 돌봄을 받았다. 당시 러셀 백작부인은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종교 이외의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여 다윈 사상을 지지했으며, 버트런드 러셀에게 사회정의에 대한 시각을 키워주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이야기인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2/새번역성서)는 러셀의 좌우명이 되었다. 할머니는 공교육에 반대해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초빙해 가르쳤으며 이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한 러셀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공포를 느꼈다

 

러셀의 사춘기 는 굉장히 고독했으며, 그는 몇 차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러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자신의 주된 관심사는 종교와 수학이었으며, 수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15] 그는 집에서 몇 명의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다.[9] 그의 형 프랭크는 러셀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을 가르쳐, 러셀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그는 캐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과 도덕 과학을 공부했으며, 1903년 서른할 살의 나이에 자신의 최초의 저작 <수학의 원리>를 출간했다. 1916, 징병반대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납부를 거부하여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의권을 박탈당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의 구금형에 처해졌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수리 철학 개론> <정신의 분석>을 집필했다. 1927년에는 두 번째 아내인 도라 블랙과 함께 비콘 힐 학교라는 실험학교를 세웠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는 <서양철학사>라는 걸작을 펴냈고, 1차 리스 강좌 (권위와 개인)을 맡아 강연했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영국의 핵철폐 운동과 ‘100인의 위원회회장직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동한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70 2 2일 밤 98세의 나이로 웨일스에서 사망했다.

 

러셀의 일생은 놀라우리만치 많은 굴곡과 풍요로 점철된 삶이었다. 자신의 성격과 믿음들에 어긋남 없이 서술되는 그의 일생 이야기는 박력과 매력, 그리고 진솔함이 담겨 있다. 그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이 자서전은, 명쾌하고 정직한 문체로 참으로 비범한 사람이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2

우리는 한 사람의 철학자를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철학자뿐만 아니라 우린 타인을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사정은 어떤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통의 의미이다. 상대방을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 이 마음으로 러셀의 <서양의 지혜>를 읽었다.

 

15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은 점쟁이가 이미 준비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탐구하고 때때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다.

 

철학의 시작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다.

 

16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국어 사전이 전하는 철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2.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1장 소크라테스 이전

 

23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하나의 카타르시스, 즉 정서의 세척이라고 한 말은 옳다. 결국 그리스인의 성격에 두 가지 면, 즉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과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세계를 변혁시킬 수가 있었다.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비상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과 니체의 비극을 정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이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그것은 "비장미" 로부터 이끌어져 나온다. 비장함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여러 가지 "감정"들이 정화되어 순수하게 영혼이 기능함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선, 인격적인 고뇌가 고양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장이 유발되는 조건으로는 숭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의 위대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겪는 고뇌를 꼽았다. 그리고 그러한 고뇌를 겪는 사람에게는 인간존재의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재현된다. 그러한 고뇌 속에는 숭고함이 무너진 인간에 대한 연민, 무너진 계기에 대한 공포가 발생하면서 스스로가 고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 공포, 연민에 의해서 비극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비극을 통해 "감정"이 정화된 "영혼"이 자각되고, 그러한 영혼의 기능을 통해 생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니체의 비극 -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

 

니체는 "아름다움"을 거론하는데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아름답지 않은 것과 구조적인 차별성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준을 "초극의지"로 보았다. 초극한다는 것은 초인이 된다는 것이다. 초인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뛰어넘은 절대적인 자아를 말한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다름아닌 감정적인 상태의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초극의지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비극"이라 보았다. 숭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 어떠한 계기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경우에 우리는 어떠한 연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죽음에 의해서 그 "숭고한 의지"는 더 강렬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다. 비록 의지를 가졌던 사람은 죽었지만, 죽은 사람이 가졌던 의지는 그 죽음을 바라본 사람에게는 강렬하게 남을 수 있는 것처럼. 바로 그것이 희열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쾌락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더 확고히 한다

 

디오니소스는 신화에서 굉장히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신으로 디오니소스의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경향성을 감정적 고양과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은 비조화, 추함 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추함도 어디까지나 비극적, 혹은 부정적 요소를 가지며 그러한 것들은 초극의지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미학은 예술가의 "광적" 창작행위를 설명하는데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에 "파괴"라는 것도 "형성"이 없으면 무의미한 조건에 해당된다. 이 아폴론이라는 것은 막연한 직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으로 개체화 된 것은 다시 지배적인 "아름다움"을 형성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다시 그것을 파괴하는 과정을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숭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죽었을 경우,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폴론"적인 "절제된" 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숭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엄하게(아폴론) 죽는다(디오니소스)면 이것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의지로서의 희열을 느낄 것이다.

 

24

그리스어로사색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무엇인가보고 돌아다닌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25

살아남는다고 하는 문제는, 첫째로 인간이 자연의 힘을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철학이란 세계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세계와 인간은 변하므로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변하는 해답이 될 수 없다.

 

33

철학자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그들이 살고 있던 도시의 국가 종교와 충돌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운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립적인 정신을 갖는 사람에게 닥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지혜>를 읽으면서 철학자들 중에 순탄한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한 이는 보지 못했다. 본질을 연구하면서 기존의 것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34

철학상에서 이 새로운 정신의 선구자는 사모스 태생의 피타고라스였다.

 

42

우리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말은, 우리의 존재의 단일성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후에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끊임없는 생성이라는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강물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오늘 템스강에 들어갔고 내일 다시 들어간다면, 내가 들어간 강은 같은 강이지만 물은 같지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에 의해 우리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한 상태에 있는 서로 다른 본질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인간도 끊임없이 생성하는 존재이다. 인간 육체의 세포들은 매 순간 새로 생성되고 또 죽어간다. 인간의 정신도 항상 변한다.

 

44

지혜를 쟁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물의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45

지혜란 만물에 공통된 이 기본 공식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 보편적인 공식, 즉 로고스는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눈이 어둡고 마치 각자가 자신들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와 같이 이 공통된 공식은 여론과는 인연이 멀다.

 

50

헤라클레이토스: ‘사람의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날카로운 통찰은 2000년 후에 프로이트에 의해 증명되었다.

 

뜨끔!!

 

52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세계는, , 공기 불로 이루어졌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설은, 그로부터 2000년 후에 그려진 중세 회화에 표현되었다.

 

58

그리스인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시대의 아시아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아시아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법률이 지배자의 권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데에 반하여, 그리스인들은 법이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법률이 시대에 부합되지 않으면, 대중의 합의로 이를 개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법률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 사람들은 법률에 복종해야 했다. 이 준법 정신의 고전적인 예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의 사형 선고를 받고 도망갈 것을 제의 받았을 때, 이를 거절한 데서 여실히 나타나 있다.

 

68

후기 피타고라스 학파는 영혼에도 조화의 개념을 적용시켰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의 하나의 조화이며, 영혼은 육체의 잘 정돈된 상태의 함수이다. 육체의 조직이 무너지면 육체는 분해되고 영혼도 분해된다.

 

78

우리 주위의 변화하는 세계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 근거 자체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 설명의 본질이다.

 

86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사색에 잠긴 고독한 인물의 모습이 나체인 것은, 인간이 내성적이며 자의식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2장 아테네

 

92

’, 윤리 용어 정의, 중용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이들 의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이들 의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을 구하려는 일이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95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 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 그래서 그는 지혜자인 체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이 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신탁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려 애썼다.

 

95~96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향해서 자기의 의무는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이 태도는 우리에게 분열된 충성의 문자가 그리스 비극의 커다란 주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는 국가의 등에(gadfly)라고 말하고, 언제나 자기를 인도하는 마음 속의 소리에 대해 언급한다. 이 내면의 소리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금지는 해도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99

아카데미의 과목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전통적 과목과 비슷했다. 수학, 2차원 및 3차원 쌍방의 기하학, 천문학, 음향 또는 화성학이 기본 교과 과정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와 깊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수학이 크게 강조되었다. 학교 입구에는 이 과목이 싫은 사람은 누구나 입학을 삼가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들 과정의 교육에는 10년이 걸렸다.

 

(플라톤이 창립한 아카데미: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암기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고, 필요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플라톤이 창립한 아카데미는 현재 한국 사회의 혁신학교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수업 방식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게 하는 수업 진행에 비해 훨씬 에너지가 많이 드는 수업이다. 이러한 수업이 가능 하려면 알던 스승 당 맡은 학생 수가 적어야 하고, 무엇보다 스승의 자질이 뛰어나야 한다. 

 

100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이성의 빛에 비추어, 혼자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일반적으로 세계는 너무 복잡해서 이것을 짜맞추어 미리 생각한 학문적 틀에 끼워 넣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8

그리스의 철학자가 참다운 교육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다.

 

119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이들 노력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의 도움으로 얻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란 교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혼자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영혼이 육체 안에 있기도 하고, 육체 없이 존재하기도 한다면, 배우는 지식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답식의 논법이 중요하다.

 

120

참다운 교사는 절망적인 학생을 만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로 교사와 학생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교육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121

소크라테스에게 교육이란 넓은 뜻에서 영혼의 치료였다.

 

124

이성적인 원과 동물적인 원이 교차하는 부분이 인간을 의미한다.

 

150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의 분명한 한 가지 특징은 증명의 관념이다.

 

153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과학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공리라고 불렀다. 공리는 설명되자마자 명확하게 이해되기만 하면, 반드시 경험을 거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과학적 탐구의 과정보다도 오히려 일련의 과학적 사실의 진술과 관련이 있다.

 

155

논리학은 존재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존재하는 것을 아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167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을 때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목적을 이성적 영혼의 행복에 두고, 이것 또한 이것대로 연속적으로 덕에 의해 움직이는 자주적 이성 활동의 삶을 암시해 준다고 보았다.

 

영혼은 합리성, 민감성, 그리고 자양분이라는 재능을 지녔다. 사람은 이 재능들 중 셋을, 동물은 둘을, 식물은 하나를 지닌다.

 

175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모방이다. 그의 분류는 우선 음악과 무용과 현대적 의미에서의 시를 한 묶음으로 놓고, 그 밖의 것에 그림과 조각을 분리한다. 모방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방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가 서로 구별된다. 모방이란 무엇인가는 한 번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 관념은 물론 이데아론 이래 귀에 익은 것으로, 거기에서는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을 모방한다고 한다.

 

177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감을 세탁해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카타르시스를 뜻하는데, 자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대리 경험하면 영혼은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에는 치료적인 의도가 있다. 이 용어는 의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피부병 자체의 치료, 즉 일종의 정신병리학적 예방 접종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공포와 연민이 항상 우리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이 기정 사실처럼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옳은 말일 것이다.

 

186

결론적으로, 수학이 문제의 단순성과 구조의 분명성 외에도 미를 창조하기 위한 그 어떤 여지를 준다는 것은 아마도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3장 헬레니즘

 

193

그것은 일종의 기회주의적인 생활 태도로, 취할 일이 있으면 양손을 벌리고 취하지만 기회가 사라졌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즐길 때는 즐기지만, 운명의 장난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가르침이 이와 같이 발전해서, ‘시니컬(cynical)‘이라는 말이 저 불명예스러운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운동으로서 키니코스 철학은 영원히 계속될 만큼 그렇게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7

에피쿠로스에게 최선의 선은 쾌락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선한 삶은 불가능하다. 문제의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은 물론 육체적 쾌락도 들어간다. 정신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을 관조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그 이상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 삶은 이것을 어느 방향으로 향한다 해도 자유다.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의 관조의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데 반해서, 육체적 삶은 대개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신적 쾌락이 유일한 이점이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 서서 덕이 있는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는 데 신중하다.

 

206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국가 안에서 역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윤리 면에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자유 의지와 결정론에 대한 어려움이 강조된다. 전반적인 스토아학파의 관점에 서면, 사람의 덕이나 악덕은 남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적인 문제라는 것은 우리가 살펴본 대로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관에 서면, 각자의 윤리적 성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매우 분명하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207

그리스는 세계의 지적 작업장이었으나, 자유 독립 국가로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한편, 그리스의 문화 전통은 멀리, 그리고 널리 전해져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서양 문명에 남겼다.

 

211

그리스 전통 중 불경하고 기이한 성격은 헬레니즘 시대의 타락과 결부되어 고대 로마의 미덕을 저하시키는 데 다소의 역할을 했다. 특히, 해외 발전의 도래와 함께 많은 재물이 로마에 흘러 들어오자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순수한 그리스 영향은 힘을 잃어 특히 로마 시의 귀족 계급에 속하는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215

플로티노스의 삼위일체: 절대자(E), 철학적 정신 또는마음’, 그리고 끝으로 영혼. 그리스도교의 이론은 이 삼위일체 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4장 초기 그리스도교

 

224

서방을 지배하게 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와 동방의 종교가 섞인 혼합종교를 어느 정도 포함한 유대에서 나온 것이다.

 

225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교도 신은 백성을 선택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종교에서 선택된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두 종교는 모두 신의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무엇인가 성스러운 종국으로 나아간다는 같은 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는 누구고, 메시아는 무엇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몇 가지 있었다. 유대인들은 구세주가 앞으로 그들에게 지상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나사렛의 예수를 구세주로 받들고 있었다. 다만,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의 정의의 개념을 이어받아 이것을 이웃을 돕는 지도 원리로 삼는 동시에, 교리에 대한 주장까지 이어받았다. 후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는 모두 본질적으로 신플라톤주의적인 내세의 관념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내세에 대한 그리스의 이론은 철학적이고 누구나가 간단히 이해할 수 없는 데 반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내세에 대한 관념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다. 이 관념은 의로운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의 불로 떨어진다며 그 속에 인과응보의 요소를 확실히 밝혔기 때문이다.

 

234

세 사람 중 마지막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만이 철학자였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 권력의 대담한 주창자로, 국가와 교회 관계의 기초를 닦았으며, 이것이 중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히에로니무스는 처음으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해 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사고를 집중했다.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의 카톨릭교의 신학적 뼈대는 거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들었고, 개혁된 종교의 지도원리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들었다. 루터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파의 수도 사제였다.

 

238

죄의식은 구약성서 초기에는 국민적 결함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차차 개인의 오점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이러한 역점의 변화는 중대했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잘못을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일이 있는 사람은 개개의 그리스도 교도였다. 개인적인 면을 강조한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선구자다. 카톨릭교에서는 교회의 기능이 유일하고 중대한 생명선으로 여겨지기에 이렀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양쪽이 다같이 중대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저주를 받은 죄 많은 존재로, 교회의 조정이 있어야만 구제된다. 그러나 종교 의식을 지켜도, 덕이 있는 삶을 보내도, 구원은 얻을 수 없다. 신은 선하고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구원을 준다는 것은 호의지만, 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비난할 수는 없다. 나중에 이 예정설의 가르침을 유연성 없는 신교파 신학이 채택했다. 한편, 마니 교도가 주장한 것처럼 악을 실질적 원리가 아니라, 나쁜 의지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은 개혁된 종교가 이어받은 귀중한 가르침이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책임 개념의 바탕이 된다.

 

241

그리스인의 관점은 당연히 범신론으로 끝난다. 이 범신론에 입각하면, 신은 세계다. 이와 같은 사상의 경향은 어느 시대에서나 신비주의적 편향이 강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이 견해를 가진 가장 유명한 대표적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다.

 

246

사회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에는 그 어떤 상호 작용이 있다. 미신적 전통은 미신을 가지지 않는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진취적 기상보다 금욕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에서는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건설적인 정치적 조치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철학 문제는 그 배후에 있는 역사적 학식의 모든 재료가 없어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사를 보는 관점은 대부분의 의문이 이전에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과거에 현명한 해답이 제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있다.

 

5장 스콜라철학

 

256

7세기에 들어가자마자 유럽이 갑자기 암흑 속으로 던져졌다가, 4세기 후에 거기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고전적 전통의 영향은 비록 약간 불안정하고 한정된 것이었다 해도 어느 정도 살아 있었다.

 

266

당시의 교회를 둘러싼 큰 문제가 두 가지 있었는데, 성직 매매의 풍습과 독신의 문제였다. 둘 다 어떤 면에서 그 동안에 발달해 온 사제직의 지위와 연관이 있다. 사제는 종교상의 기적과 권능을 다스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차차 세속적인 문제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영향은 사람들이 그 권능을 진짜라고 믿는 한 효력이 있었다. 중세 전체를 통해서 이 신념은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일단 권위의 맛을 알면, 일반적으로 좀처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유리한 지위에 선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강력하고 유력한 도덕적 전통이 없으면, 그들은 딴 생각을 하여 남의 돈을 착복할 것이다.

 

277

종교적 열정이 십자군 운동에 공헌한 원동력이었는지는 모르나, 경제적 동기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은 하나의 운동으로 결론이 사전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철학과는 다르다. 그것은 정통 신앙의 궤도 내에서 작용해야 한다.

 

291

성직자들이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알고 있는 문제에 관해 포고를 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손을 빼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입장에서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시는 변증법적 목록에 기재되지 않아야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사람들은 삶을 과학적 연구에 바치고, 동시에 신에 대한 각종 신념을 품을 수 있다. 토마스주의자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별도로 하고라도, 이와 같은 증명을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약화시키고 있다. 종교적 신념 쪽에서 보면, 이것은 이성의 규준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며, 어떤 점에서 영혼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자유롭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98

아마도 가장 위대한 중세의 종합적인 사고는 단테의 저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신곡>을 썼을 당시, 중세는 실제로 해체되어 가고 있었다.

 

300

종교의 힘이 사람들의 행동을 억압하는 걱정의 근원이 되었지만 교의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하자, 그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301

각 나라 국어가 번성함에 따라, 교회는 철학과 과학의 지적 활동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상실했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생긴 탐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느 정도의 회의주의와 어울려, 사람들의 마음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거나 바꾸도록 가르쳤다. 이와 같은 경향은 모두 14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테는 이것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

 

302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307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물려받은 개인의 무거운 죄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리스인에게는 속죄나 구원과 같은 문제는 전혀 없었다.

 

6장 근대 철학의 융성

 

312~314

중세의 쇠퇴기에서 17세기의 거대한 파도에 이르는 과도기에는 중대한 움직임 네 가지가 한층 눈에 띄게 된다.

 

첫째, 15, 16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이다.

둘째, 휴머니즘이라는 문화운동이다.

셋째,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넷째, 오컴의 비판으로 시작되는 경험적 연구의 부활에서 직접 나왔다.

 

316

인쇄술의 발견이 논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그 축복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는 것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허위도 진실처럼 간단히 인쇄되어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놓인 재료를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언론과 비판의 자유가 있어서, 인쇄 문자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마음껏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차라리 문맹으로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는 이제 인쇄술만이 매스컴의 강력한 수단이 아니므로, 이 문제는 한층 심각해졌다. 무선 전신과 TV가 발명된 이후, 보통 그런 자유가 쇠퇴할 염려가 없다면 끊임없이 경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식이 더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구에 대해 지난날보다 더 올바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세계 발견의 항해가 서양의 기력과 모험심에 새로운 돌파구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손 안에 핸드폰으로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였다. 6.4 지방 선거를 보면서 1인 미디어의 위력을 보았다. 허위도 진실처럼 광범위하게 보급될 위험도 큰 반면, 진실을 빠르고 치밀하게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320

르네상스 운동의 선두주자는 피렌체이다. 아테네 이외의 그 어느 곳도 이 정도로 균형을 이룬 예술가나 사상가를 낳은 곳이 없었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는 그 중 몇몇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피렌체 사람이었으며, 나중에 출현한 갈릴레이도 마찬가지였다.

 

321

르네상스로 인해, 사람들은 교회의 교리 체계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여러 가지 고대 미신으로부터 구출되지는 못했다.

 

328~329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가장 오랫동안 인상 깊게 남은 분야는 교육이다. 인본주의 학문은 최근까지 서 유럽식 사고 방식이 성행하고 있는 곳은 어디서나 중등 교육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그의 문학 및 교육 활동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는 출판자로서 자신의 저서에는 반드시 원전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아카데믹한 전문가보다는 오히려 광범위한 독자 대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국어로 글을 쓰지 않았다. 라틴어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그는 여념이 없었다.

 

338

비례 수학은 우주의 구조를 푸는 만능 열쇠를 제공한다.

 

339

이와 같이 사물의 수적 구조를 파악했기 때문에 인간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어느 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인간을 신에게 가까이 가게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신을 최고의 수학자로 보고 있었다.

 

350

베이컨의 귀납법, 관찰을 강조한 점은 지나친 전통적 이성주의에 대한 해독제로서 귀중했다.

 

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해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타입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째는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 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다음에는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수하다. ‘시장의 우상은 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야기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극장의 우상은 체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에 대한 예로 든다.

 

356

데카르트(1596~1650)는 이 두 가지 영향을 받고 이를 융합시켜 고대인과 같은 장중한 새로운 철학 체계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그는 마땅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358

데카르트는 이성 자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만, 이성을 잘 사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다를 뿐이다.

 

359

우리가 빠뜨린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항상 철저하게 대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대수학을 기하학 문제에 적용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이와 같이 해서 오늘날의 해석기하학이 생겼다. 해석기하학을 철학에 응용하는 것은 나이를 더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느꼈다. 윤리학에서 우리는 딜레마 상태에 있다. 그것은 과학의 서열상 마지막에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삶에서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실용적 기준에서 가장 좋은 생활 조건을 줄 만한 잠정적인 행동법을 채택한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나라의 법률이나 관습을 지키고, 자신의 종교를 믿기로 결심한다. 일단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하면, 결단과 인내를 가지고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운명에 도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기를 억제하고, 자기 희망에 사물의 질서를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사물의 질서에 맞추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데카르트는 철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359

데카르트의 방법은 형이상학으로 나가자, 저절로 그가 일관되게 품은 회의로 이끌려간다. 오감의 증언은 불확실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수학은 의문의 여지는 없으나, 역시 수학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신이 우리를 헤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심하는 자가 인정하는 것도 자기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기본 공식,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바탕이 된다. 여기에 바로 형이상학의 분명한 출발점이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자기가 하나의 생각하는 존재며, 자연적 실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따라서 마찬가지로 육체와도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이제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이르러, 본질적으로는 그 존재론적 증명을 되풀이한다. 신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분명한 관념에 대해서 우리를 속일 수는 없다.

 

361

데카르트 철학은 이와 같이 사고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출발점으로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 후 합리론과 경험론 두 진영의 유럽 철학에 영향을 끼쳤다.

 

365

스피노자: 사람의 눈을 피해 살았는데도, 그의 명성을 급속히 올라가, 그는 그 후에 많은 유력한 심취자와 편지를 교환하게 되었다. 이들 심취자들 중에 라이프니츠가 가장 중요했고, 두 사람은 헤이그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피노자의 저술은 많지는 않지만, 전에 거의 볼 수 없었을 정도의 집중력과 논리적 엄밀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신과 종교에 관한 그의 견해는 시대를 훨씬 앞질러 있었기 때문에, 그 윤리상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는 엄격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시대나 그 후 100년 동안에도 죄악의 괴물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그의 최대 저서인 <윤리학>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죽은 후까지 출판 할 수 없었다.

 

7장 영국 경험론

 

389

사회적, 지적 분야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 사상은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약간 막연한 이 말은 상당히 확실한 특징을 몇 가지 보여준다. 첫째,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신교적이었지만, 칼빈주의식으로 좁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훨씬 신교적이며, 각 인간이 독자적으로 신과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발전된 것이었다. 게다가 완고한 신앙은 장사에는 좋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키고 있던 신흥 중산층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귀족정치와 군주정치의 특권층이 지배하는 전통에 반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본적인 경향은 관용이었다.

 

396

로크에게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427

낭만주의 운동과 계몽 운동의 관계는 어느 면에서 아폴로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함께 나타난 이상화된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그것은 정서의 숭배 운동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합리론 사상가의 약간 차갑고 초연한 객관성을 반대하는 움직임이었다.

 

428

낭만주의자들은 효용성을 버리고, 미적 기준에 의존했다.

 

낭만주의는 특히 시인 사이에 지지를 받았다.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는 아마도 바이런일 것이다. 바이런은 완전한 낭만주의자가 될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기존 인습에 대한 반역이 있고, 공공연한 무시와 멸시가 있고, 앞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이 있고, 고귀한 행동이 있다.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미솔롱기의 늪지에서 죽는다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최대의 낭만적 제스처였다.

 

434

1750년이 되어 비로소 루소는 작가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같은 해, 디종의 아카데미는학문 예술이 과연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왔는가라는 문제로 현상 논문을 모집했다. 루소는 명쾌한 논증으로아니다고 답하여, 상금을 차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는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욕망을 가르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욕구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아테네를 반대하여 스파르타를 좋아했다. 그는 과학은 속되고 나쁜 동기에서 나왔다고 해서 이를 비난했다. 문명인은 부패하고 있다. 진실로 덕을 가진 사람은 고귀한 야만인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불평등론>(1754)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루소가 어떻게 에밀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438

칸트는 위대한 철학 저서를 통해 재물이 아닌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는 정신력이 쇠퇴했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은 그를 자랑으로 여기고,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철학자로서 이 정도의 영예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칸트의 저서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데, 이 모든 주제는 언젠가 그가 강의한 것들이었다.

 

445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도덕적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윤리설을 간단히 고찰해보자.

 

의지는 행동이 인식의 이론적 과정과 대비된다는 뜻에서, 실천적이라고 한다. 이론적과 실천적이라고 하는 두 말의 뜻은 각기 보는 일과 하는 일을 결부시켜서 그리스어 자체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

 

경험내용이 결여된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만 남는다. 이것을 칸트는 정언적 명령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또다시 이성을 실천적으로 사용할 때, 이것을 이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의 아프리오리의 종합 명제에 대응하는, 혼성된 개념이 나온다. 

 

따라서 윤리의 최고 원리는 다음과 같은 정언적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가 보편적인 법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항상 행동하라.”

 

446

칸트의 윤리학의 바탕에 있는 정언적 명령이 형식 원리라는 점에서 우리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적인 이성권에 속할 수 없다. 그것은 현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452

독일의 관념철학은 헤겔의 손에서 최종적인 체계적 모양을 갖추었다.

 

453

헤겔의 저술은 모든 철학 문헌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 중에 하나이다. 이유는 논제의 성질 때문만이 아니라, 저자의 문체가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선명한 은유가 나와 개운한 기분이 들지만, 이것도 전체의 모호함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헤겔의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사이에 칸트적인 구별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463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헤겔은절대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견해로 볼 때 항상 사건 후에 생기는 철학 세계를 수립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것은 <법철학> 서문에 인상적으로 표명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닥쳐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

 

468

최고의 윤리적 존재는 자기이며, 의지 결정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선택을 통해 인생을 창조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결혼은 가장 중요한 개인적 결단 중 하나이다.

 

470

한편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과대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헤겔은 이성을 너무 존중해서 이성이 우주를 낳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졌다. 키에르케고르는 정반대 의견을 내어, 이성은 우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과학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낭만주의 최고의 원리와도 일치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낭만적인 삶의 방식을 외부 영향의 변화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비판하지만, 그는 철저한 낭만주의자이다. 실존적 사고 양식을 가정하는 원리 자체가 이미 혼란에 빠진 낭만주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473

쇼펜하우어는 이 의지를 철저하게 악으로 보고, 삶에 고통이 반드시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에게 지식이란 헤겔처럼 자유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근원이다. 이와 같이 쇼펜하우어는 합리론 체계의 낙관론 대신에,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아주 어두운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성 또한 그에게는 악한 것이었다. 생식은 단순히 고통의 희생자를 새로 낳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여자 혐오증은 이 견해와 관련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여자의 역할이 남자의 역할보다도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474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결국 세계와 세계의 분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라면, 니체(1844~1900)은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의 생각을 요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일반적인 뜻에서의 철학자가 아니며, 자신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남기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그는 문자 그대로의 귀족적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특히 하려고 했던 일은, 가장 뛰어난 인간, 즉 성격이 가장 건전하고 가장 힘찬 인간을 최상위로 밀어 올리려는 것이다.

 

476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적 결론에 도달한 데 반해, 니체는 낙천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478

니체가 무엇보다도 싫어한 것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성장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의 출현이었다. 그에게 사회의 올바른 기능은, 귀족적 이상을 달성하는 위대한 소수인의 못자리 역할을 다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작은 물고기에 고통이 일어나도, 그에게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국가에는, 플라톤의 <공화국>의 이상국가와 다분히 공통된 점이 있다. 그는 전통적 종교를 노예 도덕의 지주라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인간형이다. 노예 도덕의 진부한 실례를 그는 그리스도교에서 들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내세에서의 보다 좋은 삶을 향한 희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관주의적이고, 온유함이나 동정과 같은 노예의 냄새가 나는 덕목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치우쳤기 때문에, 니체는 이전에 존경할 만한 친구로 여겼던 이 작곡가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의 영웅 숭배론을 보자면 맹렬하게 여성을 멸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고, 여자를 재산처럼 다루는 동양의 풍습을 변호한다. 이 점은 니체 자신이 여성을 잘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9장 공리주의 이후

 

485

모든 사람에게 읽고 쓰고 셈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사회 문제가 처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 훌륭한 기능이 산업사회를 올바르게 운용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를 올바르게 다룰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489

사회 비판에서 벤담은 18세기 유물론과 같은 선상에 있고, 훗날 마르크스가 좋아한 것을 대부분 예시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희생 도덕은 지배 계급이 자기 손으로 가진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부과하고 있는 정교한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생을 기대하면서도 자기는 아무런 희생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에 반대해서 벤담은 공리주의를 주장한다.

 

492

쾌락이란 바라는 것이라고 정의한 경우와 같이 평범한 의미를 제거한다면, 비록 욕망이 충족되어 실제로 내가 쾌락을 얻는다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이 쾌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옳지 않다. 게다가 거기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을 대, 내가 이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것이 나의 삶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504

마르크주의 철학은 19세기가 낳은 위대한 마지막 체계이다. 그 호소력의 크기와 영향 범위는 주로 그 행동 계획의 혁명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 유토피아적 예언의 종교적 성격에 의존하고 있다.

 

510

탐구는 어떤 종류의 불만이나 불안에서 생기는 것으로, 그 목적은 불안을 주는 영향이 제거되는 휴지 상태를 획득하는 데 있다.

 

10장 현대 철학

 

528

교육은 보통 특권적이거나 독점적이었지만, 그 후 대부분 이런 특권은 무시되고 말았다. 오늘날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은 단 한가지 유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뿐이다. 이것 또한 다른 종류의 하나의 특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542

최고 형태의 본능은 직관이며, 직관은 세계와 직접 일치하고 있는 어떤 정신 활동이다. 지능은 경험을 왜곡하지만, 직관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

 

547

프로이트는 망각 작용을 이것과 매우 비슷한 억압의 기구와 결부시킨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 잊어 버린다. 우리는 쉽게 잊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회상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552

수 세대에 걸쳐 사람들을 움직였던 지도적 관념은 진보의 관념이었다. 세계는 그때보다도 더 뛰어나고 더 개화된 상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더욱이 서유럽은 온정이 넘치는 주인으로서 군림하고,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정치적기술적으로 여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세계관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양은 정치적으로나, 공업이 주는 물질적인 힘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우세했다. 이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넘치는 자신감과, 신도 보편이라는 감정이었다.

 

554

진보 사상에 의해 움직여진 이 시대 사람들에게, 확신을 갖고 앞날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정황은 안정되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장래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것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계획은 전적으로 개인 문제였다. 사람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와 몸의 안녕을 얻는다. 보통 인간적인 삶을 살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추세로 기품이 있고 책임도 중요시하는 개개의 시민이 자선을 베풀고 자발적인 원조를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회 복지의 규정에 대한 첫발을 내디딘 것은 묘하게도 비스마르크로, 그는 일종의 노동자 건강 보험을 도입했다. 이것은 반대당인 사회주의자를 앞지르기 위한 것이었다.

 

557

이와 같은 광범위한 진보 발전은 여러 면에서 매우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게 되었다. 우선 국제 간의 커다란 분쟁이 이전의 세기에 널리 퍼졌던 안정감을 어느 정도 뒤엎고 말았다. 전세기처럼 사물을 장기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국가의 활동이 이전에는 개인의 것이었던 행동의 자유를 심하게 빼앗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중략)

 

563

사르트르: 프랑스의 철학자작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지도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자기의 자유를 의식하면 사람은 불안을 갖게 되고, 그 불안에서불성실로 피난한다고 생각했다.

 

571

머지않아 시작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 이전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필요가 있다.

 

576

중대한 몇 가지 점에서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동양 정신의 사고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을 제외하면, 하나의 문명에서 철학의 움직임이 과학적 전통과 손을 잡고 나아가는 것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인의 진취적인 기상에 독자적인 활약 무대를 주는 것이다. 이 이원적 전통이야말로 서양 문명을 형성해 왔다.

 

580

남은 문제는 진리의 추구가 좋은 일이라는 이 윤리적 원리를, 우리가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 이다. 분명히 우리 모두가 반드시 과학적 탐구에 종사할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경우에 판단을 중지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보류시키는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공정한 탐구가 또 하나의 선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용은 탐구가 왕성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탐구자를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가게 하는, 자유로운 사회의 위대한 추진자이다. 이 정도까지라면 누구나 여기서 문제가 되어 있는 선에 공헌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관해서 같은 의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억지로 조성된 비평이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증 받을 수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서양의 지혜>는 철학에 문외한인 내가 펼치기 힘든 책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는 이름을 볼 수 있어 그나마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 4장 초기 그리스도교를 넘어가면서 곧 빠져들기 시작했다. 근대철학부터는 철학자들의 갑론을박이 흥미진진해지면서 여태껏 내가 왜 이렇게 멋진 이들의 저서를 단 한 권도 안 읽었나 가슴을 쳤다.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읽었을 때, 에커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러셀의 <서양의 지혜>를 읽으면서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러셀은 누군가 대신 써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썼다.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서양의 지혜들을 시대순으로 모아 친절하게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덕분에 철학이라는 어려워 보여 공포스럽기까지 한 학문에 살짝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뿌듯하다.

 

철학 입문서로 두고두고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근래 투표를 하며 궁금했던 이상적인 국가 모델에 대해 고민할 때, 플라톤의 국가 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à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VS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순서로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로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서양의 지혜>를 통해 러셀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저자로서 전체를 개괄하는 눈이다. 전체를 조망하듯 바라보는 저자의 넓은 시야가 부럽다. 두번째는 탐구하는 자의 자세이다. 레셀은 맺음말에서 다음과 같이 탐구자의 자세를 당부하고 있다. “탐구하는 사람은 이중의 임무를 떠안게 된다. 탐구하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신의 주제인 객관적 대상을 연구해야 한다. 탐구자는 연구의 성과가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가 불안하게 하는가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일을 수행해야 한다. 탐구의 결과는 윤리의 원리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적용되듯이 전혀 개인의 감정을 존중할 의무가 없는 법이다. 다른 한편으로 탐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발견한 지식이 윤리적 의미에서 좋은 일에 이용하도록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목차 및 구성

 

머리말

 프롤로그

 1장 소크라테스 이전

 2장 아테네

 3장 헬레니즘

 4장 초기 그리스도교

 5장 스콜라 철학

 6장 근대 철학의 융성

 7장 영국 경험론

 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9장 공리주의 이후

 10장 현대 철학

 맺는말

 

목차와 구성은 시대순으로 간단하다.

 

감동적인 장절

16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25

살아남는다고 하는 문제는, 첫째로 인간이 자연의 힘을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44

지혜를 쟁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물의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118

그리스의 철학자가 참다운 교육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다.

 

119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이들 노력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의 도움으로 얻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란 교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혼자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영혼이 육체 안에 있기도 하고, 육체 없이 존재하기도 한다면, 배우는 지식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답식의 논법이 중요하다.

 

120

참다운 교사는 절망적인 학생을 만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로 교사와 학생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교육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121

소크라테스에게 교육이란 넓은 뜻에서 영혼의 치료였다.

 

350

베이컨의 귀납법, 관찰을 강조한 점은 지나친 전통적 이성주의에 대한 해독제로서 귀중했다.

 

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해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타입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째는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 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다음에는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수하다. ‘시장의 우상은 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야기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극장의 우상은 체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에 대한 예로 든다.

 

356

데카르트(1596~1650)는 이 두 가지 영향을 받고 이를 융합시켜 고대인과 같은 장중한 새로운 철학 체계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그는 마땅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358

데카르트는 이성 자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만, 이성을 잘 사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다를 뿐이다.

 

445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도덕적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윤리설을 간단히 고찰해보자.

 

의지는 행동이 인식의 이론적 과정과 대비된다는 뜻에서, 실천적이라고 한다. 이론적과 실천적이라고 하는 두 말의 뜻은 각기 보는 일과 하는 일을 결부시켜서 그리스어 자체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

 

경험내용이 결여된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만 남는다. 이것을 칸트는 정언적 명령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또다시 이성을 실천적으로 사용할 때, 이것을 이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의 아프리오리의 종합 명제에 대응하는, 혼성된 개념이 나온다. 

 

따라서 윤리의 최고 원리는 다음과 같은 정언적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가 보편적인 법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항상 행동하라.”

 

468

최고의 윤리적 존재는 자기이며, 의지 결정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선택을 통해 인생을 창조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결혼은 가장 중요한 개인적 결단 중 하나이다.

 

보완점

 

입문자들을 위해 세부 목차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시대순의 대 목차 아래 그 시대 지식인의 실명과 저서로 이루어진 소 목차가 있다면 이상적일 것 같다. 그렇게 한다면 연표로 활용하기도 좋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 이전 누구의 영향을 받고, 또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 시대에 그 저서를 왜 쓸 수 밖에 없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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