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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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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0시 40분 등록

■칼럼7■

발걸음이 멈추는 곳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무얼까.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직감에 의지해 투표소가 있는 방향으로 간다. 길을 찾고 나서 보면 지름길을 지나쳤다는 것을,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내가 가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줄곧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다. 안내판에 의지하고 지나는 이들에게 물어 본다고 해도 처음 만난 길이 금세 팔짱을 끼어 나를 인도해줄리 없기에 아직 낯선 곳을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멈칫 멈칫 가다 보면 어김없이 멈춰서는 택시들. 그리고 경적음, 빠~빵! 나는 여전히 낯선 길 위에 서 있다.

 낯선 곳을 배회할 때 더 이상 그 길들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작은 희열이라고 할까. 그 순간의 덤을 느끼기 위해 계속 낯선 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길 어디서나 고개를 만나게 된다. 전설의 고향에서 드라마로도 만난 만날고개도 있고, 부처고개도 있고, 밤고개도 있고, 퇴패고개도 있고, 무네미고개도 있고, 여우고개도 있고, 지금 내 눈 앞엔 아리랑고개가 있다. 아마도 내가 가게 될 어디든 고개가 있고 그것이 있어 온 전설과 설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삶의 여정에도 늘 고개가 있다. 고개를 넘어가기까지 가쁜 숨을 몰아대다가 고개에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더 험난한 길을 내딛기 전 고르는 숨이 하나의 대답을 알려주는 지혜를 선사하면 좋으련만, 늘 답은 멀리에만 있는 것 같고 그렇기에 물음 또한 쉽지가 않다. 그러니, 이 고개를 스무고개라 명명할까.

 스무 개의 문제가 주어지고 답을 알아채야 한다면, 그것은 답을 찾는 노력이 중요한 것일까. 문제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주어진 시간 안에 적절한 질문을 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스무 고개는 힌트를 얻기 위해 넓고 넓은 범위로부터 좁고 좁은 범위로 질문을 추려 나간다. 물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질문을 하기도 한다. 답을 쥔 이의 주의를 흩뜨리는 질문, 보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대기도 한다. 답을 빨리 알아채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스무고개의 참 맛은 질문이란 걸 알아버린 경우라면 스무 개의 질문을 요리 조리 잘 버무려 자연스럽게 답이 나오도록 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것을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알았던 걸까. 이제야 생각하니 스무 고개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익히는 놀이였다.   

 그 답에 이르는 길. 그것은 물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무런 질문도 없이 나는 그 답을 찾아갈 수가 없다. 때론, 뜨악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은 늘 계속되어야 한다. 아직 그 질문에 막혀 여전히 답없이 진행중인 물음도 있지만, 그래서 이런 고갯마루에서 머물러 있지만, 이쪽 저쪽 양쪽을 바라볼 수 있는 이 고갯마루에서 하나의 답을 얻고 하나의 물음을 얻는다. 내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살리라는 것, 그리고 왜 계속 물음표를 가지려 하느냐는 것? 

 돌아오는 길, 샛길을 발견한다. 지문을 찍어 기표 용지를 받고부터 지속되는 찜찜함 때문에 가라앉은 마음을 조금 달래 준다. 좋구나, 이런 샛길. 그러나 조금 후에 후회한다. 아, 입구에 있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건데. 몹시, 더운 날이다. 뛰어 들어와 화학 약품의 톡 찌르는 맛을 기대하며 콜라 뚜껑을 연다. 에잇, 이런 김빠진 콜라!


 인생엔 늘 길이 있다. 큰 길, 샛길, 쭈욱 뻗은 길, 휘어진 길, 앞이 보이지 않는 길, 길밖에 안보이는 길. 나무가 많은 길이 있고 태양이 비춰주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나 장점이 있다. 어느 길이나 단점이 있다. 그러나 어느 길이든 고개를 만나게 된다. 보다 쉽게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그렇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러나 분명 어느 길이나 발걸음을 떼다 보면 고개는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 고개에는 굽이굽이 사연이 담겨진다. 그리고 그 사연을 몰고 가는 것은 언제나 물음이다.


 내 발걸음이 멈추는 곳 어디에나 그런, 고개가 있다.



IP *.23.2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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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2:45:13 *.94.41.89

"그 답에 이르는 길. 그것은 물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저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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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5:20:28 *.196.54.42

"그러나 어느 길이든 고개를 만나게 된다. 보다 쉽게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그렇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러나 분명 어느 길이나 발걸음을 떼다 보면 고개는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 고개에는 굽이굽이 사연이 담겨진다. 그리고 그 사연을 몰고 가는 것은 언제나 물음이다."


에움길님은 이미 길의 맛을 알아버린 도보여행가, 이미 이름이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사연을 몰고 물음을 안고 길을 가니 이야기꾼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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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7:02:19 *.50.21.20

때론, 뜨악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은 늘 계속되어야 한다. 아직 그 질문에 막혀 여전히 답없이 진행중인 물음도 있지만, 그래서 이런 고갯마루에서 머물러 있지만, 이쪽 저쪽 양쪽을 바라볼 수 있는 이 고갯마루에서 하나의 답을 얻고 하나의 물음을 얻는다. 내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살리라는 것


뜨악하는 질문들과 자주 맞닥뜨리는 지금, 양은냄비처럼 화르륵 달궈진 마음은 잘 진정이 되지 않네요. 그래도 이런 흐트러진 질문들 해가며 답찾아가다보면 조금은 극복한 내가 보여요. 방향은 알겠으니, 뭐 꾸준히 걸어가는 일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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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0:21:34 *.104.9.216
한고개 넘으면 한개가 줄어 열아홉 남는 것이 아니라 한고개 넘으면 또 스무고개가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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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0:54:53 *.218.180.22

어느 길을 택하나 어차피 넘어야 하는 고개라면 즐기면서 넘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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